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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정(樓亭) 임실군(任實郡) # 월파정
최근 3개월 조회수 : 12 (3 등급)
【향토】
(게재일: 2024.01.05. (최종: 2024.01.02. 23:50)) 
◈ 덕치 물우리 월파정(月波亭)
덕치면 물우리 섬진강변에 세워진 월파정(月波亭)은 조선식 건축양식으로 정교한 조각과 우아한 선, 화려한 단청이 주변 경관과 잘 어우러져 선경(仙境)을 빚어놓고 있다. 특히 섬진강 맑은 물이 급류로 흐르다가 바위 사이를 감돌아 월파정 아래에 이르면 소(沼)가 되어 유유자적하며, 강기슭의 기암괴석과 천 년 묵은 낙락장송이 함께 조화를 이루어 마치 한 폭의 산수화를 연산하게 하고 있다.
목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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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치 물우리 월파정(月波亭)
 
덕치면 물우리 섬진강변에 세워진 월파정(月波亭)은 조선식 건축양식으로 정교한 조각과 우아한 선, 화려한 단청이 주변 경관과 잘 어우러져 선경(仙境)을 빚어놓고 있다. 특히 섬진강 맑은 물이 급류로 흐르다가 바위 사이를 감돌아 월파정 아래에 이르면 소(沼)가 되어 유유자적하며, 강기슭의 기암괴석과 천 년 묵은 낙락장송이 함께 조화를 이루어 마치 한 폭의 산수화를 연산하게 하고 있다. 이 월파정은 1927년 덕치면 물우리에 거주하던 밀양박씨 종중 밀성군파의 후손들이 주축이 되어 선조들의 유덕을 경모하기 위하여 정각을 건립한 것으로 처음에는 월회정(月會亭)이라고 했다. 그 후 1966년 대종회에서 박씨의 중시조 계행공이 4백 년 전 전남 창평에서 이곳으로 이주했다는 것을 추모하기 위하여 그의 호를 따서 월파정(月波亭)으로 고쳐 부르고, 편액은 그 후 당시 경찰서장을 지낸 김봉관(金奉官)이 썼다. 김봉관은 진안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한학을 익혔고 석봉 고제봉(국전초대작가)으로부터 서예를 사사 받았다. 임실과 진안, 고창경찰서장을 역임한 김봉관은 행초서를 잘하여 서울, 부산, 전주 등지에서 10여 회의 개인전을 가졌고 많은 편액과 작품을 남겼다. 월파정은 10개의 돌기둥과 2개의 나무기둥으로 만들어져 있어 사실상 정자(亭子)가 아니라 누각(樓閣)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내부에는 5개의 현판이 월파정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고, 천정에는 2마리의 龍문양의 조각이 있으며, 중간에 3태극문양 둘러져있어 인근 누각 중 화려함이 넘치는 특이한 건축물로 손꼽힌다. 주위는 최근에 주차장 시설과 놀이시설 그리고 조경을 하였다. 월파정이 위치한 덕치면 물우리에는 계행공의 15대 후손들이 많이 살고 있으며 정자를 관리하고 있다.
 
 
 

1. 물우 월파정운(月波亭韻)

 
十載經營起一亭  십년 경영하여 누정을 세우고
亭因月會肇嘉名  달빛 모인 것 따다가 누정에 아름다운 이름 지었네
萬流呑盡江聲闊  만 갈래 물이 흘러가니 강물 소리 콸콸하고
十里虛明野色平  십 리 앞이 허명하며 들판도 평평하네
 
女玉叢蘭皆鳳尾  옥과도 같은 무성한 난초는 봉황의 꼬리와 같고
若堂壟墓在牛鳴  집과 같은 무덤은 소 울음소리 들릴 만한 곳에 있다네
伊川家法今遺有  이천의 가법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으니
登覽悠然孝友情  누정에 등림하면 효우의 정이 가득하네
 
우당(愚堂) 이광의(李光儀) 씀
 
 
 

2. 물우 월파정 차(次)

 
월파정운(月波亭韻)
 
雲巖江色滿亭明  운암의 강 빛 누정에 환한데
客子登臨感古情  나그네 올라서서 옛일 회고하네
中柱荒墟沙鳥集  기둥 황폐한 터에는 물새들이 모여들고
勿憂餘礎草虫鳴  근심 없는 주춧돌에는 풀벌레가 울어대네
 
却思乘月洄烏院  달뜨면 오원강 거슬로 올라갈까 하다가
且欲隨風下泰城  또 바람따라 태성으로 내려갈까 하네
愧我生平鳴似拙  내 부끄러운 일은 평생 졸렬하게 읊조리는 것이니
心營水榭老無成  마음으로 누정을 짓는다하면서도 늙어서도 이루지 못한 것일세
 
병자년 오후 간암(艮巖) 박문재(朴文在) 화답함.
 
 
 

3. 물우 월파정 월회정기(月會亭記)

 
운수(雲水)의 동쪽 고덕(高德)에 세 봉우리가 있다. 여러 산들 가운데 조종산(祖宗山)인데 굽이굽이 춤추듯이 날아들어 남쪽으로 6,7리를 내달리면 덕치면(德峙面) 물우리(勿憂里)가 된다. 마을의 이름은 예부터 물우정(勿憂亭)이 있었기 때문에 정자의 이름으로 마을의 이름이 생기게 되었다.
 
산수에 둘러싸여 갔다가 돌아오는 듯 하고439) 초목은 무성하고 토양은 비옥하며 풍속은 순박한 곳으로, 사인(士人) 박재기(朴在基)가 거처한 곳이다. 밀직군(密直君)의 후손으로 10세손 계형(戒亨)은 참판(參判)을 지냈다. 9세손 순립(順立)은 자헌대부(資憲大夫) 호조판서(戶曹判書)를 지냈다. 6세손 재영(載榮)이 바로 한림공(翰林公)이시다. 대를 이어 벼슬살이를 하였으니 얼마나 위대한가?440)
 
일찍이 이곳으로 은거하여 돌아가실 때까지 소요(逍遙)하다가 수장(壽藏)된 곳으로 번성한 자손들이 오래도록 무덤 아래 거주하였다. 고향의 고택(古宅)을 잊지 못하고441) 한 마을에 종족들이 모여 살게 되었다.442)
 
병자년 봄에서야 여러 종친들이 의논하여 무덤 근처443) 별도의 대지[別墅]를 선택하여 누정 몇 칸을 짓고 현판을 걸기를, ‘월회정(月會亭)’이라고 하였다. 규모는 매우 검약하지만 청초하고 명랑하였으니 대개 이천선생(伊川先生)의 가법(家法)에 매월 한번 종족이 모였던 것에서 그 뜻을 취하였다. 자자손손(子子孫孫) 대대로 오직 효우(孝友)해야 하니 이렇게 선조를 잊지 않고 종족들과 화목하며 천륜(天倫)을 펴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소노천(蘇老泉)444)의 보정(譜亭)과 위원외(韋員外)의 화수원(花樹園)445)처럼 그것이 이 정자를 세운 까닭이다.
 
가장 주선한 사람은 박형기(朴炯基)와 박남기(朴南基)이며 박노기(朴魯基), 박영기(朴英基)이며, 많이 힘쓴 사람은 박용삼(朴容三), 박용연(朴容然), 박용철(朴容哲), 박용홍(朴容洪)이다. 옛날에 물우정이 있었고 지금은 월회정(月會亭)이 있는데 지세가 짐짓 나은 곳이기는 하지만 이름난 대사(坮榭)와 정원의 흥폐가 이것에 있겠는가?
 
화창한 봄에 풍경 경색(景色)이 밝고 가을날 맑은 바람 불 때 이 정자에 오르라. 남쪽으로 길이길이 흐르는 오원강(烏院江)을 품고 서쪽으로 회문산의 정채(精彩)를 삼키고 북쪽으로는 백련산 높은 봉우리가 가을단풍[楓嶪]으로 바꿔 단장하면 사람들로 하여금 붉게 물게 되리라. 동쪽으로는 물고기 뛰어 오를 연못에서 때때로 솔개와 물고기의 눈에 천기(天機)를 느끼게 되리라.446) 그 사이에 몇 리에 펼쳐진 명사(明沙)에서 갈매기와 해오라기가 유요(幽窈)한 곳에서 동맹(同盟)하는 경치는 의심할 것도 없으니 호남의 한 지역의 명경(明境)이라고 할 만하다.
 
낙성된 날에 서로 돌아보며 경계하며 말하기를, ‘우리 누정이 마침내 완공되었으나 끝마치기 어려운 일이었다. 무릇 자손된 자에게 이 누정에 오르면 선인(先人)의 구묘(丘墓)를 유연하게 바라보게 될 것이며 효우(孝友)하는 마음이 유연하게 생길 것이다. 물우정이라는 이름을 더럽히지 말고 그 정성을 각자 지켜 간다면 후손들이 수리해 갈 것이니 근심하지 말라. 세월은 끝이 없는 것이니 월일회(月一會)도 무궁할 것이다.
 
무릇 박씨의 후손은 ‘효우’ 두 글자를 이어가는 것을 뜻에 두고 밤낮으로 매진하여 영원히 추모(追慕)한다면 누정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니 근심하지 말라. ‘마을에 인후한 풍속이 있는 것은 아름답다.’고 하였으니447) 진실로 사람과 땅이 서로 맞는 것이 아니겠는가? 부끄럽게도 박기보(朴基甫)가 문장이 부족한 나에게 누정의 문미(門楣)에 한 마디 써달라고 부탁했기에 사양하지 못하고 적는다.
 
무인년 동지 月下翰 완산 이씨 광의(光儀) 씀
 
 
雲水之東 有高德三峰 祖宗于羣山 透迤飛舞 南馳六七 置而爲德峙面勿憂里 里之爲名者 蓋古有勿憂亭 而因亭號以得之者也 山水縈廻爲往而復 草木叢茂 土肥而俗淳 士人朴在基居之 卽密直君之后 十世有諱戒亨官參判 九世有諱順在官資憲大夫戶曺判書 至六世有諱載榮是翰林公也 繼世簪纓何其偉哉 曾遯隱于此 逍遙終年 因爲壽藏之地 而子孫蕃衍之居壟墓之下 不忘桑梓古宅 自作一村花樹也 歲丙子春乃議及于諸族 堂斧牛鳴之地 擇其別墅 起亭數間 揭之曰月會亭 制甚約而亦復淸楚明朗矣 蓋取諸伊川先生家法 月一會合族之義也 子子孫孫 惟孝友 是則不忘祖先 雍隆宗族 敍天倫之樂事 則蘇老泉之譜亭 韋員外之花樹園是也 斯亭之起也 最幹旋者 朴炯基 南基 魯基 英基 多勞幹氣者 朴容三容然容哲容洪也 古有勿憂亭而 今有月會亭 地固勝之而 坮榭名園之興廢 固爲是乎 至若春和景明 秋宇風淸 登斯亭也 南抱烏院江之長流 西呑回文山之精彩 北有白蓮高峯變粧楓嶪 使人酣紅 東有躍潭時觀鳶魚之目動天機 中有數里明沙更無疑於鷗鷺同盟幽窈之景 不可俱狀可謂湖南一區之明境也 旣落之日 相顧以戒之曰 吾亭適成 然有終難矣 凡爲子孫者 登此亭則 先人之丘墓攸然而見之 孝友之心攸然而生矣 克底于無忝也勿憂 各守其誠則嗣心葺之也勿憂 無盡者歲月而月一會是無窮矣 凡朴氏之後昆者 以孝友二字 爲繼述之義 而夙夜征邁 永世追慕 則亭之永世不朽 亦勿憂也 里仁爲美寔地人之相孚歟 愧基甫請余不文而書一言于亭之楣 故辭不獲已而記
 
戊寅 冬至月 下翰 完山 李光儀 稿
 
 
 

4. 물우 월파정 원운(月波亭 原韻)

 
回文山曲大江橫  회문산 골짜기에 큰 강 비꼈는데
一笠孤亭鏡裏明  삿갓만 한 외로운 누정 거울 속에 환하네
夏日軒舍氷雪氣  여름날에도 누정에는 빙설의 기운 어려있고
晴天灘送雨雷聲  맑은 하늘에도 개울에서 우레 소리 보내네
 
榟桑世久猶餘蔭  가래나무 뽕나무는 오래도록 후대에 음덕을 끼쳤고
花査春深自發榮  꽃과 풀명자나무는 봄 깊어지면 자연 만개한다네
此築肯爲遊賞計  이 누정 축조한 것은 건하여 노닐고 구경할 계획을 한 것은
亶由裕後慕先情  후손에 남겨 선대를 추모하려는 뜻에서 비롯했노라
 
병자 계하에 후손 박대근(朴大根), 원재기(元在基) 삼가 씀.
 
 
 

 
각주
439) 당(唐)나라 한유(韓愈)가 태항산(太行山) 남쪽의 반곡으로 돌아가는 벗 이원(李愿)을 전별하는 뜻에서 지은 〈송이원귀반곡서(送李愿歸盤谷序)〉란 글에서 그곳의 낙토(樂土)임을 누누히 말하고 그곳의 지형을 말하면서 “휘감아 돌고 굽었으니 갔다가 돌아오는 것 같다.[繚而曲 如往而復]” 하였다. 《古文眞寶 後集》
440) 잠영(簪纓) : 양반이나 지위가 높은 벼슬아치 또는 그 지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높은 벼슬아치들이 잠영을 쓴 데에서 유래하였다.
441) 원문의 상재(桑梓)는 뽕나무와 가래나무를 뜻하는데, 《시경》〈소아(小雅) 소변(小弁)〉에 “어버이가 심어 놓으신 뽕나무와 가래나무도, 반드시 공경해야 하는 법이다. 그런데 하물며 우러러 뵐 분으로는 아버지 말고 다른 사람이 없으며, 의지할 분으로는 어머니 말고 다른 사람이 없는 데야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維桑與梓 必恭敬止 靡瞻匪父 靡依匪母〕”라는 말이 나온다
442) 원문의 花樹는 중국 당나라 위장(韋莊)이 섬서성 장안현의 위곡의 명승지 화수 아래에서 친족을 모아놓고 술을 마신 고사에서 나왔으며, 이에 대해 잠삼(岑參)의 ‘위원외화수가’ 시에서 화수회라는 말이 생겼다.
443) 원문의 우명지지(牛鳴之地)는 큰 소 한 마리의 울음이 미치는 거리로 일우후지(一牛喉地) 또는 일우명지(一牛鳴地)라 하며, 대략 5리쯤의 거리를 뜻한다.
444) 소노천(蘇老泉 소식(蘇軾)의 부친 소순(蘇洵)으로, 노천은 그의 호임)
445) 화수위가(花樹韋家) : 당(唐)나라 잠삼(岑參)의 〈위원외화수가(韋員外花樹歌)〉라는 시에 “그대의 집 형제를 당할 수 없나니 열경과 어사 상서랑이 즐비하구나. 조회에서 돌아와서는 늘 꽃나무 아래 모이나니, 꽃이 옥 항아리에 떨어져 봄술이 향기로워라.〔唐家兄弟不可當 列卿御使尙書郞 朝回花底恒會客 花撲玉缸春酒香〕” 한 데서 유래한 것으로, 친족끼리의 모임을 뜻한다.
446) 연어(鳶魚) : 솔개와 물고기로, 《중용장구》에 “《시경》에서 ‘솔개는 하늘 높이 날고 물고기는 못에서 뛰논다.〔鳶飛戾天 魚躍于淵〕’ 하였으니, 상하(上下)에 이치가 밝게 드러남을 말한 것이다.” 하였는데, 이에 대해 정자(程子)는 “이 1절(節)은 자사(子思)가 끽긴(喫緊)하게 사람을 위해 가르쳐 준 곳으로, 활발발(活潑潑)하다.” 하였다.
447) 원문의 ‘里仁爲美’은 『논어』 〈이인(里仁)〉에 “부모가 계실 때에는 멀리 나가서 노닐지 말 것이요, 나가서 놀더라도 반드시 일정한 처소가 있어야 한다.〔父母在 不遠遊 遊必有方〕”라는 공자의 말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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