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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년(少年)은 자란다 ◈
◇ 간도(間島) 역사(歷史)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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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2월 25일
채만식
1
少年[소년]은 자란다
2
- 4. 間島[간도]의 歷史[ 역사] 는
 
 
3
혼자 납뛰고 있던 오선생은 어떡하다 정신이 들어 아이들이 만세도 부르지 않고 뻐언히 섰는 것을 보았다.
 
4
커다랗고 동상처럼 시꺼먼 바탕이 더위로 붉기까지 한 얼굴에 벌컥 성을 내어가지고
 
5
"끼놈들! 멀뚱멀뚱 보구만 섰어? 만센 안 부르구. 응, 이놈들." 하면서 곧 한 대씩 따귀라도 때릴 듯이 눈을 무섭게 부릅뜨고 을러메었다.
 
6
오선생이 아이들에게 이다지 무섭게 굴기는 드문 일이었다.
 
7
그러나 암만 무섭게 구느라고 굴어도 조금치도 무서워 보이지가 않았다.
 
8
아이들은 그래서 빈들빈들 웃는 놈이 다 있었다.
 
9
"그런데 여보, 구레 선생?……"
 
10
계제에 동네 사람들이 모여선 가운데에 오선생을 부르고 나서는 건 둔 장( 屯長 : 區長[구장]) 도꾸야마였다.
 
11
오선생은 무섭게 한 얼굴을 더 무섭게 둔장에게로 홱 돌리면서
 
12
"그 개 ×같이, 구레 선생이 다 무어여? 독립이 됐어두 구레 선생이여?" 하고 마구 잡도리는 것이었었다.
 
13
둔장은 그만 무렴해서 빨개지는 얼굴에 웃음을 짓고 섰다가 "그건 내가 잘못됐나 보우. ……그런데 말이지요, 적실하기는 적 실한가요?"
 
14
"염려 마슈…… "
 
15
오선생은 고개를 꾸벅, 이내 그 무섭게 하였던 얼굴이 풀어져 가지고
 
16
"만일 무슨 뒷일이 있으면 내 이 목 벼 바치리다!" 하면서 손가락으로 목을 베는 시늉을 하여 보인다.
 
17
모두들 웃었다.
 
18
웃음소리가 그치기를 기다려 둔장이 오선생의 앞으로 가까이 나와
 
19
"적실히 그렇다면야 조옴 존 일이요? 만세 아냐 억만세라도 부르구, 목이 터져두 아깔 것이 없지요. 그렇지만 말이지요, 혹시라도 오선생이 헛소문을 듣구서 이런다면, 아 여보시유, 이 큰일 아니요? 하고 의논성스럽게 말을 하였다. 둘이는 곧잘 얼려서 막걸리를 먹곤 하는 술친구 였었다.
 
20
"글쎄 내가 이 목을 벼 바친대두!"
 
21
오선생이 퀄퀄히 그러는 것을 여럿 가운데서 한 사람이 띄어놓고 하는 말로
 
22
"오선생 모가지 하나루 될까?" 하였다. 그러고는 잠깐 사이를 두었다 주(註)를 내는 것이었었다.
 
23
"오선생은 헛소문을 듣구 와 일을 저지른 책임으루다 목을 벼 놓는다지만, 보나마나 순사야 일본 병정이야 쏟아져 나올 텐데, 그 사람네가 오선생 모가지 하나루 그 남겨지 우리는 말끔 다 용서를 할까 싶들 아년데요?"
 
24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여러 사람이나 다들 빙긋이 웃고 있었다. 그러나 농담같이 하는 말은 말이라도 말인즉은 옳은 말이라고들 생각하였다.
 
25
오선생은 그만 폭폭해 죽겠는지, 가슴이라도 헤칠 듯 옷자락을 움키면서
 
26
"하 이런 답답한…… 그 제엔장맞일 서울 구경한 놈허구 서울 구경 못 한 놈 허구 우긴다치면, 서울 구경한 놈이 진다더니, 그 말이 꼭 옳아! 으응, 그 말이 꼭 옳다니깐!"
 
27
"우리가 보기엔 오선생이 되려 답답하우. 답답한 것이, 밑두끝두 없이 천둥에 무어 뛰어들 듯 뛰어들어선 독립이 됐다구만 하니, 이건 어둔 밤에 홍두깨 아뇨?…… 대관절 어떻게 된 곡절이나 얘기를 하구 나서 곧이를 아니 들으면 아니 듣는다구 온 가슴을 두드리던지 몸부림을 치던지, 정 뭣 하면 누구를 멱살이라도 잡던지 하는 것이 아니 구서…… "
 
28
아까 그 사람이 농담조로 이기죽이기죽 그러는 바람에 아이들과 몇 사람은 소리까지 내어 웃었다.
 
29
오선생은 참 그렇다는 듯이 손이 저절로 뒤통수를 만지면서 커다란 입으로 헤 벌쭉 웃는다.
 
30
"옳소! 그 말이 옳소! 내가 그만 너무 좋아 정신이 없어서…… 자아 내 그 럼 얘기를 허죠. ……그런 게 아니라…… "
 
31
오선생은 그러다가 무슨 생각이 나
 
32
"아니, 가만 있자." 하고 휘휘 둘러보면서
 
33
"어디 갔어? 최서방, 최서방?" 하고 교지기 최서방을 불러댄다.
 
34
대답하고 나오는 최서방더러 오선생은 직원실을 손가락질 하면서
 
35
"종! 종쳐! 깨져라구 막 쳐! 비상종(非常鍾) 알지?"
 
36
"이왕 경비소(警備所) 종두 치게 해야죠?"
 
37
둔장이 온 동네 사람을 다 모으게 하자는 생각인 줄 알고 그렇게 거듦을하였다.
 
38
동네 사람들이 다 모일 동안, 잠시들 기다려 달란 말을 이른 후에, 오선생은 와서 있는 두 사람의 젊은 선생과 둔장과 오선생의 모가지 하나로는 안될 말이라고 하던 이기죽쟁이 외에 몇몇 사람과 영호랑 아이들을 서넛과, 이렇게 를 데리고 직원실로 들어갔다.
 
39
학교의 종은 벌써 울었다. 땡 땡 땡, 자주 쉴새없이 울었다.
 
40
오선생은 분주히 반지(半紙)야, 파랑 잉크 붉은 잉크야, 모필이야를 챙기고 돌아다니면서 일변 직원실에 모인 사람들에게 우선 대강 이야기를 하느라고 입과 몸이 혼자 바빴다.
 
41
"결국 그러니깐, 조선은 일본으로부터 해방이 되구, 즉시 독립이 거든요!…… 어떻게두 기쁜지. 나는 그만 울었드라우!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줄줄 쏟아지구…… "
 
42
그러면서, 모필을 서너 개나 찾아가지고 돌아서는 오선생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 글썽 하였다. 얼굴은 그러나 웃고 있었다.
 
43
오선생은 눈물을 숨기려고 않고 주먹으로 씻으면서 푸뜩푸뜩
 
44
"스물 일곱 해 전, 내 나이 열여덟살 적, 독립만세를 부르던 기미년 3월 1일!…… 그날버틈 이날이 못잊던 독립이 아니더라구요. ……그 뒤루 날이갈수록 왜사람의 기승은 더해가구, 거기 따라 독립의 희망은 엷어가구, 어뿔싸 이러다는 독립은 영영 아주 그만인가보다구, 하마 희망을 잃었더니…… 천만 뜻밖에 오늘이 오지를 않었어요?…… 꿈결 같기두 하구 "오선생은 어느덧 웃지도 않고 감회 잦아진 얼굴과 음성이었다.
 
45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람들도 어른 아이 할것없이 저절로 엄숙한 기분에 잠기어 들었다.
 
46
경비소의 종도 울기 시작하였다.
 
47
종소리에 오선생은 문득 미국의 자유종을 연상하고 얼굴은 모두 명랑하여졌다.
 
48
"자 그래, 한달음질에 오기는 와야겠는데, 아 글쎄, 차가 뚝 끊지구섬 댕기 지를 않는군요. 어제 오후버틈…… 그것만 보아도 변은 큰 변이 난 줄 짐작 할 거 아녜요?…… 하, 그놈들, 건방지게 납데쌓더니 잘꾸사니야지! 에이고 깜찍스런 왜종들!"
 
49
오선생은 마침내 채비를 다 차려놓고 다른 두 젊은 선생을 가까이 오게 하여 본을 보이기 위하여 설명을 하면서 손수 태극기를 그린다.
 
50
"태극은 빨갱이가 위루 가고, 파랑이가 아라루 오면 그만이지만, 이 네 귀에 그리는 괘(卦)는 법식이 까다란데 나두 다 잊었어…… 아따, 위선 급한 대루 대강 시늉만 내서 씁시다그려. 격일랑 나중 가 찾기루 하구."
 
51
두 젊은 선생은 당장 배운 대로 수월수월히 반지에다 붉은 잉크와 파랑 잉크를 써서 처억척 태극기를 그려 내놓았다.
 
52
"그리고 느이들은 말이다…… "
 
53
오선생은 그 다음, 아이들을 불러 지시를 하였다.
 
54
"저 장 안에 일본기, 만주국기 많이 있지? 그거 끄내다 기폭일랑은 튿어 버리구 대에다 이 우리 태극기를 풀루다 붙여라. 느이들 우리 국기 첨 보았지?…… 어떠냐? 좋지 않아?"
 
55
아이들은 웃기만 한다. 속으로 일본 국기 비슷하다고 생각 하면서……
 
56
오선생은 비로소 자기도 붓을 집어 들고 태극기를 그리면서 일변 이야기를 계속 하면서 한다.
 
57
"아 그런데, 나는 돌아오자니 차가 와 주어야 말이죠! 기가 맥혀서…… 정거장에서 밤새두룩 기대리구 나니깐 그만 날이 새는군요. 차는 올 가망이 없구, 맘은 다뿍 급하구. 새벽인데, 그리자 마침 추럭이 한 대 지나겠지! 옳다꾸나 잡아타구섬 낙타산까지 와서 내려서 그래 겨우 지끔 뛔오는 거 아 녜요! 허긴 정거장에서 밤을 샌 덕분에 정보는 자상한 걸 많이 얻어가 지구와 되려 잘한 심이지만, 정거장 사람들이 왕청이야 목단강이야, 뻔 줄나게 전화를 걸어 새 소식을 물어선 내게두 얘기를 해주군 해서. …… 왕청 허구대 흥거이( 大興溝) 허구는 어제 오후에 벌써 왜 사람들이 여러 집이 습격을 받은 모양야. 그리구 참, 목단강서랑은 만계(滿系)들이 우리 조선 사람한테 두 대단히 좋지 못한 기세가 보인다구 하는데, 우리두 이거 큰일야! 우리가 털끝 하나두 상하지 않구 다들 무사히 고국으로 돌아가야 할 텐데…… 어서 한시 바삐 우리두 자위단을 만들어 가지구 대비를 해야지…… 낙타산에 두 자위단이 생기구, 다 그랬드군."
 
58
"거 독립두 되구 볼 거루군요, 오선생?"
 
59
아까 마당에서 오선생의 모가지 하나로는 안될 말이라고 하던 사람이, 느닷없이 한마디 또 그렇게 이기죽거리던 것이었었다. 그는 아이들과 함께 꺼내다 논 깃대에서 일본 기폭을 좍좍 뜯으면서 연해 오선생의 쉴새없이 입을 놀리고 있는 것을 빙깃빙깃 건너다보면서 하고 있었다.
 
60
"독립두 되구 볼 거라뇨? 저 양반 탈났군! 아 독립이 와락 반갑잖으시우?"
 
61
오선생이 엄살스럽게 그러는 것을, 그 사람은 시침을 뚝 따고
 
62
"천만에…… 글쎄, 젠장맞일 소리를 하두 잘 해, 젠장맞일 동상이라는 별명이 다 생긴 오선생이 말이지요, 그런 오선생이 독립이 되구 나니깐 씻은듯이 그 젠장맞일 소리가 없어졌으니, 그거 한가지만 해두 조옴 반가운 일이 여요? 아까 마당에서, 꼭 한번 그 소리를 듣구는 일짜루 없어!"
 
63
어른 아이 모두들 소리를 내어 웃고, 오선생도 같이 허허 웃으면서
 
64
"내가 참 그랬던가? 제엔 장 맞 일…… " 하여서 또들 한바탕 웃고 하였다.
 
65
몇 사람 되지는 아니하나, 직원실 안에 모인 사람들은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한가지로 마치 최면술이라도 걸린 것처럼, 오선생의 서두름에 휩쓸 리어 독립이 되었다는 것을 의심하는 생각은 어느덧 없어지고 말았다.
 
66
두 곳의 종은 서로 부르고 화하듯 끊이지 않고 계속하여 울고.
 
67
종이 운 지 30분 가량 되어서는 동네 사람 남녀가 3백여 명에 백여명 생도 전 부가 모였다. 모일 만큼 모인 셈이었다.
 
68
바깥은 따가운 폭양이라 두 교실을 가운데를 트고 책상을 치우고 사람들을 들여 앉혔다. 사백여 명을 교실 둘에다 들이기에는 과히 옹색하였으나, 그래서 복도와 창 밖으로 넘치어 섰어야 하였다.
 
69
오선생이 마침내 교단으로 올라섰다. 이상스럽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전에 없는 일이었다.
 
70
"에 ──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에게, 우리 조선민족으로 가장 기쁘고 감격한 소식을 알려 드리고저 하는 것입니다."
 
71
오선생은 우선 이렇게 허두를 내었다.
 
72
동네 사람이나 아이들은 바깥에서 벌써 조선이 독립이 되었단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무슨 이야기인지를 알고 있었다.
 
73
오선생은 잠깐 말을 끊었다 다시 계속하였다.
 
74
"그 가장 기쁘고 감격한 소식이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 조선이 일본으로부터 해방이 되고 즉시 독립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75
오선생은 힘을 들여 말을 했던 것이나 듣는 사람들은 덤덤하였다. 그들은 역시 기쁨과 감격보다는 정말일까 하는 미심한 생각이 앞을 섰던 것 이었었다. 한 시간 전까지도 독립이라면 꿈 같은 일로밖에는 여겨지지 않던 그들에게는 이 갑작스런 소식이 차라리 곧이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 당연한 노릇 이었을는지도 몰랐다.
 
76
오선생은 흥이 깨지는 것 같았으나 다음을 계속하였다.
 
77
"전후 경위를 대강 이야기해 드리겠읍니다. ……에 ── 일본은 억 지 엣 전쟁을 일으켰다, 연합국 즉 미국 영국 소련 중국의 무서운 공격에 견디지못해, 필경 그저께 8월 15일날 연합군에게 항복을 한다는 라디오 방송을 일본 천황이 직접 방송을 했읍니다…… 나는 마침 천교령엘 갔었는데, 어제 정오 열두시에 아주 중대한 방송이 있을 테라구 그래요. 그래, 시절이 시절이라 일부러 지체를 해가면서 들어보았지요. 들어보았더니, 과연 정오에 방송이 들리는데, 일본 천황 자신이 직접 나와서 무어라고 하는고 하니 ' 짐( 朕) 이 깊이 세계의 대세와 제국의 현상에 비추어, 비상한 조치로 시국을 수습 하고자 생각하고, 짐은 제국정부로 하여금 미 ㆍ 영 ㆍ 소 ㆍ 지( 米英蘇支) 사국에 대하여 그 공동선언(共同宣言)을 수락할 것을 통고하게 하였노라’ 하는 거예요."
 
78
듣는 사람들은 이윽고 흥미를 갖는 기색이 얼굴에 드러났다.
 
79
말하는 오선생도 차차로 신이 나 갔다.
 
80
"그 뜻을 알기 쉽게 말씀을 하면, 일본은 아무래도 전쟁을 더 바워낼 수가 없게 되어서, 미국 영국 소련 중국 이 네 나라의 공동선언에 복종을 하겠다 이런 뜻입니다. 그러면…… 미국 영국 소련 중국 네 나라의 공 동 선언이란 무엇이냐?……
 
81
이건, 조목도 여러 가지루 많고 내용도 대단히 복잡한 모양인데, 내가 아는 범위에서 간단히 말씀을 하면 이렇습니다. 연전에, 미국 영국 소련 중국네 나라의 대표가 모여서, 자 우리가 잘 협력을 해서 일본을 기여코 뚜 드려 부시자. 뚜드려 부신 후에 일본이 남의 나라한테서 뺏은 영토를 도루 뺏아서 원 나라에 돌려 주고, 조선을 해방시켜서 독립을 시켜 주구, 외국에 나가서 살고 있는 일본 사람을 죄다 저의 본국으로 쫓아들여 보내고, 이렇게 해서 다시는 일본이 악독한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두룩 병신을 만들어놓자…… 이런 결의를 했더랍니다. 그리구 그 뒤에 일본더러 느이들 이런 조건 밑에 항복을 해라 하고 항복 권고를 했더랍니다. 이것이 그 공 동 선언이란 것이랍니다."
 
82
이것은 카이로회담과 포츠담선언에 대한 오선생의 들은 풍월이었다.
 
83
오선생은 카이로회담이나 포츠담선언의 내용은 그만두고 그런 것이 있었더란 것도 몰랐었다. 그러다가 어제 오후에야 비로소 그 사람 역시 남에게서 들은 것을 가지고 이야기하여 주는 공동선언의 설명을 물려들었을 따름이었었다.
 
84
오선생은 잠깐 숨을 돌리고 나서 말을 계속하였다.
 
85
"일본은 그 즉시는 항복을 아니했읍니다. 그러다가 영영 배겨나지를 못 하겠으니까, 어제 그렇게 연합국 공동선언에 복종하겠읍니다구 항복을 한 것 입니다."
 
86
그러고는 오선생은 일단 음성을 높이어 가지고
 
87
"일본이 그렇게 연합국 공동선언에 복종하겠노라고 항복을 했으니깐 말 입니다. 했으니깐, 그 공동선언에 있는 대루 우리 조선은 일본에게서 해방이 되어가지구 독립을 하는 것입니다. 독립을! 아시겠읍니까, 여러분? 독립 이 여요, 독립! 연합국의 공동선언에 좇아서 독립이 된 거예요!"
 
88
마지막 그렇게 부르짖으면서 오선생은 말을 뚝 끊고, 4백여 명의 얼굴을 하나 하나 다 파보기라도 할 듯이 휘휘 사람들을 둘러보는 것이었었다.
 
89
사람들은 제마다 속으로
 
90
'모를 소리야! 대체 어떻게 해서…… 그 기승스런 왜사람들이 총칼 들여 대고 꼼짝 못하게시리 꼭 누르고 있는 앞에서 대체 어떻게 해서 독립을 했다는 것인지, 아무래도 모를 소리야.’
 
91
이런 부정적(否定的)으로 좀처럼 못미더워하던 마음이었었는데, 하던 그것이 비로소 그럴싸히 해혹이 되는 모양이었다.
 
92
'옳거니! 사맥이 그렇게 된 사맥이라!’
 
93
'옳지! 남이 일본을 이기는 운덤에 말이지? 쯧, 그럴 듯두 한 말야!’
 
94
'나는 독립군이라두 별안간 어디 몇십만 명 쏟아져나와 일본을 때려 눕히구 독립인가 했더니…… 워너니, 독립이란 말두 입밖에 내지 못하구 살던 판인데, 독립군이 나설 게 있을 내력이 없어.’
 
95
이러면서 그들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곤 하였다.
 
96
여러 사람의 그런 기분을 대표한다고나 할 것인지 조용하던 가운데, 저 뒤편에서 정녕 아마 그 이기죽쟁이의 짓이리라, 과히 크지는 않으나 똑똑히
 
97
"이를테면 남의 불에 게 잡은 심이지?" 하는 소리가 들렸다.
 
98
오선생에게까지는 물론 들려오지 않았다.
 
99
사람들을 둘러보고 섰던 오선생은 주먹을 번쩍 들어 땅 교단을 치면서 목청껏
 
100
"여러분!……" 하고 부르짖는 것이었었다.
 
101
"동포 여러분! 우리나라를 뺏고, 우리를 피 빨고, 우리를 압박하던 저 악독한 일본으로부터, 3천만 우리 동포와 금수강산은 해방이 되었읍니다. 왜인들은 물러가고 우리 조국은 독립이 되었읍니다. 독립이! 독립이!"
 
102
오선생의 음성은 갈래고,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렸다.
 
103
"저 36 년 전, 경술년(庚戌年), 군국주의 일본은 해방이라는 명목으로 우리 조선을 멸하고 저이의 식민지를 만들었읍니다. 그날부터 우리 조선 민족은 나라 망한 백성으로 왜사람들에게 목을 메우고 수족을 묶여 온갖 핍박과 설움을 받으면서 이날이 살아왔읍니다. 왜사람들의 종노릇을 하면서, 왜 사람들의 발길에 짓밟히면서 살아왔읍니다. 땅을 뺏기고 집을 뺏기고 필경엔 외국으로 쫓겨나기까지 했읍니다. 그러나 만주국엔 우리의 귀중한 자식들까지 뺏겼읍니다. 지원병이니 학병이니 징병이니 해서 우리의 자제를 전장으로 끌어내가지 아니했읍니까.
 
104
불탈하여는 불염(不奪不厭)이라는 말 그대롭니다. 우리에게서 나라를 뺏고, 전답을 뺏고, 집을 뺏고, 자식을 뺏고 그리고도 부족하여 우리가 쫓겨 온 이 구석까지 쫓아와 소위 공출이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피땀 흘려 거둔 강낭이와 좁쌀까지 뺏어가지를 않았읍니까.
 
105
이렇게 우리는 섧고 억울한 36년을 살아왔읍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이 독립이 온 것입니다. 자유와 독립이 온 것입니다.
 
106
여러분!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왜인의 종노릇을 면하려고, 뺏긴 나라를 도루 찾으려고, 짓밟힌 자유를 다시 찾으려고, 정복자 일본에 반항을 하면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얼마나 많은 우리의 선열(先烈)과 이름 없는 우리의 동포가 사나운 왜인의 총과 칼에 시뻘건 더운 피를 흘리고 넘어졌 읍니까. 이 간도의 역사를 돌이켜 봅시다. 이 간도의 역사는 우리 조선의 수많은 애국지사와 독립군들이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위하여 일본과 싸우다 쓰러진, 그 애국지사와 독립군의 피로 쓴 역사가 아닙니까.
 
107
여러분! 간도의 역사가 우리의 애국지사와 독립군의 피로 쓰여진 역사인 동시에 말입니다. 여러분! 이 간도의 역사는 또한 애인들에게 기름지고 살기 좋은 고국을 뺏기고, 백옥 같은 입쌀밥과 조상의 뼈가 묻힌 선산을 뺏기고, 강낭이 조팝을 먹으면서 영하 30도의 추위에 떨어야 하는 이 삭막한 호지( 胡地) 로 쫓겨와서 10년, 20년, 50년, 죽도록 고생을 하는 바루 여기 모여 있는 여러분의 눈물과 피를 가지고 쓰여진 것입니다! 여기 모인 여러분의 피와 눈물로 간도의 역사는 쓰여졌단 말입니다!"
 
108
열을 띠고 정신없이 고함쳐 부르짖어 내리던 오선생은 희비(喜悲)의 감개가 흥분의 극에 다다름이리라. 별안간 말을 뚝 그치더니, 다음 순간 두 팔을 불끈 쳐 들면서
 
109
"조선 독립 만세에!" 하고 외치는 것이었었다.
 
110
기약치 않이 그에 화하여서였다. 오선생이 그 교탁을 치며 불을 뿜듯 부르짖 음을 하면서부터 여러 사람은 이윽고 흥분과 감개가 솟기 시작하여 가지고 차차로 그것이 높아가다가 "간도의 역사는 여기 모인 여러분의 피와 눈물로 쓰여졌읍니다……"라는 데 이르러서는 그들의 흥분과 감개는 오선생의 그것과 같은 것에까지 오르고라야 말았는데, 그러자 오선생의 외치는 만세였다.
 
111
기약치 않아, 욱 하고 전원이 일어서면서
 
112
"조선 독립 만세!" 하고 화하여 부르던 것이었었다.
 
113
그것을 보고 오선생은 다시
 
114
"조선 독립 만세!"
 
115
여러 사람은 또다시 그에 화하여 일제 히
 
116
"조선 독립 만세!"
 
117
그 다음엔 양편이 같이서
 
118
"조선 독립 만세! 조선독립 만세! 조선독립 만세!"
 
119
교실이 떠나갈 듯 우렁찬 고함이었다.
 
120
몇번인지 모르게 자꾸자꾸 되짚어 불렀다.
 
121
팔을 휘두르고 몸짓을 하면서 마룻장을 쾅쾅 구르면서 만세 또 만세.
 
122
훌훌 뛰어오르면서 만세, 만세.
 
123
오선생 이하 몇몇 사람은 눈물이 흐르면서 하마 우는 소리로 만세, 만세.
 
124
오선생은 만세가 그치고도 여러 사람이 훨씬 진정이 되기를 기다려 새로이말을 시작하였다. 그의 음성은 차악 쉬고 말았다.
 
125
"에, 아까 말씀한 그 공동선언에 있는 대루 우리 조선은 독립이 될 뿐만 아니라, 조선에 나와 살던 왜사람들은 씨도 남기지 않고 죄다 저이 본국으로 쫓겨가게 되었읍니다. 따라서 우리 3천리 금수강산은 우리 조선 동포 끼리만 오붓이 살 수가 있는 땅으로 돌아왔읍니다. 그러니깐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고국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왜사람들에게서 기름진 땅과 백옥 같은 입 쌀밥을 뺏기고, 이 고장으로 쫓겨와 강낭이 조팝 먹으면서, 영하 30도의 추위에 떨면서 피와 눈물로 간도의 역사를 기록한 우리는 당당히 고국으로 돌아가 문전옥토 맘대로 부쳐 먹으면서 자유롭고 행복한 세상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니깐 여러분은 그럴 각오로 준비를 하셔야 할 것입니다."
 
126
오선생은 이것으로 일단 말을 마치고 교단으로부터 내려왔다.
 
127
내려오다가 다시 생각이 나서, 도로 올라가 한마디 덧붙이기를 하였다.
 
128
"그런데 여러분, 혹시 이것이 확실치 못한 것이나 아닌가 하고 의심과 뒷 근심을 하시는 이가 있는 모양인데, 정히 그렇게 맘이 아니 뇌신다면 지 끔이라도 천교령이나, 천교령까지두 갈 것이 없읍니다. 바루 저 낙타산까지만 몇 분이 대표루 가보시면 시언히 다 아실 수가 있을 것입니다."
 
129
여러 사람은 속으로는 참 그 참, 그래 보았으면 십상이겠다고는 생각 하나, 아무도 설도를 하고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130
운동장으로 자리를 옮겨 모자라나마 만들어 논 태극기를 나눠 들고 정식으로 독립 축하의 예식을 지냈다. 만세도 새 채비로 세 번 불렀다.故國[고국]으로 故國[ 고국]으로
 
131
사람들은 다뿍 걱정스러웠다.
 
132
독립은 되었다.
 
133
꿈 같은 이야기로밖에는 여겨지지 않던 독립이 또한 꿈같이 시방 이루어진것이었다.
 
134
독립…… 아뭏든 반갑고 해롭잖은 노릇이었다. 독립에 그치고 만다고 하더라도 망한 나라를 도로 찾았다는, 단지 그것만이라도 반갑지 아니할 며리는 없었다.
 
135
만세. 독립만세.
 
136
진심으로 유쾌하게 만세는 불러졌었다.
 
137
독립된 고국은 살기 좋은 낙토(樂土)로서 외지로 흘러나갔던 사람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138
아니꼽고 보기 싫던 일본 사람들이 하나도 남지 않고 다 쫓겨간 고국으로 돌아가서 토지는 농민이 차지하고, 노동하는 사람과 농민이 새 조선의 주인이 되어 가난과 압제가 없는 세상을 살아간다…… 언젠가 공산당의 빨치산 부대가 마을을 엄습하여 왔을 때 연설하던 말이었다.
 
139
땅을 차지하고.
 
140
새 조선의 주인이 되고.
 
141
가난과 압제가 없는 세상을 살고.
 
142
너무 과분하여 뒤로 나가자빠질 지경이었다.
 
143
대관절 자다가 떡도 분수가 있지, 이다지 흐벅지게 좋은 일이 생긴다고야 섬뻑 믿어지지가 않기도 하는 노릇이었다. 그렇지만 도무지 가량이 없는 소리 같던 독립도 꿈같이 이렇게 독립이 되지를 않았는가. 독립, 그 다음에가 서
 
144
'땅을 차지하고.’
 
145
'새 조선의 주인이 되고.’
 
146
'가난과 압제가 없는 세상을 살고.’ 하는 것도 저절로 수월히 되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는 것이었었다.
 
147
그렇지만, 가령 그것이 부질없는 말이라고 치자. 땅을 차지하고 새 조선의 주인이 되고, 가난과 압제가 없는 세상을 살고 하게 된다는 것이 헛배 부르 기의 부질없는 말이라고 치자.
 
148
그러나, 그렇더라도 땅을 아주 내것을 내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일본 사람들이 숱해 많은 땅을 내놓고 갔으니 그것을 좌우간 붙여먹게는 될 것이 아니냐.
 
149
새 조선의 주인이 된다는 것이야 실상 외람한 말이지, 호미 쥐고 땅 파는 재주밖에 없는 무식꾼 농투성이가 나라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소리. 사람이 하 그리 없어 농투성이가 나라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망발이요, 그저 배운 재주대로 농사 지어먹고 살면 그만인 것이었다.
 
150
가난이야 타고난 팔자니, 일조에 부자 장자 되기를 바란다는 것이 공연한 허욕…… 다만, 굶주리지 않고 헐벗지 않는다면 족한 것이고.
 
151
압제…… 미상불 압제가 배고픈 것보다도 더 섧고 원통할 적이 많았다. 일본 사람 순사들. 그 밑에 있는 조선 사람 순사들. 돈놀이하는 우편국장. 일본 농장의 감독과 그 밑에 있는 조선 사람 사무원들. 면서기, 군서기, 구장. 지주네 집 사환. 이 모든 사람들에게 압제 갖추갖추 많이 받았었다.
 
152
말은 으례껏 해라가 아니면 반말지거리였다. 사람을 개 도야지만큼도 못 여기며 지지리 멸시하고 구박하고 천대하였다.
 
153
그런 중에도 심하기는 순사들이었다. 걸핏하면 때리고 욕하고, 붙잡아다가 두고, 그래서 멀찍이서 얼씬만 하여도 섬뜩하니 싫고 무섭던 것이 순사 였다.
 
154
그러나 독립은 되고 일본 사람들은 하나도 없이 저희 나라로 쫓기어 들어갔다. 압제 주던 일본 사람들이 없는 고국이 되었다.
 
155
일본 사람들이 없어졌으니 인제는 조선 사람들이야 별양 압제를 주지는 아니 할 것이었다. 가령 순사 하더라도 일본 정치 아래서, 일본 사람 순사 밑에서 일을 하던 때나 무단히 때리고 욕하고 붙잡아다 가두고 하면서 싫고 무섭게 굴었지, 독립이 되고 우리 조선 사람끼리만 사는 다음에야 그렇게 악독한 짓을 할 이치가 없는 것이었다.
 
156
그렇든 저렇든 간에 가난하고 무식한 농투성이가 노상 압제라는 것을 받지 않겠다는 말은 억지엣 소리.
 
157
그러니 약간 웬만한 압제쯤은 상관할 것이 아니었다. 새 조선의 주인이 되네 어쩌네 하는 것은 당치도 않은 말. 땅은 하여커나 부쳐먹을 땅이 있을것은 번연하고. 하지하(下之下)로 잡아 보더라도 이만한 고국이 시방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었다.
 
158
산 좋고 물 좋은 고국. 농사하기 꼬옥 알맞은 고국. 건 땅에 벼농사 지어 기름 자르르 흐르는 입쌀밥 먹으면서 딱딱거리고 따귀 올려붙이는 순사 꼴아니 보면서 농사한 것을 송두리째 뺏어가는 공출 물론 없을 것이매, 또한 면소로 주재소로 붙들려 다닐 염려 없을 터. 자식을 공부시키기 좋고 일가와 친척이 있고. 선산이 있고, 죽으면 고향 땅에 묻히고.
 
159
줄이고 줄여 잡아도 이렇게는 살 수가 있는 고국이었다.
 
160
그 빠른 기차로도 사흘이나 오는 이 만리 타국, 일컬어 호지라는 북간도 구석에서 동네를 온통 울지렁으로 둘러막고, 주야로 경비를 하여야 하는 불안한 땅에서 강냉이 조밥으로 창자를 채우면서, 살이 어는 무서운 추위에 떨면서,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곳까지 뒤쫓아온 왜사람들에게 시달리고 만주 사람들에게 시달리고 하면서 산다느니보다도, 죽지 못해 살아 있는 시방의 이 형편에다 비하여 그 얼마나 호강이며 팔자 편한 세상이겠느냔 말이었었다.
 
161
생각하면 하루가 급하였다. 당장 선 자리에서 고국으로 독립이 되어서 살기 좋아진 고국으로 한걸음에 달려가고 싶은 생각이 꿀안 같았다.
 
162
그러나……
 
163
싫으나따나 10년, 20년, 뿌리를 박고 살던 끝이었다. 객주집에 묵던 바가 아니요, 하루 아침 벌떡 일어서기에는 여러 가지로 거리낌이 없지가 못 하였다.
 
164
살던 집을 어떻게 하느냐.
 
165
집이라야 물론 옛 이야기책의 흥부의 집만도 못한 알량한 것이지만, 그렇더라도 다만 몇푼이라도 받고 팔아야 하는 것이지, 아까와서 차마 그대로 내버리고 떠날 수는 없었다.
 
166
고국에는 왜사람들이 살다가 내놓고 간 좋은 집들이 많을 터이었다. 독립이 된 고국에서는 순사가 전같이 딱딱거리고 함부로 때리고 하지 않고 친절한 것처럼, 일반 동포들도 친절하여 그런 일본 사람들이 살다가 내놓고 간집을 타국에서 고생하던 동포에게 사양하기를 인색치 아니할 터이었었다. 그러므로 고국으로 돌아가 당장 몸을 담을 집은 걱정이 아니었다. 그러나 고국 동포가 아무리 친절하게 하여 줄지라도, 그래도 되도록이면 돈을 다소라도 마련을 해가지고 가야만 돌아가는 당장이든지 장차 농사를 시작 하는데든지 옹색이 덜할 것이었다.
 
167
세간 나부랑이도 그래서 손 가벼운 것이야 헌 누더기나마 옷과 함께 가지고 간다지만, 부피 큰 것이며 무거운 것은 팔아야 하였다.
 
168
금년 농사한 것도 거진 다 익어서 멀지 않아 거두게 되었으니 이왕 거두어서 돈을 장만하여야망정이지, 그것을 들에다 내버리고 일어선다는 것은 아깝 기도 하려니와 손복할 노릇이었다.
 
169
그런데 집이며 세간이며 장차 거둘 곡식이며를 팔 일이 큰일이었다.
 
170
너나없이 죄다 팔고 떠나는 사람인데, 대체 그것을 살 사람이 누구 겠느 냔 말이었다.
 
171
혹시 만인(滿人)들이 사면 사겠지만, 그것도 집이 한 채 두 채요, 세간이며 곡식이 약간이어야 말이지, 그 숱한 것을 그 사람인들 이루 어찌 다 사 느냔 말이었다. 그것도 만인이 많이 섞여 사는 부락이라면 혹시 몰랐다. 이대 이 수구는 조선 사람의 집단 이민부락이 되어서 만인은 겨우 두 집밖에 없었다. 그러니 만인들이 대량으로 이 부락으로 살러 들어오기나 하기 전에는 별반 가망이 없는 형편이었다.
 
172
그렇다고 글쎄 죄다 내버리고서 몸만 일어서잔 말도 나지 않고.
 
173
그러나 어서어서 떠나기는 해야 하겠고.
 
174
이렇게 그들은 마음만 다뿍 급하여 가지고 답답한 하루하루를 지웠다.
 
175
그러는 동안에 차차로 이것저것 불안하고 반갑지 못한 소문이 연해 꼬리를 물고 흘러들어왔다.
 
176
일본이 항복을 하기는 미국과 영국한테뿐이요, 만주에 있는 일본군은 눌러서 그래도 소련과 전쟁을 한다더라.
 
177
항복하기를 거절한 일본 군대가 만주에서 각지로 흩어져 약탈을 하고 조선 사람을 함부로 죽인다더라.
 
178
아무데서는 만인이 들고 일어서서 조선 사람의 집들을 엄습하고 재물을 뺏고 여자를 겁탈하였다더라.
 
179
옛날의 만주처럼 처처에 마적(馬賊)이 굉장히 많이 퍼져 함부로 다니지를 못한 다 더라.
 
180
고국에는 벌써 정부가 서 상해 ‧ 중경(上海重慶)에 가 있던 임시정부의 김구( 金九) 가 대통령으로, 김일성이 육군 대신으로 모두들 들어앉았다더라.
 
181
국호를 동진공화국(東震共和國)이라고 정하였다더라.
 
182
기차가 도문(圖們)까지는 겨우 가나, 조선 땅 남양(南陽)에서부터는 일체로 불통이 되어 시방 수만 명이 남양에 모여 오지도 가지도 못한다더라.
 
183
전자에 조선 사람들이 일본의 세력을 믿고 덩달아 만인을 핍박한 그 분풀이를 만인들은 이 계제에 하여치우려고 벼른다더라.
 
184
소련군은 조선이 일본과 협력하여 전쟁을 했다고 조선도 일본과 같이 적국으로 인정을 하기 때문에 조선 사람에게 대단히 가혹히 군다더라.
 
185
이 밖에도 별별 거짓말 같기도 한 참말 같기도 한 소문이 다 많았다.
 
186
갈수록 불안은 불어갔고, 그러하기 때문에 몸 가볍게 선뜻 일어설 수 있는 사람은 하나둘 떠나기를 시작하였다. 농사가 적고 시원치 못한 사람이든지, 남의 모방을 빌려 사는 사람이든지 그런 사람들이었었다.
 
187
또 집도 있고 농사도 널리 짓고 하는 사람으로도 재치가 빠르고 강단이 있는 사람은 미련을 탁 털어버리고는 진작 봇짐을 메고 하였다. 염통 곪는 줄 모르고 손톱 밑에 배접 드는 것만 안다는 푼수로, 이 푸달진 것이 아까와 여기서 꾸물거리고 있는 동안, 남들이 먼저 가 땅이야 집이야 말끔 차지하 고 나면 무어 닭 쫓던 개 지붕 바라보는 꼴 되고 말 거…… 이런 이해 따짐( 利害打算) 이 밝은 사람들이었었다.
 
188
영호네도 어서 바삐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면서도 집과 세간과 농사한 것에 붙잡혀 훌 일어서지 못하기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 사정이었다.
 
189
그러나 영호네는 고국으로 돌아감에 있어서 일변 남다른 사정 한가지가 따로이 있는 것이 있었다.
【원문】간도(間島) 역사(歷史)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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