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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의 목가 ◈
◇ 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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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 10 ~
이효석
1
거리의 목가
 
2
9
 
 
3
영옥이 명호와 옥주의 결혼식에 참례한 것은 교외에서 어설프게 작별하게 된 순도에게 대한 일종의 심술인 셈이었다. 보라는 듯이 보내온 청첩을 받았다고는 하더라도 굳이 출석할 필요는 없었고 아니꼬운 마음에 도리어 싫은 생각도 들었으나 부러 고집을 피우려는 심사로 몸단장까지를 가뜬하게 한 것이었다.
 
4
결혼식도 유달리 야단스럽기는 하였다. 음악협회 일동의 축하의 합창이 있었다. 성스러운 합창소리가 장내를 더한층 높게 보이고 엄숙하게 가라앉혔다. 음악 속에서는 신랑과 신부의 자태도 한층 엄연하게 보이는 것이었다.
 
5
영옥도 지난날에 꿈결 같은 속에서 몸으로 한번 꺾어본 광경이언만 떨어져서 그것을 방관할 때에는 또 다른 감상이 솟았다. 이미 헤적거려 본 육체요 헤벌어진 마음인지도 모르건만 단지 예복으로 단장하고 면사포로 얼굴을 가리웠을 뿐으로 그렇게도 엄숙하고 단정한 것으로 보이는 것일까. 그 한 쌍은 마치 주위 사람들과는 동떨어져서 세상에서 특별히 선택된 신령스런 한 쌍과도 같이 보였다.
 
6
결혼식이란 결국 예복과 면사포로 어마어마하게 무장하고 세상 사람에게 장엄한 인상을 주는 일종의 시위운동일는지도 모른다. 옛사람이 예식이라는 것을 꾸며냈을 때에는 으레 그런 뜻에서 나온 것이겠지만 예복의 우상에서 벗어난 신랑과 신부의 다음날부터의 누그러진 가정생활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사람의 하는 짓이 도대체 야단스럽고 주체스럽게만 여겨져서 영옥은 아닌 때 생각이 자꾸 비판적으로만 돌아갔다.
 
7
그러나 어떻든 의젓한 두 사람의 자태에 비길 때 그 외 사람들은 모두 금줄을 친 테두리 밖 사람 같이만 보였고 더구나 자기의 자태는 외모로 나 마음으로나 너무도 초라한 것으로 느껴졌다. 안경을 쓴 옥주의 야무러진 얼굴이 한층 자랑스럽게 보이고 가슴속에 갈피갈피의 비밀을 감추었을 명호의 태도가 능청스럽고 잠잖게 보였다. 모르는 숲 속에 외롭게 섞여서 두 사람을 바라보기가 쓸쓸하여지면서 자신의 꼴이 새삼스럽게 내려다보이곤 하였다.
 
8
“왔었구먼.”
 
9
등뒤에서 귀익은 목소리 들린 것이 다행이었다. 애란이었다.
 
10
“왜 이런 데 숨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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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무의 목소리를 반갑게 여기면서 영옥은 그의 손을 붙들었다.
 
12
“── 남의 틈에 숨어서 결혼식을 보는 것같이 초라한 꼴은 없는데.”
 
13
“눈에 뜨이는 건 더 창피할 것 같애서.”
 
14
영옥은 픽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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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두 명호의 요량으론 영옥이 오늘의 주변일 듯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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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란도 웃음으로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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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꼬는 요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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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속을 뉘 알게. 저렇게 나란히 선 것을 보면 세상에는 저 둘밖엔 없는 것같이 정답고 평화롭게 보이지. 그러나 알고 보면 오늘 이 시간까지 두 둘 사이에 옥신각신이 삐지 않았다나. 영옥이 이름두 두 사람 입에 안 올랐을 줄 아나.”
 
19
“그래서 꼴 좀 봐달라구 청첩을 보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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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두 옥주의 짓 같애. 내 짐작으론 ── 생긴 걸 보지. 여간내긴가. 그러니깐 차라리 앞에 나서 버젓하게 노려주는 것두 대거리가 돼서 좋을 것 같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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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거릴해선 무얼 하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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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옥이 움직일 양도 하지 않고 섰는 것을 보고 애란도 그 자리에 머무르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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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소식 도 하나 말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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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황한 주례의 말을 듣기도 지리하여서 애란은 한참이나 있다가 또 긧속말을 지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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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만에 드는 결혼비가 얼마나 되는지 짐작이나 하나. 놀라지 말라. 일금 오천 원이라. 그 대부분을 옥주 편에서 댄다나. 신랑측 보다두 저 신부측의 위세들을 보지 얼마나 장관인가. 피로연은 호텔서. 신혼여행은 금강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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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둘이 훗훗하게 만난 까닭인지 애란은 전에 없이 말이 많고 수다스러웠다. 영옥은 오래간만에 입이 무겁던 동무에게서 한 사람의 가십쟁이를 본 듯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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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주 학교 하직한 소문 들었나. 결혼 후에는 구천 원짜리 문화주택에 얌전한 가정인으로 들어앉는대. 현모양처가 또 한 분 생기는 셈이지 양처 ‒‒‒‒ 제발 착한 아내가 되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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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혼자만 지껄이다시피 하는 애란의 입쌀이 명호는 싸두고 여자끼리인 옥주 한 사람에로만 던져짐이 영옥으로서는 야속도 하였다. 그러나 한편 잠자코만 있기가 미안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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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는 말을 내가 왜 이리 야단스럽게 늘어놓는고 하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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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란은 말은 가려운 데까지 손이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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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대체 오천 원이니 문화주택이니 피아노니 하는 것이 아니꼬아서 하는 말야. 오천 원을 쓰려고든 쓰고 문화주택을 지으려거든 짓지 그런 것은 가만히 잠자코나 할 일이지 무엇이 장하다구 소문을 내구 거리의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내려고 하느냐 말이지. 옥주의 약은 계책으로 은근히 활짝 선전을 하구 소문을 낸 눈치니 천하에 근성머리가 더럽단 말야. 뒤집어보면 그게 우리 여성 전체에 대한 도전이 아니구 무어야. 모욕이 아니구 무어야. 온통 누가 부러워하구 장해 여기나부지. 비위 사납게 천박한 것 ── 그런 눈치를 알면서 오늘두 올걸 왔나. 꼴 좀 비웃으러 왔지. 내 주장하구 인제 집 꼴 되나 보지. 제일 가여운 게 명호야. 평생 판관 노릇을 하구 집안에서는 깔리워만 지낼 신세니.”
 
32
장항은 하였으나 듣고 보니 그럴 법도 하였고 애란의 말속에는 영옥 자신이 하고 싶던 말도 많았다. 명호와 옥주의 숨겨진 내막을 우연한 기회에 톡 털어 본 듯도 하여서 시원도 한 한편 가엾기도 하였다. 그러려니 짐작하지 못한 바는 아니었으나 막상 또렷이 듣고 보니 일종의 환멸조차 느껴졌다. 대답할 말을 몰라 짐짓 잠자코 있는 동안에 결혼식도 거의 끝나는 모양이었다.
 
33
백년해로의 계약을 마친 새 부부는 나갔던 길을 되돌아 나왔다. 양편 숲속에서는 날아드는 오색 테이프의 얼크러진 줄이 걸어 나오는 두 사람을 친친얽고 뿌려지는 쌀이 길 위에 천하게 널려졌다. 장내가 어지럽게 수물거렸다. 내막을 털어 본 후이므로 그런지 영옥에게는 두 사람의 자태가 새삼스럽게 찬찬히 바라보였다. 알뜰히 바라보려고 고개를 사람들 어깨 사이로 기웃거리는 동안에 수물거리는 파도에 휩쓸려 영옥의 몸도 밀리고 있었다. 두리번거리는 사이에 어디로 사라졌는지 애란의 자태조차 놓쳐버리고 어느덧 회당문이 미어지게 꾸역꾸역 나가는 숲 속에 쌓여 있었다.
 
34
움직이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면목 있는 얼굴도 간혹 눈에 띠우기는 하였으나 그 복잡한 속에서 자기의 모양이 문득 민수의 눈에 띠일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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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계신가구 찾었더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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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스치고 나선 것을 보니 뜻밖에 민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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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릴 말두 있구 한데 마침 잘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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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인가 그의 아파트에서 그 불측한 짓이 있은 후로 처음 만나는 것이었으나 그 당장 같아서는 노여운 마음에 다시 만나고 싶지도 않고 눈도 지릅 떠 볼 것 같지 않던 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이 누그러지는지 그 자리에서 영옥은 노염을 피울 수도 없었다. 민수의 태도부터가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천연스러웠고 그 판에 영옥도 굳이 그를 꾸짖을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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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피로연에 같이 가셨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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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는 혼자 작정으로 은근히 영옥의 마음을 낚구어 보려는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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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길 뭣 하러요. 여기 나온 것도 가장껏 정성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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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마당에까지 밀려나왔었다. 넓은 마당에서는 밀렸던 파도도 헤트러지면서 빽빽하던 사람들이 제물에 듬성듬성 헤트러졌다. 등대하고 섰는 여러 대의 자동차가 기우는 햇빛을 받고 검은 속으로 눈부시게 빛났다. 신랑 신부가 탄 뒤로 차례차례로 가족들과 들러리들이 올라 차는 한 대씩 뒤를 이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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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호의 특청도 있구 했으니 가시죠 ── 오늘 손두 바쁘다구 해서 친한 내빈들이 뒷갈망을 제가 맡다시피 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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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는 찻소리에 충동을 받은 듯이 조급하게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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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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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른 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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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를 가리켰으나 영옥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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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다니까요.”
 
49
“실상은 피로연보다두 더 중요한 일이 있어서 그러는데요 ──”
 
50
민수는 하는 수 없이 말머리를 돌리는 수밖에는 없었다.
 
51
“강남회사에서는 영옥씨의 전속 입사를 자기들끼리 임의로 결정해버렸다는데 늦은 인사지만 거기 대한 영옥씨 자신의 의견도 듣고 싶고 구체적으로 취업할 레코드의 곡목도 작정해야 하겠고 테스트도 한번 해봐야겠고 해서 실상 오늘 윤주의 청으로 같이들 만나기로 했는데요. 피로연이 끝나는 대로 곧 적당한 곳에서 모이려고 ──”
 
52
오래 전부터 말썽이 많던 강남회사의 교섭이 되풀이되었으나 진저리가 날 지경의 그 말이언만 영옥은 그래도 번번이 그것을 단번에 차버리지 못하는 처지였다. 가슴에 걸리는 감정의 체증이 있으면서도 청을 받을 때 외마디에 선뜻 따버리지 못하는 그였다. 신인방송에 출연하였을 뿐 그 후 아무런 계획도 없이 지내 오던 판에 일종의 불안과 초조조차 느끼게 되어 언제나 거세게 고집만을 피울 수도 없었던 것이다. 한참이나 잠자코 대답이 없음을 은연중에 그의 말을 받아들이는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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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기회만은 놓치지 마십시오.”
 
54
“피로연엔 아무래도 안가겠어요.”
 
55
“그럼 곧 윤주를 만나더래두 ──”
 
56
민수는 벌써 완전히 영옥의 마음을 붙들고 민첩하게 눈치를 낚구었다.
 
57
“── 어떻든 차를 타시죠.”
 
58
찌뿌득은 하면서도 영옥은 마치 모르는 결에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리 듯 차 앞으로 나서는 것이었다.
【원문】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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