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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의 목가 ◈
◇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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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 10 ~
이효석
1
거리의 목가
 
2
4
 
 
3
이제는 벌써 외가닥의 나갈 길이 빤히 보이는 것 같았다.
 
4
그 외줄 길에 대한 열정이 불현듯이 곧게 솟아올랐다. 그 열정은 물론 명호와의 사이에 실망과 환멸을 느끼게 되므로 인한 서글픔과 고독에서 나오는 것이었으나 그러므로 마치 외줄기의 철사와도 같이 날카롭고 곧은 것이었다.
 
5
명호에게서 뿌리치고 온 그 길로 영옥은 거리에 들어와 단골찻집에 들렀다. 거기에서 민수를 만난 것은 더없는 기쁨이었다. 물론 그가 이미 그곳에 있을 줄을 뻔히 짐작하고 온 것이었으면서도 우연히 만나게 된 것 같아서 새삼스럽게 기뻤던 것이다. 조금 찹찹스런 그 독신주의자를 그때까지 꺼려온 영옥이언만 그 당장에서는 그는 벌써 자기를 구해줄 주인공과 같이도 반갑게 보였다. 지금에는 벌써 붙들고 솟아오를 생명의 줄은 그밖에 없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6
탁자에 마주앉자마자 다짜고짜로 첫마디의 사정이었다.
 
7
“라디오 방송 신인의 밤에 나가 보기로 결심했어요.”
 
8
불현듯이 열정이 북돋은 외줄의 길이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던 것이다. 마음속에 싸두었던 중요한 한마디를 말해 버렸을 때 영옥은 무거운 짐을 풀어버린 듯이도 개운하였다. 민수는 그 한마디에 생기를 얻으니 누런 안경을 번쩍이며 영옥보다도 오히려 이상의 기쁨을 보이는 것이다.
 
9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외다. 그러기를 바라왔고 또 응당 그래야죠. 아시다시피 그런 알맞은 기회는 다시 오지 않고 나가시기만 한다면 어떻게든지 성공하시도록 뒤에서 일을 꾸며 놓을 작장이었으니까요.”
 
10
장황한 설교를 듣고만 있으면 항상 한이 없는 것이기에 영옥은 급히 앞을 서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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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국에다 속히 출연 가입 수속을 마쳐놔야 할 텐데요.”
 
12
“암 하구 말구요. 속할수록 좋을 테니까.”
 
13
민수는 마시던 찻잔을 놓고 마치 소년같이 민첩하게 자리를 일어섰다.
 
14
“남구군에게 전화를 걸죠.”
 
15
그 자리로 구석편 전화실로 들어갔다.
 
16
가게의 차인꾼 같아도 고분고분히 분부대로 움직이는 민수의 자태를 바라볼 때 영옥은 통쾌하다느니보다는 마음이 서글펐다. 민수의 태도가 비굴한 것일까. 그보다도 자기 자신의 태도가 더한층 비굴한 것이 아닌가. ── 영옥의 심사는 이미 일을 시작해 놓은 그 당장에 있어서도 오히려 갈피갈피 복잡하였다.
 
17
전화실을 나온 민수는 벙글벙글 웃으며,
 
18
“일이 잘돼 들어가기는 하는데.”
 
19
다시 자리에 앉지 않고 탁자 위에 담배 책자 등속을 주머니 속에 수습하면서,
 
20
“자리를 뜹시다. 오늘 아침 노는 차례라나요. 같이 점심을 먹기로 했지요. 거기서 이야기도 하시고 타협도 하시고……”
 
21
영옥은 굳이 거역하지 않고 자리를 일어서 함께 찻집을 나왔다. 이제는 벌써 범의 새끼를 잡으려면 범의 굴까지라도 사양하고 싶지 않은 처지였다. 민수와 나란히 서서 거리를 걷는 것이 스스럽지도 않았다.
 
22
“녀석 요새 번민이 심한 모양인데.”
 
23
담배를 붙여 물며 혼잣말이라기에는 좀 크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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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요.”
 
25
“남구 말예요.”
 
26
연기를 내뿜더니,
 
27
“── 아마도 아시겠지만 성악도 하고 피아노도 좀 공부한 유명한 보배라고 있지 않습니까. 남구와 약혼의 사이었던 것이 요새 완전히 갈라진 모양이예요. 남구가 사람 잘못 골랐죠. 허영밖에는 없는 여자와 무슨 결혼이 온전히 되겠습니까. 여배우로만 행세하기가 평생의 원이라더니 남구도 모르게 어떤 놈팽이와 동경으로 달아났다나 봐요. 금시에 결혼할 것 같이 말하더니 ── 별것 아니죠. 남구가 속았죠.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그 놈팽이가 삼천 원짜리 백금반지를 보배에게 선사했다나요. 그 선사에 홀리웠는지도 모르죠.”
 
28
보배의 이름도 영옥도 들은 적이 있기는 하나 민수가 그 길에서 왜 하필 그런 소식을 전하는가가 영옥에게는 모를 일이었다. 다만 한 조각의 거리의 가십을 전하는 셈일까. 그러지 않으면 그 무슨 뜻을 주자는 것일까.
 
29
“별 뜻 없죠. 다만 남구가 요새 번민이 심하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뿐이죠. 상처가 대단히 큰 모양인데 마음 보낼 곳 없어 더한층 쓸쓸한 눈친데요.”
 
30
“민수씨에겐 그만한 얘기 한 토막쯤 없나요.”
 
31
“없죠 없죠. 품행 방정한 청교도인 줄 모르시나요.”
 
32
질색을 하고 펄쩍 뛰면서 잡아떼는 것이 영옥에게는 도리어 우습게 보였다.
 
 
33
빌딩 지하층 그릴에서 남구를 기다려서 세 사람이 식사를 하면서 출연에 대한 타협은 비교적 수월하게 끝났다.
 
34
남구는 영옥의 일신에 관한 것을 몇 가지 적고 연주할 곡목을 작성하였다. 영옥이 늘 좋아하고 또 장기인 슈베르트의 「세레나데」와 브람스의 「들장미」의 두 곡목이 선택되었다. 피아노 반주자의 선택은 남구에게 맡기고 그에게서 몇 가지의 주의를 들은 것으로 이야기는 끝났다.
 
35
방송이 있기 전 며칠을 기약하고 먼저 시험연주회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 테스트를 통과하여야 방송에 출연할 수 있다는 것이나 그만한 실력과 자신은 이미 준비된 뒤이라 영옥은 방송의 날이 은근히 기다려질 뿐이었다.
 
36
“성공하시면 한턱 있어야 합니다.”
 
37
남구의 말을 영옥이 대답하기 전에 민수가 가로채어서,
 
38
“여부 있겠나. 자네는 자네로서 난 나로서 배후의 원조나 단단히 하세그려.”
 
39
식사도 거반 끝났을 때 민수는 차를 저으면서 남구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40
“아까도 말했지만 자네 요새 번민이 과한 모양이야. 얼굴이 못 됐을젠.”
 
41
“머 무슨 말을 했단 말인가.”
 
42
남구는 별안간 정신이 번쩍 뜨이는지 들었던 식도를 놓으면서 민수를 바로 건너보았다.
 
43
“자네 파혼한 얘기 말일세.”
 
44
“파 파혼한 얘기를 누 누구와 했단 말인가.”
 
45
“영옥씨와.”
 
46
“미 미쳤나 이 사람.”
 
47
남구는 금시에 빛을 변하며 눈썹이 험해졌다.
 
48
“쓸데없이 실없는 소리는 왜 하나.”
 
49
“못할 말 무엇인가. 그렇게 허물되나.”
 
50
“할말 따로 있고 말할 처지 따로 있지 남의 속일을 그렇게 함부로 지껄인단 말인가.
 
51
남구의 노여움은 예측 이상으로 큰 것이었다. 무슨 까닭의 노여움인지 영옥 자신도 그의 태도를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아무리 말을 들은 상대자가 자기기로서니 한 구절의 로맨스의 실패담이 그렇게도 그를 상하게 하는 것일까. 말을 들은 책임상 영옥의 처지는 딱하고 곤란하였다.
 
52
“자네는 자네만 유독 청교도인 척 자처하나 자네 속사정을 지금 영옥씨 앞에서 얘기한대도 자네 탄하지 않겠나. 인실과의 얘기, 연희와의 곡절……”
 
53
“딴은 그럴 법도 하네. 그만두게. 자 빌 테니.”
 
54
이번에는 민수가 뜨끔하면서 정색을 하였다가 금시에 빛을 풀며 웃음으로 그 자리를 얼버무리려고 하였다.
 
55
“윤주와 친한 인실을 가로채인 건 자네가 아닌가.”
 
56
민수는 기급을 할 듯이 일어나서 남구에게 손을 모고 빌었다.
 
57
“제발 살려 주게, 그만두게.”
 
58
“자네가 버린 백화점 연희가 지금 어떤 난경에 있는지를 자네 생각이나 해봤나. 그래두 청교돈가. 못된 청교도. 음흉한 돈 환……”
 
59
민수는 저런 상처를 다치운 듯이도 쩔쩔매면서 하는 수 없이 남구의 뒤로 돌아가 앉고 손으로 그의 입을 막아 버렸다.
 
60
뜻하지 않은 그 한 토막의 우스꽝스런 희극을 눈앞에 보면서 영옥은 어안이 벙벙하여 해석의 도리를 몰랐다.
 
61
무슨 까닭에 친한 동무인 두 사람이 그렇게까지 안달을 하고 법석을 하는 지가 도시 이해하기 어려웠다. 두 사람의 그만한 정도의 내막을 들었대야 영옥 자신으로서는 아무 감동도 자극도 받지 않았고 두 사람에게 대한 인상도 처음과 별반 다른 것이 없는 것을 두 사람은 헛되이 자기 한 사람을 둘러싸고 불필요한 감정을 낭비하는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결국 자기 한 사람 때문에 일어난 결과임을 생각할 때 어리석은 두 사람의 꼴들을 겉으로는 웃으면서 대하나 속으로는 우울하기 짝없었다.
 
62
“녀석 말을 그대로 다 믿지는 마십시오.”
 
63
입을 풀리운 남구는 마지막 결론이듯이 영옥을 바라보며 민수를 손가락질하였다.
 
64
영옥은 여전히 부드러운 웃음을 띠우면서 일부러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65
마음은 한없이 우울하고 답답하였으나 다만 하나 눈앞에 닥쳐오는 목표의 길만을 바라보고 그 큰 것을 위하여서는 역시 그만한 우울의 감정쯤은 억지로라도 희생해버리고 말살해버리려고 생각하였다.
 
66
모처럼의 오찬의 뒷맛이 이지러져 버린 것을 아깝게 여기며 영옥은 식은 차를 단모금에 마셔 버렸다.
【원문】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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