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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 선수가 일장기 말살 사건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싱가포르에서 크루즈를 타고 상하이를 방문할 때였다. 상하이 한인회에서 주최한 ‘손기정 베를린마라톤 우승 환영회’에서 교통대학 교수로 근무하는 신국권(申國權) 선생의 부인인 손성실(孫誠實)로부터 국내 소식을 전해 듣고 깜짝 놀란다. 신국권은 1896년 한성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6년 상하이로 망명한 후 나라의 국권을 회복하겠다는 의미로 ‘신기준’에서 ‘신국권’으로 개명했다. 그는 전 생애를 조선 독립투쟁과 스포츠 교류에 헌신했다. 신국권은 1919년 상해에서 머물렀을 당시 대한민국임시정부 외교부 임원이었다. 국내로 들어와서는 연희전문학교 체육 주임과 조선체육회 이사를 했다.
1928년 5월 12일 조선 축구심판협회를 조직하고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1929년 9월 미국 오하이오주 오벌린(Oberlin)대학 체육학과에 입학하여 체육학을 공부하고, 1932년 미국 LA올림픽에 중국대표단 부단장 겸 선수로 활약했다. 그는 해방 이후 귀국하여 1946년 10월 16일 열린 제1회 조선올림픽 대회가 열렸을 때 체육회 부회장이 되었다. 1948년 런던올림픽에 단장 정환범, 부단장 신국권이 선임되었다.
안창호 선생과 손정도 목사
신국권은 임시정부 주요 인사인 해석(海石) 손정도(1881~1931) 목사의 둘째 사위이다. 손정도의 첫째 아들은 대한민국 해군의 아버지라 불리는 손원일(1909~1980) 제독이다. 신국권은 한국과 중국의 스포츠 교류사의 큰 영향을 미쳤다.
1932년 양정고보 시절 (아래 왼쪽에서 2번째 손기정)
손기정 선수는 양정고보 시절에 남승룡 선수와 운동을 함께 하였다. 몽양(夢陽) 여운형(1886~1947) 선생은 1935년 조선체육회를 설립하고, 손기정 선수가 올림픽 마라톤 선수로 선발되자 기금을 모아 손기정 선수를 적극 지원했다. 조선총독부는 “손기정의 마라톤이 민족의식을 고취한다.”고 하여 항상 감시가 붙었고, 전차를 탈 때도 경찰이 미행하였다.
여의도 공항 도착, 1936년 10월 17일 (사진:손기정기념관)
1936년 10월 여운형 선생이 명월관(明月館)에서 개최한 〈베를린 마라톤 우승 환영회〉에서 손기정은 무용가 최승희(1911~1969)를 만나 대화를 하였다. 양정학교 환영회는 거의 11월이 다 되어 체육교사만 참석한 가운데 조촐하게 행해졌다. 당시 학교에 가지 못하게 했고, 친구도 만나지 못하게 통제했다. 손기정은 진로를 고민하다가 일본 고등사범학교 응시했으나 체조, 철봉 등의 실기 종목이 약해 떨어졌다.
홍성하(洪性夏. 1898~1978) 교수는 보성전문에서 재정학을 가르치며 체육부장을 하였다. 그는 스포츠 활동을 적극 장려하며 인재를 영입하자고 보성전문학교에 제안한다. 그는 1933~1934년에 조선축구협회 부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중등학교를 졸업하는 우수한 선수들을 선발하여 1937년 보성전문 상과에 입학시켰다.
손기정(보성전문학교), (사진: 손기정기념관)
손기정은 보성전문학교 상과에 입학한 지 얼마 안 되어 평북학생회 신입생환영회에 참석했다. 그런데 경찰이 불법 모임이라고 체포를 해 끌려갔다가 나온다. 학교에 입학한 지 5일 만에 수원 경성 간 역전경주 이어달리기에서 5구간인 시흥과 서울운동장 구간을 잘 달려 7개 팀에서 가장 먼저 들어와 우승을 차지했다.
6월 5일과 6일에는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조선 학생육상대회 1,500m와 5,000m에서 우승하였다. 손기정 학생의 우승 덕분에 보성전문은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조선총독부 관리들은 손기정 선수가 보성전문을 다니는 것을 심히 꺼려 손기정은 심한 갈등을 느낀다. 알게 모르게 계속 주변을 탄압해 손기정은 자퇴를 결심한다.
양정고보 선배인 정상희, 손태하는 후배 손기정을 설득하여 일본으로 데려가 메이지대학 법과 전문부에 편입시킨다. 그런데 일본 정부에서 메이지대학에 입학할 때 까다로운 조건을 붙인다. “첫째, 육상을 다시는 하지 않는다. 둘째, 사람이 모이는 곳에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 셋째, 가능한 한 조용히 지낼 것.”의 각서를 쓰게 한다. 메이지대학 측은 손기정이 입학해서 도쿄~하코네 구간 역전대회에 출전할 선수가 왔다가 좋아했으나 곧 실망했다.
손기정은 일본에 있는 동안 쥐 죽은 듯 침묵하며 생활했다. 1940년 3월 메이지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조선에 돌아와 조선저축은행에 취직한다. 그러나 조선총독부와 일본 헌병은 수시로 손기정에게 학도병 모집 연설을 강요하고 이리저리 끌고 다닌다. 손기정은 학도병 모집을 강요받았던 때를 제일 후회했다. 암울한 전쟁이 계속 이어지고 많은 사람이 징용당해 동남아와 태평양 전쟁터로 끌려 나갔다. 그러다 일본이 미국의 원자폭탄을 맞고 천황이 항복을 선언하여 조선은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었다.
베를린 올림픽 우승 10주년 재연행사, 덕수궁 (사진:동아일보)
김구 선생은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 올림픽에서 우승한 지 10년이 되자 1946년 8월 9일 덕수궁에서 올림픽 우승 10주년 행사를 재연하고 격려했다. 서양화가 강형구(姜亨九)는 11살 될 때부터 손기정을 존경해 국내외에서 손기정 선수의 자료를 수집하였다. 동아일보에 사진 20장을 제공하여 2004년 7월 14일 첫 공개가 되었다. 그는 10여 년 동안 손기정 선수를 사실적으로 12점을 그렸고, 1,200여 점의 자료를 수집하여 2004년 7월 28일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손기정 자료전〉을 개최하여 손기정의 친일 여부를 완전히 잠재워 버렸다.
손기정은 보성전문 상과를 한 학기를 다녔다고 말했지만, 고대인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고려대는 손기정의 기록을 찾기 위해 30년대 학적부 등을 다 뒤졌으나 허사였다. 그러다 손기정을 포함한 육상선수 5명이 보전이란 유니폼을 입고 찍은 사진을 뒤늦게 발견했다.
보성전문학교 입학기념 사진첩 (사진:고려대학교 박물관)
보성전문학교 입학기념 사진첩 (사진:고려대학교 박물관)
고려대학교는 사진 속의 인물을 수소문하여 생존자 1명으로부터 손기정의 재학 사실을 뒷받침할 만한 증언을 들었다. 생존자는 “올림픽에서 우승한 손기정이 민족정기를 고취할 수 있다며, 일제가 압력을 가해 보성학교를 중도 포기하고 일본 메이지대 법과에 강제로 유학하러 갔다.”고 증언하였다. (동아일보, 1997), (곽형기‧이현정, 「마라토너 손기정의 체육사적 의미」)
1997년 2월 25일 고려대학교(총장 홍일식)는 일제 탄압으로 학업을 그만둔 지 61년 만에 손기정에게 명예경영학학사 학위를 수여하였다. 손기정의 나이 85세 때 일이다.
생활문화아카데미 궁인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