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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완의 여행을 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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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고재완의 여행을 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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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鍾路區) 탑골 공원(塔--公園)
【여행】
(2017.12.11. 11:33) 
◈ 탑골공원 스토리 (2016. 5. 30)
부정적 이미지가 많은 서울 종로 3가의 탑골 공원(09 ~ 18시 개방,무료 입장)을 다녀왔습니다.
부정적 이미지가 많은 서울 종로 3가의 탑골 공원(09 ~ 18시 개방,무료 입장)을 다녀왔습니다. 세조때 세운 탑이 있던 동네라 탑동(塔洞)이라 불렀던 이곳의 탑골공원은 사적 제354호로 주변에 낙원상가, 운현궁, 종묘 등이 있있습니다. 조선시대 사찰인 원각사 터에 세운 서울 최초의 근대식 공원으로 파고다(Pagoda, 塔) 공원이라고도 불립니다.
 
이곳 탑골공원에 1919년 3월 1일(토) 14시 민족대표자 33인들이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만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3월 3일 고종 장례일, 3월 2일은 일요일이라 기독교 반대로 3월 1일로 날을 잡고 준비했는데 학생과 민중이 많이 모이므로 일제 경찰과의 무력충돌을 염려하여 지도부가 탑골공원에서 그리 멀지 않는 인사동 태화관에 33인(4명이 불참)이 독립선언서와 3장 공약, 대한독립만세를 3창한 독립선언식을 거행하였습니다. 축배를 들고 자진해서 종로경찰서에 연락하고 남산에 있는 경무통감부(왜성대)에 수감되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33인 지도부가 일제를 너무 몰랐다는 것이 참 아쉽고, 또한 지도부가 현장에 오지 못할 경우에 대비한 독립선언서 낭독자를 선정하지 못할 정도로 철저한 계획이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 탑골 공원내 독립선언서
 
그렇다면 누가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읽었을까? 당시 34세 정재용 전도사(鄭在鎔, 1886년 ~ 1976년, 경신 중학교 졸업, 황해도 해주읍 본정통감리교회, 2년 8개월 감옥)가 큰 목소리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습니다. 그렇게 이곳에서 시작된 독립만세운동은 전국으로 퍼져 나갔고 탑골공원은 민중이 일제강점기에 독립만세를 외친 3·1운동의 출발지로서, 우리 민족의 독립 정신이 살아 숨 쉬는 유서 깊은 곳입니다.
 
▼ 탑골공원내 있는 정재용의 독립선언서 낭독 장면
 
 
★ 독립선언서를 해외에 알린 앨버트 테일러(UPI 특파원)부부가 살던 서대문구 행촌동 딜쿠샤(희망의 궁전) 집도 방문하길 권합니다.
 
 
탑골공원이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중요한 이유는 이곳이 1919년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만세를 처음 외친 3.1운동의 발상지이기 때문압니다. 1919년 3월 1일 민중들은 이곳에 모여 독립선언서를 듣고 전국으로 독립만세운동이 퍼져나갔습니다. 그래서 일제강점기 파고다 공원은 나라 잃은 설움을 달래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장소인데 지금은 노인들이 모이는 장소로 알려져 안타깝습니다.
 
탑골공원 안의 볼거리는
 
① 12m의 원각사지 10층석탑(국보 제2호)
② 원각사비(보물 제3호)
③ 3.1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만세를 부른 팔각정
④ 1966년 5월에 제막한 높이 10m의 독립만세 부조판
⑤ 손병희(孫秉熙) 선생의 동상
⑥ 삼일운동 기념비
⑦ (한)용운당대선사비 등이 있습니다.
 
▼ 배치도
 
 
▶ 탑골공원은 언제, 어떻게 생겼나?
 
탑골공원은 고려시대에는 흥복사(興福寺)라는 사찰이 있었던 곳으로 1464년(세조 10) 불교에 대한 신앙심이 깊었던 세조가 원각사(圓覺寺)로 개명하고 중건하였는데, 이 공사를 위하여 동원된 군사는 2,100인이었고, 13인의 부장이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근처의 가옥 200여 호를 철거하여 3년 후에 완공된 사찰의 규모는 굉장한 것이었고 도성 안 제일의 대가람(사찰)이었다. 원각사는 당우나 문루의 규모도 대단한 것이었지만, 특히 전국에서 동(銅) 5만 근을 모아 주조한 대종과 1468년에 완성하여 그 안에 석가여래의 분신사리와 새로 번역한 원각경을 안치하였다는 10층석탑이 있었다.
 
성종 때 들어와서는 철저한 억불정책으로 바뀌었고, 연산군 때 들어가서는 더욱 가혹하여졌다. 원각사를 철거하자는 논의는 1504년(연산군 10)에 시작되었지만 당장에는 철거하지 않았고, 그 대신 기생과 악사를 관리하는 장악원(掌樂院)을 이 자리에 옮겨 전국에서 뽑아 올린 기생 1,200여명과 악사 1,000명, 감독 40명이 기거하는 연산군의 기생방이 되었으며, 그 이름도 연방원(聯芳院)으로 바뀌었다.
 
연산군이 쫓겨난 뒤 이 건물은 잠시 한성부 청사의 일부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1514년(중종 9) 호조에서 원각사의 재목을 헐어 여러 공용건물의 영선에 쓸 것을 계청하자, 왕이 이를 허락한 뒤 얼마 안 가서 이 사찰 건물은 그 자취를 감추어 버렸고, 원각사비와 10층 석탑만 남아 있다. 그리고 원각사 대종은 1536년에 숭례문(崇禮門)으로 옮겨 보루(報漏)의 종으로 사용하다가 1594년(선조 27)에 다시 종각으로 옮겼다고 한다.
 
 
▼ 1820~1830년대 지도책인 수선전도에 탑동(塔洞)이란 지명이 보인다. 원각사지 10층석탑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이 일대가 탑골 또는 탑동으로 불리게 되었다.
 
 
 
1897년 영국인 브라운의 건의로 이 지역일대가 서구식 공원으로 조성되었다.
 
 
▼ 구한말 주한 미국공사 알렌의 메모속의 Public Park로 보이는 탑골공원
 
 
처음 공원이 조성될 당시에는 공터에 나무를 심고 벤치를 둔 정도였다. 1902년경에는 공원 서쪽 부지 일부에 군악대 건물이 세워졌다. 대한제국은 1900년 독일인 음악가 에케르트를 초빙하여 군악대를 만들었는데, 이때 군악대의 전용 건물을 파고다공원 일각에 지은 것이다. 이 건물은 1907년 통감부의 명령으로 군악대가 해산되자 방치되었다.
 
1910년 파고다공원의 관리권은 총독부로 넘어갔고 총독부는 이곳에 정자·의자·화단·연못·회유도로·전등·수도·온실 등의 시설을 설치하였고 1919년부터는 경성도서관으로 이용되었으며 광복 후에는 종로도서관으로 이용되었다.
 
1946년에는 원각사 10층 석탑의 맨 위층 3개 층이 미군들에 의해 제자리를 찾아갔다. 우리나라에 진주하여 있던 미 24사단 소속의 공병대에 의하여 기중기로 상층에 올려져 원상태로 복원된 것이다. 이 공사 때에는 공원이 장안의 구경꾼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한다.
 
탑골공원 재정비는 1967년에 이루어졌다. 이때 종로도서관이 사직공원 옆으로 이전하면서 기존의 건물을 허물었고, 공원 서편에 파고다 아케이드라는 상가를 만들어 그 모습을 크게 바꾸었다.
 
이 파고다 아케이드는 지어진지 16년 후인 1983년 철거되고 그 자리에 투시형 담장을 설치하고, 서문과 북문 등 사주문을 복원하였으며, 공원 부지도 확장·정비하였다.
 
1988년 시민의 휴식을 위하여 무료로 개방되었다. 민족정기의 산 교육장으로, 근대도시공원으로 지난날의 침침한 때를 벗고 활기찬 시민공원으로 되었으며, 파고다공원으로 불리던 것이 1991년 10월 11일 탑골공원으로 명칭을 확정하였으며, 2011년 7월 28일 ‘서울 탑골공원’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 탑골 공원 정문인 삼일문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이다.
 
 
 
 
▼ 배흘림 기둥
 
▼ 그랭이 공법(나무 기둥에 밑둥을 아래에 닿는 주춧돌의 모양에 맞춰 깎아내어 주춧돌과 정교하게 맞물리게 하는 공법)의 기둥
 
 
▼ 삼일문에서 공원 안쪽 방향
 
▼ 의암 손병희 선생 동상(정면)과 우측의 삼일운동 기념비와 조각
 
▼ 정문에서 본 전경(파노라마 사진)
 
 
계속 이어집니다.
 
 
★ 찾아가기(09~18시 개방 시간)
 
지하철 종로 3가역 1번 출구
 
 
출처: 문화재청,민족문화대백과,국가기록원,서울시
종로구(鍾路區) 탑골 공원(塔--公園)
【여행】 고재완의 여행을 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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