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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년(少年)은 자란다 ◈
◇ 외로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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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2월 25일
채만식
1
少年[소년]은 자란다
2
- 15. 외로움
 
 
3
찬 바람이 일었다.
 
4
시월 그믐…… 영호가 고국으로 돌아와서 어느덧 제 돌이요, 아버지를 잃 어버리고 찾으면서 기다리기 다섯 달이 지났다. 그리고 이 여관집으로 와있은지도 넉 달이 되었다.
 
5
영호는 그동안도 아버지를 찾으며 기다리기를 그만두지는 않았다.
 
6
찻시간을 맞추어 정거장으로 나가서는 우선 홈으로 들어가, 차가 닿기를 기다려 차칸 차칸에 대고
 
7
"여기, 오윤서라고 하는 이 탔어요? 간도서 온 오윤서라고 하는 이 탔어요?" 하고 소리를 쳤다.
 
8
아버지이, 영호 여기 있어요 하고 외치던 것은 한 달 두 달 하고 나니 이상히 헤먹고 싱거운 것 같아 그 다음부터는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면서 찾았다.
 
9
그러고는 힁허케 나오는 목으로 나와 일변 손님을 끌면서 아버지를 찾아보고 하였다.
 
10
영호가 있는 제일여관이라는 그 여관은 뜨내기 손님보다도 단골 손님이 많았고, 단골 손님만 하여도 손님이 늘 넘치고 하였다. 그래서 영호는 손님 끌기에 그다지 열심히 않아도 상관이 없었고, 주인도 모른 척하고 말이 없었고 하였기 때문에, 영호는 정거장에 나가는 것은 아버지를 찾는 것이 주장이요, 손님 끄는 것은 여벌일같이 되었었다.
 
11
아버지가 만일 그날 밤, 서울로 가는 차에서 허둥거리느라고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리다 차바퀴에 휩쓸려 들어가 목숨을 잃었거나, 혹은 몸을 다쳐 서든 병이 나서든, 어디 가 누워 앓다가 세상을 버렸거나 해서, 이미 이 세상을 떠나지만 않은 것이라면, 아버지는 그동안 벌써 이 이리에 와 영호와 영자를 만났고라야 말았을 것이었었다.
 
12
아버지도, 영호가 궁벽한 촌으로 들어갔을 리는 없고, 어떤 정거장이 되었거나 정거장을 의지삼아, 아버지를 찾아나서도 찾아나서고, 기다리고 있어도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것쯤은 생각을 할 수가 있을 것이었었다.
 
13
아버지는 그러므로, 차를 타지 않고 걸어서라도 대전서 시작하여 정거장 정거장을 들러, 정거장을 중심한 그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묻고 알아보고 하며 더듬어 내려왔거나, 혹은 목포서 시작하여 마찬가지 법식으로 더듬어 올라왔거나 하였을 것이 분명하였다. 그러다가 필경엔 이리에도 들었을 것이요, 들르는 날이면 영락없이 영호는 만났을 것이요 하였다.
 
14
그러나 그동안 다섯 달이 지났건만, 영호는 종내 아버지를 만나지 못 하였다.
 
15
아버지가 살아서 있기만 한다면, 영호를, 영자를 찾기를 단념하고, 우두 커 니 어디 가 앉았을 아버지는 결코 아니었었다. 생전을 두고라도 잊어버리지 않고 온전히 영호를, 영자를 찾자고만 들 아버지였었다. 영호를, 영자를 찾는 일 외에는 아버지는 이제는 이 세상에서 할 일이라고는 없는 아버지 였었다.
 
16
아버지는 그런데 다섯 달이 되어도 나타나지 않았다.
 
17
아버지는 아무래도 세상을 버렸기가 쉬운 것이라도 생각으로, 영호는 요새와 서는 생각이 기울었다.
 
18
차마 섧고 애달픈 일이었으나, 그렇게밖에는 달리 생각할 수가 없으니 하릴없는 노릇이었다.
 
19
겉으로 보아서는 제일 가는 여관은 아니어 보이건만 속살로 고급이요, 간판( 看板) 하여 제일여관이라고 한 이 여관집의 사무실 방이었다.
 
20
밤은 자정이 훨씬 지났고.
 
21
영호는 겨우겨우 심부름이 끝난 것 같아서, 나른히 지친 몸을 쓰러지듯 자리에 누웠다. 자리라고 하지만 딱딱한 목침에 얄따란 포대기 한 자락일 따름이었다.
 
22
아버지는 이미 이 세상에 없거니 여기면서부터는 아버지 그리운 생각은 한결이나 더하였다.
 
23
자리에 누워 없는 아버지를 생각하느라면, 아버지는 대이수구의 살던 집에서 마당에 앉아 무엇을 하고 있고, 어머니는 영수를 업고 부엌에서 밥을 짓고 하는 양이 눈에 서언히 보였다.
 
24
"아버지!"
 
25
가만히 영호는 불러본다.
 
26
아버지는 돌아앉아 대답이 없고, 부르는 소리에 어머니가 부엌에서
 
27
"영자랑, 어서 일어나 세수해라, 밥 다 됐다…… 학교 늦을라!" 하는 음성이, 역력히 귀에 울리었다. 영호 저는 어느덧, 영자와 영수와 셋 이서 저의 집 방에서 나란히 이부자리 속에 누워 있는 것이고…… 머리 맡에는 간밤에 공부를 하던 학교 책이랑 연필이랑이 놓여 있고…… 영호는 감았던 눈을 번쩍 뜬다.
 
28
뜨고는 휘휘 둘러본다.
 
29
방은 그러나 제일여관의 사무실 방이요, 역시 꿈 아닌 꿈이던 것이었다.
 
30
영호는 제발 간도 대이수구의 제가 살던 집을 한번 가보았으면 싶었다.
 
31
어쩌면 어머니가 정녕 있고 동생 영수가 마당으로 기어다니고 할 것만 같았다.
 
32
아버지도 시방은 가 있을 것 같았다.
 
33
영자가 보고 싶었다.
 
34
가끔 만나기는 하였다. 그래도 생각이 날 적마다 보고 싶고 하였다.
 
35
영자도 이때쯤 혹시 잠이 깨어 어머니를, 아버지를, 오빠를 생각하면서 슬퍼하는지도 몰랐다.
 
36
오선생님도 보고 싶었다.
 
37
붙잡혀 갔다더니, 죄는 무슨 죄며, 그동안 벌써 놓여나오지는 못하였을 것이고, 어느 감옥인지나 알았으면 좋겠었다.
 
38
시방 만일 오선생님을 만난다면, 아버지를 만난 것만치나 반가울 것 같았다.
 
39
'참, 영만 이형도……’
 
40
형 영만의 얼굴은 오래는 되었어도 똑똑히 머리속에 그릴 수가 있었다.
 
41
오선생님의 말이, 훌륭히 되었으리라고 하였었다.
 
42
그 훌륭히 된 형이니 더구나 보고 싶었다.
 
43
영호 저를 업어도 주고 하면서, 귀여워하던 일도 생각이 났다.
 
44
시방 만나면 형도 무척 반가와할 것이었었다.
 
45
영호 저도 껑충껑충 뛰게시리 좋을 것 같았다.
 
46
아버지는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아버지였지만, 형은 찾아서 만나야만 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47
형도 혹시 아버지랑을 찾으려고 애를 쓸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서로 찾으려고 든다면 못 찾아질 것도 없을 것이었었다.
 
48
아버지가 그다지 찾고 싶어, 만나고 싶어하던 노릇이니, 아버지를 대신 하여 기어코 찾고 만나고 하여야 하는 것이라 하였다.
 
49
영호는 이렇게 생각이 두루 많아, 자리에 누워서도 이내 잠은 드는 적이 없었다.
 
50
영호의 하는 일은 퍽 몸이 고되었다.
 
51
꾀만 부리고 있으나마나 하였지만, 그러나마 강서방조차 본집엘 다니러 가고 없어서, 영호는 혼자서 그 숱한 심부름을 도맡아 해야 하였다.
 
52
열이나 되는 방방이, 하나 혹은 두셋씩 다 찬 손님의 세수물 시중을 죄다 하였다. 손님의 하나나 둘은 으례껀 치솔을, 치분을, 비누나 수건을 사오라고 바깥 심부름까지 시켰다.
 
53
담배도 몇번을 사러 나갔다.
 
54
방방이 밥상을 들이고, 숭늉을 나르고, 그러면서 일변 식전 반주도 사다 데워서 들여가야 하는 방도, 한 방이나 두 방은 아니었다.
 
55
밥상은 내고,
 
56
방방이 이부자리를 걷고 소제를 하고.
 
57
떠나가는 손님의 밥값 셈을 하고, 더러는 정거장까지 짐을 들어다 주어 야하였다. 차표까지 사주어야 하는 때도 있었다.
 
58
이런 손님은 단골 손님에서도 따로이 특별 손님으로, 안주인이 나서서 짐을 들어다 드려라, 차표를 사 드려라 하고 시키는 수가 많았다.
 
59
그렇지 않더라도, 아침나절에 정거장에는 한 차례 다녀와야 하던 것이고.
 
60
낮에는 조금 일이 너끔하였으나, 그래도 손님 드는 것을 받아야 하고, 나가지 않고 있는 손님이 시키는 대로, 국밥을 불러온다, 청요리를 불르러 가야 하고 하였다.
 
61
우표딱지를, 엽서를, 편지봉투를 사오고, 편지를 부치러 전보를 치러 우편국을 가고.
 
62
여관에는 없는 전화를 거리에 나가 남의 것을 빌어 손님의 전갈대로 전화를 걸기도 한심부름 착실하였다.
 
63
저녁때가 되면 방방이 불을 지피고, 그러면서 하나 둘, 돌아오는 손님들 이제마다 한 가지씩 시키는, 가령 냉수를 떠오느라, 발 씻을 물을 다고, 사과를 사오너라, 쥔 아주머니 좀 뵙자고 해라, 이 시중을 다 들어야 하였다.
 
64
저녁에는 거진 방방이 반주를 청하는 심부름까지 곁들여 저녁 밥상 시중을 들었고.
 
65
방방이 이부자리를 나르고.
 
66
새로 드는 손님을 받고, 객도기를 하고, 객도기를 파출소로 가지고 가서 도장을 받아오고.
 
67
밤이면, 손님이 열 패가 들었다고 하면 일곱 패나 여덟 패는 반드시 술자리를 벌였다. 그 대개는, 나가서 얼큰히 술이 취해가지고 들어와서는 새 채비로 벌이는 술이었었다. 그리고 안주인은 이때에, 이 방 저 방 불려다니면서 한몫을 보았다.
 
68
이 술타령이 대개 자정이나 한시 두시까지 갔다.
 
69
영호는 마지막까지 자지 않고 그 시중을 들어야 하였다.
 
70
아침 여섯시나 일곱시부터 시작하여 밤 자정이 넘도록까지 하루를 그렇게 치르고 나면, 영호는 다리가 뻣뻣하고 몸은 솜같이 맥이 풀어지고 말았다.
 
71
그렇지만 영호는, 일이 고된 그것은 괴로와하지 않았다.
 
72
꾀를 부리거나 하는 일이 없이 부지런히 잘 하였다.
 
73
일은 얼마든지 벅차고 고되어도 상관이 없고 감당할 자신도 있었다.
 
74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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