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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날의 한 구절(句節) ◈
◇ 직장(職場)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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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5~11
채만식
1
젊은 날의 한 구절(句節)
 
2
6. 직장(職場)에서
 
 
3
훨씬 염천교다리 저편으로 있는 반도인쇄소의 교정실……
 
4
교정실이라곤 하지만, 조선 안에서는 첫째냐 둘째냐 하는 큰 인쇄소라서 비교적 좀 낫다곤 하지만, 역시 이름이 교정실이지 공장 한편 구석으로 두어 평 가량, 반 길쯤 되게 칸을 둘러막은 조그마한 복스다. 그리고 예가 곧 두식의 직장인 것이다. 코스모스같이 정갈하고도 사치스런 소진양한테의 연애와 더불어 불원간 조선 최초의 노벨상 문학을 자신하고 있는 우리 한두식 군의 말이다.
 
5
채광이 충분할 턱이 없어, 바깥은 햇볕이 쨍쨍한 대낮이라도 50와트 전등을 켜고서라야 일을 하도록 음침한 곳이다.
 
6
아래층으로 오르내리는 정문 바로 문치가 되어서, 끊이지 않고 사람이 그 앞을 지나다니고, 쿵쿵 발짝 소리를 내고 한다.
 
7
정면이 문선과요 왼편이 스리와 사시까에를 곁들인 식자과다. 쉬처근한 납 냄새가 그득히 괴어, 언제고 가실 줄을 모른다.
 
8
우세두세 직공들의 쑹얼거리는 소리, 시시덕거리며 지껄이는 소리에 섞여
 
9
‘4분 인떼로오 !”
 
10
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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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문 꼴자 9뽀인또오 !”
 
12
이렇게 외치는 소리가 연해 드높곤 한다.
 
13
교정실 안의 뒷구석에서는 아래층으로 통한 대초롱 엘리베이터가 일감을 싣고 연락부절 오르락내리락 덜그럭거리는가 하면, 전화통도 한몫을 보이려는 듯 간간이 쟁그랍게 울어댄다.
 
14
이런 것들은 그러나 약과인 셈이요 선량한 축이다.
 
15
정면으로 문선과를 사이에 두고서 이내 그 다음이 30여 대의 평판이 일제히 드르륵드르륵 철그덕출그덕 요란스럽게 움직이고 있는 기계과다. 도저히 악다구니나 하기 전에는 예사로 하는 말소리는 알아들을 수도 없이 시끄럽고 정신이 멍멍할 지경이다.
 
16
시끄런 것도 시끄런 것이려니와 윤전기하고도 달라, 무릇 그 평판인쇄기계의 덜컹거리는 소리란 결단코 리드미컬하거나 아름다운 음향이질 못한 자이다. 한갓 무지하고 쌍스럴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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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언이폐지하면, 그리하여 직장 치고는 자못 너줄한 직장이라고 않지 못하겠는데, 물론 상대적인 의미에서다.
 
18
남수 같은 축은 그것을, 두식이라는 사람이 인간 그 자체가 본디 껄렁하기 때문에, 하필 직장도 그렇듯 너줄하지야고 늘 흉을 해쌓는다. 버르장머리 없이 까부는 소리는 까부는 소릴 것이다.
 
19
그러나 사실이지, 그 코스모스같이 정갈하고도 사치스런 소진양한테의 연애와 더불어 불원간 조선 최초의 노벨상 문학을 자신하고 있는 우리 한두식 군임을 생각할 때에는, 그의 화려한 꿈과 포부를 위하여 너무도 이 교정실은 감각적으로 너줄하고 운치가 없는 직장이 아닐 수가 없을 것이다.
 
20
하물며……
 
21
아침 여덟시 정각 출근이요 오후 여섯시 반까지니, 오정의 점심시간 30분을 빼면 꼬바기 하루 열 시간의 노동이다.
 
22
이 하루 열 시간 동안을 등받침도 없는 판장 걸상을 타고 정신 사나운 그 속에 들박혀 앉아서, 일이라고 하는 게 무언고 하면(두식 자신의 말따나) 천하 어디서 글도 글 같잖은 것들을 정성껏 준을 보아야 하는 것이다.
 
23
붉은 철필을 들고, 인쇄잉크가 찐득찐득한 아까지를 이 앓는 소리로 웅얼웅얼 읽어내려가면서, 잘못 박힌 자를 고쳐 써놓고, 빠진 자를 새로 집어놓고, 모를 대문은 시꺼멓게 더러운 원고 명색을 떠들어보아야 하고, 꺼꾸로 선 놈을 바로잡고, 칸살을 보고 줄을 고르고.
 
24
하노라니 자연 정신이 쓰이고 골이 밭는다. 두식은 요행 연조도 얕고 겸해서 체질도 건강하고 하여 아직은 그런 탈 저런 탈이 없지만 신문사나 인쇄소의 교정원으로 혈색 좋은 사람이라곤 드물다. 체증 없는 사람도 귀하다.
 
25
괴타분한 것까지도, 그저 심심하고 일 없는 늙은이들께나 마침이지, 제일에 갑갑해서도 젊은 놈으론 세상 못 해먹을 짓인 것이다.
 
26
그 짓을 두식은 매일매일 저울로 단 듯이 열 시간씩 하되 한 달이면 첫공일과 세째공일 이틀을 빼고는 스무 여드레 내지 아흐레 동안을 죽계속해서 해내야 하던 것이다.
 
27
그리고 난다치면 그믐날이야 비로소 일금 42원짜리 월급봉투가 사변 공채비니 그 밖에 이것저것을 깐 나머지 38,9원 가량이 손에 쥐어진다. 쥐어지는 순간 두식은, 인사처럼 약간씩의 처량한 생각과 서글픈 생각을 하기를 반드시 잊는 법이 없다. 하나 동시에, 그것이 결단코 가슴 깊이 사모친다든지 여러 분이 걸린다든지 하는 법 역시 없고.
 
28
그놈 38,9원을 가지고 두식은(두식 등 뜰아랫방 패들의 말투대로 하면) 한달 동안 먹은 보리밥과 밀가루범벅 값으로 23원을 쥔어머니 강씨 노인한테, 무엇보다도 먼저 치러야 한다. 보리밥이나 밀가루범벅이니 한다고, 무슨 주인집에 조금치라도 불평이 있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그는 식가를 치를 적마다, 적이나 25원이라도 채워서 냈으면 싶은 민망한 마음이 번번이 없지가 못한다.
 
29
바로 며칠 전인가는 이런 일도 있었다.
 
30
도영, 윤달, 두식 이렇게 셋이서 그날도 웃방에 모여 함께들 저녁을 먹는데, 밥에는 언제나 그러하듯이 보리보다 쌀이 훨씬 많이 섞여 있었다.
 
31
백미와 보리 혹은 다른 잡곡들 반반씩 타다가는 손님들 밥은 되도록 쌀로 골라서 푸고, 강씨 노인과 남수 두 모녀는 그만큼 보리를 더 많이, 더 많이라니 거진 보리곱삶이를 먹고 하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주인으로서 손님을 대접하는 도리뿐으로서가 아니라 강씨 노인의 진심에서 우러나는 알뜰한 정성이던 것이다.
 
32
‘여게, 도영이 ?”
 
33
두식이 문득 맞상을 한 동영을 긴히 부르더니, 다시 옆에서 딴 상을 해 먹는 윤달더러도……
 
34
‘그리구 여보, 강주사 ?”
 
35
‘이일껀 먹다가, 반주 한잔 생각이 나슈 ?”
 
36
윤달은 무얼 또 농담인 줄 알고서 지레 이렇게 대껄을 하고.
 
37
‘그런 게 아니라, 이거 우리 밥이 좀 과하지 않소 ?”
 
38
‘밥이 과하다니 ?……왜 ? 누룽지가 먹구푸 ?”
 
39
‘밥이 과하면 그 사람일랑 공동묘지루 가예지 !”
 
40
윤달과 도영은 아직도 무슨 뜻인지를 몰라 무심히 밥그릇만 들여다보면서 실없은 소리를 하던 것이고.
 
41
‘쌀이 너무 많다 말야 ! 응 ?”
 
42
‘오오 ! 난 또……”
 
43
그제서야 윤달이 마침 숟갈에 뜬 밥을 새삼스럽게 되들고 보면서……
 
44
‘……츰인가, 머 ?”
 
45
‘츰이 아니니깐 더구나 말이구료 ! 쥔어머니랑 남수랑 먹는 밥, 못 봤소? 순 아주 꽁보리밥 아닙디까 ?”
 
46
‘그야 미안하지 !”
 
47
‘여게, 도영이 ?”
 
48
‘그래서 ?”
 
49
‘여보, 강주사 ?”
 
50
‘말씀하래두 ?”
 
51
‘그럴 게 아니라, 우리 사발통문하구서 밥값을 2원씩만 더 냅시다 ?”
 
52
‘배급률이 그런 걸, 우리가 밥값을 더 낸다구 쌀을 더 많이 타오우 ?”
 
53
‘허어 ! 단지 우리 성의 아니요 ? 쥔어머닌 쥔어머니 정성으루다가 우릴 쌀밥을 먹이느라구 재갸넨 보리꽁퉁이만 자시질 않소 ? 그러니깐 우릴랑은 우리루써 할 수 있는껏 그 정성을 갚어야 도리가 아니겠소 ?”
 
54
‘그렇다면 모르거니와……그렇지만 지끔 우리가 내는 게 베랑 박한건 아냐 !”
 
55
‘걸 누가 모르나 !……그러니깐, 여러 말할 것 없이 아주 그렇거루 합시다 ? 쓰렁둥 2원씩 더 내기루, 응 ?……그럭헌다 치면 강주산 27원 난 25원, 그리구 도영인 22원……”
 
56
‘난 못해 !”
 
57
도영이 시침을 뚜욱 따고 하는 소리고, 두식은 짐짓 사팔눈을 부릅뜨면서 을러메듯……
 
58
‘머야 ? 인석 !”
 
59
‘난 무웃해 !”
 
60
‘너 인석, 형님 말 안 듣기냐 ?”
 
61
‘2원이면 춘발원 하룻저녁이 버젓한 걸, 그래 ?”
 
62
‘허허 ! 난 또, 근석이 무얼 그런다구 !……강주사두 이읜 없지 ?”
 
63
‘쯧 ! 아무리나 !”
 
64
‘됐어 ! 그럼……그런데 말이지, 실행은 오늘 6월버틈 하기루, 응 ?”
 
65
‘졸 도리루 해요 !”
 
66
‘다른 게 아니라, 이번 6월에 어쩌면 내가 일금 3원얘라가 승급이 될 눈치어든 ! 그러니깐……”
 
67
‘옳지 ! 자기만 월급이 오른대서 ?”
 
68
‘여보 ! 푸달진 3원 승급이 아니요 ? 그 3원에서 2원을 우리 쥔어머닐 위해서 밥값으루 더 낸다는 게 아니요 ? 강주사야 본디 날보담 월급이 많지 않소 ?”
 
69
‘우나게 많을 건 어딨어 !……그러나저러나, 믿는 3원 승급이 안 되면 어떡헐 영으루 ?”
 
70
‘안돼두 인전 더 내야지 !……실상 진작버틈 그런 생각이 없잖어 있었지만, 하두우 그놈의 것 수중에 떨어지는게 약삭발러서 하마 엄둘 못냈든 거라우 !”
 
71
‘결국 저만 수입이 느는 판에 한바탕 거드럭거리자구 ?”
 
72
도영이 이런 소리를 하면서 수저를 놓고 물러앉는다.
 
73
‘오냐, 거드럭 거린다 !”
 
74
‘아따, 그럴 게 아니라, 여보 강주사 ?”
 
75
‘예에 !”
 
76
‘우리 둘이서, 보이코틀 합시다 ?”
 
77
‘글쎄 !”
 
78
‘달리 보이코틀 하는 게 아니구, 우리 둘이서 이왕이면 이 작자보담 지레 선량을 하거든 !”
 
79
‘건 또, 어딧 방언인구 ?”
 
80
‘아, 6월꺼정 기두를 것이 없이, 이 작자 좀 뻐언하라구, 바루 이번 5월 달버틈 실행을 하잔 말야 !”
 
81
‘더 좋지 !……”
 
82
두식이 척 받아서……
 
83
‘……제에발, 부디, 그렇게 좀……”
 
84
‘우린 그럼 3원씩 더 내지 !”
 
85
‘난 5원씩 더 내지 !”
 
86
‘우린 7원씩 더 내지.”
 
87
‘난 10원씩 던 못 내니 ?”
 
88
‘강주사, 우린 그럼 15원씩 더 냅시다 !”
 
89
‘인석아, 난 그럼 25원씩 더 낼 테다 !”
 
90
‘흐음 ! 무얼 가지구 ?……통 48원을 내야 할 텐데, 3원 승급이 돼두 45원 밖엔 안 되니깐, 그대두 3원이 모자라는걸 ?”
 
91
‘허어허허허 ! 아따 근석, 산술두 빠르기두 하다 ! 허어허허허……”
 
92
두식은 그러다가 마침 또 생각이 나서, 웃음을 거두고는……
 
93
‘……그리구, 참, 저 건너방 영양한테두 통문을 돌려야 않나 ?”
 
94
‘일거리 하나 얻어 만났다 ! 하숙집 반값 인상운동 뿌로커루 나설 셈인가?”
 
95
도영이 하는 소리고, 윤달은 손을 내저으면서……
 
96
‘겔랑은 아야 참견두 할라 말아요 !”
 
97
‘어째서 ?”
 
98
‘자센 몰라두, 매삭 백 원씩 학비가 오는데, 자긴 거저 잘해야 3,4십원이나 쓰는지 마는지 하구서, 남는 건 죄에 내놓은대나 바 !”
 
99
‘흐응 ! 건 수얼찮은 호산데 !……아, 그럴 바엔 우리 궁당들한데두 가다가 더러 술이나 한잔씩, 응 ? 거얼게 좀 대접을 하겠지 ?”
 
100
‘에구, 지질히두 ! ……온 그래, 남의 집 처녀색시 술을 다아 바랜담 ?”
 
101
‘거, 타구난 천민이란 헐 수 없는 법이어든 !”
 
102
윤달과 도영이 함께 이렇게 핀잔을 하고 흉을 보고 하는 것을, 두식은 할 말이 없어, 또 한바탕 꺼얼껄 웃다가 그래도……
 
103
‘그래, 강주사랑 도영이 넌 건넌방 영양이 술 산다믄, 그래 ? 안 먹어?”
 
104
‘못이기는 체허구, 먹어 주지 !”
 
105
‘이, 도적놈아 !……그리구, 강주산 ?”
 
106
‘난 바래든 안해 !”
 
107
‘사주면 먹긴 해두우 ? 속은 있어두우 ? 허어허허허 !”
 
108
‘노형처럼 속없이 굴진 않어 !”
 
109
‘머어, 피치 일반야 !”
 
110
두식은 속으로, 아뿔싸 ! 하는 생각에 문득 말을 그쳐버린다. 두식뿐이 아니라, 셋이는 그야말로 서로들 속을 보일까 봐서, 소진과 관계되는 이야기는 제마다 범연한 체 조심을 하고, 몸을 사리는 터이었었다.
 
111
‘그러나저러나, 거……”
 
112
두식은 그래서 어색스럽게 잠깐 덤덤하다가, 어색스럽지 않게 말머리를 둘러대느라고
 
113
‘……기왕이면 아주 한 백 원씩, 두두룩하게 내들랑 않구서 !……건넌방 영양 말야.”
 
114
‘하숙 밥값으룬 헐찍허이 !”
 
115
윤달이 하는 소리고, 도영은 또……
 
116
‘한두식 씨가 아무래두 쥔어머니한테 좀 이쁘게만 뵈구 싶은 모양이지?”
 
117
‘네 말따나, 눈이 요 뽄새루 돼먹어서 이쁘게 뵈긴 영 글렀단다 !”
 
118
‘그러니깐, 하는 짓이나 이쁘게 뵈자는 거 아냐 ?……데릴사윗감으루, 응? 남수 새서방 후보루다가……”
 
119
‘일없다, 인석 !……네나 제에발……”
 
120
마침, 남수가 숭늉을 가지고 나와서 불쑥 들이밀었다.
 
121
‘무얼, 남수가 어쩌구 하는 거야 ?”
 
122
‘참 ! 두식이가 말야. 이번 5월달버틈 식갈 25원 더해서 48원씩 낸대 !”
 
123
도영이 이렇게 고자질을 하는 것을, 남수는 두식과 둘이를 한번씩 번갈아 보면서……
 
124
‘둘 중에 누가 미쳤는고 ?”
 
125
도영은 그만 본전을 밑지고서 허허 웃고, 두식은 잔뜩 눈을 부릅뜨고 건호통을……
 
126
‘네끼 ! 보리장머리 없이 !”
 
127
‘오오 ! 한서방이 환자루구면 ?”
 
128
물론 이 끝엣 대문은 들 농이었었다. 그러나 어쨌든 두식은 미친놈 처접까지 탔었다. 또, 속없단 소리도 들었었다. 미상불 사람이 좀 실없고 속이 빈 것이 사실이었었다.
 
129
하나, 비록 그러는 하지만, 그가 먼저 설도를 하여 식가를 올려주자고 한 것은 일점의 사됨이 없는, 한갓 정다운 마음일 따름이었었다.
 
130
따라서 보리 섞인 밥이나 가끔 밀가루범벅을 먹인다고 하여, 꿈에라도 강씨 노인이며 남수에게 불평을 한 적은 없었다.
 
131
그리하여 아뭏든지, 월급 실액 38,9원에서 23원을 강씨노인의 손에 쥐어주고는, 나머지15,6원을 가지고 한 달 용처를 쓰곤 했다.
 
132
최하급으로 담배는 흥아를 사서 피우고, 이발을 하고 목간표도 사고, 두어 권쯤 책도 고르고 골라서 사고 그리고 도영과 윤달을 청하여 춘발원 한턱도 내고, 그 길에 군만두를 반드시 스무 개 가량 사들고 돌아와서 안으로 들여보내기를 잊지 않고.
 
133
대개는 그날 밤까지에 죄다 소비가 되어 버리고서, 고작 2,3일 담뱃값으로, 소리도 안 나는 알루미 돈서껀 몇십전 남을 적도 드문 형편이니, 말을 옳게 하자면 한 달 용처가 아니라 하루 용처라고 해야 할 것이다.
 
134
이 가난해빠진 한 달(아니 하루의)용처로 더불어 보리밥과 밀가루범벅의 대가를 벌기 위하여 두식은, 안국동서 염천교다리까지 십리나 되는 길을 비가 오나 눈바람이 때리거나 이른 아침에 걸어서 가고 석양 늦게 걸어서 오고 하면서, 한 달 스무여드레 내지 아흐레 동안을 매일매일 열 시간씩 그렇듯 너줄한 직장에서 그와 같이 지저분한 노동을 하고 있던 것이다.
 
135
휴식할 시간도 별반 없고, 놀 시간은 더구나 없고, 항상 독서할 시간이나마 아쉽건만, 그러나 펄펄한 장정의 온갖 정력과 경활을 모조리 게다가 내바쳐야 하던 것이다.
 
136
인생과 청춘의‘일종의 낭비’라고 하겠고, 만일 거기에 다시 코스모스 같이 정갈하고도 사치한 연애와, 조선 최초의 노벨상 문학의 지망자로서 우리 한두식 군이라는 걸 참작하여 생각한다면, 정상은 한결 더 동정스럽다 해야 할 것이다. 도대체가 그‘월급’이라고 하는 자가 심히 박절하고도 사람을 몰라보는(몰라보려 드는) 괘씸한 녀석이 아니랄 수가 없겠다.
 
137
두식은 그러나 젊고 패기와 희망이 넘쳤다. 즉 남수나 도영 들의 말대로 하면, 그는 까치 뱃바닥같이 희떠웠다. 장차에 반드시 큰소리를 칠것을 단단 믿고, 지금의 이 불우한 시기를, 전혀 한때의 수난이요 시련이거니 스스로 위로해 마지않는다.
 
138
그러므로 그는 심정이 나고 우울하고 할 적 말고는, 언제든지(이미 마비가 된 듯)태연무심하며, 떠들고 지껄이고 놀고 하면서 명랑함을 잃지 않는다.
 
139
오늘은 마침 그러자, 여전히 교정실에 와서 앉아서 일을 하기는 하는 것이나, 속으로는 자못 짜증이 나고 유쾌하지가 못한 날이다.
 
140
간밤에 모처럼들 호유를 하느라고, 환락의 거리로부터 집으로 돌아간 것이 밤중 두시가 지나서고, 그러고도 세시가 넘어서 조금 잠을 자는 시늉만 했었다. 우선 수면부족으로 하여, 머리가 무겁고 몸이 찌뿌듬했고.
 
141
술을 또 이 술 저 술 섞어서 실컷 들이 퍼먹었으니, 회를 친 듯이 속이 좋지가 않고, 생각나느니 얼큰한 국물에 한잔 해장을 했으면 싶은 생각뿐이다.
 
142
그러나 그런 것보다도, 오늘이야 말로 웬 셈인지 촌가를 비집을 겨를도 없이 일이 바빴다.
 
143
드디어 그는 소진에게 편지를 쓰기로 결심을 했던 것인데, 이건 도무지 틈이 나지를 않는단 말이다.
 
144
‘이런 제에길 !”
 
145
아침부터 그는 지금 오정이 거진 되어 오도록 혼자서 몇 번이나 이 소리를 두런거렸는지 모른다.
【원문】직장(職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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