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한글 
◈ 타락자(墮落者) ◈
◇ 9 ◇
카탈로그   목차 (총 : 13권)     이전 9권 다음
1922.1 ~3.
현진건
1
타락자
 
2
9
 
 
3
내일 단성사 ○○ 권번(券番) ─ 춘심의 다니는 조합 ─ 온습회(溫習會)에서 다시 만남을 기약하고 나는 아츰 늦게야 그의 집을 떠났다. 그만큼 대담스럽게도 되었다. 그만치 애련도 깊었다.
 
4
5분 전에 잠깐 어데 나갔다 오는 사람같이 신추럽게 돌아왔다. 비난과 책망을 미연에 막기 위하여 엄연히 긴장한 얼굴로 건넌방에 들어왔다. 안해는 없었다. 그 대신 나의 책상 위에 무슨 글발이 있었다. 그것은 안해의 필적이었다.─
 
 
5
전일에는 이 몸을 사랑하시옵더니 인제는 이 몸을 버리시니 슬프고 애닯은 심사 둘 데 없사와 이 세상을 떠나려 하나이다. 이 몸이야 죽사온들 아까울 것 없건마는 다만 뱃속에 든 어린 것 불쌍코 가련하옵니다.
6
두루막은 다리어 장 안에 넣어 두었으니 이 몸 보는 듯이 입으시기 바라나이다. 길이 못 뵈올 것을 생각하온 즉 죽어도 눈을 감을 수 없사외다. 다행히 모진 목숨이 끊어지지 않사오면 다시 뵈옵고 첩첩이 쌓인 섧은 사정을 하소연 할까 하옵니다.
 
 
7
나는 매우 감동되었다. 정말 유언장을 본 것 같이 가슴이 찌르르 하였다. 눈물이 핑 돌았다. 물론 거짓이고 희롱인 줄이야 모름이 아니로되 거짓이면서도 거짓이 아닌 듯싶었다. 혹 사실이나 아닐는지!
 
8
"할멈! 아씨 어데로 가셨나?"
 
9
나는 마루로 뛰어나가며 허전허전하는 소리를 떨었다.
 
10
"몰라요! 왜 방에 아니 계셔요?"
 
11
밥을 먹는 듯한 할멈은 제 방에서 이렇게 대답하였다. 사실이나 아닐까?
 
12
나는 안방으로 건넌방으로 주방으로 뒷간으로 허둥거리며 찾아다녔다……. 안해의 그림자는 볼 수 없다!
 
13
"아씨 어데 가셨어? 어서 알으켜 달라니까그래."
 
14
나는 광 속에 들어갔다 나오며 다시금 부르짖었다. 대답은 없고 히히 웃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곧 행랑방 문을 열어 보았다.
 
15
"아씨가 여기 계실라고요."
 
16
할아범은 왼 얼굴에 주름을 밀며 태평건곤(泰平乾坤)으로 빙그레 하였다.
 
17
마츰내 나는 다락 속에 숨은 안해를 발견하였다.
 
18
"여기 있구먼."
 
19
나는 죽은 이가 살아온 것처럼 반갑게 부르짖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때도 이만치 기쁘지 않았으리라. 안해는 웃으며 나려왔다.
 
20
"다락이 저승이야?"
 
21
우리가 건넌방으로 단둘이 들어 왔을 제 나는 웃으며 그를 조롱하였다. 은닉자도 방글방글 웃고만 있었다.
 
22
"그것이 무슨 짓이람? 유언을 써 놓았으면 죽을 것이지 왜 다락 속에 들어 앉았담?"
 
23
"왜 모진 목숨이 끊기지 않으면 다시 만나자 하지 않았어요?"
 
24
하고 안해는 해죽 웃었다.
 
25
"이번은 그랬지만 한 번만 더 가보아요. 정말 아니 죽나."
 
26
안해의 얼굴빛은 갑자기 바뀌어졌다. 슬픔의 그림자에 그의 얼굴은 그늘 지고 말았다.
 
27
"참 그렇게 날 속일 줄은 몰랐습니다. 돈만 주고 열 점 안으로 오신다 해 놓고 아니 오시는 데가 어데 있습니까……? 이제나 오실까 저제나 오실까 암만 기다리니 어데 오셔야지요. 새로 한 점을 치고, 두 점을 치고, 석 점을 치겠지요. 그제야 아니 오시는 줄 알았습니다. 자려고 해도 잠은 아니오고 그 년을 쓸어 안고 있는 꼴만 보이겠지요……. 참말 애닯고 슬퍼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고만 죽고 몰랐으면 하였습니다. 그래 요 앞 우물에 빠질까 하였습니다. 내가 한 것에 왜 남의 손을 대이랴 하고 밤중에 일어나 당신의 두루막을 다렸습니다. 내 손에 옷 얻어 입기도 이것이 마지막이다 하니……."
 
28
말을 마치지 못하여 그의 코가 연분홍색을 띠워 실룩실룩 경련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마자 두 줄기 눈물이 흰 선을 그리며 뺨으로 흘렀다. 뒤미처 투명한 액체는 흐르고 또 흐른다. 이것을 보고야 아모리 춘심의 지주망(蜘蛛網)에 감긴 나인들 어찌 그의 고충을 살피지 못하랴. 실행은 안했지만 사(死)를 생각한 것은 해보담도 명백한 일이다. 그런 생각이 든 것만큼 그의 속은 쓰렸으리라, 아팠으리라.
 
29
"울기는 왜, 울기는 왜?"
 
30
라고 나는 위로하였다. 그러나 나의 눈도 젖기 비롯하였다. 속눈썹에 뜨거운 눈물이 몰림을 느꼈다.
 
31
"또 가시렵니까, 또 가시렵니까?"
 
32
이윽고 안해는 울음에 껄떡이며 다그쳤다.
 
33
"또 갈 리 있나, 또 갈 리 있나."
 
34
말뿐만 아니라 마음으로도 맹서하였다.
 
35
그러나 춘심과 만나자고 기약한 때는 왔다! 그 이튿날 저녁이다. 단성사에 갈까 말까……. 이것은 해결키 어려운 문제였다. 암만해도 가고 싶다. 가도 무방할 핑계를 얻으려고 애를 썼다. 단성사는 춘심의 집이 아니다. 공공의 구경터다. 춘심을 보러 가는 게 아니라, 구경하러 가는 것이다. 또 이번 흥행은 ○○○ 양악대(洋樂隊)에 기부하기 위하여 우리 사(社)에서 주최한 것이니가 보아야 할 의무가 있다. 누구가 나를 보더라도 춘심을 만나려고 오지 못할 데를 왔단 말은 아니할 것이다. 아니 가는 것이 도리어 남으로 하여금 이상하게 여기게 할 것이다. 또 춘심을 만날 기회는 이 후라도 많을지니 보아도 수류운공(水流雲空)할 시련이 필요하다. 보기 위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정을 끊기 위해서 반드시 가 보아야 되리라.
 
36
이유는 얼마든지 있었지만 혼자 가기가 무엇하던 차, 마츰 C가 구경 가자고 왔다. 나는 즐거이 따라 나섰다.
 
37
여덟 점 가까이 되었을 때라 위층에 아래층에 할 것 없이 관람석은 입추의 여지도 없었다. 휘황한 불빛도 담배 연기와 사람의 입김에 흐리멍텅하였다. 나는 압박과 질식을 느끼었다.
 
38
나의 눈은 부인석에서 춘심을 찾고 있었다. 눈코는 분석할 수 없고, 분면(粉面)의 윤곽만 총총히 인형같이 꽂혀 있다. 모다 춘심이 같으면서 모다 아니었다.
 
39
"저 무대 뒤로 들어갑시다. 거기는 난로도 있고 차도 있으니, 그리고 구경하기도 좋을 터이지."
 
40
하고 C는 나를 그리로 끌었다. 거기에는 푸른 것, 붉은 것, 누런 것, 가지가지 의상이 눈을 현란케 하며, 모다 비슷비슷한 기생이 우물우물하였다.
 
41
특별히 못생긴 것도 없고 특별히 잘난 것도 없었다. 향기는 고만 두고 썩어가는 몸과 마음의 송장 냄새가 그곳 일면에 자욱하였다. 나는 일종의 공포와 구역을 느꼈다. 그야말로 계집 냄새가 날 지경이었다. 그 가운데에도 춘심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42
"이러다 춘심을 만나면 어찌할꼬?"
 
43
나는 문득 생각하였다. 만나면 또 알 수 없는 매력에 끌리지나 않을까? 아니 끌린다 하자. 그러면 보아서 무엇할 것인가? 멀리서 그도 나를 보고 나도 그를 본다. 보고 흩어진다. 싱거운 일이로다! 싱겁게 아니 하려면 돌아가는 길에 술잔이나 나누어야 되리라. 적어도 인력거나 태워 보내야 된다. 그러하거늘 나의 주머니에는 벌써 쇠천 샐 닢도 없다. 만나면 큰일이다!
 
44
"고만 가요."
 
45
나는 C한테 턱없는 요구를 하였다.
 
46
"왔다가 구경도 아니 하고 가잔 말이야?"
 
47
춘심이와 막 마주칠까 하는 공겁심(恐怯心)이 머리를 쳐들었다. 마음이 조마조마하여 견딜 수 없다. 몇 번 C를 졸랐건만 그는 내 말에 귀도 기울이려 하지 아니하였다.
 
48
"가고 싶거든 혼자 가구려."
 
49
C는 마츰내 성가신 듯이 말을 던지고 어느 기생과 이야기하기에 골몰 하였다. 나는 하릴없이 또 머뭇머뭇하였다. 그럴 사이에 어째 건너편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회색 만토에 까만 하부다에 수건을 두른 춘심이가 어느 결엔지 거기 와 있다! 다행히 나는 저를 보았건만, 저는 나를 못 알아본 모양이었다. 나는 불시에 돌아섰다. 무대로 드나드는 왼편 문은 잠겨 있다. 나가려면 춘심의 곁을 지나야 되겠다! 이야말로 진퇴 유곡일다! 그래도 되든 말든 두 판 집고 한 번 나가나 보자. 나는 그리로 향하고 급히 걸었다. 일평생에 관계되는 중대한 일을 단행할 때처럼 나는 더할 수 없이 흥분하였다. 그는 나를 보았다! 둘의 거리는 한 자도 아니 된다. 마츰 지나치는 사람은 많고 그곳은 좁았다. 나는 춘심에게 외면을 하고 사람 틈바구니에 휩쓸리어 쏜살같이 난관을 넘으려 하였다. 나 좀 보아요 하는 듯이 그는 살금살금 나의 외투 자락을 잡아다리었다. 그 찰나에 나의 발길이 머뭇하려다 뒷 사람에게 밀리어 휙 빠져 나왔다. 문간을 나섰다.
 
50
안심의 숨을 내쉴 겨를도 없이 후회가 뒤미쳤다. 범치못할 죄악을 범한 듯 하였다. 얼른 본 춘심의 얼굴은 전보담 십 배 백 배 더 아름다웠던 것 같았다. 그 가야금 병창을 못 견디리만큼 듣고 싶었다. 도로 들어갈까? 문지기 보기가 부끄러워 그럴 수 없다. 발이 뒤로 당길 듯 당길 듯하면서도 앞으로 앞으로 옮겨졌다. 가슴은 미친 바람에 뒤집히는 바다 모양으로 울렁거리었다. 머리는 벼락에 맞은 듯하였다. 어느 때 시작된 지 모르는 빗줄이 얼굴을 따렸건만 찬 줄도 몰랐다. 분화산 모양으로 왼 몸이 뭉을뭉을 타는 듯 하였다. 무슨 까닭인지, 나로는 알 수 없다. 심리학자는 설명하고 싶은대로 하여라!
【원문】9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여러분의 댓글이 지식지도를 만듭니다. 글쓰기
〔소설〕
▪ 분류 : 근/현대 소설
▪ 최근 3개월 조회수 : 108
- 전체 순위 : 662 위 (2 등급)
- 분류 순위 : 98 위 / 882 작품
지식지도 보기
내서재 추천 : 0
▣ 함께 읽은 작품
(최근일주일간)
• (86) 삼대(三代)
• (23) 적도(赤道)
• (21) 어머니
• (20) 탁류(濁流)
▣ 참조 지식지도
▣ 기본 정보
◈ 기본
  # 타락자 [제목]
 
  현진건(玄鎭健) [저자]
 
  개벽(開闢) [출처]
 
  1922년 [발표]
 
  소설(小說) [분류]
 
◈ 참조
  # 기생
 
▣ 참조 정보 (쪽별)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지식놀이터 :: 원문/전문 > 문학 > 한국문학 > 근/현대 소설 카탈로그   목차 (총 : 13권)     이전 9권 다음 한글 
◈ 타락자(墮落者)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06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