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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의 목가 ◈
◇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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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 10 ~
이효석
1
거리의 목가
 
2
7
 
 
3
신인방송의 밤이 지난 지 일주일이 넘었으나 윤주는 그날 밤의 영옥의 인상을 잊을 수 없었다. 혼자 있을 때의 그의 마음을 차지하는 것도 영옥의 자태였고 친구와 지낼 때의 그의 입을 스치는 화제도 자연 영옥의 위로 향하여 갔다. 남달리 몸이 육중하고 허울이 위대한 육척 장정의 거한이언만 가정에 있어서의 지위는 그 반대로 초라하고 가엾어서 거센 아내의 앞에서는 소리를 잊은 쥐 행세를 하게 되었다. 세상의 비극은 항상 비뚤어진 대조에서 오는 것이어서 윤주의 처지도 이 예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아내와 그와의 지위와 대조는 처음부터 거의 숙명적이어서 억지로 꾸며낸 노력으로서는 ── 즉 애써 아내를 달래 본다든가 혹은 억지로 위엄을 보이려고 한다든가 하는 후천적 노력으로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러한 가정적 불행이 그의 마음을 밖으로 향하게 하였는지 혹은 그의 마음이 너무도 허랑하고 정이 많은 까닭에 도리어 가정적 불행이 늘어가는지는 알 바 없으나 어떻든 그의 밖에서의 생활은 어지간히 어지러운 것이었다. 수많은 예기와의 거래는 고사하고라도 가까이 인실과의 관계도 아직 부자연스런 인연을 그대로 끌어가는 중이며 그러면서도 이제 또다시 영옥의 출현에 한눈을 파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 모두가 결국 가정의 불행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까닭에 남구는 이날의 윤주의 하소연을 달게 들으며 맞장구까지를 치게 되었다.
 
4
바의 오후는 고요하며 두 사람만의 음성만이 꺼릴 것 없이 자유롭게 흘렀다.
 
5
“대강 이만저만한 줄 알았지 그렇게 뛰어난 줄야 짐작이나 했겠소. 더 말할 것 없이 장안의 일색이구료.”
 
6
“웬만하게 야단들이지 그렇지 않으면야 그렇게까지 법석을 하나요.”
 
7
“명호, 민수……또 누구요. 남구씨도 한몫 끼었죠 아마.”
 
8
“그다지 명예롭지도 않습니다만 헛물들을 켜면서 ── 생각하면 우습지요들.”
 
9
“땅 위 일이란 결국 그런 것이 아니요. 우스울 것도 불명예될 것도 없지. 자리만 있다면 나도 한구석 비집고 들겠소. 서로들 싸우고 겨루고 떠보고 하다들 ── 이기고 지는 것이지 그 격식이 짐승 사회와 같다고 반드시 부끄러울 것은 없잖우.”
 
10
“문제는 저편 뜻에 달렸는데 가장 중요한 편의 의사는 접어놓고 이편에서 들만 법석을 해야 헛일이란 말이지요.”
 
11
술들이 웬만치 돈 까닭에 말들이 허랑하여 갔으나 남구는 취중에서도 한편 맑은 정신으로 반성할 때에 애매한 한 사람의 의젓한 인격을 도마 위에 올려 놓고 뭇 머슴들이 멋대로 의논하고 작정하고 난도질하는 것이 부끄러워졌다. 사내인 까닭으로서의 그러한 특권이 용납되어야 옳을까, 되지 않아야 옳을까 하는 의혹이 늘 마음속에 뱅 돌면서 윤주의 술과 말을 받음이 도무지 꿈속의 일 같이만 생각되었다.
 
12
“그의 맘이 그렇게도 굳은가.”
 
13
“수월한 줄 알았나요.”
 
14
“아무리 굳어도 이편 정성만 지극하다면야.”
 
15
“어디 최대한도의 정성을 보여 보시지요. 휘어드나 어쩌나.”
 
16
“될 법하오. 한몫 대서보게.”
 
17
윤주는 바짝 마음이 댕기는지 그 육중한 몸을 안으로 쏠리고 남구의 눈을 떠보려는 듯이 노리며 술잔을 들였다. 그 야단스런 꼴이 남구에게는 어리석게도 보이고 한편 두렵게도 보였다.
 
18
“── 그이만 얻을 수 있다면 난 현재의 모든 것을 버려도 좋겠소. ── 지위도 사람도 집안도 모든 것 다.”
 
19
민수는 아파트에서의 그 변이 있은 후로는 다시 영옥과도 만날 수 없는 처지에 인실과 가까이 지내는 날이 별안간 많아졌다. 연희의 절박한 자살극의 한 막이 있었건만 어떻게 두루뭉수리 해결을 지었는지 적어도 인실과 거리를 걸을 때의 민수의 거동에는 그런 복잡한 기억의 자취는 티끌만큼도 보이지 않음이 신기하였다. 뱀장어같이 미끄러워 손아귀에 휘어잡을 수 없는 ‒‒‒ 잡았다고 생각하면 어느결엔지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져 빠지는 ── 그것이 그의 살아가는 태도인지도 모른다. 그런 태도로 사랑과 사랑 사이를 능란하게 헤엄쳐 건너는 것이 그의 일생일는지도 모른다. 인실과 만날 때에는 늘 천연스럽고 그 천연스러운 속에서 놀랍게도 애정을 익혀 사는 것이었다.
 
20
인실은 인실로서 또한 정이 많아서 윤주와의 오래된 애정의 거래가 있으면서도 민수와의 사랑은 또 그것으로서 충분히 천연스러운 것이었다. 일종의 사랑의 ‘카멜레온’이라고 할까. 윤주를 대할 때에는 윤주의 빛으로, 민수를 대할 때에는 민수의 빛으로 ── 경우 경우를 따라서 각각 몸에 맞는 빛으로 몸을 채색하고 장식하는 것이 인실의 놀라운 천재였다. 민수의 생활에 연희와의 파탄이 있은 후로는 더욱 그와 밀접하게 되어 윤주의 눈앞을 거리낄 것이 없었고 고삐 놓인 말의 자유를 그는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윤주편에도 인실의 행동에 참견할 아무 힘도 없었고 감정적 요구도 굳이 느끼지는 않았다. 가령 서로 한자리에 앉게 되었을 때에도 피차의 행동은 극히 자유로워서 거역을 하든 한눈을 파든 피차의 임의였다.
 
21
민수와 인실의 동행은 요사이에 들어 별안간 잦아진 것이다. 그날도 두 사람은 늘 하는 버릇으로 거리를 휘돌아 찻집을 모조리 들춘 끝에 술까지 구하게 되었다. 민수의 그 드러내논 자포자기적 태도는 물론 영옥과의 실패에서 온 것이기는 하나 그렇게 부질없이 거리를 휘돌아치는 꼴이란 별수없이 한 사람의 무위의 거리의 청년의 표본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이 들어간 바가 공교롭게도 윤주의 남구가 앉아 있는 바로 그곳이라고 하여도 민수와 인실은 조금도 뜨끔할 것이 없으리만치 마음들이 유하여졌고 윤주 또한 심드렁한 태도로 두 사람을 천연스럽게 맞이하였다.
 
22
“시위운동인가. 낮부터 이렇게 무장들을 하고 돌아다니게.”
 
23
오히려 이 정도의 농을 거는 윤주였다.
 
24
“만나고 보니 정말 시위행동같이 됐으나 용서하시오. 숨어서 농간을 부리는 것보다는 도리어 내놓고 무장하는 편이 속임은 없으니.”
 
25
농은 농으로 이렇게 넌지시 받게 된 것이 민수의 요사이의 발전이라면 발전이었다.
 
26
“용서니 무엇이니 ── 민수쯤이 그런 촌스러운 소리를 할 줄은 몰랐소. 나 역 피차의 그만쯤의 도덕을 이해하지 못할 내가 아닌데.”
 
27
“도덕 ── 악덕이지 도덕이야.”
 
28
인실이 따끔하게 쏘아붙일 때에 그를 곁눈으로 비스듬히 가로보며,
 
29
“인실에게서 도덕의 항의를 들을 줄 꿈에도 몰랐네.”
 
30
싱글싱글 웃는 윤주,
 
31
“── 어떻든 잘 만났소. 지금 막 영옥씨 얘기를 하고 있던 판에 민수씨야 영옥씨에 관해서야 횅하실 테니 이야기두 더 듣구 도움두 받을 테구──”
 
32
윤주는 새삼스럽게 남구를 곁눈질하고 다음으로 민수를 바라보았다.
 
33
“내 앞에서까지 뻔질뻔질하게 그런 소리를 할 젠 상당히 대담해졌는데.”
 
34
인실은 여자로서 자기 앞에서의 다른 여자의 화제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눈치였으나 윤주에게는 벌써 인실과 영옥은 같은 처지의 여자는 아니었다. 그의 앞을 꺼릴 것 없이 얼마든지 말할 수 있었고 그것으로서 도리어 인실의 마음을 찔러 보고도 싶은 충동까지 없지 않았다.
 
35
“영옥에게 관해서 횅하다구요 ── 글쎄요, 잘 안다면 알고 모른다면 모르고 ── 그는 벌써 내 뜻밖에 사람 내 힘 밖에 사람이니까요.”
 
36
이렇게 말하는 민수의 가슴 한구석에는 영옥과의 쓴 한 장면의 기억이 새로 솟아 나와 그를 불유쾌하게 비웃는 것이 사실이었다.
 
37
“영옥 ── 난 되려 그를 미워할는지도 모르죠.”
 
38
“그렇다면 ── 그런 다행은 없소. 그를 미워하고 그가 뜻밖에 사람이라면 내겐 더 큰 기쁨이 없겠소. 내가 가장 두려워한 것이 터놓고 말하면 민수씨였었소. 민수씨가 참으로 영옥을 미워한다면 그때엔 날 도와 주어도 좋잖겠소. 참으로 미워한다면 ── 어떻소, 대답해 보시오.”
 
39
윤주의 한마디 한마디는 동요하는 민수의 마음을 마치 마술같이 한 고리한 고리 잡아낚아 목적의 함정에 빠치기에 족한 효과를 가진 것이었다. 설레는 마음이 부채질하는 바람에 짜장 활활 불붙어서 뜻이 있는지 없는지 나중에는 흥분된 구절을 뱉게 되었다.
 
40
“미워하구 말구요. 내가 지금 세상에서 제일 미워하는 것이 영옥이오. 제일 경멸하고 싶은 것이 영옥이오.”
 
41
처음부터 잠자코 있던 남구는 민수의 뜨거운 한마디에서 말 뒤의 그 무슨 곡절을 민첩하게 짐작하고 불쾌한 시선을 동무에게서 옮기면서 딴전을 보았다. 두 사나이의 회화가 도무지 마음에 거슬리는 불측한 것으로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42
“그러면 모든 것이 해결이요.”
 
43
윤주는 기운을 얻은 듯이 호기롭게 술을 마시고 잔을 민수에게 권하면서,
 
44
“── 이왕 이렇게 된 바에야 꺼릴 것이 있겠소. 우리 피차 친구로서 한 개의 약속을 가지는 것이 어떻소. 이미 민수씨의 마음을 들었고 내 맘이 또 얼마나 간절한가를 아신다면 그다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데 ──”
 
45
“무슨 조약이든지 맺읍시다.”
 
46
“── 이미 인실을 차지하신 터이니 대신으로 영옥을 사양하시란 말이오.”
 
47
“좋구 말구요 얼마든지.”
 
48
“남구씨와도 말했지만 난 지금 모든 것을 희생하여도 좋소. 가령 내 지위 ── 민수씨의 힘으로 뜻을 이룬다면 난 현재의 지위를 그대로 드릴 작정이오. 농담이 아니라 정말.”
 
49
“옆에는 사람이 없는 듯이들 ── 뻔질뻔질하구 아니꼬워서 못 듣겠네.”
 
50
인실은 사실 더 견딜 수 없어 날카롭게 외치고는 자리를 차고 일어나 앞 탁자로 가버렸다. 남구야말로 처음부터 불쾌한 생각을 참기 어려워 자리를 뜨려던 차에 인실의 거동에 암시나 받은 듯이 같이 자리를 일어나 돌연 그와 동석이 되었다.
 
51
“사내 녀석들같이 주제넘고 불측한 동물들이 있을까. 여자를 마치 물건인양 중간에 세우고 제멋대로들 거래를 하려는 ── 어느 세상이 되면 그 버릇이 고쳐질까.”
 
52
남구도 인실이 말하는 그런 한 사람의 사내이기는 하나 그 자리에서는 도리어 인실의 말에 절대의 동감을 느끼게 되리만치 두 사람의 동무의 꼴들이 비록 취중이라고는 하여도 불쾌한 것이었다.
 
53
“문예부장의 자리와 사랑과 ── 교환조건이 그다지 삐뚤지는 않죠.”
 
54
“힘껏 해보리다.”
 
55
두 사나이의 배포는 어지간히들 유들유들하여서 아마도 조약의 마지막 다짐인 듯이 악수를 한 후 술잔을 나누는 것이 옆 눈으로 보였다.
 
56
윤주의 태도는 잠시 묻지 말고 확실히 그때까지 영옥을 사모하여 오던 민수의 그 경망한 태도가 남구에게는 수수께였다. 그 무슨 변이 있었다고 하고 거기에 대한 복수의 심사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더라도 한 사람의 인격에 관한 일인만큼 경솔하고 비루한 그의 행사를 동무로서 슬퍼하였다. 그 자리로 일어나서 정신이 번쩍 들게 그 두 사람에게 톡톡히 주먹다짐이라도 하고 싶었으나 ── 그것도 못하는 자기 자신을 더한층 슬퍼하였다. 그러나 그 원한을 약간이라도 풀어준 것이 있다면 인실의 별안간의 의분에 넘치는 짤막한 거동이었다.
 
57
“야비한 짐승들.”
 
58
민수와 윤주의 악수가 끝나고 막 술잔들을 쳐들었을 때에 인실은 더 견딜 수 없어 한마디 짧게 외치며 들었던 자기의 잔을 두 사나이에게로 다따가 내던진 것이다. 문득 들었던 잔들을 떨어트리고 이쪽을 노릴 때에 인실은 뒤이어 술병을 던졌다. 민수는 안경을 잃어버리고 윤주의 낯에는 술이 번지르르 흘렀다. 어안이 벙벙하여 한마디의 말도 없을 때 인실은 갈퀴진 한마디를 날카롭게 던졌다.
 
59
“안된 것들 같으니. 세상의 착한 사람을 위해서 그 자리로 혀를 물고 꼬꾸라져도 싸겠다.”
 
60
그 꼴들을 더 보기 어려워 남구는 눈을 징긋이 감으며 자리를 벌떡 일어섰다.
【원문】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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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효석(李孝石)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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