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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형의 집을 나와서 ◈
◇ 12. 뭇사람의 인형 ◇
카탈로그   목차 (총 : 14권)     이전 12권 다음
1933.5
채만식
1
人形[인형]의 집을 나와서
2
12. 뭇사람의 인형
 
3
"이 랏샤 이마 세."
 
4
"어서 오십시요."
 
5
"이랏샤이."
 
6
탑골공원 옆 카페 '사탄’에 새 손님 한 패가 들어왔다.
 
7
세 사람인데 모두 얼근하게 취했다 ― 느니보다 취한 체를 한다.
 
8
한 사람은 전문학교 교복에 비 맞아 오글오글해진 파나마를 비뚜로 썼고, 한 사람은 저고리가 없이 맥고자만 들어 얹었고, 또 한 사람은 시간이 밤 열한시가 아니면 학교에 가는 길로 여길 만큼 교복 정모에 책가방까지 손에든 전문학교 학생이다.
 
9
문 안에 척척 들어서면서 요란한 소프라노의 환영 소리와 아울러 여 급 이사오 인이나 세 사람의 손님을 포위한다.
 
10
"〈아라 긴상 시바라꾸네!〉(아이구 김주사 오랜만이서요.)"
 
11
몰려든 여급 가운데 파르스름한 양장을 한 여급이 파나마 쓴 전문학교 학생을 보고 친숙한 말씨로 인사를 한다.
 
12
"〈웅 이나까니 이떼기노 가에따바가리다〉(응. 시골 갔다가 어제야 왔어.)"
 
13
다른 두 사람은 취해 못견디는 체하고 문 안으로 놓인 소파에 펄썩펄썩 주저앉는다.
 
14
"〈도리데 다이브 야께데루와〉(그래서 저렇게 새까맸구먼.)"
 
15
"〈웅 우미와 구로꾸 나루네……사데〉(응, 바다는 검게 돼……그래) 그 새 잘 있었고?"
 
16
"그저 그렇지 머."
 
 
17
"왜 이리 쓸쓸해?"
 
18
그는 좌석을 휙 둘러보며 묻는다. 넓은 방 안에 손님이라고는 두 패밖에 없다.
 
19
"언제는 안 그런가 머…… 심심해서 죽겠어."
 
20
"흥, 심심?…… 돈이 아니 벌어진다구 그래."
 
21
"글쎄 돈을 못 버니까 심심허단 말이지."
 
22
"사탄두 인제는 그만이야."
 
23
"어데는 안 그런가!"
 
24
"허기야 아무데두 다 일반이지만…… 그렇지만 그새 얼골은 꽤 고와 진걸?"
 
25
"고와진 게 무어야! 일간메(一貫)나 줄었는데…… 왜 문간에서 창피하게이래? 절루 가요."
 
26
"응, 가지…… 헌데 〈사딴이 아다라시 퀸가 기다소자나이까〉(사탄에 새로 여왕님이 와 있다지?"
 
27
"〈기다와〉(왔어요.)"
 
28
"미인이래지?"
 
29
"인도(印度) 미인!"
 
30
"인도 미인이라니?"
 
31
"어데 가서 농사를 짓다가 왔는지 얼골이 새까매, 호호호호."
 
32
"허허허허…… 그러면 시골서 가재 잡어왔나?"
 
33
"그렇지두 않다는데."
 
34
"그래두 미인이라구 소문이 굉장허든데?"
 
35
"흥. 그래 미인이란 바람에 이러구 쫓아왔구먼."
 
36
"〈야께루까이〉(강짜하니?)"
 
37
"〈오끼노도꾸사마……고레데끼 사단노 이브요〉(미안하시겠읍니다만 내가 이래 봬도 사탄의 이브야요.)"
 
38
"〈호오……소노기마에다께와네?〉(흥. 기광만은 정허이.)"
 
39
"잔말 말구 어서 이층으루 가서 인도 미인이나 만나요."
 
40
이렇게 해 던지고 이브라는 여급은 저편으로 엉덩이를 내저으며 가버린다.
 
41
소파에 앉아 다른 여급들과 콩칠팔칠 지저거리던 두 사람을 일으켜 가지 고이 층 층계를 올라가는데 안내하는 뽀이가 "이 랏샤 이마 세, 유리꼬상 고안나이."
 
42
하고 외친다. 그러고는 싱글싱글 웃으며 앞장선 파나마 학생에게 은근히 인사를 한다.
 
 
43
"선생님, 오래만이십니다."
 
44
학생은 뽀이의 어깨를 턱 치며 역시 웃는다.
 
45
"응, 잘 있었나?…… 인도 미인(?)이 있다지?
 
46
"헤헤, 망령의 말씀."
 
47
"이 녀석아! 허허허허…… 헌데 그 인도 미인을 우리 번으로 돌려주어야지?"
 
48
"마침 선생님 번이올시다."
 
49
"응, 그래. 거 잘되었군."
 
50
일행이 복도를 돌아 다시 층계를 올라서려고 하는데 여급 하나가 내려오다가 마주쳤다. 딱 마주치면서 여급과 파나마 학생과는 가볍게 놀란 눈으로서 로 바라보고 섰다.
 
51
"유리꼬상, 고안나이 데스요."
 
52
뽀이가 여급의 멍하고 섰는 것을 보고 주의를 시킨다.
 
53
"당신이 유리꼬상이요?"
 
54
파나마 학생이 뽀이가 하는 말을 듣고 비로소 웃으면서 묻는다.
 
55
"대관절 어떻게 된 일이요?"
 
56
한편 구석 박스에 자리를 잡고 앉자 파나마 학생 ― 김은 십년지기인 듯이 긴하게 묻는다.
 
57
유리꼬라는 이름을 얻은 노라는 무어라고 대답할 말이 없다.
 
58
어떻게 되다니 단순한 것이다.
 
59
사흘 전 관철동 그 여급을 찾아가서 그의 주선으로 그날 밤에 이곳 사탄의 지배인을 만나가지고 와서 있기로 작정한 것이요, 그리하여 어젯밤부터 나온 것이다.
 
60
그는 남식 어머니에게도 남수에게도 물론 혜경이에게도 말을 하지 아니하였다. 다만 어느 사무소에 있게 되었는데 밤 늦게 일을 한다고 그럴듯하게 남수와 그 어머니에게만 꾸며대었다.
 
61
카페로 나와 가지고 노라의 가장 겁나는 것은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62
이 학생을 보고도 분명 아는 사람인 듯한 기억이 나고, 또 저편에서 그만큼 친숙하게 대하는 것이 여간 놀랍지 아니하였으나 차차 생각하니 화장품 장사를 맨 처음 시작한 날 마수걸이로 머리비듬 향수를 팔아 주던 그 학생 이었다. 그리하여 그만 정도이면 근본을 아는 터가 아니니 안심할 수가 있었다.
 
63
"응? 언제 왔소?"
 
64
김은 재우쳐 이렇게 묻는다.
 
 
65
"어제 왔어요."
 
66
"흥…… 집이 어데예요?"
 
67
"익선동 운현궁 뒤예요."
 
68
"운현궁 뒤에가 집이 한 채뿐인가? 번지를 가르켜 주어야지."
 
69
교모 쓴 학생이 이렇게 볼 먹은 소리로 두덜거린다.
 
70
"하따 이 사람들아, 집 알어 가기두 너무 일러. 술이나 먹자. 자, 〈 와레라가 퀸 사단노!〉(우리가 왕, 사탄의 왕이요!) 술을 주시오."
 
71
또 한 사람 일행 중에 저고리 아니 입은 사람이 벙뗑하고 노라의 손을 덥석 붙잡는다.
 
72
노라는 무심결에 잡힌 손길을 홱 뿌리치려 하였으나 짐짓 참았다.
 
73
그것은 어제 손목을 잡혔다가 뿌리치고는 손님의 노여움을 사서 한바탕 야단이 났었고, 지배인이 나와서 사과를 하여 무사하였으나 그 대신 주인에게 여러 가지로 주의와 요령을 얻어들은 덕이라고 할 수 있다.
 
74
"자, 어서 가서 술 가져와요. 시원허게 챈 맥주, 응."
 
75
그는 손길을 놓고 등을 툭툭 두드린다.
 
76
"왜 저렇게 새까매?"
 
77
노라가 카운터로 간 뒤에 교모 쓴 학생이 김더러 묻는다.
 
78
"볕에 그을러서."
 
79
"언제부터 알었나?"
 
80
"화장품 장사야."
 
81
"아주 시로돈데."
 
82
"인제 스레루해야지."
 
83
"나인 멫이야?"
 
84
저고리 아니 입은 사람이 김더러 묻는다.
 
85
"모르겠어…… 스물둘? 하나?"
 
86
"더 먹었겠는데…… ""그 쯤밖에 아니 되었을걸."
 
87
"옷이 그게 무어야!…… 들어앉은 여편네같이."
 
88
"인제 옷두 차차 하데해지겠지."
 
89
노라가 얼굴이 검은 것은 화장품 장사를 하느라고 볕에 그은 것이요, 그리하여 인도 미인이라는 별명이 대번 생긴 것이다.
 
90
그러나 원래 모습이 곱고 해서 화장을 잘했기 때문에 검은 것이 그다지 흉 헙지도 아니하고, 또 나이도 스물여섯 살이건만 스물한두 살로 보인 것이다.
 
 
91
옆에서 보기에도 끔찍하게 그득 따라 놓은 맥주를 제가끔 단숨에 들이켜고나서 교모 쓴 학생이 노라에게 잔을 준다. 이것이 술을 먹으란 말인 줄은 어젯밤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92
"저는 못 먹습니다."
 
93
"그러지 말구 한잔 들구려!"
 
94
"정말 못 먹습니다."
 
95
"못 먹을 게 어디 있어…… 사람이 먹는 것이면 아무나 먹는 것이지…… 입에다 붓구 꿀꺽 삼키면 되는 거야."
 
96
"그래두."
 
97
"이거 안 되겠군."
 
98
그는 잔에 맥주를 가득 부어 가지고 노라의 옆으로 옮겨 앉아 한 손을 노라의 등 위로 돌려 꽉 껴안고는 술잔을 입에다 들이대려 든다.
 
99
노라는 얼결에 벌떡 일어서는 바람에 술잔이 땅에 떨어지고 술이 사방으로 흐트러 져 좌석이 발끈 뒤집혔다.
 
100
"이게 어데서 생긴 죠뀨년이 이 따우야!"
 
101
술을 먹이려던 교모 학생은 성이 버럭 나 가지고 노라를 그대로 의자에 칵 내 박치 면서 달려들어 때릴 듯이 벼른다.
 
102
맥주 난리에 후덕거리던 두 사람이 겨우 그를 붙잡고 만류한다.
 
103
"여보게 참게."
 
104
"참다니! 카페에 와서 있는 계집이면 죠뀨답게 해야지…… 무어야 건방지게."
 
105
노라는 마음껏 욕이라도 하고 물어뜯기라도 해서 분풀이를 하고 싶으나 설움이 복받쳐서 몸을 쳐들 수가 없다.
 
106
"참어 참어…… 아직 시로도가 돼서 그래…… 자네가 머 여급 수신 선생인가? 맘에 아니 들면 다른 여급 불러다가 놓구 먹으면 그만이지."
 
107
저고리 아니 입은 사람이 그중 나이 든 만큼 사리를 따져 동행을 다독 거 린다. 그러나 어쩐지 처음부터 노라에게 아니꼽게 대하던 교모 학생은 기어 코 무슨 거조를 내려는 듯이 들렌다.
 
108
큰소리를 듣고 모여든 여급들이 할 수 없이 노라를 부축하여 ' 죠뀨베야’ 로 데려다 뉘었다.
 
109
에미꼬 ― 노라를 처음 카페로 데려온 여급이 옆에 붙어앉아 타 이르 기도하고 위로도 하여 준다.
 
110
만일 어제 첫날밤에 노라에게 오 원 오십 전의 팁이 쥐어지지 아니하였더면 그는 지금 당장에 이곳을 뿌리치고 나왔을 것이다.
 
 
111
미상불 어젯밤 맨 첫 번에 팁으로 이 원이 손에 쥐어질 때에는 섧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여 눈물이 쏟아지려고 하였지만, 그러나 술 몇 잔 부어 주고 손목쯤 잡히고 ― 그것을 따지고 생각하면 기막혀 못할 노릇이지마는 ― 그 보수로 이 원이 손에 쥐어지고, 또 그것을 세 번쯤 당하는 동안에 오 원 오십 전의 돈이 벌어진다는 것은 결코 만만한 벌이가 아니다.
 
112
그리하여 그는 어젯밤 집에 돌아가 여러 가지 감정이 오고가는 동안에도 화장품 장사로 이천 원을 모으려다가 실패한 계획을 여급 생활로써 다시 만회 시킬 결심을 하였다. 하룻밤에 줄잡아서 평균 오 원을 번다면 한 달에 일백오십 원…… 이 일백오십 원 가운데 의복과 밥값으로 오십 원쯤 제하 고백 원씩 저금을 하면 일 년이면 일천이백 원, 이태면 이천사백원, 그리고 일 년만 더 하면 사천 원 가까운 돈이 수중에 들어온다.
 
113
그때 가서는 전에 계획 세운 대로 조그마한 전방을 혜경이네처럼 내어가지고 큰소리치고 살아갈 수 있다.
 
114
노라가 겨우 울음을 그치고 에미꼬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지배인이 빈들 빈들 웃으면서 고개를 들이민다.
 
115
성이 났을 줄 알았더니 되레 웃는 것이 마음이 놓였다.
 
116
"유리짱, 거 왜 자꾸만 그러시우? 내가 나가서 사죄허기에 땀이 빠지는데…… "만일 노라가 인기의 희망이 없다면 결코 그의 그러한 버릇을 그대로 두고 보려고 아니할 것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점으로 보아 앞으로 카페 사탄의 시들어가는 인기를 한번 만회시킬 소질이 노라에게 충분히 보이는지라 장래의 희망을 붙이고 그와 같이 우상대상하는 것이다.
 
117
"속을 푹 썩혀요. 푹…… 이 짓을 아니할 바이면 모르지만, 기왕 시 작 한 것이니…… 응, 유리짱."
 
118
노라는 대답할 말이 없다.
 
119
응당 그 말이 옳은 줄 알지만, 그렇게 시행을 못하니 할 말이 없는 것이다.
 
120
"그러구."
 
121
지배인은 그만하면 그 말은 더 아니해도 좋은 줄 눈치를 채고 다른 말을 꺼낸다.
 
122
"유리짱, 옷을 좀 만들어야지?"
 
123
"옷?"
 
124
노라는 되레 물었다. 그는 아직도 남은 성벽으로 차림새만으로라도 여 급이 되지 아니하고 싶은 것이다.
 
 
125
"응? 옷을 좀더 하데헌 것으루 만들어야지."
 
126
"이 옷은 어때서요?…… 손님들이 되려 수수해서 좋다구 그리든데?"
 
127
"흥, 그건 다 괜히 허는 수작들이고…… 아무래두 옷이 하데해야 해요.
 
128
여자는 의복이 날 갠데…… ""가만 계시우. 돈 좀 벌어가지구."
 
129
"돈? 돈이야 미리 둘러 쓸 수가 있으니깐."
 
130
노라는 우기다 못하여 지배인이 소개하여 주는 돈놀이하는 사람에게서 빚을 얻기로 하였다. 이튿날 노라는 오소데(저녁 후에 나오는 것)지만 돈놀이 하는 사람을 만나려고 약속한 시간 세시에 사탄에 나왔다.
 
131
얼굴에 개기름이 흐르고 게다가 얽기까지 한 돈놀이꾼이 벌써 와서 기다리고 있다.
 
132
삼십 원을 쓰기로 하고 보증은 에미꼬가 섰다.
 
133
갚기는 매일 육십 전씩 찍어서(이렇게 떼어 갚는 것을 찍는다고 한다.)
 
134
두 달 ― 육십 일 동안에 끝내는 것이다.
 
135
그러니까 원금 삼십 원에 두 달 동안 이자가 육 원이다.
 
136
월 일할(月利率一割[월리솔일할])이니까 시골 농군들이 쓰는 장리벼 외에는 아마 이 세상에서 가장 비싼 이자겠지만 삼십 원의 모갯돈을 쓰고 육십 전씩이라는 사슬돈으로 여러 날 갚는 맛에 여급들은 이 돈을 너도나도 쓰는것이다.
 
137
돈을 얻어가지고 지배인과 같이 백화점에 가서 전 같으면 눈도 거들떠 보지 아니하던 혼란스러운 무늬를 프린트한 치마와 저고릿감을 끊고, 화장품을 사고 구두를 사고, 그러고 나서 지배인과 식당에 들어가 저녁을 먹고 나니 삼십 원이 다 없어져 버렸다.
 
138
전등이 켜질 무렵 해서 사탄에 돌아오니 김이 와서 기다리고 있다.
 
139
오늘은 아래층 번이지만 이곳에 상당히 벌이를 시켜 주는 김은 지배인을 붙잡고 무어라고 한참이나 이야기를 하더니 노라와 같이 제일 조용한 삼 층으로 올라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140
"어제 저녁에 너무 미안허게 되었습니다."
 
141
맥주와 술잔과 콩안주를 생철 쟁반에 받쳐 들고 와서 탁자에 늘어놓고 앉는 노라를 보고 김은 이렇게 어젯밤 이야기를 꺼낸다.
 
142
"아이 천만에…… 제가 되려 죄송스럽습니다."
 
143
"아니 그렇게 말할 게 아니라…… 자, 한잔 부어주시오."
 
144
김은 말을 하다가 잔을 들어 술을 청한다.
 
145
술을 가져다 놓으면서 바로 한잔 부어놓는 게 여급의 도린데 노라는 서 비 스에 익숙치 못한 만큼 그냥 술만 불쑥 가져다 놓았던 것이다.
 
146
노라가 부어주는 맥주를 반쯤 마시고 그는 다시 말을 계속한다.
 
147
"그 사람이 주사가 좀 있어요. 술을 아니 먹으면 퍽 얌전하구 호인인데…… 거 그 사람 그게 큰 병통이야."
 
148
노라는 그가 왜 이렇게 그런 소리를 늘어놓는지 알 수가 없었다.
 
149
"그러니까 이 담에 만나더래두 좋은 낯으로 대해요. 피차에 원혐을 두면 재미가 없으니까."
 
150
'그것쯤 가지구 멀 이렇게 긴히 이야기를 하나’생각하면서 노라는 그 저 네네 대답을 하였다.
 
151
"그렇다면 고맙습니다."
 
152
김은 남은 술을 마시고 술잔을 내어민다. 노라는 그 고맙다고 하는 말이 무엇이 고맙다는지 알지를 못했다.
 
153
"나두 어제 저녁에 그렇게 섭섭하게 헤어진 것이 맘이 뇌어야지요…… 그래 집을 알었으면 찾어가서 이야기라두 했겠지만 집도 모르구 해서…… 내 인제 그 사람 데리고 올 테니 화해나 하시오, 허허."
 
154
"네."
 
155
"무얼 좀 갖다가 좀 자시우. 프로츠나 파인애플 같은 것?"
 
156
"괜찮습니다."
 
157
"아니 사양허지 말구."
 
158
"아니예요. 방금 저녁밥을 먹어서…… "김은 술을 마신 뒤에 콩을 집어다가 입에 넣으면서 말이 없이 노라를 바라보다가 문득 묻는다.
 
159
"금년에 나이 어떻게 되셨소?"
 
160
노라는 대답이 궁하였다. 지배인과 주인은 스물두 살이라고 하라고 하였는데 어쩐지 그렇게 거짓말을 입으로 불 생각이 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스물여섯이요 하고 바로 대자니 여급들은 물론이려니와 지금 이 손님도 갓스물이 넘을락말락한 젊은이 앞에서 창피하고…… "스물 둘? 셋?"
 
161
김이 대면서 묻는다.
 
162
"네."
 
163
노라는 그냥 대답을 하고 나니 얼굴이 붉어졌다.
 
164
"허허, 스물둘두 되구 셋두 되구 허허허허…… 그런데 여보 유리짱."
 
165
김은 목을 가다듬느라고 술을 들이켜고 다시 말을 잇는다.
 
166
"대관절 어떻게 해서 이런 데를 왔소?"
 
 
167
노라는 가슴이 섬뜩하였다. 그가 번번이 묻는 말씨라든지, 가외로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하는 품이 혹시 전일의 노라, 즉 현석준의 안해로서의 자기를 알고 이러하지나 아니하나 하는 의심이 생긴 것이다.
 
168
만일 노라가 혹시 동무들에게서라도 남자라는 것이 환락경에 나온 숫 계집의 환심을 얻기에 어떠어떠한 수단을 쓰는 것이라고 이야기라도 들었으면 김의 그러한 속을 굽어다볼 수가 있었겠지만, 지금 노라는 카페로 술 먹으러 오는 사람도 평상시와 한가지로 여자를 대하며 교제하는 것으로밖에는 생각지 아니한 것이다.
 
169
"어떻게 허긴 무얼 어떻게 해요? 동무가 소개해 주어 왔지요."
 
170
노라는 우선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하였다.
 
171
"아니 여기 온 경로를 묻는 것이 아니라 ― 그거야 아무렇게 왔으면 어때요? ― 내가 보기에는 결코 이런 데 와서 이렇게 있을 여자가 아닌 것 같은데 그게 이상해서 말이요."
 
172
노라는 겨우 안심을 하였다. 내용은 역시 모르는 것이다.
 
173
"그거야 벌이허느라구 왔지요…… 무슨 특별한 재주가 없으니깐 달리 벌이를 할 수는 없구 그저 아모라두 와서 있으면 있을 수 있다길래 온 거랍니다."
 
174
김은 벌써 불그레한 얼굴을 좌우로 흔든다.
 
175
"아니 아무래두 무슨 깊은 사건이 있어…… 내가 맨첨 화장품 가방을 들구 나섰을 때부터 그렇거니 짐작을 했는데…… ""아이 참…… 괜히 그렇게 캐러 드세요. 사정이 무슨 사정입니까?"
 
176
"그러면 집안에 누가 계시우?"
 
177
"어머니 한 분허구 여동생이 둘이 있어요."
 
178
노라는 남수네 집을 생각하고 아무렇게나 이렇게 둘러대었다.
 
179
"어머니가 나이 많으시우?"
 
180
"올에 예순다섯이에요."
 
181
"응…… 그러면 여동생들은 무얼 허우?"
 
182
"학교에 다녀요."
 
183
"그러면 그렇지!"
 
184
김은 무슨 큰 것이나 알아맞힌 듯이 무릎을 치며 고개를 끄덕거린다. 노라는 속으로 웃음을 참느라고 애를 쓰는데 김은 차차 얼굴이 시무룩하여지다가 도로 흥분해 가지고는 노라에게는 듣기에도 무서운 소리를 냅다 쏟아놓는다.
 
185
"아! 세상이 세상이! 세상이 불공평해서…… 이놈의 ××××××가 불공 평해서 모든 것이 황금 본위이기 때문에…… 당신같이 순진한 여성들이 이런 타락의 마굴에 굴러들어오구…… 엣 이놈의 ××이 하루바삐 ×× 이 ×× 나야지…… 그래 당신같이 순진한 여성이 이런 마굴에 굴러 들어와서 돈 있는 뭇놈의 조롱거리가 되구 노리갯감이 되다니 거 될 말이요?"
 
186
김은 비분강개해서 이렇게 말을 하나 노라는 김이 생각하는 바와는 다른 의미로 역시 속이 언짢지 아니치 못하였다.
 
187
김이 회계를 치르고 일어설 때에 일원짜리 두 장을 꼭 쥐어주면서 서로 좋은 친구가 되자고 신신당부를 한다.
 
188
노라도 그러겠다고 대답은 하나 어쩐 일인지 다 같은 친절을 받으면서 병택이에게와 같이 탁 미더운 마음이 생기지를 아니하였다.
 
189
김을 문간까지 배웅하고 우두커니 서서 생각난 병택이를 생각하면서 넋 없이 혼잡한 밤거리를 바라보노라니까 ― 그 혼잡한 속에 혹여 병택이가 섞여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 비틀거리며 술꾼 하나가 달려든다.
 
190
노라가 문간을 비껴서려니까 그는 두 팔을 쩍 벌리고 껴안을 듯이 달려든다.
 
191
"어, 그애 꽤 똑똑헌걸! 어데 나허구 뽀뽀 한번 허자. 뽀뽀뽀뽀."
 
192
노라는 몸을 피하려다가 마침 나오는 손님과 부딪뜨려 등 뒤로 주정꾼에게 껴 안기고 말았다. 그는 술내나는 입으로 연해 노라의 볼을 문지르며 어눌한 소리로 뽀뽀를 부른다.
 
193
노라는 뿌리치고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하나 남자의 팔힘은 억세다.
 
194
옆에서 동무 여급들이 사내를 핀잔을 주며 놓아주라고 하나 그것은 도리어아 양일 뿐이다.
 
195
그러자 뒤미처 들어오는 그의 동행인 듯한 사람이 주정뱅이를 뜯어놓고 노라의 손목을 잡아끈다.
 
196
"이거 무얼 점잖지 않게 이러시우? 응. 꽤 똑똑은 헌걸…… 어데 아래 칭번이가? 우리허구 같이 놀지."
 
197
노라는 주정뱅이에게 놓인 것이 고마워서 하라는 대로 따라섰다.
 
198
그 사람들은 둘이 다 조선옷을 깨끗이 입었고 나이는 모두 사십이 훨씬 넘어 보인다.
 
199
그러고 주정을 말리던 나중 들어온 사람은 번대머리가 벗어지고 얼굴이 뒤룩 뒤룩한 게 몹시 내숭스럽게 생기었다.
 
200
노라는 손님을 데리고 이층으로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201
당한 번은 딴 여급이나 노라는 그대로 붙잡혀 앉았다.
 
202
"응. 꽤 똑똑헌걸…… 전에 못 보았는데 새로 왔나?"
 
 
203
아까 장난을 말리던 사람이 탐이 나는 듯이 노라를 연신 훑어보며 묻는다.
 
204
"네."
 
205
"언제부터?"
 
206
"그저께부터 왔습니다."
 
207
"응. 꽤 똑똑해…… 그렇지? 최주사?"
 
208
최주사라는 게 아까 문간에서 노라를 안고 승강이하던 사람이다.
 
209
"허허허허…… 내가 연애를 좀 허럈더니 이주사헌테 떼운 모양인걸. 허허 허허."
 
210
"허허허허…… 그렇다면 우리 다같이 연애를 헙시다. 둘이는 못 허나? 그렇지?"
 
211
이주사는 노라의 손을 잡아다가 조몰조몰 만진다.
 
212
"이름이 무어야?"
 
213
"유리꼬올시다."
 
214
"유리꼬 유리꼬, 유리(硝子[초자])같이 맑고, 응, 그렇단 말이지? 허허."
 
215
"그렇지. 유리같이 맑구 아름다워…… 그래 이름을 잘 지었는데…… 유리 꼬, 응."
 
216
노라는 속으로 우스운 것을 참느라고 입술을 물었다.
 
217
"나이는 멫 살?"
 
218
이주사가 잡은 손을 더욱 주무르면서 묻는다.
 
219
"스물두 살입니다."
 
220
"스물두 살…… 응. 꼬옥 좋은 나이로군…… 여보게 유리꼬상, 나 같은 늙은이하 구두 연애허나?"
 
221
"저는 그런 건 모릅니다."
 
222
"에? 천만에…… 아 늙었다구? 허허. 그러나 염려 말게…… 내가 아무리 늙었어두 젊은 놈 아니 부럽다."
 
223
"원 영감두!"
 
224
최주사가 반박을 하고 나선다.
 
225
"글쎄 대번 초면에 연애를 허자니 누가 그러라겠수! 두구두구 서서히 다니면서 그래야지."
 
226
"허허 그런가요…… 과연 최주사가 연애에는 선수거든."
 
227
"아니 천만에…… 이주사가 저렇게 내숭을 피어두 여간만 아니야. 응, 유리 꼬상, 괜히 조심해요."
 
228
마침 당번 여급이 술을 가져왔다.
 
 
229
사흘이나 있었어도 처음 보는 술이다. 노란 술은 조그마한 잔에 부어 놓고, 또 레몬을 한 잔씩 놓아 왔다.
 
230
노라는 그것이 술은 자기네가 먹고 레몬은 당번 여급과 노라더러 먹으라고 가져온 것이니라 여겼더니 웬걸 레몬에 술을 부어 가지고 맛보듯이 짤름짤름 마시는 것이다.
 
231
"그래 이번 이주사 참 큰 땡 잡었지."
 
232
여급과의 희롱은 잠깐 잊어버리고 자기네끼리 이야기를 하고 있다.
 
233
"땡은 무슨 ―""아니 글쎄, 이게 어느 때라구 수한간에 삼백팔십 석, 근 사백 석이 추수 되는 땅을 겨우 만 원에 차지했으니, 여보, 생각허면 벼락맞일 일이 아니요?"
 
234
"쉬."
 
235
"아따, 머 이주사나 내나 그 길루 나서 그 길루 돈 모은 놈인 줄 세상이다 안다우. 응, 여게 유리꼬상, 우리는 다 이렇게 돈장사, 소위 고리 대금 업잘 세. 미리 알구 사귀게."
 
236
"그렇지만 자네들한테 돈쓰기는 인색잖어이, 응? 유리꼬, 오늘 저녁에 우리 놀러갈까? 응?"
 
237
"것두 좋지…… 이주사가 삼만원 남긴 바람에 한턱 단단히 쓸 모양이니 우리 가세그려나?"
 
238
"아이구 가긴 어델 갑니까? 이 밤중에!"
 
239
노라는 졸리다 못하여 이렇게 말막음을 하였다.
 
240
"밤중에 어데를 가느냐구? 왜? 자동차 가시끼리허지. 온양온천 가지…… 그게 멀거든 인천 월미도 가지."
 
241
최주사는 신이 나서 기세를 올린다.
 
242
"그래 자동차를 가시끼리해 가지구 인천 월미도나 가세그려. 가서 조 탕이나 허고 호텔에 가 맥주나 한잔 먹구…… 좋잖아? 응, 유리꼬상?"
 
243
이주사도 연해 이렇게 조른다. 노라는 그렇게만 논다면 소풍할 겸 속으로 당 기지 아니하는 것은 아니나 섬뻑 그러자고 나서기가 어쩐지 서먹서먹하였다.
 
244
"허허, 초면이 돼서 맘이 아니 뇌는 모양이군…… 그러면 훗날 차차 가기로 허구 오늘 저녁은 술이나 실컷 멕여주게…… 자, 맥주를 좀 가져오구, 그리고 응, 페파민? 이라든지 그 파란 술 두 잔만 가져와."
 
245
이주사의 주문을 듣고 당번 여급이 일어섰다.
 
246
노라는 페퍼민트란 게 무엇인지 알 턱이 없다.
 
 
247
가져온 맥주를 먹으면서 새파랗게 고운 술을 당번 여급과 노라에게 권한다.
 
248
당번 여급이 죽어라고 먹지 아니하는 것을 보니 노라는 처음 그 빛에 홀리어 맛보고 싶던 생각이 쑥 들어가고 말았다.
 
249
"거 왜들 그래? 이건 술이 아니야. 맥주보담두 더 순헌 박하주야. 응?
 
250
자, 유리꼬상."
 
251
최주사는 술잔을 들었다가 노라의 입에 대어 주고 자꾸만 기울인다.
 
252
할 수 없이 어린아이 약 먹듯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253
미상불 술맛은 별로 없고 향긋하니 싸한 것이 더 먹으라면 더도 먹을 성 싶었다.
 
254
그러나 먹고 나서 한참 있노라니까 이상스러운 흥분이 온몸에 퍼지는 것 같았다.
 
255
노라는 '아뿔싸!’하고 후회를 하였으나 몸은 마음의 말을 곧잘 들으려고 아니 한다.
 
256
그는 기운을 가다듬어 가지고 허둥지둥 죠뀨베야로 몸을 피하여 와서 드러누워 버렸다.
 
257
노라가 카페에 나온 지 나흘째 되는 날.
 
258
"유리꼬상, 고안나이."
 
259
뽀이의 외치는 소리를 듣고 일어서서 보니 머리를 모두 까까중이로 깎고 볼때기에 애티가 졸졸 흐르는 중학생 ― 사오 인이 모두들 홍당무가 되어가지고 척척 들어선다.
 
260
"저게 뉘 집 자식들이야!"
 
261
노라가 앉아 있던 옆의 탁자에서 술을 먹던 손님 가운데서 누군지 혀를 끌끌 차며 이렇게 욕을 한다.
 
262
"나 같으면 그렇게 뒤로 욕을 허는 대신 한바탕 나무라 주지."
 
263
노라는 속으로 이렇게 뇌꼴스러워하면서 그래도 할 수 없이 그들을 맞이 하였다.
 
264
그들은 척척 걸터앉아서 담배 한 개씩을 제가끔 빼어 물고는 노라에게 성냥을 청한다. 성냥을 가져다가 탁자 위에 놓는 것을 그중에도 까스럽게 생긴 한 사람이 와락 채어다가 그어대면서 한 마디 쏜다.
 
265
"담뱃불은 좀 붙여주면 치가 깎이우?"
 
266
노라는 들은성만성하고 아무 말도 아니하였다.
 
267
"흥, 장히 도도 헌 걸…… ""생기긴 똑똑허게 생긴 게 왜 요 모양이야."
 
 
268
"두어두게. 우리가 어리다구 얕보구 그러네."
 
269
"흥, 어리다구?…… 그러면 버릇 가르킬까? 우리 어미 아비가 못 가르 키구 호랭이 체조 선생이 치를 떠는 우리시다. 괜히…… "그래도 노라는 아무 대꾸도 아니하였다.
 
270
"술 가져와."
 
271
탁자를 땅 치며 소리를 버럭 지른다.
 
272
"네. 무슨 술을 가져와요?"
 
273
노라는 속에서는 불이 치밀어오르나 겉으로는 까딱 아니하고 천 연 덕스럽게 수 응을 해댄다.
 
274
"막걸리."
 
275
"막걸리는 없습니다."
 
276
"막걸 리가 없으면 약주술."
 
277
"약주술도 없습니다."
 
278
"그러면 소주."
 
279
"소주두 없습니다."
 
280
"있는 건 무어야?"
 
281
"그런 술은 아무것두 없습니다."
 
282
"그러면 무슨 술이 있어?"
 
283
"맥주, 정종, 위스키 같은 양주는 무어나 다 있습니다."
 
284
"허, 그건 황송해 못 먹어…… 여보, 그러지 말구 막걸리 한 사발 사다주구려. 예? 네상."
 
285
좌석에서는 웃음이 와 하고 폭발이 된다.
 
286
놀림을 당하여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당하기는 처음이다. ― 더구나 어린 아이들에게.
 
287
그러나 이렇게 된 마당에야 그 자리에서 울거나 외치거나 해서 그들에게 약한 것을 보이고는 싶지 아니하다. 목구멍 밑까지 솟아오른 눈물을 애써 애써 참노라니 정신이 아찔아찔하다.
 
288
"정말 막걸리는 못 주겠수?"
 
289
"없어요."
 
290
"약주두?"
 
291
"없어요."
 
292
"소주두?"
 
293
"없어요."
 
294
"그러면 섭섭허니 냉수라두 한잔 주구려."
 
 
295
노라는 카운터로 가서 냉수를 인간 수효대로 청하여다가 늘어놓아 주었다.
 
296
"어 참, 네상. 인제는 죽어두 이 은공은 못 잊겠구려. 자, 우리는 그럼 갑니다."
 
297
그들은 냉수를 들이켜고 나서 히히덕거리며 밖으로 나가 버린다.
 
298
노라는 만만한 죠뀨베야로 올라가서 눈이 팅팅 붓도록 울고 나서야 겨우 속이 후련한 것 같았다.
 
299
그러나 다시는 더 번을 보지 아니하려고 그대로 드러누웠는데, 뽀이에게 억지로 끌리다시피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300
김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301
"웬일이요?"
 
302
김은 노라의 눈이 부은 것을 벌써 보고 놀라 묻는다.
 
303
노라는 무어라고 대답하여야 좋을지 몰라 아무 말도 아니하고 피쓱 웃기만 하였다.
 
304
"응, 왜 그래요?"
 
305
김은 몹시 안타까와 안절부절한다.
 
306
"왜 그러긴 무얼 왜 그래요?"
 
307
"눈이 팅팅 부었으니 말이지?"
 
308
"울었어요."
 
309
"왜?"
 
310
"거저."
 
311
"거저 울었다? 그럴 리가 있나?…… 사람이 우는 것이 기뻐서 울 때두 있구, 설어서 울 때두 있구, 분해서 울 때두 있구 다 각기 다른 법인데."
 
312
"그중에 하나겠지요."
 
313
"그중에 하나라? 그러면 무얼까?"
 
314
"그건 그렇게 자꾸만 캐선 무얼 허세요? 자, 술이나 드십시오."
 
315
"술? 응, 먹지."
 
316
그는 정종을 연거푸 서너 잔이나 따라서는 마시고 따라서는 마시고 하다가 필경 유리컵을 청하더니 한 잔을 그득 부어서는 단숨에 들이마신다.
 
317
"웬 술을 그렇게 과히 잡수세요?"
 
318
술기운만에 우선 취한 양으로 김은 눈을 몽롱하게 뜨고 노라를 끄윽 바라본다.
 
319
"여보, 집에 무슨 일이 있었소?"
 
320
"아니요."
 
321
"그럼 누구 동무허구 싸웠소?"
 
 
322
"아니요."
 
323
"오늘 누구 만난 사람 없소?"
 
324
"아니요."
 
325
"손님허구 싸웠소?"
 
326
"싸운 게 아니라 그저 그랬지요."
 
327
김은 원망스러이 노라를 바라보다가 다시 한잔을 그득 부어 들이켜려고 한다. 노라는 슬그머니 겁이 나서 술잔을 잡았다.
 
328
"그만 잡수세요."
 
329
"그만 먹으까요?"
 
330
그는 싱그레 웃으면서 술잔을 멈춘다.
 
331
"네. 취허시면 어떡허세요?"
 
332
"좀 취해야겠는데요."
 
333
"왜요?"
 
334
그는 대답 대신 두 손으로 노라의 손을 덥석 쥐고 바르르 떨며 가쁘게 숨을 쉰다.
 
335
"유리꼬상!"
 
336
"네?"
 
337
"나 나…… 아니 내가 꼭 할 말이 있어."
 
338
"말씀허세요."
 
339
저편이 긴장되는 데 따라 노라도 속으로는 공연히 긴장이 되었으나 태연하게 대답을 하였다. 김은 더 한번 힘을 주어 잡은 노라의 손을 막 끌어 쥐었다.
 
340
"나허고 결 결혼해 주어요."
 
341
"네?"
 
342
너무도 뜻 아니한 말에 어이가 없어서 노라는 실소를 할 뻔하였다.
 
343
"그건 무슨 말씀이세요?"
 
344
노라의 이러한 말씨랄지 태도는 김의 예상하는 바와는 어그러지게 반응이 적었다.
 
345
당장에 예스라고 대답은 아니하더라도 자기의 이와 같은 진지한 태도에 상당히 긴장하고 엄숙한 반응이 있을 것을 예기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대번에 기운이 쑥 빠졌다.
 
346
"왜? 내 말이 잘못되었소?"
 
347
"아니, 말씀을 잘못허셨다는 것이 아니라 너무 갑자기 그런 말씀을 허시니까."
 
 
348
"그러면 나라는 사람의 존재가 지금까지 유리꼬상의 머릿속에는 전연 인상이 백여 있지 아니했단 말씀이지요?"
 
349
"그럴 리야 있나요…… 저번에 말씀허신 대루 그저 다정헌 친구로 늘 생각 허구 있었지요."
 
350
거짓말이나마 이 자리에서 노라는 이렇게라도 그를 위로 아니해 줄 수 없었다.
 
351
그러나 실상은 김이 어찌하다가 머릿속에 떠오르면 그 자리에 병택이의 그림자가 또렷이 들어안고 김의 형적은 없어져 버리는 것이었었다.
 
352
"나는 그것으로는 만족헐 수가 없어요. 유리짱, 나허구 결혼해요, 네?"
 
353
"글쎄 왜 이러세요. 아마 술이 취하신가 봅니다."
 
354
"왜 그렇게 남의 속을 몰라 주시요. 남의 이 애타는 속을…… 당신이 이 대루 여기 한 달만 있으면 당신은 영영 헤어나지 못헐 구렁에 빠지구 맙니다. 나는 차마 그것을 ― 당신이 당신이 그렇게 되는 것을 볼 수가 없어요."
 
355
"글쎄 그렇게까지 생각해 주시니까 참 고맙기야 합니다만…… 결혼이란 건…… ""그러니까 결혼을 해주어요…… 지금 내가 학비로 집에서 오륙십 원씩은 가져다 쓰니까 그것이면 사오 명 식구가 근근이 살어가잖겠소?"
 
356
"글쎄, 그렇게 흥분이 되지 말구 침착허게 생각허세요…… 나 같은 사람이야 카페의 여급으로 있는 천한…… ""천만에 천만에."
 
357
김은 손을 내저으며 말을 막는다.
 
358
"누가 그따우 소리를 해요? 누가 유리꼬상을 카페 죠뀨라구 그래요! 아니지요."
 
359
"아니기는. 지금 당장 죠뀨 노릇을 허구 있는데, 아니라면 말이 되나요."
 
360
"아니, 그건 아니지요. 유리짱이 카페에 온 것이 아니라 카페란 놈이 유리짱 있는 데, 유리짱의 순진, 유리짱의 신성을 침노헌 것이지요. 그러니까 지금 지금 당장에 그놈을 몰아내야 해요."
 
361
노라는 졸리다가 기진하여 더 말대답을 할 수가 없이 되었다.
 
362
이 젊은이의 열정과 진실함이 고맙기는 하나 그것은 실상에 있어서는 코웃음 거리밖에는 아니 되는 것이다.
 
363
이 사람을 단념시키고 일후라도 더 조르지 아니하도록 하자면 자기의 과거와 모든 것을 이야기하든지, 그렇지 아니하면 결혼을 하였다고만이라도 말 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하면 저편에서 여간 낙망을 아니 할것이고…… 탁자에 고개를 파묻고 있던 김은 무슨 생각을 하였는지 얼굴을 번쩍들고 충혈 된 눈으로 노라를 끄윽 바라본다.
 
364
"그러면 약혼헌 이가 있소?"
 
365
한참 만에 그는 이렇게 묻는다.
 
366
노라는 속으로 생각을 하여 보았다.
 
367
그대로 숨겨둘까? 그렇지 아니하면 약혼한 사람이 있다고 해둘까?
 
368
약혼한 사람이 있다고 하면 지금 당장은 저편에서 실망을 할 테니 미안할 일이지만, 그렇다고 엉터리없이 남의 젊은이에게 희망을 주는 것도 못할 일인 것이다.
 
369
"네. 실상은 삼 년 전부터 서로 약속한 이가 있어서…… "겨우 말을 하고 노라는 고개를 숙이었다.
 
370
모든 것이 노라에게는 고달픈 단련이다.
 
371
닷새, 열흘, 그리고 한 달 되었다.
 
372
한 달이 지나매 카페의 공기에 제법 동화가 되어 서비스 같은 것도 그럴듯하였지만 그러나 그것은 겉으로뿐이요, 종시 길들기가 어려웠다.
 
373
김이 육장 두고 조르고, 이주사 최주사가 추근추근하게 달려붙는다.
 
374
수입은 에미꼬가 십 원 어쩌고 풍치던 것은 꿈 이야기요, 매일 사오 원씩 되던 것도 처음 며칠뿐이지 그 뒤로는 하루에 이 원이 들어오기가 어려웠다. 그리하여 삼 년 동안에 사천 원을 잡겠다는 꿈도 화장품 장사로 이천원을 모으겠다던 꿈과 한가지로 깨어지고 말았다.
 
375
그래도 인기가 좀 있다는 노라 자기의 수입이 이와 같이 한심한데 하루 저녁에 번이 한번도 돌아오기가 어려운 다른 여급들이 어떻게 살아가나?
 
376
그것이 처음 생각하기에는 기적 같았으나 차차 알고 보니 역시 그럴 듯 한 농간이 있는 것이었었다.
 
377
그들의 대부분은 남자가 있다. 맞아들이고 배웅함이 무상하기는 하나 그래도 팁의 수입 이외에 남자에게서 들어오는 부수입이 있다.
 
378
에미꼬나 그밖에 가까워진 동무들은 노라더러 최주사나 이주사를 맞으라고 권고를 한다. 그러할 때마다 웃고 대답을 아니하였다.
 
379
그러면 그들은 이렇게 빈정거린다.
 
380
"흥. 좀더 있어 보지…… 그런 거리나마 없어서 걸걸헐 테니…… ""우리두 첨 카페에 나와서는 술병을 들구 울었다네."
 
381
"나는 졸도를 헌걸."
 
 
382
"나는 사흘 동안 밥을 아니 먹구 운걸."
 
383
"남편이 있다면 모르지만 홀몸이면 무엇이 대껴서 그렇게 가다이해."
 
384
"카페 있는 계집이 어느 시절에 정렬부인이 될라구!"
 
385
시월도 보름이 지나고 나니 아침 저녁이 꽤 선선한 것은 그만두고라도 낮에도 햇발이 야위고 하늘이 파랗게 맑은 게 완연히 가을이다.
 
386
밤 두시까지 카페에 있다가 돌아오노라면 얇은 옷이 추워 달달 떠는 때도 있다.
 
387
노라는 이 한 달 동안 번 돈을 통히 따져 보니 육십 원에서 좀 모자란다.
 
388
그런데 쓴 것은 매일 육십 전의 일수 찍은 것 십팔 원과 밥값 십오 원을 주었고, 새로이 옷 두 벌과 구두 한 켤레를 또 산 것까지 합하면 칠십 원이나 된다. 그 초과되는 이십 원은 갈데없이 빚으로 처졌다.
 
389
밑지는 장사 ― 항용 생각하기에는 밑지는 장사면 당장에 그만두면 그 만이라고 하겠지만, 한 가지는 한번 들여놓은 환경에서 손쉽게 벗어져 나오기가 어려운 것과, 또 한 가지는 좀더 있으면 좀 나으려니 하는 희망을 누구든지 가지는 게 사람의 상정이다.
 
390
노라도 그러하였다. 기왕 카페로 나온 바이니 지금 그만두었자 당장 별 도리가 없을 것이요, 인제 가을이 되어 세월이나 좋으면 그래도 그 새까지보다는 수입이 나으려니 하는 생각으로 그저 머뭇머뭇하고 있는 것이다.
 
391
그러나 생활이 이렇게 줄곧 안정이 아니 되매 가을철로 들어서는 등 뒤에 마물이 따르는 듯한 불안과, 또 한 가지 무엇엔지 차지 못한 적막이 고요한 석양이면 마음 구석을 차지하여 한숨이 절로 나오곤 하였다.
 
392
어린아이들은 카페로 나온 뒤에 만나기를 아주 단념하였다. 물론 그립지아니한 것이 아니나 카페의 여급인 어미로서는 아무리 철없는 어린아이 들일 망정 스스로 대할 낯이 없는 것이다.
 
393
어린아이들까지 이렇게 단념하여야만 된 그는 도무지 마음 붙일 곳이라고는 없었다.
 
394
'병택이는 나를 이해해 주겠지.’
 
395
'언제나 한번은 만날 수가 있겠지.’
 
396
이것이 지금의 노라에게는 유일의 희망이다.
 
397
이렇게 뒤숭숭하면서도 사라질 듯이 고적한 마음으로 저녁 화장을 하고 있는데 마침 석간신문이 배달되었다.
 
398
일상 하는 버릇으로 잠시 손을 멈추고 사회면의 제목을 죽 훑어보던 그 의눈은 자지러지게 놀라 어느 한 제목에로 쏠리었다.
 
399
"×재건 중심 인물 오병택 필경 체포 쿠리로 변장코 국경 넘다 국경 이 동반에게 "노라의 눈이 쏠린 것은 이 제목이다.
 
400
'×재건’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 노라는 알지 못하나 병택이가 중국 노동자로 변장하고 국경을 넘어가다가 붙잡혔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가 있다.
 
401
그는 화장하던 것을 밀어치우고 단숨에 기사를 읽어 내려갔다.
 
402
"[신의주] 금년 봄 이래 ×××××의 지령을 받아 조선×××재건을 획책 하던 사건이 경찰의 탐지한 바 되어 지난 팔월 이래 전북 경찰부, 경기도 경찰 부, 평북 경찰부 등이 협력하여 전기 삼도에 뻗쳐 있는 연루자 다수를 검거 취조한다 함은 누보한 바거니와 아직 미체포된 관계자 중에 동 사건의 중심 인물인 오병택의 행방에 대하여 극력 수사를 계속하던바 십칠일 오전 국경 이동경찰대가 신의주발 북행열차를 검사하던 중 행동이 수상한 중국인 쿠리 일 명을 검거하여 취조한 결과 그는 의외에도 전기 조선××× 재건 사건의 중심 인물 오병택인 것이 판명되었다. 동인은 처음은 완강히 사실을 부인 하였으나 옷 속에 비밀을 숨겨 가진 서류며 또 인상 등을 미루어 움직일 수 없는 증거에 대하여 필경 소성을 자백하였다. 그리하여 동인은 불 일간 경성으로 압송할 터인데, 그는 그와 같이 사건이 탄로되매 모스크바로 피신 하려다가 체포된 것이라 한다."
 
403
기사는 여기에서 끝이 나고 다시 작은 제목으로 ' 오의 경력’이라고 한 밑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404
"별항 보도 ― 오병택은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전 중국· 만주· 모스크바 등지로 돌아다니면서 ××××의 이론과 실제를 연구하고 조선에 돌아와 당시 제×차 조선×××당 사건에 연좌되어 경성 서대문형무소에서 사년간 복역을 하였다.
 
405
만기 출옥 후 그는 그의 고향에 돌아가 술먹기와 놀기로 세월을 보내고, 또 바보가 된 듯이 세상일을 돌아보잖고 지내었다. 그러나 그것은 경찰의 감시의 눈을 피하기 위함이요, 그때부터 벌써 각 지방의 동지와 비밀한 연락을 취하여 가며 준비운동을 하다가 금년 봄 ×××××의 지령이 나온 것을 기회로 경성으로 올라와 그와 같이 본격적 운동에 착수한 것이다."
 
406
노라는 신문을 다 읽고 나서 한동안 넋이 나간 듯이 망연히 앉아 있었다.
 
407
노라는 이 신문 기사로써 전날 병택이에게 가졌던 의혹이 다 풀리었다.
 
408
바보도 같아 보이고 반편스럽게 우물우물하던 것, 그리고 간다온다 말이 없이 종적을 감추어버린 것, 모든 것이 속이 있어서 그러한 것이다.
 
409
그러나 올 봄 이래 같은 서울 안에 있었으면서 그렇게도 ― 물론 숨어 앉았으니까 그러기도 했겠지만 ― 만나지 못한 것이 발을 구르고 싶게 안타까 왔다.
 
410
그러나 그것은 지나간 일이라 하더라도 병택이에게 대하여 무엇인지 모를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지내가려는 노라에게는 크나큰 타격이 되었다.
 
411
무엇이 실망인지 모를 실망에 그는 정신을 잃다시피 한 것이다.
 
412
화장을 하고 카페에 나갈 생각도 먹히지 아니하고 남식 어머니가 가져다놓는 밥상을 보아야 밥 먹고 싶은 생각도 나지 아니하고 그저 우두커니 병택이에 관련된 여러 가지 두서 없는 생각을 뒤지고 앉았는데 혜경이가 찾아왔다.
 
413
노라가 카페에 나간 뒤로 처음이다. 물론 혜경이가 그동안 밤으로 몇 차례 찾아오기는 하였지만 만나지 못하였다.
 
414
혜경이가 찾아오지 아니하였다 하더라도 노라가 찾아가서 만났어야 할 것이지만 그동안 그는 혜경이를 만나기를 피하였던 것이다.
 
415
그러나 얼룩얼룩한 옷을 걸어놓고 혼란스런 화장품을 늘어놓은 경대 앞에서 필경은 혜경이와 마주치고 말았다.
 
416
병택이의 일로 해서 경황이 없는 중에도 이 장면을 혜경이에게 보이게 되매 노라는 여간만 낭패해하지 아니하였다.
 
417
아무 때 알게 되어도 알게는 되겠지만 그러나 알게 되는 그날이 노라는 무서웠던 것이다.
 
418
"웬일이야?"
 
419
혜경이는 대번 이렇게 묻는다.
 
420
이 웬일이냐고 묻는 것은 여러 가지 말이 포함된 것이다.
 
421
저 얼룩덜룩한 옷이 웬일이며, 저 혼란스러운 화장이 웬일이며, 추렷 하다가 당황해하는 게 웬일이며, 또 그렇게 만날 수가 없는 게 웬일이냐는 말이다.
 
422
노라도 그 뜻을 알기는 하나 대답할 말은 없다.
 
423
혜경이도 물론 막연하게나마 수상한 눈치는 채었다. 그보다도 앞서 남수 네 집에서 수상하게 여겼던 것이다.
 
424
첫째, 염집 여인이 입지 아니하는 옷을 입고 혼란스럽게 화장을 하고, 그리고 저물게 나갔다가 두시 세시에 들어와서는 오정이 지나도록 잠을 자고…… 이 뜻을 몇 차례 혜경이가 찾아왔을 때 남수와 그 어머니는 걱정삼아 이야 기를 하였던 것이다.
 
425
그 말을 듣고 혜경이는 불안한 예감이 들었으나 그 자리에서는 그럴 듯이 꾸며 대어 주인들로 하여금 이상하게 여기지 아니하도록은 하려 하였던 것이다.
 
426
물론 두 군데 ― 혜경이나 남수네 집에서나 노라가 카페에 나가느니라고 짐작은 못하였다. 차라리 그보다 은근짜 등속으로(그렇게 생각하기를 스스로 두려워하면서도) 돌아다니지 아니하나 하였던 것이다.
 
427
말을 물어도 노라가 대답이 없이 쓸쓸히 고소하는 것을 보고 혜경이는 재우 쳐 묻는다.
 
428
"응? 웬일이야. 어찌 그리 볼 수가 없어?"
 
429
"내가 좀 바뻐서."
 
430
노라가 눈치를 보아가면서 이야기를 해버리려고 맘에 작정하였다.
 
431
혜경이는 그냥 놓아둔 밥상과 화장품 진열장 같은 경대 앞과 화장 하다만 노라의 얼굴과 그리고 벽에 걸린 옷들을 연해 번갈아 본다.
 
432
"밥 먹구려."
 
433
"응. 먹구 싶잖어서."
 
434
"옷은 저게 웬 거야?"
 
435
"내가 입는 거지."
 
436
노라는 다시 고소를 하며 옷을 돌아본다.
 
437
"무슨 옷이 저렇게 혼란스러워?"
 
438
"젊어지구 싶어서."
 
439
"그러지 말구 바른 대로 다 이야기를 허구려."
 
440
혜경이는 정색을 하여가지고 몸을 바로잡아 앉는다.
 
441
"먹어야 사람이 살지?"
 
442
노라는 우선 혜경이에게 이렇게 말을 낸다.
 
443
"그렇지…… 사람이 먹잖구 사는 수야 있나?"
 
444
"먹구 살자면 돈이 있어야지?"
 
445
"그렇지."
 
446
"돈은 벌어야 생기지?"
 
447
"그렇지."
 
448
혜경이의 얼굴은 점점 초조하여 간다. 그 대신 노라는 도리어 침착하여진다.
 
449
"그런데 내게 돈을 벌 재주가 무엇이 있수? 화장품 장사를 해보았지만 그걸 가지고는 밥벌이가 아니 되구, 그러니 할 수 없이 딴 도리를 차려야 지."
 
450
혜경이는 대답이 없이 잠잠히 노라를 바라보고 앉아서 그 다음 말을 기다린다.
 
451
"그래 할 수 없이…… 자본 아니 드는 장수 ― 카페 여급이 되었수."
 
452
혜경이의 눈에는 차차차차 눈물이 괴기 시작하다가 그만 촤르르 쏟아져 내려온다.
 
453
"어쩌면 사람이 그 지경이 되었수."
 
454
목이 메었으나 원망스러운 말씨다.
 
455
"나는 몰라…… 내가 카페 여급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내가 허구 싶어서 헌 건 아니야…… 카페에서 밥그릇이 나를 불러갔지."
 
456
노라는 여전히 쌀쌀하다. 혜경이는 옷고름을 집어 눈물을 씻는다.
 
457
"그렇다구 나더러 한 마디 상의라두 허잖구!"
 
458
"상의했다면 얼른 그러라겠수?"
 
459
"내가 있는데 노라 밥을 굶길까버?……"
 
460
혜경이는 노엽게 노라를 바라보다가 한마디 잘라서 내놓는다.
 
461
"자, 지낸 이야기는 그만두구 우리 집에 가서 있읍시다."
【원문】12. 뭇사람의 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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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만식(蔡萬植)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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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07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