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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방(新羅坊) 엔닌(円仁) 웨이하이시(威海市) 장보고(張保皐)
【문화】
(2023.11.03. 20:35) 
◈ 산동 연안 및 대운하 요충지에 재당신라인 사회 형성
엔닌, 밀주의 대주산 목탄 생산 운반한 신라인 목격 기록 남겨 / 중국 역사학자 혁지청(赫治淸, 1939년~ )은 “신라는 당나라의 선진문물을 받아들이려고 공식적으로 126회의 사절단을 보냈다. 당시 신라는 당(唐) 현종(玄宗) 때 안록산(安祿山)과 사사명(史思明)이 일으킨 반란 안사의 난(安史之乱, 755년~763년)이 발생하고 당나라 조정이 어지러워지자 이후에는 일체 사절을 파견하지 않았다.
엔닌, 밀주의 대주산 목탄 생산 운반한 신라인 목격 기록 남겨
 
 
중국 역사학자 혁지청(赫治淸, 1939년~ )은 “신라는 당나라의 선진문물을 받아들이려고 공식적으로 126회의 사절단을 보냈다. 당시 신라는 당(唐) 현종(玄宗) 때 안록산(安祿山)과 사사명(史思明)이 일으킨 반란 안사의 난(安史之乱, 755년~763년)이 발생하고 당나라 조정이 어지러워지자 이후에는 일체 사절을 파견하지 않았다. 그러나 유학승, 학자, 어민들이 대거 당나라에 이주하여 민간 교류가 더욱 활발했다. 이때 많은 신라인들이 산둥반도의 항구, 포구마다 촌락을 이루고 배를 만들고 수리하고 교역에 종사했다.”라고 글을 발표했다.
 
 
엔닌의 일기 《入唐求法巡禮行記》(사진:위키백과)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만든 《장보고의 청해진을 통한 서해안 교섭활동》 데이터베이스에는 엔닌(圓仁)의 《入唐求法巡禮行記》에 나타나고 있는 재당(在唐) 신라인사회의 실태와 그들의 교역활동, 그리고 장보고와의 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일본의 청익승(請益僧: 단기 유학승) 엔닌의 일기(日記)에 나타나고 있는 신라인들의 집단적인 거주 지역을 보면 남으로는 대운하, 회수유역(淮水流域)의 내륙지역과 북으로는 중국의 연해안을 남북으로 연결하는 연안지역 일대에 걸쳐 집단적으로 거주하고 있는데 이들 남북 두 지역의 신라인사회는 서로 고립되지 않고 상선(商船)에 의해 끊임없이 교류되고 있었다. 남쪽 대운하, 회수유역의 내륙지방에 대해 《入唐求法巡禮行記》에는 장강 하류지역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인 양주부(揚州府)에 많은 신라의 무역상들이 있었으며, 특히 왕청(王請)과 왕종(王宗)이라는 신라인이 대일 무역에 종사하고 있었다고 기록했다.
 
 
초주(楚州) 신라방 유지(新羅坊 遺址)
 
 
또한 회하 하류(淮河下流)에 위치하여 징강운하와 회화를 이어주는 경제적, 군사적 요지인 초주(楚州)에도 신라인들의 집단 거주지인 신라방이 있었고 초주와 신라와의 항로(航路)를 따라 신라인들의 왕래가 끊이지 않고 있었으며 초주의 신라방은 신라인인 설전(薛詮)이 총관(摠管)으로서 이곳의 행정을 관장하고 있었다. 특히 이곳에서 일본의 입당조공사절단(入唐朝貢使節團)을 안내하였던 신라인 역어(譯語) 김정남(金正男)이 이들 일본사절단 일행의 귀국을 위해 일시에 9척의 신라인 선박과 海路에 능숙한 신라인 60여 명을 마련한 사실은 당시 이들의 해상활동의 규모를 시사해 준다.
 
그리고 장보고와 정년(鄭年)의 재당시의 연고지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회하 하류의 연수(漣水, 롄수이 현)에도 신라방이 있었고, 초주처럼 신라인 총관에 의해 다스려지고 있었다. 북으로 산동(山東)에 이르는 연해안지역에도 많은 신라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일본조공선(日本朝貢船)과 헤어진 엔닌 일행이 해주(海州) 동해현(東海縣) 숙성촌(宿城村) 연안에서 밀주(密州)로부터 초주(楚州)로 목탄(木炭)을 운송하는 신라인 10여 명을 만나 신라인의 집단촌락인 숙성촌(宿城村)에 도착하였고, 이곳에서 신라인 왕랑(王良) 촌장을 만났다고 기록이 있다. 밀주의 동쪽 연안의 대주산(大珠山, 따주산, 486m) 부근에도 신라인 거주지가 있었다.
 
신라인들은 선박수리소를 운영하며 적산에서 오는 배들과 초주에서 오는 배들을 잘 수리해 평판이 좋고 명성이 높았다. 이곳은 현재 칭다오 위성도시인 교남(膠南)시에 속한다. 최치원이 아버지가 병환에 들어 위독하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한때 신라에 돌아가기 위해 대주산 언덕에 올라 배를 한없이 기다렸다. 그러나 태풍으로 신라로 돌아갈 배들이 모두 파손되어 신라에 귀국할 꿈을 접고 울면서 집으로 갔다고 한다. 4월이 되면 대주산에는 개나리와 진달래가 활짝 피어나 많은 관광객들이 유명한 주산수곡을 따라 올라가며 화려한 꽃들을 감상한다. 진달래군락지는 너무나 넓고 아름답고 색이 곱기로 유명하다.
 
 
신라인의 집단 촌락지 - 밀주의 대주산(大珠山)
 
 
동국대 불교학과 고영섭 교수는 부석의상(浮石義湘, 625~702)의 해상 유학로를 연구하면서 의상이 경기도 화성시의 남양만에 자리한 당은포(唐恩浦)와 산둥반도의 등주 지방을 잇는 항로를 이용하여 입당하려고 당항진으로 갔던 것으로 짐작했다. 당시 신라와 당나라 북쪽 해로의 최단거리는 산동지방의 등주였으며 여기에는 관내의 성산포(成山浦), 산동반도의 용구시(龍口市)에 해당하는 황현포구(黃縣浦口), 적산포(赤山浦), 유산포 등의 좋은 항구가 있었다. 신라의 견당사들은 산둥반도 용구시에 해당하는 황현포구를 주로 이용하였다.
 
엔닌 일행이 일본 무역에서 돌아온 신라인 김자백(金子白), 흠양휘(欽良暉), 김진(金珍) 등을 찾아 초주(楚州)에서 북상하면서 입항했던 승가점(桝家占)에도 신라인 거주지가 있었다. 등주(登州) 모평현( 牟平縣) 當陽(鄕) 陶村, 邵村浦, 長淮浦, 유산포 등지에도 신라인 거주지가 있었는데 이 가운데 유산포가 중심지였다. 특히 문등현(文登縣) 청녕향(淸寧鄕) 적산촌(赤山村: 登州府 寧海州 文登縣 石城(島)瀉)은 유산포와 함께 산둥반도 연안일대에 거주하고 있던 신라인들의 중심지로서 회하유역(淮河流域)의 楚州, 漣水, 揚州 등의 신라방과 직결되고 신라, 당나라. 일본 삼국을 연결하는 해상무역의 요지였다.
 
 
적산법화원 장보고 동상
 
 
김문경 교수는 《入唐求法巡禮行記》에 나오는 신라인 50명을 조사하여 논문으로 발표했다. 논문에는 이소정, 장영(張泳), 최훈(崔暈), 박정장, 유신언(劉愼言), 도현(道玄), 왕훈, 도중, 임대사(林大使), 이명재, 선주 이인덕(李隣德), 고산, 염방금, 이국우(李國遇), 정객(鄭客), 진충, 장지신, 김문습, 장종언, 선주 왕가창(王可昌), 김양훈(金良暈), 장공정 등이 있다.
 
임대사는 견당(遣唐)대사였으며, 남판관(南判官)은 신라방을 관할했다. 설전(薛詮)은 신라방의 총관이었고, 최훈은 완도 청해진의 병마사였으나 정치적인 어려움을 만나 당나라 신라방으로 돌아왔다. 통역인으로 김정남, 박정장, 왕청, 유신언, 승려 도현 등 5명이 있었다. 신라 통역자는 통역에만 그치지 않고 외교관의 신분을 가진 뛰어난 실력자들이었다. 특히 김정남과 박정장은 엔닌 일행이 하카타를 출발할 당시부터 동행하여 대륙에 상륙한 때부터 뭍과 해상으로 북행할 때의 수속과 통역을 맡았고, 내륙에서는 도현이 이들과 동행했다. 귀국 무렵에 다시 만난 유신언은 신라방 총관을 역임한 관리로 엔닌의 귀국을 위한 배편과 식량을 마련해 준 은인(恩人)이었다. 또한 왕장문(王長文), 이원좌(李元佐) 등 귀화인의 이름이 등장한다. 왕장문은 신라나 일본으로부터 오는 사람들을 초대하여 접대할 정도로 부유했다. 이원좌는 당에 귀화하여 좌신책군(左神策軍) 압아(押衙, 新羅所의 官職)에 오른 인물이다.
 
산둥반도에 이주한 신라인들은 모여서 독자적인 생활을 하여 당나라에서는 정치적, 상업적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구당신라소(勾當新羅所)를 설치하여 장영이라는 귀화인을 최고 관리자로 등용하였다. 장영은 당나라에서 ‘평로군 절도 동십장 겸 등주 제 군사 압아 (平盧軍節度同十將兼登州諸軍事押衙)’의 높은 직함을 받았다. 장영은 장보고의 심복 부하로 문등현 청녕향 적산포 일대에 거주하고 있던 재당 신라인사회의 최고 우두머리였고, 장보고가 세운 법화원을 임대사, 왕훈(王訓) 등과 함께 관리하기도 하였다.
 
중국 장보고유적 답사 대원들은 웨이하이(威海)시 유산포와 신라인유적지 기념비 등을 돌아보면서 1300년 전의 신라인들이 당나라 해안에 집단으로 이주하여 소금을 굽고, 운반하고, 목탄을 만들어 팔며 선박수리업을 했던 당시의 생활상을 회상했다. 전용버스는 고속도로에 진입하여 다음 유적지로 향했다.
 
 
2023.9.12.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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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궁 인창 (생활문화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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