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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의 목가 ◈
◇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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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 10 ~
이효석
1
거리의 목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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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3
창립된 후 처음으로 당해 오는 공연이라 명호가 거느리고 나가는 음악협회에서는 날마다 회원들이 회관에 모여서 준비연습에 분주하였다. 전에 그 무슨 회관으로 쓰이던 툇물림일 듯도 한두 간으로 된 넓은 방에 밤만 되면 이십 명이 넘는 남녀 회원이 모여들어 각각 맡은 곡조를 익히기에 이슥할 때 까지 떠들썩하였다. 음악협회라고는 하여도 기악보다는 성악들이 위주여서 독창 사중창 혼성합창이 연주의 주목이었다. 높고 얕게 조화된 합창소리가 회관 안에서 설렜다 가라앉았다 아름답게 울렸다.
 
4
영옥이 그날 밤 회관을 찾은 것은 명호의 간곡한 청을 저버릴 수 없었던 까닭이었으나 옆방에서 흐르는 「아름다운 밤」의 멜로디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때 모르는 결에 가벼운 흥분 속에 잠겨지며 오기를 잘했다고 거듭 느꼈다. 흥분되는 음악적 분위기 ── 외롭게 혼잣길을 걸어가는 영옥에게는 그것이 귀한 것이었다. 걸어가는 길에 의혹과 초조만을 느끼던 그에게 그날 밤의 흥분은 확실히 용기를 주고 결심을 새롭혀 주기에 족 하였던 것이다. ‘오펜 바흐’의 그 고요한 노래가 눈물이 솟아날 지경으로 아름다웠다. 영옥은 살며시 한숨을 내쉬었다.
 
5
한 곡조의 연습이 끝났을 때 긴장이 풀린 회원들의 수선거리는 소리가 나며 지휘를 마친 명호가 곁방으로 들어와서 땀을 훔치며 연주의 효과를 묻는 듯이 싱글벙글 웃으며 피아노 있는 교의에 와서 주저앉았다. 영옥이 수고의 말을 미처 보낼 여유조차 없이 무엇을 생각하였는지 명호는 금시에 자리를 일어서 영옥의 앞으로 가까이 오더니 얼굴이 거의 맞닿을 정도로 몸을 굽히며 영옥의 두 손을 잡는다.
 
6
무서우리만큼 가까운 불같이 빛나는 그의 눈은 확실히 그 무엇을 구하는 듯이도 보였으나 사람이 피곤할 때에는 그러려니만 생각하며 영옥은 몸을 피하면서 자리를 냉큼 일어섰다. 그것을 기회로 명호는 영옥의 손을 잡은 채 일순간의 감정을 감추려는 듯이도 날렵하게 회원들 있는 옆방으로 끌고 들어갔다. 영문을 몰라 두근거리는 판에 초면인 수많은 남녀에게 밑도끝도 없이 일장의 소개를 하는 것이다.
 
7
“오늘 처음으로 들어오신 동호자 임영옥씨. 앞으로 우리 협회에도 드셔서 회원의 한 사람으로 힘쓰실 분, 여러분의 애호와 사랑이 날로 깊어 가기를 바랍니다.”
 
8
아무 예고도 없었던 다따가의 소개에 영옥은 얼굴을 붉히면서 하는 수 없이 몸을 굽혔다.
 
9
“오늘밤 일부러 와주신 수고를 회원을 대표해서 감사 드립니다.”
 
10
명호는 이번에는 영옥을 향하여 맞선 허리를 굽히면서 미소를 띠었다.
 
11
뭇 시선 속에서 어쩔 줄 모르고 무줏거리고 있는 가운데에서 남자 회원들의 눈살은 유난스럽게 귀찮은 것이었다.
 
12
“회원이 부족해서 불편을 느끼던 차에 실력 있는 분이 뒤를 이어 참가해 주셔서 명호로서는 더없는 영광으로 생각됩니다.”
 
13
실력이라는 말도 영옥으로서는 고맙지 않은 것이었으나 회원 되기를 승낙한 적도 아직 없는 것을 마치 벌써 회원인 듯이들 들추슬러 대는 것이 괴로웠다.
 
14
“여회원 모아 들이는 덴 권선생은 펄펄 나셔. 어디서 찾아오는지 인물만 골라오시니 솜씨가 놀랍단 말야.”
 
15
한 사람의 남자 회원이 아마도 농을 겸하여서인지 명호와 영옥을 번갈아 보면서 괘사를 피우니 여자 회원 한 사람이 뒤를 받아 명호를 조롱하는 듯 맞장구를 쳤다.
 
16
“여회원에게 지나쳐 한눈을 파시다 옥주씨에게 야단날려구 그러시지. 약혼시대같이 몸가지기 어려운 게 없다는데 가제나 옥주씨 편이 좀 세신터에 ── 바로 말이지 제가 만약 옥주씨라면 선생의 거동을 그냥 보고만 있진 않겠어요…….”
 
17
“농이 진한 모양이요.”
 
18
명호의 한마디가 그의 입을 막아 버렸으니 망정이지 버려만 두면 무슨 말이 나올는지도 헤아릴 수 없는 경망한 여회원이 어세였다.
 
19
영옥은 불쾌하였다. 경솔한 여회원의 태도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으나 그의 말이 여러 사람에게 줄 인상도 진저리나는 것이며 그 말의 내용과 ‒‒‒‒ 만약 내용대로라면 명호의 태도도 불쾌하고 싫은 것이었다.
 
20
명호가 여학교 교사이자 피아니스트인 옥주와 약혼의 사이라는 것은 금시초문은 아니었으나 이제 막상 터놓고 그 사실을 들었을 때에는 결코 유쾌한 것은 아니었다. 명호의 지나쳐 친절한 태도는 여회원의 말마따나 한눈을 파는 셈인가. 그렇다면 그 또한 유쾌한 것은 아니었다. 장막 속에 은근히 가리워졌던 얼크러진 속을 들여다본 것도 같아서 영옥은 한결같이 불쾌한 심사를 금할 수 없었다. 어느결에 어느 회원이 숨어들어 치는 것인지 이웃방에서는 별안간 피아노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그 무슨 광상곡인가, 어지러운 곡조는 돌연히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면서 수선스럽게 빠르게 울렸다. 마치 자기의 산란한 마음을 그대로 나타낸 것도 같아서 영옥은 별안간의 그 곡조에 몸이 쏠려짐을 느꼈다.
 
21
피아노는 피아노대로 울리건만 영옥이 돌연히 피아노의 정서에서 떨어지게 된 것은 회원의 한 사람의 외치는 소리에 문득 정신이 든 까닭이었다.
 
22
“옥주씨. 옥주씨가 오셨어요.”
 
23
나갔던 회원이 외치며 들어오는 뒤로 옥주가 따라 들어온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 자리에 나타난 옥주는 제 소리를 듣고 들어온 범인 셈이었다. 방안 사람들이 반갑게 맞이하는 그를 초면인 영옥은 복잡한 심정으로 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빈틈없이 반들반들하고 팽팽한데다가 안경까지 쓴 그 얼굴을 영옥은 다치기 어려운 것으로 보았다.
 
24
명호도 옥주의 앞에서는 온전히 기맥이 없어서 그의 눈짓을 받자 다른 사람들의 존재는 완전히 잊어버린 듯이 한마디 말도 없이 둘만이 옆방으로 들어갔다. 필연코 그 무슨 의론이 있으려니는 짐작하면서도 영옥은 그 거동이 도무지 맞갖지 않았다.
 
25
“그게 양식인지는 무엔지는 모르겠으나 사나운 꼴 작작 보이구 얼른 결혼해버리지 그래.”
 
26
회원들의 눈에까지 날 제는 아마도 두 사람의 거동은 보기 어려운 것인 모양이었다.
 
27
“집이 돼야 결혼하지. 결혼하자 곧 든다는데 지금 짓는 문화주택이 꼭 구천 원이 먹는데 선생이 삼천 원, 나머지 곱절을 옥주가 당한다나. 그러니 텃세도 꼭 곱절을 쓸 모양이야.”
 
28
“세야 쓰건 말건 구천 원짜리 문화주택이면 좋지 뭐냐. 피아노는 이미 있는 것 갖다 놀테구.”
 
29
장황한 소문도 귀에 거슬리는 것이었고 도무지가 불쾌한 것 뿐이어서 영옥은 명호가 눈앞에 없음을 차라리 기회로 조금 퉁명스럽게 회관을 나와 버렸다.
 
30
서글퍼지며 외로운 생각이 등줄기에 찬물을 끼얹는 듯도 하였다. 명호들의 세상은 결국 그에게는 너무도 먼 것이었고 세상에는 혼자 걸어나가야 할 외줄기 지름길만이 있는 것이 쓸쓸하게 내다보였다. 그날 밤 회관을 찾은 것이 뉘우쳐도 졌다.
 
31
이튿날 명호가 찾아온 것은 영옥에게는 의외라면 의외였다. 아침도 일찍이 집도 수월하게 찾아서 뜰 안에 들어선 것을 바라보니 명호였다.
 
32
“왜 오셨어요.”
 
33
어리석은 질문이나 영옥으로서는 중대한 문책이었다.
 
34
“어젯밤엔 실례가 많았으나 ── 그러나 왜 모르는 결에 말도 없이 오세요.”
 
35
“무슨 낯짝을 들고 더 있으란 말예요.”
 
36
협착한 방안에 맞아들이기도 괴로워서 영옥은 옷을 쉽게 갈아입고 명호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37
“다따가 소개는 왜 하시구 회원이라구는 왜 추스르세요. 승낙한 적도 없었는데.”
 
38
“그게 노여우셨나요……워낙 소소리패들이라 입들이 수다스러워서 짖어들대다가 불쾌하게 해드린 모양인데 앞으론 충분히 주의시킬 테니 과히 허물마세요.”
 
39
“안예요. 선생의 태도 그것부터가 불쾌하단 말예요.”
 
40
하고 뒤미처 호되게 반박하고도 싶었고 구천 원의 문화주택과 피아노의 생활과는 저는 인연이 너무도 멀어요 하고 윽박아대고도 싶었으나 다시 생각하면 모두가 쓸데없는 말 같아서 영옥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러한 비꼬움이 웬일인지 일종의 질투에서 나오는 것 같고 명호들에게 대하여서 질투를 느낄 아무것도 없음을 차게 반성은 하면서도 모순된 자기의 심정을 제 스스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41
“결국 선생들의 처지와 제 처지와는 거리가 너무도 멀어요. 선생의 현재 처지로는 제게 지나친 후의와 친절을 보이시지 말아야 해요. 이미 작정된 행복의 길을 살리셔야 하잖아요.”
 
42
“그린 그런 쓸데없는…….”
 
43
“안예요. 그렇구 말구요. 어젯밤 회원의 말마따나 지금 한눈을 파시는 선생으로선 금물이 안예요.”
 
44
“그건 오 오해요. 한눈을 파느니 무어니 그런 말로 표시할 감정이 아닌데.”
 
45
흥분된 서슬에 손을 와서 덤석 잡는다. 그 무슨 간절한 감정을 하소연 하려는 것도 같다.
 
46
“어떻든 너무 가깝게 하시진 마세요.”
 
47
잡히운 손을 징긋이 빼면서 영옥은 순간 부질없고 끝없는 사내의 마음이라는 것을 생각하였다. 애정 위에 애정을 구하고 사랑 위에 또 사랑을 바라서 그칠 줄 모르는 마음 ── 사내의 마음이란 그렇게도 다정다한하고도 욕심많은 것일까. 애정에 대한 욕심이란 그렇게도 무한한 것일까. 철없이 꾀없이 허둥허둥 좇아오는 명호의 손에서 냉정한 마음으로 몸을 막고 빼쳐야 할 것이 도리어 자기편임을 생각하고 영옥은 냉정한 반성을 해야 하는 것이 왜 하필 남자 편보다도 여자 편이어야 하나를 슬퍼하였다.
 
48
“제발 앞으론 지나친 후의는 끊어 주세요.”
 
49
“영옥씨 영옥씨……”
 
50
여전히 외치면서 좇아오는 명호를 돌아보아서는 안 된다. 영옥은 앞만을 곧게 내다보면서 들은 체 만 체 혼잣길을 재게 걸었다.
【원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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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효석(李孝石)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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