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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형의 집을 나와서 ◈
◇ 4. 지나친 객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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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5
채만식
1
人形[인형]의 집을 나와서
2
4. 지나친 객기
 
 
3
전 도부인이 찾아와서 긴한 청이라면 예수를 믿으라거나 사업에 돈을 기부하라는 것밖에 없을 것이다.
 
4
노라는 마땅치가 못하였으나 말도 듣기 전에 무어라고 거절할 수는 없는것이다.
 
5
그러나 듣고 보니 청이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노라더러 부인 야학의 선생이 되어달라는 것이다.
 
6
이곳 예배당의 주최로 가정부인을 중심하여 야학을 시작하게 되었다. 다른 설비는 다 되었으나 선생이 없어 시작을 못하고 있었다.
 
7
남자로 선생을 쓰자면 없을 것은 아니나 아직도 내외를 하고 있는 가정부인들 이니 안될 말이요, 그렇다고 딴 곳에서 여선생을 데려오자니 상당한 보수를 주어야 하겠고, 그래서 야학은 거의 열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었다.
 
8
그런데 마침 노라가 피접을 와서 한동안 있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쫓아와서 교섭을 하게 된 것이다.
 
9
"병으로 와서 계시다는데 신용돈도 못 드리고 공으로 해주시라기가 염치는 없읍니다만 그저 이것도 사업이니까…… "하고 전도부인은 말을 맺는다.
 
10
노라는 예상하였던 청이 아닌 것이 다행하였으나 즉석에서는 대답을 아니하였다.
 
11
어머니한테 그런 방면의 속사정도 물어보고 병택이와도 상의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12
그리하여 이삼 일 후에 확실한 대답을 하여주기로 하고 전도부인을 돌리어 보냈다.
 
13
어머니도 그다지 반대는 하지 아니하였다. 어머니의 생각에는 이곳에서 봉같이 뛰어난 딸의 자랑을 남의 앞에 많이 내놓고 싶었던 것이다.
 
14
병택이도 소일 겸 해보는 것이 좋겠다고 말은 하나 자기의 의견이 어떻다 는 것은 말을 하지 아니하였다.
 
15
노라는 병택이의 이 태도가 보아갈수록 수수께끼 같았다.
 
16
확실히는 모르겠으나 상당한 학식이 있고 삼십이 넘은 혈기 왕성한 청년이니 무슨 일에든지 자기의 식견과 주장을 세워가지고 주위의 사람들을 그리로 말려 할 것인데 으례 무슨 말을 물으면 "나는 모르겠읍니다만."
 
17
"내야 무얼 압니까만."
 
18
"그렇겠지요."
 
19
같은 말로 얼버무려 넘기기가 일쑤다.
 
20
이 시비와 선악의 판단을 내리지 아니하려는 태도는 절반 삶은 고구마 같아서 사람이 몹시 농판스러운 반면이 보였다. 전에 어렸을 때나 서울서 볼때의 병택이는 결코 그렇지 아니하였다.
 
21
노라는 이 사람이 과거 십여 년간 어떠한 생활을 하여왔는지 어머니 한테라도 한번 물어보려고 마음을 먹었다.
 
22
노라는 야학 선생이 되기로 작정을 하였다. 그러나 야학에 갔다가 돌아올 때에 어떻게 할까가 문제가 되었다.
 
23
예배당에서 이 재실골까지 그다지 멀지는 아니하나 요즈음 인심이 소란하여진 이때에 젊은 여자가 호젓한 밤길을 밤마다 다니기는 안심이 아니 되는 일이다.
 
24
저녁마다 돌아올 때면 데려다 준다는 조건을 붙이어 승낙을 하라고 병택이가 권고하였다. 그러나 노라는 너무 거만한 짓이라서 반대하였다.
 
25
여러 가지 상의하던 끝에 야학 장소를 이 집 안방으로 정하도록 하자는 데이 야기가 작정이 되었다.
 
26
예배당보다는 동리에서 좀 먼 혐의가 있기는 하나 그 대신 나무와 석유가 절약이 되는 이익이 있으니 저편에서는 도리어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 하였다.
 
27
도배를 마치고 저녁 후에 병택이가 돌아가자 어머니는 바느질감을 들고 앉았다.
 
28
노라는 오늘 온 신문을 펴들었다. 서울서는 내일 날짜로 박인 것을 오늘 저녁에 미리 보았는데 이것은 어제 신문이다.
 
29
신문을 보다가 생각이 나서 노라는 병택이에 대한 이야기를 어머니한테 물었다.
 
30
어머니도 병택이의 십 년간 지내온 내력을 깊이 알지는 못하였으나 노라에게는 새 소식이 많았다.
 
 
31
병택이가 일본 가서 있는 동안 병택이의 집안은 몰락이 되었다. 본래 벼로한 이백 석 추수하던 터이니 그리 큰 재산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그다지 군색 치 아니한 살림살이를 하였는데, 병택이의 형은 언제부터 손을 대었는지 토지 전부를 은행에 저당한 돈은 군삼 미두시장에서 다 없어져버렸다.
 
32
병택이는 그 아버지의 부음을 받고 돌아온 길에 다시 공부를 계속치 못 하였다.
 
33
장자인 병택이 형에게 살림이 맡기어지자 정신이 들었던지 약간 남은 논과 밭을 금융조합에 잡혀 그것을 자본삼아 가지고 농민들을 상대로 돈 놓이를 하며 근근히 살림을 하며 나왔다.
 
34
병택이는 우울한 몇달 동안을 고향에서 보내다가 슬며시 집을 나간 뒤로는 묘연히 소식이 그치었다.
 
35
그가 어디 가서 무엇을 하였는지를 이곳 사람이 알기는 사 년이 지난 뒤에 그 의 소식이 예심결정서를 통하여 신문에 발표되었을 때다.
 
36
그는 삼 년 동안 형무소에 들어가 있다가 작년 정월에 놓여나와 고향으로 돌아왔다.
 
37
그때부터 병택이에게는 전에 없던 반편스러운 우물우물하는 버릇이 생기었다.
 
38
그것을 이곳 사람들은 그가 경찰서와 형무소에서 모진 고생을 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하였다.
 
39
그는 고향에 돌아와서 하는 일이 없이 놀고 있다. 가끔 취직운동을 한다고 타관에를 가기는 하나 어디를 가는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
 
40
또 가끔 그의 친구라고 넥타이를 매지 아니한 청년이 어디선지 찾아오는데 그럴 때면 병택이는 그와 한가지로 술을 먹고 유쾌하게 논다.
 
41
주재소에서는 늘 그의 행동을 주목하나 요즈음 와서는 매우 안심한 듯 하였다. 순사부장 한 사람과 순사 한 사람 단둘이 있는 이곳 주재소의 경찰력으로 그가 타관에 가는 것까지 미행을 하고 감시를 할 수는 없는 것 이었었다.
 
42
혹 수상한 서신을 받는다든지 무슨 비밀한 행동을 하는 눈치가 보인다면 군산의 본서와 협력하여 철저히 감시를 하겠지만 농판이같이 된 그를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고 안심을 한 것이다.
 
43
그는 책을 읽는 것과 가끔 타관에를 가거나 찾아온 타관 친구와 술을 먹는것과 또 사랑에 놀러 오는 사람들과 화투를 치는 외에도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다.
 
44
청년회 같은 데는 출석도 하지 아니하지만 무슨 책임을 맡겨도 맡지를 아 니 한다. 야학을 열고 아이들을 가르쳐달라고 하여도 못한다고 잡아떼었다.
 
45
조금 의식이 더 나아갔다는 어느 친구가 농촌소비조합을 설립하자고 하니까 먼저 시작을 해놓으면 보아서 참가하겠다고 회피하였다.
 
46
그 친구가 분개해서'우라기리모노’라고 욕을 하니까 웃으면서 네 따위가 무슨 소비조합을 하겠느냐고 놀려 주었다.
 
47
그는 이와같이 아무 일도 아니하면서 심심한 때면 아무 집이라도 찾아가서 노인이고 젊은 사람이고 할 것 없이 뼈없는 이야기를 하고 해를 보내었다.
 
48
노라의 어머니한테도 종종 찾아왔었다.
 
49
그 때문에 노라가 온 뒤에도 병택이가 찾아가는 것을 물론 이상하게 보기는 하였지만, 처음 한동안은 비교적 무심히 보았던 것이다.
 
50
형제간의 의가 퍽 좋았다.
 
51
병택이의 형님 되는 사람은 어려운 살림을 하면서도 아우가 그렇게 번들번들 놀고 먹는 것을 조금도 싫어하지 아니하였다.
 
52
도리어 아우가 쓸 곳이 있다고 하면 어떻게 해서라도 돈을 변통하여 주곤 하였다.
 
53
그것을 동리 사람들은 형이 잘못하여 아우에게 돌아가는 재산까지 없애었기 때문에 그것이 미안하여 그리하는 것이라고 해석을 하였다.
 
54
병택이도 남의 예에 빠지지 아니하고 조혼을 하였다.
 
55
역시 예에 빠지지 아니하고 어렸을 때에는 사이가 나쁘지 아니하다가 중학을 마치고 동경에 가서 있는 동안은 늘 이혼을 시켜달라고 집안을 졸랐다.
 
56
방학때에 돌아와서도 졸랐다.
 
57
공부를 작파하고 집에 돌아와 있을때에는 조르던 부모는 아니 계시니까 부인을 졸랐다.
 
58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집을 떠나갔다가 칠팔 년 만에 돌아왔다.
 
59
이번에는 이혼을 하자고는 하지 아니하였다. 자기도 직업이 없이 형에게의 탁하고 있는데 두 식구가 한데 매어달릴 수가 없으니 친정에 가서 있으라고 하였다. 서로 갈리어 있다가 이십 년 후에 ── 나이 오십이 넘거든 서로 만나자고 하였다.
 
60
이혼한다고 조르는 남편을 둔 여인이 혼자 살기쯤은 단련이 되었다. 다행이 이혼이 아니라 먹을 것이 없으니 각각 얻어먹을 곳에 헤어져 있자고 하는 것은 이혼하자는 것보다 몇곱이나 고마운 말이다.
 
61
요행 친정은 소박 아닌 소박을 맞은 딸 하나쯤 먹여 살리기에는 그다지 군색 치 아니한 터라 그의 부인은 이십 년 후에 다시 만나자는 말에 순종 하여 친정으로 돌아갔다.
 
 
62
어느 사람은 그것을 보고 병택이가 중국 가서 있었다더니 그 사람들의 배포를 본받아서 여편네를 쫓는 데도 그러한 꾀를 썼다고 하였다.
 
63
노라는 이와같이 몇가지 병택이에게 대한 새 사실을 알기는 하였으나 그 의 수수께 기 같은 일면에 대한 의혹은 풀지를 못하였다.
 
64
이튿날 노라는 서울 사진관으로 아이들 사진을 재촉하는 편지를 썼다.
 
65
오후에 병택이가 찾아왔다.
 
66
노라는 그가 어떠한 종류의 서적을 보나 알아보려고 책을 한 권 빌려 달라고 하였다.
 
67
"책이 머 있나요. 소설을 좋아하시잖습니까 ?"
 
68
하고 병택이 내키잖는 대답을 한다.
 
69
"하필 소설이 아니라도 괜찮아요. 병택씨가 요새 보신 것 중에서 재미있다고 생각하신 것이면 아무 거나…… "병택이는 속으로 실소를 하였으나 겉으로는 천연덕스럽게 대답을 한다.
 
70
"글쎄요. 무에 있을는지 하나 찾어보지요."
 
71
어머니가 옆에 앉았다가 책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고 한몫을 든다.
 
72
"야야, 책을 얻어올라거던 「유충렬전」이나 「심청전」을 얻어오려무나."
 
73
노라는 소리를 내어 웃었다.
 
74
"흥 야야, 너는 암만 웃어도 「유충렬전」이 참 좋니라."
 
75
"그렇게 좋시면 돌아오는 장날 한 권 사다 드리께."
 
76
"아서라, 야야. 돈 아깝다…… 보구 싶으면 차라리 얻어다 보지…… 나는 「 유충렬전 」 허구 「장화홍련전」을 보면서 퍼 울었니라 만…… ""한번 본 소설책을 무슨 재미루 또 보시우?"
 
77
"볼수록 좋더라."
 
78
그러자 밖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찾는 소리가 들렸다.
 
79
이삼 일 후에 오겠다던 전도부인이 벌써 온 것이다.
 
80
그는 방에 들어와서 병택이의 인사를 받으면서도 마음속으로 좀 못마땅해하는 눈치가 보였다.
 
81
"밖에서 듣자니 소설책 이야기를 하시는가분데 소설책보담 성경을 좀 보시지."
 
82
하고 전도부인의 본령을 발휘한다.
 
83
"성경책에야말로 만고 진리가 다 있고 하나도 버릴 말씀이 없지요. 한마디 한마디 죄다 옳은 말씀이니깐…… ""공자님 말씀보담두 더 옳아요?"
 
 
84
하고 어머니가 반박한다.
 
85
"공자님 말씀도 옳은 말씀이 있기는 하지만 성경 말씀만은 못하지요."
 
86
"체! 우리 조선 사람이 살어가는 것이 모다 공자님 말씀을 지키고 사는디 그 레요 ?"
 
87
"공자님 말씀은 다 옛말이지요."
 
88
두 마나님을 그대로 두어두면 그 토론이 끝이 없을 것 같았다.
 
89
그리하여 노라는 중간을 타고 나서서 이야기를 꺼내었다.
 
90
노라는 야학을 보아줄 것을 승낙한 뜻을 말하였다.
 
91
그런데 밤으로 다니기가 괴롭거나 싫다느니보다 호젓하여 안되었으니 자기 집 안방을 교실로 쓰는 것이 어떠하냐고 물었다.
 
92
전도부인은 두말 없이 좋다고 하였다. 그리고 방을 한번 둘러보았다.
 
93
"이칸이라도 넓은 이칸잉개루 넉넉허지라우."
 
94
하고 어머니가 방을 설명한다.
 
95
"웃목에 있는 세간이나 대청(마루)에다 내다놓면 삼십 명은 들어 앉지…… ""네. 넉넉하겠읍니다…… 그렇지만 마나님이 괴로우시잖얼까 ?"
 
96
"아니요. 나두 우리 딸한티 글을 배울 라우…… "네 사람은 모두 웃었다. 전도부인은 돌아가면서 개학할 날짜를 내일 다시와 서 알리어주마고 하였다.
 
97
사흘 후에 야학이 시작되었다.
 
98
웃목에는 조그만한 칠판을 걸어놓고 주최측에서 석유 한 양철과 같이 가져온 큰 램프를 방 한가운데 걸어놓았다.
 
99
책상도 걸상도 없었다. 매우 불편할 줄 알고 무슨 도리가 없을까 하여 여러가지로 궁리하여 보았으나 필경 어찌하는 수가 없었다.
 
100
다만 선생용으로 조그만한 교탁 한 개를 칠판 앞에 놓고 그 위에다 출석 부와 분필갑을 올려놓았다.
 
101
야학생은 일찍부터 꾸역꾸역 모여들었다.
 
102
심한 이는 시간 전에 오기도 하고, 어떤 이는 아홉시가 다 되어서 온 이도 있었다.
 
103
또 어떤 부인은 서너 살이나 먹은 어린아이를 업고 와서 한바탕 울 리기도 하였다.
 
104
그들은 대개가 삼십이 넘고 사십이 넘은 가정부인들이고, 그밖에 젋은 색시 몇 사람과 처녀 색시도 두엇이나 있었다.
 
105
그들은 야학 공부보다도 선생인 노라에게 흥미가 끌리어 온 사람이 많이 있었다. 그리고 노라와 보통학교의 동창이요, 요전에 찾아왔던 동무 가운데 하나인 옥순이라고 부르는 여인도 왔었다.
 
106
이 여인은 이곳에서 가르치는 것이 보통학교의 정도에도 미치치 못 할 터인데 무엇을 배우자고 왔는가 하여 노라는 이상히 생각하였다. 시간은 여덟 시로부터 열시까지 세 시간.
 
107
"거룩하신 아버지시여! 이와같이 한방에 모여 귀한 학문을 배울 길을 열어주시니 감사하고 감사하옵나이다. 바라건대 이것이 앞으로 길게 계속 되어다같이 하나님 아버지의 덕을 사모하는 자매가 되게 하여 주시도록 성 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108
두어 마디 아멘의 합창이 들리었다.
 
109
노라는 슬그머니 화가 났다.
 
110
전에 한(韓)목사가 자기에게 종교란 이런 것이니 저런 것이니 이야기를 들리어주면서 결국 한 말의 요령은 안해로서의 덕이 남편에게 절대로 복종 하는 데 있다고 한 것을 생각하였다.
 
111
그런데 지금 이 전도부인은 야학을 한다는 이름으로 무지한 여러 여자를 모아놓고 하는 것이 야학보다는 야소교의 전도에 더 힘을 쓰려고 하는듯 하였다. 그리하여 그 결과는 이 부인들에게도 여자의 덕으로 남편에게 절대의 복종을 가르치려는 것이라고 노라는 생각하였다.
 
112
그는 야학을 당장에 해산하여 버릴까 생각하였다. 전도부인은 기도를 마치고 나서 다시 "하나님이 이 세상 만물을…… "하고 이야기를 꺼내었다.
 
113
노라는 그 옆으로 다가섰다.
 
114
노라는 차라리 이럴 테면 나는 이 야학을 해산시켜 버리겠다고 항의를 하려고 나선 것이었으나 문득 한 계책이 머리에 떠올라 그대로 두어두었다.
 
115
전도부인은 지리하게 무어라고 이야기를 하고 나서 비로소 노라를 소개 하였다.
 
116
노라는 코와 코를 마주 대다시피 하고 앉아서 너무 형식을 차리는 것이 얼굴이 간지러웠으나 할 수 없이 교탁 앞으로 나서서 간단하게 인사를 하였다.
 
117
야학생들은 선생인 노라가 흥미있는 존재인만큼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나 나올까 하고 기다리다가 평범한 인사에 그치는 것이 모두들 섭섭해하는 것 같았다.
 
118
첫날은 반을 가르고 출석부를 만들고 그밖에 몇가지 야학생들의 준비 할 물건을 말하여 준 뒤에 다음날부터 공부를 시작하기로 하였다.
 
119
야학은 끝났으나 모두들 노라를 '구경’하고 그의 이야기를 듣느라고 오래도록 있다가 헤어져 갔다.
 
120
이튿날은 아침부터 노라는 병택이가 기다려졌다. 적적도 하려니와 어쩐 지그가 자꾸만 기다려졌다.
 
121
배달된 신문을 고루 샅샅이 뒤지며 파적을 하고 있는데 저녁때에 병택이가 찾아왔다.
 
122
"아이구, 어찌 이렇게 늦게 오세요!"
 
123
이렇게 불쑥 나온 말을 걷잡지 못하여 노라는 얼굴이 화끈 달았다.
 
124
병택이의 눈치를 보았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 같아서 안심을 하였다.
 
125
"볼일이 좀 있어서요…… 책 가져왔읍니다."
 
126
하고 병택이는 외투 포켓 속에서 조그마한 책 한 권을 꺼내준다.
 
127
파르스름한 포장(布裝)을 한 사륙판의 조그마한 책인데 술은 꽤 많았다.
 
128
노라가 받아들고 이리저리 뒤집어보니 등에다 『부인론』이라고 썼다.
 
129
"재미있어요 ? 요새 보셨어요 ?"
 
130
하고 물어보았다.
 
131
"보긴 전에 보았는데 글쎄 원 재미가 있을는지…… ""요새는 무슨 책을 보세요 ?"
 
132
병택이는 씩 웃으면서 "아무 거나 보지요."
 
133
하고 대어주지 아니한다.
 
134
잠깐 앉아서 이야기를 하다가 병택이는 볼일이 있다고 돌아갔다. 이렇게라도 만나고 나니 이날 일과를 한 것 같아서 노라는 마음이 가뿐하여 졌다.
 
135
병택이가 돌아간 뒤에는 그는 가져다 준 책을 펴보았다.
 
136
『부인론』…… 베벨의『부인론』…… 많이 듣던 이름 같았다.
 
137
책장을 훌훌 넘기면서 보니 군데군데 붉은 연필로 언더라인이 치어 있다.
 
138
목차를 훑어보니 꼭 보고 싶은 것들이다.
 
139
그리하여 우선 서문을 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첫머리를 조금 보는데 글자는 알아도 뜻은 모를 말이 많았다.
 
140
한 페이지 가량 보는 데 삼십 분은 걸리는 것 같다. 그러고도 의미를 이해 할 수가 없다. 싫증이 나서 내던졌다가도 잘 보아가지고 잘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간절하였다.
 
141
미련이 생겨서 내던졌던 것을 도로 집어 중간을 펴놓고 보았다.
 
142
더 알 수가 없다. 다뿍 식욕은 생기는데 먹을 줄을 몰라 먹지 못하는 것 같 이 안타까왔다.
 
143
저녁 후에는 야학생들이 모여들었다.
 
144
여전히 삼십여 명이나 되는데, 그중에는 어젯밤에 왔다가 아니 온 이도 있고 오늘밤에 새로 온 이도 있었다.
 
145
갑반에는 언문의 모음을 칠판에 써놓고 그것을 베끼라고 하고, 을 반에는 산술을 가르치려고 하는데 어느 을반 부인 하나가 "우리 그 어린애들 입히는 짜께(자켓) 뜨는 법이랑 장갑 뜨는 법이랑 목도리 뜨는 법이랑 가르쳐 주 ── "한다.
 
146
노라는 그것을 배우자면 실도 사야 하고 바늘도 여러 가지 사야 하는데 그렇게 준비를 할 수가 있느냐고 물었다.
 
147
모두들 좋다고 한다.
 
148
그래서 편물을 시간에 넣기로 하니깐 갑반에서 우리도 가르쳐 주어야 한다고 와글와글 떠든다.
 
149
그들의 주장이 절창이다.
 
150
"우리가 인제 새삼스럽게 글을 배우면 진사 급제를 하겠소 ? 차라리 당장 집안에서 써먹을 것이나 배우지."
 
151
이러니저러니 이야기 끝에 그러면 과정을 고치어 재봉과 편물을 한 시간씩 공동으로 하고 언문과만 갑을반을 따로따로 하기로 하였다.
 
152
그렁저렁 한 이 주일 야학을 계속하였다. 그리하는 동안에 야학생이 하나 줄고 둘 줄고 하다가 음력 섣달 그믐에 닥쳐서는 두 반을 합하여 열명도 남지 못하였다.
 
153
노라가 선생이 되어 야학을 한다니까 모두들 호기심에 끌리어 너도나도 모여들었던 것이 결국 다니면서 보아야 별 신통스러운 것이 없어 싫증들이 난것이다.
 
154
그러한데 이 야학에 결정적 타격을 준 사건이 생기었다.
 
155
노라는 야학생들에게 학과를 가르치는 것 외에 가끔 시간을 내어가지고 신 문 기사를 참고삼아 세상 형편 이야기도 하여 들려주고, 일반 가정생활의 비판 같은 것도 하여주었다. 미신에 관하여서는 사제간의 굉장한 토론도 있었다.
 
156
그리하던 끝에 어느 날인가 구 가정부인의 부덕(婦德)을 비판하는 의미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이것은 개학하는 첫날에 노라가 이미 마음에 계획하고 있었던 것이다.
 
157
이야기는 결혼으로부터 시작이 되었다.
 
 
158
그들 ── 야학생들도 다같이 세상살이의 첫걸음인 결혼부터 잘못하였다.
 
159
아직 생리적으로 완전히 발육이 되지 못하고 정신적으로도 한 사람 몫을 하지 못하는 어린 소녀가 역시 입에서 젖비린내가 나는 신랑한테로 시집을 온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시집 장가가 아니라 양편의 어머니 아버지가 자기네의 딸과 아들에게 고운 옷을 입히어 가마 태우고 말 태워 초례청에서 절하고 하는 결혼의 흉내를 내는 재롱을 보는 재미로써 그렇게 시킨 것이다.
 
160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여왔을 때에 야학생으로부터 질문이 들어왔다.
 
161
사람마다 자식 낳고 딸 낳으면 다 이십 전에 혼인을 하여 저희끼리 쌍쌍이 잘 사는 것을 보고, 또 그 몸에서 생겨나는 손자의 재롱을 보는 것이 인생의 낙이요 부모 된 사람의 마땅히 할 일 이다. 그리고 자녀 된 사람은 부모가 시켜주는 대로 좇아야 효도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몇사람 중년 부인의 노라에 대한 질문 겸 반박이었었다.
 
162
여기에 대하여 노라는 결혼의 의의를 설명하였다.
 
163
결혼이라는 것은 부모에게 재미를 뵈려고 하는 것도 아니요, 자식을 낳아서 부모에게 손자 보는 재미를 뵈려는 것도 아니다. 결혼이라는 것은 서로 사랑과 이해와 동정이 있는 완전히 성인 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합이 되어 가정을 이루는 것으로, 인생의 행복을 누리고 나아가서 종족을 번식 시킴으로써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이라고 말을 하였다.
 
164
"부모 없는 자식이 어디 있고 자식 없는 부모가 어디 있담. 그럴 티면 부모 자식이 좋달 것이 무어여!"
 
165
하고 중얼거리는 이도 있고 "그건 되놈의 법이다."
 
166
하고 혼잣말같이 비웃는 이도 있었다. 노라는 상관치 아니하고 이야기를 계속 하였다.
 
167
그렇게 당자들의 의사를 무시한 결혼이기 때문에 신랑은 안해의 남편이 아니라 장인 장모의 귀염동이요, 며느리는 남편의 안해가 아니라 시어머니 의종이다. 흔히 시골 부인들이 말하기를, 어서 며느리를 얻으면 좀 편하게 살터인데…… 하는 것은 며느리를 얻어다 놓고 일을 시켜먹자는 생각이다.
 
168
이와같이 하여 서로 만난 부부 사이니 그들이 성장하여도 서로 사랑이라는 것이 있을 턱이 없다.
 
169
그리하여 안해는 장성하면 시부모의 손으로부터 남편의 손으로 건너와서 역시 밥을 지어주고 옷을 꿰매어주고 자식을 낳아주는 기계요 종노릇을 할 따름이다.
 
170
그런데 남자는 온갖 일을 모두 자기 마음대로만 한다.
 
 
171
술을 먹고 다니고 외입을 하고 다니고 첩을 두셋씩 얻어 데리고 살고…… 그리하건만 여자는 아무런 반항도 하지를 못한다. 남편이 죽으라고 하면 죽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여자를 남자의 한 부속물로 여기고 모든 것을 남자 본위로 한 옛날 도덕과 습관과 법률이 그대로 남아 있는 때문이다.
 
172
지금은 세상이 바뀌었다. 여자도 당당하게 한 사람이다. 그러니까 여자도한 사람이다. 그러니까 여자도 한 사람으로서 살아가자면 마땅히 그러한 남편과 그러한 가정을 버리고 뛰어나서야 할 것이다.
 
173
이것은 야학생들에게는 너무도 대담하고 상스러운 말이었었다. 그 중에는 얼굴빛이 붉으락푸르락하는 이도 있었다.
 
174
그러한 중에도 전도부인의 안색은 대단히 평온하지 못하였다.
 
175
이날 밤은 아무런 별일이 없이 그대로 헤어졌다.
 
176
그러나 그 이튿날부터는 야학생의 줄어드는 수효가 더 현저하였다.
 
177
맨 마지막 할 수 없이 야학을 해산하게 되던 날은 겨우 세 사람밖에는 출석을 하지 아니하였다. 그중에 옥순이 ── 노라의 보통학교 때의 동창생 이끼여 있었다.
 
178
노라 자신은 이날까지 알지 못하였으나 그가 야학생들에게 한 이야기가 동리에 퍼지자 적지 아니한 시비거리가 되었다.
 
179
남의 집 양가의 부녀를 모아놓고 야학을 합네 하고는 집안과 남편을 버리고 달아나라고 가르치다니, 그런 해괴한 일이 어디 있느냐……고.
 
180
그리하여 그들은 자기네의 부인 혹은 안해 혹은 딸을 금족을 시켜 야학에를 가지 못하게 하였다.
 
181
전도부인이 마지막날에 그 소식을 전하는 말을 듣고 노라는 그들 남자의 횡포 함을 분개하고, 그러한 횡포에 유유복종하는 그 부인들을 무지함에 탄식 하였다.
 
182
야학은 이와같이 하여 해산이 되었다.
 
183
그러나 그것을 기회로 노라에게는 좋은 동무 하나가 생기었다. 옥 순이가 옛날 보통학교에 같이 다니던 소녀시절의 그적과는 다른 의미로 노라와 친해진 것이다.
 
184
옥순이는 시체에 많이 있는 소박데기였었다.
 
185
보통학교를 마치고 들어앉아 침선을 배우다가 시집을 갔다. 신랑은 근 읍 어느 부자집 도령으로 서울 가서 공부하는 학생.
 
186
시집을 가서 예에 빠짐이 없이 신랑이 중학교를 졸업하는 해에 소박을 맞고 지금 친정에 와서 있었다. 그러나 친정이 그다지 넉넉치 못하다. 그렇다 고 불상하게 되어 쫓기어온 딸을 못본 체야 아니하겠지만 앞으로가 문제다.
 
187
친정도 친정부모가 살아 있었을 때 말이지, 이 앞으로 얼마 아니하여 친정 부모가 없고 나면 끈 떨어진 말 같은 신세가 될 것이다.
 
188
저편에서는 이혼 수속을 하여달라고 조르나 들어주지 아니하였다. 한번 한 혼인을 해소시킨다는 것은, 그들은 해소의 문자도 모르려니와 꿈에도 생각지 못할 일이다. 남자가 ── 사위가 아무리 현재 딴 여자과 신식으로 결혼식을 하여가지고 살더라도 이편은 죽는 날까지 그의 안해다.
 
189
인제 그가 나이 늙으면 후회를 하고 찾아오는 날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비단 옥순이뿐 아니라 소박맞은 여인들의 유일한 희망이다.
 
190
그러나 이 희망이라는 것은 마지 못하여 붙여두는 한심한 희망이다. 앞길이 막히어 언제나 적막한 것이다.
 
191
옥순이는 노라를 자주 찾아왔다. 어느 때는 거의 밤마다 오곤 하였다.
 
192
와서 놀고 이야기도 하고 신문도 보고 그러나 아픈 상처를 다치는 것같이 자기의 일신상의 이야기를 하기는 꺼리어하였다.
 
193
노라는 밤에는 옥순이를 만나 말동무를 삼고 낮에면 병택이를 만나는 것 이 일과요 재미였었다.
 
194
음력 정월.
 
195
이곳은 아직도 음력 정월이라야만 설다운 맛이 난다.
 
196
오래 날이 좋다가 모처럼 눈이 탐스럽게 내리는 날 오후였었다.
 
197
어머니는 설에 끌리어 동리로 놀러가고 노라가 혼자 집을 지키자니 무료도 하려니와 소복소복 내리덮이는 눈 구경을 하느라고 추운 줄도 모르고 마루로 나왔다.
 
198
이러한 때 병택이가 왔으면, 오전에 아니 왔으니 지금쯤 오려니 싶어 퍽 기다려졌다.
 
199
눈이 오건만 바라보이는 동리 길거리로는 무색옷 입은 아이들과 어른들의 왕래가 활발하다.
 
200
까마귀가 한떼 흰눈 덮인 보리밭에서 날고 지저귀고 한다.
 
201
물이 언 동리 앞 텃논에서 학생들이 스케이트를 지친다. 그것 보니 또 서울 생각에 연달아 아이들 생각이 불현듯이 나서 실신한 사람처럼 우두커니 앉았는데 병택이가 눈을 털며 마당으로 들어섰다. 새삼스럽게 반가왔다.
 
202
병택이는 인사도 하려고 아니하고 대뜰에 선 채 "별 빌어먹을!"
 
203
하고 혼잣말로 두덜거린다.
 
204
"왜 그러세요 ?"
 
 
205
하고 노라는 의심이 나서 물었다. 자기에게 되지 아니한 일이면 병택이가 이렇게 와서 흥분하거나 하지 아니할 것을 아는 때문이다.
 
206
"멋 별일은 없지만 샌님들이 밥 자시고 할일이 없으니까 괜히 앉아서 남의 말을…… ""남의 말을 무어라고?"
 
207
"내가 이렇게 매일 놀러다니는 것을 색안경을 쓰고 보는 모양이어요."
 
208
노라는 가슴이 성큼하였다.
 
209
그도 그럴 것이다. 이곳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신식이라지만 그들이 보기에는 보통일로는 병택이가 노라를 매일 찾아다닐 필요를 발견치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거기에 무슨 수상한 일이나 있지 아니한가 하는 궁리가 생기고, 그것이 입밖에 나오면 동감자가 생기고, 그러노라니 데마가 발이 달리기 시작하고.
 
210
"누가 그래요?"
 
211
하고 노라는 속이 적지 아니하게 불안하였다.
 
212
"누구랄 것 없이 제마닥 다 그런 모양이어요."
 
213
"무어라고?"
 
214
"무어라고……? 병택이가 무엇하러 매일 재실골을 간다냐고…… "그러나 이 말은 병택이의 귀에 들어온 말이고, 동리에서는 별 소문이 다 돌았다.
 
215
병택이가 노라를 찾아다니는 것이 수상하다는 비교적 순한 말로부터 노라는 행실이 나빠서 쫓겨왔다는 둥, 서울서 병택이와 눈이 맞아가지고 도망을 해왔다는 둥 ── 그 증거로는 그날 밤 병택이와 노라가 같이 오지 아니하였느냐! ── 또 어느 사람은 병택이가 새벽이면노라의 집에서 눈을 쥐어 뜯으며 나오는 것을 보았다는 둥…… 그러나 이러한 말은 병택이에게도 노라에게도 귀에 들어오지 아니하였다.
 
216
노라의 어머니에게도 들어오지 아니하였다. 데마란 으례 그러한 법이니까.
 
217
노라는 잠깐 속으로 생각하여보았다.
 
218
그러한 풍설에 대하여 양심에 부끄러움이 있는가? 병택이에게 조금이라도 연 심이 생기었던가?
 
219
다만 적적한 때니까 친구로 생각하였을 뿐이다.
 
220
이렇게 생각을 하니 마음이 놓이기는 하나 마음이 놓이면서 한편 섭섭한 생각이 갈아 든다.
 
221
지금까지에는 없는 적막한 생각이 가슴에 스며드는 것 같았다.
 
222
"치운데 왜 이렇게 마루에 나앉어 계십니까 ?"
 
 
223
하고 병택이는 신을 벗고 마루로 올라선다.
 
224
"설경이 좋아서요."
 
225
하고 노라도 일어서서 방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실상 그러한 소식을 들은 터라 방으로 들어가자고 말하기기 어쩐지 혐의쩍었던 것이다.
 
226
"그럼 인제는 놀러도 아니 오시겠어요 ?"
 
227
노라는 병택이의 눈치를 알고 싶었다.
 
228
"그것보담 내가 오는 것이 폐로 아신다면 오지 말고…… ""아이구, 저는 갠찮아요, 남들이 무어라거나 양심에 부끄러운 일만 없으면 그만 아닙니까 ?"
 
229
"글쎄요…… 그것도 그렇지. 사람이 세상에 살자면 남의 말을 전수히 거리 끼지 아니할 수도 없으니까…… ""그렇지만…… ""그러고 저러 고간에 이렇게 날마다 놀러오는 것도 오래잖얼 것 같습니다."
 
230
"왜요?"
 
231
노라는 놀랐다. 그 놀란 기색을 억지로 얼굴에 보이지 아니하려고 애를 쓰나 병택이는 그것을 본 것 같다.
 
232
병택이가 대답을 하려고 하는데 어머니가 돌아오는 기척이 들리었다.
 
233
전 같으면 아무렇지도 아니하였겠으나 혹 어머니도 그러한 소문을 들었을는지 모르는데 이렇게 단촐하게 병택이와 앉아 있는 것을 뛴 것이 무안하였다.
 
234
어머니의 안색이 어떠한가 보려고 노라는 방문을 열고 마루로 나섰다.
 
235
어머니는 치맛자락으로 눈을 털고 풍뎅이를 벗어주며 딸을 치어다본다.
 
236
어머니의 눈치는 아무렇지도 아니하였다.
 
237
"병택이 왔냐 ?"
 
238
"네."
 
239
노라는 안심을 하였다. 병택이도 마루로 나와서 인사를 하였다.
 
240
다시 방으로 들어가 앉아서 노라는 궁금한 마음에 묻던 말을 다시 물었다.
 
241
"어데를 가세요?…… 어머니, 병택씨가 어데 가신다우."
 
242
"응. 어디를 가넌가?"
 
243
"어데라고 정하지도 못했읍니다."
 
244
"그럼 그냥 정처없이 떠나세요?"
 
245
"그렇지요."
 
246
노라는 그렇게 꼭 필요도 없으면서 이곳을 떠난다는 것이 속을 알 수 없어 답답하였다.
 
247
"언제쯤 떠나세요 ?"
 
248
"그것도 아직 모르겠읍니다."
 
249
"그래두 봄까지는 계시지요?"
 
250
"글세……"
 
251
"니가 친구를 놓치니까 섭섭하여서 그러넌구나."
 
252
하고 어머니가 웃는다. 두 사람도 따라 웃었으나 다 각각 다른 마음으로 웃은 것이다.
 
253
이날 병택이는 저녁을 먹고 늦도록 놀다가 돌아갔다.
 
254
이튿날은 오지 아니하였다. 또 그 이튿날도 오지 아니하였다. 그리고 사흘 나흘이 되어도 오지 아니하였다.
 
255
노라는 겉으로 기색은 보이지 못하나 속이 초조하였다. 그 소문이 성가시어서 오지 아니하나? 그렇잖으면 어디로 가버렸나? 그렇다면 간다는 작별은 하러 왔을 터인데…… 어머니 더러와 복동이더러 지나는 말같이 물어보아도 시원한 소식이 없다.
 
256
한 열흘 후에 겨우 어머니가 동리에 갔다가 길에서 병택이의 형수를 만 나소식을 듣고 왔다. 병택이는 십여 일 전에 집을 나갔다고.
 
257
노라는 노여운 생각에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어머니 때문에 겨우겨우 참았다.
【원문】4. 지나친 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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