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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년(少年)은 자란다 ◈
◇ 또 한번 '묵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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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2월 25일
채만식
1
少年[소년]은 자란다
2
- 11. 또 한번 '묵서’
 
 
3
5월도 며칠이 아니면 다 가는 어느 날 아침, 오서방은 영호 남매를 또 한번 손목 이끌고 인연 많은 그'남대문 정거장’에서 차를 탔다. 이번은 전라도로 내려가는 차였다.
 
4
오선생은 5월 보름날인가 돌아오기는 왔었다.
 
5
와서 사람을 시켜 편지를 적어 보냈었다.
 
6
사연은 대단히 바쁜 일이 있어 찾아보지 못하고 우선 소식만 알려 준다면서, 영만은 두루 알아보았고, 알아본 것으로 미루어 볼진대 지금 있다면 만주에 그대로 있을 것이요, 고국으로 돌아오는 것은 시방 앉아서 졸연히 기약을 하기가 어려운 형편이요 하다는 것이었었다.
 
7
그리고, 그러하니 언제까지고 전재민수용소에서 지나기보다는 이북으로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아 농사라도 하고 있노라면 편리할 도리가 많으려니와, 그러면서 서서히 영만을 만날 기회를 기다림이 좋겠은즉, 그런 상의도 같이서 할 겸 2,3 일 안에 부디 한번 찾아가 만나게 하겠노라고 하였었다.
 
8
오서방은 그만 낙심하여 코가 쑤욱 빠졌고.
 
9
하여커나 그 2,3일을 까맣게 기다렸으나 소식이 없어서 삼청동 그 집으로 찾아가 보았다. 했더니 몇 번 다녀보아서 얼굴을 아는 그 집 주인이며 오선생의 친구요 한 이가 나와서 조용히 오선생이 경찰에 붙잡혀 갔다고 하는것이었었다.
 
10
하도 뜻밖이요 일변 놀라와 잠시는 무어라고 할 말 조차 없었다.
 
11
조금 정신을 차려 언제 그랬느냐고, 쉬이 놓여 나오기나 하겠느냐 묻는 말에, 주인은 고개를 저으면서, 붙잡히기는 그저께 붙잡혔고, 그러나 도저히 졸연 치 않을 터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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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 몰라, 사흘 만에 다시 삼청동을 가보았다. 이번에는 그 집 주인의 아낙이 나와서 역시 같은 말을 하였고, 그 끝에 우리도 어떻게 될는지 모른다고 걱정을 하였다.
 
13
그 우리도 어떻게 될는지 모른다는 말이 마음에 걸리기도 하려니와, 일변 혹시 무슨 소식이라도 오선생의 소식을 들을 것이 있을까 하여, 닷새 만에 또 한번 찾아가 보았더니, 허망하게도 그 집에는 다른 사람이 들어 살고 있었다. 먼저 살던 이가 어디로 갔느냐고 물었으나, 한마디로 모른다는 대답 이었다.
 
14
오서방은 인제는 서울서 더 바랄 것도 기다릴 사람도 없었다.
 
15
예라, 전라도로 가서 농사나 하고 있어 보자. 당장 가서 농사를 시작은 못 한다면, 한 해 이태 남의 집 머슴이라도 살다가…… 절망 끝에, 되는 대로 이런 작정을 하고서 그 알량한 전재민 보따리를 고쳐 꾸려, 세 부자가 갈라지고 안고 하고는 마침내 서울을 뜨게 된 것이었었다. 전라도의 끝 닿은 데까지 가는 목포(木浦)까지의 전재민 무료차표 한 장을 얻어가지고.
 
16
전라도 어디라는 작정은 없었다. 가다가 차 속에서도 물어보고 하여 남들이 좋다고 하는 데서 내리려니 하였다. 언젠가 오선생이 말말 끝에 이야기한 익산(益山)이라는 곳도 머리에 유념은 하였었다. 들음들음이 들은 김제( 金堤) 니 나주(羅州)니 하는 곳도 역시 유념은 하였다. 그렇지만 꼭이 익산이면 익산으로, 김제면 김제로 가려니 한 것도 아니었었다.
 
17
원호소의 사무실 사람이, 전라도 어디까지 차표를 해달라느냐고 물은 때에도 그래서 그냥 전라도라고만 하였다. 사무실 사람은 전재민들이 행방을 정 하지 않고 일쑤 떠나는 줄을 아는지라, 그럼 맨 끝 정거장 목포까지로 해주노라고 하였다.
 
18
오서방이 사람이 웬만큼 재치가 있고 세상 물정을 짐작할 수가 있었거나 영호라도 그런 철을 알 나이가 되었거나 하였다면 그들은 오선생의 편지에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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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북으로 가서 자리를 잡아 앉아 농사라도 하고 있노라면 편리할 도리가 많으려니와……’라는 대문에 십상 주의가 끌리었을 것이었었다.
 
20
농사는 전라도에 덮을 곳이 없다는 말을 하여쌓던 오선생이 그 편리할 도리가 많으려니와라고 하였음에는 정녕 무슨 뜻이 있어서 한 말일시 분명하였다.
 
21
이것을 알아채었다면 영호네는 남쪽을 향하여 전라도로 가는 대신 북쪽을 향하여 38 선을 넘어갔을지도 모르는 노릇이었다.
 
22
영호네는 차 타기를 마치 목숨을 걸고 덤벼야 하는 수천 명 사람의 사 품 에끼여 겨우 뚜껑 없는 곳간차 한구석에 가 끼일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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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은 죄다 깨졌으나따나 객차 명색이 서너 채 달리기는 달렸었다. 그러나 날쌔고 짐 가벼운 사람이 아니고는 천신이 돌아오지 않았다.
 
24
또 꽁무니에는 으리으리한 차칸에 세 채가 달려 있었지만, 그것은 조선을 독립 시켜 주려고 왔다는 사람들이 차칸 한 채에 돌도 타도 셋도 타고 하게 마련인 것이지, 당장 나만 좋으면 그만인 민주주의를 하는 백성으로는 범접을 못하는 딴 세상이었다.
 
25
열시를 떠난다는 차가, 오정도 넘어서야 겨우 슬며시 떴다. 사람을 재다 재다 넘치어 찻간 지붕에까지 허옇게 올려앉혀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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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는 떠나서도 얼마든지 늑장을 부렸다. 가다가는 정거장을 만나면 잊어버 린 듯 눌어붙고. 겨우 생각이 나면 또 한 정거장만 가고.
 
27
서울서 네 시간이면 족하다는 것을 그 갑절도 더 걸려 밤 아홉시에야 겨우 깜깜한 대전역에 당도하였다.
 
28
여기는 정작 전라도로 가는 차를 바꾸어 타야 하였다.
 
29
대전역에는 전라도로 갈 찻손님이 아마 만 명도 더 되는 듯, 정거장 안팎으로 빽빽히 깔려 있었다. 하루에 한 번 있는 전라도로 가는 차가 어제와 그저께 이틀을 떠나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30
어둡기는 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영호네도 대체 어느 차가 전라도로 가는 찬지 그것조차 모르고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고 하였었다.
 
31
조금 있다 목포에서 올라오는 전라도 차가 서울서 가는 찻손님을 처 재고 매달고 하여가지고 들이닿았다.
 
32
맨 쌀보따리였다.
 
33
찻간 지붕에서 내려 던지는 쌀보따리가 더러 터져서 오서방에게는 보기에도 소중한 쌀을 허옇게 땅바닥에 널어놓기도 하였다. 사람들은 상관 않고 그것을 함부로 짓밟고.
 
34
지금 저 차가 도로 전라도로 간다…… 이 말이 한구석에서 나자 사흘 동안 서울서 부터 실어다 붙인 만 명도 더 되는 찻손님은 물꼬를 터뜨린 것처럼 한꺼 번에 그리로 쏠려들었다.
 
35
반대로 전라도에서 온 사람들은 아까 서울서 온 차에로 쏠려들었다.
 
36
차를 서로 바꾸어 타던 것이었었다.
 
37
보퉁이를 지고 안고, 얼른 오서방과 어린 영호 남매가 떠밀려나지를 않고서, 어떤 뚜껑 있는 곳간차 하나에 올라탄 것은 믿기 어려운 희한한 일 이었었다.
 
38
뒤로 연방 사람이 밀려드는데, 맨 구석으로 밀려가 박히기는 하였으나 아뭏든 타기는 탄 것이었었다.
 
39
보퉁이를 의지하여 세 식구가 다붙어 박혀 앉아서 깜깜한 속에서 가끔 가끔 영호야, 아버지, 영자야 하고 서로 부름으로써 떨어져나가는 것을 경계 해야하였다.
 
40
혼잡은 바로 건너편에 있는 서울로 가는 차에서는 일반이었다. 거기에는 쌀 보따리가 사람보다 더 많기 때문에 차라리 더한 편이었었다.
 
41
차는 졸연히 떠나는 동정이 없었다.
 
42
아침부터 온종일 차타기와 사람 틈바구니에 끼여 시달릴 대로 시달린 나머지, 밤도 되고 하여서 이윽고 졸음이 왔다.
 
43
영자가 먼저 영호의 몸에 고개를 기대고 잠이 들었다.
 
44
조금 있다 영호도 잠이 들었다.
 
45
두 시간도 더 지난 듯싶은데 차는 꿈쩍도 하려고 아니하였다.
 
46
사람은 숨이 막히게 들어차 갑갑은 하고, 그러다 목이 마르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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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서방은 걱정스러 못했다. 이, 옴나위를 못하게시리 꽉 들여 짜인 속을 비 집고 나갈 일이 기가 질렸다.
 
48
처음에는 그래서 참으려니 하였다. 그러나 차차로 목이 타 들어오고 곧 미칠 것 같았다.
 
49
말을 이르고 나가려고
 
50
"영호야?" 하고 가만히 불러보았다.
 
51
대답이 없는 것이 잠이 한참 곤한 모양이었다.
 
52
'고단하기도 하겠지! 어린 것들이……’
 
53
이런 애차란 생각을 하면서 몸을 일으켜 가지고 더듬어나갔다.
 
54
"이건 누구여?"
 
55
단박 그 앞엣 사람이 지청구를 하던 것이었었다. 좁은 속에서 비켜 주기가 괴로울 뿐만 아니라 따개꾼을 또한 경계하자니 그럴밖에 없었다.
 
56
"죄끔만 비낍시다. 목이 말러서…… "
 
57
오서방은 빌 듯하면서, 비비 뚫고 나갔다.
 
58
사람마다 눈치요 지청구였다.
 
59
땀을 뽑아가며 겨우겨우 밖으로 나왔다. 그만해도 살 것 같았다.
 
60
물을 찾기가 한바탕 일이었다.
 
61
홈과 홈 사이의 찻길 복판마다 열차를 씻기도 하고 세수물도 넣고 하느라고 수도가 박혀 있었다.
 
62
오서방은 그러나 그런 속내도 몰랐거니와 어둡기까지 하여 어둔 속을 지 벅 거리고 다니며 찾아야 하였다.
 
63
차가 서 있는 홈에는 여자들이 가지고 들어와 파는 막걸리도 있기는 있었다.
 
64
5 원이면 그놈 한 사발 들이켤 수가 있으나, 5원 돈을 그렇게 함부로 쓸 돈은 없었다.
 
65
아이들이 파는 물도 있었다. 눈알만한 고뿌로 50 전이었다.
 
66
갈증이 개이도록 실컷 먹자면 대여섯 고뿌는 먹어야 하겠으니 그런 낭비를 할 수가 없었다.
 
67
홈을 몇 개나 건너고 하면서 찾아다니다가 한귀퉁이에 불이 켜져 있는 굉장히 큰 집(機關車庫[기관차고])를 만났다.
 
68
들여다보니 수도가 있었다.
 
69
거기 사람한테 물을 좀 먹겠노라고 몇번이고 허리를 굽실거린 후에 꼭지를 틀고 물을 먹기 시작하였다.
 
70
마악 몇 모금 먹었을까, 그러자 기적소리가 요란히 울리었다.
 
71
이크 이거 큰일났다고 허겁지겁 뛰어갔다. 두 번이나 고꾸라지면서.
 
72
음식 장사하는 사람이 엉켜질려 있는 것이 아니었다면 차가 떠나고 있는 홈도 얼른은 찾아내지 못하였을 것이었었다.
 
73
머리를 한 방향으로 두르고, 홈 양편에 가 섰는 두 열차 가운데 방금 차하 나가, 높은 기적 소리와 함께 시르르 움직이었다. 이번의 기적이 이 차의 떠난다는 기적이었었다.
 
74
그 움직이는 차가 방금 오서방이 물을 먹으러 내려왔고, 영호 남매가 짐과 함께 거기에 타고 있고 그리고 전라도로 가고 하는 차라는 것을 오서방은 의심 하기보다는, 대체 그게 어느 칸이더라 하고 잔뜩 급한 마음에 그것에만 정신이 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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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둥거리는데, 뚜껑 있는 곳간차 하나가 정녕 그럴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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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다음 정거하는 정거장에서 내려서, 찾아 타지.’
 
77
이런 의사는 난 것이 있어서 부여잡고 매달렸다.
 
78
오르내리는 층층대가 있고 한 객차와는 달라 곳간차는 올라타기가 힘이 들었다.
 
79
"우리 애들, 그 안에 있어요! 나 금새 내린 사람여요, 물 먹으러 가느라 구…… "
 
80
오서방이 하마 우는 소리로 그러면서 매달려 질질 끌리는 것을 입시에 있던 사람이 끌어올려 주었다.
 
81
안에 아이들이 타고 있다고, 방금 물 먹으러 가느라고 내린 사람이라고 하였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끌어올려 주었기망정이지, 조금만 그대로 더 질질 끌려 갔다면 팔을 놓치면서 구르는 찻간 밑으로 휩쓸려 들어가고 말았을 것 이었었다.
 
82
이 죽을동살동 모르고 붙잡아 탄 차가 전라도로 가는 차가 아니요, 도로 서울로 가는 차라는 것을 오서방이 알고서 불에 덴 소처럼 날뛴 것은 회덕( 懷德) 도 지나고 그 다음의 신탄진(新灘津)을 차가 뜨고 나서였다.
 
83
이리하여 윤서 오서방은 또 한번 그의'묵서’짓을 한 것이었었다.
【원문】또 한번 '묵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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