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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락자(墮落者) ◈
◇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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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1 ~3.
현진건
1
타락자
 
2
7
 
 
3
한번 간 춘심은 돌아올 줄 몰랐다. 바람이 문을 찌걱거리게 할 적마다 몇 번을 오는가 오는가 하였는지 모르리라. 나는 누울락 앉을락 하였다. 일어서 거닐기도 하였다. 마디고 마딘 시간이건만 아홉 점이 지났다. 열 점이 지났다…….
 
4
온갖 의혹이 괴여 오르기 시작하였다. 그의 말과 속이 같을진대 여태껏 아니 올 리 없으리라. 그 정 맺힌 눈치도 그 안타까운 몸짓도 모두 허위이런가 가식이런가. 나의 생각이란 염두에도 없고 어느 유야랑(유야랑)과 안기고 안으며 뺨도 비비고 입도 맞추면서 덧없이 깊어 가는 밤을 한(恨) 하는지 누가 알리요! 그런 줄 모르고 눈이 멀뚱멀뚱하게 오기를 고대하는 나야말로 숙맥(菽麥)일다! 천치일다!
 
5
내가 여기서 그의 돌아옴을 기다리는 모양으로 그는 거기서 나의 감을 기다리고 아니 있는지 누가 증명하랴! 암만해도 오늘 낮 새로 한 점에 놀음 수유를 받으면서 잘 수유조차 아울러 받았을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처음 볼 때 왜 냉연하였으랴! 냉연함은 충동이었고 나종의 꿀을 담아 붓는 듯한 언사와 표정은 지은 솜씨일다!
 
6
"해동관에서 나를 부르지 않았어요?"
 
7
한 것은 노골적으로 나를 욕보이는 수작이었다. 격퇴하는 칼날이었다.
 
8
"쾌씸한 것 같으니 "
 
9
나는 속으로 부르짖고, 있지도 않은 위약자(違約者)를 노려나 보는 듯이 미닫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10
"조그만 더 기다리십시오. 곧 올 것인데……. 지금 열 점 아닙니까? 반 시(半時) 만 더 기다려요."
 
11
곁에 있던 금심은 따라 일어나 나의 앞을 막으며 간청하였다. 그와 나는 벌써 꽤 친숙하게 되었다.
 
12
"고만 갈테야, 아홉 점까지 기다리란 것을 열 점까지 기다렸으면 무던하지."
 
13
하고 나는 그의 팔을 가볍게 잡아 앞으로 밀치었다.
 
14
"안 되어요. 안 되어요. 가시다니. 꼭 못 가시게 하라던데……."
 
15
하고 금심은 응석하는 듯이 뒤에 매어 달리며 모자를 벗기려고 애를 쓴다.
 
16
"밤 새도록 아니 올 걸 뭐."
 
17
나는 모자를 한 손으로 단단히 붙잡고 웃으며 이런 말을 하였다.
 
18
"안 오기는 왜 안 와요. 두고 보시오. 곧 아니 오는가. 가시면 제가 야단을 맞아요."
 
19
하고 애원하는 듯이 나를 쳐다보며,
 
20
"잠깐만 더 기다려요. 십분만, 오 분만……네? 네?"
 
21
나는 돌아다보고 빙그레 웃으며,
 
22
"그래, 너의 형이 나를 꼭 잡으라 하던?"
 
23
하고 물어 보았다.
 
24
"꼭 못 가시게 하라고……."
 
25
"정말?"
 
26
"정말이고 말고요."
 
27
"가 볼 일이 있는데……."
 
28
입으론 이런 말을 하였지만 이미 갈 뜻은 없었다. 춘심이가 진정으로 나의 기다림을 바랐거니, 어찌 그의 뜻을 저버리랴!
 
29
"볼 일이 무슨 볼 일입니까?"
 
30
금심은 나의 마음을 알아챈 듯이 중얼거리자 민속하게 나의 모자를 벗겨 들었다. 그가 개가(凱歌)를 부르며 웃고 쓰러지자 나도 빙그레 주저앉았다.
 
31
춘심은 새로 두 점이 넘어 돌아왔다. 그때껏 나는 견딜성있게도 거기 있었나니 그렁저렁 열두 점이 넘고 새로 한 점이 넘으매 기다린 것이 아까워도 갈 수 없었음이다. 치맛자락의 사르륵 소리를 듣자 나는 짐짓 한 잠이나 든 것 같이 눈이 감았다.
 
32
밀장은 소리 없이 열리었다. 사람의 넋을 사르는 듯한,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하는 듯한 향내가 떠돌았다. 저도 모를 사이에 나는 깊이 호흡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슨 강렬한 광선에 쏘일 때처럼 감은 눈이 환하며 눈꺼풀이 부신 듯이 떨리었다.
 
33
"아이고, 아니 갔구먼!"
 
34
하는 속살거림이 들리었다. 그 음향 가운데는 무한한 감사와 무한한 환희가 품겨 있었다. 감은 눈으로도 가만가만히 다가드는 그의 외씨 같은 발을 볼 수 있었다.
 
35
그는 금심을 고이 깨워 일으키자 가는 소리로 물었다.
 
36
"주무시나?"
 
37
"주무시긴 누가 주무셔요? 왜 인제야 와요?"
 
38
금심의 잠꼬대 같은 소리가 대답을 하였다.
 
39
나는 눈을 떴다. 춘심은 벌써 내 곁에 앉아 있었다.
 
40
"미안한 말을, 어찌 다 할는지."
 
41
그는 말을 꺼내었다.
 
42
"암만 오려니 어데 사람을 놓아야지요. 손님도 안면있는 이 같으면 사정도 보건만 아는 이란 단지 하나뿐이고 모두 모르는 분이겠지요. 집에 일이 있다니 사람을 놓습니까, 몸이 아프다니 사람을 놓습니까. 하다하다 못해 배가 아프다고 엉구럭을 부리니까 영신환이랑 인단이랑 들여오라겠지요. 속이 상해서 죽을 뻔하였습니다. 오죽이 지루하셨겠습니까?"
 
43
하다가 문득 금심을 향하며,
 
44
"왜 자리를 아니 깔아 드렸니? 좀 편안히 주무시게나 하지."
 
45
하고는,
 
46
"나는 가신 줄 알았어요. 이 못난이를 웬 걸 기다리실라고 하였어요. 이런 줄은 모르고 오죽 괘씸히 생각하셨겠나 하였어요. 밤을 새워도 편지로 사과나 할까 하였어요. 그런데 와 보니……."
 
47
하고 기쁨을 못 이기는 듯이 말끝을 웃음으로 마치었다.
 
48
나는 부시시 일어나 앉았다. 그러나 선잠을 깬 사람같이 말 한마디 할 수 없었다. 그 열렸다 닫혔다 하는 입술과 그럴 적마다 화판(花瓣)이 벌어지며 진주 같은 화심(花心)이 나타나는 모양으로 반짝반짝 드러나는 하얀 이빨과 찡그렸다 폈다 하는 그린 듯한 눈썹과 그 밑에서 흐리다가 빛나다가 하는 까만 눈을 멀거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49
이윽고 금침은 펼쳐졌다. 하건만 나는 화석이기나 한 것같이 망연자실하고 있었다. 어째 무시무시한 증(症)이 들었다. 이불 속이 곧 지옥인 듯이 들어갈 정이 없었다. 고만 집으로 갔으면 하였다.
 
50
"고만 자십시다. 매우 곤하실 터인데……."
 
51
저 편도 아주 감개무량한 듯이 고개를 떨어뜨리고 앉아 있다가 슬픈 음성으로 침묵을 깨뜨렸다.
 
52
"응."
 
53
"어린애 모양으로 '응’……."
 
54
하고 춘심은 소리쳐 웃으며 별안간 나를 부둥켜 안는다. 나는 마녀에게나 덮친 듯이 머리끝이 쭈뼛하였다.
 
55
둘이 그림자는 이불 안으로 사라졌다. 나는 우들우들 떨면서 두 번 아니오리라 생각하였다.
【원문】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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