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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도일기(馬島日記) (1908년) ◈
◇ 마도일기(馬島日記) (1908년 4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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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석환 의사
1
馬 島 日 記
 
 
2
1908년 4월
 
 
3
4월 1일 병진.
 
 
4
2일 정사.
 
 
5
오후에 姜壽五 · 李乙仙 · 崔晩鳳 · 朴分吉 · 金寶物의 편지가 와서 곧 답장을 써서 우체국에 나가 부쳤다. 姜壽五에게 답한 편지에 말하였다.
 
6
“만리 밖에서 받는 한 통의 편지는 도리어 대마도가 하늘 위에 있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賀禮함이 어찌 한이 있겠습니까? 피차에 3년 동안 소식을 전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피차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마음에 없는 것이 아니라 남의 이목에 혐의가 있을까 하여 마음은 있어도 하지 못한 것입니다. 처지를 생각하거나 그리움을 생각할 때 먼저 편지를 해야 할 정리가 누구에게 있습니까? 이는 ▣▣▣의 처지가 아니기 때문에 감히 먼저 쓰지 못하였으니 혹 굽어 헤아려주시겠습니까? 삼가 초여름에 어른 모시고 계속 만왕하시며 온 집안이 모두 편안하다고 하니 멀리 외지에서 그립고 비는 마음 가누지 못하겠습니다. 弟는 타향에서 사는 것이 전날과 같으니 다행함을 무엇으로 비유합니까? 다만 나라와 집의 그리움과 친구들 간의 정은 항상 마음속에 있으나 밖으로 토할 수 없음에 낮에는 북으로 가는 구름을 보면서 마음도 함께 쫓아가고 밤에는 고향을 바라보고 자면서 꿈과 함께 돌아갈 뿐입니다. 의복이 필요한 것은 형편이 어려워 만족하게 할 수는 없고 다만 부대에서 주는 것을 의뢰하니 부끄러울 뿐입니다. 나머지는 이만 줄입니다.”
 
7
  家兄의 답한 편지에 말하였다.
 
8
“지난 달 24일에 올린 편지는 그간에 받아보셨습니까? 엎드려 下書를 받음에 슬픈 마음 얼마나 극진하겠습니까? 삼가 초여름 날씨에 기체후 이어 만강하시고 형수씨도 기체 만안하시며 조카들도 잘 자란다고 하니 엎드려 멀리서 정성의 마음 구구하게 가누지 못하겠습니다. 舍弟는 宿食이 옛날과 같으니 얼마나 다행합니까? 아뢰올 말씀은 석방될 기한이 동짓달 그믐께 있는데 그 시기 전에 석방되어 돌아감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엎드려 생각컨대 세월이 화살과 같아 소식이 막힌 지 8개월이 지났지만 실제로는 머리를 돌릴 사이입니다. 저 때문에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弟는 책을 보고 글씨를 쓰는 일로 바다 속의 세월을 보내오니 이것이 시간을 보내는 법이 됩니다. 나머지는 답장을 이만 줄입니다.”
 
9
崔·朴 두 秀才의 편지에 답하여 말하였다.
 
10
“지난 달 24일에 부친 편지는 그간 받아 보았는가? 바라던 나머지에 보내온 편지를 받아보니 기쁨을 가누지 못하여 마음이 스스로 위로되네. 하물며 녹음이 한창인데 어른을 모시면서 별 일 없고 글을 읽는 일도 진보하였다고 하니 멀리서 바라는 마음 가누지 못하네. 나[硏下]는 한결같이 시일을 보내니 알릴 만한 일은 없네. 그대들이 읽는 주역[羲經]은 진도에 따라 보고 지나가니 비록 만분의 일의 껍질도 터득하지 못하겠지만 날로 64卦를 외우는 것은 여기에서 터득이 있고자 기대하는 것이네. 바라건대 그대들은 독실하게 一部의 경서를 읽어 여기에 급급히 하여 맹세코 푹 젖고자 전심하고 다른 뜻을 갖지 않으면 사탕수수를 씹는 듯한 맛에 거의 도달할 것이네. 내가 본국으로 돌아가는 날에 그대들이 읽은 것을 講하여 피차에 서로 떨어진 뒤의 공부한 바를 비교해 볼 것이네. 이것으로 이해하여 주게. 나머지는 이만 줄이네.”
 
11
金寶物의 편지에 답하였다.
 
12
“그립던 차에 편지를 받으니 금옥을 주는 듯할 뿐만이 아니었네. 요즈음 麥秋에 어른 모시고 잘 있으며 日課는 날마다 진전되는지 멀리서 그리움이 적지 않다네. 나[硏下]는 옛 모습대로 지낼 뿐이네. 이른바 공부라는 두 글자의 뜻은 마치 여자 바느질의 바늘, 실과 같아 실로 수를 놓는 것이며, 농부가 심고 걷을 때에 싹마다 북돋운 연후에 옷을 만들고 가을의 풍작을 기대하는 것과 같으니 초학자가 글자와 글귀의 사이에서 터득하는 것이 무엇이 이것과 다르겠는가? 모름지기 이를 본받아 마지않으면 그대들도 또한 옛사람의 자리에 앉을 것이네. 깊이 헤아려 노력하게. 나머지는 더 쓰지 않네.”
 
13
寺尾가 찹쌀 콩밥 한 주발을 가지고 와서 말하였다.
 
14
“오늘은 나의 손자가 태어난 지 백일입니다. 별달리 드릴 것은 없고 다만 이 밥을 정으로 드립니다.”
 
15
라고 하므로, 우리는 각각 몇 숟가락씩 먹었다. 통역에게 그곳의 풍속을 들으니 말하기를,
 
16
“사람이 태어난 지 1백 일이 되면 이웃과 마을의 사람들이 혹 돈으로 표하고 혹 면포나 비단을 주어 生男의 예를 축하하고 또 그 집에서는 음식을 장만하여 같은 마을 사람들에게 줍니다.”
 
17
라고 하였다. 풍속은 우리나라와 같았다. 그러나 우리는 객지에서 주머니에 돈이 떨어져 약소한 보답[木果之報]255)도 하지 못하고 다만 부끄러운 마음만 가질 뿐이었다.
 
 
18
3일 무오.
 
 
19
4일 기미.
 
 
20
5일 경신.
 
 
21
6일 신유.
 
 
22
오후 위병과 함께 바닷가에서 바람을 쏘이고 돌아왔다. 경비대 長官 한 사람이 와서 타일러 말하였다.
 
23
“지금은 일기가 점점 따뜻해져서 솜옷은 불가하니, 아침과 저녁 차가울 때는 속에 겹옷을 입고 겉에 홑옷을 입고 지낸다. 만약 점심 때 따뜻하면 겉의 홑옷을 벗어버리고 지내는 것이 좋다.”
 
 
24
7일 임술.
 
 
25
8일 계해.
 
 
26
이 날은 浴佛하는 날이었다. 이곳의 풍속에도 또한 부처님께 공양하는 일은 있었다. 友鹿里에 사는 백형과 중형이 함께 편지를 부쳐왔는데 백형은 경기도 양주에 사는 친족에게 養子를 얻어 왔다. 나이는 지금 16세이고 전에 入學한 일이 없어 이제부터 처음으로 千字文을 읽는다고 하였다. 국내의 여러 의병 죄수들은 모두 석방되어 돌아왔는데 홀로 대마도에만 가부의 말이 없어 이런 뜻으로 여러번 신문지상에 언론이 있었다고 하였다.
 
 
27
9일 갑자.
 
 
28
본 부대에서 통역을 불러가더니 조금 있다가 통역하는 사람이 와서 말하였다.
 
29
“鷄知 사령부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말하기를 ‘小倉으로부터 한국어 통역 1사람을 쓸 곳이 있어 이런 뜻으로 鷄知에 부탁하여 지금 내가 이곳에 있으면서 통역을 하기 때문에 나에게 부탁하여 구하고자 한다.’고 하였습니다.”
 
30
“어디다 쓸 것입니까?”
 
31
“부대의 의논을 들으면 그간에 한국 의병의 우두머리가 체포된 자가 거의 60명인데 지금 小倉으로 옮겨 收監하는 중이므로 이곳에 쓰려고 한다고 하였습니다.”
 
32
“하필 왜 여기서 구하는 겁니까? 한국으로부터 주선하면 수십 명 뿐이 아닐 것입니다.” “지금 한국에는 일이 많고 일본 사람으로 겨우 통역을 하는 자는 각처에 펴져 있어 쓰이고 또 합당한 사람을 알지 못하니 나로 인하여 구하면 혹 합당한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33
10일 을축.
 
 
34
11일 병인.
 
 
35
통역이 말하였다.
 
36
“한국에는 사건이 많아 곳곳마다 의병이 봉기하여 지금의 駐韓守備隊로는 감당하지 못하여 일본으로부터 또 4만 명의 군대를 파견하여 보낸다고 합니다.”
 
37
“한국에는 어느 곳이 심합니까?”
 
38
“그렇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경상도와 전라도로부터 충청도에 이르기까지 연하여 계속되는 모양입니다.”
 
39
“일본 군대의 한국에 있는 자는 가령 몇 만 명이 됩니까?”
 
40
“전날에 출발한 것도 적어도 3만 명은 될 것이요, 이 번에 출발한 것이 4만 명인데 합하면 7만 명에 이를 것입니다.”
 
 
41
12일 정묘.
 
 
42
경비대로부터 匠人 3~4명을 보내어 감금실을 수리하였다. 전날에는 문의 지도리가 약하고 벽이 무거워 지도리가 문을 눌러 문이 제대로 열리고 닫히지 못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벽을 허물고 다시 木板으로 內外를 합하여 만들어서 벽 모양으로 하였다.
 
 
43
13일 무진.
 
 
44
14일 기사.
 
 
45
15일 경오.
 
 
46
16일 신미.
 
 
47
흐리다가 오전으로부터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밤에 이르러도 이와 같았다.
 
 
48
17일 임신.
 
 
49
18일 계유.
 
 
50
鷄知 사령관이 와서 경비대의 방과 창의 청결상태를 시찰하고 병정을 조련장에서 검열한다고 하였다. 大板新聞을 보았더니 한국 義兵을 토벌하기 위하여 1개 연대를 파견하였다고 하였다.
 
 
51
19일 갑술.
 
 
52
함께 고생하던 여러 사람이 동쪽 방으로 옮겨 가서 3개의 방으로 나누어 거처하고, 匠人이 또 서쪽의 방을 수리하였다.
 
 
53
20일 을해.
 
 
54
21일 병자.
 
 
55
食主 石田義一이 먼저 번에 까닭 없는 병으로 수일 동안 자리에 누워서 고통을 받는다고 하였는데 지금 조금 차도가 있어서 기동한다고 한다. 석양에 주번사관이 와서 보고 갔다.
 
 
56
22일 정축.
 
 
57
경비대 군의 중대장이 우리나라 平壤으로 옮겨가서 그 군대의 군의가 되었다. 이 부대의 신임 군의와 二等軍醫 原理策이 감금실에 들어왔다가 갔다.
 
 
58
23일 무인.
 
 
59
석양에 장인들이 일을 마치고 우리들에게 인사를 하고 갔다. 그 중에 한 노인이 말하였다.
 
60
“오직 속히 귀국하기를 바라오.”
 
61
石田이 과자 한 봉지를 보내어 접대하였다.
 
 
62
24일 기묘.
 
 
63
오후에 石田이 들어 왔는데 병 앓은 이후의 모양이 초췌하였다. 오후에 특무조장이 왔다가 갔다.
 
 
64
25일 경진.
 
 
65
小倉의 사단장이 이 부대를 검열하려고 왔다고 한다.
 
 
66
26일 신사.
 
 
67
27일 임오.
 
 
68
이 날은 일본 해군 기념일이다. 3일을 잔치하여 노니는데 작년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69
28일 계미.
 
 
70
새벽에 뇌성이 두서너 번 쳤다. 鷄知 사령관이 와서 부대 병사의 연습을 살핀다고 한다.
 
 
71
29일 갑신.
 
 
72
小倉 사단장이 오후에 嚴原에 도착하고 내일 아침에 이 부대에 들어온다고 한다.
 
 
 

 
73
각주)
 
74
255)  木果는 「시경」에는 木瓜로 되어 있다. 모두 모과를 나타내는 말이다. 모과는 대단치 않은 물건이란 뜻이며, 여기서는 좋은 음식을 주어도 거기에 보답을 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投我以木果 報之以瓊琚 非報也 永以爲好也”(「詩經」 衛風 木果)
【원문】마도일기(馬島日記) (19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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