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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락자(墮落者) ◈
◇ 10 ◇
카탈로그   목차 (총 : 13권)     이전 10권 다음
1922.1 ~3.
현진건
1
타락자
 
2
10
 
 
3
며칠 동안 발을 끊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무슨 힘이 나를 끎을 어찌 할 수 없었다. 그 힘은 어데 얼마나 달아나나 보자고 그가 나를 매놓은 실과 같았다. 달아나면 달아나는 대로 그 실은 풀리었다 하되 잠깐만 걸음을 멈추면 그 실은 차츰차츰 감기어 뒤로 이끌었다. 어느 때는 머리 올같이 가늘고 가늘게 되어 이것이 터진다, 고만 이리 와요, 이리 와요, 살근살근 달래며 마음이 간질간질하게 잡아다리기도 하였다. 어느 때는 쇠사슬 모양으로 굵고 튼튼하게 되어 이리 안 올 테야, 이리 안 올 테야, 위협하는 듯이 쭉쭉 집어채기도 하였다. 이편에서 버티는 힘이 부족하면 휙 따라가는 수도 있다. 하로는 그 집 골목까지 따라간 일이 있다. 그 집 대문을 보자 '에, 뜨거라.’ 하고 나의 넋은 달음박질하였다. 바른 길로 일없이 진고개를 올라갔다. 늘 하는 모양으로 책사(冊肆)에서 책사로 돌아다니다가 저물게야 수표교(水標橋)로 빠져 돌아오는 길이었다.
 
4
대관원(大觀園)에서 어떤 젊은 신사가 기생 하나를 다리고 나온 것을 보았다. 나의 마음은 다시금 동요하였나니 그 기생의 걸음걸음이며 뒷 모양이 하릴없는 춘심이었음이라. 나는 걸음을 재게 하였다 느리게 하였다 하며 요모조모 살피기를 마지 않았다. 그 나붓이 늘어진 귀밑머리조차 천연 춘심이었다. 그럴 즈음에 그 기생은 뒤를 힐끗 돌아보았다. 마치 내가 뒤 따라옴을아는 것처럼. 얼골이 같을 뿐만 아니라 사죄하는 듯한 웃음조차 건네는 듯도 하였다. 나는 그 자리에 사라지는가 의심하였다. 그러나 내가 쏜살같이 그의 곁을 스치며 모든 것을 꿰뚫어 보려는 일별(一瞥)로 그가 춘심이 아님을 간파하였다. 온전히 나의 착각임을 깨달았다.
 
5
나는 이런 일을 금방(金房) 은방(銀房) 앞에서, 전차 정류장에서 한두 번 겪지 않았다. 마치 나의 눈에 춘심이란 색안경이 끼여 도처에 춘심을 발견하는 것 같았다. 홀로 시각(視覺)뿐만 아니다. 나의 관능이란 관능은 모다 그러하였다. 그 고소한 머릿기름 냄새를 안해의 머리에서 맡기도 하였다.
 
6
그 야릇한 향기를 나의 소매에서 느끼기도 하였다. 그의 소리, 살, 냄새는 벌써 그의 전유물이 아니고 낱낱이 나의 속 깊이 잠겨 있는 듯 하였다. 이 모든 것들이 환원 작용으로 본임자와 어우러지라고 발버둥을 하고 있거늘 그래도 끈을 떼었거니 하고 있었다. 정말 떼어졌을까? 보라! 어느 연회에서 다시금 만난 우리는 어찌 되었는가! 처음은 서로 눈인사만 교환하였다. 그리고 피차 모르는 사람 모양으로 시침을 따고 있었다.
 
7
하건만 연회가 끝나고 요리점 문 밖을 나왔을 제 그의 손은 나의 손을 힘있게 쥐었다.
 
8
"어쩌면 그렇게 매정하십니까?"
 
9
그는 말을 꺼내었다. 얼마든지 비난을 하라는 것처럼 나는 빙글빙글 웃고만 있었다.
 
10
"돌아서신 줄은 나도 알았지만, 그렇게 아니 오실 줄을 몰랐어요…….그 이튿날 만토 속에 돈 20 원 든 것을 보고 남자란 다 마찬가지이다, 이걸로 정을 끊는구나 하였지요……."
 
11
"아니 무엇, 그런 것은 아니야. 저어……."
 
12
"남의 말을 좀 들어요……. 이것이 들어 남의 좋은 사이를 갈랐구나 하고 그 지폐 두 장을 쪽쪽 찢어버리고 싶었어요. 이다지도 남의 마음 쓰는 것을 모르는가 하니 야속해 견딜 수 없었어요. 어쩌면 내 마음을 알아 줄까……, 편지로나 세세사정(細細私情) 그려 볼까……, 별별 생각을 다 하다가 에라 치워라, 매몰스러운 사나이에게 내 속을 왜 빼앗기리 하고 한 발이나 되게 쓰던 편지를 갈가리 찢어 버렸지요."
 
13
하고는 그 때의 괴로운 한숨을 모아 두었다가 인제 쉰다는 듯이 길이 길이 숨을 내어쉬었다.
 
14
"요사이 조금 바빠서……."
 
15
라고, 일종 프라이드를 느끼면서 나는 중얼거렸다.
 
16
"그런 말 말아요."
 
17
춘심은 성난 듯이 잡았던 손을 뿌리치며,
 
18
"마음에 있으면 꿈에라도 보인다고, 아모리 바쁘기로서니 잠시 잠깐 다녀 갈 틈이야 없단 말입니까? 내가 미친년이지, 내가 미친년이야. 나 같은 것이 정이니 무엇이니 하는게 개밥에 도토리지……."
 
19
"가고야 싶지마는 어데 가겠던. 영업에 방해만 될 뿐이니……."
 
20
"내가 장사를 합니까? 영업이 무슨 영업이란 말씀이오? 그런 이면 치레를 하는 것부터 마음에 없어서 그러는 것이지요, 짜장 보고 싶어 보시오. 그런 생각이 나기나 하는가. 참 사나이라 다릅니다그려. 나는 암만 잊으려 해도어데 잊혀집디까? 왜 만났던고, 왜 친했던고, 하로도 몇 번을 후회를 하였는지 몰랐어요. 정이란 사람이 맨든 것이지만 인력으로 못할 것은 정입디다."
 
21
그의 손은 다시금 나의 손을 쥐었다. 문득 깨달으니 나는 벌써 그의 집 마당에 서 있었다.
【원문】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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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락자 [제목]
 
  현진건(玄鎭健) [저자]
 
  개벽(開闢) [출처]
 
  1922년 [발표]
 
  소설(小說)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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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06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