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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년(少年)은 자란다 ◈
◇ 소년(少年)은 자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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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2월 25일
채만식
1
少年[소년]은 자란다
2
- 少年[소년]은 자란다
 
 
3
영호는 아침나절 정거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전재민들이 모여 살고 있는 집을 찾아가 보았다.
 
4
대개는 여기저기 흩어져서 살았지만, 열 몇 가군가가 한 집에 모여 사는 집이 있다는 말을 듣고, 진작에 한번 찾아가려니, 찾아가려니 하고 여지 껏 찾아가지 못하였다.
 
5
근처로 좋은 적산 주택이 많이 박혀 있는 복판에 가서, 전에 무슨 직조 공장( 紡織工場)을 하였다는 이층집이었다.
 
6
덜씬 크고 높기만 하였지 생철은 녹이 슬고, 널빤지는 떨어져 달아나고, 그러나마 비스듬히 기울어 작수받침을 한 볼썽 아닌 집이었었다.
 
7
이것을, 위층이고 아래층이고 아무렇게나 칸을 막는 시늉을 하여가지고는, 한 칸에 한 가구씩이 들어 있었다.
 
8
아침 열시가 되어 오는데, 여기서는 겨우 아침밥을 질 마련을 하고 있었다.
 
9
그, 밥 질 마련이 대단히 요란스럽다.
 
10
열 몇 가구가 가구마다에서 여인네가 혹은 할머니가 계집아이가, 더러는 남자가 제각기 풍로 한 개씩을 마당 여기저기 내다놓고는, 저마다 부채질을 하면서, 퀴퀴한 냄새가 풍기는 흰 연기를 피우고 있었다.
 
11
정거장 저편 머리의 석탄재를 버리는 곳에서, 버린 석탄재를 뒤져 더러 탄 석탄 부스러기를 주워다, 그들은 불을 이루던 것이었었다.
 
12
풍로 옆에 놓인 찌그러진 남비나 솥에 담겨 있는 것은 태반이 밀가루요, 쌀은 구경하기가 어려웠다. 보리쌀이 간혹 있었으나 많지는 않았다.
 
13
사람들의 얼굴은 어른 아이 남녀 할것없이 개개이 시커멓고, 부석부석하고, 볼은 훌쭉 패이고, 눈은 움푹 들어가고 하였다.
 
14
이렇게도 생겼어도, 이들은 밖에 나와 다닐 수 있는 성한 사람들이었다.
 
15
방에는 병이 나서 이 사람들보다 몇곱이나 흉한 꼴을 하고 누워 앓는 사람도 하나나 둘은 아닐 터이었었다.
 
16
영호는 서울서도 여러 전재민들과 함께 수용소에서 구르면서 한겨울을 나본 일이 있었다. 거리로 나서는 전재민도 많이 보았었다.
 
17
그 뒤, 한겨울과 한봄이 지나고 나서, 이 이리 정거장에 내려 또한 많은 전재민들을 보았었다.
 
18
이리 정거장에서 보는 전재민들은 한봄과 한겨울 전에 서울서 볼 때보다도 옷은 좀더 누더기가 되고, 얼굴은 좀더 볼이 패이고 핏기가 없고 하였었다.
 
19
그것이 다시, 한여름을 지난 지금은, 옷은 옷이라는 이름이 민망할 지경으로 누더기를 벌써 지나쳐 무어라고 형용할 수 없는 것이 되고, 얼굴은 야위다 못해 부황이 났고, 눈만 훨씬 더 들어가고 하였었다.
 
20
이렇게 전재민들은 갈수록 나빠져 가기만 하는 것일 완연히 눈에 띄던 것 이었었다.
 
21
영호는 마당으로 들어서던 발길을 멈추고 멍하니 서서 잠시는 어떻게 할 바를 몰랐다.
 
22
영호는, 여기에 모여 사는 사람들도 어디서 온 전재민인지는 모르나, 이 사람들 역시 고국으로 돌아만 가는 날이면, 동포의 따뜻한 마중과 더불어 우리를 못살게 굴던 왜사람들이 쫓겨가고 없는 대신, 살 집이 있고 농사 할 땅이 있고 하려니 하는 희망을 품고서 고국으로 돌아온 사람들임에 틀림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살던 집과, 농사한 곡식과, 근근이 장만한 세간을 죄다 버리고서 말이었다.
 
23
'그렇다면, 타국으로 흘러가서 간신히 의지하고 살던 집과, 농사하던 땅이며, 농사진 곡식, 애탄가탄 장만한 세간과, 더러는 어머니까지도 해방은 우리에게서 뺏은 것이 아닌가? 그리고서 준 것은 압제 없는 살기와, 살 집과 농사할 땅과의 대신에 입었던 옷을 누더기를 만들게 한 것과, 석탄 부스러기와 밀가루와 쓰러져가는 저 알량한 집과 이것이 아닌가?’
 
24
영호는 문득 이런 생각이 어디서인지 모르게 치밀어올랐다.
 
25
누가 옆에 있으면 한바탕 부르대고 싶게 분하였다.
 
26
그러나마, 고국 사람들이 죄다 고루 이런 곤란을 받고 있는 것이라면 혹은 몰랐다.
 
27
영호가 있는 여관의 단골 손님이라는 그 훌륭하다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해방을 울궈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28
영호는 오선생이 언젠가
 
29
"이 거, 해방 잘못했어! 또 한번 곤쳐 해야겠어!"하던 말이 생각나고, 아마 그 말이 옳았던가보다 싶었다.
 
30
영호는 이리저리 석탄 부스러기가 야속히도 불이 당기지 않는 풍로 옆으로 돌아다니면서, 혹시 여기에 아들과 딸 오뉘를 잃어버리고 찾아온 이러 저 러하게 생긴 사람이 없더냐고 물어보고 물어보고 하였다.
 
31
그들은 열이면 열이 다 말 대껄조차 할 기운이 없다는 듯이 성가신 얼굴을 지으면서, 간신히 없다는 대답일 뿐이었었다.
 
32
영호는 실상 아버지의 종적을 알까 하는 희망에서보다도, 대이수구의 동 네 사람이라도 혹시 있어서 만나기나 할까 하는 생각으로 여기를 둘러본 것 이었었다.
 
33
영호는 오지 않았더니만 못하다고 생각하면서 그곳을 나왔다.
 
34
그 길로 영호는 다시 영자를 찾아갔다. 만난 지도 여러 날이거니와 조금만 들름 길을 하면, 영자를 반갑게 하여 줄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35
영자는 마침 애기를 업고 문간 밖에 나와 있었다. 영자의 주인집은 좋은 적산 집이었었다.
 
36
"영자야?"
 
37
영호가 부르는 소리에 얼른 돌아다보는 영자의 얼굴에는, 아직 마르지 않은 눈물 자국이 있었다.
 
38
"영자, 왜 울었니?"
 
39
영호가 놀라면서 가까이 가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묻는다.
 
40
영자는 새 채비로 울먹울먹 하면서
 
41
"아주머니가…… "
 
42
"응! 아주머니가…… "
 
43
"애기 내려뜨렸다구……"
 
44
"때려주 듸?"
 
45
"응……"
 
46
"어딜? 어떻게?"
 
47
"머리끄등 잡아 내두르구…… 꼬집구…… "
 
48
"……… "
 
49
"난, 하나두 잘못한 거 없는데…… "
 
50
"어떻게 했는데?"
 
51
"안구 일어서는데, 애기가 젖 먹을 영으루 뗄 쓰다가, 애기가 지가 그런 걸, 나더러 애길 잘못 본다구…… "
 
52
"……… "
 
53
영자의 안주인인 그 단속곳은, 가끔 영자에게 애기를 업혀 데리고 여관 집엘 와 놀기도 하고 하였다.
 
54
그러면서, 곧잘 영자를 지청구를 하고, 구박을 하고 하는 것을 영호는 몇번이고 보기는 보았었다.
 
55
그러나, 때리기까지 할 줄은 생각지도 못하였었다.
 
56
분하고, 영자가 애차란 맘으로 하면 당장 영자를 데리고 돌아서겠지만, 그렇게 분나는 대로만 할 수도 없었다.
 
57
영호는 영자더러 조금만 더 참으라고 달래었다.
 
58
그리고는 돌아서면서, 천 원을 가지고 방을 하나 얻고, 나머지로 하꼬방장수를 시작할 밑천이 될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였다.
 
59
천 원을 가지고는 그러나 아무래도 모자랄 것 같았다.
 
60
영호는 어느덧 그날 장사를 마치고 돌아와, 영자와 조그만 손으로 우습게 지어 논 저녁을 먹고 나서, 전등불 밑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저의 모양을 머리 속에 그려보면서, 그러느라고 고개를 숙인 채 천천히 거리를 걸어가고있었다.
 
 
61
바로 그날 저녁이었다.
 
62
부르는 소리에 영호는 깜빡 그새 들었던 잠이 깨었다.
 
63
"영호야! 영호야!"
 
64
여관이 온통 떠나가게 불러대는 건, 맨 나중까지 술자리를 벌이고 앉아, 영호를 지지리 시달려 주어쌌던 6호실의 그 입이 메기 주둥이같이 쭉 째진 눈 딱 부리가 갈데없었다.
 
65
눈 뚜껑이 천근이나 무겁고, 몸은 방바닥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였으나, 그래도 일어나야지 할 수 없었다.
 
66
"이놈, 영호야?"
 
67
발자국 소리를 알아듣고는, 영호가 미처 기척도 하기 전에 미닫이를 열 어제 치면서 고함을 친다.
 
68
빈대머리는 한편 구석으로 쓰러져 코를 골고.
 
69
눈딱부리가, 청요리 접시가 낭자한 방 한가운데로 퍼근히 앉아서는 몸도 잘 가누지 못하면서 혀꼬부라진 소리로
 
70
"이 놈, 영호야!"
 
71
"네?"
 
72
"각시 어떻게 하였어, 각시…… 각시 안 데려와?"
 
73
"전, 어디 가 데려오는지 몰라요."
 
74
영호는 몇번째 하는 같은 대답이다.
 
75
눈딱부리와 빈대머리는 아까부터 색시를 데려오라고 조르고, 소리를 지르고 하였었다.
 
76
손님이 시킬라치면, 가서 색시를 데려오는 소임은 강서방이었었다.
 
77
영호는 제가 한 말대로, 어디로 색시를 데리러 가야 하는 것인지 알 지를못하였었다.
 
78
또, 그런 심부름까지는 하기가 싫었다. 그래서 혹시 강서방이 없든지 할 때면, 영호 저라도 색시를 데려와야 할 줄은 알면서, 그리고 색시를 데려오는 심부름에는 행하에 안팎으로 두둑하여 해롭지 않은 줄은 알면서도, 영호는 강서방더러 물어 발을 터 두려는 생각은 먹지도 않았었다.
 
79
"이놈, 영호야?"
 
80
"네?"
 
81
"각시, 하나 데리와아!"
 
82
"글쎄, 전 모른다고 여쭤두 그러세요."
 
83
"정말 몰르냐?"
 
84
"내애."
 
85
"너, 이놈의 자식 두구 보자."
 
86
"밤두 늦구 했으니깐, 어서 주무세요."
 
87
"나는 각시 없이는 못 잔다. 날 죽여라 날 죽여!"
 
88
영호는 웃는 수밖에 없었다.
 
89
"영호야."
 
90
"네?"
 
91
"각시 없거들랑 느 쥔아주머라두 불러내 오니라."
 
92
"쥔아주머니 주무세요."
 
93
"말 마라, 이 자식…… 바깥쥔 왔지?"
 
94
"안 오셌어요."
 
95
바깥주인은 큰 집에 따로 있고, 이 집 작은집에는 사흘에 한번, 나흘에 한번 다녀가곤 하였다.
 
96
6호실의 이 손님들은, 바깥주인과도 친해서, 오면 안주인 바깥주인 같이 나와서, 술을 먹고 놀고 하였었다.
 
97
"정말 안 왔냐?"
 
98
"안 오셌어요."
 
99
"하, 그 자식이 왔으면, 마누라를 공산주의를 하는 걸 그맀지!…… 영호야!"
 
100
"네?"
 
101
"요새 그 공산주의하는 놈들은 여편네두 공산주이한다지?"
 
102
"전 몰라요."
 
103
"몰라? 너 공산주의 몰르냐?"
 
104
"몰라요."
 
105
"저기, 경상도서랑, 아랫녁(全南[전남])서랑, 들구 일어서서, 사람 죽이구 관공서 부시구, 불지르구, 그리구 이완용이가 일본에다가 조선 팔아먹드끼, 노서아에다가 조선 팔아먹을라구, 그 야단 뀌미는 공산주의 몰라? 즈 여편네를, 친구허구 노놔 데리구 사는 공산주의 몰라? 몰라? 몰라? 물…… "
 
106
마지막, 혀가 아주 꼬부라지더니, 개개 풀린 눈을 스르르 감으면서 그대로 방바닥에 가 쓰러진다.
 
107
영호는 밀창을 가만히 닫아 주고 사무실 방으로 돌아왔다.
 
108
한번 설친 잠은 이내 오려고 아니하고, 조그마한 머릿속에서 여러가지 생각만 구름 피듯 피어올랐다.
 
109
아버지……
 
110
아버지는 아무리 생각하여도, 이제는 세상을 떠난 것으로 여길 수밖에는 별수가 없었다.
 
111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고…… 영호, 저 홀로 이 세상에 있었다.
 
112
영호, 저 자신에 대하여서나 영자한테 대하여서나, 이 세상에는 오직 영 호저 하나만 있을 따름이었다.
 
113
부모도 없고, 영자를 데리고서 저 혼자인 영호는, 그러므로 영자를 데리 고저 혼자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었었다.
 
114
내일 정거장에 나간 길에 방을 하나 얻고, 조그맣게 하꼬방 장사를 내자면 얼마나 들겠는지, 부디 알아보아야 하겠다고 영호는 생각을 하였다.
 
115
(1949년 2월 25일 裡里[ 이리]에서)
 
 
116
〈月刊文學[ 월간 문학] 1972년 9월호, 遺稿[ 유고] 〉
【원문】소년(少年)은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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