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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의 목가 ◈
◇ 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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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 10 ~
이효석
1
거리의 목가
 
2
11
 
 
3
오후의 강가는 고요하였으나 그러나 또 이날같이 맑은 강물과 찬바람과 신선한 초목이 민수의 마음을 괴롭힌 적은 드물었다. 흔하게 흐르는 물과 강기슭을 스쳐 내리는 바람이 무거운 마음을 개운하게 덜어줄 줄만 알았던 것이 도리어 효과는 반대여서 나부끼는 풀잎 하나까지도 그의 마음속을 갈피갈피 헤치고 들어 생각을 더하게 하였다.
 
4
그날 밤 요정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함정에 들어온 영옥을 싸고 윤주와의 사이에 무서운 계책을 썼던 그 저주의 밤이 있은 후 며칠 동안의 낮과 밤을 민수는 무거운 번민 속에서 지내왔다. 거리에 나가기조차를 피하고 집안에서 궁싯거리다가 견디지 못하고 뛰어나온 것이 날마다 교외의 강가였다. 그러나 아무리 바람을 맞아도 한번 저지른 마음의 짐이 좀체 덜어지지는 않았다.
 
5
죄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그는 진심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다만 가벼운 입으로 비판해 보고는 수월한 것으로 여겨왔을 뿐이었다. 무엇이 죄이냐는 둥 ── 시대를 따라 죄의 의식이 다르다는 둥 ── 입으로 지껄이기만 할 때에는 퍽도 수월한 것이었으나 일단 실감으로 그것을 느낄 때에는 무섭고 무겁고 드세임을 깨달았다.
 
6
죄는 죄인 것이다. 죄를 결정하는 저울과 자는 다른 아무것도 아니요 참으로 마음인 것이다. 제아무리 이치를 캐고 장담을 해보았어도 결국 마음이 무섭고 무거워질 때 그것이 바로 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마음의 무겁고 음산한 짐을 덜어줄 사람은 다른 아무도 아니라 참으로 자기 자신임을 깨달았다. 그 의지할 곳 없는 외로운 생각이 두 겹으로 마음을 눌렀다. 죄진 사람의 설레고 음산한 ── 그것이 요사이의 민수의 표정이었다.
 
7
── 그만 정도의 악마두 되어 보지 못한단 말인가.
 
8
물론 이렇게도 생각은 해보았다. 당초에 윤주와 계약을 맺을 때에는 제법 악마의 역할을 호돌스럽게 할 수 잇을 것 같았고 현대에 있어서 악마 노릇을 함에는 성인 노릇을 하는 이상의 자랑이 있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것이 일단 일이 저질러놓고 볼 때에는 오산이었음을 알고 예측하지 못했던 괴롬이 가위같이 육신을 누르는 것이다. 악마 노릇을 함은 성인 노릇을 하는 것과 똑같은 정도로 어려운 일이요, 여간내기가 아니고는 감히 그 노릇을 해낼 장사가 없다는 것을 또렷이 깨달았다. 줄을 타다가 미끄러진 광대와도 같은 희극의 인상을 악마가 되려다가 미끄러진 자신의 꼴에서 보았다.
 
9
그렇게 생각할수록에 민수는 자신의 옹졸한 꼴에 비겨 윤주의 배포 유한 태도가 장하게도 우러러 보이고 밉살스럽게도 느껴졌다. 체질로나 기질로나 애초부터 맞수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자기와는 반대로 악마의 소질을 처음부터 갖추어 있었던 윤주임이 틀림없는 것이 차례진 무서운 역할을 늠실하게 감당하였을 뿐이 안라 오늘은 그 보수로서의 민수와의 계약의 조건을 이행하러 강으로 나온다는 약속이었다.
 
10
── 악마일까, 영웅일까.
 
11
어처구니가 없어 민수는 속으로 중얼거려 보면서 윤주의 위인을 알 수 없는 괴물로 생각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와 겨루다가 딴죽걸이로 보기좋게 쓰러진 자신의 꼴이 한창 가엾게 떠오른다 너무도 강감한 것이 괴로워 돌을 집어올려 강물에 던져 본다. 풍덩 소리가 나면 파문이 일고 강 속에 길게 뻗친 자신의 그림자가 깨트려진다. 파문이 사라지자 그림자는 제자리에 모여들었다가 돌을 던지며 다시 흩어지곤 한다. 돌을 수없이 던지는 동안에 물속이 어지럽게 수선거리다가 맑게 가라앉았을 때 민수는 문득 자기 그림자 아닌 또 하나 다른 그림자를 물속에 발견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윤주가와 있었다. 민수는 홧김에 또 한번 돌을 집어 물속의 윤주를 힘껏 깨트려 버리고는 돌아서서 언덕 위로 뛰어올랐다.
 
12
“자네게 할말도 많네만. ── 감사하다고 하면 옳을는지, 어쩌면 옳을는 지.”
 
13
윤주가 어슬렁어슬렁 뒤를 따르는 것을 알고 민수는 한층 급스럽게 발을 떼었다.
 
14
“하긴 입으로만 감사하려는 것이 아니네. 조약을 조약대로 이행해준 자네가 신사라면 나두 사내대장부 간대루 일구이언을 하겠나. 약속은 약속대로 지키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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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가 풀 위에 덜석 주저앉으니 윤주도 덩달아 그의 옆에 자리를 잡는다.
 
16
“그 눈치 누가 모르겠나만 자네겐 아직두 감상이니 무어니 하는 귀찮은 게 남아 있는 모양이야. 내 눈으로 보면 그게 다 아직두 어린 탓 그다지 괴로워 할 법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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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내서 불을 붙여 물고는,
 
18
“고지식한 자네에게 비하면 난 아마 악한 중에서두 상악한인지는 모르겠으나 감상은커녕 마음속에 손톱만큼의 심책두 안 느끼니 대체 웬 까닭인가. 모든 것이 그저 있을 대로 있었고 될 대로 된 것같이 밖엔 생각되지 않네. 그다지 야단을 칠만한 큰일두 아무것두 아니구 넓은 세상 그 어느 구석에서 꽃 한 송이가 깜박한 것쯤 밖엔 생각되지 않으니.”
 
19
“암, 악한이구 말구. 자네 같은 위인을 알게 된 것이 내겐 일생의 불행이 었었네. 일대의 실책이었었네.”
 
20
민수는 입에 고인 신물이래두 뱉어 버리는 듯 어세가 급스럽다.
 
21
“그러나 당초에 자네의 제의로부터 시작된 일이었지 내가 시킨 일인가. 자네로선 그만하면 복수가 됐겠구 내가 그 복수를 사서 한 셈이니 벼르던 복수를 한 이상에 무슨 더 잔소리가. 그날 밤의 자네의 행동을 칭찬하러 왔지 그 우울한 꼴 보러 여기까지 나온 줄 아나.”
 
22
“딴은 악한의 배짱은 그만큼은 서야 되렷다. 악한과 씨름을 한댔자 펀펀히 질 뿐이지 내야 밑천이나 찾겠나.”
 
23
민수는 벌떡 자리를 일어서면서 한 움큼 뜯어 쥔 풀잎을 윤주의 면상에 던졌다.
 
24
“쓸데없이 흥분하지 말게. 아직 판이 다 끝난 것은 아니야. 내 자네에게 갚을 게 있으니 말이네. 약속한 문예부장의 자리 ── 언제든지 그것을 자네에게 물려줄 마음의 준비가 내게 있네. 자네 원하는 때 언제든지.”
 
25
“그래두 조롱인가. 무엇이 부족해서 두구두구 사람의 맘을 성가시게.”
 
26
소리가 절걱 나게 윤주의 볼을 쥐어박고 민수는 그래도 화를 못 이겨 도야지 목심 같은 그의 목을 팔에 걸었다.
 
27
“기어쿠 쌈을 하지는 셈이지. 어쨌다구 엉뚱하게 내게 화풀이야. 그까짓 분은 강물에나 띄워 버리잖구.”
 
28
팔에 목을 감기어 말소리조차 끊어지면서 한참 동안이나 꼼짝부득이던 윤주였으나 문득 차력이나 한 듯 힘을 쓰면서 몸을 일으키는 바람에 민수의 몸이 꺼꾸로 곤두서며 두 몸이 한데 휩쓸려 볼 동안에 언덕을 굴러 내려갔다.
 
29
한참 동안 모양들은 안보이고 깔리거니 누르거니 두 몸이 한데 엉긴채 윽박아 대는 소리만이 고요한 강가에 세차게 들렸다. 유유한 강물과 나부끼는 초목들은 당초부터 순간순간에 명멸하는 인간사에는 관심을 안 가진 듯 천연스럽게 제 몫만을 보고 있는 그 속에서 그 유유한 자연에 거역이래도 해보려는 듯이 뛰어나게 두 사람의 기운은 세찼다. 두 몸은 떨어졌다 어울렸다 하면서 강기슭으로 밀려나갔다. 윤주의 몸은 허울만 클 뿐 민수에게 깔리기가 일쑤였다. 목을 눌리우면서 간신히 토막토막의 말소리를 자아냈다.
 
30
“……무슨 까닭에 이 짓인지를 다 안다. 아직까지두 영옥을 못 잊어서 그러지. 복수란 얼토당토않은 몽상이었어. 내가 사랑을 사양한 것이 얼마나 원통한가. 더 좀 둬 두구 지긋지긋 정성껏 사랑을 구해 볼껄. 자네 맘속 다 들여다보네.”
 
31
힘을 불끈 써서 몸을 세우고 민수를 눕히려다가 다시 됩데 깔리고야 말았다. 이제는 벌써 전신을 맞을 대로 맞아 기운도 어지간히 쇠진하였었다. 반대로 민수는 더욱 생기가 팔팔하여지고 기운을 더하여 갔다.
 
32
“난 왜 그리 경솔하였던지 모른다. 너같은 악마와 애초에 쓸데없는 농을 건 것이 내 잘못이었지. 죽어두 이 원한 풀어질 성싶지 않다. 고약한 것, 어떡하면 모든 것이 제대로 돌아설까.”
 
33
“그만두세. 그만하면 자네가 이겼네. 내가 이긴 줄 알았으나 결국 겉뿐이구 정말 이긴 건 자네네. 마음으로 이겼네. 사랑에 이겼네. 나만 결국 참패네……”
 
34
손을 모고 빌면서 발을 구른 서슬에 윤주는 간신히 몸을 빼치고 민수의 팔을 벗어났다. 민수가 쓰러져 있는 틈을 타서 다시 더 겨를 염도 못하고 허둥허둥 언덕을 올라갔다. 민수가 몸을 일으켜 가지고 뒤를 따르려 할때에는 벌써 도망의 자세를 하고 쏜살같이 언덕 위를 달아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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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먼데루 갔다 오려네. 가서 생각해 보겠네. 오늘의 쌈은 이것으로 헤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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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을 가다니 비겁한 것. 잠깐만 참게, 잠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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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따라오지 말어. 자네가 이겼달 밖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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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 달라고 숨이 차게 줄행랑을 놓는 윤주의 꼴을 우습게 여기면서 뒤를 쫓던 민수는 별안간 그 꼴이 가엾게 보여져서 도중에서 걸음을 늦추어 버리고 말았다. 도망가는 참패병의 뒤를 굳이 쫓을 것은 없다고 생각한 까닭이다. 두 사람 싸움에서 이긴 것은 확실히 자기편임을 느끼면서 민수는 밭은 숨을 쉬면서도 가슴을 내밀고 거리로 들어가는 교외의 길을 자랑스럽게 걸었다.
 
39
가쁘면서도 그 길로 민수는 순도를 찾았다. 내친 걸음에 그에게 대한 무거운 감정마저 정리해 버리자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순도의 태도는 엽렵하였고 국면은 의외에도 예측치 아니한 방향으로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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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게 할말도 많네만 ──”
 
41
서름서름한 사이였으나 민수는 배짱을 세우고 속을 털어 보일 작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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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긴치 않게 눈앞에 어른거려. 아예 꼴두 보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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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마디에 퉁명스런 호통이었다.
 
44
“내가 지금 얼마나 뉘우치고 있다는 것을 알면 자네 생각도 달러지리. 무엇 하러 이렇게 구구하게 자네게까지 오겠나, 마음속이나 알아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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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를 부드럽히며 굽혀도 보았으나 순도의 기색은 여일하였다.
 
46
“도대체 꼴이 보기 싫어. 생쥐같이 꾀로만 살아가는 그 꼬락서니가 처음부터 보기 싫었다. 나쁜 짓들은 도맡아 놓고 해감직한 세상에서두 가증한 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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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 받으러 온 게 아니다. 와준 것만 고맙다구 해라.”
 
48
당초부터 어울리지 않는 말에 민수도 화가 버럭 나서 그만 마루를 내려서려 할 때 순도의 손이 번개같이 날아오며 볼에 불이 번쩍 났다.
 
49
“사람을 조롱하러 왔나 이 녀석이.”
 
50
몸을 피하려 하였으나 미처 뺄 새도 없이 뒤에서 덮치는 순도의 팔에 전신을 감기워 버렸다. 싸움이로구나 하고 느끼자 민수는 문득 강가에서 자기가 윤주에게 한 바로 그 공격의 시늉을 이제 꺼꾸로 순도에게서 당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별수없이 뱃심을 정하고는 힘을 쓰면서 몸을 일으키는 바람에 순도의 몸이 곤두서며 두 몸은 한데 휩쓸려 뜰 아래로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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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노여워할 것이 없는 것이 뭐니뭐니해두 자네가 행복자이네. 영옥의 사랑을 완전히 차지한 건 자네뿐이니 우리는 결국 헛물만 켜면서 가장자리로만 빙글빙글 돌아댄긴 셈야.”
 
52
“쓸데없는 걱정은 그만두구. ── 저질러 논 흠집을 어떻게 도로 바로잡아 줄 테냐 말이다.”
 
53
순도의 팔팔한 기운은 박세고 벌써 두 번째의 싸움이라 민수는 기진한 눈치가 완연하였다. 힘이 부치는데다가 도무지 악이 나지 않고 흥이 솟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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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부터 싸움의 산수는 기울었던 것이다. 날아오는 주먹을 일일이 막아내기가 귀찮고 몸 어느 구석이 마치 금시에 신경이나 빠진 듯이도 둔해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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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두세. 때리려거든 얼마든지 맞기는 하겠네만 더 싸우지 않아두 승패는 이미 결정된 것이네. 자네가 이겼네. 사랑에두 싸움에두 난 참패야……”
 
56
간신히 몸을 뺐을 때에 날쌔게 일어서면서 달려드는 순도의 가슴을 힘차게 지르니 무르게도 쓰러져 버린다. 더 싸울 필요도 없었거니와 노곤하고 귀찮은 마음에 그 틈을 타서 민수는 대문을 나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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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을 가다니 비겁한 것.”
 
58
뒤미처 순도가 쫓아 나오는 것을 보고 민수는 천연스럽게 하려다가 귀찮은 마음에 자연 빨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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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아오지 말게. 자네가 이겼달 밖엔.”
 
60
알고 보니 좇아오는 순도의 앞에서 자기는 어느결엔지 달아나고 있는 것이었다. 부리나케 뛰는 동안에 숨조차 막혀졌다. 숨차게 도망가는 자기의 꼴 ── 민수의 머리 속에는 문득 강가에서 자기에게 쫓기우는 윤주의 꼴이 번개같이 떠오르며 그 꼴이 흡사 지금의 자기의 꼴임을 느꼈다. 윤주와의 싸움에서는 자기가 이겼다고 생각되었으나 이제 순도와 싸움에서 완전히 참패를 당한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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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것이 자기가 범한 허물을 지워 주는 보상이 된다면 또한 원한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부끄럼도 없이 정신없이 길을 달리는 것이었다.
【원문】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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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효석(李孝石) [저자]
 
  여성(女性)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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