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메인화면 (다빈치!지식놀이터) ::【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경기체가  
경기체가
다큐먼트소개 자료실
지식지도
작업내역
2019년 6월
2019년 6월 23일
화전별곡(花田別曲)
화산별곡(華山別曲)
한림 별곡(翰林別曲)
2019년 6월 22일
태평곡(太平曲)
죽계별곡(竹溪別曲)
육현가 (六賢歌)
오륜가(五倫歌)
연형제곡(宴兄弟曲)
엄연곡(儼然曲)
안양찬(安養讚)
서방가(西方歌)
상대별곡(霜臺別曲)
불우헌곡(不憂軒曲)
미타찬(彌陀讚)
독락팔곡(獨樂八曲)
도동곡(道東曲)
기우목동가 (騎牛牧童歌)
2019년 6월 21일
금성별곡(錦城別曲)
관동별곡(關東別曲)
가성덕(假聖德)
about 경기체가

▣ 경기체가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2019.06.22. 22:27 (2019.06.22. 22:27)

【학습】미타찬(彌陀讚)

조선 초기에 기화(己和)가 지은 경기체가. ≪함허당어록 涵虛堂語錄≫에 수록되어 있다. 미래불(未來佛)인 아미타불을 찬양하여, 서방정토에 들고자 함이 창작동기이다.
제일 종진기화
보명공 진정계 본무신토
위중생 흥비원 방유은현
아등중생 장재미도 무소의귀
엄토현형 최희유
시칙명위 환주장엄 재창
방편접인
 
제이 수기현상
자수용 타수용 자타수용
대화신 소화신 삼종화신
여시신운 훈현자재 구경원만
보응무방 역희유
시칙명위 대자비부 재창
수류섭화
 
제삼 도상생신
대비왕 대자부 아미타불
정상상 육계상 무진상호
일일상호 방무량광 화무량불
개오중생 역희유
십화장해 대인상호 재창
첨개앙모
 
제사 문명감화
아미타 사십팔 광대원왕
일일위 도중생 성감십방
인여시원 이성정각 현주안양
여원도생 역희유
광대원력 평등요익 재창
문개감화
 
제오 잠칭개익
봉십선 지오계 유미면고
범십악 간오역 응타무간
잠칭불호 죄무경중 개령원리
영출삼계 역희유
아미타불 대비원력 재창
개득해탈
 
제륙 공소익대
불광명 불수명 불공덕해
역삼기 수만행 방시구경
단념불호 수공천심 실령기승
수기작불 역희유
아미타불 대서원왕 재창
십념기승
 
제칠 수기보접
피불유 구련대 화현무량
염불인 수고하 접향기중
여시방편 여시접인 실령성불
도생무염 역희유
아미타불 대방편력 재창
구품초생
 
제팔 초방독존
과거불 현재불 무량무변
사방여 상하방 불역무수
어차제불 특칭미타 이위제일
여시고승 역희유
아미타불 대위덕력 재창
고승무비
 
제구 권념공고
만삼천 시칠보 공이무량
경화령 증사과 덕역무변
권인념불 공덕승피 불설분명
여시덕화 역희유
권인자념 공행만족 재창
직등상품
 
제십 고초원증
대웅맹 대세지 아미타불
무량광 무량수 무량공덕
세세간래 인인분상 각자구족
불선원증 역희유
유심정토 자성미타 재창
여불공증
 

 

1. 요점정리

• 형식 : 경기체가
• 연대 : 조선 초기
• 저자 : 기화(승려)
• 주제 : 미래불인 아미타불을 찬양
• 의의 : 이 작품은 숭유억불의 탄압 속에서 아미타불을찬양하였고, 경기체가의 작자층에 승려도 포함되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2. 내용연구

구성
 
1장
아미타불이 중생에게 여러 방편으로다가와서 제도함
 
2장
아미타불이 교화대상에 따라 가르치고인도함
 
3장
중생이 아미타불의 모든 점을 우러러흠모함
 
4장
중생이 아미타불의 대원에 감화됨
 
5장
중생 모두가 해탈을 얻게 됨
 
6장
중생이 명호를 열번만 염해도 극락에왕생함
 
7장
아미타불의 힘이 중생을 구품연화대로왕생하게 함
 
8장
아미타불의 큰덕의 힘이 매우 커서 비교되는것이 없음
 
9장
아미타불이 중생에게 염불을 권하여구품연화대상품에 오르게 함
 
10장
부처와 같이 중생이 함께 정토를 증득함을각각 찬양
 
형식상 '위 ……경기 어떠하니고'가 없으나 다른부분은 경기체가의 정격을 따랐다.
 
第一 從眞起化
普明空 眞淨界 本無身土
爲衆生 興悲願 方有隱現
我等衆生 長在迷途 無所依歸
嚴土現形 最希有
是則名爲 幻住莊嚴 再唱
方便接引
 
第二 隨機現相
自受用 他受用 自他受用
大化身 小化身 三種化身
如是身雲 熏現自在 究竟圓滿
普應無方 亦希有
是則名爲 大慈悲父 再唱
隨類攝化
 
第三 覩相生身
大悲王 大慈父 阿彌陀佛
頂上相 肉 相 無盡相好
一一相好 放無量光 化無量佛
開悟衆生 亦希有
十華藏海 大人相好 再唱
瞻皆仰慕
 
第四 聞名感化
阿彌陀 四十八 廣大願往
一一爲 度衆生 誠感十方
因如是願 已成正覺 現住安養
如願度生 亦希有
廣大願力 平等饒益 再唱
聞皆感化
 
第五 暫稱皆益
奉十善 持五戒 猶未免苦
犯十惡 干五逆 應墮無間
暫稱佛號 罪無輕重 皆令遠離
永出三界 亦希有
阿彌陀佛 大悲願力 再唱
皆得解脫
 
第六 功小益大
佛光明 佛壽命 佛功德海
歷三祇 修萬行 方始究竟
但念佛號 隨功淺深 悉令起昇
授記作佛 亦希有
阿彌陀佛 大誓願王 再唱
十念起昇
 
第七 隨機普接
彼佛有 九蓮臺 化現無量
念佛人 隨高下 接向其中
如是方便 如是接人 悉令成佛
度生無厭 亦希有
阿彌陀佛 大方便力 再唱
九品超生
 
第八 超方獨尊
過去佛 現在佛 無量無邊
四方與 上下方 佛亦無數
於此諸佛 特稱彌陀 而爲第一
如是高勝 亦希有
阿彌陀佛 大威德力 再唱
高勝無比
 
第九 勸念功高
滿三千 施七寶 功已無量
更化令 證四果 德亦無邊
勸人念佛 功德勝彼 佛說分明
如是德化 亦希有
勸人自念 功行滿足 再唱
直登上品
 
第十 高超圓證
大雄猛 大勢至 阿彌陀佛
無量光 無量壽 無量功德
細細看來 人人分上 各自具足
佛先圓證 亦希有
唯心淨土 自性彌陀 再唱
如佛共證
 

3. 이해와감상

조선 초기에 기화(己和)가 지은 경기체가. ≪함허당어록 涵虛堂語錄≫에 수록되어 있다. 미래불(未來佛)인 아미타불을 찬양하여, 서방정토에 들고자 함이 창작동기이다.
전체 10장으로 되어 있는데, 제1장은 아미타불이 중생에게 여러 방편으로 다가와서 제도함을, 제2장은 아미타불이 교화대상에 따라 가르치고 인도함을, 제3장은 중생이 아미타불의 모든 점을 우러러 흠모함을, 제4장은 중생이 아미타불의 대원(大願)에 감화됨을, 제5장은 중생 모두가 해탈을 얻게 됨을, 제6장은 중생이 명호를 열번만 염해도 극락에 왕생함을, 제7장은 아미타불의 힘이 중생을 구품연화대로 왕생하게 함을, 제8장은 아미타불의 큰 덕의 힘이 매우 커서 비교되는 것이 없음을, 제9장은 아미타불이 중생에게 염불을 권하여 구품연화대상품에 오르게 함을, 제10장은 부처와 같이 중생이 함께 정토(淨土)를 증득(證得)함을 각각 찬양하고 있다.
형식상 ‘위······ 경기어떠하니잇고’가 없으나 다른 부분은 경기체가의 정격(定格)을 따랐다. 숭유억불의 탄압 속에서 아미타불을 찬양하였고, 경기체가의 작자층에 승려도 포함된다는 점이 주목되는 작품이다.
 
≪참고문헌≫ 涵虛堂語錄, 涵虛堂攷(金倉圭, 東洋文化 6·7, 1968), 別曲體歌硏究(金倉圭, 국어교육연구 3, 1971).
 

4. 심화자료

기화(己和)
 
1376(우왕 2)∼1433(세종 15). 조선 초기의 승려. 배불정책 속에서 불교를 수호한 고승이다. 성은 유씨(劉氏). 호는 득통(得通), 당호는 함허(涵虛). 처음 법명은 수이(守伊)이며, 처음 법호는 무준(無準)이다.
충청북도 충주 출신. 아버지는 전객시사(典客寺事) 청(聽)이고, 어머니는 방씨(方氏)이다. 미륵보살에게 기도하여 태어났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성균관에 입학하여 두각을 드러냈으며, 21세 때 친구의 죽음을 보고 출가의 뜻을 굳혔다. 1396년(태조 5) 관악산 의상암(義湘庵)에 들어가서 삭발하였다.
1397년에 회암사(檜巖寺)로 자초(自超)를 찾아가 법요(法要)를 들은 뒤 여러 산을 두루 편력하였다. 1404년(태종 4)다시 회암사로 돌아와 정좌(靜坐)하고 수행을 시작하여 크게 깨우쳤다.
그 뒤, 1406년 공덕산(功德山) 대승사(大乘寺)에 가서 4년 동안 ≪반야경≫을 세 차례 설했고, 1410년에는 개성의 천마산 관음굴(觀音窟)에서 선을 크게 진작하였다. 1411년부터 절을 중수하는 한편, 모여드는 승속(僧俗)들을 조사(祖師)의 선풍(禪風)에 입각하여 지도하였다.
1414년 평산(平山)의 자모산(慈母山) 연봉사(烟峯寺)에 작은 방을 얻어 함허당(涵虛堂)이라 명명하고, 그 곳에 머물면서 세 차례 ≪금강경오가해설의 金剛經五家解說誼≫를 강의하였다.
1420년(세종 2) 오대산에 들어가 오대의 여러 성인들에게 공양하고, 영감암(靈鑑庵)에 있는 나옹(懶翁)의 진영(眞影)에 제사한 뒤 그 암자에서 잘 때, 꿈에 어떤 신승(神僧)이 나타나 이름은 기화, 호는 득통으로 지어 주어 이후 그것을 사용하였다.
1421년 세종의 청에 의하여 개성 대자사(大慈寺)에 머물면서 왕의 어머니를 위해 명복을 빌고, 왕과 신하들을 위해 설법하였다. 1424년 대자사에서 물러나 길상산(吉祥山)·공덕산(功德山)·운악산(雲岳山) 등을 편력하면서 일승(一乘)의 진리를 설파하였다. 1431년 문경의 희양산(曦陽山) 봉암사(鳳巖寺)로 가서 퇴락한 절을 크게 중수하고 그 곳에 머물렀다.
문인으로 문수(文秀)·학미(學眉)·달명(達明)·지생(智生)·해수(海修)·도연(道然)·윤오(允悟) 등이 있다. 1433년 “죽음에 이르러 눈을 들어보니 시방(十方)이 벽락(碧落) 하나 없는 데도 길이 있으니 서방극락이다.”라는 임종게를 남기고 입적하였다. 봉암사에 비가 있고 가평 현등사(懸燈寺)에 부도가 있다.
 
〔업 적〕
 
그는 자초의 법을 이은 선가(禪家)임에는 틀림없으나 스승과는 달리 교(敎)에 대한 많은 저술을 남겼고, 사상 또한 교학적(敎學的)인 경향을 강하게 풍기고 있다.
그의 선사상(禪思想)에는 현실생활과 일상적인 생활을 수용하고 포용하는 특징이 있는데, 이러한 사상적 경향은 조선 초기 유학자들이 배불을 주창하면서 ‘허무적멸지도(虛無寂滅之道)’라고 비판한 것을 반박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입장은 ≪현정론 顯正論≫에 잘 나타나 있다.
또한 그는 불교와 유교의 회통(會通) 뿐 아니라 도교까지 포함한 삼교일치를 제창하였다. 이 삼교일치의 사상은 신라 말 최치원(崔致遠)의 사상에서도 나타나지만 본격적인 것은 그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그의 삼교일치론은 송나라 계숭(契嵩)이 지은 ≪보교편 輔敎編≫과 비슷한 점이 있지만, 유교측의 강력한 배불론에 대한 호불이라고 하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주장된 것이다.
그는 종단폐합과 사사혁거(寺社革去) 및 사전노비(寺田奴婢) 몰수 등으로 조선 초기의 배불정책이 극에 이르렀을 때, 불교의 정법(正法)과 그 이치를 밝힘으로써 유학의 불교비판의 오류를 시정시키고자 노력한 고승이었다.
 
〔저 술〕
 
저서로는 ≪원각경소 圓覺經疏≫ 3권, ≪금강경오가해설의≫ 2권 1책, ≪윤관 綸貫≫ 1권, ≪함허화상어록 涵虛和尙語錄≫ 1권이 전하여진다. 그 밖에도 ≪반야참문 般若懺文≫ 1권이 있다고 하나 전하여지지 않는다.
 
≪참고문헌≫ 涵虛和尙語錄, 朝鮮佛敎通史(李能和, 新文館, 1918), 李朝佛敎(高橋亨, 寶文館, 1929), 韓國歷代高僧傳(金東華, 三星文化財團, 1973), 韓國佛敎撰述文獻總錄(東國大學校佛敎文化硏究所, 1976).(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작성】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페이스북 공유하기 트위터 공유하기
로그인 후 구독 가능
구독자수 : 0
▣ 참조정보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 정보 : 학습 (보통)
▣ 참조목록
◈ 소유
◈ 참조
 
 
 
©2004 General Libraries

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5년 7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