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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년(少年)은 자란다 ◈
◇ 지워버린 고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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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2월 25일
채만식
1
少年[소년]은 자란다
2
- 지워버린 고향
 
 
3
흥분은 밑으로 갈앉고 불안과 술렁거림만 나날이 더하여 가는 가운데 한 주일이 지나고……
 
4
석양 무렵이었다.
 
5
영호의 아버지 오서방, 영호의 어머니, 영호 이렇게가 마당의 집그늘에 둘러앉아 서속을 털고 있었다. 양식이 떨어져 오늘 밭에 나가서 먼저 익은 걸로 풋서속 목쟁이를 한 짐 쳐온 것이었었다.
 
6
여덟살배기 영자까지도 집안일을 거들어야 하는 것이어서 조그마한 등에다 커다란 애기를 업고는 비척거리듯 오락가락하면서 재우고 있고.
 
7
영호의 아버지는 마흔다섯이라는 나이보다 훨씬 더 늙어 아마 50 도 넘어 보였다. 억센 노동, 고생 그리고 울화 이런 걸로 인하여 가난한 농민들 이 항용 그러하듯이 오서방도 그와 같이 겉늙은 것이었었다.
 
8
머리터럭이 반도 더 희었다.
 
9
30 년 농사일을 해먹기에 볕에 타고 비바람에 씻긴 얼굴은 바위처럼 검고 거칠었다.
 
10
굵고 잔주름살이 가로 세로 패이고, 성기디성긴 위아래 노랑수염은 없느니만 못하게 근천스러웠다.
 
11
얼굴 바탕은 영호 남매가 아버지를 닮아가진 꼭 그대로였다. 귀나지 않고 너 부스 름한 얼굴이 복판이 조금 죽고, 코가 나찹고.
 
12
그러나 영호 남매는 그렇게 너부스름한 얼굴이 복판이 조금 죽고, 코가 나 찹고 그래서 유순해 보이기는 하여도 영악스럽지나 않을 뿐이지 똑똑치 못한 얼굴인 것은 아닌데, 그것이 오서방에서는 유순한 것이 지나쳐 어리 뚱하니 마치 잠을 덜 깬 그런 얼굴이었다.
 
13
미상불 오서방은 사람이 좀 얼뜬 편이었다.
 
14
성질이 얼뜨기 때문에 모든 일상에도 몸과 수족놀림이 굼뜨고 시원시원하지가 못하였다.
 
15
그런 사람이 이 근년은 가는귀조차 먹어놓아서 한결 더 얼뜨고 굼뜨고 하 여졌다.
 
16
그러나 그렇다고 그가 천치라거나 또는 게으름뱅이라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17
다부지질 못하고서 사람이 무름하고, 일손이 재빠르지가 못하고 할 따름이지 정확하고 견실하기는 다시 없었다.
 
18
영호의 어머니는 남편 오서방에다 대면 아주 젊었다.
 
19
나이 서른다섯인데 아이를 셋이나 낳고, 지지리 고생은 하면서도 타고 난 바탕이 있어 그런지 오히려 나이보다도 젊어 보였다. 그래서 모르는 사람 은영 호의 어머니를 며느리로 알고 더러 실수하는 수가 있었다.
 
20
영호의 어머니는 두번째, 소위 가다오다 만난 아낙이었다.
 
21
윤서 오서방의 고향은 충청북도 청주(淸州) 외촌 '대머리’라는 동네 였었다.
 
22
오서방은 양반이었다.
 
23
그러나 오서방이 양반이라는 것은 오서방이나 오서방의 아버지나 오서방의 할아버지가 옥관자를 붙인 정승 판서를 지냈대서가 아니었다. 족보에, 저 4 대조 누가 무슨 판서를 지내고, 5대조 누가 무슨 벼슬을 지내고, 몇대조 할머니가 효부(孝婦)로 나라에서 정선가자를 타고 하였다는 따위가 씌어 있고, 동시에 오서방의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아전을 다녀먹지 않았다는 것, 즉 원님 앞에서 하정배(下庭拜)를 하며 소인(小人)이란 소리를 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그래서 가로되 오서방은 양반인 것이었었다.
 
24
양반은 양반인데, 그러나 양반 행세를 할 거리는 아무것도 없었다.
 
25
조선의 가난한 농민의 자작하는 땅이 마치 무엇이 요술을 부리는 것처럼 동양척식회사( 東拓會社[ 동척 회사]) 니 일본 사람 농장이니 조선 지주에게로 연방 넘어가버리는(兼併[겸병]이 되는) 그 요술을 오서방네도 면할 수가 있었던 것이 아니어서,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열다섯 마지기의 논과 몇 천평 짜리 멧갓은 오서방의 아버지의 말년에 벌써 일본 사람의 것이 되고, 오서방은 송곳 하나 꽂을 땅이 없는 알짜 소작인이었다.
 
26
게딱지 같은 오막살이에서 살고. 해동이 되면 입었던 핫것에서 솜만 뽑고 겹옷으로 입고, 다시 여름이 되면 안을 뽑아버리고 홑것으로 입고. 가을 잠깐 한때와 보리가 나는 여름에만 밥이라고 하는 것을 먹지, 사철을 죽이 아니면 굶어 사는 소위 찢어지게 가난한 농민이었었다.
 
27
어렸을 적에 한 3년 서당에를 다닌 것이 성명 석 자를 그릴 줄 아는 것만 겨우 처지고서 꿍꿍 농사할 줄밖에는 아는 것이 없는 판무식꾼의 농 투성이 였었다.
 
28
일찌감치 열여섯에 같은 동갑이요 족보에 정승 판서가 있고 아전을 다녀 먹지 아니한 것으로써 마찬가지로 양반집이요 한 규수를 맞아 장가를 들었다.
 
29
윤서 오서방은 도대체 아낙의 인물복을 남달리 타고 났고, 그 아낙의 인물 복으로 인하여 재앙을 입으라는 팔자였던 듯싶어서, 시방 사는 두번째의 아낙인 영호의 어머니도 인물이 무던하였거니와, 첫장가를 간 아낙이라는 게인 물이 아주 똑떨어졌었다.
 
30
열아홉에 아들을 낳아 그가 영호의 배 다른 형 영만이었다. 공산당의 빨치산을 따라간…… 윤서의 아낙은 자나깨나 가난한 한탄이요, 남편이 사람 변변치 못한 타박 이었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양복 입고 하이칼라하고 똑똑하고 돈 있는 사람과 살아보았으면 조옴이나 즐거우랴 하는 것만 생각하였다.
 
31
스물여덟 살, 아들 영만이 열 살 되던 해 봄에 마침내 그 양복 입고 하이 칼라하고 똑똑하고 돈 있고 한 사람을 따라 봇짐을 싸고 말았다. 돈은 얼마 큼 있으며 똑똑하기는 얼마큼 똑똑한지는 모르되, 양복을 입고 하이 칼라( 머리) 를 한 것만은 분명한 타관에서 굴러들어왔던 읍내 이발소의 이발 직공 이었었다.
 
32
영만을 낳고 나이 20이 되고 하면서부터 종종 누구와 배가 맞았네 어쨌네하는 소문이 돌다가는 갈앉고 돌다가는 갈앉고 하였다. 그러다가 마지막 그 이발소 하이칼라 서방님과의 소문이 퍼지던 끝에는 필경 보따리를 싸게까지에 이르렀던 것이었었다.
 
33
"묵서한테는 과분해!"
 
34
동네 사람들이 곧잘 그런 소리를 하였었었다. 묵서란 윤서가 위인이 묵처럼 무르대서 난 별명이었었다.
 
35
그러다가 필경 보따리를 싸는 거조를 내고 말자 사람들은
 
36
"그러면 그렇지, 묵서 주제에 그런 여편네가 과분했구말구." 하고 조롱을 하였다.
 
37
동네가 온통 오가의 떼족이었다.
 
38
여자를 괘씸히 여기거나 윤서를 동정하는 것이 아니요, 위인이 오죽 못 났으면 계집을 뺏기느냐고, 양반의 집안에서 도무지 문중이 창피해 못할 노릇이라고 비웃고 손가락질하고 하였다.
 
39
윤서는 일 그것이 물론 부끄러웠다. 양반이기 때문에는 더욱 부끄러웠다.
 
40
그런데 겸하여 문중과 동네 사람들이 그러는 것이 심히 분하였다. 기 집 이 몹쓸 기집이지 내가 무엇이 잘못이냐는 생각으로.
 
41
부끄런 생각과 양반의 체면과 분하고 창피한 생각과 그리고 여자에 대한 원한을 서리서리 가슴에 서리고.
 
42
'내가 죽는 날까지도 고향에는 발길을 들여놓지 아니하리라.’
 
43
'자식더러도 고향을 찾지 말라고 가르치고 유언하리라.’ 하는 결심으로, 하룻밤, 열 살에 어머니를 생이별한 영만을 이끌고 고향을 떠났다. 그것이 시방으로부터 열여덟 해 전, 무진년(戊辰年 : 1928년) 늦은 봄이었었다.
 
44
'만주가 농사하고 살기가 좋다는데. 또, 만나 창피할 아무도 없고……’
 
45
확실한 작정인 것은 아니나, 아뭏든 만주에 뜻이 있으면서 우선 서울로 가발을 멈추었다.
 
46
고향을 떠나기 전에 오막살이를 팔고, 부등갬이를 팔고 하여 몸에 지닌 것이 몇십 원 있기는 하였으나, 만주로 농사를 지으러 가기에는 너무 시장스런 돈이었었다.
 
47
하다못해 지겟벌이라도 하여서 가는 노자만이라도 벌어 보태볼까 하는 생각과, 일변 만주면 어디가 마땅하며, 또 이민에 뽑히어 가자면 어떻게 마련을 하는 것인지 알아도 볼 겸 그래서 서울에다 발을 멈춘 것이었었다.
 
48
돈 들 것이 두렵기는 하였으나 당장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 우선 오늘 하루만 묵으려니 하는 생각으로 남대문 밖 허술한 보행객주집을 찾아들었다.
 
49
그 보행객주집 주인 영감이 사람이 퍽 좋아보였다.
 
50
윤서는 저녁을 먹고 앉아 영감더러 만주로 농사를 하러 가는 길인데, 어디로 가면 할 거냐고. 그 이민에는 아무라도 뽑힐 수가 있다느냐고. 찻삯은 얼마나 드느냐고. 두루 물어보았다.
 
51
영감은 대답이, 잘 모르기는 하나 간도가 좋다고 하느니라고. 이민은 아마 시골로 가야 뽑는 계제가 있나보더라고. 찻삯이야 한 2,30원이면 될 거라고. 그렇지만 여보, 보아하니 홀애비인 모양인데, 홀애비가 자식을 데리고 어떻게 타국으로 농사를 지러 가느냐고. 더구나 지금은 벌써 철이 지났는걸, 시방 가기로니 어떻게 농사를 시작하느냐고. 젊은 친구가 요량이 딱 하다는 듯이 그러면서 웃었다.
 
52
윤서는 듣고 보니 미상불 옳은 말이라고 생각하였다.
 
53
영감은 다시 말을 내어 권하기를, 그럴 것이 아니라 내가 마침 손대가 없어 각다분한즉 얼마 동안 우리 집에서 일이나 거들어 주고 있어 보는 것이 어떠냐고. 부자 입은 먹여 주마고. 그러는 동안에 헌 마누라라도 하나 생긴다면 같이 간도를 가든지 어디를 가든지 가서 살림을 차리고 살 것이 아니냐고 하였다.
 
54
또한 근리한 말인 것 같아 윤서는 선뜻 응낙을 하고 주저앉았다.
 
55
그렇게 해서 주저앉은 것이 자그마치 5 년 햇수로 꼬박 4 년을 충 그렸고, 신미년( 辛未年 : 1931년)에야 겨우 뜻하였던 만주길을 떠나게 되었었다.
 
56
너무 충그림이 과하여 세월은 밑졌다고 하겠으나 그 대신 소득이 없지가 않았었다.
 
57
주인집에서 직업소개소에 부탁하여 얻어들인 식모가 고향은 그 역시 충청도 어디라더냐 하였고, 배젊은 색시로 처음엔 도망꾼인가 했더니, 알고 본 즉 소박데기였고 하였는데, 그 색시와 부부의 의를 맺었다. 그가 곧 지금의 영 호의 어머니였다.
 
58
주인이 안팎에서 윤서를 착실하게 보았고, 그래서 홀아비 신세가 가긍 하다는 생각이 있었던 차에 마침 식모색시가 바지런하고 무던한 것 같아 중매를 섰던 것이었었다.
 
59
윤서는 색시가 식모로 들어오면서 한 반 년 겪어본 바 주인들 편에서 본것보다도 훨씬 더 좋게 보기는 보았지만, 일변 인물이 너무 반반한 것이 차라리 마음에 걸렸으나 물론 싫다고 할 여부조차 없었다.
 
60
여자는 안주인이 권을 하는 끝에
 
61
"내가 4,5 년이나 두고 보아 오지만, 고정하고 착실하기로는 다시 없고…… 사람이 좀 얼뜬 구석이 있어 흠이라면 흠이지만…… "하는 것을 "전, 사난 사람이라면 기가 질리는걸요! 차라리 얼띠어두 순한 사람이…… "라고 하여서 일은 수월히 어우러졌던 것이었었다.
 
62
마누라는 생겼고.
 
63
내외 꽁꽁 묶어 허리에 찬 돈이 합쳐서 한 2백 원은 되었다.
 
64
"우리 만주루 가서 농사해먹구 사는 게 어떨꾸?"
 
65
하루 저녁 윤서가 넌지시 내는 말에 여자는 얼른
 
66
"제발! 나두 고향은 꿈에두 생각이 없구…… 농사라두 해, 하루 한끼 먹으면서 살더래두 거기 덮을 게 어딨수? 당장이래두 떠납시다." 하고 한마디로 찬성을 하였다.
 
67
주인집에서는 이왕 셋방이라도 한간 얻어 살림을 나가지고 그렁저렁 서울서 사는 것이지, 구태여 만주는 가 무얼 하느냐면서 만류를 하였다.
 
68
윤서 내외는 만주에 가서 농사하고 살기가 어떻다는 것을 약간만이라도 짐작 하는 것이 있었다면, 그들은 주인집에서 권하는 대로에 좇았을지도 혹은 몰랐다.
 
69
윤서 오서방은, 18년 전, 고향을 떠나던 날의 결심을 이날이 버리지 아니하였다.
 
70
입버릇같이 간도에서 살다 간도에서 죽어 간도에다 뼈가 묻히지, 고향에는 돌아가지 않는다고 하였다.
 
71
영만더러도, 잘 되어서 고국에 돌아가는 것은 상관이 없으나, 고향 청주에는 갈 생각을 하지 말라고 늘 일러 듣기고 하였다.
 
72
영호도 그렇게 가르쳤다.
 
73
영호는 그래서 아버지의 고향이 충청북도 청주라는 땅인 줄은 알아도, 가지는 못할 곳인 것으로 머리속에 박혀졌었다. 물론 그 이유는 모르는 것이고.
 
74
이 '지워버린 고향’이 장차에 어린 영호 남매로 하여금 불행을 더 크게 할 것인 줄이야 아무도 짐작인들 못하였던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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