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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도일기(馬島日記) (1908년) ◈
◇ 마도일기(馬島日記) (1908년 8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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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석환 의사
1
馬 島 日 記
 
 
2
1908년 8월
 
 
3
8월 1일 갑인.
 
 
4
2일 을묘.
 
 
5
바람의 기운이 서늘하니 진실로 가을임을 깨달았다.
 
 
6
3일 병진.
 
 
7
石田이란 雇傭人이 監禁所의 衛兵門을 출입할 때에 혹 자유로 하는 폐단이 있다고 하여 兵丁에게 뺨을 맞았다. 그의 아버지 石田도 또 守門에 들어오는데 병정이 무단히 뺨을 때렸다. 石田이 분함을 이기지 못하여 그 부대에 가서 말하였다.
 
8
“이제부터 한국 사람의 식사를 해주지 않겠다.”
 
9
“무슨 이유인가?”
 
10
하니 石田은 그 이유를 말하였다. 부관이 말하였다.
 
11
“이 일은 나는 알지 못한다.▣▣▣▣▣▣▣▣”
 
 
12
4일 정사.
 
 
13
5일 무오.
 
 
14
6일 기미.
 
 
15
紹軒 安奭老가 보낸 편지가 도착하였는데 南湖·滄湖도 나에게 같은 편지 폭에 안부를 묻고 나머지 사람들은 각 폭에 물었다. 金在憲·李圭漢이 思雲에게 편지를 하여 안부를 전하였다.
 
 
16
7일 경신.
 
 
17
李郭山이 思雲에게 편지를 하였는데, 趙判書와 뜻이 합치하지 않는 일이 있어 그 齋室을 버리고 장차 離散의 지경에 이를 것이라고 하였다.
 
 
18
8일 신유.
 
 
19
安紹軒의 편지에 답장을 써서 우체국에 부치고, 나머지 사람들도 모두 답장하였다.
 
 
20
9일 임술.
 
 
21
思雲이 그의 聘丈에게 답장 편지를 부치고, 滄湖는 그 집에 보내는 편지를 써서 보냈다.
 
 
22
10일 계해.
 
 
23
11일 갑자.
 
 
24
12일 을축.
 
 
25
13일 병인.
 
 
26
14일 정묘.
 
 
27
寺尾가 말하였다.
 
28
“大隊部로부터 나를 불러 여러분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일로 말을 하므로, 내가 허락하였습니다.”
 
29
나는 말하였다.
 
30
“石田이 물러간 것은 또한 섭섭하지만 본부로부터 이와 같이 정하였으니, 오히려 다른 사람이 들어와 제공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31
15일 무진.
 
 
32
舍兄에게 편지를 올리고 아울러 聘丈과 생원 姜正禹 씨와 曺友의 편지와 崔晩鳳 등에게 편지를 써서 우체국에 부치고 또 2수의 절구를 曺友에게 주었다.
 
 
33
客中對馬逢佳節  객지 대마도에서 명절을 만나니
34
況是三年碧海深  3년 동안 푸른 바다 깊은 곳일세
35
檻外秋來紅葉樹  가을이 오자 난간 밖에 나뭇잎은 붉은데
36
滿山惹起故園心  산마다 고향 산의 생각을 일으키네
 
37
天地多風雨  천지는 풍우가 많은데
38
江山又是秋  강산은 또 가을이 되었네
39
白水人何在  몰속에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가
40
蒼生久自愁  창생들은 오래도록 시름만 더해 가네
 
 
41
2수의 절구를 晩鳳에게 부쳤다.
 
 
42
對馬之西白嶽山  대마도 서쪽 白嶽山
43
北來百里海中間  북쪽에서 백리를 온 바다 중간일세
44
萬樹森森遮遠目  만 그루 나무는 무성하여 멀리 보는 눈을 가리니
45
不知何處是鄕關  어느 곳이 고향인지 알지 못하겠네
 
46
四圍海上四圍山  사방으로 둘러싸인 바다 위에 산은 사방으로 둘렀는데
47
偶作楚人在此間  우연히 포로[楚人]261) 되어 이 중간에 있네
48
由來猶有閒中趣  그런 속에 오히려 한가한 취미 있으니
49
秋葉春花映客關  가을 단풍 봄꽃은 객지 대문을 비춰주네
 
 
50
16일 기사.
 
 
51
17일 경오.
 
 
52
흰 구름이 날고 太白星이 하늘을 지나면서262) 아침부터 저녁때까지 반짝이는 그 빛을 우러러볼 수 있었다. 이는 재앙을 미리 알리는 것이 아닌가? 春秋 및 여러 역사책과 많은 책에 재앙을 불러오지 않음이 없다.
 
 
53
18일 신미.
 
 
54
太白星이 또 나타났다.
 
 
55
○川上이 공휴일로 인하여 들어오지 않았다가 갑자기 들어와 말하였다.
 
56
“南滄湖의 小室 朴氏가 오늘 오시 무렵에 육지에 내려 우리 집에 와서 滄湖와 면회하기를 청하기 때문에 내가 들어왔습니다.”
 
57
滄湖가 말하였다.
 
58
“單身으로 들어왔습니까?”
 
59
“젖먹이는 아이와 함께 왔습니다.”
 
60
통역이 말하였다.
 
61
“오늘은 공휴일이라, 大隊長이 부대 안에 있지 않아 서로 만나지 못합니다. 내일 아침에 부대장이 부대에 들어온 뒤에 이 일을 품의하여 고해서 서로 면회할 방법을 마련하겠습니다.”
 
62
滄湖가 말하였다.
 
63
“식사와 숙박은 公의 집 같은 곳이 없습니다.”
 
64
“비록 이런 말이 없더라도 나는 이미 예상하였습니다. 하필 다시 부탁합니까?”
 
65
통역이 곧 집으로 나갔다.
 
 
66
19일 임신.
 
 
67
통역이 들어와 말하였다.
 
68
“滄湖의 일로 대대에 가서 말을 하였더니, 대대장이 말하기를 ‘감금실 안에서 서로 면회하는 것은 불가하다. 대대의 兵舍 門 곁의 면회실에서 서로 만나보고 이야기하고 만약 감금실의 거처를 보고자 한다면 그 內外로 하여금 대략 서로 이야기한 뒤에 잠시 감금실에 들어와 그 남편의 거처를 보게 하라.’ 하였다.”
 
69
통역이 말하였다.
 
70
“그렇게 하겠습니다.”
 
71
滄湖가 통역을 따라 대대의 면회실로 나가 반시간 가량 뒤에 滄湖가 그 소실과 함께 감금실에 들어왔다. 자리를 정하고 우리에게
 
72
“함께 고생이 어떻습니까?”
 
73
하고 물었다. 함께 있는 우리도 바다와 육지의 고생한 수고를 묻고 또 滄湖의 어머니를 묻고 온 집안이 안녕한가를 물었더니 안녕하다고 하였다. 또 묻기를,
 
74
“예산 黃洞의 李參判宅의 일은 온 집안이 함께 멸하였다고 하였는데, 과연 들은 바와 같습니까?”
 
75
하니, 말하였다.
 
76
“車를 탄 사람이 뜻밖에 들이닥치더니 李參判을 결박하고 新昌의 뒷산으로 가자, 피해를 당할까 염려하여 아들이 함께 갔는데 그 아들이 아버지가 죽는 것을 보고 구하려다가 살해를 당하여 그 곁에서 죽고 부리는 종 한 사람도 그 상전의 죽음을 보고 또 죽음을 당하고 廳直이 한 사람은 한 쪽의 다리를 잘렸습니다. 그 집안의 부인과 그 子婦는 지금 다행히 집에 있고 또 그 손자도 살아 있는 것이 다행합니다.”
 
77
내가 말하였다.
 
78
“무엇 때문에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까?”
 
79
“그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생각컨대 그 일은 비밀이 유지되지 못하고 먼저 탄로되어 이와 같은 데에 이른 것 같습니다.”
 
80
또 본국의 사세를 물었더니 말하였다.
 
81
“다른 도는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예산과 충청남도는 지금 별다른 일은 없고 인심은 잠시 험하여 형언할 수 없습니다. 농사는 팔도가 모두 대풍이라고 하고 예산 근처에도 근래에 드문 풍년이라고 합니다.”
 
82
○ 通譯이 부대의 명령으로 인하여 밖으로 나가게 하니 滄湖가 어린 딸을 안고 문밖으로 보내면서 말하기를,
 
83
“이 아이가 뱃속에 있은 지 3개월만에 내가 이 섬에 들어왔는데 지금 세 살이다.”
 
84
고 하였다. 나는 滄湖에게 물었다.
 
85
“小室이 여기에 들어올 때에 그 路費와 고생을 어떻게 감당하였다고 합니까?”
 
86
滄湖가 말하였다.
 
87
“내가 이 섬에 들어온 뒤에 사방으로 친척이 없어 만 가지로 생각해도 살아갈 길이 없어 술을 빚어 파는 것으로 이익을 챙겨 온 집안이 이것으로 오늘까지 糊口의 방법으로 하여 혹 1달에 15냥씩 저축하고 혹 10냥씩 저축하였다가 이것으로 노비를 하였다고 합니다.”
 
88
우리는 말하였다.
 
89
“글씨도 알지 못하고 일어도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여기까지 들어왔습니까?”
 
90
“일본 사람의 筆蹟을 빌어서 대마도 감금실내의 감금인 南某의 면회차 들어가는 뜻으로 종이 위에 써서 이것으로 지목을 하여 들어왔습니다.”
 
91
“이 섬에 들어오고자 할 때 응당 사람마다 모두 불가하다고 하였을 것인데 어떻게 이렇게 들어왔습니까?”
 
92
滄湖가 말하였다.
 
93
“이 섬에 들어온 일을 말하면 萬口一聲으로 불가하다고 하는데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만약 이 섬에 들어가지 못하면 중도에서 죽을 각오를 하고 이것으로 뜻을 하였다고 합니다. 중도에서 도적을 만나 약간의 금전을 잃어버리고 紙貨 30원은 옷 속에 넣어 꿰매었기 때문에 다행히 뺏기지 않았습니다. 그 전후의 고생은 형언할 수 없습니다.”
 
94
나는 말하였다.
 
95
“장하도다, 이 사람이여! 장하도다, 이 사람이여! 옛날에도 夷狄에게 포로가 되어 그 곳에서 죽었는데 그 아내 某氏가 만 리를 멀다 하지 않고 밤낮으로 바쁘게 달려 남편의 시신을 찾아 그 시신을 이고 고향에 와서 장례를 지냈기 때문에 朱子가 어질게 여겨 小學의 善行篇 속에 써 넣어 그 烈行을 표창하였으니 고금에 生死의 일은 같지 않지만 그 마음의 壯烈함은 어찌 같지 않은가? 또 朴氏가 집에 있으면서 효성으로 그의 시어머님을 봉양하고 또 그 嫡夫人을 부양하여 주리지 않는 경지에 이르게 하였으니 그 성심이 어떠한가? 이 섬에 들어온 성의를 보면 그 절의의 견고함을 알 만하다.”
 
96
滄湖의 소실 편에 定山의 龜洞으로부터 訃書를 보내 왔다.
 
97
“崔喪人 永祚氏 大夫人 貞夫人 淸州韓氏가 宿患으로 7월 1일 巳時에 棄世하였으므로 사람을 시켜 訃告합니다.”
 
98
또 吳鳳泳 · 高石鎭 · 梁在海 · 崔永卨이 한 폭에 편지를 내어 우리의 함께 고생하는 사람에게 위로하여 말하였다.
 
99
“아침저녁으로 정신이 쏠림에 산과 바다도 막지 못합니다. 엎드려 말씀드리건대 여러분의 기체 계속 안녕하시기를 빕니다. 申碩士 輔均 씨는 나왔다고 하니 가만히 생각컨대 두 곳의 석방되고 머물러 있는 정은 실제로 비교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감금생활도 모두 감해져서 오래지 않아 국내로 돌아온다고 하니, 기쁘고 위안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生等은 작년 이래로 勉菴先生文集을 刊行하는 일 때문에 오랫동안 여기에 머물러 있는데 금월 1일에 또 사모님의 상사를 만나니 私情에 아픈 마음을 말할 수 없습니다. 南奎振 氏의 소실이 젊은 여인으로 만 리의 고래같은 파도를 두려워하지 않고 죽음을 무릅쓰고 들어가니 人倫의 독실함이 이와 같습니다. 보고 듣기에 누군들 敬服하고 감탄하지 않겠습니까? 어진 하늘이 가만히 도와 반드시 잘 다녀오리라고 생각되지만 염려됨은 많습니다. 그가 떠나는데 몇 글자를 쓰고 겸하여 부서를 전하오니 엎드려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100
20일 계유.
 
 
101
曺友 禮賢이 편지를 보내 왔다. 동봉한 속에 內卦가 있고 동봉한 속에 또 朴寅和·朴性舜寅和의 아들 昌祚의 冠名·崔晩鳳·朴分吉·金寶物의 편지가 있었다. ○ 滄湖의 소실이 경비대 兵舍의 문 밖에 와서 滄湖를 보기를 청하였는데 경비대에서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헛되이 川上의 집으로 돌아갔다고 하였다.
 
 
102
21일 갑술.
 
 
103
滄湖의 소실이 통역을 통해 해당 부대에 말하기를,
 
104
“내일 귀국하려 하는데 滄湖의 얼굴을 다시 한번 보고 귀국했으면 합니다.”
 
105
라고 하자, 해당 부대에서 허락하였다. 滄湖가 부대 안으로 들어가 면회실에서 한 시간여 동안 이야기를 나눈 뒤 들어가,
 
106
“배편이 어느 날 있는가?”
 
107
라고 묻자,
 
108
“모른다.”
 
109
라고 하였다.
 
 
110
22일 을해.
 
 
111
통역이 들어오자 滄湖가 물었다.
 
112
“배편이 어느 날 있습니까?”
 
113
“오시 무렵에 배편이 있다고 합니다.”
 
114
잠시 뒤 위병이 통역에게 말하였다.
 
115
“南某와 함께 경비대로 오라고 한다.”
 
116
“무슨 일인가?”
 
117
“南某의 소실이 兵門 밖에 와서 대대장에게 청원서를 들이고 나서 병문 밖에 엎드려 있다고 한다.”
 
118
滄湖가,
 
119
“이 무슨 말인가!”
 
120
라고 하고, 통역과 함께 나갔다가 반 시각 쯤 뒤에 들어왔다.
 
121
“저의 소실이 부대에 청원서를 내자, 저를 불러 제 소실에게 주한사령부에 속히 귀국하게 하도록 잘 보고하겠다며 잘 달래 그가 속히 귀국해서 내가 귀국할 때를 기다리게 하는 것이 가장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122
내가 통역과 함께 이와 같은 연유를 말해주자, 소실이 이렇게 말하였다.
 
123
“제가 여인으로서 염치도 돌보지 않고 노고도 꺼리지 않고서 여기까지 온 것은 부군을 보러 온 것만은 아니다. 말이 통하지 않아서 종이에 쓴 글로 귀대에 청원을 드린 것인데 하나는 부군이 속히 귀국해서 노모를 봉양하게 해달라는 것이고 하나는 귀대의 베푼 은혜에 감사하다는 것이다.”
 
124
이어서 또 말하였다.
 
125
“내일 鷄知 사령부로 가서 이 청원서를 올리고 그 사령관의 말을 듣고 나서 귀국하겠다.”
 
126
대대장이 중대장을 통해 통역에게 말하였다.
 
127
“반드시 鷄知까지 갈 것은 없으며 본대에 청원서를 두면 이 뜻을 鷄知 사령부에 보고해서 잘 처리되도록 하겠다.”
 
128
박씨가 이 말을 듣고 말하였다.
 
129
“내가 이미 이곳까지 왔는데 鷄知까지 가는데 무슨 어려움이 있다고 반시각의 길을 아끼겠는가! 鷄知로 가서 나의 소원을 요청하고 그 은혜에 사의를 표하고 나서 귀국한다면 나의 마음에 여한이 없을 것이다.”
 
130
해당 부대에서도 그 뜻을 막을 수가 없어 턱만 끄덕일 뿐이었다. 박씨가 통역의 집으로 갔다.
 
 
131
23일 병자.
 
 
132
통역이 들어왔다. 滄湖가 말하였다.
 
133
“제 소실이 乳頭에 혈증이 그제부터 매우 불편하다고 했는데 밤사이 어떠했습니까?”
 
134
“별 차도가 없는 듯합니다.”
 
135
“어제 鷄知로 가는 일을 제가 이미 만류했으나 그가 단호히 하겠다고 했습니다. 공은 왜 만류하지 않았습니까?”
 
136
“죽음을 무릅쓰고 하려 하는데 누가 그 뜻을 막겠습니까. 오늘 정오 초에 출발한다고 했습니다.”
 
137
또 통역에게 들으니 嚴原 사람들이 박씨의 이야기를 듣고 남녀를 막론하고 모두 그 절개를 칭송하며 먹을 것과 과자 등을 보내 위로했다고 한다.
 
138
○ 우리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일에 대한 石田義一의 요청을 해당 부대에서 허락하였다. 石田이 우리들에게 말하였다.
 
139
“3년 동안 공들과 한솥밥을 먹은 정은 다른 것에 견줄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이미 식사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뜻을 부대에 요청하여 부대로부터 허락을 받았습니다. 공들과 헤어지게 되어 마음이 몹시 서글픕니다.”
 
140
“아쉬운 정은 피차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해당 부대에서 한 일이니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동안 한솥밥을 먹은 일은 우리들이 잊을 수 없습니다. 오직 몸과 집안을 잘 보존하시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141
밤이 되어 石田이 떠났다.
 
142
○ 오늘부터 아침밥은 蠶桑室에 있을 때 음식을 제공한 樋口姓幸太郞名이 다시 제공하게 되었다. 지난번 寺尾가 제공한다는 이야기는 집안이 가난해 이를 감당할 수가 없어 할 수 없다고 하였다.
 
143
○ 未時 쯤에 통역이 해당 부대로부터 돌아왔다.
 
144
“鷄知 사령부에서 본대로 전화를 걸어와 ‘감금인 남모의 소실이 지금 이곳에 왔는데 그 정상이 참 불쌍하다. 해당 부대에서 접대를 어떻게 했으며 내외로 하여금 만나게 하는 일은 어떻게 하였는가?’라고 하였다 합니다.”
 
145
滄湖가 말하였다.
 
146
“그 밖에 다른 말은 없습니까?”
 
147
“다른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148
24일 정축.
 
 
149
통역이 들어오자 滄湖가 물었다.
 
150
“저의 소실이 어제 鷄知로부터 돌아왔습니까?”
 
151
“어제 날이 저물 때 돌아왔습니다.”
 
152
“유두에 혈증은 어떠했습니까?”
 
153
“다시 독이 퍼졌다고 했습니다.”
 
154
“약을 사서 바른다고 했는데 약을 바르지 않았습니까?”
 
155
“제가 약을 사서 주었는데 바르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156
“鷄知에 가서 어떻게 통역을 했다고 합니까?”
 
157
“한국 사람으로서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자가 있는데 鷄知 사령부에 엿을 팔고 있습니다. 사령관이 청원서를 보고 엿을 파는 사람을 불러 말을 전하게 하기를, ‘나는 정부의 명령에 따라 거행할 뿐이며 내가 임의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 정상을 보면 불쌍하기 그지없다. 부군이 속히 돌아갈 수 있도록 주선해보겠으니 그리 알라.’고 했다 합니다.”
 
158
巳時 쯤에 해당부대에서 통역을 불러 통역이 갔다가 돌아와서 말하였다.
 
159
“본대에서 나를 추궁하기를, ‘어제 南某의 소실이 鷄知로 갈 때 왜 부대에 그 일을 통고하지 않았느냐! 앞으로는 實心으로 거행하여 이런 일이 없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160
통역이 말하였다.
 
161
“滄湖의 소실이 지금 병영문 밖에 와서 滄湖와 면회를 요청하므로 부관이 나에게, ‘내가 면회실로 가서 아무개가 면회할 때 그 정경을 보겠다.’고 말했습니다.”
 
162
오후에 부대를 나갔다가 돌아와 말하였다.
 
163
“대장이 오늘 만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내일 출발할 때 만나도록 하라고 해서 滄湖의 소실이 숙소로 물러갔습니다.”
 
164
滄湖가 말하였다.
 
165
“부끄럽기 짝이 없으니 내 말을 소실에게 전해 속히 바다를 건너 가서 조금도 지체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해주십시오.”
 
 
166
25일 무인.
 
 
167
통역이 휴일이어서 오지 않았다. 여러 사람들에게 답장을 하였다. 朴寅和에게 올린 편지에 말하였다.
 
168
“아득한 바다 나라에 누구도 안부를 묻는 이가 없는데 삼가 보내신 글을 받고 감격한 나머지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가을이 한창인 때에 조용히 지내시는 가운데 형제들과 함께 연이어 편안하시고 집안도 두루 안녕하시며 아드님도 열심히 공부하는지요? 삼가 그리운 마음에 바다밖에 있는 자의 정성을 어떻게 다듬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시생 저는 우리 속에 갇힌 정상에 고향과 나라에 대한 그리움을 이루 감내할 수 없습니다. 존좌의 중씨께서 손자를 얻은 경사는 만년에 얼마나 다행입니까. 큰 아드님의 공부는 훌륭한 선생 夢巖을 모시고 하게 된 것은 얼마나 다행입니까. 백미를 저희 집에 보내셨는데 먹을 것이 없어 곤궁한 때에 얼마나 다행입니까. 매우 감사해하는 한편으로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이만 줄이며 삼가 아룁니다.”
 
169
朴性舜에게 한 답장에 말하였다.
 
170
“먼 곳에서 글을 받으니 반가운 마음 어찌 다 헤아리겠습니까. 이 가을에 부모님을 모시고 잘 계시며 일과로 하시는 공부는 어떻습니까? 이곳에 있으며 그리운 마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바다 먼 곳에 얽매인 삶은 독 속에 갇힌 신세일 뿐이니 그 밖에 무슨 할 말이 더 있겠습니까. 회포를 읊은 五言絶句 4수를 부쳐드리니 보시면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만 줄입니다.”
 
 
171
海國感書音  바다 나라에서 보낸 서신에 감격하나니
172
碧波萬尺深  푸른 물결 만 길이나 깊구나
173
往來容易地  오고가기에 쉬운 것은
174
惟有一團心  오직 한 덩어리 마음뿐이네
175
海月愁中白  바다 위 달은 시름 속에 밝거늘
176
湖山夢外蒼  호수와 산은 꿈속에 푸르도다
177
秋宵人不寐  가을밤은 사람을 잠들지 못하게 하고
178
蟋蟀在空堂  귀뚜라미는 빈 방에서 울어대겠지
179
勸君好讀書  그대여 열심히 글을 읽을지니
180
歲月不留余  세월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네
181
功名垂竹帛  역사에 이름이 새겨지는 것은
182
皆自拾螢餘  모두 반딧불을 모아 읽은 노력 때문이라네
183
洛陽千桃花  낙양에 천 그루 복사꽃을
184
誰不欲看花  그 누가 보고 싶지 않겠는가
185
滿發春將雨  봄 날 비가 내리고 꽃이 만발할 때
186
乘時賞此花  길을 나서 이 꽃을 구경하리라
 
 
187
曹友에게 한 답장에 말하였다.
 
188
“어제 함께 있는 南奎振씨의 소실이 천 리를 멀다고 하지 않고 험난한 길과 세찬 파도를 헤치고 찾아와서 나라와 고향소식을 대충 들었습니다. 지금 보내신 글을 펴서 읽으니 마치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더구나 멀리 떨어진 곳에 더불어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는 데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입추 이후 형의 몸은 편안하며 집안도 두루 안녕하신지요? 우러러 그리는 마음 간절합니다. 저는 지금 모습이 예전의 모습 그대로이며 다른 것은 특별히 말씀드릴 것이 없습니다.
 
189
지난번 申丈과 서로 길이 어긋난 일은 이 또한 인연의 魔이니 어찌 전후에 맞이하지 못한 것을 걱정으로 여길 것이 있겠습니까. 서찰에 관한 일은 그 사이 여러번 추심했으나 모두 찾지 못했으니 어쩔 수 없습니다. 川上 씨의 답서를 동봉하니 형 또한 이어서 답서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이만 줄입니다.”
 
190
崔ㆍ朴 두 秀才에게 한 답장에 말하였다.
 
191
“보내온 글을 보고 참 기뻤으며 아울러 만 리가 지척이라는 생각이 들었네. 이때에 그 동안 부모님 모시며 학문에 정진하는 일은 실제로 자득의 묘미를 얻었는가? 멀리서 그리운 마음 간절하네. 나는 새장 속의 날개를 펼치려 하나 먼 바닷가에서 하염없는 세월만 보내고 있을 뿐이네. 申丈이 이틀 밤을 머무셨는데 나의 스산함으로 어떻게 뜻대로 좋은 반찬을 대접할 수 있었겠는가. 멀리서 부끄러울 뿐이네. 林川에 가는 서신은 신실하게 전해서 지체하지 말도록 해주게나. 이만 줄이네.”
 
 
192
26일 기묘.
 
 
193
통역이 들어오자 滄湖가 물었다.
 
194
“저의 소실의 乳腫은 어떻습니까?”
 
195
“아주 불안하다고 합니다.”
 
196
“배편은 언제 있습니까?”
 
197
“오늘은 없고 내일 卯時 쯤에 있다고 합니다.”
 
198
滄湖의 소실이 지금 병영문 밖에 와서 귀국의 인사를 나누기 위해 면회를 요청해서 해당 부대에서 반시간 정도 작별의 시간을 나누는 것을 허락하였다. 滄湖가 통역과 함께 나갔다가 돌아왔다.
 
199
“어제 鷄知로 가서 사령부에 통지하자, 사령관이 곧바로 부대 안으로 불러들였습니다. 사령관이 몸이 편치 않아 자리에 누워 있다가 나의 소실을 보고 깜짝 놀라며 일어나서 우리 韓人에게 타이르게 하기를, ‘이 무슨 일인가! 나이 어린 여인이 힘든 것도 꺼리지 않고 목숨도 돌보지 않고서 타국 절해의 고도까지 왔으니, 그 마음이 가상하고 그 정상이 불쌍하다. 나라는 비록 달라도 정이야 어찌 다르겠는가.’라고 하며 측은해 마지않고 저의 어린아이를 안으며 매우 사랑스러워했다 합니다. 소실이 사령관에게 말하였습니다. ‘대강의 이야기는 청원서 안에 거의 있습니다. 본인의 남편에게 노모가 계시는데 올해 연세가 76세이나 옆에 시봉하는 사람이 없으며 또 병석에서 신음하고 계시어 매우 위태로운 상태입니다. 속히 귀국할 수 있는 길을 찾아주어 노모를 봉양하게 해주신다면 그 은혜가 클 것입니다.’ 사령관은 말하였습니다. ‘내 임의대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어려울 것이 없으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정부의 처분에 따라야 합니다. 내가 이 뜻을 정부에 상세히 보고해서 부군이 속히 귀국할 수 있도록 해보겠소. 내 생각으로는 작년 가을과 겨울쯤에 해금이 있을 것으로 추측했는데 무슨 일로 지금까지 지체된 것인지 모르겠소. 올 해 안이 아니면 내년 봄에는 모두 해금이 될 것이오.’ 이어서 말하였습니다. ‘만일 섬에 머물 뜻이 있으면 부군이 해금되기 전까지 자주 면회할 수 있도록 해주겠소.’ 소실이 말하였습니다. ‘저의 부군은 만 리 밖에 있고 늙으신 시어머니는 의지할 사람이 없이 외진 집에서 병석에 누워계십니다. 더구나 이곳은 여자가 오래 머물 곳이 아니니 속히 귀국해서 늙으신 시어머니를 모셔야 합니다.’ 사령관이 그 말에 수긍하며 즉시 경비대에 전화를 걸어 ‘某가 귀국하기 전에 자주 면회할 수 있도록 하라.’고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오늘은 해가 저물어가니 내가 인가에 지시하여 편히 쉴 수 있도록 하겠소. 하룻밤을 지내고 나서 내일 떠나시오.’ ‘마차를 타고 오기 바라며, 내일 배편이 있다고 하니 속히 돌아갈 수 있을 것이오.’라고 하였다 합니다. 사령관이 매우 측은해 하며 평안히 잘 가라고 다시 부탁했다 합니다.”
 
200
○ 여러 곳에 보낼 답신을 우체국에 부쳤다.
 
 
201
27일 경진.
 
 
202
통역이 들어와 말하였다.
 
203
“오늘 묘시쯤에 선편이 있어 滄湖의 소실이 그 배를 타고 부산으로 갔습니다.”
 
204
“乳腫은 어떻게 됐습니까?”
 
205
“조금 나았다고 하나 실제는 확인하지 못하였습니다.”
 
206
○ 滄湖와 思雲 그리고 내가 연명으로 定山에 위로의 글을 써서 우체국에 부쳤다.
 
207
“奎振 등이 삼가 머리를 숙이고 아룁니다. 천만 뜻밖에 흉변을 만나 先 貞夫人께서 갑자기 모시는 곁을 버리고 세상을 떠나버리셨으니 선대인의 靈几가 채 걷히기도 전에 어찌 이런 喪禍가 거듭 이를 줄이야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천성의 효심에 온 몸이 부스러지는 아픔과 통곡에 산천도 반드시 슬퍼하여 마지않을 것입니다. 고통을 겪으신 지 여러 달이 지났는데 몸은 어떠신지요? 수명의 장단은 운수에 의한 것이니 애통해 해도 어쩔 수 없고 망극해 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억지로나마 죽을 드시고 슬픔을 절제하여 구천에 계신 분의 보살피는 정을 굽어 부응하시기 바랍니다. 규진 등이 마땅히 곧바로 빈소로 찾아가 작은 성의라도 보여야 하나 만 리 밖에 묶인 몸으로 달려갈 수가 없으니 서쪽 하늘만 바라보고 무한한 눈물만 흘릴 뿐입니다. 삼가 살펴보시기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 무신년 8월 27일 南奎振, 申鉉斗, 文奭煥 글을 올림”
 
 
208
28일 신사.
 
 
209
이날은 일본의 추계 皇靈祭 명절이다. 통역이 이 명절 때문에 들어오지 않았다.
 
 
210
29일 임오.
 
 
211
洪州 化城面 華昌里에 사는 申學均이 思雲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동봉한 것 안에 林敬鎬가 함께 있는 여러 사람에게 보낸 글이 있었다.
 
212
“洪州 水多洞名에 사는 林敬鎬가 삼가 한 구절 거친 말로 대마도 嚴原에 갇혀 계시는 여러 집사들께 말씀드리니 이 글을 봐주실 수 있겠습니까? ‘일월과 빛을 다툰다’, ‘춘추의 의리를 붙든다’는 것은 의례 하는 말이고 ‘곤궁에 처해도 형통하고 험난에 있어도 편안하다’는 것은 정으로 하는 말이며 ‘욕이 아니라 영화이며 이것으로 죽으며 살더라도 유감이 없다’는 것은 충심으로 고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는 사람마다 서로 전하고 서로 규율하는 말이라 한다면 어찌 오늘 敬鎬의 군더더기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반드시 ‘두서없이 혼란한 생각은 나의 본령에 누를 끼친다’고 하며 안중에 아무 것도 없는 듯하고 마음에 아무 일도 없는 듯해서 흐르는 세월에 자며 먹으며 지내면 어찌 고뇌를 편안히 하는 방법이 되지 않겠습니까. 말씀을 장황하게 드리고 싶지 않으며 삼가 하늘을 믿어 길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무신년 8월 21일”
 
 
 

 
213
각주)
 
214
261)  여기서 楚人은 포로를 뜻한다. 춘추시대 晉侯가 軍府를 돌아보다가 鍾儀를 바라보고 물었다. “저 남쪽지방의 갓을 쓰고 갇혀 있는 자는 누구인가?” 하니 有司가 답하였다. “정나라 사람이 인계한 초나라에서 잡은 포로입니다.”(「左傳」 成公 九年)
215
262)  예로부터 흉조를 말한다.
【원문】마도일기(馬島日記) (19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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