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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의 목가 ◈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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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 10 ~
이효석
1
거리의 목가
 
2
2
 
 
3
명호와 헤어진 후 저녁때는 되어서 숙소에 돌아왔을 때에는 영옥은 말할 수 없는 피곤을 느꼈다. 몸도 피곤하였거니와 마음도 무척 피곤하였다. 노파가 반갑게 말을 걸며 배달된 짐을 내보였다. 명호의 선물 축음기였다.
 
4
축음기 ── 신인의 밤 ── 유행가수의 회견 ── 그날의 자극은 너무도 컸다. 마음이 갈피갈피 복잡하고 흥분되고 산란하였다.
 
5
어차피 돌릴 수 없는 선물이니 하고 풀어서 간직하였던 몇 장의 레코드를 걸었다. 일상 좋아하는 샌티스테반의 「뱃노래」의 멜로디가 고요하게 흘렸다. 이어 오펜바흐의 「아름다운 밤」과 슈베르트의 「세레나데」를 듣고 있는 동안에 설레던 마음도 차차 가라앉았다. 그러나 그 대신 고요한 가운데서 외로운 정회가 불현듯이 솟아올랐다. 화려하고 복잡하던 하루의 생활은 간곳없고 쓸쓸한 그림자만이 마음속에 어리어서 서글픈 심회가 가슴을 씹었다.
 
6
영옥은 거의 바른 정신없이 자리를 차고 일어나서 갈아입지도 않은 그옷 그대로 집을 뛰어나와 다시 거리로 발을 돌렸다.
 
7
“있을까.”
 
8
마음이 적적할 때마다 그는 순도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9
그 고집쟁이 순도에게로 그같이 마음이 쏠리는 까닭을 알 수 없었다. 한간 방구석에서 소설가가 되겠다고 밤이나 낮이나 들어 엎드려 궁싯거리는 양은 유행가수가 되려고 애쓰는 자기 자신의 꼴보다도 몇 곱절 초라한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마음은 높고 교만하여서 그 무서운 고집과 자신은 휠래야 휠 수 없었다. 웬일인지 그 고집이 영옥의 마음을 끌었다. 고향이 같은 탓보다도 그리울 것 없는 고향의 가정을 배반하고 떠나 무엇을 즐겨 하필 소설가가 되겠다고 객지의 가난한 방구석에서 고생하고 있는 그 꼴이 알 수없이 마음을 울렸다. 한 고향 같은 객지라고 영옥은 그를 적지 아니 믿었으나 영옥의 목적에 대하여서는 처음부터 반대여서 그를 거들떠볼 염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영옥의 마음은 더한층 간절히 그에게로 기울어졌다.
 
10
어두운 방 속에서 부엉이같이 눈만 빛내고 책상을 노리고 있던 순도는 영옥의 목소리를 듣고도 들어오란 말도 없이 됩데 주섬주섬 옷을 입더니 밖으로 나왔다. 어색한 침묵을 지킨 채 두 사람은 골목을 나와 가까운 공원으로 들어갔다. 그것이 늘 하는 그의 버릇이었다.
 
11
“마음이 울적해서 정신없이 찾아왔어요.”
 
12
연못가 벤치에 이르렀을 때에 영옥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13
“유행가수는 되어서 무엇 한단 말요.”
 
14
생판 딴소리로 순도는 우겨대기 시작하였다. 영옥은 어이가 없었다.
 
15
“실례의 말이 아니예요.”
 
16
“허영같이 해로운 것은 없소. 뭇 사내들과 얼려서 무시로 거리를 돌아다니는 꼴처럼 보기 사나운 것이 또 어디 있소.”
 
17
“반드시 허영일까요.”
 
18
영옥은 설명의 도리가 없어서 안타까웠다.
 
19
“장차 그것을 수단으로 먹고 살아야만 한다면 어떻게 하나요.”
 
20
“공장으로 들어가시오.”
 
21
모진 한마디가 영옥의 마음을 후려치는 듯도 하였다. 영옥은 가슴이 무거워서 한참이나 할말을 몰랐다.
 
22
“말이 과했는지는 모르나 생활수단으로 가수의 길을 골랐다면 아예 길을 잘못 들었소.”
 
23
“잇속 없는 소설가 되려는 것이나 가수가 되려는 것이나 무엇이 다르단 말예요.”
 
24
영옥은 겨우 반박의 말을 찾았다.
 
25
“소설과 유행가를 같이 본다면 더 할말이 없소.”
 
26
“가수되려는 것을 혀영이라고 하시면 실리지도 못하는 소설을 쓰노라고 허구한 날 궁싯거리는 것은 대체 무언가요.”
 
27
순도는 벤치를 일어나서 연못가로 한 걸음 나섰다.
 
28
“하기는 피차에 그 무엇에 홀리웠나부오. 마치 귀신에게나 홀리우듯이.”
 
29
연못에 던진 돌이 풍덩하고 파문을 일으키자 고기떼가 물 위에 솟아올랐다. 우거진 나뭇가지에서는 새가 날았다.
 
30
“유행가에는 가까운 기회나 있지요.”
 
31
영옥도 따라 일어서서 못가로 해서 순도의 뒤를 따랐다.
 
32
“실상은 거기 대해서 조금 이야기 드리려고 했는데요.”
 
33
나무그늘 속으로 사라지는 순도의 꽁무니를 영옥은 바싹 좇았다.
 
34
“라디오의 신인의 밤이 있다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을까 했어요.”
 
35
“내가 아우. 고명한 선생들이 많은데 거기 졸대로 하지.”
 
36
뿌루퉁한 그 꼴이 반드시 즐겁게만 생각되지 않는 것은 순도의 그 말이 영옥을 위한 질투에서 나오는 말이 아니라 참으로 무관심하고 냉정한 태도에서 나온 것인 까닭이었다.
 
37
“그렇게 쌀쌀만 하시니 한 고향의 우정이라는 것도 없나요.
 
38
“예술에 우정이 무슨 아랑곳이요. 예술의 길은 피차에 다 제만의 외롭고 쓸쓸한 길인데.”
 
39
“그렇다고는 해도 한마디의 충고라는 것도 없어요.”
 
40
“소설이 유행가에게다 무슨 충고를 한단 말요.”
 
41
생각 같아서는 그 자리에서 그에게 전신을 던지고 찬바람 도는 그 자리를 한 장의 웃음의 장면으로 변하고 맺힌 심회를 풀어보고도 싶었으나 한결같은 그의 태도에는 한 곳도 붙들 데가 없었다.
 
42
“끝끝내.”
 
43
“내 뒤를 더 따라오지 마시오.”
 
44
“피차에 길이 다르니까.”
 
45
순도는 돌아보지도 않고 그늘 속 길을 혼자 멋대로 걸었다.
 
46
영옥은 홧김에 손에 쥐이는 얕은 나뭇가지를 훑어 나뭇잎을 되구말구 입에 품었다 눈물이 빠지지 고였다. 하기는 나뭇잎이 쓴 까닭이었는지도 모르나.
【원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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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효석(李孝石) [저자]
 
  여성(女性) [출처]
 
  1937년 [발표]
 
  소설(小說)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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