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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년(少年)은 자란다 ◈
◇ 오뉘 단둘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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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2월 25일
채만식
1
少年[소년]은 자란다
2
- 13. 오뉘 단둘이
 
 
3
서영호가 영자를 데리고 이리 정거장에서 내려서 아버지를 기다리기도 오늘째 보름이 되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직도 만나지를 못하였다.
 
4
그 양복 입은 사람이, 자기가 한 말대로 이리에 차가 닿자 영호 남매를 데리고 역장실로 가서 잘 이야기를 하여 주었었다.
 
5
이 아이들이 전재민으로 만주에서 돌아오다가 대전서 차를 갈아 타면서 저의 아버지를 잃어버리고서, 어린 아이들이 매우 곤란을 당하고 있다고. 그 러니 대전 정거장으로 전화를 걸어 아이들을 잃고 찾는 사람이 있는 것을 알아보아, 있거든 바로 보내주도록 하여 달라고.
 
6
역장은 그거야 어렵지 않은 일이지만, 찻손님이 워낙 많고 복잡해 놔서, 가사 있다고 하더라도 졸연히 찾아내어질지가 의심스럴 뿐만 아니라, 이즈음 손은 모자라고 바쁘기도 한데, 저편에서 과연 얼마쯤이나 정성을 써 줄는지도 또한 장담키 어렵노라고 하였다.
 
7
그 끝에 역장은 영호더러 어디까지 가는지 가는 그 정거장에 가 내려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 차라리 나을 텐데 그러느냐고 물었다.
 
8
"허허, 그 어디꺼지 간다는 작정이 없구, 거저 띠어놓구 전라도루 오던길 이 랍니다."
 
9
영호가 머뭇머뭇하고 있는 것을 양복 입은 사람이 대신 대답을 하였다.
 
10
역장은 이맛살을 찡그리면서, 혼잣말처럼 하는 말이었다.
 
11
"일이 그렇게들 막연하게 하니깐 이런 사고가 생기구 하지…… "그러고는 양복 입은 사람더러
 
12
"아뭏든 대전으루 바루 연락은 해 드리지요…… 그럼, 이 애들은 여기 서며 칠이구 기대리구 있을 모양인가요?"
 
13
"그렇죠…… 저이 아버지라는 사람이 정거장마다 내려선 이 애들을 찾구, 내려 선 찾구 하면서 더듬어 올는지두 모르니까요. 그러느라면 이 이리 에두 내릴 테니깐요."
 
14
"좋습니다. 알겠읍니다. 그럼, 느일랑은 내일 아침버틈 내한테 한 번씩 이구 두 번씩이나 들려보아라…… 느이가 미처 안 오면, 내가 느이를 찾아서, 알려두 주겠지만…… "영호는 양복 입은 사람과 함께 고맙습니다 인사를 하고 역장실을 나왔다.
 
15
이튿날 아침에 영호는 역장실에 들러보았다.
 
16
역장은 잘 부탁은 하여 두었으나 아직은 회답이 없다고 하였다.
 
17
영호는 낙심이 되었으나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18
다음, 서울차가 오기를 기다려 나오는 목에 가 지키고 서서 찻손님들 틈에서 아버지를 찾아보았으나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19
오후에 다시 역장실을 들렀다.
 
20
아침나절과 같은 대답이었다.
 
21
이튿날도 또 그렇게 하였다. 그러나 대전서는 소식이 없고, 아버지는 이리 정거장에 내리지 않았고 한 것은 물론이었다.
 
22
영호는 번번이 낙심이 되었으나 그렇다고 아주 실망은 하려고 아니하였다.
 
23
실망하지 않고 꾸준히 역장실을 들러보고, 나오는 목을 지키고 하였다.
 
24
며칠 그러다가는 의사가 생겨 서울차가 들어올 무렵이면, 나오는 목에다 는 영자를 잠깐 대신 세워놓고서 영호 저는 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서는 서울 차가 닿으면 차칸 차칸에 대고
 
25
"아버지이, 영호 여깄어요오. 아버지이, 영호 여깄어요오." 하고 외치면서 맨 앞에서부터 맨 꽁무니칸까지 달리었다.
 
26
아버지가 내리지 않고 지나갈는지도 혹시 모르기 때문이었다.
 
27
그렇게 외치면서 한달음질을 치고는 횡나케 그대로 나오는 목으로 나와, 이번에는 나오는 찻손님들 틈에서 아버지를 찾고 하였다. 그동안은 찻손님은 미처 몇 사람 나오지도 않았지만, 영자도 한눈 한번 팔지 않고 곧잘 서서 목을 지키고 있곤 하였다.
 
28
영호가 홈에서 아버지이 영호 여기 있어요 하는 소리를 외치면서부터는 영호는 이 정거장에서 이름이 나고 말았다.
 
29
정거장엣 사람들은 물론이요, 바깥에서 음식을 파는 사람들이나 지겟 벌이를 하는 사람들이나, 여관의 끌이꾼이나, 야미차표 파는 사람들이나, 다 들, 영호 남매를, 아버지를 잃어버리고서 아버지를 찾느라고 애를 쓰는 어린 아이들인 것을 알아주었다.
 
30
얼굴도 자연 익고 해서
 
31
"이 녀석아, 느이 아버지, 내가 보니께 일본으루 가더라." 하고 농담을 하면서 귓바퀴를 잡아당기는 장난꾼이의 젊은 역수(驛手)가 있는가 하면
 
32
"원, 여태까장 느 아버지를 못 찾았구나? 쯔쯧!" 하면서 팔고 있는 대떡을 한 개 집어 영자를 주는 떡장수 할머니도 있었다.
 
33
아무도 영호 남매를 괄시를 하거나 걸리적거려 하는 사람은 없었다.
 
34
영호는 워낙 정거장이면 정거장에서, 걸리적거림이 되거나 남에게 괄시 받을 짓을 하거나 하는 아이가 아니 되었다.
 
35
잠은 정거장 대합실에서 잤다.
 
36
이 정거장에도 대합실 안에는 전재민들이 구석구석이 거적을 깔고 누더기를 덮고 밤이고 낮이고 누워 딩굴고 있었다.
 
37
영호는 집이 없는 전재민이니 할 수 없이 거적을 깔고 대합실에서 자야 하기는 한다지만, 멀건 대낮에도 그 모양들을 하고 누웠는 것은 그다지 잘 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얼굴과 수족이 땟국과 먼지에 시꺼멓게 쩔어가지고, 숱한 사람이 들끓는 대합실 바닥의 거적 위에 가 누더기를 뒤 쓰고 멀뚱멀뚱 누워 있는 것은 하릴없이 거지요, 거지 하고도 게으른 거지 로밖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었었다.
 
38
영호는 그새와 마찬가지로, 밤이 늦어, 흩어져 갈 사람들이 훨씬 흩어져 가기를 기다려, 파출소 옆에다 두어둔 짐 보퉁이를 챙겨가지고 영자와 함께 대합실로 들어갔다.
 
39
대합실에는 전재민들 외에도 내일 새벽에 파는 차표를 사려고 밤 새기를 하는 찻손님들도 많이 있었다.
 
40
영호는 늦게 들어가기 때문에 좋은 자리는 잡을 수가 없었으나, 그래도 많은 사람이 오락가락하는 발부리 밑에서, 거적을 펴고 누웠느니보다는 자리 나쁜 자리를 차지하는 편이 차라리 나았다.
 
41
가마니 폭을 가로 펴고, 이불을 풀어 덮어 영자와 나란히 누웠다. 여름철로 접어들었다지만, 양회바닥이 차고, 유리창이 거지반 깨어져 한데나 다름없는 대합실 안은 새벽이면 이불을 덮었어도 추웠다.
 
42
영자를 데리고 이렇게 양회바닥의 거적 위에다 나란히 누워 잠을 자려고 할 때가 하루 가운데서도 제일 마음이 언짢고 잃어버린 아버지와 여윈 어머니의 생각이 간절하였다. 영호는 이날이, 눈물 없이 잠이 들어본 적이 없었다.
 
43
영자는 그래도 오빠를 믿거라고 덜 슬퍼하였다. 잠도 그래서 이내 잠이 들어 색색 숨쉬는 소리가 들렸다.
 
44
영호는 희미한 전등불에 한참이나 영자의 잠든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는 동안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45
"어머니!"
 
46
가만히 입속으로 부르는 그 어머니 소리에는, 영자는 애차라 어떻게 해 요하는 말이 얼마든지 사무쳐 있었다.
 
47
어떡하다 잠이 들었고.
 
48
이튿날 새벽……
 
49
누구보다도 맨 먼저 영호는 잠이 깨었다. 아직 어둑어둑한 첫새벽이었다.
 
50
영호는 영자를 가만히 흔들어 깨웠다.
 
51
두번 만에 영자는 눈을 빠끔 뜨면서 인하여 발딱 일어났다.
 
52
영호는 전번에 벗어서 빨아 말려둔 옷을 보퉁이에서 꺼내어 영자도 갈아입히고 저도 갈아 입고 하였다. 벗은 옷은 그리고 빨랫비누와 함께 똘똘 말아 한편으로 놓았다. 빨랫비누는 서울서 쓰던 것이 짐 보퉁이 속에 있어서 전번에도 꺼내어 썼었다.
 
53
영호는 깁고 해어진 옷일망정 제 손으로라도 자주 빨아 입어 시꺼먼 거지 꼴을 하고 있지 않았었다.
 
54
영호는 누가 볼세라고 이불을 개켜 싸고, 거적을 말아서 새끼 토막으로 묶 고 하여 파출소 옆에다 날라다 놓았다.
 
55
"저 녀석, 참 바지런해! 그리고 애녀석이, 쓰겠어!"
 
56
파출소에서 순사가 내다보다가 동간더러 하는 소리였었다.
 
57
파출소에서는 처음에는 영호가 너줄한 보퉁이들은 가져다놓는 것을 못 하게하였으나, 차차로 사정을 알게 되면서는 눈감아 주었을 뿐 아니라 그렇게 칭찬까지 하던 것이었다.
 
58
이 정거장도 전재민이고 여느 찻손님이고 할 것 없이 정거장 안팎을 온통 변소를 만들어놓았었다.
 
59
영호는 저는 절대로 그러지 말기로 하였고, 그대로 지켰었다. 영자도 오빠가 이른 대로 지키고 어기지 않았다.
 
60
자던 자리를 치우고 변소를 다녀 영자를 데리고 정거장 안에 수통으로 가서 세수를 하였다.
 
61
맹물로나마 양치를 하고 얼굴을 훨훨 씻고 다리와 발을 씻었다.
 
62
영자도 제가 곧잘 그렇게 씻었다.
 
63
세수를 하고 나서는 아까 벗은 옷을 빨았다.
 
64
한 사람 두 사람, 한번 두 번, 정거장엣 사람과 그 밖에 정거장에 인연이 잇는 사람들의 눈에 영호 남매의 이러한 거동이 자연 눈에 뜨이게 되고, 따라서 신통히 여기고, 한 입 두입 소문도 퍼지고…… 그러느라니 누구나 주는 것은 없어도 미워를 하거나 구박을 주려고 들 사람은 있을 며리가 없었던 것이었다.
 
65
부지런하고 정갈한 것은 마음 하나로 되던 것이지만, 지닌 돈이 하루 하루 졸아 들어가는 것은 어떻게 하는 수가 없었다.
 
66
영자와 둘이서 하루 세 때 요기만 하여도 30원씩은 들어야 하였었다.
 
67
한 닷새, 한끼 10원어치씩을 먹으면서 지냈다.
 
68
그러다 보니, 돈은 150밖에 남지 않았다.
 
69
그날 밤, 찻간에서 여러 찻손님에게서 모인 돈이, 한 4백 원 되었었다. 돈은 온전히 그 돈이요, 영호는 한푼도 제 돈이라고는 지녔던 것이 없었다.
 
70
이따라도 내일이라도, 아버지를 만나기만 한다면 상관이 없었다.
 
71
하기야 아버지한테도 우난 돈이 있는 것은 아니었었다.
 
72
그러나, 그나마라도 아버지를 만나지 못하고 가진 돈이 떨어지는 날이면 꼼짝 없이 굶는 판이었었다.
 
73
하루라도 느루 쓰는 것이 옳고, 그래서 세 끼 먹던 것을 아침과 저녁 두 끼로 줄이었다.
 
74
아침에는 느지감치 5원짜리 우동 두 그릇을 사거나 10원짜리 국밥 한 그릇 을 사서 영자와 함께 먹거나 하였다. 또 저녁 때면, 10원어치 김밥이나 대 떡을 사서 먹었다.
 
75
영호는 언제나 저는 덜 먹고, 영자는 나우 먹이고 하였다.
 
76
그래도 영자는 양이 차지 못해 나빠하였다. 온종일 그리고 배가 고파하는 얼굴을 하고는, 기운 없이 시무룩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한번도 배고프 단말은 한 적이 없었다.
 
77
영호는 그것이 하도 가엾어 에이 모르겠다고 떡이든 우동이든 사 먹이기도 몇 차례 하였다.
 
78
그러는 동안에 돈은 다 밭아, 어제까지에 마지막 10원이 없어지고 말았다.
 
79
어제 낮때만 하여, 대떡 다섯 개를 사 영자를 세 개 하고 반을 먹이고, 영호 저는 한 개 반을 먹고 하고는, 오늘은 한나절이 되어오도록 입맛도 다신것이 없었다.
 
80
정거장 앞 너른 마당 한편 구석으로 그늘을 찾아 영호는 영자와 나란히 앉았다.
 
81
영호는 자꾸만 기운이 까라져 곧 쓰러지겠는 것을 겨우 몸을 가누고 앉아있었다. 영자에게 배고픈 거동을 보이지 말자 함이었다.
 
82
건너편에 있는 식당에서는 나팔통(마이크)에다 유성기로 노래를 틀어 정거장이 울리도록 떠들면서 손님을 꼬인다.
 
83
정거장 마당에는 떡장사, 깁밥장사, 엿장사 해서 늘비하니 널려 있다.
 
84
2 원만 있더라면 김밥이나 떡을 한 개만이라도 사서 영자를 먹이련만 하면서, 영호는 바지 봉창으로 무심결에 손이 들어간다. 그러나 어제 오후부터 빈 봉창인데야 나올 것이 있을 리 없었다.
 
85
"오빠아?"
 
86
영자가 가만히 부른다.
 
87
영호도 가만히
 
88
"영자야?"
 
89
"응?"
 
90
"배고푸지이?"
 
91
"아니…… 오빤?"
 
92
그, 아니라면서 오빠는 하고 묻는 것이 차라리 배가 고프다고 대답을 하고 마는 것보다는 영호는 덜 마음이 아팠다.
 
93
마침 군산찬지 전주찬지 차가 들어오고 나오는 목으로 꾸역구역 찻 손님이 몰려 나왔다.
 
94
"영자야, 죄끔만 참아…… 지금 곧 무어 사주께에."
 
95
이르고는 벌떡 일어섰다.
 
96
별안간 아찔하면서 아무것도 안 보이는 눈에서 별이 튀었다.
 
97
영호는 겨우 진정을 하여가지고 나오는 목으로 쫓아갔다.
 
98
영호는 지겟벌이꾼이야 여관 끌이꾼의 틈에 끼여 서서, 옷이라도 깨끗이 차린 손님으로 짐을 가진 사람을 기다렸다.
 
99
이윽고, 양복을 잘 입은 신사 하나가 큼직한 가방을 무겁게 들고 나오더니, 땅바닥에다 내려놓고 팔을 쉬었다.
 
100
영호는 얼른 그 앞으로 비어져 나갔다.
 
101
"짐 들어다 드려요?"
 
102
"네가?"
 
103
신사는 시쁘다는 듯이 위아래로 영호를 씻어본다.
 
104
"삯 많이 안 주셔두 좋아요. 저, 우리 영자, 대떡이나 김밥 한 개만 사주셔두 돼요. 네?"
 
105
"이 짐이, 대떡이나 김밥 한 개보담은 무거울거다!"
 
106
신사는 재담을 하고는, 그 재담이 스스로 유쾌한 듯이 껄껄 웃는다. 그리고는 지게 진 사람을 불러 지워 가지고는 가버린다.
 
107
영호는 한숨을 쉬고 돌아섰다.
 
108
영자는 빠안히 이편을 바라다보고 있었다.
 
109
눈물이 핑 돌았다.
 
110
나서 지금까지, 이렇도록 배가 고파 본 일은 영자도 영호 저도 한번도 없었다.
 
111
조팝이라도 구수한 밥을 끼니끼니 배불리 먹었었다.
 
112
"영호야, 영자야 밥 먹어라."
 
113
어머니가 그러면서, 김 무럭무럭 오르는 노란 조팝을 수북수북이 담은 밥그릇을 밥상에 놓아 방으로 들여주던 모양이, 바로 오늘 아침이던 것처럼 서언 히 눈에 밟혔다.
 
114
"어머니!"
 
115
거진 입 밖에 내어 그렇게 불러보면서 손등으로 눈물을 닦는다.
 
116
남들이 아니었으면, 남은 둘째로, 영자만 아니어도 풀썩 주저앉아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는 어디를 갔어요 하고 부르면서 통곡을 하겠었다.
 
117
영호는 어머니가 죽고 없다는 것이 어쩐지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118
어머니가 그렇게 숨이 지는 것을 영호는 제 눈으로 보았었다.
 
119
싸느랗게 차진 어머니의 시체를 울면서 아버지와 함께 빨아 두었던 헌 옷을 갈아 입히고 머리도 빗기도 하였다.
 
120
동네 사람이 달려들어, 새끼로 꾹꾹 염을 하는 것도 보고, 마지막 낙타산의 낙타등에 판 광에다 묻으면서 얼마든지 울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장차 여기를 와, 어머니의 백골을 파 안고 고국으로 가져다 묻으리라 하고, 발치에 표나는 돌을 넣기까지 하였다.
 
121
이렇게 영호는 번연히 제 눈으로 보고 제 손으로 치르고 하였으면서도, 그것을 잊은 것도 아니면서도, 어쩐지 그것이 그런 꿈을 꾼 것만 같았다.
 
122
꿈이었고, 어머니는 시방 거기, 대이수구의 그 살던 집에 그대로 있는 것만 같았다. 영수를 업고 부엌에서 방금 밥을 짓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아버지도…… 아버지는 마당 가운데 쭈그리고 앉아서 무엇을 하고 있고.
 
123
정녕 그렇거니 싶고, 단숨에 뛰어갈 수 있는 것이라면 뛰어가 보기라도 하면 싶었다.
 
124
영호의 이런 생각은 하필 오늘에 시작된 것은 아니었었다. 어머니를 내다 묻고 돌아오던 그날 밤부터서 그러하였다. 그리고 그 뒤로도 늘 그러하였다. 그러다가 아버지마저 잃어버려, 영자와 단 두 남매 이렇게 갈 바를 모르고 막막한 몸이 되자, 거기다 배조차 고프고 하여, 옛 어머니 그리움이 갈 절함과 함께, 꿈 아닌 꿈도 그와 같이 골똘하여지던 것이었다.
 
125
영자가 기다리고 있다 못해 와서 가만히 팔을 붙잡았다.
 
126
영자더러 무엇이고 사 주마고 한 것이 속인 것같이 되었으니 이제는 할 수 없었다. 이불이라도 팔아야 하였다.
 
127
어제부터 이불을 팔 생각을 하였으나, 차마 못하고 있었다.
 
128
그러나 이제는, 망설이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달리는 아무 도리도 없었다.
 
129
다른 전재민들을 보면, 조석으로 끼니때를 기다려, 여자들과 아이들이 바가지야 깡통이야를 들고 거리로 나가서 밥을 빌어도 오고 하던 것이지만, 영호는 세상 없어도 그 짓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130
바가지나 깡통을 들고 남의 집 문전 문전 기웃거리면서 밥 한술 주시요 하는 소리는, 하고자 하여도 소리가 나와지지를 않을 것 같았다.
 
131
세상에서 제일 핫길 가는 사람 ── 거지가 되다니, 그것은 죽기만도 못 한일 이었다.
 
132
이불을 팔기로 하면, 어떻게 팔아야 할 것인지 누구 물어볼 사람이 있으면하면서, 영자의 손목을 이끌고 향방 없이 발길을 옮겼다.
 
133
언젠가 영자를 대떡 한 개를 집어 주면서 여태까지 아버지를 못 찾았느냐고 가엾어하여쌓던 떡장수 할머니가 오늘도 여러 장사들 틈에 끼여 앉아 떡을 팔고 있었다.
 
134
영호는 그 앞으로 가 쪼글뜨리고 앉았다. 떡을 바싹 눈앞에다 보니, 곧 속이 쓰리고 어금니에서 신침이 흥건히 흘렀다.
 
135
영자가 침을 꼴깍 삼키는 소리가 역력히 들린다.
 
136
떡장수 할머니도 영호와 영자를 알아보고 먼저
 
137
"느가 아직도 이러구 있구나! 원 어쩐단 말이냐?" 하면서 걱정을 한다. 그러고는 영자를 들여다보다가
 
138
"떡이나 하나 먹을래?" 하고 묻는 것이 아니라, 손은 벌써 떡을 집어 들었다.
 
139
영호는 그것을 막으면서
 
140
"아 녜요…… "하고는, 고쳐
 
141
"할머니?"
 
142
"오냐."
 
143
"저, 이불…… 살 사람 없으까요?"
 
144
"이불? 느 이불?"
 
145
"내애…… 헌건 헌거라 두…… "
 
146
"배가 고파 그러는구나, 쯔쯧…… 아암, 이불이라두 팔아서 무얼 사먹어야지…… 굶는 것두 한 끄니 두 끄니지, 어린것덜이 조옴 배가 고푸면, 눈이 저렇게덜 십리나 들어가냐!"
 
147
떡장수 할머니는 그러면서 대떡을 한개 더 집어, 영자를 주고 영호도 준다.
 
148
"전 갠찮아요, 우리 영자나 주세요. 이불 팔아서 떡값 드리께요."
 
149
영자는 오빠가 그렇게 말을 하여서야 떡을 받아 먹는다.
 
150
"너두 먹어라…… 내 안이 남의 안이란다. 나두, 에미 애비 없는 손 주 새끼 하나를 이 짓을 히여감서 키구 있으닝개, 느를 보면 남의 일 같덜 안히서 그런다…… 옜다, 어려 헐라 말구 먹어라. 먹구, 한 개씩 더 먹어라."
 
151
영호는 더 사양할 기운이 없었다.
 
152
영호는 떡을 받아 한입 베어 먹으면서 묻는다.
 
153
"곧 팔릴까요?"
 
154
"글쎄 온…… 장으서는 흔 소캐를 사는 사람이 있는가 부더라만서두."
 
155
"솜만 팔아두 갠찮아요."
 
156
"허기사, 한뎃잠자리를 하자면, 아직두 무얼 덮어야 하닝개, 소캐만 빼서 팔구, 껍대기는 두구 덮는 게 낫지."
 
157
영호가 돌아다보니, 영자는 그새 한 개를 다 먹고, 우두커니 오빠의 입 놀 리는 것을 보고 있다가 얼른 눈을 내려뜨린다.
 
158
영호가 반이나 남은 떡을 영자를 준다. 그것을 보고 떡장수 할머니가 떡 목판에서 떡을 두 개를 집어 오뉘 한 개씩 갈라 준다.
 
159
"신퉁하다. 오래비 노릇 하느라구…… 전들 배가 조음 고플꼬만, 동생을 멕 이구 싶어서, 쯔쯧!…… 장래 크게 되겄다!"
【원문】오뉘 단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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