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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韓信) # 여태후 # 진승 # 화이안 조운박물관 # 회음시
【문화】
(2023.11.03. 20:55) 
◈ 35살에 악녀 여태후에 참살당해
진승은 봉기하면서 나라 이름을 대초(大楚)로 짓고, 오광을 도위(都尉)에 임명하였다. 오광은 후에 장초국이 세워지고 나서 가왕 자리에 오른다. 가왕이 된 오광은 직접 군대를 이끌고 가서 형양을 공격했지만, 이유가 성을 굳게 지켰기 때문에 함락하지 못한 채로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한신(韓信)의 고향, 회음(淮陰) (하)
 
 
진승은 봉기하면서 나라 이름을 대초(大楚)로 짓고, 오광을 도위(都尉)에 임명하였다. 오광은 후에 장초국이 세워지고 나서 가왕 자리에 오른다. 가왕이 된 오광은 직접 군대를 이끌고 가서 형양을 공격했지만, 이유가 성을 굳게 지켰기 때문에 함락하지 못한 채로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부하 중의 한 사람인 전장(田臧)이라는 장수는 오광이 거만하고 횡포를 일삼는다며 반감을 항상 품고 있었다.
 
전장은 오광이 병법을 모른다고 지적하고는 형양에서 시간만 끌지 말고 장초국의 정예병을 모두 모아 진나라의 수도로 진격하는 것이 낫다고 제안한다. 하지만 오광은 전장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모욕을 느낀 전장은 문서를 위조해 오광을 죽이고는 오광의 목을 진승 장군에게 보낸다.
 
진승은 전장이 보낸 오광의 목을 바라보고는 눈물도 흘리지 않고 오히려 전장을 상장군으로 임명한다. 전장은 신바람이 나서 군사들을 이끌고 전쟁터로 나아가 계속 승리한다. 진승이 지휘하는 부대는 오랜 기간 승리하지만 지도력이 상실하고 통제력이 떨어진다. 결국 진승의 군대는 진나라 명장인 장한(章邯)장군에게 토벌되고, 장한은 유방에게 져서 스스로 자결한다.
 
사마천은 진승을 단순한 반란 주동자로 기록하지 않았다. 진승은 진나라에 반기를 들었지만 타도에 실패했다. 그러나 진승이 분봉한 제후들과 장상들이 진나라를 몰락시켰다는 점에서 <세가> 범주에 포함시키고 《진섭세가》를 지었다. 사마천은 역사가로서 당시의 어두운 사회상을 있는 대로 기록하고, 진나라의 가혹한 폭정과 반감, 최초의 반란이라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진승이 비록 왕이라고 칭한 기간은 매우 짧았지만 한고조 유방도 진승을 반진(反秦)항쟁의 선봉자로 생각하여 은왕(隱王)이라는 시호를 내려주고 농민 30호를 보내 망탕산(芒砀山) 왕릉을 관리하라고 하고 매년 제물을 보냈다. 「追封陳勝為“隱王”並規定每年以豬羊等祭把陳勝。」
 
현재 묘총은 높이 2.6m, 둘레 약 27.3m이며 주위에는 청색의 돌담이 세워져 있고, 묘 앞에는 궈모뤄(郭沫若, 1892년-1978년)의 친필로 '진나라 말 농민 봉기 지도자 진승의 묘'란 높고 큰 비석이 세워져 있다. 郭沫若은 1976년 5월 1일 묘비에 글을 올렸다.
 
「碑文“秦末農民起義領袖陳勝之墓”為郭沫若親筆題寫。」
 
진승의 왕묘는 하남성(河南城)의 중점문물 보호단위로 지정되어 유명한 관광 명소가 되었다.
 
 
진승·오광의 난 농민봉기상(사진:위키백과)
 
 
한신이 전쟁을 누비던 시대에는 정말 기괴하고 이상한 인재들이 많았다. 하루는 괴철(蒯徹)이 한신에게 나타나 몇 가지 처세술과 정치에 대하여 조언을 하였다. 그러면서 한신에게 황제가 되라고 설득을 했다. 괴철은 “무릇 말을 듣는다는 것은 일의 징후이고 계획한다는 것은 일의 기틀인데, 듣고서 지나치고 계획하였다가 잃고서 오랫동안 편안하게 될 수 있는 사람은 아주 적습니다.
 
그러므로 아는 사람은 이를 과감하게 결단하고, 의심하는 것은 일의 해가 됩니다. 터럭같이 작은 계책을 살피다가 천하와 같은 큰 운수를 남겨버리는 것은 지혜로운 사람이면 이를 알 것인데, 결정하고도 감히 실행하지 못하면 백 가지 일이 재화(災禍)입니다. 무릇 공(功)이라는 것은 이루기는 어렵고 실패하기는 쉬운 것이며, 때라는 것은 얻기는 어렵고 잃기는 쉬운데, 지금이 그때입니다! 때는 다시 오지 않습니다.”라고 말해주었다.
 
한신은 괴철이 미리 알려준 계책을 미루면서 차마 한나라를 배반하지 못하였다. 자기 스스로 공로가 많다고 생각하여 한이 끝내 제를 빼앗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마침내 괴철의 제안을 거절하였다. 괴철은 자기가 한 말을 한신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거짓으로 미친 척하면서 무당이 되었다. 한신은 항우에 계략에 빠져 죽으면서 “내가 괴철의 말을 듣고도 실행하지 않아 이렇게 허무하게 죽는구나!” 하고 비탄에 빠져 탄식했다.
 
 
果若人言(과약인언)
狡兎死良狗烹(교토사양구팽)
飛鳥盡良弓藏(비조진량궁장)
敵國破謀臣亡(적국파모신망)
天下已定(천하이정)
我固當烹(아고당팽)
 
사람들이 말하기를
교활한 토끼가 죽고 나면, 착한 사냥개는 삶아 먹히고
높이 나는 새 다 잡으면, 좋은 활은 곳간에 처박히네!
적국을 격파하던 유능한 신하를 버린다 하더니만
천하가 이미 평정되고 나니
내가 정말로 팽(烹) 당하는구나! 출전: 《史記》 〈淮陰候列傳〉
 
 
이 말을 전해 들은 유방은 신하들에게 괴철을 붙잡아오라고 명을 내렸다. 괴철은 붙잡히면서 “한신이 결국 내 말을 듣지 않아 죽었구나!”라고 탄식하며 유방 앞에 붙잡혀갔다. 삶아서 죽이는 팽형(烹刑)에 처해져 죽을 운명에 놓인 괴철은 유방 앞에서 당당하게 말한다. “진나라가 제위를 잃은 다음, 영웅들이 앞을 다투어 패권을 차지하려 나섰고, 마침내 발 빠르고 재주 좋은 자가 손에 넣었습니다. 개를 생각해 보십시오. 제 주인이 아니라면 요 임금 앞에서조차 짖는 동물입니다. 옛날 도척의 개가 요 임금을 보고 짖은 것은 요 임금이 결코 어질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다만 개의 주인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제 주인은 당시에는 한신 장군이었으며 저는 그때 폐하를 알지 못했습니다. 당시 황제가 되고 싶은 사람들은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능력이 모자랐을 뿐입니다. 그런데 폐하께서는 그들 모두를 삶아 죽이시겠습니까?” 하고 슬프게 말하였다. 이 말을 다 들은 유방은 괴철을 풀어주라고 명령을 하였다. 괴철은 풀어난 즉시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도망을 가버렸다.
 
한신과 관련된 고사성어는 무척 많다. 공고진주(功高震主: 공이 높아 주인을 위협하다)를 통해 그의 파란만장한 짧은 삶을 고사성어로 돌아보며 고사성어를 적어본다.
 
胯下之辱。一饭千金。 国士无双。明修栈道 暗渡陈仓。背水一战。置之死地而后生。独当一面。十面埋伏。功高震主。金石之交。成也萧何 败也萧何。推陈出新。解衣推食。妇人之仁。人心难测。拔旗易帜。愚者千虑 必有一得。战无不胜。略不世出。居常鞅鞅。
 
한신은 한고조 유방을 배반하지 않았다. 그런데 한신을 대장군으로 추천한 소하가 한고조 유방에게 조언을 하여 갑자기 한신의 병권을 회수하였다. 그래서 생긴 사자성어가 「成也萧何 败也萧何。」 이다. 이때부터 한신은 우울증이 생기고 속병이 들기 시작했다. 한신은 한나라를 위해 큰 공을 세웠지만, 35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한고조의 부인이며 중국 역사상 3대 악녀로 꼽히는 여태후(呂雉)에게 어이없게 참살을 당하고 만다.
 
 
여태후(廢后 呂氏, 呂稚 )(사진: tv드라마 초한지)
 
 
여태후는 폐후 여씨(廢后 呂氏, 기원전 241년-기원전 180년)로 전한 고조(劉邦)의 황후이며 휘는 치(稚)이며 자는 아후(娥姁)이다. 여태후는 최초의 황태후이면서 태황태후였다. 여태후는 한신의 능력이 강대한 것을 시기하고, 여씨(呂氏) 세력을 키우기 위해 유방이 원정을 떠났을 때 한신이 군사를 모아 반란을 시도한다고 모함을 하고는 한신을 찾아가 말하다가 갑자기 칼을 꺼내 찔러 죽였다. 여태후가 한나라의 번영과 안정을 위해 노력도 많이 했지만 악행도 많이 저질렀다. 한고조가 죽고 나서 아들 혜제 유영이 즉위하였다.
 
여치는 황태후로 후견을 맡게 되어 조왕 유여의를 독살하고, 유방이 가장 아낀 후궁 척부인(戚夫人)의 손과 다리를 자르고, 눈을 도려내고, 약을 먹여 귀를 멀게 만들고,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벙어리로 만들어버린다. 이것으로도 부족해 척부인을 변소(便所)에 넣어두고는 사람들에게 똥을 받아먹게 하였다. 궁중 사람들에게는 쳑부인을 ‘인간돼지’라고 부르게 했다. 중국 사람들은 삼대 악녀로 한나라 여태후, 당의 측천무후, 청의 서태후를 꼽는다.
 
많은 학자들은 한신이 일찍 죽은 것에 대하여 다양한 설을 내놓았다. 한신이 전장에서 공이 너무 높아 군주를 자주 놀라게 해서 일찍 죽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신은 군사적인 능력은 뛰어났으나 대인관계나 정치적인 권모술수 등에 대해서는 바보 천치일정도로 순진했고, 가난했던 시절의 근성이 남아 있어 겸손 겸양의 덕이 부족하고, 항상 타인의 경계를 불러일으켜 스스로 화(禍)를 자초했다고 보았다.
 
사마천은 항우에 대해서는 인물을 높게 평했는데, 한신에 대해서는 군사적 능력만 높게 평가했다. 《사기》 〈회음후열전〉에는 ‘만약 한신이 도리를 배우고 겸양의 미덕을 발휘하여 자기를 공을 과시하지 않고, 자기의 재능을 과신하지 않았다면, 그가 세운 공은 아마도 주나라 천 년 왕조의 기틀을 마련한 주공, 소공, 태공 등이 세운 공훈에 비견되어 후세들로부터 혈식(血食)을 받아먹으며 받들어졌을 것이다. 이렇게 되려고 힘쓰지 않고, 천하의 정세가 이미 정해진 뒤에야 반역을 꾀했으니, 일족이 멸망한 것은 역시 당연한 일이 아닌가?“라고 되어 있다.
 
전용버스에서 내린 장보고유적 답사 대원들은 아이스크림 가게를 발견하고는 길을 건너 신나서 작은 가게로 들어가 자기가 좋아하는 커피나 주스, 아이스크림을 골랐다. 필자는 가게로 가지 않고 조운박물관 쪽으로 향하다 광장 입구에서 안내도를 만났다. 아내는 가게 안에 남편이 보이자 않아 아이스크림 1개를 필자에게 가져다주었다.
 
 
화이안(淮安) 조운박물관(漕運博物館) 안내도
 
 
조운박물관안내판을 보고 있는데 갑장(甲長) 친구인 이문교 완도군 문화유산해설사가 나타나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는 완도군에서 청백리로 소문났던 공무원으로 완도군 기획실장을 끝으로 정년퇴직을 하였다. 현재 완도군을 찾아오는 방문객들을 위하여 완도, 청산도, 장보고 유적지 등 여러 문화재들을 구수한 입담으로 해설해 주며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그동안 역사가들이 기록한 고문헌을 통해 한신에 대한 다양한 평가를 읽었다. 그러난 어떤 것이 옳은지 이해가 잘되지 않는다. 교만하면서 어리숙한 한신이 옳은지, 권모술수(權謀術數)에 능한 한고조 유방이 옳은지 잘 모르겠다. 역사를 공부해 보면 권력에 심취한 많은 영웅호걸들의 말로(末路)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비참하고 참혹하게 죽어갔다.
 
필자는 명나라 때 문인 종산거사(終山居士) 견위가 진나라 말기부터 전한 초기까지의 혼란스럽던 시대를 배경으로 소설로 쓴 연의 소설인 《楚漢志(楚漢演義)》가 사마천의 《史記》를 많이 인용하여 고증이나 묘사가 놀랄 정도로 흥미롭고 재미가 있어 소설 속에 등장하는 향량(項梁), 優戲, 項羽, 樊噲, 英布, 范增, 彭越 등의 활약상과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필자는 문화재 안내판이나 비석을 만나면 여행 스토리를 구성할 때 영감이 떠올라 꼭 사진을 촬영한다. 장보고유적 답사 대원들은 이천 년 전 회음(淮陰) 지역의 주인공이었던 한신(韓信) 대장군을 회상하면서 조운박물관(漕運博物館)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조운박물관 전경
한신(韓信) # 여태후 # 진승 # 화이안 조운박물관 # 회음시
【문화】 궁인창의 독서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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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살에 악녀 여태후에 참살당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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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궁 인창 (생활문화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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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