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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년(少年)은 자란다 ◈
◇ 오선생(吳先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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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2월 25일
채만식
1
少年[소년]은 자란다
2
- 吳先生[오선생]
 
 
3
1945년 8월 15일……
 
4
조선의 역사에 기록이 될 이날을 만주 북간도(北間島)의 궁벽한 촌에서 살고 있던 영호랑은 그날은 깜빡 모르고 지냈다.
 
5
이튿날에야 알았다.
 
6
영호는 국민학교 우급(優級 : 高等科[고등과]) 일학년에 다니고 있었다.
 
7
방학 동안이어서 놀고 있었는데, 마침 그날(8월 16일)이, 번(番)이 돌아온 날이라 영호는 아침 일찌기 학교에 가 같은 반 동무들과 함께 운동장의 풀을 매었다.
 
8
이날 학교의 당직 선생은 오(吳)선생이라고 영호의 반 담임선생이다.
 
9
으례 아이들보다 먼저 직원실에 나와서 있어야 할 당직 선생 오선생이 웬일인지 보이지를 않았었다.
 
10
학교지기 최서방의 말이 그저께 오후에 촌공소(村公所)에 볼일이 있어 천 교령( 天橋嶺) 엘 갔는데, 어제는 아마 날이 저물어 돌아오지 못했나 보다고, 이따라도 오기는 올 것이라고 하였다.
 
11
아이들은 그저 그런가보다 하고 장난 반 일 반 운동장의 풀을 매었다.
 
12
열시나 되었을까, 아이들이 한 차례 풀을 매고 나서 그늘진 교실 뒤꼍으로 모여 앉아 지껄이며 쉬고 있는데, 그러자 오선생이 돌아왔다.
 
13
와도, 그러나 예사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었다.
 
14
손에다 조그만한 기를 들고 양복저고리는 벗어서 한 손에 들고, 모자는 어떻게 했는지 맨머리로…… 이런 오선생이 앞참을 서 손의 기를 연방 내 두르면서 무어라고 고함을 지르면서, 흡사 미친 사람처럼 그러면서 허둥지둥 달려오고 있었다.
 
15
그 뒤에는 동네 사람들이, 어른과 여인네랑 아이들이랑 한떼가 따라오고있고.
 
16
아이들은 놀랐다.
 
17
영호는 아이들과 함께 우우 마주 쫓아나갔다.
 
18
오선생은 허둥거리면서 학교 정문으로 들어섰다.
 
19
"얘들아! 얘들아!"
 
20
오선생은 숨이 턱밑까지 차 헐헐 가빠하면서, 일변 손짓 몸짓 고갯짓을 하면서
 
21
"조선이, 우리 조선이, 얘들아, 독립이 됐단다. 독립이 ! 우리 조선이 독립이 됐어요!…… 일본이, 일본 천황이 항복을 했어. 전쟁에 졌어. 그리 구우리 조선이 독립이 됐어, 독립이! 우리 조선이!"
 
22
벌겋게 상기된 시꺼먼 얼굴에 종작할 수 없는 흥분의 표정을 띠고, 여승 미친 사람 납뛰듯이 소리소리지르면서, 그러다 두 팔을 기 얼러 번쩍 쳐들고
 
23
"만세에! 조선독립 만세에!" 하고 들이 목청이 터지라고 외치는 것이었었다.
 
24
따라온 동네 사람 가운데 몇 사람이 오선생에 화하여 만세를 불렀다. 그러나 동네 사람들의 많이와 아이들은 뻔히 보고만 있었다.
 
25
영호랑 아이들은 무슨 영문인지를 몰랐었다.
 
 
26
오선생은 별명이 동상(銅像)이었다.
 
27
몸집이 크고 키도 크고 넓죽한 얼굴이 수먹칠을 한 것처럼 검고, 그런 바탕의 얼굴이 웃을 때나 성이 났을 때나 매양 한 표정이요 해서 동상이라고 미상불 잘 진 별명이었다.
 
28
오선생은 일계(日系 : 日本人[일본인])를 질색으로 싫어하였다.
 
29
현공서(縣公署)에서 일본 사람 시학(視學)이 오든지 하면 마지못해 인사 나하는 시늉 하고는, 같이 휩쓸려 이야기라도 하고 하기를 되도록이면 피 하였다.
 
30
영 할수할수 없는 경우가 아니면 일본말을 쓰지 아니하였다.
 
31
조선 사람끼리 만나서 일본말로 지껄이고 하는 것을 보면
 
32
"제엔장 언제적버틈 저대지들 충신인구?" 하고 혼잣말로 빈정거리곤 하였다.
 
33
그런 일본말을 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오선생은 일부러 조선말로 말을 하고, 창씨(創氏)한 일본 성 대신 조선성을 부르고 하였다.
 
34
가령
 
35
"가네다 센세이 오하요오 고사이마쓰." 할 것을
 
36
"김 선생, 밤새 안녕허슈."
 
37
이렇게.
 
38
또, 누구가 오선생더러
 
39
"구레상." 하고 일본성으로 부른다치면 말썽이 될 자리 말고는 으례껀
 
40
"나는 아직, 일본으로 양잘(養子[양자]) 못 갔는데…… "하든지 혹은
 
41
"구레( 求禮)? 곡성(谷城)은 어떻구?" 하고 농담으로 받아넘기든지 하였다.
 
42
학교에 입바른 선생이 하나가 있어서, 그렇게 창씨한 성을 쓰기가 창피한 사람이, 어째서 창씨를 수속은 하였으며, 이력서랄지 관공서에다 내는 문서에는 자기 손으로 창씨한 성으로 쓰고 한단 말이냐고 오금을 박았다.
 
43
오선생은 껄껄 웃으면서
 
44
"그것이 나라 망한 백성으루, 나 같은 용렬한 인간의 양면 생활( 兩面生活) 이 아니요 ?…… 용기가 없어 정면으로 대고 반항은 못하구, 그러면서 오기는 있어 아주 굴복하기는 싫구. 하니깐, 할 수 없이 겉으로는 복종을 하면서 속으루만 눈을 흘기는 것이 아니요 ? 보는 데서는 네네 굽실거리구, 뒷방에 앉아서 주먹질을 하는…… 제엔장맞일!" 하고는 또 한번 허전한 소리로 껄껄 웃었다.
 
45
성이 같은 오씨요, 본관(本貫)도 같고 하대서 영호의 아버지 윤서 오서방( 吳允西[ 오윤서])과는 서로 종씨(宗氏) 종씨 하면서 가까이 지냈다.
 
46
오생원은 술을 좋아하기 때문에 집에서 가끔 서속으로 술을 담갔다.
 
47
새로 술이 나면, 오서방은 잊지 않고 오선생을 청하였다. 오선생도 술을 무척 좋아하였다.
 
48
둘이는 틉틉한 막걸리를 맛있게 먹었고, 먹어 거나하면 오선생은 곧잘 이런 말을 하였다.
 
49
"왜사람이 보기가 싫여 이 만주 구석으루 피해 왔더니, 예두 왜사람의 세 상이요 그려!…… 왜사람은 차라리 둘째요. 오나가나 그 왜 사람 질 죽자꾸나 하자구 드는 조선 양반들! 에이, 나는 인전 노령(露領)으루나 도망을 뺄까 보우."
 
50
오선생은 혼잣몸으로 와서 학교의 숙직실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영호의 집에서는 가끔 오선생을 청하여다 끼니도 대접을 하였다.
 
51
농사가 순전히 서속 농사라, 누구든지 그리고 사철 조팝을 먹었다. 명절 때에도 입쌀밥은 여간한 집이 아니고는 먹기가 어려웠다.
 
52
"진지 대접을 한다구 모셔다 이렇게 강조팝만 자시게 해 어떡합니까."
 
53
밥상을 들여오면서 영호의 어머니가 걱정을 한다치면 오선생의 대답은 늘 한가지 였다.
 
54
"할 수 없지요. 나라 뺏긴 죄거니 하면 그만 아닙니까 제엔장맞일!"
 
55
그리고는 밥을 먹으면서 오서방더러 하는 말이었다.
 
56
"그 좋은 땅, 왜사람들 다아 내주구서 이 삭막한 만주 구석으루 쫓겨와, 이 알량한 걸 밥이라구 먹구 살아야 합니다그려 !…… 종씨 ? 기름 자르르 흐르는 부연 입쌀밥 생각 안 나시우? 왜사람한테 뺏긴 입쌀밥. 입안에 회 회감 기는 입쌀밥 말이요.……제엔장맞일 것, 나는 그 기승스럽구 아니꺼운 왜 사람들 말끔 다 내쫓구서 우리끼리만 좀 살아보았으면 단 하루를 살다 죽어두 원이 없겠어! 제엔장맞일!"
 
57
오선생은 젠장맞을 소리를 하도 잘 하여서 별명을 젠장맞을 동상이라고도 하였다.
 
58
조선어 시간에 아이들이 해찰을 부리거나 또는 열심치 않는 아이가 있든지한 다치면
 
59
"제엔장 맞 일…… 장차 씨여먹을 날이 있을는지 없을는지 그건 모르겠다만 서두 조선놈이 조선말 조선글은 알아두어야 할 거 아니냐?" 하고 나무라는 것이 아니라 한탄을 하던 것이었었다.
 
60
그리고 그 끝에 이런 말도 하였다.
 
61
"얘놈들아, 조선서는 벌서버틈 조선어 과정을 싹 없애버리구 기역 니은이나 가르치는 줄 알아? 이 만주서두 어느 날 어느 시에 벼락같이 조선어 과정을 폐지시킬지 누가 아니? 그땐 제발 배우구퍼두 못 배운단다!"
 
62
여름에는 흰 양복 한 벌로, 겨울과 봄 가을은 검정 양복 한 벌로, 그 해어지고 낡아빠진 양복 두 벌을 가지고 사철을 지내고, 못가는 데 없이 입고 나가고 하면서 죽어라고 협화복(協和服)은 안 입었다.
 
63
졸업식이랄지 그 밖에 학교에 무슨 예식이 있을 때면, 남은 일제히다 협화 복으로 차린 총중에서 유독 오선생의 그 깃 우그러지고 넥타이는 배배 꼬이고 한 갈른 양복 맵시라니, 우습고도 어색하기 다시 없었다.
 
64
교장 선생이 민망하다 못해 한번 넌지시 협화복을 해 입으라고 권고를 하였더니, 오선생은 머리를 득득 긁으면서
 
65
"고향의 자식 새끼들 멕여 살릴라, 내 목구멍에 풀칠할라, 옷 해 입을 여유가 있어야죠 제엔장맞일!" 하는 말로 대답을 하였다.
 
66
협화복을 안 입을 뿐만 아니라, 협화회(協和會)에도 들지 아하니였다. 핑계는 그런 일은 젊은 사람들이 나서서 할 일이지, 나 같은 늙은이는 참례를 한 대야 도리어 방해만 된다는 것이었었다. 오선생은 사십이 넘기는 넘었었다.
 
67
오선생의 그러한 말 본새와 행동이 자연 현(縣)의 감독 당국에 들어가지 않을 리가 없었다.
 
68
현의 학무 당국이나 경찰에서는 오선생을 불온(不穩)한 인물로 인정은 하였다. 오선생은 그러나 농판이요 탁객(濁客)으로도 인정을 받았었다.
 
69
농판이요 탁객인 바에는, 약간 좀 불온하더라도 무슨 일을 저지르거나 해를 끼치거나 할 위인은 아닌 것으로 그들은 안심을 하였다.
 
70
이를테면 못난이 처접을 탔던 것인데, 못난이의 처접을 탔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진작 벌써 면직을 당하고 감옥살이까지도 하였을는지 몰랐다.
 
71
일변 학교에서는 교장 선생이 오선생을 퍽 아껴하였다.
 
72
만주의 국민학교에 있어서 자격이 훌륭한 교원을 얻어 만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73
사범학교 출신은 고사하고 연습과를 나온 을종 훈도(乙種訓導)의 면허가 있는 이도 열에 하나가 귀하였다. 대개가 제바닥에서 우급국민학교 6년 을수업한 대용교원과 조선서 굴러온 겨우 면무식의 보조교원이었다.
 
74
오선생은 그런데 사범학교 출신이요, 갑종 훈도의 면허가 있고, 20년 이나교원 노릇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만주로 오기 전 몇해 동안은 전라도( 全羅道) 어떤 고을의 큰 국민학교에서 교장사무취급(校長事務取扱)이라고 대리 교장까지 지낸 경력이 있었다.
 
75
그렇게 자격과 실력이 넉넉하여, 교수가 아주 능란하였고 겸해서 학교를 운영하는 안팎의 일반 사무에도 여간만 솜씨가 좋은 것이 아니었다.
 
76
교장 선생은 그래서, 오선생을 웬만한 일에 대하여는 간섭을 하지 않았고, 또 한편으로는 장차 마땅한 학교의 교장 자리에라도 옮겨갈 수 있도록 주선도 하고 하였다.
【원문】오선생(吳先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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