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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랑사 (玉娘祠) ◈
◇ 7. 대학살(大虐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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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
채만식
1
玉娘祠[옥랑사]
 
2
7. 대학살(大虐殺)
 
 
3
공주는 남쪽으로 서울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관문이다.
 
4
북쪽과 서쪽과 남쪽이 금강(錦江)으로 에둘리고, 동쪽이 계룡산 연봉의 첩첩한 산악지대요 한 공주성은, 이른바 지키기 쉽고 치기 어려운 천연의 요새랄 땅이었다.
 
5
관군은, 올라오는 동학군을 공주에서 맞아 싸울 준비를 하였다.
 
6
충청감사는 박제순(朴齊純), 이기동(李起東)이 중군이었다.
 
7
중군 이기동은 주력을 주봉(周峰)에 두고, 구성창(具成昌)으로 금학동 (金鶴洞)을, 구상조(具相祖)로 곰나루(熊津)를, 장용진(張容鎭)으로 봉화대(烽火臺)를 각각 지키게 하였다.
 
8
성하영(成夏泳)이 이천의 병력으로 이인(利仁)에서 전위를 섰고, 공주의 목이라고 할 수 있는 우금치(牛金峙)는, 천 명 가량의 일본군이 지키었다.
 
9
문제는 이 일본군이었다.
 
10
서울로 부터 뒤미처 내려온 이두황(李斗璜)은 일천의 병으로 우금치의 예비군이 되어 공주성 최후의 방어를 담당하였다.
 
11
관군의 총세는 일본군까지 합하여 팔천 명이었다.
 
12
동학군은 논산(論山)에다 본진을 두고 공주를 무찌를 태세를 차리었다. 이 논산의 본진을 짠 동학군은, 마산(馬山)의 김원식(金元植), 진안(鎭安)의 조진문(趙鎭文), 건평(乾坪)의 이유상(李裕相), 논산(論山)의 윤지병(尹芝炳)과 방학주(方學柱), 두계(豆溪)의 김홍제(金鴻濟), 영동(永同)의 최사문(崔士文), 이 밖에 십여 고을의 접주들이 각기 거느리고 온 부대였다.
 
13
동학군의 군세는 논산의 본진만 하여도 오만이라 하였다.
 
14
이 논산의 본진 외에, 김개남(金介男)은 동학군의 등 뒤를 경계하기 위하여 전주를 지켰다. 또 용맹하기로 이름난 손화중은 관군의 한 부대가 서울로 좇아 목포에 상륙한다는 소문이 있어, 역시 등 뒤의 위협을 막기 위하여 광주로 내려가 목을 지키었다.
 
15
이 밖에도 안승관(安承寬)은 수원에서, 고석주(高錫柱)는 홍천(洪川)에서, 김복용(金福用)은 목천(木川)에서, 최한규(崔漢圭)는 공주 근처에서, 정원준(鄭元俊)은 옥천에서, 최경선(崔慶善)은 예산(禮山)에서, 최난선(崔蘭善)은 여산(礪山)에서, 고준봉(高峻峰)은 보령(保寧)에서 각기 분산적으로 난을 일으키어 가지고 있었다.
 
16
충청, 전라 두 도는 그리하여 거의 동학군으로 동원이 된 느낌이 없지가 못하였다.
 
17
동학군은 논산의 본진만 하여도 병세가 오만이라 하였다.
 
18
오만이면 미상불 큰 병력이었다.
 
19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부질없는 수효로 거추장스런 덩치였다.
 
20
오만의 동학군 가운데 삼만은 바로 며칠 전까지 타작마당에서 벼타작을 하던 순짜 농민과 동학당원들이었다.
 
21
그들의 병기라는 것은 창이나 죽창이 고작이요, 태반은 몽둥이, 쇠스랑, 도리깨, 식칼, 낫 등 속의 되는 대로 얼른 집어들고 나온 농구 ——— 농사 연장이었다.
 
22
전쟁은 결코 농사가 아니었다.
 
23
지나간 봄과 여름의 거사에서 동학군은 제법 변변한 관군을 만나 제법 접전다운 접전을 하여 보지도 않고 승리만 크게 하였었다.
 
24
이번의 서울 진격(進擊)에도 역시 관군은 그렇게 하잘 것 없고, 싸움은 그렇게 만만하고, 승리는 그렇게 크려니만 믿었다.
 
25
동학군이 얼씬만 하여도 관군은 성과 병기와 양식을 버리고 도망을 가는 것이라 하였다.
 
26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사지'이 주문만 외우면 관병이 쏘는 탄환은 몸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라 하였다.
 
27
서울로 몰고 올라가 악신을 모조리 베고, 왜병을 소탕하고, 그러고 나면 게다가 양주목사를 하고, 남원부사를 하거니 하였다.
 
28
삼만의 농민과 동학당원들은, 그리하여 몽둥이를 들고 도리깨, 쇠스랑을 들쳐 메고 모여든 것이었었다.
 
29
행군(行軍)하는 데, 용군(用軍)하는 데 주체스럽기만한 이 나그네들이, 진중에서 없애느니 식량이었다.
 
30
동학군의 간부들은 그들 역시 관군의 저항이 약할 것과 동학군의 승리를 맹신하였다.
 
31
그들 역시 관군과의 싸움이란 먼젓번의 그러한 것이려니 믿고 더 생각하려 아니하였다.
 
32
그러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전장(戰場)으로 농사를 하러 온, 선량하나 부득불 어리석은 무리들을 별로이 주체스러워 아니하고, 울레줄레 데리고 다니던 것이었었다.
 
33
오만 가운데 삼만은 그러하고, 나머지 이만 명이 어설프나따나 병정 흉내를 낼 줄 아는 병정들이었다. 그러나 그들도 병기를 볼 양이면 한심스러웠다.
 
34
열 명 앞에 일곱 명 푼수밖에는 총이 없었다.
 
35
그렇게 모자라는 총이나마 대부분이 구식의 화승총(火繩銃)이요, 오연발의 신식총은 열에 하나도 드물었다.
 
36
대포는 네 채를 끌고 다니나 탄환은 한 방도 없었다.
 
37
동학군과 관군을 놓고 이렇게 비교하여 볼 때에, 싸움은 승부가 미리서 작정이 되어가지고 있는 싸움이라 아니할 수가 없었다.
 
38
선용은 시월 그믐에야 논산에 당도하였다. 장사꾼인 체하고 일부러 공주로 들어가 관군의 물정을 살피고 하느라고 보름 가까이 지체가 된 것이었었다.
 
39
선용이 논산으로 와 동학군에 들기는 말 한마디로 족하였다.
 
40
외숙 박재춘이 정녕 참예를 하였거니 하고 두루 찾았다.
 
41
군사가 된 이상, 자유로운 몸일 수가 없는지라 틈틈이 그 오만 명이나 들끓는 진중에서, 이 부대, 저 부대, 사람을 찾고 다니기란 수월한 일이 아니었다.
 
42
공주 접전의 첫시작이 동지달 열이렛날이었는데, 열이튿날에야 겨우 그것도 우연히 만나게 되었었다. 전봉준이 몇 사람의 막원(幕員)을 데리고, 각 진지를 돌아보는 그 막원 가운데 외숙이 섞여 있었다.
 
43
모사(謀士)로 있나 보다고 생각하면서, 선용은 넌지시 뒤를 따라가다 지나가는 체하고 외숙의 옆구리를 찔벅하였다.
 
44
재춘은 선용인 것을 알고 깜짝 놀라고 일변 반기면서
 
45
"너, 웬일이냐?"
 
46
하고 묻는다. 그러더니 좌우를 돌아보다, 조용한 곳으로 데리고 와 재우쳐 묻는다.
 
47
"응? 웬 일이냐?"
 
48
"저두 양주목사나 좀 얻어 할까 하구서 접전하러 왔죠."
 
49
선용이 웃으면서 대답하는 말에, 재춘도 빙그레 같이 웃고 나서
 
50
"어서 집으로 가거라."
 
51
"전 동학하면 못 쓰나요?"
 
52
"서울 가 있다드니, 무엇 하자구 옐 쫓어와?"
 
53
"저두 와서 보구, 후회가 나긴 합니다만서두…… "
 
54
"무슨 후횐지는 모르겠다만, 후회가 난다니 실없이 다행이다. 오늘이라두 집으로 가거라. 가는데…… 그래 서울서 오는 길이냐?"
 
55
"지난달 그믐날 논산 당도했어요."
 
56
"서울서는 언제 떠나서?"
 
57
"시월 열사흗날 떠났어요"
 
58
"그럼 이번 변 보았겠구나?"
 
59
"보다니, 저두 소대장이라시구, 병정 한 소대 가지구 경복궁 수비하다 왜병이 범궐하는 바람에 하마터면 목숨 날릴뻔 했드랍니다."
 
60
"흐응?"
 
61
재춘은 신기하고 다시 보인다는 듯이, 선용을 위아래로 씻어 보다가
 
62
"왜병이 서울을 점령하구 범궐을 했다드니 허전이 아니로구나? 그러구, 개화당이 조정을 차지했다면서?"
 
63
"네."
 
64
"왜병의 총칼 바람에?"
 
65
"그렇죠."
 
66
"죽일놈들. 그럼, 민가패는?"
 
67
"죽구, 쫓겨나구 했죠. 그렇지만 내일 모레 또 어떻게 될지 알아요?"
 
68
"?……"
 
69
"개화당이 무슨 투철한 힘이 있어서 득세를 한 것이 아니라, 왜군의 병력으로 그렇게 된 것이니깐, 내일이라두 청국한테든 아라사(我羅斯 : 露西亞[로서아]) 한테든 왜병이 쫓겨나면 개화당은 절루 쫓겨날 것이 아니겠어요?"
 
70
"………"
 
71
재춘은 고개를 여러번 끄덕이면서 감탄하여
 
72
"거 사람의 새끼는 서울루 보내란다드니, 서울이 좋기는 좋은가 보구나. 많이 방납했다. 의사가 많이 트였다. 네 말이 꼭 옳은 말이다."
 
73
재춘은 그러고 나서 잠깐 무엇을 생각 하다가
 
74
"서울서 내려오면서, 관군 더러 만났느냐?"
 
75
"내려오면서는 보지 못했어두, 공주서 한 보름 있다 왔지요."
 
76
"허어……그래, 어떻드냐?"
 
77
"병력은 한 칠팔천 되는 모양인데, 왜병이 한 천 명 와 있다지요."
 
78
"왜병이?"
 
79
"네."
 
80
"천 명?"
 
81
"그렇다나 봐요."
 
82
"쯧, 아무때 싸워두 왜병과 한번 싸움은 하자는 노릇이니깐…… 그래, 관군의 방비는?"
 
83
"대단해요."
 
84
"사기(士氣)는?"
 
85
"왕성한 편입니다."
 
86
"병기(兵器)는?"
 
87
"동학군에다 비길 게 아녜요, 병정마다 죄다 한번 재이면 다섯 방씩 쏘는 오연발 신식총이구요. 대포두 여러가지 것으루……"
 
88
"쯧, 총이 아무리 좋기로소니, 제깐 놈들 하잘 것 있느냐?"
 
89
선용은 물끄러미 외숙을 바라다보고 나서
 
90
"아저씨?"
 
91
"오냐."
 
92
"접전을 그럼 총으로 하지, 쇠시랑이나 도리깨루 하는 법인가요?"
 
93
"해서, 싸움만 이겼으면 그만 아니냐?"
 
94
"이겨지나요?"
 
95
"지난번에 고부 황토현서 시작해 가지구 전주를 함락시키기 까지, 우리 동학군이 무얼 가지구 접전을 해서 번번이 그렇게 이긴 줄 아느냐?"
 
96
"그때야 싸웠나요? 싸움도 하기 전에 관군이 지레 놀라서 달아나구 달아나구 했지요."
 
97
"이번은 그렇게 되지 말란 법은 있드냐?"
 
98
"그때 허군 다릅니다. 공주를 지키는 관군은 평양병정 강화병정허구 같이 치는 공주병정입니다. 거기다 왜병이 천 명이나 있지요. 왜병 하나가 조선 병정 열두 더 당합니다. 동학군은 아마 천명은 당해내리다. 왜병은 뽑아서 꼭 이태씩을 훈련을 시키구 시키구 해둔답니다. 저두 이번에 경복궁 범궐때 잠깐이지만 다 들려두 보구 했지만, 놈들이 여간 규율이 있구, 여간 맹랑한 게 아녜요. 게다가 병기는 방아쇠 한번에 수백 발씩 나가는 속사포(速射砲)를 가졌지요…… 아 저 성환서, 평양서 그 숱한 청국병정을 들이 개 잡듯 해가면서, 시방 청국으로 칫쳐 들어간다는 소문 못 들으셨나요?"
 
99
"아니, 평양서 왜병이 청병한테 함몰을 당했다면서?"
 
100
"누가 그러죠?"
 
101
"서울서 그런 소식이 왔어."
 
102
대원군이 송인옥(宋仁玉)을 밀사로 전봉준에게 보내어 시방 왜병이 서울을 점령하고, 왕궁을 침노하여 왕을 총칼로 협박하여 가며 개화당패로 하여금 개화와 문명을 빙자코 국정을 어지럽히니, 일본과 개화당으로 연하여 사직이 위태하게 되었은즉, 속히 거의(擧義)를 하라고 충동을 시킨 일이 있었다.
 
103
그 편에 짐짓, 일군이 평양에서 패전을 한 것으로 속여 전하였던 것인지도 몰랐다.
 
104
"평양서 일군이 패했다는 건 잘못 아셨읍니다. 그리고……"
 
105
"그거야 왜병이 패했건, 청병이 패했건 상관이 없는 일이지만."
 
106
"어째 상관이 없읍니까? 일본 군사 만 명만 가지면, 이까짓 것 조선은 한달지간에 다 평정하구 맙니다. 그런데, 이 형편없는 오합지졸 동학군을 군사라시구 몰구 나와 일본과 전쟁을 하자구 들어요?"
 
107
"너, 고 말이 과하지 않으냐? 오합지졸이라니?"
 
108
재춘은 기색이 변하니 가지고 나무란다. 선용은
 
109
"그러나 상관 없고 오합지졸이 아니구 무엇입니까? 농사일하다 말구서 도리깨, 쇠시랑 둘쳐 미고 쫓어온 농군들이 오합지졸이 아니구 무엇입니까?"
 
110
"허, 거 참?"
 
111
"저두 동학당이 제일 일은 함직하다구 생각했어요. 개화당이니, 민가네 사대당이니, 아라사파니, 미국파니 다아 소용 없구, 동학당 하나가 일을 하겠다구. 백성이 등 뒤에서 뒷받침을 해주니깐요. 백성이 등 뒤에서 뒷받침을 해주는게 그게 힘 아녜요? 그래서 저두 서울서 그런 생각 저런 생각 없이 무턱대구 쫓아 내려오질 아니했어요. 했드니, 막상 와서 보니깐, 호왈 십만 해놓구는 실속은 병정다운 병정 천백 명 몫두 못하게 생겨놨으니 이거 큰일 아녜요?"
 
112
"모르면 몰라두, 이 병력 가지면, 서울을 뺏기는 염려 없으리라."
 
113
"서울만 뺏으면 일은 다 되나요?"
 
114
"다 되지 않구"
 
115
"어떻게요?"
 
116
"서울을 뺏으면 동학이 천하를 얻은 것이니, 일 다 된 것이 아니겠느냐."
 
117
"네 말대루 동학은 백성이 뒷받침을 해주니깐, 서울을 뺏구서 정부를 차리구 앉어 호령을 하면 백성들은 절루 따를 게 아니겠느냐. 그렇게 해서 천하를 얻구, 영(令)이 서구 한 다음에는, 십만이구 백만이구 조선군사 갖추어 가지구 일본과두 전쟁을 하는 것이구."
 
118
"가사, 아저씨 말씀대루 낼 모레 서울을 뺏구, 동학당 정부를 차리구 하게 된다구 합시다. 그럭헌다면, 아마 글피쯤은 일본군사가 몇만 명 들어 닥칠 텐데, 어느 해가에 그 십만 명 백만 명 조선군사 갖추어 가지구, 일병 막나요? 지끔 이 무리 가지구는 어림두 없는 일이니깐 말씀에요……… 잘못 하셨어요들. 수도자(首導者) 되시는 양반들이 잘못 생각들을 하셨어요. 저는 그새 며칠 두구 고옴곰 생각했는데, 한가지 좋은 수가 있었는데들 그리셨어요……… 이렇게 쓰잘데 없는 무리들을 한꺼번에 별안간 모아가지구 서울을 치네, 일본과 전쟁을 하네 조급히 서두르실 것이 아니라, 네? 아저씨, 이럭 허거든요, 부안포(扶安包) 하면 부안포가, 순창포 하면 순창포가 제각기 제 고을에서 제 고을만 점령을 하구 있어요. 그러다 관군이 몇백 명이구 오면, 형세 보아 싸우든지 잠시 흩어졌다, 관군이 물러간 뒤에 다시 또 모여서 고을을 차지하구…… 연방 두구 한 삼 년 그럭허면서 양병을 하거든요. 한 고을이 일 년에 천 명씩 양병을 하면, 삼 년이면 삼천명 아녜요? 오십 고을만 하여도 십오만 명, 백 고을이라면 삼십만 명 아녜요? 잘 양병한 삼십만 명 있으면 그땐 일본과 전쟁두 할 수가 있을테죠. 무어 서울쯤 치기는 누워 떡 먹기구요."
 
119
"쯧, 네 소견두 근리하기는 하다. 그렇지만……"
 
120
"아저씨?"
 
121
"오냐."
 
122
"저허구 같이, 오늘 저녁에 떠나시죠?"
 
123
"나는 못 간다. 네나 떠나거라."
 
124
"진정 못 떠나시겠어요."
 
125
"사람이라껀 의리가 있어야 하는 법이 아니냐."
 
126
"알겠읍니다. 그럼 저나 떠나죠."
 
127
"오냐. 부디 상심해 가거라."
 
128
"외가댁에 기별하실 말씀 없어요?"
 
129
"가 할머니나 뵙구, 나는 만났다는 말씀 사뢰지 마라."
 
 
130
작별하고 돌아서다, 재춘이 다시 부르더니
 
131
"너 아무더러두 이 진중에서 지금 나한테 하던 이야기 아니했겠다?"
 
132
"아저씨께 첨이어요."
 
133
"아무더러두 이야기하지 말구 떠나야 한다?"
 
134
"염려 마세요. 그리구 부디 몸조심하세요."
 
 
135
동학군은 십칠일날, 드디어 전군에서 뽑고 뽑은 오천군으로 전위를 삼고, 주력이 그 뒤를 싸면서 이인으로 진격을 하였다.
 
136
이인은 공주성의 목 우금치(牛金峙)의 전초선(前哨線)으로, 조영하의 관군 이천이 지키고 있었다.
 
137
오천의 전위가 나오고, 비록 도리깨와 쇠스랑은 메었을 망정, 사만이 넘는 주력이 그 뒤를 싸면서, 글자 그대로 만산편야하여 쳐들어오는 광경은 미상불 담소한 군사로 하여금 겁이 나게 하는 것이 있었다.
 
138
반일의 격전 끝에 큰 손해와 함께 이인의 조영하군은 아뭏든 물리쳤다. 그리고 다음날인 십팔일에는 단숨에 우금치를 무찌를 기세로 맹렬히 진격을 개시하였다. 그러나…… 우금치의 일병과의 접전은 참으로 허망한 것이었었다.
 
139
진지에 엎드려 빗발치듯 탄환을 퍼붓던 일병이, 느닷없이 총소리가 뚝 그치더니, 그 순간 왁 하면서 메뚜기 떼처럼 새까맣게 진지로 부터 뛰쳐나와 일변 쏘면서 일변 달리면서, 쏜살같이 달려드는 그 날쌤이라니, 그 사나움이라니.
 
140
동학군은 전위부대가 무너지자, 뒤를 싸던 주력은 미처 손을 놀릴 사이도 없이 일병에게 한 중동을 꿰어 뚫리고 말았다.
 
141
이번은 만산편야의 진격이 아니라 만산편야의 패주였다.
 
142
그 달아나는 뒤를 일군이 쫓고,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는 관군이 쫓고 하면서, 한정없이 사살을 하였다.
 
143
쇠스랑을 메고, 도리깨를 쥔 농군의 시체로 산을 덮고, 피가 흘러 골물을 이루고 할 지경이었다.
 
144
이 우금치의 잠깐 싸움에 동학군은 만 명 가까이 죽고 상하고 하였다고 전하였다.
 
145
우금치의 한 싸움을 고패로, 동학군은 연방 패하고 물러나다 마지막 이십삼일의 황화대(黃華臺) 싸움에서 완전히 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146
그 뒤로는 관군은 손을 나누어 각처의 동학 잔군을 분산적으로 소탕하였다. 특히 이두황은 남쪽으로 내려가 나주, 광주, 순천 등지에서 숱한 동학군과 동학당과 아울러 백성들을 죽여젖혔다. 이 공로와 그리고 을미년(乙未年)에 일병과 함께, 이름이라도 국모(國母) 민비를 죽이는데 한 칼의 협력을 한 공로까지 하여, 후일 전라북도 관찰사까지 지낸 인물이었다.
 
147
동학란이 평정이 되자, 삼남 일판에서는 골골마다 동학의 잔당을 잡아 죽이는 소동이 일었다.
 
148
선용은 집으로 돌아가 삼 년 만에 모친 모시고 아내와 함께 설을 쇠었다.
 
149
모친과 아내는 삼 년이나 돌아다니다가 들어왔으니, 인제는 마음이 갈앉았거니 하고 속으로들 기뻐하였다.
 
150
선용은 그러나 마음이 조금도 갈앉은 것이 없었다.
 
151
삼 년이나 객지 바람을 쏘이고 다니다 돌아와 집에 있자 하니 갑갑하여 있을 수가 없었다.
 
152
그는 이미 들어앉아서 살기에는 너무도 마음이 커진 사람이었다. 그런데다, 그동안은 오히려 잊고 지낼 적이 많던 옥봉의 생각이 새삼스럽게 도로 번뇌를 자아내고.
 
153
꼽아보면, 올해 갓 스물…… 인제는 필 대로 다 피고, 완구히 각시 꼴이 잡혔으려니 하면, 성숙한 옥랑의 자태가 눈에 서언히 밟히면서 가슴이 울렁거리고 곧 미칠 것만 같았다.
 
154
보름까지나 집에서 쇠고, 다시 또 나서는 것이라고 하였다.
 
155
바로 보름날이었다.
 
156
외가로 부터 급한 기별이 왔다. 세째외숙이 붙잡히었다고.
 
157
선용은 황망히 외가로 달려갔다.
 
158
재춘은 섣달 그믐 임박하여 집으로 돌아와 은신을 하고 있었다. 동헌에서는 집안에서 뇌물을 두루 많이 써서 알고도 모른 체하여 주었었다.
 
159
그러나, 감영으로부터 참령(參領 : 少佐[소좌]) 하나가 병정 오십 명을 거느리고 내려와 읍촌으로 돌아다니면서 동학당을 붙잡아내었다.
 
160
재춘은 처음에는 무사히 넘겼다가 누가 뒤로 찔렀던지, 촌으로 나갔던 병정들이 석양때 돌아오면서 우우 달려드는 바람에 무심코 있다 그만 붙잡히었다.
 
161
재춘이 접주(接主 : 郡代表[군대표])인 것이 드러나자, 수하의 동학당원을 다 불라고 무서운 형벌을 하였다.
 
162
묶은 두 정강이 사이에다 육모방망이를 넣고 주리를 틀었다.
 
163
살이 아스러지고, 허연 뼈가 비어져 나왔다.
 
164
재춘은 그러나 이를 뽀도독뽀도독 갈면서 단 한 명도 불지 아니하였다.
 
165
홀태가락에 불을 달궈 가지고 너벅다리에다 단근질을 하였다. 살이 타들어가고 지글지글 끓어도 역시 이를 갈면서 불지 아니하였다.
 
 
166
아픔이 극도에 이르면 죄수는 까물치고 하였다.
 
167
까물치는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형벌을 늦추고는 얼굴에 찬물을 뿜어 깨어난다치면 결박짓고, 목과 발목에 칼 씌워 옥에 가두었다 다음날 또 끌어내단 형벌을 하고…… 나흘째 그러던 참이었었다.
 
168
선용은 큰외숙들에게 자초 이야기를 듣고 나서 옥은 누가 지키느냐고 물었다.
 
169
옥사정 외에 병정이 둘씩 밤마다 와서 지키는데, 돈 몇냥씩 가지고 가면 미음도 들려보내고 가까이 가 이야기도 할 수가 있다고 하였다.
 
170
밤이 이슥하기를 기다려 선용은 큰외숙과 함께 옥으로 갔다.
 
171
두 병정은 열 냥씩, 옥사정은 닷 냥을 각기 받고는 멀찍이 비켜나면서 모른 체하여 준다.
 
172
전후 좌우 사면이 다 진흙을 이겨 돌로 쌓아올린 두터운 돌각담이요, 위는 여는 지붕이요, 앞 한가운데로 육중한 옥문이 있을 뿐 가다 오다 창살 하나도 내지 않았고, 이것이 옥이었다.
 
173
지극히 간단하였으나, 죄수는 다 칼을 씌우고 중죄수는 결박까지 짓고 하여 가두기 때문에, 비록 돌각담 한 겹의 옥이라도 안으로부터의 파옥 같은 것은 하기가 어려웠다.
 
174
옥 안은 밤낮 여부없이 깜깜 어둡고 바닥은 그대로 흙바닥.
 
175
죄수들은 맨흙바닥 위에 가족이 들여주는 짚이나 거적을 펴고 앉아, 혹은 누워 신음한다.
 
176
궂은 비가 오고 이슥한 밤, 고달픈 죄수가 잠을 이루지 못하여 이뭉자뭉하고 누웠노라면 옥 구석으로 좇아 흐느껴 우는 귀곡성이 들리고 한다고 한다. 옥사(獄死)한 원귀의 울음일 것이다.
 
177
옥 구석에는 백골이 굴러져 있는 수도 있다. 친척 외로운 죄수가 옥사를 한 것을, 옥사정이 미처 치우지 아니하면 시체는 그대로 썩어 마침내 백골이 옥 구석으로 굴러다니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178
보름달이 휘영청 밝았으나, 옥은 구중중하고 무섬기가 서늑하였다.
 
179
선용은 옥문 앞으로 바싹 가
 
180
"아저씨? 아저씨?"
 
181
하고 나직이 불렀다.
 
182
반응이 없고 죽은 듯 괴괴한 가운데 문득 자지러진 신음 소리가, 그 가늘고 긴 여운이 바로 귀곡성인 듯 처량히 들리다 스러진다.
 
183
"아저씨? 선용이예요."
 
184
선용이 조금 더 음성을 높여 부르는 소리에 응하여
 
185
"오오, 왔느냐."
 
186
하는 외숙의 약하기는 하나 또렷한 대답이 들렸다.
 
187
"괴로우시드래두, 조금만 일러루 가차이 다가오세서 제 말씀 들으세요."
 
188
"………"
 
189
목과 발목에 칼을 쓰고, 두 팔을 뒤로 결박을 지웠고 한 몸이라, 움직이기에 무한 힘이 드는 모양, 한참 후에야 옥문 바투에서 나두 너를 좀 만났으면 하고 기대리던 참은 참이다.
 
190
"아저씨?"
 
191
"오냐."
 
192
"꼬옥 제가 하자는 대로 하세요, 네?"
 
193
"말해보렴."
 
194
"내일, 첫닭 우는 소리가 들리구 나서, 제가 이 문을 열 테니깐 마침 문 밑에 와 기시다 아모 말씀두 마시구, 제 등에 업히세요, 네?"
 
195
"………"
 
196
"네? 아저씨?"
 
197
"선용아?"
 
198
"네?"
 
199
"네 뜻이 매우 가상하다. 그렇지만 나는 죽어야 할 사람이니 파의해라."
 
200
"사시구 보실 일이지, 어째 돌아가신다구 하세요?"
 
201
"나는 공주 접전에 죽었어야 할 사람이 죽지를 못했어. 그 숱한 동덕(同德 : 同志[동지])들을 억울히 죽게 하고서 나만, 우리만 산대서야 무슨 의리며 무슨 면목이겠느냐. 다만 녹두 수령(首領 全琫準[전봉준])을 무사히 피신시켜 드리느라고, 아깝지 아니한 목숨을 부지해 다녔던 것인데, 더구나 며칠전 소식에, 녹두 수령이 붙잡혔다구 하니, 그 으런두 인제는 돌아가신 으런……"
 
202
"그렇지만 아저씨. 할머니를 생각하세야 아니하세요? 팔십 당년의 할머니가 지끔 하마 돌아가시게 됐답니다."
 
203
"그것두 네가 모르는 소리. 내가 만일 파옥을 하고 달아나 보아라. 누(累)가 당장 그 으런과 너의 큰외숙 으런들 한테 미쳐 하루라도 더 사실 노인을 지레 돌아가시게 하고, 집안은 퐁당 망하게 되고 할테니."
 
204
"이런 때는 제발 그 고집 좀 쓰시지 마세요."
 
205
"고집이 아니다."
 
206
"그럼, 할머니허구 큰외숙들이랑 집안 다아 서울루든 어디루든 우선 먼점 피해 가시게 하구서, 모레구 글피구 오께시니 그럭 허시겠어요?"
 
 
207
"집안일은 둘째다. 나는 죽어야 할 사람야."
 
208
"………"
 
209
"선용아?"
 
210
"네."
 
211
"내가 너를 기대린 것은 다름 아니다. 너의 큰외숙 으런들 한테 부탁을 했어두 했겠지만, 그 으런들이 그걸 가지구 혹시 나를 모면시킬 주선이나 하실까 봐서 네게 짐짓 부탁이니, 너 이 길루 가 내가 거처하는 사랑 아랫목에서 보면 반자가 조금 찢어진 것을 바른 자리가 있느니라. 거길 찢구 손을 넣으면 백지로 맨 책 한 권이 나온다. 그게 우리 포의 열명록(列名錄) 이니, 바로 곧 불에 사뤄버려라. 네게 부탁은 그것 한가지다."
 
212
다음다음날…… 을미年[년](乙未年) 정월 열이렛날.
 
213
박재춘과 함께 세 사람의 동학당원이 옥으로부터 사정(射停)으로 끌려 나왔다.
 
214
사정 앞은 벌판. 벌판을 건너 과녁이 섰다.
 
215
죄수 넷을 결박짓고, 다리 묶고, 눈 가리고 하여 과녁 앞으로 주욱 늘어 앉혔다.
 
216
병정이 양편으로 열 명씩 멀찍이 비껴 서서 경계를 한다.
 
217
사정 마당에는 병정이 이십 명, 일렬 횡대로 늘어섰다.
 
218
원이 육방 관속을 거느리고 나와 사정 마루에 앉았다.
 
219
동네 사람이 남녀 노소 수백명 뭉쳐나와, 사정 마당 좌우로 모여서서 수군덕거린다. 죄수의 가족들이 그 속에 끼여 있고, 더러는 소리를 삼키며 운다.
 
220
이윽고 참령의 구령으로, 사정 마당의 이십여 명 병정의 총부리가 일제히 과녁 앞의 네 명 죄수에게로 향한다.
 
221
이것은 완전히 월권(越權)이요 불법이었다.
 
222
군대는 반란을 일으킨 혐의자를 수색하고 체포하고 하는 권리는 있어도, 그들을 처형까지 하라는 권리는 주어진 것이 없었다.
 
223
그러는 그들은 이르는 곳마다 혐의자를 체포하여 임의로 총살을 하였다.
 
224
그러한 살육을 얼마나 하였는지, 두 눈이 시뻘겋게 충혈된 참령이었다.
 
225
그 참령의 군도를 저으며
 
226
"쏘앗!"
 
227
하는 구령과 동시에 스무 방의 총소리가 한꺼번에 꿍 ——— 울리면서 사람들 사이에서 이는 여자의 자지러진 비명, 그 다음 요란한 통곡.
 
228
선용도 사람들 틈에 섞이어 푸르르 주먹을 떨 뿐 어떻게 하는 수가 없었다.
 
229
이 고을은 접주 박재춘이 그 무서운 형벌 다 당하면서 끝까지 불지를 아니하였기 때문에 겨우 먼저 붙잡힌 세 사람과 박재춘과 네 사람이 죽었을 뿐이었었다. 다른 고을에서는 이삼십 명, 오륙십 명, 더 심한 곳은 몇 백 명씩이 죽고 하였다.
 
230
그 이삼십 명, 오륙십 명 또는 몇백 명이 죄다가 동학란에 참예하였던 사람이냐 하면, 아니었다. 태반은 애먼 죽음이었다. 난에는 가담치 않았고, 단순히 동학당원이라는 것만으로 붙잡혀 학살을 당하고 하였다.
 
231
또, 동학란은 고사요, 동학당원도 아닌 멀쩡한 농민이 혐의를 입어, 혹은 악인이 무고(誣告)로 붙잡혀 원통히 죽기도 약간 한둘이 아니었었다.
 
232
선용은 매부 영석이 옆에 있었으면 하였다.
 
233
개화를 도창하며 혁신정치를 베풀어 나라의 강성을 꾀하고, 백성의 편안을 도모하고, 법을 쓰되 어둠이 없고, 죄를 다스리되 공변되고, 두루 이러하기를 언약한 개화당이 아니더냐.
 
234
조정의 간신과 악신을 물리치고, 나라를 도우며, 도탄에 빠진 백성을 건져 편안히 한다는 동학군의 도창과 다를 것이 없지 않으냐.
 
235
그런 동학군을 개화당이 천하를 다스리고 있는 정치하에서 함부로 붙잡아 죽이고 있다니.
 
236
내란을 일으킨 죄라고?
 
237
그렇다면 두목자들을 벌하는 데 그칠 것이지 동학당원이란 동학당원은 이 잡듯 잡아내어 몰살을 시키려 들음은 무엇이냐. 변변히 심판도 함이 없이…… 항차, 아무 죄도 없는 백성들을 짐승 잡아 죽이듯 죽이다니.
 
238
이렇게 선용은 매부 영석을 대하여 실컷 공박을 하여 주고 싶었다. 그런 깐으로는 당장 두 주먹을 부르쥐고 서울로 쫓아 올라갈 생각이 치밀기도 하였다.
 
239
선용은 재춘의 치상을 치른 후, 불덩이를 삼킨 것 같은 울분한 가슴을 안고 모친이나 하직을 하고서 도로 다시 나서려고 일단 집으로 돌아갔다.
 
240
중로에서 생각하니 맏동서 송서방의 동정이 마음에 걸려 두뭇개에 들러 보았다.
 
241
역시 동학에 가담을 하였었고, 처음 나가서는 무사히 돌아왔다, 둘쨋 번 공주 접전에 나가서는 한번 나간 채 이내 소식이 없어 죽은 것이라 하고, 시체도 찾지 못한 발상(發喪)을 하였다는 것이었었다.
 
242
서산나귀 타고 양주목사 도임 가자던 사람이, 공주성 아래서 주인없는 고혼이 되고 만 것이로구나 하였다.
 
243
선용은 노자 대신으로 인삼을 한 삽짝 사 짊어지고 집을 나섰다.
 
244
서울은 인제는 내키지 않고, 조선 팔도를 한 바퀴 돌아보리라 하였다.
【원문】7. 대학살(大虐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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