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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성대(帝星臺) ◈
◇ 왕자(王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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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5-1939.4
김동인
1
제성대(帝星臺)
2
王子[왕자]
 
 
3
여러 날 계속되는 비가 그쳤다. 그리고 꽤 누런빛을 띤 해가 동녘 하늘에서 솟아올랐다.
 
 
4
우주(宇宙)는 방금 만들어 놓은 듯이 깨끗하였다. 모랫기가 많이 섞인 흙이라 비는 뒤가 없이 잦아 버리고 군데군데 물이 고여 있으므로 비온 뒤인 줄 짐작이 가지 그렇지만 않더면 비온 것 같지도 않고 다만 우주를 방금 만들어 놓은 듯 새롭고 정갈할 따름이었다.
 
5
"참 깨끗한 날이구료."
 
6
"네이. 일기도 청명하려니와 강산이 더욱 깨끗하오이다."
 
7
"강산도 깨끗하려니와 내 마음은 더욱 맑고 밝으오."
 
8
"천추만세하옵소서."
 
9
만추(晩秋)의 금산사(金山寺) 역내― 늙은 솔들이 별을 가리워서 평생에 해를 보기 힘든 길을 후백제 국왕 견훤과 금산사 주지(住持) 일허사(一墟師)가 거닐고 있었다. 금산사는 후백제 왕실의 원당(願堂)으로 절 안에 어소 침전(御所寢殿) 등이며 배종 시신들의 기거할 곳까지 다 구비되어 행궁(行宮)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리고 임금은 노부도 없이 단 혼자 이 곳까지 말을 달려와서 일허사와 하루를 보내고 환궁하는 일도 자주 있었다. 그리고 또한 그러니만치 임금(견훤)과 일허사와의 새는 군신지간이라기보다 친구지 간에 가까왔다.
 
10
"천추만세 하라지만 그것은 사람의 바라지 못할 일―."
 
11
"허허허허. 대왕께서도 못 바라시는 일이 계십니까. 그러면 백추천세 하옵소서."
 
12
"그것 역시 바라지 못하겠소."
 
13
"그것조차 못 바라시오니까. 사람이란 백밖에 가망이 없을지라도 욕심은 만(萬)까지 내어야 하는 법. 대왕께서는 어찌 그리 과욕(寡慾)하시오니까
 
14
?"
 
15
"불도(佛道)에서도 그렇게 욕심을 기릅니까 ?"
 
16
"욕을 금하였지만 인성(人性)이 본시 욕으로 된 것이오라 아무리 금하 온들 어찌 뿌리까지 뽑으오리까. 소승으로 뵈올지라도 무간지옥을 면키 어려운 악도(惡徒) 이옵지만 마음으로는 부처되기를 바라오니 인성(人性)에서 욕심은 도저히 못 뽑사오리다."
 
17
"흠…."
 
18
임금은 머리를 숙였다. 노사(老師)의 이 말이 그의 본심에서 나온 말인지 혹은 예에 의지한 풍간(諷諫)인지 알 수 없었다. 머리를 숙이며 발 아래를 보니 거기는 개아미가 길게 행렬을 지어 어디로인지 행진을 한다. 임금은 성큼 개아미줄을 넘어 섰다. 그리고 다시 머리를 들었다.
 
19
"대사.―말씀이 백밖에 가망이 없는 일이라도 욕심만은 만까지 내는 법이 라 하지만 백밖에 가망이 없으면 역시 욕심도 백만큼만 내어 두어야지 그렇지 않았다가는 실망은 욕심의 천 곱 만 곱이나 되는구료."
 
20
"그렇게 과욕하시니 그럼 백추백세나 하시옵소서."
 
21
"그렇지. 인간오십이라 하며 인간칠십고래희라 하지만 이것은 너무 과(寡)욕한 말이요 칠십까지는 보통이요 백살을 넘기는 사람도 간간 있으니 백 살쯤으로 해두는 것이 과부족 없이 꼭 좋겠지."
 
22
왕도 미소하였다. 일허사도 미소하였다.
 
23
"참 대왕께서는 마진국 임금을 일찍부터 아셨지요 ?"
 
24
"네. 어렸을 적에 단 이틀을 함께 지낸 일이 있소이다."
 
25
"욕심이 세십니다."
 
26
"왜 ?"
 
27
"천추만세는커녕 십만추백만세로 축수를 하지 않으면 크게 노염을 내실 겝니다."
 
28
임금은 한순간 발을 멈추고 눈을 감았다. 벌써 삼십 년 전 어린 시절에 동수산(桐藪山) 어구 산지기네 집 건넌방에 그와 나란히 하여 누워서 열어 젖힌 문으로 달을 우러러보며 그 애꾸눈이 소년과 이야기하던 한 장면이 문득 머리에 떠올랐다.
 
29
"야 나는 이름 고치련다."
 
30
"뭐라구 ?"
 
31
"궁예라구."
 
32
"그건 왜 ?"
 
33
"좋지 않으냐 ? 궁예라. 궁예라. 오죽 좋으냐. 선종이 다 뭐냐. 이제부터는 궁예라구 불러 다고."
 
34
아아. 당년 같은 방에 누워서 같은 달을 우러러보며 그러면서도 제각기 제 꿈을 따로 품고 인생의 행로를 개척하기 위하여 밝는 날은 동서로 서로 손을 나누려던 두 소년― 그 새에 숱한 파란과 숱한 곡절을 겪고― 그러는 동안에 생명만 그냥 유지된 것도 기적인데 당년의 두 소년이 오늘날 한결같이 또한 제각기 한 나라를 세우고 임금이 되었다 하는 것은 고금에 둘도 없는 기적인 동시에 당사자로 보자면 과연 감개무량하였다.
 
35
"욕심은 꽤 세지."
 
36
"한때 소승의 문하에 드신 때도 있읍니다."
 
37
"호오. 대사와도 사제지분이 있습니까 ? 부처의 도가 성(性)에 맞지 않을 터인데 불제자(佛弟子) 노릇도 꽤 오래 했을걸요. 대체 말 도적이구료. 어렸을 때 내 말을 도적해 타고 뛰다가 말이 가지를 않아서 잡혔는걸요."
 
 
38
"허허허허."
 
39
"하하하하."
 
40
"마적왕(馬賊王)이라 국호를 마진국이라 했나 보옵니다."
 
41
"하하하하하."
 
42
잡담을 주고받는 동안 임금과 노승은 솔밭길을 벗어나서 풀밭에 나섰다.
 
43
임금의 본시의 목적은 솔밭 산보에 있지 않고 이 풀밭― 드을에 있었다.
 
44
역시 금산사 경내(境內)인 이 꽤 넓은 풀밭은 후백제 왕실의 연무장(鍊武塲) 이었다. 서울 교외에도 연무장이 없는 바가 아니었지만 말을 달리기에 활을 연습하기에 창칼을 쓰기에 습진(習陣)을 하기에 꼭 알맞은 벌과 언덕과 골짜기가 서울 교외보다 여기가 나은지라 여기 무어소(武御所)를 두 고 왕자들은 대개 여기까지 와서 연무를 하는 것이었다. 오늘도 왕자들과 무장이며 소년 무사들의 비공식 무술경기가 있는 날이라 임금은 그것을 보러 일 허사와 한담을 하며 이리로 거닐어 온 것이었다. 임금이 이르렀을 때는 궁술 경기가 한창 벌어진 때였다.
 
45
무술 경기를 하기 위하여 금산사에 행행한 것이 아니요 금산사에 행행 한 기회에(마침 무예에 익은 장수도 몇 사람 배종하였으므로) 열린 비공식 경기이니만치 배관(拜觀)하는 대신도 얼마가 안 되고 금산사의 중들이며 그 근방의 백성들이 멀리서 구경을 하는 밖에는 직접 경기에 참가한 무장과 근시(近侍) 몇 명 왕비 궁녀 등등뿐이었다.
 
46
일허사와 함께 솔밭에서 연무장으로 나선 임금은 임금을 위하여 마련한 옥좌로 가지 않고 솔밭에서 연무장에 들어서는 참 놓여 있는 꽤 큼직한 나무 토막 위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일허사에게도 거기 앉으라는 뜻으로 자리를 얼마 비워 주며 눈으로 자리를 가리켰다. 일허사는 서슴지 않고 임금의 지시 하는 자리에 임금과 나란히 하여 앉았다. 때는 마침 큰 소년 등의 경기는 끝이 나고 네째 왕자 금강(金剛)과 그 동년배의 소년들의 경기가 시작이 되려는 즈음이었다.
 
47
임금은 잠시 경기 준비에 분망한 소년들을 바라보다가 머리를 일 허사에게로 돌렸다.
 
48
"대사."
 
49
"네이."
 
50
"저 애― 저 금강(金剛)을 어떻게 보십니까 ?"
 
51
"어떻게라시는 것은 어떤 의미로이온지요 ?"
 
 
52
"인품이 말이외다."
 
53
"왕자다우신 소년이시옵니다."
 
54
"왕자란 놈자(者) 자 말씀이오 ? 아들자(子) 자 말씀이오 ?"
 
55
"무론 아들자 자 왕자 말씀이옵니다."
 
56
"놈자 자 왕자답지는 못할까 ?"
 
57
"태자 계시오매 어찌 놈자 자 왕자다우시오리까 ? 그랬다가는 왕실의 재변이 옵고 국가의 화근이 아니오니까 ?"
 
58
"글쎄…."
 
59
임금은 그의 커다란 머리를 가슴에 묻혔다. 무표정한 그의 얼굴이라 어떤 감정이 그의 가슴에 왕래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무엇을 깊이 생각하는 것만은 분명하였다.
 
60
잠시 뒤에야 임금은 도로 얼굴을 들었다.
 
61
"대사."
 
62
"네이."
 
63
"승에게는 좀 당찮은 질문이지만 여기 여인이 하나 있다 칩시다. 그 여인이 김가와 가까이 해서 애를 하나 낳았다 합시다. 그 뒤에 그 여인이 박 가한테 시집을 가면 전에 낳은 애가 김가일까 ? 박가일까 ?"
 
64
"무론 애는 김가의 씨니 김가이옵지요."
 
65
"승도 그런 건 아는구면. 하하하."
 
66
"허허허허. 승은 부모 없이 났답디까 ?"
 
67
"그럼 여인의 맏애는 김가라 치고, 내 또 한 가지 물어볼 테니 대답해 보십 쇼."
 
68
"그러오리다."
 
69
"여기 한 사람이 있어서 처음에는 평민이던 사람이 후일 좋은 세월을 만나서 임금이 되었다 합시다. 그런데 그 사람이 평민이던 시절에도 아이가 있었고 임금이 된 뒤에도 또 아이를 낳았다 치면 평민 때에 낳은 아이도 왕자 일까 ?"
 
70
"그야―."
 
71
딱 막혔다.
 
72
왕자일까 ?
 
73
평민일까 ?
 
74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75
왕자라 하자니 평민의 아들이 어찌해서 왕자일까 ?
 
 
76
왕자 아니라 하자니 현재 임금인 사람의 아들이 어찌해서 평민일까 ?
 
77
더우기 이 임금(후백제 임금 견훤)에게 대해서는 더 대답하기가 힘든 말이었다. 이 임금은 근본은 백제 왕실의 후예라 하나 신라로 보자면 한 평민의 집안 이었다. 신라의 한 평민이 자수로 성국하여 후백제의 임금이 되었다.
 
78
이 임금에게는 이전 평민 시대에 낳은 아들이 셋이나 된다. 신검(神劒) 양검(良劒) 용검(龍劒) 등 세 아들은 본시 왕자로서 출생한 바가 아니었다.
 
79
견훤이라 하는 한낱 신라 평민의 아들로 태어난 것이다. 그것이 오늘날 그의 아버지 견훤이 후백제의 임금이 된 덕에 왕자라는 존칭을 받게 된 것이다.
 
80
이러한 반면을 가진 이 임금에게 대하여'왕자’에 대한 해석을 갑자기 내 리기는 지난한 일이었다.'그야―’할 뿐 일허사는 말의 뒤를 잇지 못 하고 잠시 입술만 움찍움찔하다가 그냥 입을 닫쳐 버리고 말았다.
 
81
"그야― 어떻다는 말씀이요 ?"
 
82
임금은 뒤를 재촉하였다. 그러나 일허사는.
 
83
"글쎄― 올시다."
 
84
하고는 역시 대답은 못하였다.
 
85
잠시 말이 끊어졌다. 눈을 들어 바라보매 저편 쪽에서는 경기가 시작된 모양으로서 방금 어떤 소년이 활을 쏜 뒤를 이어 이 임금의 네째 왕자인 금강(金剛)이 활을 메어잡고 바야흐로 줄을 놓으려는 즈음이었다.
 
86
임금은 일허사에게 던진 질문의 대답을 더 채근치 않고 주의(注意)를 소년 왕자에게 부었다.
 
87
소년답지 않은 큰 활에 살을 먹여 가지고 부러질 듯이 잔뜩 줄을 다릴 때는 소년의 얼굴에 도는 홍조(紅潮)가 임금이 앉아 있는 곳에서까지 알아볼수가 있었다.
 
88
부러질 듯 부러질 듯 굽었던 활이 허리를 펴는 순간 활을 떠난 살은 대기중에 소리치며 날아갔다.
 
89
순간이었다. 살이 활을 떠나는 순간만 소년 왕자는 살에 주의(注意)를 가하였다. 그 힘 속력 방향 등에 틀림이 없었는가고 주의한 모양이었다.
 
90
그 순간 뒤에는 그 살이 그 힘에 그 속력에 그 방향에 그 풍세(風勢)면 당연히 과녁에 적중할 것을 깊이 믿는 듯이 다시는 과녁 쪽은 보지도 않고 돌아서서 고요히 자기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살은 소년의 그 굳은 자신(自信)에 굴복을 하는 듯이 퍽 소리를 내면서 과녁 복판 가운데 들어 박히고 꼬리도 흔들지 못하였다.
 
 
91
이편에서 그 모양을 바라보고 있던 부왕은 머리를 고요히 일허사에게로 돌렸다.
 
92
"대사."
 
93
"네이."
 
94
대답은 하였다. 그러나 방금 본 바 아들자 자 보다 놈자 자로 왕자다운 소년의 모양이 눈에 어릿거려 임금에게서 도 평민의 아들과 임금의 아들 타령이 나올까 보아 가슴이 조마조마 하였다.
 
95
"놈자 자 왕자답지 않소."
 
96
과연 그 타령이었다.
 
97
"글쎄올시다. 태자 계시오니 어찌 주상하여얄지 모르겠읍니다."
 
98
"대사. 내가 이전 비록 백제 왕실의 후예나마 고약한 세태에 신라에 신사(臣仕)할 때에 낳은 자식이 신검 양검 용검 등 세 아이. 박가에게 시집간 여인이 김가에게 받은 아이와 같아서 왕자라기는 약간 꺼리는 바이 있소이다. 저 금강은 내게로 보자면 네째 아들이지만 후백제 왕실에서는 가장 먼저 난 왕자외다. 내 집안의 네째 자식이라 해서 국가의 원자(元子)를 지손(支孫)으로 홀대하면 나조차 국가의 죄인이 안 될까 ?"
 
99
말이란 이리로 붙이면 이렇게 되고 저리로 붙이면 저렇게 되는 것이다. 사실 임금이 마음으로 가장 네째 아들을 사랑하니 이런 이론이 성립되는 것이다. 신검, 양검, 용검, 위로 세 아들도 결코 미워하는 바가 아니었다.
 
100
"자식복이 적으리라."
 
101
일찌기 은사 도선(道詵)에게서 이런 상서롭지 못한 예언을 들은 당년의 견훤 ― 지금의 임금은 일찍부터 몹시 자식을 그리워하였다.
 
102
그가 장가를 들어서 신검을 낳고 뒤이어 양검, 용검을 낳았다. 스승에게서 자식 복이 적으리란 예언을 듣기 때문에 은근히 걱정하던 그는 이 뜻밖으로 얻은 자식을 끔찍히 귀애하였다.
 
103
자식복이 적으리라던 자기에게 이렇듯 뒤이어 자식이 생기니 혹은 일 찌기 잃지나 않을까 하여 이 방면으로도 몹시 마음을 쓰며, 그가 공무(公務) 로밖에 있을 때에도 늘 집에 남긴 자식들이 아니었다. 몸도 모두 튼튼하였다.
 
104
"자식복이 적으리라."
 
105
이 예언만은 틀리리라. 스승도 모르는 일도 있구나. 이만치 여겨 두었다.
 
106
드디어 오래 바라던 백제 재건에 성공하였다. 그 뒤에 또 아들을 낳았다.
 
107
그 뒤에 낳은 아들은 제 형들보다 인품이며 골격이며 풍채며 어느 점으로 든 승하 였다. 형들도 떨어지는 아이가 아니지만 동생이 더욱 나았다.
 
108
여기서 그의 새로운 이론이 생겨 난 것이었다.
 
 
109
"임금이 낳은 아들이 왕자이지 아무리 임금의 아들이라도 그가 아직 평민 시대에 낳은 아들이면 왕자가 아니라."
 
110
이런 이론은 순전히 제사 왕자 금강 때문에 생겨 난 것이었다.
 
111
"대사. 그래 내 말이 그른 데가 있소이까 ?"
 
112
"글쎄올시다."
 
113
여전히 찬성을 못하겠다는 일허사의 태도는 임금에게는 약간 불만 하기는하였으나 그렇다고 일허를 힘있게 나무랄 수도 없는 일이었다.
 
114
저편 쪽에서는 오늘의 가장 좋은 성적을 보인 사람은 금강 왕자라고 욱적하고 있을 동안 이편에서는 임금과 일허사의 새에 기괴한 무거운 침묵이 계속 되었다.
 
115
비 뒤에 맑게 씻기운 풀밭. 우짖는 벌레소리조차 임금의 귀에는 금강 왕자를 찬미하는 듯이 들렸다.
 
116
말타기 창칼쓰기 온갖 경기에 있어서 금강 왕자는 사실 발군의 역량을 보였다. 그와 동년배의 소년들에는 같은 축이 될 것이 아니라 웃길 아이들과 섞여도 도리어 금강이 썩 나을 듯하였다.
 
117
"후백제 만만세 하리로다."
 
118
아버지 임금의 마음은 여간 흡족한 것이 아니었다.
 
119
그러면서도 이 아버지로 하여금 일변으로 근심되게 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의 마음은 일허사와 같은 편이 꽤 많으리라는 점이었다. 아니 적절히 말하자면 임금 자기의 마음과 같은 사람이 오히려 적은 것 이 요임금의 맏아들을 즉 국가의 맏아들로 그릇(?) 생각하는 사람이 많으리라는 점이었다. 일허사는커녕, 임금 자기의 안해 즉 왕비조차가 그렇게 생각 하는 편이요 신검, 양검, 용검 등 세 형제는 무론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며, 더우기 기괴한 것은 금강 당자까지도, 자기는 지금은 왕자이요 장래에는 왕제가 될― 말하자면 한 왕족이지 자기의 형들은 평민 견훤의 아들이요 자기부터가 비로소 왕자라고는 결코 생각도 않거니와 그렇게 일러 주어도 믿지도 않을 것이었다.
 
120
"아아. 기쁘고도 근심되는 일이로구나."
 
121
그러나 이런 문제는 먼 장차에는 저절로 잘 해결이 될 것이다. 이미 백 제 재건의 대사업이 성취되었으며'자식복이 적으리라’던 스승의 예언에 반하여 도리어 자식이 많은 위에 모두 남부끄럽지 않은 자식일 뿐더러 놀라운 걸 출까지 있으니 무엇을 근심하랴.
 
122
건강이 있고 부귀가 있고 후손이 가지런한 위에 평생의 대목적까지 성취하고 보일보 더욱 튼튼히 하여 나아가니 사소한 근심 약간한 우려가 무엇이 랴.
 
123
그 날 저녁 배종해 온 신하들과 간단한 저녁 잔치를 할 때 평생에 무표정한 얼굴이니 여전히 표정은 없으나마 그래도 빛나는 일면이 어디인지 보여서 배석하는 신하들의 마음으로 하여금 더욱 흥겹게 하였다.
 
124
동에는 신라 서에는 후백제 북에는 마진― 이 반도 위에 세 나라이 가지런히 선 가운데 신라는 일천 년 사직이 지금 한창 위태로워 어느날 어떤 일이 생길지 예측도 할 수 없이 암담한 기분 아래 잠겨 있고 마진은 아직 자리 잡히지 못한 나라로 용이 될지 뱀이 될지 예측도 할 수 없는 위에 임금 궁예의 성격이 너무 괴벽하고 신하에 아직 화(和)가 부족하니 완성한 나라로 보기는 부족한 느낌이 없지 않고 오직 후백제는 신흥 기분이 무럭무럭 자라는듯 한 기미가 가장 강하고 그 위에 자식 역시 아비의 기업을 잃지 않을 듯 모 다가 제 한몫은 당할 만한 것 같으니 지금 형편으로 보아서는 후백제 혼자서 최후까지 남아서 반도의 패권을 잡을 것 같았다.
 
125
그러니만치 그 임금의 긍지도 여간한 것이 아니었다.
【원문】왕자(王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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