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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랑사 (玉娘祠) ◈
◇ 6. 눈먼 사람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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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
채만식
1
玉娘祠[옥랑사]
 
2
6. 눈먼 사람들
 
 
3
갑오년 유월 열엿샛날과 열이렛날 이틀에 걸치어 서울에 와 있는 외국 사절(使節)들이 모여 외교단회의(外交團會議)를 열었다.
 
4
청국과 일본이 방금 조선에다 출병을 하여 놓고, 서로 물러가지 아니 하면서 그 충돌이 조모에 박두한 형편이니 거기에 대하여 외교단으로서 어떤 의논이 있어야 하겠다는 것이었다.
 
5
이 외교단회의에서 영국 대표 맥도날드는 이런 안을 내놓았다.
 
 
6
첫째, 인천항과 서울을 국외중립지(局外中立地)로 선언할 것.
7
둘째, 서울과 인천 사이의 도로를 국외중립지로 선언할 것.
 
 
8
영국이 단순히 국제지대(國際地帶)로 볼 수 있는 서울과 인천을 청국과 일본의 교전지대로 부터 빼어놓기 위한 뜻이었던지 혹은 청국을 편들기 위한 계책이었던지 그것은 모르되, 아뭏든 서울에다 주력을 이미 두었고, 종차 인천으로 좇아 후속부대를 상륙시켜야 하고, 경인도로를 현재 저의 군용 도로와 같이 쓰고 있으며, 앞으로는 더욱 요긴히 써야만 하였고 한 일본에게는 여간 이롭지 못한 안이 아닐 수 없었다.
 
9
일본은 단박에 반대를 하였고.
 
10
청국은 멀리 아산(牙山)에다 군대를 폈기 때문에, 지리적으로 또는 조선 정부에 대하여서의 정치적으로, 일본에 비하여 자못 불편한 처지에 있는 터이라, 영국의 안에 크게 찬성을 하고.
 
11
미국 대표는 이런 중대한 문제를 독단으로 결정치 못하겠으니, 본국 정부의 지시를 기다려 대답하겠노라고 하고, 독일 대표는 인천을 중립지대로 하는 것은 찬성이나, 서울을 넣는 것은 반대라고 하고.
 
12
노서아편에서는 본국에 갔다 이튿날 인천에 당도한 웨베르가 영국의 안을 전부 반대하고.
 
13
이러하여 외교단회의가 아무 소득이 없이 흩어지고 말자 원세개는 최후의 희망을 잃고, 열여드렛날 새벽, 변복하고 승교 속에 숨어 서울을 빠져나가 인천으로 가서 군함 평원(平遠)을 잡아타고 본국으로 달리었다.
 
14
원세개가 서울로 부터 종적을 감추고 없어진 것은, 곧 청국의 세력이 서울로 부터 물러났음을 말하는 것이었다.
 
15
청국 세력의 나래 밑에서 몸과 권세를 지탱하던 민씨네를 중심으로 한 보수파 사대당은 정신이 아득하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16
서울 거리에는 삽시간에 소문이 좌악 퍼지고, 이 구석 저 구석 모여 수군덕거렸다.
 
17
원세개가 도망을 했다더라.
 
18
도망을 한 것이 아니라, 청국 병정을 몰고 와 일본 병정을 뚜드려 잡으려고 아산으로 내려갔다더라.
 
19
임오군란 때에 청국 병정이 하듯이, 이번엔 일본 병정이 서울서 한바탕 변을 일으킨다더라.
 
20
갑신년처럼, 청국 병정들이 들이닥치는 날이면 일본 병정은 몰살을 당하고 만다.
 
21
어떤 말에서든, 조만간 서울에 큰 변이 일리라는 것을 장안 안 백성들은 알아챌 수가 있었다.
 
22
서울은 상하가 발끈 뒤집히고 재빨리 안전을 도모하여 피난가는 무리로 거리는 물 끓듯하며 혼잡을 이루었다.
 
23
이날 석양, 일본 공사 대조(大鳥)는 조선 조정에 대하여
 
 
24
1. 서울과 부산 사이의 일본군 군용전선의 가설을 승낙할 것.
25
2. 제물포조약(濟物浦條約)에 좇아, 일본군대의 병영(兵營) 설치를 승낙할 것.
26
3. 아산의 청병을 물러가게 하여, 조선이 독립국인 실증을 보일 것.
27
4. 한청수륙무역장정(韓淸水陸貿易章程)을 비롯하여, 청국과 조선 사이에 맺은 조약 가운데, 조선이 독립국인 사실에 저촉되는 것을 일체로 파기 할것.
 
 
28
이 네 가지 조목을 즉시 실행하도록 요구하되, 이십이일 밤 열두시까지로 기한을 정하여 주었다.
 
29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남산 중턱에다 대포(山砲[산포])를 주욱 묻어놓고, 경복궁으로 총부리를 대어놓았다. 종로 네거리에도 대포(野砲[야포])를 묻어놓았다.
 
30
요구를 듣지 아니하면 대고 짖어댈테다 하는 위협이었다.
 
31
대포뿐 아니라 사대문과 그외 각 문에는 총 끝에 창을 꽂고, 사포 줄 내린 일본 병정이 파수를 섰다. 역시 총 끝에 창 꽂아 어깨에 멘 일본 병정 순라대(巡邏隊)가 뚜벅거리고 다니면서 장안 안을 경계하였다.
 
32
그 서슬이 푸르고 기승스럽기란 당장 무슨 일을 저지를 것 같았다.
 
33
조정에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몰랐다.
 
34
일본의 요구를 들어 주자 하니 장차 청국의 보복이 두려웠다. 갑신정변 때에도, 임오군란 적에도 당한 전감이 있었다.
 
35
시방은 일본이 저렇게 독장을 치지만 원세개가 아무 때 와도 군사를 몰고와 일병을 때려 내쫓고, 다시금 조선조정을 호령할 것은 분명하였다.
 
36
그날에 가서 오늘날 청국을 배반한 치죄를 어찌 다 당하느냐는 말이었다.
 
37
그러나 그렇다고 일본의 요구를 거절하자 하니, 당장 머리 위에 그 흉악한 대포 탄환이 날아와 떨어지니.
 
38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고, 그만 엉엉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39
일본의 힘으로 청국 세력이 물러가니, 가만히 앉았다 수를 본 것은 일본파(日本派) 개화당이었다.
 
40
갑자기 큰기침을 하고 나섰다.
 
41
죽동(竹洞) 조희연(趙羲淵)의 집에 주인 조희연을 비롯하여 안경수(安駉壽), 김가진(金嘉鎭), 권영진(權瀅鎭) 들의 개화당이 모여
 
 
42
1. 일본병으로 왕궁을 수비케 할 것.
43
2. 민비를 폐할 것.
44
3. 대원군을 섭정으로 맞아들일 것.
 
 
45
이런 결의를 하면서, 일병이 행동을 일으키기만 시각이 급하다 기다리고 있었다.
 
46
민비를, 그가 국사를 어지럽히는 사대당 민씨네 파의 총수라 하여 물리친다는 것은 당연하다고도 할 것이었다.
 
47
그러나 일병으로 하여금 왕궁을 수비케 한다는 것은, 결국 늙은 범 청국이 앉았다 물러간 그 자리에 어린 삵괭이 일본을 모셔 앉힘과 다름이 없는 일이었다.
 
48
따라서 나의 힘을 기를 겨를도 생각도 없이, 번연히 남의 힘을 빌어 반대파의 정권을 빼앗아 가지고, 남의 힘을 의지하여 그것을 지탱하려 드는데 있어서는 개화당도 결코 사대주의(事大主義)의 무리(宗徒)이기는 민씨네 파보다 장할 것이 없었다.
 
49
일본파요, 문호개방을 도창하고 신문명의 수입을 부르짖고 하는 개화당에서 비록 임시방편이라곤 하지만, 배일파요 쇄국정치의 실행자요 보수주의(保守主義)의 권화요 한 대원군을 섭정의 자리에 맞아들인다는 것은 천하의 웃음 거리가 되기에 족한 것이 있었다.
 
50
일본이 최후의 기한으로 정하여 준 이십이일 때마침 장마철이라 하늘에는 무거운 구름이 덮이고 날씨는 숨이 막히도록 무더웠다. 간간이 비는 구죽죽 쏟아지고.
 
51
이런 일기조차 음울하고 불쾌한 가운데 장안은 피난가는 무리로 혼잡을 이루면서, 조정에서는 아무런 결정도, 따라서 일본에 대하여 좌우간의 회답도 하지 못한 채 그 이십이일은 저물었고, 자정 열두시도 지나고 하였다.
 
52
그러고서 이십삼일.
 
53
겨우 먼동이 트일락말락한 첫새벽, 경복궁 뒤 신무문(神武門) 밖 송림 속에 대기하고 있던 일본군이 드디어 행동을 일으켰다. 꽝 하는 한 방 총소리를 신호로, 궁 안으로 대고 일제사격을 시작하였다.
 
54
궁 안의 수비병도 응전을 하였다.
 
55
양편의 맹렬한 맞불질로 총소리는 콩볶듯 하였다.
 
56
궁중과 사대당의 민씨네 파는 몸을 떨었다. 백성들도 떨었다.
 
 
57
선용은 날이 아직도 다 밝지 않았고, 더구나 앞에서 궁장이 가리고 하여 총질(射擊)을 하기는 하면서도 헛심이 쓰였다. 뿐만 아니라, 실지로 적병(敵兵)을 맞이하여 죽느냐 사느냐의 실전을 임하여 보기는 처음이라 그런지, 곧잘 총질이 뜻대로 되어지지가 않는 것만 같았다.
 
58
병정을 지원하고 영문에 들어가 훈련을 받으면서 종종 총질도 연습을 하고, 한 일 년 그러는 동안 제법 병정이 된 것 같았고, 한편 힘이 좋은 것과 위인이 순직한 것으로 웃사람의 눈에 괴어, 소대장(小隊長)으로 승차까지 하고 하였다.
 
59
시방은 그래서 삼십 명 일 소대의 장이 되어 그 삼십 명을 거느리고, 얼마 전부터 왕궁 수비를 와 하면서 이곳 북편을 담당하고 있었다.
 
60
막상 그러나 실전에 임하고 보니, 총질을 비롯하여 배하를 지휘하는 것이며, 모두가 평일에 생각더니와는 달리, 서투르고 뜻대로 되어지지가 않았다. 무엇보다도 마음이 안존하여 지지를 아니하였다.
 
61
차라리 바로 그 옆에서 담배라도 한 대 피우는 양으로, 아무렇게나 총을 쏘고 하는 늙은 군졸의 총질이 훨씬 자재(自在)롭고 잘 하며, 태도는 침착한 것 같이 선용은 보였다.
 
62
미상불 그 늙은 병정은, 선용도 저의 입으로 이야기를 들어서 아는 바 강화 병정으로서, 신미양요(辛未洋擾) 때에 벌써 실전을 치렀고, 이래 여러 차례 접전을 겪으면서 영문밥으로 삼십 년을 늙은 노졸이었다.
 
63
탄환이 왱왱 귓바퀴로 나는 실전 중이면서도, 선용은 사람이란 역시 무슨 일이고 오래도록 경력을 쌓을 나름인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64
하나 둘, 상하는 군졸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바로 옆에서 어이쿠 하더니 늙은 강화 병정이 그 자리에서 앞으로 엎드러졌다.
 
65
선용이 놀라 기어가서 안아 일으켜 보니, 정통으로 가슴을 맞았다. 군복 위로 피가 내뿜기고 숨은 그새 벌써 지려고 하였다.
 
66
삼십 년, 탄환과 화약 연기 속에서 한 목숨을 내던지고, 병정으로서 국사(國事)를 꾸준히 하여 왔다. 당자 저야 나라를 위하는 뜻이 있어서 하였던지, 다만 생계를 도모하느라고 병정이 된 결과 제풀에 국사는 하여진 노릇이었던지, 그것은 하여간 삼십 년을 두고 국사하고도 가장 중한 국사를 하여 온 것이었다.
 
67
하다가 그는 지금에 끝끝내 국사를 하던 중에 목숨을 잃은 것이었다.
 
68
늙은 병정의 죽음은 그러므로 큰 죽음이요, 뜻깊은 죽음이어야만 할 것이었다.
 
69
그러나 이 늙은 병정은 죽기까지 삼십 년, 국사에 무엇을 이 나라에 끼쳐놓았느냐.
 
70
그가 삼십 년을 하루같이 잘 입고 잘 먹고 하는 낙도 없이, 가정의 위안과 명일의 희망도 없이, 무우 대가리같이 병영에서 혼자 몸으로 구르면서 하루 세 때의 어설픈 병영의 밥으로 배를 채우면서, 이래 삼십 년, 탄환과 화약 연기 속에 목숨을 내던지고 그 소위 국사라는 것을 하여 온 것으로 인하여, 이 나라 이 땅에 끼친 바 공로가 과연 무엇이더냐?
 
71
들어오는 개화의 신풍조를 억지로 막아, 나라로 하여금 눌러 태고의 꿈속에 묻히게 한 신미양요의 강화 접전에 종군한 것이 이 나라 이 땅을 위한 공로일까?
 
72
대원군 한 사람에게는 공로가 되었을는지도 모른다.
 
73
세 번 네 번, 지방으로 백성의 반란을 치러 갔었으니, 그것이 이 나라 이 땅을 위한 공로일까?
 
74
악정하는 세도재상과 양반들에게는 공로가 되었을는지도 모른다.
 
75
그러나 진실로 이 나라 이 땅에는 공로랄 것을 끼친 것이 없지 아니하느냐.
 
76
피투성이가 되어 숨이 져가는 늙은 병정을 무릎에 안고, 생각이 여기에 미칠 때에 선용은 하염없기 다시 없었다. 동시에, 이 늙은 병정의 쓰잘 데 없는 죽음이 노상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선용은 병정이 된 것이 비로소 후회가 났다.
 
 
77
선용이 서울에 당도하기는 집을 나오던 임진년(壬辰年) 동지달이었고, 이듬해 계사년(癸巳年) 3월까지, 사직골 매부의 집에서 두류하고 있다가 병정을 자원하고 영문으로 들어갔다.
 
78
반드시 병정이 되고 싶어서 된 병정인 것은 아니었다.
 
79
누이가 내외만 살고 있는 매부가 아니요, 양친이 구존한 시하가 되어 허물이 없지 못할 사돈집인데, 언제까지고 식객 노릇만 하고 있기가 민망할 뿐더러 무엇이 되었던 일에다 몸을 담가놓고 볼 것이라는 생각이 든 터라, 육체적 조건으로 보아 손쉬운 병정을 자원한 것이었다.
 
80
누이는 펄쩍 뛰면서 못하느니라고 하였다.
 
81
매부 영석도 반대하였다.
 
82
"병정이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편안히 하는 중임이요, 남아의 하염즉 한 영광이요 하다는 것도 시방은 당치 아니한 말이라네. 잘못하다 개죽음 하기 쉬우이. 자네 같은 사람은 장차 쓰일 때가 있으니, 잠자코 좀 더 있어 보게나."
 
83
이러면서 만류하는 것을 선용은 그때는 그때요, 우선 들어가 보겠노라고, 밑져야 본전 아니냐고 하고 듣지 아니하였다.
 
84
그랬던 것이 지금 와서 생각하니, 매부의 말이 옳았던 듯 싶었다.
 
85
그러나 그렇다고 시방 이 당장에서, 더구나 수하의 군졸들을 내버리고 혼자서 몸을 빼쳐 이 자리를 물러 내버린다는 것은 남아의 기개로나 남의 웃사람 된 체면과 의리로나 감히 할 짓이 못되었다.
 
86
이 싸움이 당연히 해야 할 싸움이냐, 아니하여도 상관없는 싸움이냐, 또는 싸워서 대체상 불가한 싸움이냐 하는 것은 다른 문제요. 명색이나마 군인으로 한번 싸움에 임하여 이미 무서운 싸움이 눈앞에 벌어져 있는 이 당장에서 말이었다.
 
87
항차 적군은 일본군.
 
88
연일 그동안 하는 행동거조가 도무지 방약무인이요 이치에 부당하였다.
 
89
남의 나라에 함부로 군사를 몰고 들어와, 왕궁에다 대포를 겨누어 ( ) 안안을 저희 땅처럼 수직하고 순찰하고 하여, 그러나 필경엔 범궐(犯闕)까지 하려 들어, 이런 불측하고 괘씸스럴 도리가 없었다.
 
90
저희가 무엇이며 무슨 내력에 이해건고 할 때에, 놈들을 한놈 아니 남기고 모조리 다 쳐죽이고 싶은 분심이 무럭무럭 치닫는 것이 있었다.
 
91
한 삼십 분, 맹렬한 맞총질이 계속되었을 무렵이었다. 그러자 별안간 남쪽 광화문 편으로 부터 몇 방의 총소리가 울려오더니, 이내 곧 일병의 나팔 소리와 더불어 돌격의 함성이 요란히 일었다.
 
92
마치 그와 호응하듯이 이편의 적도 나팔을 불고 함성을 지르면서 궁장 밑까지 돌격을 하여 와 궁장 위로 우뚝우뚝 적병의 검은 그림자가 솟구쳐 올랐다.
 
93
얼른 보아도 한 오십 명은 넉넉하여 보였다. 그 수효만으로도 삼십 명이 못 되는 이 편을 누르기에 부족할 것이 없는데, 나아오는 돌격부대를 엄호하느라, 그들의 등 뒤로 부터 한결 맹렬한 총질을 하는 것을 미루어, 그 뒤에도 불소한 병력이 있음을 알 수가 있었다.
 
94
광화문 편의 함성으로 잘못하다 앞뒤고 무찌름을 받나보다 하여 동요의 빛이 보이던 이곳 군졸들은 아니나 다를까, 전면의 적이 마주 돌격을 하여 와, 그런데 그 수효가 수효로도 이 편을 덮어 누를 병력이어…… 이편은 그만 압기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95
사실상 여기서 저항을 계속한다는 것은 결국 전멸을 의미하는 것 밖에는 없었다.
 
96
적병은 궁장 위로부터 풀쩍풀쩍 뛰어내리고,
 
97
이 편에서는 한 방 두 방 총질을 하는 양하더니, 하나가 문득 진지를 버리고 도망질을 치자, 우우하고 그를 본떠 일제히 도망을 친다.
 
98
우선 모양이 창피하고, 또 퇴각을 하더라도 병정답게 질서있이 퇴각을 하였으면 손해가 적을 것이라, 선용은 힐타를 하였으나 한놈 뒤도 돌아보는 놈이 없었다.
 
99
단 혼자 남은 선용은 저도 도망을 치기 아니면 군도를 뽑아들고 적병에게로 짓쳐 들어가는 것 밖에 없었다.
 
100
한 몇 놈 쳐죽일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오십 명이고 백 명이고 있는 대로 다 죽이는 재주는 없었다. 결국 몇 놈 죽이다 적의 뭇 창 끝에 횟감이 되어 엎드러지는 것이 있을 따름이었다.
 
101
결기는 있어, 놈들 앞에 꽁무니를 두르고 도망을 치기는 창피하고, 그렇다고 덤벼들자니 하나마나한 짓이고. 해서 방금 죽음이 박두한 사선(死線)인 것도 순간 잊어버리고서 멍하니 군졸들의 도망질치는 꼴만 바라다보고 섰는데, 별안간 등 뒤에서 무엇이 엉덩판을 직신한다.
 
102
그러자 또 앞으로도 총끝에 꽂힌 창끝이 번쩍하고 앙가슴을 바싹 겨눈다.
 
103
적이 만일 무심히 보았다면, 창 끝으로 엉덩판을 직신하는 대신, 정통으로 등짝을 칵 찔렀을 것이었었다. 그러나 달려들어서 문득 보니, 수하 군졸놈들은 뿔뿔이 죄다 도망을 빼고 없는데, 저 혼자만 남아서 하도 기가 막힌지 우두커니 그 자리에 가 서서 도망하는 부하놈들만 바라다보고 섰는 모양이 측은도 하고 희한스럽기도 하여 보였던 모양이었다.
 
104
일병은 뒤엣놈까지 앞으로 나서더니 두 놈이 선용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도망질 치는 군졸을 바라다보고 하다가, 저희끼리 마주 웃으면서 무어라고 지껄이었다.
 
105
선용은 물론 알아듣지도 못하나, 그들이 무엇을 가지고 그러는지는 알 수가 있었다.
 
106
잠깐 동안 그러다가 한놈이 선용의 손에서 총을 거두고, 한놈은 군도를 거두고, 그러고는 가라는 뜻으로 손짓을 하더니, 저희는 저희들 갈 데로 씽씽 가버리는 것이었었다.
 
107
이날 일본군은 경복궁을 점령하고, 일본군의 뒤를 따라 들어온 일본파 개화당이 일본공사 대조의 지휘를 받아가며 신정부를 조직하였다.
 
108
이 자리에, 개화당의 애초 계획대로 대원군도 맞아들였다.
 
109
대원군은 그러나, 민비가 그대로 내전을 차지하고 있고, 세상에 비위가 맞지 아니하는 개화당들을 데리고 일본의 지휘를 받아가며 이러고 저러고 한다는 것이 도무지 내키지 않은 노릇이었다.
 
110
그는 겉으로는 흔연하면서, 미구에 밖으로는 청국과 연락을 하고 안으로는 동학당을 충동시켜 일본 세력과 개화당을 몰아낼 계책을 궁리하였다.
 
111
천하를 얻은 개화당은 새로운 정치를 시작하노라고 하였다. 이 새로운 정치를 의논하고 결정하는 기관으로 군국기무처(軍國機務處)라는 것을 만들었다.
 
112
영의정으로 들어앉은 김홍집(金弘集)이 총재가 되고, 의원(議員)은 박정양, 민영달, 김윤식, 김종한, 조희연, 이윤용, 김가진, 안경수, 정경원, 박정양, 이원긍, 김학우, 권영진, 유길준, 김하영, 이응익, 서상집 이런 인물 들이었다.
 
113
군국기무처는 그로부터 한 반 년 동안 두어져 있었다.
 
114
그동안에 이백 가지나 되는 새로운 제도와 법령을 만들어 국민에게 반포를 하였다.
 
 
115
공사(公私)의 문서에, 명나라나 청국의 연호 연대를 쓰던 것을 폐하고, 조선 개국기원을 쓰라.
116
청국과의 조약을 고쳐 하고, 열국(列國)에 특명대사를 보낸다.
117
문벌과 반상의 계급을 없앤다.
118
귀천을 가리지 않고 인재를 뽑아 쓴다.
119
남자는 20세, 여자는 16세가 되어야 혼인을 허락한다.
120
죄인은 당자를 처벌할 뿐이요, 가족에까지 연좌시키던 것을 폐한다.
121
과부의 재혼을 허락한다.
122
공사간 종문서(奴籍)를 없애고, 사람을 사고 파는 것을 금한다.
123
재인과 백정을 평민으로 인정한다.
124
과거법을 폐하고, 새로이 관리의 등용법을 세우고.
125
그동안 국정을 어지럽게 한 간신의 무리를 처벌하고.
126
토지와 집을 세력가에게 빼앗긴 것으로 십 년이 넘지 아니한 것이면, 확실한 증거에 좇아 도로 찾아 준다.
 
127
정부의 제도를 고쳐, 의정부를 내각(內閣)으로, 영의정을 총리대신으로.
128
아문(衙門)을 부(部)로 고치고. 내무부, 외무부, 탁지부, 군부, 법부, 학부, 농상공부의 일곱 부를 두고.
129
지방을 13도, 7부, 1목, 331군으로 나눠, 도에는 관찰사, 부에는 부윤, 목에는 목사, 군에는 군수를 두고.
130
군제(軍制)를 고치고.
131
은전, 백동전, 적동전, 황동전의 네 가지 새 돈을 발행하기로 하고.
132
쌀과 미영 대신 돈으로만 세납을 바치게 할 것.
 
 
133
대강 이러한 것들이었다.
 
134
그중에는 결의만 하고 실시는 하지 아니한 것, 반포는 하였어도 백성들이 실행치 아니하는 것, 그래서 흐지부지한 것이 많았으나, 아뭏든 그 새까지는 보지 못하던 혁신은 혁신이었다.
 
135
그러나 군국기무처의 사업 가운데 각 관아의 도장을 팔 것, 총리대신 이하 평민에 이르기까지 문패를 써붙일 것, 노상에서 만나 인사하는 법 따위 들이 있는데, 이것이야 혁명정부의 혁신사업 치고는 자못 농판스런 수작이 아닐 수 없었다.
 
136
경복궁에서 하마 목숨을 날릴 뻔하였다가, 또 일병의 포로가 될 뻔하였다가 모면이 된 선용은, 다시 병문으로 돌아갈 면목도 없고, 흥도 없고 하여, 사직골 누이의 집으로 우선 찾아갔다.
 
137
매부 영석은 벙실벙실 웃으면서 저물게 돌아왔다.
 
138
영석은 선용이 무사한 것을 보고 반기면서
 
139
"그래, 어떻게 했나?"
 
140
하고 물었다.
 
141
선용이 주욱 겪은 이야기를 하는 것을 다 듣고 나서는
 
142
"하마트면 큰일날뻔했군. 그래 내가 애당초에 무어라던가. 인제는 다신 병정 그만 두구 우리 개화당이나 들어서 일하두룩 하세나."
 
143
하였다.
 
144
선용은 퉁명스럽게
 
145
"나는 개화당 싫소."
 
146
"어째? 자네 조선이 개화하는 거 반댄가? 문명개화해서 일등국 되가지구 남처럼 잘 사는 거 반댄가?"
 
147
"개화는 불가불 해야겠읍니다. 고 왜놈들 뇌꼴스러, 우리두 어서어서 개화해 가지구 보아란드끼 살아야 하긴 하겠읍디다. 형님 다니시는 미국 사람 병원두 그게 다 개화속 아뇨? 다 부럽습디다. 그렇지만…… "
 
148
"그렇지만 무어야?"
 
149
"남의 불에게 잡아 무얼 허우?"
 
150
"남의 불에게 잡다니?"
 
151
"자기네 힘이라곤 한푼에치두 없어가지구."
 
152
"힘?"
 
153
"힘이라께 다른 것이요? 나라 백성이 딸구, 일을 할 때면 백성이 뒤를 받쳐주구 하는 게 힘일 테죠."
 
154
"백성이야 농사하라는 백성이지, 그런 일에 참섭하라는 백성인감? 우리 가정부 차지하구 앉아서 좋은 개명한 정치해주면, 백성들은 편안히 앉아 농사나 짓구 하는 거야."
 
155
"말씀 마시우. 갑신정변이라드냐 그때 일, 형님은 노상 분해 하십디다마는 그때두 난 보기에 백성들이 들어서 개화당 뒷받침을 해주었다면 그런 낭패는 아니 보셨을 것 같습디다."
 
156
"꿩 잡는 게 매 아닌가. 아뭏든 이번엔 성사했으니깐, 앞으룬 염려 없네."
 
157
"아무 힘도 없이 가만히 앉았다 왜놈들이 와서…… 와서가 아니라, 개화당이 불러왔지요. 그래, 왜병이 원세개허구 민가를 때려 내쫓아 주니깐 얼씨구나 우우 나서가지구는 무얼 어쩌구어쩌구. 그게 애들 장난이지, 나라 일하는 거요?"
 
158
"허허허허, 이 사람 이거 큰일났군."
 
 
159
이 해 시월 열이튿날, 전봉준은 삼례(蔘禮)에서 다시 동학의 난을 일으키었다.
 
160
소식을 들은 선용은 즉시 행장을 차리고 누이와 매부 영석을 작별하였다.
 
161
지나간 봄에도 선용은 동학란이 있었을 때에 가자던 것을, 영석과 누이가 굳이 붙잡아서 작파를 하였었다.
 
162
이번에도 영석은 만류하였다.
 
163
동학당의 중요한 표방이, 안으로는 악신들이 있어 정치를 어지럽게 하고 백성을 괴롭히니 그들을 내쫓아 나라를 바로잡고 백성을 구한다는 것과, 외국 일본이 조선을 침노하여 우리의 강토가 위태하게 되었으니 그를 쳐 물리친다는 것과 이 두 가지 것이다.
 
164
그러나 악신의 무리는 이미 개화당의 신정부가 되면서 다 쫓았고 처벌을 하였으니 문제가 되지 않는다.
 
165
그 다음, 일본은 절대로 우리를 도와 우리로 하여금 독립국이 되게 하여 동양의 평화를 길이 세우자는 데 있지, 결단코 청국과 같이 조선을 저희의 속국을 만들려는 야심이 있는 것은 아니다.
 
166
보아라, 지금 일본은 조선을 보존시켜 주기 위하여 국력을 기울여 가며 청국과 전쟁을 하지 아니하느냐.
 
167
그런 일본을 배척한다는 것은 천하에 경솔한 짓이다.
 
168
또 동학군쯤으로는 일본군과 싸움을 청한다는 것이, 돌에다 계란을 던짐과 다름없는 무모한 일이고.
 
169
선용은 그러나 영석이 만류함을 듣지 않고 마침내 떠나고라야 말았다.
【원문】6. 눈먼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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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만식(蔡萬植)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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