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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랑사 (玉娘祠) ◈
◇ 9. 말세(末世)에 횡행(橫行)하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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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
채만식
1
玉娘祠[옥랑사]
 
2
9. 말세(末世)에 횡행(橫行)하는 것
 
 
3
을미년 정월에 인삼 한 삽짝을 노자삼아 짊어지고 집을 나간 선용은, 그로부터 호남 일판을 골골이 더듬어 내려가 영남으로 건너가서, 영남을 역시 골골이 더듬어 올라가 강원도로…… 강원도에서 함경도로…… 함경도서 평안도로 건너가 남쪽으로 내려와 황해도로…… 황해도에서 경기도로…… 이렇게 충청도 하나를 남기고 조선 전도를 골골이 들르면서 포구도 찾고 절도 유심히 구경하면서, 사 년 가까운 세월을 보내고 나, 무술년(戊戌年) 가을의 하룻밤, 무학재 고개로 좇아 푸뜩 서울 장안에 발을 들여놓았다.
 
4
서울서는 우선 누이 내외나 찾아보고, 볼 일도 약간 보고 이내 곧 떠나 고향으로 내려가 모처럼 노모 앞에 문안이나 드린 후, 또 다시 집을 나와 그동안 마음에 계획을 정한 것대로 산으로 들어가고 이럴 예정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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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그러자, 생각지 아니한 재미스런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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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아관파천을 계기로 하여 한 새로운 국민운동이 일어났다. 독립 협회(獨立協會)가 바로 그것이었다.
 
7
임오군란으로부터 시작하여 청국과 일본과 노서아는 서로가 제마다 조선을 저의 손아귀에 넣으려고 겯고 틀고 하고, 안으로는 이들 외국의 수족 노릇을 하고 있는 정당들이 바깥과 호응을 하면서 서로가 또한 치고 받고 하고 하는 사품에 국민은 그동안 벌써 피비린내 나는 변을 몇 번을 치렀는지 모른다.
 
8
정치는 국력을 높이는 데 힘을 쓸 겨를이 없었다.
 
 
9
내정은 썩을 대로 썩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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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이지 않는 내란으로 농촌은 황폐할 대로 황폐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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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국가의 기초가 되는 민생은 도탄이 이미 바닥에 닿은 느낌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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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적인 혁신이 없기 전에는 명일은 멸망이 있을 따름이었다.
 
13
가뜩이나 거기에다 아관파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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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왕궁을 버리고, 일개 외국의 공사관으로 가 그러나마 감금이 되어 있는 바나 다름없는 형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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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주권자 왕을 외국 사절에게 빼앗긴 것은 국가의 주권을 빼앗겼음과 일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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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차에 국력의 근원이 될 산업자원은 중요한 이권이 차례로 차례로 외국인의 수중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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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군사적 간섭으로 부터 경제적 침략에로의 발전이었다.
 
18
신지식을 배우고, 국제정세와 국내사정에 눈을 뜬 진보적인 청년들 사이에, 쇠망의 한길을 밟고 있는 민족국가를 근심하여, 어떤 외치는 소리가 있기를 기다리는 기운이 뿌듯이 일고 있었다.
 
19
갑신정변 때에 미국으로 망명을 갔다 건양 원년(丙申年[병신년]) 정부의 외부 고문(外部顧問) 자격으로 고국에 돌아온 서재필, 미국 유학생 윤치호, 그리고 청년지사 이상재(李商在), 이들이 중심이 되어 독립협회를 조직하여 가지고 민권사상(民權思想)과 독립정신과 혁신사상으로써 국민에게 부르짖자, 이를 기다리던 신진 청년들은 일시에 물결 쏠리듯이 독립협회의 깃발 아래로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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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 밖에 있는 영은문(迎恩門)과 모화관(慕華館)은 중국으로부터 칙사(勅使)라는 것이 오면 왕이 나아가 맞이하는 곳으로, 이를테면 조선이 중국의 속국이요, 속국 조선은 상국인 중국에 이렇듯이 잘 복종하고 있고 하다는 것을 표증하는 물건들이었다. 따라서, 독립정신을 지닌 조선 사람으로서 볼 때에는 국치기념물(國恥紀念物) 같은 것이라고도 할 수가 있었다.
 
21
독립협회에서는 이 국치기념물 영은문을 헐어버리고 그 자리에다 독립문을 세우고, 모화관을 부수어 독립관을 만들고 하였다.
 
22
이 영은문을 헐어 독립문을 세우고, 모화관에다 독립관으로 현판을 갈아 붙이고 한 사실은, 조선의 자주독립이 조정의 외교교섭이나 또는 외국의 힘에 의지하지 않고, 한 국민운동으로서 민중의 힘으로 일으켜진 것이라는 의미에서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나, 또는 정부에 대하여서나 큰 충동과 자극을 준 것이 있었다.
 
 
23
독립관에서는 일요일마다 강연회나 토론회가 열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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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필을 비롯하여 박치훈(朴致勳), 최정덕(崔廷德), 윤치호 같은 지식 분자, 또는 열있고 기개 좋은 이상재, 장붕(張鵬), 이승만, 이런 사람들이 연사가 되어, 민권사상이 무엇이며 외국 ─ 특히 미국의 민주주의적인 실정을 말하여, 조선이 민주주의적이 아님을 지적하고, 앞으로 크게 민권이 신장되어야 할 것을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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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년 동안 중국의 속국으로서 욕되게 살아온 역사를 폭로하여 독립 정신을 고취하고, 외국이나 정부의 손에 맡길 것이 아니라 국민의 힘으로 자주독립의 길을 열어야 할 것을 역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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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를 공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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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일개 외국의 공사관에 가 감금이 되어 있다시피 하되, 팔짱을 끼고 우두커니 보고만 있는 정부의 무능을 공격하였다. 그러면서 하루바삐 왕이 궁중으로 돌아와야 할 것을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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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중요한 이권이, 정부와 국민이 모르는 사이에 자꾸자꾸 외국 사람의 수중으로 넘어가는 실정을 폭로하며 반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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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관원의 여전한 학정과 불법과 토색질을 폭로하여, 책임이 중앙정부에 있음을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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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숨김이 없고 기탄할 것이 없고 두려워함이 없이, 그른 것을 치고 바른 것을 추앙하며 주장하였다.
 
31
강연하는 인사의 말은 불을 뿜는 듯하였으며, 태도에는 열과 정성과 기운이 넘치었다.
 
32
강연과 토론회가 열리면 독립관은 청중으로 미어졌다. 넓지 못한 대청은 먼저 온 사람으로 가득차고, 늦어 당도한 사람들은 수백 명씩이 바깥으로 모여 섰고 하였다.
 
33
그들은 일찌기 이처럼 참신한 말과 정당한 말과 그리고 통쾌한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34
그들은 흥분하여 강연을 들었으며, 독립관이 무너질 듯 요란한 박수로써 연사의 말이나 주장에 동의를 표시하고 하였다.
 
35
독립협회에서는 일변 서재필이 주재하고 윤치호가 편집을 맡아 영문(英文)과 조선말로 독립신문을 발행하였다.
 
36
이 독립신문에서도 역시 강연이나 토론에서와 마찬가지로, 민권사상과 독립 정신과 개혁사상을 고취하였음은 물론이었다.
 
37
독립협회의 행동은 국민들도 처음 구경하는 노릇이었지만, 정부로서도 처음 당하는 일이었다.
 
 
38
정부는 이렇게 대담하고 노골하게 조정의 하는 일을 공격하며 반대하는 민중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39
그들은 국민이 그렇게 하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 즉 법에 비추어 보아 그런 짓을 할 수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을 처음에는 분간조차도 하지 못하였다.
 
40
미상불, 아무리 둘러보아야, 백성이 모여서 조정을 공박하고, 조정이 하는 일을 반대하고 하는데 대하여 그것을 금할 만한 법령은 정부로서 가지고 있는 것이 없었다. 부득불 있다고 하면, 왕이 전재권을 행사하여 칙령으로써 막는 것 밖에는 없을 것이었었다.
 
41
일찌기, 야소교와 미국 계통의 지사랄지 대신과 정객들이 중심이 되고, 개화당과 친로파의 인물도 섞이고 한 사교단체 정동구락부라고 하는 것이 있었다. 독립협회는 정동구락부의 후신이라고 함직한 것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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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협회는 태생이 그렇게 미국 냄새가 나는 정동구락부인데다, 설도하고 지도하는 서재필, 윤치호 들이 미국 패요, 실지에 있어서도 미국공사로 와 있던 시일이며 알렌이며, 그리고 배재학당의 아펜젤러, 제중원의 에비슨, 언더우드, 이런 당시에 왕의 신뢰를 받고, 궁중에도 자주 출입하고 하는 미국 사람들이 등 뒤에서 많이 원조를 하고 하기 때문에, 자연 친미적인 색채가 농후치 아니할 수가 없었다.
 
43
따라서 독립협회가 앞으로 더 자라, 보다 더 강력하고 효과적인 정치 투쟁을 하게 된다면, 배후의 미국 세력이라는 것도 그만큼 커졌음을 의미하는 것일 것. 그때에 가서 독립협회가 과연 원조와 간섭을 잘 분간하여 받을 것 같고, 물리칠 것 물리치고 할 현명한 역량이 갖추어져 있다면 모르거니와, 만일 그렇지를 못하는 날이면 독립협회 역시 개화당과 일본파가 실패한 길을 밟고 말 것이나 아닐지는 모르는 노릇이었었다.
 
44
독립협회는 아뭏든 자랐다.
 
45
국민의 지지가 서울 장안에만 그치지 아니하고 지방에 까지 미치고.
 
46
열있는 회원이 불고.
 
47
일하는 솜씨가 늘고.
 
48
독립협회는 마침내 독립관의 좁은 대청에서 회원끼리만 모여 강연회나 토론회를 열고, 회원끼리만 듣는데서 민권을 주장하고 정부를 공격하고 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가 없었다.
 
49
회장을 대담히 종로 네거리로 옮겼다. 회원 말고도 더 많은 민중의 앞에서, 민중과 더불어 일을 하자는 것이었었다.
 
50
독립협회가 회장을 옥내로 부터 가두로 옮겨 종로 네거리로 나오면서 부터는 그 연설하고 토론하고 하는 것을 만민공동회(萬民共同會)라고 이름하였다.
 
51
만민공동회는 거진 날마다 열리었다.
 
52
만민공동회는 정부의 대신을 불러다 앉혀 놓고, 민중이 보고 듣는 면전에서 정부를 공격도 하고, 개혁의 실제 방법을 들려주기도 하였다.
 
53
독립협회가 종로 네거리에서 만민공동회를 열던 전후하여, 일본 유학을 하고 있던 많은 청년 학생들이 다투어 고국으로 돌아와 독립협회에 가담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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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공동회와 그리고 일본 유학생들의 참가는, 독립협회의 정치적 색채와 행동을 일단 더 선명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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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일본 망명의 개화당들과도 연락이 생기고, 박영효에게서는 적지 아니한 운동자금이 오기까지 하였다.
 
56
노상 귀머거리나 청맹과니 아닌 정부에서는 비로서 독립협회를 경계하기 시작하였다.
 
57
독립협회가 왕을 내쫓고, 윤치호를 올려 앉혀 미국처럼 대통령을 삼는다더라…… 이런 풍설이 떠돌았다.
 
58
오래잖아 박영효가 돌아와 갑신정변 같은 변을 꾸민다더라…… 이런 풍설도 떠돌았다.
 
59
정부는 잔뜩 겁이 나 가지고, 독립협회를 그대로 두었다는 아무 때 봉변을 하여도 톡톡히 봉변을 하고 마는 것이라고, 그러니 어떻게든 이것을 뚜드려 엎어야 하는 것이라고 단단 벼르기 시작하였다.
 
60
한편 독립협회는 독립협회대로, 종로 네거리까지 나와 매일같이 목이 터지도록 민권을 주장하고, 썩은 정부를 공격하며 개혁을 부르짖고 하여도, 정부에서는 전혀 묵살을 하고, 조그마한 반응이라는 것이 없었다.
 
61
이에 독립협회는 다시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 실재적인 직접 운동을 가지지 아니치 못할 형편에 이르렀다.
 
62
광무(光武) 2년 무술(戊戌) 시월 스무여드렛날, 만민공동회를 열던 종로 네거리 그 자리에서, 만민공동회 대신 관민공동회(官民共同會)라는 것을 열게 된 것이 그 실제적인 직접 운동의 첫걸음이랄 것이었었다.
 
63
선용은 매부 영석과 함께 일찌감치 점심을 마치고, 관민공동회가 열리는 종로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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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을…… 햇빛은 맑고, 높다란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한껏 푸르렀다.
 
65
육조(六曹) 앞으로 좇아 황토현 척화비(斥和碑) 옆에 당도하였을 때에는, 사람들이 벌써 종로 네거리 쪽으로 향하여 꾸역꾸역 몰려가고 있었다.
 
 
66
종각 앞으로 단을 모아 연단을 만들고, 연단 바로 앞이 특별석…… 특별석에는 걸상을 수십 개 벌여놓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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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회원석은 거적을 여러 백닢을 펴, 그 위에 가 앉도록 마련이었다.
 
68
선용과 영석이 회장에 당도하였을 때에는, 회원석은 벌써 앞쪽으로 절반이나 차 있었으나, 특별석은 간부 몇 사람이 혹은 앉았고 혹은 오락가락 할 뿐이지, 오늘 회의 주최의 중심이랄 수 있는 정부의 각 대신들은 아직 와있지 아니하였다.
 
69
영석은 선용을 데리고 넌지시 특별석 가까이로 와, 간부들을 누가 누구요 하다고 가르쳐 주었다. 저쪽으로 나란히 앉은 두 사람 가운데, 뚱뚱한 이가 이상재, 가냘픈 이가 이승만이요, 이쪽으로 혼자 우두커니 앉아 골똘히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방한덕이요, 부리나케 시방 특별석으로 들어오고 있는 사람이 회에서 하도 반대를 잘하여, 남궁반대 남궁반대 하는 남궁억(南宮檍)이요 하다고.
 
70
영석은 병신년 이월, 아관파천으로 개화당이 몰락이 되고, 이어서 그해 가을 독립협회가 생기자, 독립협회와 개화당은 진보적인 점에 있어 서로 일맥상통 하는 것이 있고, 한편 영석으로 말하면 제중원에 다니던 관계로 하여 친미적인 경향을 가졌고 하였기 때문에, 즉시 독립협회에 들어 가지고, 이래 열심한 회원 노릇을 하여 왔었다.
 
71
선용은 영석을 만나, 독립협회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자상히 들었고, 매우 흥미를 느끼었다. 그리고 오늘 열리는 관민공동회로 말하면, 정부 대신을 청하여다 관민이 한 자리에서 국정을 토의하고 혁신안을 결의하여, 그것을 그대로 시행을 하도록 정부에 요구하고, 하기 위한 회라고 하는 데 대하 여서는 한층 더 깊은 흥미와 더불어 큰 기대를 가지고 회에 참석을 한 것이었었다.
 
72
이윽고 남녀를 타고 구종을 거느린 양반 행차 하나가 당도하였다. 키가 후릿하고 얼굴이 해사한 그 양반이 외부대신 이완용이라고 영석은 선용에게 가르쳐 주었다.
 
73
이완용은 배재학당에도 다녔고, 배재학당에 다닐 때에는, 점심때면 학교에서 고깃국을 끓여 학생들을 주고 하였는데, 하루는 어떡하다 고깃국을 끓이지 아니하였더니 이를 괘씸타 하여, 교장 아펜젤러를 잡아 엎어놓고 볼기를 친 삽화의 주인공이었고, 정동구락부 적부터의 회원이요 하였다.
 
74
한참 있다 총리대신 박정양과 내부협판 김중환이 오고, 또 한참 있다 법무대신 조병식이 오고, 또 한참 있다 탁지부대신 윤용구가 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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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대신들의 행차가 늘어지고 띄엄띄엄하여, 각부 대신이 대강 다 모이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려야 하였다.
 
76
회원은 오래 전에 이미 모일 대로 모여, 좌석은 찰 대로 다 차고, 넘친 사람은 가로 둘러서고 하였다.
 
77
이상재가 연단으로 올라섰다. 회원들이 일제히 박수를 하였다.
 
78
그동안까지 회장이던 윤치호는, 윤치호가 대통령이 되려고 음모를 꾸민다는 풍설이 돌자 회장을 사임하고 나오지 않았고, 이상재가 회장 노릇을 하였었었다.
 
79
이상재는 박수가 끝나기를 기다려 입을 열었다.
 
80
"시방 우리 나라의 정치로 말하면, 여러분도 다 아시다시피 대단히 문란합니다. 도무지 무엇 한가지 절차를 밟아 규칙있게 되어가는 것이 없읍니다. 가령 재정(財政)을 놓고 봅시다. 대범, 국가의 재정이라고 하는 것은 탁지부에서 그것을 관리를 하도록 마련이 아니겠읍니까?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는 탁지부라는 것이 있기는 있되, 세전이랄지 혹은 달리 국고(國庫)로 수입이 되는 돈이, 탁지부로는 몇푼이 들어가지를 못하고서, 거지반 다 내장원(內藏院), 왕실의 사사회계를 맡은 내장원, 글러루 들어갑니다그려. 들어가 가지고는,무엇에다 어떻게 쓰이는지도 모르게 흐지부지 다 없어지고 마는군요."
 
81
요란한 박수 소리에 섞이어
 
82
"옳소."
 
83
하고 고함치는 소리가 일었다.
 
84
이상재는 이어서
 
85
"그러고는, 정부에서는 돈이 없어서 쩔쩔 매고, 관리들 월급도 못 주고, 외국에서 차관 ─ 빚 얻어올 궁리들이나 하고 앉었고……"
 
86
이상재는 그러면서, 싱긋 웃으면서 특별석의 정부 대신들을 고갯짓으로 가리켰다.
 
87
회원석에서는 웃음 소리와 박수 소리와, 옳소 하는 고함 소리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88
이상재는 그 구수한 말솜씨와 능청스런 몸짓으로, 곧잘 이렇게 청중을 웃겨놓곤 하였다.
 
89
이상재는 다시 계속하여 외교의 문란함을 말하였다.
 
90
당연히 우리의 손으로 개발을 하여 우리 나라를 부강케 할 광산, 철도, 삼림, 이런 여러 가지의 중요한 이권이 쥐도 새도 모르는 사이 자꾸 자꾸 외국 사람의 손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것을 말하였다.
 
91
그런 후에 결론으로, 나라의 정치가 그와 같은 문란하여서는 나라는 필경 망하고 마는 것이다. 우리는 국민 되어 나라가 망하는 것을 보고만 앉았는 것은 도리에 어그러진 일이다. 우리는 상하와 관민이 한가지로 떨치고 일어서서 이 기울어가는 나라를 구하여야 할 것이요, 오늘날 여기에 관민 공동회를 연 뜻이 거기에 있는 것이다…… 이런 말로써 개회사를 마치었다.
 
92
갈리어, 남궁억이 연단으로 올라섰다.
 
93
회원의 박수.
 
94
남궁억은 무엇인지 적은 종이쪽을 탁자 위에 펴놓고는
 
95
"오늘날 우리 나라 정치를 바로 잡자면, 비단 한두 가지가 아닐 것입니다. 그것을 다 바로잡자면, 한 번 두 번이나 하루 이틀에는 도저히 어려운 일 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중 급한 것을 몇 가지만 추려 가지고, 어떻게 개혁을 했으면 좋겠다는 초안을 만들어 보았읍니다. 그것을 본인이 주욱 한번 읽어 드리고 나서 ,다시 한 조목 한 조목을 들어 여러분의 의견을 묻기로 하겠읍니다."
 
96
남궁억은 탁자 위에 펴놓았던 종이쪽을 집어들고, 일단 높은 음성으로 읽는다.
 
 
97
1. 외국인에게 의뢰 의탁치 말고 관민이 동심합력하여 전제 황권(專制皇權)을 굳게 할 것.
98
2. 광산, 철도, 전기, 삼림, 이런 이권이랄지 차관(借款), 차병(借兵) 기타 외국과의 조약이랄지 이런 것은 각부의 대신과 중추원 의장이 다같이 이름을 쓰고 도장을 치고 한 것이 아니면 실시치 못할 것.
99
3. 재정은 탁지부에서 관리하되 다른 부에서는 간섭치 못할 것이며, 예산과 수지결산(收支決算)은 국민에게 공포를 할 것.
100
4. 중대한 범죄인은 공판을 하되, 피고가 자백을 한 후에 비로소 법률로 다스릴 것.
101
5. 칙임관은 왕이 정부에 자문하여, 각부 대신의 절반 이상의 동의가 있은 다음에 임명을 할 것.
102
6. 장정(章程)을 실천할 것.
 
 
103
남궁억은 읽기를 마치고 나서
 
104
"이 여섯 조목입니다. 그러면 본인이 다시 한 조목 한 조목 읽어 드릴테니 가하면 가하다, 불가하면 불가하다 말씀을 하십시오. 자, ① 외국인에게 의뢰치 말고, 관민이 동심 합력하여, 전제 황권을 굳게 할 것……어떻습니까?"
 
105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박수 소리와 좋소, 옳소 소리가 땅이 깨질 듯 요란히 일었다.
 
106
남궁억은 그 다음, 대신들을 내려다보면서 정중히 묻는다.
 
 
107
"정부의 대신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을 하십니까?"
 
108
대신들은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람, 좌우를 돌아보는 사람뿐이지, 아무도 대답을 내는 사람은 없었다.
 
109
"가하면 가하다고, 불가하면 불가하다고 빨리 대답을 하십시오."
 
110
남궁억의 재촉에, 마지 못해 그중 몇이 좋소 하고 대답을 한다.
 
111
"정부의 대신 여러분께서도 가하다는 의견이십니다."
 
112
남궁억이 회원들에게 이렇게 선포를 하자, 회원들은 일제히 박수를 보냄으로써 대신들을 칭찬하였다.
 
113
대신들이야 속으로는 도무지 성가시고 긴치가 않았으나, 그렇다고 드러내놓고 반대를 하였다가 이 말성꾸러기 독립협회에게 두고 두고 무슨 욕을 먹으며, 무슨 트집을 잡힐지 모를 노릇이라, 그것이 꺼리어 마지못해 한 대답인 것은 물론이었다.
 
114
남궁억은 다음 조목으로 옮아가
 
115
"광산, 철도, 전기, 삼림 이런 이권이랄지 차관, 차병 기타 외국과의 조약이랄지, 이런 것은 각부의 대신과 중추원 의장이 다같이 이름을 쓰고 도장을 치고 한 것이 아니면 실시치 못할 것…… 이것은 어떻습니까?"
 
116
회원들은 먼저와 같이 박수와 좋소 옳소 소리로 찬성을 하고.
 
117
대신들은 그들 역시 먼저처럼, 그중 몇 사람이 간단히 좋소 하였고…… 갈데 없는 절에 간 색시였었다.
 
118
이렇게 해서, 여섯 가지의 개혁안은 아무려나 관민공동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가 된 셈이었다.
 
119
남궁억은 관민이 이와 같이 열렬히 개혁안에 찬성하여 준 것을 감사 한다는 치하의 말을 한 후에
 
120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이 자리에서 천 가지 만 가지의 좋은 안을 토의하고 결의하고 했다고 하더래도, 그것이 실시가 되지를 아니하면 아무 보람도 없는 것입니다."
 
121
"옳소."
 
122
회원석에서 맞장구를 치고.
 
123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다시 이런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무엇이냐 하면, 우리가 지금 결의한 그 여섯 가지 개혁안을, 총리대신 이하 각 대신이 대황제폐하(大皇帝陛下: 王)께 상주를 해서, 윤허(允許)를 받자와 정부로 하여금 즉시 그대로 실시를 하도록…… 어떻습니까?"
 
124
박수와 옳소 좋소 소리가 한결 더 맹렬할 뿐 아니라, 벌떡벌떡 일어서서 팔을 쳐들고 휘저으면서 고함을 치는 회원도 여럿이 있었다.
 
 
125
남궁억은 회원석이 진정이 되기를 기다려 특별석의 대신들더러 묻는다.
 
126
"정부의 대신 여러분께서는 의견이 어떠십니까?"
 
127
대신들은 여간만 딱하지가 않았다.
 
128
세상 거북한 일을 떠맡게 되는데, 그렇다고 만일 못한다고 하여서는 당장 저 흥분해 날뛰는 녀석들(회원들) 앞에서 무슨 봉변을 하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129
남궁억은 대신들의 얼굴을 주욱 훑어보았다.
 
130
모두가 난감한 기색이었다. 그러나 완고하고 고집불통으로 이름난 법부 대신 조병식만은 잔뜩 골이 나가지고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장히 봄직한 것이 있었다.
 
131
조병식은 속으로
 
132
'이 발칙스런 놈들이, 이 앙뚱스런 놈들이…… 이놈들을 당장 붙잡아 들여다 치도곤을 안겨야지, 이런 흉악한 놈들이 있더람?’
 
133
하고 분개하면서 벼르는 속인 것이 역력하였다.
 
134
곧기만 하였지, 물정 모르는 완고장이 늙은 조병식으로는 또한 그럼직도한 노릇이었다.
 
135
남궁억은 총리대신 박정양과 얼굴이 마주쳤다.
 
136
얼굴이 마주친 채 남궁억은 눈으로 대답을 재촉하였다.
 
137
박정양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대답이었다.
 
138
"여러분의 의사가 그러시다니 시키시는 대로 해보리다."
 
139
박정양은 사람이 한갓 춘풍샌님으로 중추가 굳고 적극적이고 하지는 못하였으나, 일찌기 전권대사로 워싱턴에 가 미국 바람도 쏘이고 한 인물이니 만큼 쓰잘데 없이 완고스럽거나 또는 음험한 구석이 있거나 한 것은 없었다.
 
140
선용은 영석과 함께 흩어지는 군중에 섞여 돌아가면서, 생후 처음으로 오늘 재미있고도 속 후련한 꼴을 보았노라고, 나도 독립협회에 들어 하다못해 심부름꾼 노릇이라도 하면서 같이 일을 하겠으니, 천거를 하여 달라고 하였다.
 
141
박정양은 언약대로 독립협회가 관민 공동회에서 결의한 여섯 가지 개혁 안을 상주한 결과 왕은 즉시 윤허를 할 뿐 아니라 한걸음 나아가
 
 
142
1. 언로(言路:言論)의 자유를 줄 것.
143
2. 언론과 집회의 조례를 정할 것.
144
3. 지방관리의 불법과 토색을 엄히 처벌할 것.
145
4. 어사, 시찰원(視察員)의 작폐하는 자를 조사하여 처벌할 것.
146
5. 상공학교(商工學校)를 설시할 것.
 
 
147
이런 다섯 가지 조목을 더하여 곧 실시하도록 명하였다.
 
148
왕은 독립협회의 운동에 대하여, 그것이 순전한 평화적인 운동인 데에 매우 호의적인 태도를 가졌었다. 맨처음 독립협회가 종로에서 관민공동회를 열던 날 밤에는 윤치호와 이상재를 궁중으로 불러, 회의 취지와 운동 방침 같은 것을 묻고, 목적이 좋으니 열심히들 하라는 격려의 부탁까지 한 일이 있었다.
 
149
그 뒤로 독립협회에 대하여 좋지 못한 여러 가지 풍설이 떠돌고, 또 법부대신 조병식이니 내부협판 김중환이니 하는 축들은, 늘 있는 말 없는 말 꾸며대어 왕의 앞에서 독립협회를 모함하고 훼방하고 하였으나 왕은 그것을 전적으로 곧이 듣지는 않았었다.
 
150
독립협회에서는 왕이 그렇듯, 독립협회의 제안을 승인할 뿐 아니라 자진하여 중요한 개혁안을 다섯 조목이나 더 보태어 곧 실시하도록 정부에 명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기운을 얻었다.
 
151
그리하여, 11월 5일날 또 다시 관민공동회를 열고, 보다 더 범위가 넓고 적극적인 운동을 일으키되, 가령 정부의 현임 대신 가운데 혁신정치를 담당하기에 적당치 못하다고 인정하는 인물은 이를 갈아 없앨 것을 주장하기로 하는 등, 간부 일동은 방침을 상의하고 진행 준비를 하고 하기에 분주하였다.
 
152
선용은, 일이야 있으나 없으나 매일같이 회관으로 가 회원들이 하는 이야기에서나, 혹은 간부 누가 무심코 흘리는 말 한마디에서나, 그것으로써 저의 식견을 늘리고 하기에 열심하였다.
 
153
계획과 준비는 다 되어 내일이면 크게 관민공동회를 열어 한바탕 일을 해치운다던 그 안날 ─ 십일월 초나흗날 정밤중이었다.
 
154
별안간 경무청으로부터 순검과 별순검(刑事)이 여러 떼가 일제히 독립협회의 회관을 비롯하여 사처로 풀려나와 이상재, 윤치호, 방한덕, 이승만, 남궁억, 장붕, 최정덕, 나수연, 박치훈, 박진수 들의 간부 열일곱명을 체포하고, 독립협회의 문부를 압수하고, 그리고 독립협회 해산의 칙령이 내리고 하였다.
 
155
이유는, 독립협회가 11월 5일날 일제히 들고 일어나서 갑신정변이나 을미사변 때와 같이 폭력으로 변을 일으키어, 정부의 대신들을 모조리 잡아 죽이고 하되, 더우기 이번에는 왕을 폐하고, 독립협회의 간부 누구로 대통령을 삼고 할 음모를 꾸몄다는 것이었었다. 그리고 증거 재료는 어떤 자의 투서라고 하였다.
 
156
독립협회는 그야말로 어둔 밤에 홍두깨요, 마른 하늘의 벼락이었다.
 
157
이 소식을 아는 회원이나 모르는 회원이나 예정한 닷샛날, 회원들은 종로 네거리에 미어지도록 모였다.
 
158
회원들은 흥분하여 즉시 경무청 앞에서 만민공동회를 열고, 고영근(高永根)이 임시회장이 되어 정부당국의 불법을 공격하면서 체포한 열일곱 명의 석방을 부르짖었다.
 
159
체포된 열일곱 명 간부는 경무청으로부터 재판소로 넘어갔다.
 
160
독립협회는 다시 재판소 앞에다 만민공동회를 붙이고, 여러 천 명 회원이 모여 사오 일을 두고 밤이나 낮이나, 비바람 상관 없이 흩어질 줄 모르고 정부를 공격하는 연설을 하면서 기세를 올렸다.
 
161
그 많은 군중이 경무청 앞에 모여서 혹은 재판소 앞에 모여서, 밤과 낮으로 며칠씩을 두고 정부 공격의 선동적인 연설을 하고, 체포된 범인의 석방을 요구하고 하면서 흩어지지 않고 하였건마는, 경찰은 그를 해산시키려고 총 한 번 쏘는 법 없고, 아무리 과격하게 정부를 공격하여도 연사 한 사람 검속하는 법 없고 하던 것을 보면, 이때에 경찰이 어수룩하였다고 할 것인지, 차라리 문명하고 민주주의적이었다고 할 것인지.
 
162
체포된 간부 열일곱 명은 재판소로부터 감옥으로 넘어가고, 만민공동회는 종로 네거리로 도로 회장을 옮았다.
 
163
독립협회는 만민공동회를 열어 독립협회를 무함한 법무대신 조병식, 내부협판 김중환 들을 파면할 것, 독립협회 해산의 칙령을 철회할 것, 전일의 개혁안 여섯 조목과 및 다섯 조목을 실시할 것을 요구하였다.
 
164
정부에서는 들은 성도 아니하였다.
 
165
독립협회에서는 정부가 그와 같이 민론(民論)을 무시할지면 정부를 젖혀놓고, 왕께 직소(直疏)를 올리는 것도 또한 방법이라 하여, 명동(明洞) 장악원(掌樂院)을 소청(疏聽)으로 정하고, 치소원(治疏員)을 뽑아 즉시 소를 닦게 하였다.
 
166
11월 15일날에는 첫소(初疏)가 들어갔고, 이어서 재소(再疏)가 들어가자, 왕으로부터 비지(批旨)가 내리기를
 
167
"소사(상소의 뜻)는 마땅히 유념을 할 것이니, 너희들은 물러가 각기 생업에 힘쓸지어다."
 
168
하였다.
 
169
독립협회에서는 그런 어리무던한 대답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었다.
 
170
삼소(三疏)를 올렸다. 올리되, 이번에는 재래 유생들이 하듯이, 복합정소(伏閤呈疏)의 법식으로 하였다. 궐문 밖에 엎드려 소를 올리고, 만족한 비지가 내릴 때까지 엎드려 있는 채 물러가지 않는 것이 복합정소라는 것이었었다.
 
 
171
21일 이른 아침, 오백 명 가량으로 된 독립협회의 소원(疏員)이 덕수궁 인화문(仁化門) 앞에 일제히 엎드렸다.
 
172
오백 명의 소원은 일찌기 보지 못하던 장관이었다.
 
173
장안의 인심은 수수하였다.
 
174
독립협회는 다른 사람과 달라 저럭허다 필경 무슨 변을 일으키지 하는 사람도 있었다.
 
175
누구는 소원들이 만일 한걸음이라도 궐문 안으로 들어서면, 그대로 대고 쏘아대려고 대궐 안에는 마침 복병을 묻어놓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176
경무청에서 순검을 있는 대로 풀어, 소원들을 죄다 묶어가려고 시방 포승을 불시로 많이 장만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는 날이면, 독립협회 사람들이 누구라고 만만히 포박을 질 리가 없고, 정녕 싸움이나 갑신· 을미적의 변이 또 일고 말 것이니, 진작 피난이라도 갈까보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177
그럭저럭 오정이 되었다.
 
178
독립협회의 소원들은 아직도 소장도 올리지 못하고들 엎드려 있는데, 그러자 과연 변이 났다. 독립협회가 변을 낸 것이 아니라 도리어 변을 만났었다.
 
179
정동 쪽으로 부터 웬 패랭이 쓰고 탑골치 미투리에 날아갈 듯 감발하고, 손에는 제마다 율무작대기를 들고 한 장한들이 이백 명인지 삼백 명인지 골목이 미어지도록 우우 달려들어, 이놈들 역적놈들 하고 호통을 하면서 다짜고짜로 소원들을 두들겨 패었다.
 
180
무심코 엎드려 있다가 불의에 습격을 당한 소원들은, 창졸간에 더구나 맨 주먹으로 어떻게 할 바를 몰랐다.
 
181
장한들은 범같이 날뛰면서, 이놈 치고 저놈 갈기고 개잡듯 두들겨팼다.
 
182
두들겨 맞으면서, 소원들은 뿔뿔이 풍겨 달아났다.
 
183
선용은 결기에, 한 놈의 율무작대기를 뺏어 들고 대항을 하였다.
 
184
선용의 갈기는 율무작대기에 얻어닿는 놈은, 미상불 한 대에 쓰러지고 쓰러지고 하였다.
 
185
그러나, 열이나 스물이라면 몰라도 이삼백 명 총중에 뛰어들어 율무작대기 하나를 휘두르면서 단신으로 날뛰어 보았자 결과는 번연한 노릇이었다.
 
186
한참 정신없이 날뛰다 보니, 겹겹이 에운 적의 무더기 속에서 혼자 처져있는 것이었었다.
 
187
정부에서는 얼마 전부터 각도의 등짐장사패(負商[부상]패)를 서울로 불러 올려, 황국협회(皇國協會)라는 것을 조직케 하였었다.
 
188
갑신년에 상리국(商理局)이라고 하는 것을 두어, 등짐장사패를 감독 지도하다 미구에 흐지부지하고 말았는데, 그 상리국을 다시 설시한다는 핑계였으나, 실상은 독립협회와 대항할 수 있는 정부편의 폭력단을 가지기 위하여, 두목 이기동(李起東)과 은밀히 짜고 각도로 부터 이천 명 가까이 등짐장사패를 불러올려 마포에다 묻어두고 기회를 기다리던 참이었다.
 
189
그리고 이 날, 인화문의 독립협회의 소원을 엄습한 것은 그 중의 선발대였었다.
 
190
주의 주장이나 지조가 있어서가 아니라 한갓 재물에 팔리어 반동 세력을 싸주는 무리들…… 이것은 낡은 것이 물리어 나기를 발악하는 시절, 즉 말세에는 어느 때고 그런 것이 횡행을 하는 법이었다.
 
191
지나간 병인양요(丙寅洋擾) 적에 대원군은 이 등짐장사와 도한(屠漢: 白丁[백정])들을 불러올려 군량의 운반 같은 것을 시켜 효과를 보았고, 이어서 서울의 성을 중수하는데 그들 등짐장사패와 도한들로 하여금 공사를 감독하게 한 일이 있었다.
 
192
명색이 없고 무지하며 막된 무리들이라 그런 것이나마 권세라고 가지게 되자, 이를 기화로 행악이 대단히 심한 것이었었다.
 
193
지방에서 올라온 부역꾼들을 함부로 꾸짖고 때리고 하는 것은 예사요, 거리로 패지어 다니면서 외상술 먹고 야료 놓기, 무단한 사람 붙잡고 시비 걸어 구타 하기…… 그 기억이 아직도 새로운 장안 안 백성들은 등짐장사패라면 아주 질색을 하고, 동저고리 바람에 패랭이 쓰고 율무작대기 짚은 놈이라면 얼씬만 하여도 미친 개를 만난 것처럼 꺼리어 하였다.
 
194
그러했기 때문에 그들이 표방하기를, 우리 황국협회는 찬역을 도모하는 독립 협회의 무리를 쳐 없애고, 을미년의 국모의 원수를 갚으며, 왕실을 태안히 받들며 한다는 것이었으나, 가사 그 표방이 동감이 되는 점이 있기는 있더라도 보기에 조차 흉악스런 그들을 환영스럽게 생각하는 백성은 별로이 없었다.
 
195
이튿날 석양.
 
196
선용은 길쭉한 몽둥이 하나를 장만하여 가지고 매부 영석과 함께 집을 나섰다.
 
197
머리를 싸 동이고 다리는 절름절름 절고 하면서도 그는 나섰다. 어제 인화문 앞 싸움에서 머리통과 다리와 그 밖에 여러 곳을 다쳤었고 퍽 위험한 지경을 가까스로 면해 나왔었다.
 
198
가뜩이나 다치기 알라한 사람이 번연히 오늘도 나가는 날이면, 힘만 믿고 함부로 날뛸 것이라 하여 누이 내외는 절절히 만류하였으나, 선용은 도리어, 내가 신학문이 도저한 바 아니요, 언변이 있어 연설 한마디 할 수 있는 잡이도 아니요, 있는 기운으로나 이런 때 회를 위하여 한몫 도움이 되어야 할 것이 아니냐면서 듣지 아니하였다.
 
199
서대문 밖 아현고개에서 쳐들어오는 등짐장사패와 막는 독립협회가 대치가 되었다.
 
200
등짐장사패는 한 육칠백 명 되었다.
 
201
독립협회는 천 명이 넘었다.
 
202
수효로는 독립협회가 우세하다고 할 것이나, 독립협회는 매양 책상 물림의 선비들이었다. 다같이 몽둥이를 들고 싸우기로 들더라도 독립협회 세 사람이, 등짐장사패 하나를 당해 내기도 오히려 부칠 형세였다. 기운 세고, 날쌔고, 율무작대기 잘 쓰고 하기로 이름난 등짐장사패가 아니던가.
 
203
무기는 등짐장사패가 주장 율무작대기인데 대하여, 독립협회는 주장 몽둥이와 죽창 같은 것이어서 무기에 있어서도 독립협회가 하등의 손색이 없다 아니할 수 없었다.
 
204
그 밖의 무기로는 창과 군도가 양편에 몇 자루씩 있었으나 그다지 많은 것은 못되었다.
 
205
양편에서는 마주 대치를 한 채 서로 함성을 지르면서, 약간 돌팔매질이나 할 뿐이지, 어느편에 서고 와락 짓쳐 나가지는 않았다.
 
206
선용은 기운이 불끈불끈 나고 답답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
 
207
어제와는 달라 이만한 수효에다 각기 손에 든 것도 있고 하니 왁 그대로 짓쳐 들어가면 놈들은 죄다 뚜드려 잡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지휘자는 좀처럼 돌격 명령을 내리려고 아니하였다.
 
208
저물기 쉬운 가을 해가 인왕산 머리로 깜박 넘어갔다.
 
209
마악 그때였다. 남대문 쪽으로부터 요란한 함성이 일었다.
 
210
역시 짐작한 대로 등짐장사패에서는 그쪽으로 좇아 기습을 하여온 모양이었다.
 
211
남대문은 수비가 약하였다. 아현에서는 3분지 1 가량을 덜어 급히 남대문으로 응원을 보냈다.
 
212
세가 덜리는 것을 보고 아현의 등짐장사패에서도 돌격을 하여 나왔다.
 
213
독립협회의 저항은 맹렬하였다. 그러나 도시가 달리는 싸움이었다. 땅거미가 질 무렵부터는 연방 몰리기 시작하였다.
 
214
선용은 불호랑이같이 날뛰면서 싸웠다. 한 삼십 명 넉넉히 때려눕힌 성 싶었다. 물론 선용 저도, 그러는 동안 골통 이하로 팔, 등짝, 다리 여러 곳을 많이 다쳤다.
 
 
215
아무리 혼자서 용맹하고 날쌔게 날뛰어도, 싸움이 대체가 기우는 데야 무가내하였다.
 
216
선용은 분해 견딜 수가 없었다.
 
217
분한 깐으로 하면 한 몽둥이에 여남은 놈씩 때려잡았으면 싶었으나, 그렇게 하는 재주는 없었다.
 
218
저기만치서 한 놈이 손에 가진 것을 놓쳤던지, 맨손으로 쫓기어 달아나고 있는 이편 하나를 율무작대기를 휘두르면서 쫓아가고 있었다.
 
219
선용은 쏜살같이 그 뒤를 쫓아가, 어깨를 겨누어 내리치는 한 대로 놈을 쓰러뜨렸다.
 
220
마악 그러고서, 미처 몸을 바로 잡기도 전인데
 
221
"이 놈?"
 
222
하는 소리와 함께 바른편 어깨 밑이 뜨끔하였다.
 
223
홱 몸을 돌이키는데, 창끝은 재차 앙가슴으로 육박하였다.
 
224
그대로 와 찌르는 날이면 그만 목숨을 앗기고 말 그 아슬아슬한 창 끝을, 날쌔게 몽둥이로 쳐 받은 것은, 일찌기 본집에서와 병영 시절에 약간 방수를 익힌 검술(劍術)의 덕이었다고 할 것이었다.
 
225
창 든 놈까지는 때려눕였으나 둘러보니 맨판 패랭이 쓴 놈 판이요, 어젯 날 인화문 앞 그때의 형세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었다.
 
226
더구나 창에 찔린 어깨는 바른편이요, 그래 바른팔이 힘이 풀리기 시작하고 하여, 선용은 무모히 덤비기를 피하고 빼쳐 달아날 도리를 차렸다.
 
227
이 날 싸움에 독립협회는 한 명이 죽고 근 삼백 명이 상하고, 등짐장사패에서는 한 백 명이 상하였을 뿐이었다.
 
228
독립협회와 등짐장사패와의 싸움은 날마다 붙었다. 그리고 싸우는 마다 독립 협회는 쫓기었다.
 
229
일변 정부에서는 따로이, 경찰을 시켜 밤으로 찾아다니면서 독립협회의 중견 인물을 체포하였다.
 
230
독립협회는 일본인 거류지 왜성대(倭城臺)로 피하여 들어갔다.
 
231
정부에서는 일본공사관에 대하여 독립협회를 쫓아내도록 요구하였다.
 
232
일본공사 가등(加藤)은 진작부터 조선정부에 대하여, 경부선 철도 부설권을 일본에 주도록 교섭을 하였으나 조선정부가 잘 듣지 않던 차인데, 그러면 왜성대로 부터 독립협회를 몰아낼 테니, 경부선 철도부설권을 주겠느냐 하였다.
 
233
조선정부는 그래라 모르겠다 하였다.
 
234
이렇게 해서, 경부선 철도부설권은 일본정부의 손으로 넘어가고, 왜성대에서는 독립협회가 몰리어 나고 하였다.
 
235
장안 안은 이미 등짐장사패의 천지가 되어 열만 모여도 와 습격을 하고, 밤이면 경찰에게 개별적으로 쫓기고, 안전지대이던 왜성대에서는 들여주지를 않고, 독립협회는 꼼짝달싹을 못하게 되었다.
 
236
이때부터 별안간 서울 장안에는 일찌기 없던 굉장한 사건이 일어났다. 평일에 소행이 아름답지 못하거나 독립협회를 미워하던 정부 대신과 고관과 친로파와 황국협회의 간부와, 이런 사람의 집에 연방 폭발탄이 터지고 하던 것이었었다.
 
237
십이월 초엿샛날 밤, 정동에 있는 이용익(李容翊)의 집에 첫 폭탄이 터졌다.
 
238
이용익은 한낱 감역(監役)으로, 걸음 하나 잘 걷는 것으로 발신을 하여 후일 대신까지 지냈지만, 사람이 무식하고 조백이 없을 따름이지, 악랄하거나 탐학한 편은 아니었는데, 때에 궁중의 재정을 도맡아 보았고, 겸하여 친로파로 지목이 되었었다.
 
239
주인 이용익은 무사하였으나, 집은 탈싹 무너지고 그대로 불이 나 타 버렸다.
 
240
다음날은 장교(長橋)의 박정양의 집에, 그러나마 대낮에 폭탄이 터져 박정양 역시 마침 집에 없어 무사하였으나 사환 이하 몇 사람이 즉사하였다.
 
241
같은 날 밤에는 내수사의 이유인(李裕寅)의 집 사랑에 연거푸 세 방이 터졌다.
 
242
무당 진령군의 충신 노릇하다 대신까지 지낸 그 이유인이었다.
 
243
장안 안 사람은 위로는 왕과 대신으로 부터 아래로는 서인에 이르기까지 모두들 떨고 무서워하였다.
 
244
난데없이 꿍 하면서 집을 무너뜨리고 불을 뿜고, 집을 불태우고, 그리고 사람을 상하고…… 세상에 이런 무서운 것은 듣지도 보지도 못하였다. 임오군란이나 갑신정변이나 을미사변 같은 것은 차라리 약과였던 성 싶었다.
 
245
정부와 경찰에서는 정녕 독립협회의 소행이거니 하여 기를 쓰고 엄히 밝히었으나, 증거도 범인도 잡혀지지를 아니하였다. 폭탄만 보아란 듯이 여전히 꿍꿍 터졌다.
 
246
계속하여 여드레 동안을 두고 폭탄은 터졌다. 그러다가 마지막 날인 12월 13일 밤, 일본으로 망명을 간 후 항옥(恒屋)이라는 일본인이 살고 있는 소안동 박영효의 집에서 그야말로 서울 장안이 온통 떠나가는 듯 요란한 꿍 소리가 일면서 집은 한족이 무너지고 하였다.
 
247
그 자리를 검사한 결과, 세 사람의 시체와 폭탄을 만들던 여러 가지 연장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범인은 독립협회가 아니라, 임병길(林炳吉) 일파인 것도 판명이 되었다. 임병길파가 독립협회의 별동대(別動隊)란 말도 있으나 적실한 것은 드러나지 아니하였다.
 
248
선용은 아현고개의 싸움이 있던 이튿날 아침, 매부 영석이 서둘러 교군에 실리어 남대문 밖 제중원에 입원을 하였다.
 
249
창에 찔린 상처가 화농이 되느라고 열이 몹시 올라 며칠을 정신을 못차리고 헛소리를 하면서 앓고 하였다.
 
250
한때는 매우 위험하여 주관하는 미국 사람 에비슨까지 나와 보고 걱정들을 하였으나, 그러나 요행 어려운 고패를 넘겼고.
 
251
상처가 완전히 합창이 되어 병원에서 나오기는 해가 바뀐 기해(己亥) 광무 3년, 바로 양력 정초였었다.
 
252
독립협회는 폭탄 사건 이후, 인화문 앞에서 왕의 친유(親諭)로 양편이 화해를 하였다는 것과, 간부들 가운데 몇은 감옥에 그대로 남아 있고, 몇은 외국으로 달리고, 또 몇은 정부의 벼슬자리에 팔리고 하여, 독립협회도 인제는 흐지부지한다는 이야기를 선용은 병원에 누웠으면서 영석에게서 자상히 들어 잘 알고 있었다.
 
253
독립협회가 그렇게 된 것으로 선용의 실망은 대단히 컸다.
 
254
내가 신학문이 있고 연설도 할 줄 알고 인품이 장하고 하였더라면, 나라도 나서서 다시 한번 회를 일으켜 보았을 걸 하면서 못내 안타까와하였다.
 
255
선용은 영석에게 돈을 꾸고, 또 부탁하여 미국 사람들이 쓰는 좋은 사냥 총을 두 자루와 화약과 여러 길의 탄환을 많이 와, 그리고 창, 잘 드는 군도, 단도 이런 것들을 두루 구하여 가지고, 이월 보름께 서울을 떠나 우선 고향 집으로 내려갔다.
 
256
사람도 하나고 둘이고 착실한 사람이 있으면 하던 차에, 거리에서 우연히 늙은 병정 퇴물 박돌이를 만나 데리고 동행하였다.
 
257
박돌은 선용이 소대장 시절에 병영에서 사귄 오십객의 늙은 병정이었다.
 
258
인간이 병신스런만큼 순박하고 고정하여, 나이는 피차 갑절이나 층이 지고 또 지체도 다르고 하였으나, 막걸리 한잔이라도 서로 나눠 먹으면서 매우 자별히 지내던 사이였었다.
 
259
을미사변 때 박돌은 홍계훈의 거느린 경복궁 수직부대에 들었다가, 다리에 일병의 탄환을 맞고 이렇게 병신이 되어, 시방은 의지 가지없이 날품이나 팔아 먹고 사노라면서, 왼편 다리를 잘름잘름 절었다.
【원문】9. 말세(末世)에 횡행(橫行)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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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만식(蔡萬植)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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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랑사 (玉娘祠)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3년 02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