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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성대(帝星臺) ◈
◇ 삼한(三韓) 통일(統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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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5-1939.4
김동인
1
제성대(帝星臺)
2
三韓[삼한] 統一[통일]
 
 
3
일 년이라는 날짜가 고요히 흘러갔다.
 
4
견훤왕이 금산사에서 마주(魔酒)에 취하여 고려에 사로잡힌 바 되어 고려 서울로 온 지 만 일 년이 지난 고려 태조 십구년 유월이었다.
 
5
고려는 드디어 최후의 움직임을 시작하였다. 작년 가을에 피를 보지 않고 신라를 병합하여 이 반도의 오분의 사라 하는 대부분의 영토를 차지하고 있지만 아직 서남쪽에 남아 있는 백제마저 삼켜버리지 않으면 안전한 통일자가 되지를 못한다.
 
6
신라를 합병하기 때문에 한때 두선거리던 동요도 인제는 멎었다. 그 대신 백제 신왕은 견훤왕 같은 대영웅은 못 되었지만 그래도 비범한 인물 이니만치 한때 꽤 움찔거리던 것도 인제는 잦고 백제도 차차 안돈이 되어 가려 한다. 온전히 안돈되기 전에 백제를 엎어 버리어야 고려로서는 안심을 할 수가 있는 것이었다.
 
7
이리하여 이 해 유월 드디어 백제 정벌의 대군을 일으키게 된 것이었다.
 
8
대군을 떠나보내기에 앞서 고려 왕은 조용히 견훤왕을 찾았다. 그 의견을 따져 보기 위해서였다.
 
9
"상부(尙父)께서는 후백제 왕이 괘씸하시겠지요?"
 
10
고려 왕은 이렇게 먼저 물어 보았다.
 
11
"네. 괘씸합니다."
 
12
"그렇겠읍기 지금 과인이 대병을 보내서 백제를 응징해서 상부의 한을 풀어 드리고자 합니다."
 
13
"?"
 
14
견훤왕은 깜짝 놀랐다. 놀라서 고려 왕의 얼굴을 보았다.
 
15
보고 내심 몸서리쳤다. 지금 싱글싱글 웃어 가면서 이런 말을 하는 고려왕이지만, 이것은 즉 백제는 인제는 전멸입니다. 하는 뜻을 알리어서 견훤왕의 내심을 살펴보자는 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16
언제든 이 날이 이를 줄을 꼭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르고 보니 가슴이 떨렸다.
 
17
"대왕님."
 
18
고려 왕을 불렀다.
 
19
"네?"
 
20
그러나 할 말이 있으랴? 국가의 대사라, 사정으로 돌이킬 바가 아니었다.
 
21
늙은 눈에 눈물을 어리어 가지고 먹먹히 고려 왕을 쳐다볼 따름이었다.
 
22
이것은 국사라 고려 왕도 마음 돌이킬 바도 아니요 생각 다시 먹을 일도 아니지만 그래도 마음에 측은하였다. 당신을 우러러보는 견훤왕의 눈을 피하면서 작은 소리로 말하였다.
 
23
"이번 과인도 출진을 하는데 상부께서도 함께 나가셔서 과인의 용군(用軍)에 지도를 해주십시오."
 
24
"……."
 
25
그 뒤에는 서로 할 말이 없어서 먹먹히 있었다.
 
26
한참 뒤에 다시 견훤왕이 찾았다.
 
27
"대왕님."
 
28
"네?"
 
29
"아들은 거역했지만 자기가 이룩한 보탑을 미워 못합니다. 이게 천리 외다."
 
30
그 뒤 한참을 말없이 더 앉아 있다가 고려 왕은 대궐로 돌아갔다.
 
31
그날 밤 견훤왕은 밤새도록 소리없이 울었다. 이미 정한 운명이지만 눈앞에 이르니 가슴이 저리었다. 더우기 자기의 평생 공을 다 들이어 쌓은 탑이지 금 무너지는데 자기는 그것을 붙드는데 일호의 힘도 가할 수 없고 도리어 무너 뜨 리는 편에 붙어서 방관치 않을 수가 없는 운명이 더우기 애달팠다.
 
32
베개에서 물을 짜낼 수가 있도록 수없이 눈물을 흘렸다.
 
33
일격에 백제를 부수어 반도를 통일하려는 고려에서는 국력을 죄 이 싸움에 아낌없이 넣었다. 태자와 장군 박술희(朴述熙)로 하여금 보병 기병 일만을 인솔하고 천안부(天安府)로 가게 하였다. 뒤이어 임금 당신도 상부 견훤왕이며 막료며 삼군을 친솔하고 천안에 합세하였다. 거기서 합세를 하여 일선군(一善郡)으로 나아가서 백제 신왕의 친솔군과 대치를 하게 된 것이었다.
 
34
고려 각 장령의 인솔한 바 좌군, 우군, 중군, 원군(援軍)의 사군을 합 한 보병 기병의 총세는 칠만팔천여 인으로서 과거 신라가 끌어들였던 당나라 군사 이외에는 이 반도에 이런 많은 군사가 동원되어 본 일이 없었다.
 
35
인제는 반도에서 북부는 본시부터의 영토요 동남부 신라는 제풀에 들어왔으니 한 군데 남은 백제만 남겨 놓으면 이 반도의 유일의 주인이었다. 그 땅을 지키던 호랑이까지 이미 없으니 한숨에 무찔러 낼 심산이었다.
 
36
전쟁은 시작되었다. 유월에 동병을 시작하여 구월도 그믐이매 석 달 이상이 지났다. 백제에서도 고려의 대군을 막으려고 온 군사를 일선군으로 모았다.
 
37
군사 쓰기를 귀신같이 하는 고려 왕에게 대하여― 그것도 고려 왕이 온 국력을 함께 모아 가지고 나오거늘 여기 정면으로 대하려는 맏아드님의 용맹을 보고 견훤왕은 길이 탄식하였다.
 
38
금강 왕자였더면 결코 이런 전략은 쓰지 않았을 것이다. 정예한 일 부대만 고려군과 대하게 하고 나머지는 각각 고을에 나누어 두어서 그곳을 지키게 할 것이다. 지금 온 나라와 군사를 일선군으로 모았으니, 이 군사만 꺾이는 날이면 백제국은 저절로 없어지지 않는가. 아아, 어리석은 아들아. 백제는 망하였다. 백제는 망하였다. 오십여 년간을 군인 생활을 한 견훤왕은 두 나라 진형을 바라보고 탄식하고 탄식하였다.
 
39
한 소리 높이 울리는 북소리에 시작된 전쟁은, 불과 수일에 끝이 났다. 백제군의 전멸이었다. 황산(黃山)으로 탄현(炭峴)으로 참패하여 쫓겨가는 백 제군을 따라가면서 전멸을 시켰다. 국내에는 이미 군사없이 비었었는지라, 겁 먹고 쫓겨가다가 신라 군사에게 죽는 백제군 이외에는 군사라고는 없었다.
 
40
이리하여 백제라는 나라는 삽시간에 온 나라이 신라군의 철기에 유린된 바 되고 일껏 견훤왕의 애써 일으켰던 후백제군은 건국 겨우 사십오년 만에 신흥 고려에게 망한 바 되었다.
 
41
백제 임금, 신검왕이며 그 아우님인 양검이며 용검이며 대신들은 대개 고려군에게 항복을 하여 겨우 잔명을 보전하려 하였다.
 
42
그러나, 이런 인물들을 그냥 남겨 두었다가는 후일 화근이 되리라고 고려왕은 막하에 명하여 모두 참(斬)하여 버렸다. 다만 신검왕 하나 겨우, 상부 견훤왕에게 대한 인사로 본다든지 또는 국왕에게 대한 대접으로 본다든지 참 하기를 면하였다. 고려의 개선군이 백제를 멸하고 돌아오는 길에 황산(黃山)까지 이른 때였다. 고려 군졸들은 들에 영치고 임금과 고관들은 어떤 절에서 하루를 묵게 되었다.
 
43
그때 견훤왕은 고려 왕의 특허로 처음으로 신검왕을 만날 기회를 얻었다.
 
44
웃칸 문이 열리고 초연히 들어오는 모양을 아버님 되는 견훤왕은 쳐다보지도 않고 한참을 그냥 머리를 수그리고 있었다.
 
45
아드님도 들어선 채 읍하고 한참을 말없이 서 있었다.
 
46
이윽고 아버님이 비로소 먼저 입을 열었다.
 
47
"네 죄를 알겠느냐?"
 
48
우렁찬 소리였다.
 
49
아드님이 대답하였다. 힘없는 작은 대답이었다.
 
50
"용서를 바랄 수도 없는 죄올시다."
 
51
또 침묵.
 
52
또 아버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
 
53
"네 패전을 보고는 그 자리에서 죽을 몸이었지만 네개 이 말 한 마디를 들려주고 싶어서 그냥 살아 기다렸다."
 
 
54
"아버님."
 
55
"자, 물러가거라, 할 말은 했다."
 
56
"아버님. 단 한 말씀."
 
57
"할 말은 벌써 했다!"
 
58
하릴이 없었다. 아드님은 그냥 초연히 아버님의 방에서 물러 나왔다. 그날 견훤왕은 저녁상도 받지 않고 그냥 물렸다. 존귀한 포로(捕虜)인 전 백제 왕 신검도 저녁상을 받지 않았다.
 
59
이튿날 아침 존귀한 포로 신검왕을 지키던 군사가 신검왕이 스스로 칼을 빼어 당신의 목숨을 끊은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서 일변 임금께 이 일을 아뢰는 일방, 상부(尙父)께도 알리려고 달려가 보매 상부 견훤왕도 자리에 누워서 고요히 잠자는 듯 그의 칠십 년 생애를 마감하였다.
 
60
백제를 재건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나왔다가 그 백제가 망한 뒤에 망케 한 책임자를 벌(罰)까지 하고는 인제는 이 세상에 할 잔무(殘務)가 없으므로 갈 세상으로 돌아간 것이었다.
 
61
이래 일천 년, 다시 백제를 재건하려는 사람도 없었고 할 필요를 느낀 사람도 없었다.
 
 
62
(〈朝光[조광]〉, 1938.5~1939.4)
【원문】삼한(三韓) 통일(統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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