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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성대(帝星臺) ◈
◇ 자식복(子息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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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5-1939.4
김동인
1
제성대(帝星臺)
2
子息福[자식복]
 
 
3
견훤왕이 직예대[直隸隊] 오백 명을 친솔하고 신라 서울에 직입하여 반 오백 년 전의 낙화암의 원수를 갚은 지도 어언간 팔 년이라는 날짜가 흘렀다.
 
4
이 임금 예순 아홉 살 ― 홑 아홉 살에 아버지 아자개(阿慈介)의 슬하를 하직 할 때에 하였던 두 가지의 커다란 맹세 ― 하나는 이백여 년 전에 망한 백제를 자기의 손으로 재건할 것이요 또 하나는 그때 수치와 원한을 머 금고 낙화암에서 백마강으로 몸을 던져 죽은 망국 삼천 궁녀의 원수를 갚을 것 ― 두 가지가 다 성취되고도 이미 팔 년이다. 인제 남은 일은 일껏 공들여 쌓은 탑을 잘 보존할 후계자를 선택(選擇)하는 일이었다.
 
5
임금은 눈주어 보고 주의하고 한 끝에 네째 왕자 금강(金剛)을 골라 내었다. 처음 동안은 확정치 못한 일이라 임금 혼자서 마음먹고 주의만 하고 있었지만 세월이 흐르는 동안 어느덧 차차 임금의 이 의사도 노골적으로 되어가고 노골적으로 되어 감에 따라서 다른 사람들도 눈치채게 되었다.
 
6
대궐 이하 온 대신이며 백성들 새에까지도 이 나라의 왕통을 이을 이는 네째 왕자 금강이라는 점을 막연히나마 짐작을 하게쯤 되었다.
 
7
그때는 맏왕자 신검이 홀로 아버님 앞을 모시고 있었고 둘째 왕자 양검은 강주 도독(康州都督)으로 세째 왕자 용검은 무주도독(武州都督)으로 각각 소임을 맡아 가 있던 때였다.
 
8
신라의 굴레를 벗어나서 스스로 나라를 세우고 자기네끼리 자기네의 나라를 조리하는 지도 이미 사십사 년, 신라 경순왕(敬順王) 팔년, 고려 태조 십팔 년, 후당 노왕(後唐路王) 청태(淸泰) 이년 봄도 거진 다 간 삼월 이었다.
 
9
백제 서울 완산주의 교외 여기저기에 탐춘의 무리들이 한 패씩 한 패씩 모여 앉아서 술을 기울이며 가는 봄을 조상하고 있었다.
 
10
그 가운데 좀 한쪽으로 떨어져서 외딴 곳에 세 사람 패거리에 탐춘객 한 떼가 있었다.
 
11
온갖 행색이며 차림이 표면으로는 분명 탐춘객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단지 탐 춘을 하러 나온 것이 아니요, 탐춘을 핑계삼아 여기서 무슨 의논을 하러 나온 모양으로 앞에 술잔은 있으나 잔을 기울이는 일도 없이 이야기에 골몰하고 있었다.
 
12
상좌에 앉은 사람은 임금의 맏아드님인 신검 왕자였다. 왕자라 하면 언뜻 청소년으로 생각키우나 벌써 오십의 중노인으로 비교적 호인다운 기색이 얼굴에 넘쳐 있었다.
 
13
왕자의 왼편에 앉은 사람은 이찬 능환(能奐)이었다. 야심과 권모가 얼굴에까지 넘쳐 있었다.
 
14
오른편에 있는 사람은 파진찬 영순(英順)이었다.
 
15
두 사람은 한결같이 임금이 제사 왕자 금강에게 전위를 하려는 반대의 의향을 품은 사람으로서 억세고 괄괄한 임금이라 표면 그 의향은 나타내지 못 하나 이면으로는 늘 그 뜻을 품고 자기네끼리는 불평을 하소연하고 하던 것 이었다. 그들은 무슨 특별히 금강 왕자에게 불만이나 불평을 품는 것이 아니고, 단지 맏왕자 신검과는 학우(學友)이요 아직껏의 오십년 생애를 이상한 인연으로 전장에서는 같은 진에 있게 되고 평화 때에도 역시 신검 왕자의 아래 있게 되어 오랜 인연으로 서로 정이 깊어 들기 때문이었다.
 
16
이 날 신검 왕자를 모시고 겉으로는 탐춘하는 체하고 여기 온 것도 좀 유 다른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었다.
 
17
이즈음 임금의 건강이 좋지 못하다. 벌써 춘추 예순아홉이매 인간 칠십 고래 희라는 칠십이 다 된 춘추라 보통 사람 같으면 벌써 기거동작도 힘들게 되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보통 이상의 건강체를 가지고 있는 이 임금이라 보통 때에는 아직 장년 남자나 일반인 듯하였다. 자각적(自覺的)으로는 어떤지 알 수 없지만 남보기에는 적어도 그러하였다.
 
 
18
그러나 차차 병이 잦아 갔다. 이전에는 좀체 병 앓는 일이 없었는데 차차 나이가 많아 가면서 그런 일이 늘어 갔다. 근년에 이르러서는 더욱 잦아 갔다. 잦아 가는 동시에 한번 누우면 누워 있는 기간이 길고 괴로워하는 정도가 심하여 갔다. 체력이 쇠하여 가는 것이 분명하였다.
 
19
이번에 누워서는 꽤 탈이 중하였다. 동시에 근시(近侍)의 전하는 말에 의지하 건대 원로 대신들과 누차 태자 책립에 대한 중요한 회의가 비밀히 열렸다 하는 것이었다.
 
20
임금의 보수가 이만하면 무론 벌써 태자의 책립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월차책립(越次冊立)이라는 델리케잇한 문제가 있기 때문에 아직껏 그냥 밀어 오던 것이었다.
 
21
이번 환후가 좀 심상치 않으매 임금은 이 기회에 그 새 오래 끌고 오던 문제를 해결코자 하였다.
 
22
이 임금의 오십 년간의 내조자요 겸하여 동지요 격력자이던 왕비는 수년 전 이 임금을 혼자 남겨 두고 저 세상으로 갔다. 만약 왕비만 생존 하였더면 왕비의 의견이 임금에게는 가장 참고거리가 되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왕비 이미 가고 홀로 남은 임금에게는 의리와 이치로써 임금을 설복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대신들은 대개는 임금의 뜻에 무조건하고 승복하였다. 몇몇 인정을 아는 대신들은, 사리를 들어서,
 
23
"맏 왕자를 세자로 책립하옵고 금강 왕자로서 보좌를 하도록 하옵시다."
 
24
고 여쭈었지만, 일단 굳게 먹은 임금의 뜻은 꺾기가 힘들었다.
 
25
이리하여 누차 병상의 임금과 원로 대신들과의 비밀회의가 거듭되었다. 이런 낌새를 챈 능환과 영순의 두 재상은 자기네가 심복하는 신검 왕자로 하여금 보위에 오르게 하도록 그 의논을 하러 오늘 왕자를 모시고 탐 춘하러 나온 체하고 여기를 나온 것이었다.
 
26
"나도 그만치는 짐작은 하지만 나랏님의 뜻이 그러신 데야 어쩔 도리가 있겠나?"
 
27
능환과 영순의 의견을 들은 뒤에 신검 왕자의 대답이 이것이었다.
 
28
신검 왕자는 그다지 야심이 크지 않은 사람이었다. 지금 누리고 있는 이상의 부귀가 욕심나지 않았다. 아버님이 임금이거나 아우가 임금이거나 자기의 지금의 부귀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리고 또 이만하면 넉넉하였다. 지금 나이가 오십에 더 영화를 얻는다면 몇 해나 누릴 것인가. 더우기 능환과 영 순 등의 의견으로 보자면 더한 영화를 얻기 위해서는 아버님을 어디 다가 감금을 해야 하고 네째 동생의 목숨을 해하여야 하고 그 밖에도 반항 하는 생명을 적지 않게 해하여야 할 것이다. 그다지 욕심나지도 않는 것을 그런 악착한 일까지 해서 빼앗으면 무엇하랴.
 
29
왕자의 마음은 이러하나 영순과 능환은 그렇지 못하였다. 무론 첫째로 이일이 성공하면 자기네는 그 공으로 더 높은 지위에 앉게 될 것이다.
 
30
그러나 그보다도 더 악이 받쳐서 이 일을 성공시켜야 할 내력은 직접 그들의 생명에 관련되기 때문이었다. 만약 지금껏같이 속마음으로만 그런 생각을 품고 있었으면 괜찮지만, 일단 입 밖에 낸 이상에는 성공치 못하면 역적이다. 역적에 몰리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공을 해야 한다.
 
31
"그렇지 않습니다."
 
32
영순이 우선 반대하였다.
 
33
"만약 왕자께서 먼저 이일을 행치 않으시면, 양검 왕자나 용검 왕자가 행 하실 것이올시다. 맏왕자께서 왕위를 이으신다면 이는 천리(天理)오라 당연한 일이오니 온 백성들이 기꺼워할 것이올시다. 또 만약 금강 왕자께서 승위 하신다면 이 또한 나랏님의 뜻이오니 백성들이 불평을 품기도 덜할 것 이 올 시다. 그러나 양검이나 용검 왕자께서 승위하신다면 나라이 크게 어지러워질 터이오니 그렇게 되오면 왕자께서는 죄송한 말씀이오나 종사의 죄인이 되지 않사오리까?"
 
34
이 영순의 말을 능환이 뒤를 받는다.
 
35
"옳습니다. 일 보 그르치면 종사의 죄인이 될 것이오이다. 게다가 더우기 유의 하셔야 할 것은 다름이 아니오라 지금 나랏님께서 하오시려는 일은 너무 연로(年老)하시기 때문에 좀 ― 그 ― 망령이 나시기 때문이 아닌가 하옵니다. 한 집안의 가업이든 한 나라의 존좌(尊座)이든 간에 맏(昆)되는 이가 계승하는 것은 하늘이 내신 법이온데 무슨 까닭에 월차(越次)를 합시려는지 망령으로밖에는 생각키지 않습니다. 더우기 우리 전하와 같으신 영특한 분을 두시고 왜 월차를 하시겠읍니까? 망령이올시다."
 
36
말로 누구에게 지지 않을 두 사람이었다. 한 점 이치에 어그러진 데가 없다.
 
37
"글쎄?"
 
38
"글쎄가 무에오니까? 고래로 국가나 가운의 흥망성쇠가 대개 글쎄라는 데서 나왔습니다. 마음 단단히 잡숫고 단숨에 하실 일에 글쎄 무에오니까? 이찬(伊飡). 그렇지 않소?"
 
39
"그렇다뿐이리까?"
 
40
그러나 왕자는 유예미결하였다. 이 왕자의 천성이 무슨 일에는 단호성(斷乎性)이 없었다. 그리고 그 점을 미흡히 생각하기 때문에 임금은 왕위를 맏 왕자에게 물려주기를 꺼리는 바였다.
 
 
41
데리고 온 시종들은 멀리서 따로 음식을 나누게 하고 이 근처에는 잡인은 얼씬도 못하게 한 뒤에 신검 왕자와 두 재상은 거의 날이 기울도록 의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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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남보기에는 보통 술을 나누는 듯하였으나 정작으로는 가장 비밀 한 의논이 진척이 된 것이었다.
 
43
저녁 때가 거진 되어서야 신검 왕자에게서는 이런 말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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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대체 일을 어떻게 해야겠소? 나랏님은 지금 환후는 계시지만 서울에 무사히 계시구 신검과 용검에게두 의논을 해야겠는데 그 사람들은 강주 무주 등에 갈려 가 있구."
 
45
"그건 거리가 안 됩니다. 금강왕자께 선위를 하시는 건 양검, 용검, 두 왕자분도 찬성 안하실 일이니깐, 오늘로라도 급사를 보내면 모레면 서울로 오시게 될 것이고, 오시기만 하면 합의가 되시리다."
 
46
"금강은?"
 
47
"자객(刺客)을 보내옵시다."
 
48
"나랏님은?"
 
49
"환후 평유의 기도를 올리자고 금산사(金山寺)로 모시고 갔다가 그냥 별 궁에 모셔두고 날쌘 무사로 지키게 하면 탈이 없을 줄로 믿습니다."
 
50
"그렇게 일이 다 순순히 잘 될 것 같소?"
 
51
"저는 직예대(直隸隊) 오백 명의 대장이올시다."
 
52
능환의 대답이 이것이었다. 영순도 능환에게 지지 않았다.
 
53
"젊은 장수들은 모두 저와 막역지교일 뿐더러 제일 왕자의 승위를 바라는 무리 들이올시다."
 
54
"글쎄?"
 
55
"곧 결행하옵시다."
 
56
"글쎄?"
 
57
"글쎄가 아니올시다. 때는 급하옵니다. 하루를 더디하였다가는 대사가 결정 되면 그 뒤는 무가내하올시다. 이 즉석에서 그렇게 하도록 작정하고, 지금부터 일에 착수하도록 하십시다."
 
58
"그럼 일에 실수 없도록만 하시오."
 
59
이리하여 견훤왕 오십 년간의 노력의 결정인 후백제군은 왕위 계승 문제로 트집이 가기 시작하였다.
 
60
부왕의 환후가 범상치 못하다고 이것을 근심하여 강주도독으로 가 있던 둘째 왕자 양검과 무주 도독으로 가 있던 세째 왕자 용검이 같은 날 서울에 도착하였다. 입경하여서는 즉시로 부왕의 병석 앞에 나아갔다.
 
61
세상에 떨어진 이래 칠십 년간의 무인(武人)으로 지내온 이 늙은 임금은, 춘추 과하고 병환 중함에도 불구하고, 난란히 빛나는 눈을 들어서 오래간만에 보는 두 아들을 쳐다보았다.
 
62
"앉거라."
 
63
"환후 좀 어떠시오니까?"
 
64
"아직 십년은 염려 말아라. 너희들 백성이나 잘 다스리느냐?"
 
65
놀라운 원기였다. 좀 별다른 야심을 마음에 품은 두 왕자는 가슴이 적지 않게 두선거렸다.
 
66
"네, 스스로는 잘 다스리노라고 생각합니다마는."
 
67
"마는? 마는 어떻단 말이냐. 스스로의 생각과는 다르느니라. 아아, 나도 인제는 늙었다."손을 이불 밖으로 꺼내었다. 나무 등걸같이 왁 살스러운 팔은 그래도 늙은 탓인지 시룩시룩 주름이 잡혔다.
 
68
임금은 말없이 한참을 자기의 팔을 들여다 보았다. 보다가 쓸쓸한 듯이 미소하였다.
 
69
"제 한몫 본 팔이다."
 
70
자탄성이었다.
 
71
두 왕자는 스스로 자기네를 보았다. 인생 오십 ― 어떻게 보면 초로(初老)라 할 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아직 장년이다. 그러나 인생의 말년이 늙은 아버지와 비교하여 자기네는 얼마나 부족하고 미약하고 어린애답고 보잘 것 없는가.
 
72
인사의 말씀을 여쭌 뒤에, 물러 나가라는 아버지의 윤허를 듣고 어전을 물러나 올 때는 이 왕자들은, 아버지의 의사에 거역하는 일에 적지 않은 공 포심까지 품게가 되었다.
 
73
이 서울에 모인 세 왕자가 상의한 결과라는 뜻으로 부왕께 금산사에 행행하여 환후 평유의 기도를 올리자고 주청할 때에 늙은 임금은 웃으면서 이를 허락 하였다.
 
74
병든 임금을 위하여 특별히 와거(臥車)까지 만들고 장중한 노부로서 임금은 제왕비 탄생의 네 왕자와, 제사 왕비 탄생의 막내왕자 능애(能艾)와 후궁 세 명과 시위 장졸 삼십여 명을 거느리고 금산사로 떠나갔다. 그 가운데 시위 장졸 삼십 명이라는 것이 전혀 맏왕자 신검에게 소속된 사람들만인 줄은 임금은 꿈에도 몰랐다.
 
75
미리 정갈히 닦아 둔 별궁에 임금은 들었다. 그날 밤을 그 별궁에서 보냈다.
 
 
76
밤을 지내고 이튿날, 이 날부터 환후 평유의 기도가 있을 날이었다.
 
77
그 날 아침 임금이 눈을 뜨자마자 시위 장사 한 명이 무슨 커다란 소반을 하나 가져다가 여관에게 전한다.
 
78
여관은 그것을 공순히 받아다가 임금의 앞에 놓았다. 비단 보자기로 덮이어 있었다. 임금은 무심코 그 보자기를 들쳤다. 들치다가 깜짝 놀라면서 떨쳐 버렸다. 떨쳐 버렸다가 다시 보자기를 들쳐 치웠다.
 
79
웬만한 일에 놀랄 줄을 모르는 이 임금도 여지없이 놀랐다. 앓아 누었던몸을 펄떡 일으켰다. 일으키고는 소반을 굽어 보았다.
 
80
소반에 놓인 물건은 사람의 머리였다. 보통 사람의 머리라도 이 임금이 그다지 놀랄 사람이 아니었다. 그 소반에 담긴 머리는 네째 왕자 금강의 것 이었다. 틀림이 없었다. 처음에 보자기를 떨치기는 사람의 머리가 담겨 왔기 때문 이었다. 다음에 펄떡 일어난 것은 사람의 머리가 금강 왕자의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기 때문이었다.
 
81
임금께 소반을 바치고 물러 나가던 궁녀도 임금이 너무도 놀라는 기수에 몸을 돌이켰다.
 
82
돌이키고 소반 위의 괴변을 보았다. 예사 보통의 괴변이었더면 궁녀는 기절을 했거나 커다란 부르짖음을 내었거나 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 일이 너 무도 경악할 일이니만치 다만 외마디 소리를 빽 지르고는 흐늘흐늘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83
드디어 임금의 눈이 노염으로 불붙었다. 비츨비츨 무릎을 세웠다.
 
84
"야아."
 
85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86
"야아. 아무도 없느냐?"
 
87
전각이 드렁드렁 울렸다. 뜰에는 시위 장사들이 무론 서 있다. 그러나 아무도 대답도 없을 뿐더러 돌아보지도 않는다.
 
88
"야아. 귀먹었느냐?"
 
89
다시 고함질렀다. 이때에 꽤 가까운 데서 말 소리가 났다. 말 소리라도 임금의 부름에 대한 대답이 아니었다.
 
90
"여보게 동관, 폐주(廢主)가 누구를 부르는 모양일세."
 
91
"음. 그런가보이."
 
92
"어디 누구를 불렀나, 동관 좀 알아보게?"
 
93
"그럼세."
 
94
곧 문 밖에 서 있던 모양이었다. 돌아서는 소리와 동시에 문이 열렸다.
 
95
"누구를 부르셨우?"
 
 
96
몸에는 갑옷, 손에는 창 ― 어마어마한 무장이었다.
 
97
동시에 임금은 모든 일을 눈치채었다. 단지 누구의 짓인지가 의문일 뿐이었다.
 
98
"누구의 짓이냐?"
 
99
"신검 왕자께서 중망에 의지해서 오늘 등극하오십니다."
 
100
"신검이?"
 
101
자식복이 없으리라. 아아 스승의 명찰(明察)이어. 임금은 논을 홱 돌려 버렸다. 만약 이런 짓까지 해서라도 위에 오르고 싶으면 왜 그 뜻을 아비에게 분명히 알리지 못하였느냐. 어리석은 녀석아. 내가 다스리기 사십여 년, 인제는 그만하면 꽤 튼튼히 자리잡힌 국가이매 과히 어리석은 사람만 아니면 넉넉히 나라 경영을 하여갈 수 있다.
 
102
이 새 나라 창업주의 적심으로서 더욱 튼튼하고 더욱 아름답고 더욱 가멸고 더욱 굳센 나라를 만들려는 욕심이 있기에 후계자를 고르던 것이다. 좋은 임금을 모시어 더욱 기름진 나라이 되게 하려기에 애도 쓰고 노심도 하던 것이다. 아무가 임금이 될지라도 국가 유지는 될 만한 기초는 인제는 섰다.
 
103
그러나 이렇듯 쟁탈전이 있고 쟁탈에 의지해서 왕위가 변동이 된다면 이나라의 속이 뻔히 외국에게 비치어 보이는 것이 아니냐. 나라의 추악한 꼴이 신라에게는 얼마나 보일지라도 걱정이 없으나 호시탐탐히 기회만 엿보고있는 신흥 고려에게는 손톱눈 만한 틈이라도 보여서는 되지 않을 것이다.
 
104
틈만 안 보이면 저쪽에서도 먼저 이쪽을 건드릴 용기는 없을 것이나, 일단 틈을 보인 이상은 인제는 다시 감출 수 없는 배다.
 
105
온조(溫祚)대왕 건국하신 이후 칠백 년 뒤에 한번 신라에게 꺾이었던 사직을 이백여 년간을 벼르고 벼르던 끝에 당신 평생의 힘으로 다시 세웠던 바를 또 다시 덜난 아들 때문에 잃는단 말이냐.
 
106
신왕 등극을 축하하는 불제(佛祭)의 소리가 은은히 이 별궁에 울려 올 동안 견훤왕은 몸의 아픔도 잊어버리고 일어나 앉아서 방바닥을 두드리며 통곡하고 있었다.
 
107
견훤왕의 눈에는 후백제국은 인제는 망한 나라로 보였다. 그저 곱다 랗게 신검 왕자에게 전위만 하였더라도 더 훌륭하게는 못 되었을망정, 이렇듯 추태를 폭로하기까지에는 이르지 않을 것을 일을 그릇하기 때문에 인제는 고려에게 망한 나라로 보았다. 견훤왕이 통곡한 것은 당신의 유금(幽禁)된 것보다도 금강 왕자 피살된 것보다도 국가의 파멸을 눈앞에 보기 때문이었다.
 
108
신검 왕자 등극은 비교적 순순히 일이 되었다. 금강 왕자의 몇몇 늙은 대신이 희생된 밖에는 조금의 동요도 없이 성공되었다. 비교적 호 인물 이었더니만 치 인심을 그다지 잃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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