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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년(少年)은 자란다 ◈
◇ 이상한 민주주의(民主主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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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2월 25일
채만식
1
少年[소년]은 자란다
2
- 10. 이상한 民主主義[ 민주주의]
 
 
3
점심 상이 나왔다.
 
4
말 그대로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부연 입쌀밥에 고깃국에 구경도 못 하던 여러 가지 젓갈에, 그리고 물같이 연하고 고기보다 더 맛이 있는 배추김치에…… 이런 점심이었다.
 
5
간도에서 나서 간도에서 자란 영호와 영자에게는 이런 밥을 먹기는 오늘이 생후에 처음이었었다.
 
6
순 입쌀밥도 한번도 안 벅어본 것이 아니었었다. 고기도 맛은 더러 보았었다.
 
7
김치도 맛 없고 질기나따나 먹기는 늘 먹었었다.
 
8
그러나 이렇게 세 가지를 함께 갖추어 놓고, 겸해서 그동안 먹던 것과는 어림도 없이 맛이 좋은 것을 먹어보기는 처음이었었다.
 
9
이래서 고국이 ── 조선이 좋다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다.
 
10
오선생이 같이 먹으면서, 자꾸만 더 먹으라고 권유하고 하여 양에 과 하도록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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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났더니 폭 취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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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볼일인지는 모르나 오선생은 무척 바쁜 모양이었고, 날새 떠난다고 하던 이가, 그리고 떠나기 전에 영호네가 있는 전재민 원호소에 들르 마고 하던 이가, 며칠이 몇번을 지나도 감감소식이요, 삼청동 사처로 찾아가도말 날 수가 없고 하더니, 섣달 그믐이 임박한 하루 날에야 퍼뜩 찾아왔다.
 
13
내일 떠나겠노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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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쯤 돌아오느냐고 물은즉, 한 달 가량 기다리라면서, 혹시 더 늦더라도 염려 말고 있으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 끝에 얼마 전에 김일성이 평양에 들어왔다는 소식이 있으니, 가면 아뭏든 알아볼 도리가 스스로 있을 터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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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 그렇게 약조를 하고 떠난 오선생은 그러나 약조한 한 달이 지나고, 다시 두 달, 그리고는 석 달이 되어오는 3월 그믐에야 사람 대신 편지 한장이 와 떨어졌다.
 
16
3월 초순에 오선생이 해주에서 주소도 없이 띄운 편진데, 남북 우편물을 교환 한다는 개성으로 와서 묵다가 그제서야 부전이 여러 장 붙어 가지고 가까스로 분전이 된 것이었었다.
 
17
편지나마 온 것이 반가왔으나, 사연인즉은 지극히 간단하고 또한 별다른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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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볼일이 더디어져 돌아가지 못하였는데, 아직도 좀더 있어야 되 겠노라는 것과, 영만의 거취에 대하여는 편지로 쓰기에는 매우 장황하여 만나서 이야기를 하려고 하니, 그때까지 기다려 주기를 바라노라는 것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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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궁금거리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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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로 쓰기에는 이야기가 장황하다 하였으니 무슨 뜻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죽었다면 죽었다고, 살았으면 살았다고 우선 그것만이라도 알려 주었어야 할 것인데, 그러면 혹시 적확한 거취를 알지 못한 것이나 아닌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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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또 아직 적확한 것을 알지 못하였으면 알지 못하였노라고라도 편지에는 쓸 수는 있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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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생각은 하여 보아도 모를 일이요, 궁금증만 더할 따름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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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히 기다리는 동안 다시 4월이 선뜻 지나고, 5월…… 5월이 또다시 그믐을 바라보려고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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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날과 날만 거듭 되풀이하였지 세상은 아무것도 신통한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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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황도 없고 알 줄도 모르고 하는 전재민들이 보고 느끼기에도 이 몇 달동 안 서울은 별별 일이 다 생기고, 무시무시하게 시끄럽고, 그 사품에 조선은 이윽고 좋지 못한 징조가 드러나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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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백성과는 남이 되어 정치싸움에만 정신이 팔려 정치의 원 대두리인 백성이 무엇이 되어가는지를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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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림과 추위에 시달리고, 마음 둘 곳을 가지지 못한 백성은 반 곽을 다 그 어도 담배 한 대를 붙이지 못하는 국산(國產)의 성냥을 팽개치면서 이 것이 해방이요 독립이냐고 두런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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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찌는 것은, 집이야 물자(物資) 따위를 소위 불하받아 팔아먹는 장사치들과 이 장사치들이 들여미는 뇌물로 치부를 하는 군정의 벼슬아치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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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도가 일본 정치 때를 능멸하도록 높아진 것은 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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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는 사이가 차차로 멀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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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소련과 영국 세 나라의 외상(外相)이라더냐가 모여, 조선을 신탁통치라는 것을 하기로 했다든지. 이 소리가 들리자, 우익에서는 그것은 조선을 보호국을 만드는 수작인즉 받을 수가 없다 하여 들고 일어서서 반대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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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가 하면, 좌익에서는 보호국을 만든 것이 아니라 독립을 도와주자는것이니 받아야 한다고 찬성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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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가지고 양편에서는 서로 대고 네가 나라를 팔아 먹는 역적이다, 네가 나라를 망치는 국적이다 하면서 욕하고 뜯고, 치고 받고, 죽이고 발기고하느라고 메마른 땅을 피로써 물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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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독립시켜 줄 채비로 임시정부를 세우게 하는 상의를 한다고 미국과 소련의 대표가 서울서 만나 미소공동위원회라는 것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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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동위원회에서 미국은 조선을 미국과 미국에 친한 조선 사란에게만 좋도록 매만질 수 있는'미국식 조선’을 판 꾸미려고 고집을 부리고, 소련은 또 소련대로 조선을 소련과 소련에 친한 조선 사람들에게만 좋도록 매만질수 있는'소련식 조선’을 판 꾸미려고 고집을 부리고. 그러느라고 의견이 맞지 않아 두 달 장간이나 승강을 하다가 5월 초생에는 그만 해산을 하여 버렸다.
 
36
미소공동위원회가 깨뜨려지고 미국과 소련이 등을 지고 싹 돌아앉음을 따라, '이승만 박사’와 '박헌영 동무’도 등을 지고 돌아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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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부터 좌익 사람들은 미국 군정을 반대하며 방해한다는 죄로 연방 조선 사람 순사에게 붙잡히어 일본 정치 때에 많이 다녀본 감옥소 출입을 새 채비로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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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이에 조선 사람은 민주주의라고 하는 썩 편리하고도 쓸모 있는 물건을 배웠고, 그것을 묘리 있이 울궈먹기에 소홀치 아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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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지에서 돌아와 아무렇게도 하는 도리가 없어 원호소의 신세를 지며 구 중중한 수용소에 누워 추위와 주림과 실망에 떨고 있는 전재민들에게도 민주주의 란 말은 귀가 아프게 들려왔다.
 
40
전재민으로 고국에 돌아와 제일 많이 본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그들은 전단( 삐라) 과 대소변이라고 대답할 것이요, 제일 많이 들은 것이 무엇이냐 고 물으면, 민주주의라고 대답하기를 서슴지 아니할 것이었었다.
 
41
민주주의는 참 좋은 것이라고 세상에서는 말하였다. 그리고 조선은 시방 민주주의로 되어 있고 앞으로 더욱 민주주의로 되어나가리라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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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모르는 백성들 ── 이를테면 전재민들이 보기에는 민주주의 란건, 사람사람이 당장 저 좋을 대로만 하면 그만이요, 뒤엣일은 아랑곳을 않는다…… 이것이 민주주의였었다.
 
43
이런 요술방망이 같은 것이 민주주의요, 그렇기 때문에, 가령 연설을 한마디만 하는 자리에서도 민주주의란 소리는 백 번도 더 찾는 훌륭하다는 양반네 ── 지도자들이 백성들에게 시치미를 뚝 따고 서서 거짓말을 하여도 상관이 없는 모양이었었다. 당장 그 자리에서만 좋으면 그만이니까.
 
44
또 민주주의이기 때문에 적산관리인은 원료와 기계를 떼어 뒷줄로 팔아 먹어도 상관이 없고, 군정청 관리는 브로커에게 잇권을 주고서 뇌물을 받아 먹어도 배탈이 나지 않는 성싶었다.
 
45
순사는, 경찰은, 백성더러 꼬라, 빠가 하던 대신'이 자식, 저 자식’ 하면서 딱딱거리고, 따귀 때리고 붙잡아다 매 때리고, 미국 총 땅땅 쏘고, 간혹 사람도 죽이고 하여도 민주주의이기 때문에 상관이 없고.
 
46
미국의 통역이나 순사가 해방 때에 매맞은 친일파를 위하여 분풀이를 하여주는 것도 민주주의 때문.
 
47
조선 사람과는 불공대천지 원수라고까지 일컫는 친일파가 얼마든지 군정청의 높은 벼슬과 경찰의 요직에 앉아 세도를 부리고 재물을 모으고 하는 것도 민주주의의 덕분.
 
48
그리고 불 안 나는 성냥을 만들어 팔아먹는 것도 당장 나만 좋으면 그 만이니까 민주주의요, 서울 전체를 변소를 만드는 것도 당장 나만 좋으면 그 만이어서 한 노릇이니 민주주의인 모양이었다.
【원문】이상한 민주주의(民主主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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