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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의 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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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군(任實郡) 재실(齋室) # 경의재
최근 3개월 조회수 : 8 (4 등급)
【향토】
(게재일: 2024.01.04. (최종: 2024.01.02. 23:08)) 
◈ 후천리 경의재(敬義齋)
오수역에서 동계로 향하는 13번 국도상 삼계면 소재지를 지나 후천리 후천교를 건너기 직전 왼쪽 야산 동쪽 골짜기 작은 오류골 북쪽 기슭에 있다. 경의재(敬義齋)는 풍천 노씨(豊川盧氏) 문중의 재실로 조선개국 己未 후 8周甲이라고 적혀 있어 1919년에 지은 것이며, 팔작지붕 아래 겹처마를 두르고 최근에 강판기와로 교체하여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지어져 있다.
목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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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천리 경의재(敬義齋)
 
오수역에서 동계로 향하는 13번 국도상 삼계면 소재지를 지나 후천리 후천교를 건너기 직전 왼쪽 야산 동쪽 골짜기 작은 오류골 북쪽 기슭에 있다. 경의재(敬義齋)는 풍천 노씨(豊川盧氏) 문중의 재실로 조선개국 己未 후 8周甲이라고 적혀 있어 1919년에 지은 것이며, 팔작지붕 아래 겹처마를 두르고 최근에 강판기와로 교체하여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지어져 있다. 주위의 담장은 조선식 담장으로 지어졌고 재실 안에는 경의재기 등 3개의 현판이 있다.
 
 
 
 

1. 후천 경의재운(敬義齋韻)

 
兩世同瑩此一岡  두 선조께서 이 언덕에 함께 묻히셨네.
巋然瓦背卽其傍  그 곁에 가파르게 등진 기와집
先人遺澤瞻松柏  선인께서 남긴 은택을 송백마저 우러르고
遐裔微誠感露霜  먼 후손의 작은 정성에 이슬과 서리도 감모하네
 
 
月榭風欞堪爽豁  달 비친 정사에 바람깃든 처마 탁 트여 상쾌하여
漁童樵叟更彷徨  고기잡는 아이와 나뭇꾼은 다시 방황하네.
千秋如在洋洋地  천추(千秋)동안 양양한 곳에 계신 듯 하니
認是林塘講學堂  숲에 연못 있어 강학할 집이라는 알겠네
 
정축 9월[菊月] 日
후손 중현(重鉉) 삼가 지음.
 
 
 

2. 후천 경의재

 
一溪繞白四山靑  시냇물 하얗게 두르고 서쪽 산은 푸르고
非閣非樓殖殖庭  재각도 아니고 누각도 아닌 반듯한 뜰
此乃藏修思繼述  이곳에서 학문에 힘썼으니 그 뜻을 이어가야지
宛然陟降現精靈  정령꼐서 완연하게 오르내리시네
 
棠梨花煖春風動  당리화(棠梨花) 봄바람에 움트고
松栢聲寒夜雨零  송백나무 소리 차고 밤비는 조용히 내리네
百世雲仍歌聚足  백세토록 후손들 노래하러 다리를 모아
從知潛德久愈馨  숨은 덕이 더욱 향기롭다는 것을 알게 되네
 
정축(丁丑) 4월[淸和] 日
후손(後孫) 준현(焌鉉) 삼가 지음
 
 
 

3. 후천 경의재기(敬義齋記)

 
노산(魯山)의 남쪽 끝머리에 산이 둘러 아름답고 물이 펼쳐 맑으니 활처럼 굽은 곳에 동네가 있어 올라가 보면 평평하게 넓게 펼쳐진 곳을 ‘소오류(小五柳)’409)라고 한다. 가운데 동쪽을 등진 언덕이 바로 우리 9세조와 7세조 두 선조의 무덤으로 자손들을 계속 안장하여 겹겹이 무덤이 있는 곳이다. 서리와 이슬을 맞으며 청소하며 제사를 올린 지 수 백년 동안 게을리 하지 않았다.
 
삼가 생각해 보니 대대로 이어오기는 했지만 가난하여 작은 묘궁으로 재숙할 곳을 도모하지 못해서 오랫동안 근심이었다. 내가 외람되이 후손[冑承]으로서 성공하기를 앉아서 기다리기만 하였으니 이것이 더욱 근심스럽지 않았겠는가?
 
기미년 봄에 여러 사람에게 의견을 묻기를 ‘선인(先人)께서는 미처 겨를이 없었지만 후손들마저 시작할 수 없다면 차라리 우리라도 힘껏 해야 되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더니 모두가 말하기를, ‘오직 물토(物土)이니 땅을 일궈 돈을 갹출하고 목재를 모아서 손발에 못이 박히도록 모두 힘을 다하고, 끼니에 드는 비용을 절약하며 자손들이 와서 공사를 도우면 얼마 되지 않아 완성될 것이니 어떻게 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일은 남아 있는데 힘은 부족하여 공사를 시작한 지 3년 만에 마쳤으니 어려운 일이었다.
 
재각은 3칸으로 종횡으로 14개의 기둥을 세워 동서로 방을 두고 가운데에 대청을 두었다. 길게 담장을 두르고 지붕은 기와로 덮었다. 따로 외문(外門)을 세워 빗장을 갖추었다. 낙성하는 날에 드디어 ’경의재(敬義齋)라고 편액하였다. 나에게 그 개요를 쓰라고 하였는데, 불초는 감히 사양하지 못하고 잔을 올리고, 좌중에 말하기를, ‘우리 문효공[文孝] 선조께서 추담[秋潭]의 위에 서실을 짓고 강학하며 편액하기를, ‘신의(申義)’라고 하셨는데 대개 맹자에서 효성과 우애의 뜻을 되풀이 하여 가르친다는 데에서 취하였다.
 
가만히 생각하니, 부모에게 돈독히 하고 먼 조상을 추모하는 것이 그 뜻과 일을 계승하는 것보다 낫지 않으니 효(孝)라는 것은 천지간의 당연한 이치로 변할 수 없는 법도 뿐 아니라410) 우리 가문에 대대로 내려오는 유물이로구나.411) 무릇 섭불에 전해지든지 전형(典型)에 기탁하든지 오직 효제(孝悌)의 의리에 있으니 국그릇이든 담벼락이든 삼태기일지 갖옷일지 욕보이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경(敬)이란 의(義)를 지탱하면서 곧바로 위로 올라가게 하는 것이므로 재각의 이름으로 지었다. 재각에 거처하는 사람은 긍구긍당(肯構肯堂)하여412)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일을 마쳤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이에 나아가기를 바란다면 더욱더 의방(義方)에 힘써야 할 것이며 우리의 선조의 인애의 근본을 실추하지 않아서 심법(心法)이 무궁하게 될 것이다. 효라는 것은 양체(養體)에 있어서 양지(養志)이니 어찌 이 사이에 한 마디 만큼이라도 차이가 있겠는가?413) 진실로 그렇지 않다면 장차 선령이 제물을 흠향하지 않으실 것이니 우리에게 재각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모두 말하기를 그렇다고 하였다. 나에게 기록하라고 하면서 서로 권면하는 결실로 삼으려고 하기에 이렇게 쓴다.
 
신유년 중추절에 주봉사손 원식(源植)이 손을 깨끗이 하고서 삼가 글을 짓다.
 
 
 

3.1. 敬義齋記

 
有區於魯山之南盡頭 山繚而麗 水鋪而澄 彎環成洞 而登臨夷曠者 曰小五柳也 中有背震之原 肆我九世七世二祖之幽宅也 子孫繼葬殆堂斧累然霜露之掃 香火之酹數百禩不懈 惟謹但世襲寒窭 不得謀一畝宮 以爲具修 齊宿之所 歷久而惟病焉 不肖忝在冑承 而坐待功成 尤不是懼哉 歲己未春 詢謀于僉 曰先人之未遑 而後人之又未可幾焉 則無寧自我而强力之乎 僉曰 唯乃物土拓地 醵金募材 胼胝而齊其力 饔飱而節其費 子來之攻 可期不日之成而無奈 事嬴力絀 歲三匝而工始訖 厥惟艱哉 齋凡三間縱橫十四楹其東西而廳於中 繚以長垣 覆以陶瓦 別立外門 以備扄閉 飮落之日 遂揭顔 曰敬義齋 命余記槩 不肖辭不敢 固因揚觶而 語之座曰 惟吾文孝先祖 築室講道 于秋潭之上 扁以申義 盖取孟子申之以孝悌之義也 竊謂篤親追遠 莫善於繼其志述其事 而孝非天經地義 而吾家之由來靑氈乎 凡爲其薪火之傳 典型之托者 亦惟以孝悌之義 乃羹乃墻 可箕可裘 以克底于無忝 而敬者所以夾持於義 而直上達者也 名是齋舍 是奚以哉 居是齋者 毋徒以肯構肯堂 爲俎爲豆 爲能事已畢 而願進此而益勉義方 期不墜吾祖仁 本心法于無窮也 猶之孝也 養志之於養體 豈直以寸之間乎 苟或不然 將先靈之不右饗 我矣齋於何有 僉曰唯唯 請記其語 以爲相勉之實云爾歲辛酉仲秋日
 
主鬯孫 源植 盥手 謹識
 
 

 
각주
409) 오류 : 진(晉)나라의 시인 도잠(陶潛)의 자호(自號). 그가 집 앞에 다섯 그루의 버드나무를 심고서 오류 선생(五柳先生)이라고 자호하였음.
410) 천지간의 당연한 이치로서 변할 수 없는 법도라는 뜻인 천경지의(天經地義)의 준말로, 삼강오상(三綱五常)과 같은 예(禮)를 가리킨다. 『춘추좌씨전』 소공(昭公) 25년에 “대저 예라는 것은 하늘의 떳떳한 도이고, 땅의 후한 덕이며, 사람이 행하는 길이다.〔夫禮 天之經也 地之義也 民之行也〕”라는 말이 나온다.
411) 청전(靑氈) : 선대(先代)로부터 전해진 귀한 유물을 가리킨다. 진(晉)나라 왕헌지(王獻之)가 누워 있는 방에 도둑이 들어와서 물건을 모조리 훔쳐 가려 할 적에, 그가 “도둑이여, 그 푸른 모포는 우리 집안의 유물이니, 그것만은 두고 가는 것이 좋겠다.〔偸兒 靑氈我家舊物 可特置之〕”라고 하자, 도둑이 질겁하고 도망쳤다는 고사가 있다. 『晉書 卷80 王羲之列傳 王獻之』
412) 긍구긍당(肯構肯堂)은 《서경》〈대고(大誥)〉에, “만약 아버지가 집을 지으려 작정하여 이미 그 규모를 정했는데도 그 아들이 기꺼이 당기(堂基)를 마련하지 않는데 하물며 기꺼이 집을 지으랴.〔若考作室 旣底法 厥子乃弗肯堂 矧肯構〕” 한 대목에서 온 말로, 자손이 선대의 유업을 잘 계승하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는 고가(古家)를 자손들이 중수(重修)한 것을 가리키는 듯하다
413) 양지(養志)와 양체(養體) : 양지는 어버이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 드리는 것이고, 양체는 물질적으로 생활에 불편함이 없게 해 드리는 것인데, 『맹자(孟子)』 이루 상(離婁上)에 그 내용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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