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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성대(帝星臺) ◈
◇ 금강 왕자(金剛 王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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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5-1939.4
김동인
1
제성대(帝星臺)
2
金剛 王子[금강 왕자]
 
 
3
신라 신왕의 즉위식도 성대히 마친 며칠 뒤, 어떤 상쾌한 아침이었다.
 
4
견훤왕이 소세를 끝낸 때쯤 하여 금강 왕자가 문안을 들어왔다.
 
5
부왕께 문안을 드린 뒤에 왕자는 좀 머뭇머뭇 하다가 "고려 왕이 오천 정기를 인솔하고 공훤(公萱)의 일만 군사와 합세를 해가지고 공산으로 온답니다."
 
6
고 하였다.
 
7
미리 예기하였던 일이라 견훤왕은 그다지 놀라지도 않았다.
 
8
"어디서 들은 소문이냐?"
 
9
"소문이 아니오라 어제 저녁 원노 장군에게서 첩자가 왔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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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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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 그래서 아버님께는 오늘 원노 장군의 본진으로 행행합시사고 여쭈려고 그럽니다."
 
12
"너는?"
 
 
13
"소자는 오백 직예를 이끌고 고려군을 전멸을 시키려고 어젯밤 여러가지로 생각해 보았읍니다."
 
14
"그래서?"
 
15
"방책은 섰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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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17
부왕은 캐어묻지 않았다. 어려서는 한 개 무인(武人)으로 ─ 자라서는 한개 장재(將才)로 희대의 천품을 발휘하는 이 왕자의 하는 일이라 의심 없이 그 를 신뢰한 것이었다. 더욱이 이즈음은 차차 장재(將才)도 지나서 더 위대한 역량이 간간 엿보이는지라 이 왕자에게 유난히 촉망을 붙이고 있는 즈음이니 더 간섭할 필요가 없었다.
 
18
"오백 만으로 넉넉할 듯싶으냐?"
 
19
"아마 되겠읍지요."
 
20
왕자는 젊음과 용기로 빛나는 얼굴에 적이 미소를 띄우고 부왕을 우러러 보았다.
 
21
"다만 원 장군께 부탁해서 그물 코를 단단히 죄어 소자가 몰아오는 고기 새끼들을 새지 않도록만 해주십시오."
 
22
"그는 그러마."
 
23
그날 낮, 견훤왕은 신라 임금 이하 문무백관이며 사민들의 전송을 받으면서 신라 서울을 떠났다.
 
24
돌아보건대 최근 며칠 동안을 신라 서울에서 겪고 행한 일 등은 이 임금에게 있어서는 영원히 기념되는 일이었다. 이 화려한 무대 ─ 육십 년 생애에 골 독하게도 벼르던 커다란 사업을 틀림없이 마감하고 성공자의 지위로서 이 도시를 떠남에 그의 무표정한 눈에도 엷은 눈물 그림자까지 보였다.
 
25
언제 다시 이 도시를 찾을 기회가 있을까. 옛날 한때는 신라에 모집된 한 군졸로 이 도 시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고 그 다음은 진성여왕의 부름으로 호국군의 통솔자로 두번째 찾았고 이번의 세번째는 상대국의 임금으로 삼 백년 전의 복수자로 보도(寶刀)를 높이 들고 이 도시를 찾았던 것이다. 이 도시에서 행할 일은 인제는 남음이 없으니 다시 여기를 찾을 기회는 좀체 없을 것이었다.
 
26
금강 왕자는 아침녘에 벌써 떠나보내고 시종과 수병 몇 사람만 데리고 신라의 온갖 계급의 전송을 받으며 떠난 견훤왕은 교회에 나가서도 수레에서 몇 번을 돌아보고 돌아보고 하였다.
 
27
수레를 돌아서 공산(公山 ─ 大丘) 원노 장군의 진영까지 이른 때는 그 이튿날 아침녘이었다.
 
 
28
원 장군은 임금을 맞아서 군대에 대한 보고와 명령을 물었다.
 
29
지금 고려의 일만오천이라는 대군이 맞은편에 와서 연방 싸움을 돋우고 있지만,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하라는 왕명을 받지 못하고 주저하던 중 이었다.
 
30
마주 나아가서 이를 격멸하여야 할지, 그냥 현세를 보지하여 단지 고려군의 진격만 막고 있어야 할지, 임금의 재단을 받지 못하여 소극적으로 응 전만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까지도 벌써 신라 서울의 대승리의 첩보가 이르러서 군심은 앙등되어 여기서도 오백 직예대에 지지 않는 공을 세워야겠다고 펄펄 날뛰는 장졸들을 원 장군은 간신히 억압하고 임금의 처분이 어서 내 리기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앙등된 군심으로 보자면고려 일만오천의 군사쯤은 삽시간에 전멸을 시킬 수 있으리라는 의견까지 첨부 하였다.
 
31
견훤왕은 잠잠히 들은 뒤에, 일, 지금 집단진(集團陣)을 치고 있는 것을 고치어서 장사진(長蛇陣)으로 만들고 고려 군사가 한 사람일지라도 우리 진을 지나서까지 남진서진(南進西進)을 못 하도록 막고 있을 것.
 
32
일, 장차 무슨 이변이 생겨서 고려군의 진형이 혼란된 때는 장사진의 머리와 꼬리를 급속히 북진(北進) 시키어서 고려 전군을 포위하고 이를 전멸 시키도록 빈틈없이 준비해 둘 것.
 
33
이 두어 가지의 대책을 분부한 뒤에 잠시 몸을 쉬러 준비된 침소에 들었다.
 
34
이곳 백제의 장졸은 한 사람도 금강 왕자가 인솔한 오백 군병을 본 사람이 없다 한다. 생각컨대 왕자는 수하병을 인솔하고 이 두 나라 군사가 대치하고 있는 근처를 멀리 우회하여 고려군의 등 뒤로 돌아가는 모양이었다.
 
35
왕자의 재략도 짐작하거니와 또는 몸소 지휘하고 훈련한 오백 명의 직예 대의 실력도 넉넉히 짐작하는 임금이 이번 싸움에 작은 노력으로 큰 성과를 얻으려는 왕자의 전략을 추측하고 그 전략이 성공될 것을 예상하였다.
 
36
일전에는 신라 서울에서 오십 년간을 벼르던 일을 성취하였고 또 여기서 눈앞에 고려군 전멸을 예상할 수 있는 견훤왕은 가슴에 무드기 벋치는듯 한 환희를 느끼면서 피곤한 몸을 기다랗게 폈다.
 
37
한잠 걸핏 들었던 견훤왕은 적잖게 소란스러운 소리에 놀라서 깨었다. 깨면서 들으니, 밖에서는 인마의 소리가 어지러이 나고, 일변 호령하며 일변지 휘하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할 듯이 요란스러웠다.
 
 
38
옷을 입은 채 잠들었던 임금은 그냥 밖으로 뛰어나가 보았다.
 
39
나가면서 먼저 눈에 띈 것이 건너쪽의 고려진이었다. 일만오천의 대 집단으로 한데 뭉쳐 있던 고려군이 벌판에 쪽 헤어졌다. 뿐만 아니라 우왕좌왕, 장수는 장수대로 군졸은 군졸대로 밟으며 밟히며 무서운 수라장을 이루어있었다.
 
40
이러한 가운데로 한 장수에게 인솔된 수백 명의 마병이 벌에 흩어진 고려군의 복판 가운데를 가르며 이쪽 백제진을 향하여 전속력으로 달려 오는 것 이었다.
 
41
이 마병에게 가운데를 끊기운 고려 일만오천의 장졸을 저절로 동군과 서 군으로 나누어져서 동군은 더욱 동쪽으로, 서군은 더욱 서쪽으로 마병의 철기를 피하려고 밟으며 밟히며, 뭉치어서 돌아간다.
 
42
말발로 고려군을 무찌르며 이리로 달려오는 청년 장수의 용감스러운 태도를 임금은 한순간 탄상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런 뒤에 눈을 돌려서 백 제 진을 둘러보았다.
 
43
아까까지도 온안(穩顔)에 미소를 띠어 가지고 왕께 군략을 의논하던 원 노노 장군은, 마상에 높이 앉아서 삼군을 호령하고 있고, 명령을 받은 막료들은 동으로 서로 책무를 다하려 말을 달려 돌아다니고, 백제 장사진의 머리와 꼬리는 어느덧 전진 또 전진하여 기이다란 곡선을 그리며, 동서로 나누인 고려군은 벌써 백제 장사진의 포위망 안에 거진 들어서 북쪽에 약간 큰 구멍이 있을 뿐이었다.
 
44
그때였다. 백제 마병에게서 한 번 높은 함성이 들렸다. 견훤왕이 그 쪽으로 머리를 돌릴 때는 지금껏 이리로 향하여 오던 마병들이 일제히 머리를 서쪽으로 돌렸다. 그리고 그리로 돌진을 시작하였다.
 
45
보매 고려진에서 한 수레가 달려나와서 아직 조금 빈 틈이 보이는 북쪽으로 향하여 도망가는 것이었다. 백제 마병들은 그 수레를 향하여 일제히 돌격 하였다.
 
46
견훤왕은 그 수레가 고려 왕의 것이라 직각하였다.
 
47
"아아아."
 
48
늙은 마음에도 긴장과 흥분이 가속도록 더하여 왔다. 지금 고려 왕은 이진에서 벗어날 틈이 없다. 고려 왕이 지금 향하고 달아가는 그 빈 틈은, 고려 왕이 그곳까지 가기 전에 벌써 포위가 완전히 될 것이다. 뿐더러 그 빈틈이 채 막히지 않는다 할지라도 재빠른 백제 마병들은 장차 오백 보를 나아가지 않아서 완전히 고려 왕의 수레에 뒤미칠 것이고, 이 용감스런 마 병들은 뒤미친 고려 왕을 결코 놓치거나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49
일전에 신라를 손아귀에 넣고 그 감격이 아직 삭기도 전에 지금 최대 강적인 고려 왕이 또한 손안에 들어오려 한다. 한순간의 틈을 내어 원 노장군을 돌아보니, 지금껏 장졸을 호령하고 있던 노장군도, 어느덧 이 사실을 발견하고 자기의 책임이며 직무까지 잊어버리고 멍하니 고려 왕의 수레와 그 뒤를 쫓는 백제 직예대들을 바라보고 있다.
 
50
드디어 뒤미쳤다. 동시에 고려 왕의 수레는 백제 마병의 말발에 채어 전복 되었다. 왁하니 마병들이 수레를 포위하였다. 마병들의 머리 위로 창끝만 햇빛에 반사하여 반짝반짝 무수한 빛을 내었다.
 
51
그러나 이때 견훤왕은 이상한 현상을 발견하였다. 고려 왕의 수레가 마 병들에게 밟히어 전복되면 제일 먼저 지휘장인 왕자가 그리로 달려가서 고려왕의 머리를 창끝에 들어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왕자는 수레가 전복 되는 순간 달리던 말을 탁 멈추었다. 다른 데를 살폈다. 그러다가 맹렬히 단 신 말을 달려서 다른 곳으로 향하였다.
 
52
왕자가 말을 달려 향하는 곳은 이 전장의 맨 북쪽 ─ 백제의 장사진이 아직 채 막지 못하여 약간 빈 틈이 있는 그 구명이었다. 그 구멍으로는 말 탄 고려의 패잔군 삼사십 명이 새어빠져 포위진 밖으로 벗어나서 도망 가는 중 이었다.
 
53
"아!"
 
54
견훤왕도 뜻하지 않고 부르짖었다. 패잔의 고려군? 그렇다. 외형은 패잔의 고려군 이었다. 그러나 기괴한 점은, 그 수십 명의 고려군은 중앙의 한 사람을 호위하여 가지고 그 사람을 보호하면서 백제의 포위군을 벗어서 도망 하는 것이었다.
 
55
견훤왕은 실망의 부르짖음을 내었다. 수레를 타고 도망하는 체하다가 백 제 마병에게 잡히어 죽은 사람은 가왕(假王)일시 분명하였다. 지금 백제 포위 진을 벗어나서 북으로 도망치는 수십 명의 기마(騎馬) 고려 패잔병(?)이야말로 고려 왕의 일행일 것이다. 가왕으로 백제군의 눈을 속이고 고려 왕은 그 틈에 변복을 하고 도망하는 것이었다.
 
56
지금 그 점을 알아채고 그리로 쫒아가는 사람은 왕자 단 한 사람뿐 이었다. 다른 백제군들은 고려 왕까지 잡았다고 환호를 하며 포위진 안의 고려군만 향하여 맹공을 가하는 것이었다.
 
57
패잔군으로 가장한 고려 왕의 일행과 금강 왕자의 새의 간격은 상당히 컸다. 필연코 뒤및지 못하고 동수(桐藪) 숲에서 종적을 잃어버릴 것이다.
 
58
분하였다. 방략은 완전하였거늘 조그만 부주의 때문에 큰 고기를 놓쳤다.
 
59
뿐더러 오늘의 수훈자 금강 왕자가 누구보다도 먼저(부왕보다도) 고려왕의 탈출을 알아채고 추격까지 하였거늘 실패하고 돌아오면 섭섭해 할 생각을 하니 더 애연하였다.
 
60
"용을 잡은 것을 축하드리옵니다."
 
61
어느 틈에 원노 장군이 곁에 와서 축하를 드렸다. 그러나 임금은, 망 연히 건너 쪽 ― 인젠 벌써 고려군 수십 명의 일행은 안 보이게 되고 왕자만이 가마아득히 단신 그들을 추격하여 가는 양만 바라보고 있었다.
 
62
이윽고 왕자까지도 안 보이게 된 때에 임금은 기다랗게 한숨지었다.
 
63
"왕자가 돌아온 뒤에 회보를 봅시다."
 
64
탄식과 함께 왕은 이렇게 말하였다.
 
65
그 날의 싸움은 공전의 승리였다. 단 오백 명의 직예대가 그 너른 벌판에 퍼져 놓으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벌판에는 온통 마병 천지인 듯하였다.
 
66
그런 가운데 백제 포위진은 점점 좁혀서 고려군을 압박하고 이 그물안의 고려군은 동남서북으로 달리는 백제 마병에게 전멸이 되었다. 일만 오천의 대군에서 살아 도망친 사람은 근근 수십 명뿐이고 그 나머지는 전멸을 하였다. 공산(公山)의 평원은 시산혈해(屍山血海)를 이루고 아비규환의 처참한 광경은 눈으로 바로 보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67
그런 가운데서 잡아 낸 고려 포로의 공술로써 아까 수레에서 죽은 사람은 고려 왕이 아닌 것이 판명되었다.
 
68
신숭겸(申崇謙)이었다. 일찍이 태봉 왕 궁예를 섬기다가(지금의) 고려왕 당년의 왕건(王建)에게 돌라붙어서 새 나라를 이룩하고 왕건(王建)을 추대한 고려 공신이었다. 모습이 고려 왕과 비슷하므로 이 위난의 때에 자진 하여 고려 왕으로 가장을 하고 백제 군사를 유인하여 자기를 죽이게 하고 그 틈에 자기의 임금이 도망할 기회를 지어 준 것이었다.
 
69
이 말을 들은 견훤왕은 숙연히 머리를 숙였다.
 
70
"장하다. 쾌하다. 적이지만 훌륭하다. 후히 장사지내게 해라."
 
71
금강 왕자는 그날 밤이 꽤 어두워져서야 초연히 돌아왔다.
 
72
"아버님. 면목없읍니다."
 
73
스스로 낙담함인지 부왕께 사죄함인지, 풀없이 왕자가 부왕께 절할 때에 견훤왕은 왕자를 위로하였다.
 
74
"아니로다. 천운이지 사람의 힘으론 무가내하였느니라. 고려가 아직 망할운이 아니기에 그런 불의의 일이 생겨 났느니라. 되려 그런 어지러운 가운데 서도 왕의 진가(眞假)를 알아본 눈이 칭찬할 만하다."
 
75
"네이. 그때 고려 진중에서 수레를 잡았읍는데 수레의 사람이 진정한 고려 왕이면 고려 군중에 그래도 좀 유다른 동요가 있을 것이, 그런 기색 이보이지 않기에 가왕으로 알았읍니다."
 
76
"그런 경우에 그런 판단을 내릴 여유가 계신 것이 신인이 아니오니까?"
 
77
다른 징수가 곁에서 곁들이를 하였다.
 
78
견훤왕은 입은 봉한 채 머리만 커다랗게 끄덕이었다.
 
79
이번 출사(出師)는 후백제국으로 적지 않게 자부심을 갖게 하였다.
 
80
백제의 어버이들이 자식들에게 ─ 그 자식들이 또 제 자식들에게 그 새 삼백 년간을 눈물을 흘리며 전하여 내려오던 낙화암의 참극의 복수도 시원히 갚았다.
 
81
북방의 신흥 강국 고려와 간패를 사괴어 본 적이 그 새도 여러 번 이었으 나일 승일 패 로서 자웅을 결하지 못하였는데 이번 전쟁의 결과로 인제는 자기네가 고려국보다 강하다는 자신을 넉넉히 가지게 되었다.
 
82
국가적으로 이만한 충동을 받음과 동시에 견훤왕은 또한 개인적으로 이번 전쟁의 결과를 보고 마음 깊이 작정한 바가 있었다.
 
83
일찌기 일허사(一墟師)에게 대해서도 당신의 네째 아들 금강이 아들자(子) 자가 아니고 놈자(者) 자 왕자(王者)답다고 말하고, 또한 금강 왕자의 위로 있는 세 왕자 신검, 양검, 용검(神劍, 良劍, 龍劍)은 당신이 아직 임금이 되기 전에 낳은 아들이니 왕자(王子)가 아니요, 금강(金剛)이 비로소 임금 된 뒤의 아들이니까 이야말로 태자라고 하여, 당신의 뜻이 금강 왕자에게 있다는 점을 나타내어 둔 일이 있느니만치 이 왕자에게 유다른 촉망을 품고있던 임금은 이번의 신라 서울 정복과 고려군 정벌에서 이 왕자의 세운 공을 보고 이 왕자의 일처리하는 수완을 보고는, 드디어 마음 속에 결정적으로 금강을 태자로 세우기로 작정하였다.
 
84
온 나라의 환호성 아래 원정군은 보무당당히 고국에 개선하였다. 이 개선과 동시에 금강 왕자의 세운 공도 본국에까지 알리어져서 온 국민의 신망도 이 왕자에게로 집중되었다.
 
85
"우리 임금 만만세 하옵소서. 금강 왕자 만만세 하옵소서."
 
86
국민들은 소리를 높여서 환호하였다.
 
87
이 전승의 축하 기분에 한동안 국내는 어찔하였다.
 
88
이 기분도 얼마만치 가라앉고 국민들은 다시 각각 생업에 정진을 시작 하게 된 평화로운 어떤날 견훤왕은 내전에서 왕비와 한담을 하던 끝에, 드디어 금강 왕자를 태자로 책립할 의향을 말해 보았다. 왕비도 다른 왕자들보다 유 달리 금강 왕자를 총애하더니만치 이의가 없을 것으로 믿기 때문이었다.
 
 
89
그랬더니 왕비는 댓바람 반대를 하는 것이었다.
 
90
"부녀자가 큰 일에는 간섭치 않는다 합지만 이 일은 가사에도 관계 되는 일이 오니 첩의 의견도 버리지 마십시오. 금강이 가장 뛰어난 줄은 첩도 모르는 바가 아닙지만 순서를 바꾸어 재하자(在下者)가 위로 올라가면 본시의 재상자(在上者)가 원한 품는 법이옵니다."
 
91
임금은 이 반대에 대하여 이전에 일허사에게 한 말과 같은 말로써 왕비의 의견을 꺾으려 하여보았다.
 
92
─ 어떤 여인이 김가와 가까이해서 아들을 낳았다. 그러니까 그 아이도 물론 김가일 것이다. 그 뒤 그 여인은 박가에게 시집을 갔다. 박가에게 시집을 갔다고 이런 김가와의 새에 난 아이도 박가가 될까?
 
93
─ 마찬가지로, 임금이 이전 임금되기 전에도 아들이 있었다 하면, 그 아들이 '왕자’일까 '평민의 아들’일까. 왕 되기 전에 낳는 아들은 마치 시집가기 전에 김가와 어울려서 낳은 아들이나 일반이니 왕자가 아닐 것이다. 왕자가 아닌 사람이 어찌 태자가 될까. 금강부터가 비로소 왕자이니 금강이 태자가 되는 것이 마땅하다.
 
94
이전에 이런 말을 일허사에게 하매 그때 일허사는 거기 대답을 못하였다.
 
95
그러나 왕비는 그 비유가 옳지 않음을 지적하였다.
 
96
"말씀은 그렇습지만 그와 이와는 다르지 않을까 생각하옵니다. 김가가 김가 적에 아들을 낳고 그 뒤 박가의 집에(자식을 데리고) 양을 들어 사자(嗣子)가 되었다 하오면 양들기 전에 낳은 자식이라고 박씨 문의 봉사손이 안되리까? 집안에 장유(長幼)의 질서가 깨어지오면 집안이 불화케 될 것 이 옵고 나라에 질서가 깨지오면 나라이 어지럽게 되지 않을까 ─ 어리석은 소견엔 그렇게 보입니다."
 
97
이 이치 옳은 의견에 임금은 더 억누를 수가 없었다. 이십 세의 청춘 때에서 로 만나서 무명의 공자로서 신라의 군졸로서 올라가서는 신라 변 방장에서 다시 일전하여 비장으로 그 뒤 뛰어올라서는 후백제의 시조로 ─ 파란 많은이 임금의 배우자로 사십 년간을 고초와 영광을 같이 받아 오면서, 가장 슬기롭고 가장 정미롭게 내조하여 온 이 왕비는, 과거에도 이 임금이 감당 키 어려워서 용기 꺾이려는 일이 있으면 고요히 남편을 격려하였고, 처사 잘못 하는 듯한 일이 있으면 겸손한 태도로 그릇됨을 깨쳐 주어서 이 임금으로 하여금 오늘날의 훌륭한 제왕의 자리에 오르게 함에 숨은 공이 적지 않았다.
 
98
그런지라, 국사며 군사에 관해서도 임금은 때때로 왕비의 의견을 듣고 참고 하기를 즐겨하고 웬만한 의견이면 당신의 마음을 굽히고라도 왕비의 의견대로 한 일이 많았다. 그리고 임금이 당신의 뜻을 죽이고 왕비의 의견대로 행한 일들은 모두 돌아보건대 그다지 잘못된 일이 없었다.
 
99
그런지라 웬만한 일이면 왕비의 의견을 물리치지를 않았다.
 
100
그러나 이 일에 관해서뿐은 왕비의 의견을 좇기가 어려웠다. 사사로운 정의, 사사로운 의리로 보자면 김가 박가의 양자 문제까지 들추지 않고 라도 왕비의 의견이 조금도 틀린 일이 없다. 그러나 국가의 대계로 볼 때에 그렇게 간단히 처리할 문제가 못 되었다.
 
101
창업(創業)의 어려움과 창업 성공의 영화는 거듭 말할 필요도 없이 누구나 아는 배다. 그러나 이 국가 창업이라는 위대한 일을 고정시키기는 제 이대 의현 불현에 있다. 제계대가 현치 못하면 평생의 대업도 한 대로 망하고 말 것이니 그것은 진(秦)나라의 위대한 창업도 겨우 한 대밖에는 누리지 못한 것을 볼지라도 알 수 있다.
 
102
지금 당신이 이룩한 이 대업 ─ 굽어보건대 당신의 위의 세 왕자도 그다지 열(劣)한 편은 아니다. 그러나 위의 세 왕자보다 월등으로 훌륭한 금강 왕자가 있으니 부모의 욕심으로든 창업주의 욕심으로든 이 현인에게 뒤를 맡기고 싶었다. 국가 건설에 가장 중축되는 기초 공사를 가히 믿고 맡길 만 한 왕자에게 맡기고 싶었다. 거기는 사사의 애정보다도 세상 보통의 의리보다도 천만 년 백제 사직의 사활의 중대한 문제가 있는 것이다.
 
103
인정상 혹은 형이 자리를 빼앗기고 동생이 태자가 된다 하면 불평도 있을것이고 불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만히 고찰하자면 위의 세 왕자도 그다지 열한 편은 아니니, 언제 조용하고 좋은 기회에 불러서 국가대계를 설명 하여 납득시키면 안 될 것도 아니다.
 
104
이만치 마음먹고 임금은 왕비와는 다시 이 문제에 대해서 말을 꺼내지 않았다.
 
105
그 대신 한번은 조용히 원노 장군에게 같은 의논을 하여본 일이 있었다.
 
106
이 임금이 이전 신라의 변방장으로 있을 때부터 한결같이 충성을 바치는 오랜 친구에게 그 의논을 하여 보매 원 장군은 그의 온안을 가슴에 깊이 묻고 한참을 생각한 뒤에야 비로소 대답하였다.
 
107
"전하 우(櫌)와 열(劣)의 구별이 있으면 장(長)과 유(幼)의 구별도 있지 않을까 하옵니다."
 
108
"장자(長者) 우(櫌)치 못하고 유자(幼者) 열(劣)치 않으면 어떻게 하여야겠소?"
 
109
"그러오면 장자로써 웃자리에 거(居)케 하옵고 우자(櫌者)로서 장자를 협력 케 하오면 장(長의)에 우(優)가 겸케 되지 않을까 하옵니다."
 
 
110
말하자면 맏왕자로 태자를 삼고 금강 왕자로 협력케 하자는 뜻이었다. 임금은 역시 머리를 가로 저었다.
 
111
"장자가 장위(長位)에 거하면 우자(愚者)의 의견이 용납되기 어렵겠지."
 
112
이만치로 하여 원노와도 의논을 끊어 버리고 말았다.
 
113
금강 왕자를 태자로 책립하고자 하는 생각은 이 임금의 마음에 깊이 자리 잡은 배라, 누구의 의견이 어떠하든간에 변하지 않았다. 의리보다도 애정보다도 순서보다도 무엇보다도 국가 만년의 대계로 보아서 다른 관념은 모두 무시 하기로 한 것이다.
 
114
네째 왕자 금강에게 대한 감시와 관찰도 차차 더하여 갔다. 반드시 임금 당신이 직재하여야 할 일이 아닌 것은 대개로 금강 왕자로 하여금 대리 케 하였다.
 
115
춘추 벌써 예순하나에서 예순둘로 ─ 인생의 노년기에 들어선 이 임금은 백제 유민 삼백 년의 갈망이요, 당신 오십여 년의 고심의 결정인 오늘날의 대업을 고정시킬 후계자를 훈련하기 위하여 온갖 방면으로 그의 힘을 길러주고 수완을 북돋우어 주었다.
 
116
아직 정식으로 태자로 책봉하지 않고 정식으로 발표하지 않은 뿐이었다.
 
117
아직 좋은 기회를 못 얻어서 형 왕자들을 납득시킬 틈이 없었으니까 지금 섣불리 발표하였다가는 혹은 더러운 암투가 일어날 것을 근심한 때문 이었다.
 
118
공산(公山)의 대회전에서 고려군을 전멸시키고 하마터면 고려 임금까지도 잡을 뻔한 압도적 승리를 한 뒤에, 백제에서는 누차 고려의 변방을 정벌 하였다.
 
119
이 여러번의 전쟁에 견훤왕은 금강 왕자의 장략(將畧)을 관찰하며 겸 하여 더욱 붇돋우어 주기 위해서 삼군 운용의 전권을 금강 왕자에게 일임하였다.
 
120
그리고 당신은 약간의 친위병에게 호위되어 후진에서 관전만 하고 하였다.
 
121
이 전쟁 때에 가장 뚜렷이 눈에 뜨이는 것은 고려군의 소질이 연전보다 훨씬 훌륭하게 된 점이었다. 고려국이 차차 기초가 잡히면서부터는 옛날 고구려의 낡은 터요, 그 뒤 주인 없는 땅으로 발해국(고구려의 후신)에 근친하던(압록강 이남의) 땅이 모두 신흥 고려국으로 돌라붙는다. 이 땅의 백성들은 부여(扶餘)의 한 옛날부터 말타기와 활쏘기로 소문 높던 종족이라, 그 피를 물려받은 이 후손들은 그 새 오랫동안 비록 나라 없는 백성으로 지냈으나 선천적으로 물려받은 호기호사(好騎好射)의 기질과 날쌘 체질은 과시 표 강한 종족이었다. 이 종족들이 고려에 돌라붙으면서 군병들을 많이 고려 에 보내었는지라, 지금의 고려 군사는 연전의 고려군과는 대상부동이었다.
 
122
이러한 정예한 고려 군사와 대전을 하지만 금강 왕자는 정공, 기습, 허격등 가지가지의 병법을 임기응변으로 자유로 써서 언제든 고려군을 격파 하였다.
 
123
신흥국이요 강토가 아직 불완전한 위에 더욱이 '송경 천도’ '남으로 이천 리, 북으로 이천 리’라는 제이의 야망을 품고 있는 후백제라, 그 나라의 임금은 단지 왕재(王才)뿐 아니라 우월한 장재(將才)가 반드시 필요하였다.
 
124
견훤왕은 당신의 네째 왕자 금강의 고금에 쉽지 않은 장재에 내심 퍽이나 흡족하였다. 단지 맏아들로 태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장차 왕자를 태자로 봉 하려면 약간한 귀치않은 문제가 생길 것만이 성가시었다.
 
125
─ 선사 도선(先師 道詵)이 일찍 자식복이 없겠다 하시더니 그것은 이를 가리키 심이었던가, 아아, 너는 왜 맏으로 태어나지 못하였느냐. 귀찮은 문제로다.
 
126
용감하고 슬기로운 금강을 바라보며 견훤왕은 때때로 탄식하였다.
【원문】금강 왕자(金剛 王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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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인(金東仁) [저자]
 
  조광(朝光) [출처]
 
  1938년 [발표]
 
  소설(小說)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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