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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韓信) # 고하지욕 # 회음시
【문화】
(2023.11.03. 20:46) 
◈ 전략가 한신...한나라 건국 최대 공신
한신이 태어난 회음시(淮陰市) 고장을 파악하려면 2200년 전의 인물인 전략가 한신의 생애에 대하여 공부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한신은 유방이 항우와의 전투에서 승리하여 천하를 얻고, 한(漢)나라를 세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공신(功臣)이다.
한신(韓信)의 고향, 회음(淮陰) (중)
 
 
한신이 태어난 회음시(淮陰市) 고장을 파악하려면 2200년 전의 인물인 전략가 한신의 생애에 대하여 공부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한신은 유방이 항우와의 전투에서 승리하여 천하를 얻고, 한(漢)나라를 세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공신(功臣)이다. 그는 20대 중반에 소하(蕭何)의 추천으로 일약 대장군으로 발탁되었다. 10년 동안 대장군으로 활약한 공적으로 현재 중국 4대 명장으로 받들고 그를 병선(兵仙)으로 추앙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 35살의 나이에 반란을 주도했다고 모함을 받아 죽었지만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2011년에는 드라마 <대장군 한신> 36부작이 방영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대장군 한신(사진; 中国电视剧大将军韩信)
 
 
그는 한 고조 유방의 부하로 많은 싸움터에서 승리해 초한 전쟁의 패권을 결정지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장량, 소하와 함께 한초삼걸(漢初三傑)이라 불렀다. 소하가 유방에게 한신을 천거할 때 이 땅에서 다시 찾을 수 없는 국사무쌍(國士無雙)이라고 하였다. 한신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는 동료를 무시하거나 살해하고, 마음대로 전쟁을 일으키고 안하무인격인 성격을 가져 간혹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필자는 지난 10여 년간 사마천(司馬遷)이 저술한 《史記》를 공부했는데 한신의 고장을 처음 방문하게 되었다. 김영환 교수님은 수업 시간에 귀에 구멍이 날 정도로 〈淮陰候列傳〉에 나오는 많은 이야기와 고사성어(故事成語)의 유래를 자세하게 들려주셨다. 한신의 고사성어는 20개에 이르러 대표적인 것만 몇 개 살펴본다.
 
 
사마천(司馬遷)이 저술한 《史記》, (사진: 김영환 교수)
 
 
한신은 빈천(貧賤)하고 부모를 일찍 여의어 어릴 적부터 이집 저집 돌아다니면서 밥을 빌어먹고 지냈다. 젊은 시절에는 무위도식하고 지내다 강가에서 낚시질로 겨우 입에 풀칠을 하고 굶는 날이 더 많았다. 하루는 개울가에서 빨래하던 노파가 한신의 모습이 하도 딱해 자기가 먹고 남은 주먹밥 몇 개를 건네주었다. 이에 감격한 한신이 고맙다고 인사하며 “향후 꼭 은혜를 갚겠다.”라고 노파에게 약속했다. 노파는 한신을 비웃으며, "하도 딱해서 주먹밥을 주었지만, 거지 신세 주제에 네가 무슨 재주로 은혜를 갚는가? 사지 멀쩡한 젊은 놈이 일을 해서 먹고 살아야지?" 하고 꾸중을 하였다. 한신은 천하를 평정하고 초왕(楚王)으로 봉해진 후 고향을 방문해 노파를 찾아가서 큰 절을 하고 천금의 황금(黃金)을 하사했다. 그러자 이를 본 고향사람들은 “밥 한 그릇 주고, 천금을 가졌다.”고 모두 좋아했다. 후세 사람들은 이를 보고 일반천금(一飯千金)이라 하였다.
 
 
고하지욕(胯下之辱)(사진:위키백과)
 
 
하루는 한신이 긴 장검을 허리에 차고 혼자 읍내를 폼 나게 걸어갔다. 그는 키도 크고 잘생긴 풍모가 있어 비록 빼빼 말랐지만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이를 아니꼽게 바라보던 동네 깡패들이 한신을 불러 세우고는 “매일 남의 밥이나 얻어먹는 주제에 긴 칼에 똥 폼을 잡는가?” 하면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조롱을 하고 시비를 걸었다. "너는 허우대는 멀쩡한데 칼이라도 쓸 줄 아니, 나하고 한판 붙자. 그게 싫으면 내 가랑이 밑으로 지나가면 내가 너를 용서해 주마." 싸움이 한판 크게 붙을 듯하자 한신 주변에는 구경꾼이 늘어나 모두가 이를 어떻게 되나 하고 흥미진진하게 지켜보았다. 그런데 한신은 놀랍게도 조롱하는 부랑배의 가랑이 밑으로 엎드리고 말없이 기어갔다. 사람들은 이를 보고 “한신이 남의 가랑이 밑을 지나는 치욕을 참을 줄도 아네!”라고 비웃었다. 한신은 초나라 왕이 된 후에는 모욕을 준 부랑배를 불러다 너희들 때문에 내가 참을 줄 아는 힘이 생겼다고 하면서 부랑배들을 용서하였다. 이렇게 하여 고하지욕(胯下之辱)이라는 고사성어가 탄생되었다.
 
젊고 능력 있는 한신은 대장군이 된 이후에는 과거 병사 시절의 생활을 청산하고 항상 골똘하게 생각하고 진중하게 행동을 했다. 군사 전략가인 유방은 천하통일은 하였지만 부하들의 움직임을 항상 주목하고 경계했다. 특히 대장군인 한신의 행동을 항상 매처럼 눈여겨보았다. 항우의 부하였던 종리매(鍾離 眜)는 항우가 죽고 나자 친구인 한신을 찾아와 몸을 의탁했다. 성격이 고지식한 한신은 친구 종리매를 잘 보호해 주었는데 어느 날 숨겨 준 사실이 알려져 종리매는 스스로 자진하여 죽는다. 이 일로 인하여 한신은 초왕에서 회음후로 강직당하고 장안으로 호송을 당하게 된다. 유방은 한신과 마주 앉아 술 한잔하면서 말을 건넨다. 유방이 한신에게 “휘하 장군들의 능력은 어떤가?” 묻고는 "과연 나의 군사 관리 능력은 어느 정도인가?" 한신이 대답하기를 "대왕은 많아야 1~2만 명입니다." 이 말을 듣고 속이 상한 유방은 "그럼 한신 장군은 어떻소?" "저는 병사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그러자 유방이 "그런데 자네는 왜 내 밑에 있지?" 한신이 자세를 가다듬고는 정색을 하면서 유방에게 말하길, "대왕은 군사 지휘 능력은 制限的이지만, 대장군과 장군을 거느릴 수 있는 대왕의 資質과 큰 能力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한신은 병법뿐만 아니라 處世術에 능했다. 한신은 나이는 비록 어리지만 인재의 능력 여부를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여기에서 나온 말이 바로 다다익선(多多益善)이다.
 
 
회음후(淮陰候) 한신(사진:위키백과)
 
 
한신은 전쟁을 하면서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최악의 방법인 배수진(背水陣)을 성공시켜 배수진을 ‘전략적 전술’ 또는 ‘결사적 각오’라는 의미로 재탄생시킨 인물이다. 항우와 마지막 결전인 해하 전투에서 항우를 사지로 몰아넣어 사면초가(四面楚歌)라는 말이 나오게 하였다. 전략으로 적을 속이는 명수잔도 암도진창(暗渡陳倉 暗度陳倉)이란 말도 생겨났다.
 
암도진창(暗渡陳倉)은 병법 삼십육계중 팔계(三十六計之第八計)로 성동격서(聲東擊西)와 유사하게 전자는 공격 목표를 숨기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면 이것은 공격 경로를 숨기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자신의 가짜 공격 동작을 공개하여 상대방의 주의를 끌기 위해 사용하는 한편, 실제 공격 경로와 배치를 은밀히 진행하는 것을 말한다.
 
진(秦)나라 말기에 이르면 각종 농민 반란이 일어난다. 그중에 대표적인 인물이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이다. 진승은 휘는 승(勝), 자는 섭(涉)이다. 본래 양성(陽城) 사람으로 가난하게 살며 남의 땅을 경작하였다. 그러고는 누워서 지나가는 구름을 보며 항상 부귀하게 되는 헛된 꿈을 가졌다. 잠시 누워있을 때 주인이 부르면 속으로 “참새, 제비 따위가 어찌 날아가는 기러기와 고니의 큰 뜻을 알겠느냐?” 하고 말했다. 「연작안지홍곡지지(燕雀安知鴻鵠之志)。」
 
지방관은 기원전 209년 7월에 여문(閭門)의 왼쪽에 살던 빈민 900명을 어양(漁陽)의 수비병으로 징발했다. 수비병이 대택향(大澤鄕)에 소집하여 호적을 재편할 때 진승과 오관은 둔장(屯長: 주둔하는 병사의 우두머리)을 맡게 되었다. 그런데 만리장성 북변(北邊)으로 가던 중에 장마로 강물이 불어나 건너가지 못하고 강가에 고립되어 둔병(屯兵) 900명과 함께 갇혀서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에 몰렸다. 당시는 진나라 국법이 엄해 정해진 기일에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면 무조건 목이 날아가게 되어 있어 도망가는 병졸들이 많았다. 진승은 양하 사람인 오광에게 슬며시 다가가 “이렇게 해도 죽고, 저렇게 해도 죽게 되니 우리 한번 크게 판을 뒤집자.” 하고 말하였다. 이 이야기를 들은 오광은 가만히 생각하다가 어차피 죽을 목숨 하고 한탄하면서 동의하여 진승으로부터 몇 가지 지시를 받는다. 오광은 주둔지의 나무숲에 있는 신사에 가서 야밤에 장작불을 피운 후에 여우로 위장해 “초나라를 크게 흥하게 할 왕이 진승이다.”라고 외쳤다. 이로 인해 병사들은 밤마다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소문을 퍼트렸다. 보잘것없는 진승은 병사들에게 처음으로 크게 주목을 받게 되었다. 오광은 평소에 사람들을 잘 돌봐주어 수비병들은 대부분 그가 시키는 대로 했다. 오광은 도망가자고 떠벌려 일부러 수졸을 통솔하는 장위(將慰)를 화나게 만들었다. 장위가 검을 빼어들려고 하자 오광은 검을 빼앗고 장위를 죽이고 농민봉기를 일으킨다. 진승이 겁을 잔뜩 먹은 수비병들에게 연단에 올라 “왕후장상의 씨가 태어나면서 따로 있을 수 있겠는가? 원래부터 종자가 따로 없는 법이다!” 하고 수비병들을 향해 큰 목소리로 명연설을 한다. 「王侯將相 寧有種乎」란 말을 처음들은 수비병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진승을 장군으로 추대한다. 진승은 평등을 처음 주창했다.
 
 
진승·오광의 난(사진: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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