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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락자(墮落者) ◈
◇ 13 ◇
카탈로그   목차 (총 : 13권)     이전 13권 ▶마지막
1922.1 ~3.
현진건
1
타락자
 
2
13
 
 
3
나는 임질(淋疾)에 걸리고 말았다. 공교하게 그 몹쓸 병은 옮았을 그때로 나타나지 않고 이튿날 후에야 증세가 드러났다. 거의 행보를 못하리만큼 남 몰래 아팠다. 춘심으로 하여 이런 고통을 겪건만 조금도 그가 괘씸치 않았다. 나의 머리는 아주 이지적이었다. 그야 무슨 죄이랴. 짐승같은 남자 하나가 그의 정조를 유린하고 그의 육체를 다독(茶毒)하였다. 저도 모를 사이에 그 독균은 또 다른 남자에게로 옮겨갔다. 저주할 것은 이 사회이고 한(恨)할 것은 내 자신이라 하였다. 그러나 그의 집에 가기는 싫었다. 한 사나흘 후이리라. 내가 사(社)에서 돌아오니 마당에 이불이 널리고 농짝이 들어내어 있었다. 그날은 춘기대청결(春期 大淸潔)이었다.
 
4
어머님이 나를 보고 웃으시면서,
 
5
"건넌방에 가 보아라. 춘심의 부고가 와 있다."
 
6
라고 하셨다. 어머님도 물론 그 일을 아셨다. 처음은 야단도 치셨지만 엎친 물을 담을 수 없고, 어머님 오기 전, 안해가 거짓 유언을 쓴 뒤로 부터는 춘심의 집에 간대도 왼 밤을 새운 일은 없으므로 그들은 모다 나에게 알면서 속고 있었다.
 
7
나는 가슴이 조금 뜨끔하면서도 웃으며,
 
8
"공연히 거짓말 말으셔요. 부고가 무슨 부고야요?"
 
9
"아니, 가 보아. 내가 거짓말인가?"
 
10
나는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말씀대로 하였다. 이것이 웬일인가! 전일에 얻어 온 춘심의 사진이 갈기갈기 찢기어 있다! 그의 참혹히 죽은 사체나 본 것처럼 간담이 서늘하였다. 칼로 에이어 내는 듯한 슬픔을 느끼었다. 그러자 뒤미처 불덩이 같은 의분(?)이 치받혀 올랐다. 묻지 않아 안해의 소위(所爲) 인 줄 알 겨를도 없이 알았다. 지난 날의 모든 현숙으로 할지라도 이 악행을 기울(補) 수 없었다. 아니다. 착하다고 믿었던 때문에 더욱 용서 할 수 없었다. 이 잔인한 학살자?를 찾아 원수를 갚으려고 나는 맹렬히 문을 차고 나왔다. 범죄자는 머리에 흰 수건을 쓰고 마루에서 무엇을 치우고 있었다. 나는 그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며 독독(毒毒)하게 소리를 질렀다.
 
11
"그것이 무슨 짓이야? 무슨 고약한 짓이야? 천하 못된 것 같으니……."
 
12
그는 나를 어이없이 쳐다보다가 같이 성을 내며,
 
13
"무엇이요? 그까짓 년의 사진 좀 뜯으면 어때요? 야단칠 일도 퍽도 없는가보다."
 
14
그가 이렇게 들이대기는 오늘이 처음이었다. 분노는 비등하였다. 나는 성을 어찌할 줄 몰라 침을 부글부글 흘리며 더듬거렸다.
 
15
"무엇이 어쩌고 어째? 뜯으면 어떠냐?"
 
16
"어때요? 그런 개 같은 년……."
 
17
저편도 씨근씨근거렸다. 포르족족해진 입술이 바르르 떨고 있다.
 
18
허파가 벌컥 뒤집히는 듯하였다. 숨이 칵 막힘을 느끼자 문득 때 아닌 눈물이 핑그르르 눈초리에 넘치었다. 나는 모든 것을 잃은 까닭이다! 이날 이때까지 나의 사랑하는 안해가 이런 계집일 줄이야 꿈에도 생각지 못 한 까닭이다. 아아 나는 어찌할까?
 
19
"몰랐다. 몰랐다. 그런 계집인 줄은 참말 몰랐다. 왜 춘심이가 개 같은 년이야! 너보담 몇 곱이 나을지 모르지. 그의 사진을 왜 뜯어? 그 사진을 왜 뜯어? 둘도 없는 나의 애인이다. 이 세상에서 참으로 나를 사랑하는 이는 오즉 그 하나뿐이다! 참 착한 여자다! 어진 여자다! 말이 기생이지 참말 지상 선녀일다. 왜 내가 그에게 아니 갔던고? 왜 아니 갔던고? 나는 가련다. 나는 가련다. 그에게로 나는 가련다."
 
20
나는 흥분에 겨워 시나 읊조리는 어조로 눈물 소리를 떨었다.
 
21
"가지. 누가 못 가게 하나? 아주 끌려 덮어졌구먼!"
 
22
안해는 어디까지 냉랭하였다.
 
23
나는 집을 뛰어나왔다. 미친 듯이 춘심에게도 달렸다. 문간에서 금심을 만났다. 그는 조금도 반기는 빛이 없었다.
 
24
"형 있니?"
 
25
"어제 살림 들어갔어요."
 
26
하고 금심은 입을 삐죽하고 고만 안으로 사라졌다.
 
27
남겨 놓은 그 한 마디 말은 비수같이 나의 심장을 찔렀다. 이때야말로 어안이 벙벙하였다. 한동안 화석 된 듯이 우두머니 서 있었다. 하늘도 무너지고 땅도 꺼지는 듯하였다. 눈앞이 캄캄하였다. 하건만,
 
28
"흥, 살림을 들어갔다!"
 
29
라고 소근거리고 돌아서는 수밖에 없었다.
 
30
집 잃은 어린애나 같이 속으로 울며 불며 거리로 거리로 방황하였다. 그러다 하릴없이 집으로 돌아왔건만 집에서는 또 얼마나 무서운 사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31
안해는 요강에 걸터앉아 왼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다. 차마 볼 수 없어 새빨갛게 얼굴을 찡그리고 있다. 그 눈에서는 고뇌를 못 이기는 눈물이 그렁그렁 하였다.
 
32
나는 모든 것을 깨달았다. 병독은 벌써 그의 순결한 몸을 범한 것이다. 오늘 청결하느라고 힘에 넘치는 극렬한 일을 한 까닭에 그 증세가 돌발한 것이다! 춘심의 사진을 처음 볼 때에 웃고만 있던 그로서 그것을 찢게 된 신산한 심리야 어떠하였으랴!
 
33
그의 태중에는 지금 새로운 생명이 움직이고 있다. 이 결과가 어찌 될까? 싸늘한 전율에 나는 전신을 떨었다. 찡그린 두 얼굴은 서로 뚫을 듯이 마주 보고 있었다. 육체를 점점이 씹어 들어가는 모진 독균의 거취를 살피려는 것처럼. 그리고 나는 독한 벌레에게 뜯어 먹히면서 몸부림을 치는, 어린 생명의 악착한 비명을 분명히 들은 듯싶었다…….
 
34
(완결, 1922. 2.)
 
 
35
(『개벽』,1922. 1. ~ 4.)
【원문】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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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진건(玄鎭健)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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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2년 [발표]
 
  소설(小說)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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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06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