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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형의 집을 나와서 ◈
◇ 14. 새로운 대립 ◇
카탈로그   목차 (총 : 14권)     이전 14권 ▶마지막
1933.5
채만식
1
人形[인형]의 집을 나와서
2
14. 새로운 대립
 
3
"어데쯤이요?"
 
4
철교 위로 대고 외친다. 그러나 위에서 가르쳐 주기 전에 물에 익은 그들은 남은 물결로 보아 장소를 짐작한다. 더구나 물에 빠진 사람이 한 번 물 위로 솟아쳤다가 가라앉은 때면 더욱 알아내기가 쉽다. ── 세 번이나 두 번은 으레 솟는 법이니까.
 
5
첫 번의 잠수에 실패를 하고 두 번째에는 사람의 머리가 손에 잡히었다.
 
6
확 잡아 끄들면서 몸을 솟치는 대로 시체는 따라올라와 물 위에 떠오른다.
 
7
잠수꾼은 날쎄게 한팔로 그를 안아 보트에 있는 아우와 협력하여 가지고 보트에 실어놓으면 일은 다 된 것이다.
 
8
우선 엎어놓고 허리를 밟아 물을 토하게 하는 동안에 순사가 파출소에서 달려왔고, 다시 인력거에 실어 철도병원으로 데려갔다.
 
9
물을 과히 먹지 아니하였다. 다만 어제 오늘 먹지도 아니하고 노심초사 끝이라 기운이 극도로 쇠진하였을 뿐이다.
 
10
혜경이는 오늘 아침 배달된 노라의 유서를 받고 덴 듯이 놀라 우선 인력거를 잡아타고 남수네 집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혜경이더러 도리어 노라의 종적을 묻는다.
 
11
그곳서 다시 나와 거리의 전화를 빌려가지고 종로경찰서, 동대문, 서대문, 본 정, 용산의 각 경찰서로 전화를 걸어 어젯밤에 자살한 사람이 없느냐고 물어보았으나 아직은 그러한 보고가 없다고 하였다.
 
12
전화 빌린 상점 사람의 지혜로 한강동 파출소에 물어본 결과 비로소 그 가노라 일시 분명하다고 생각하고 바로 택시를 몰아 철도병원으로 온 것이다.
 
13
과연 노라가 침대에 누워 혼곤히 잠을 자고 있었다.
 
14
일변 반갑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여 눈물이 비오듯 쏟아졌다.
 
15
잠을 자고 있는 노라는 눈을 떴다.
 
16
눈과 눈이 마주친 두 동무는 아무 말이 없이 눈물 괴는 눈으로 한동안 바라보기만 한다.
 
17
마침 방문이 열리며 의사가 간호부를 데리고 들어온다. 어젯밤 일로 잠을못 잤는지 눈이 팅팅 붓고 충혈이 되었다. 속도 그렇게 부은 모양이다.
 
18
혜경이는 공손히 인사를 하고 서투르나마 인사말로 치하를 한 뒤에 위험하지 아니하냐고 물어보았다.
 
19
상처도 없고 물도 조금 먹은 것을 다 토했으니 집에 돌아가 안정만 하면 아무 일도 없으리라는 것이 의사의 대답이다.
 
20
오후에 혜경이는 노라를 택시에 태워 가지고 남수네 집으로 돌아왔다.
 
21
자기 집으로 가려는 것을 노라가 듣지 아니한 것이다.
 
22
노라는 어젯밤의 일을 또렷이 기억할 수가 있었다.
 
23
철교에서 몸이 와락 기울어지면서 급속도로 쏫쳐내려가다가 머리로부터 철썩 들어갈 때에 그는 이것이 삶과 죽음의 경계인 것을 깨달았다.
 
24
그러나 그 다음 순간 철교에서 급한 속도로 내려오느라고 막혔던 숨을 들이 쉬려 할 때 공기 대신 찬물이 쑥 들이마셔지고 숨이 괴롭지 다른 아무 생각도 없고 다만 죽지 말고 살아보고 싶다는 것밖에는 더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살아나려고 허우적거리나 그럴수록 물은 더 들이마셔졌다. 필경 숨이 괴롭다 못하여 꽈 막혀버리고 아찔하면서 정신을 놓았다.
 
25
응급치료를 받고 잠시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자기를 무한히 반가운 마음으로 발견하였다.
 
26
동시에 살아야 한다…… 아무것도 없이 다 잃어버린 데서 다시 기운 차게 살아나야 하겠다는 생각을 굳게 먹었었다.
 
27
어제 아침에도 그러하였고, 또 오늘도 노라가 다 죽어가지고 혜경이의 부축을 받아 들어오는 것을 보고 남수 어머니는 여간 놀라지 아니한다.
 
28
혜경이는 일체를 숨기고 다만 병이 나서 어젯밤에 동무 집에서 잤다고 둘러대었다.
 
29
"왜 그렇게 막된 맘을 먹어요?"
 
30
자리가 조용한 틈을 타서 혜경이가 비로소 이렇게 말을 낸다.
 
 
31
"인제는 누가 죽으라구 해두 죽지 아니할 테야."
 
32
노라의 대답은 비록 기운은 없으나 강경하다.
 
33
"그럼…… 왜 죽어? 이렇게 되었으니까 보아란 듯이 더 잘 살어야지."
 
34
"보아란 듯이."
 
35
노라는 그 말이 썩 맘에 들었다.
 
36
"그래, 보아란 듯이 더 잘 살 테야…… 싸울 테야…… 싸우다가 지쳐 넘어지면이거니와 힘 남는 날까지 싸울 테야."
 
37
"돈 없는 탓이야…… 돈이 있으면 어데라구 누가 감히…… ""응, 그래그래…… 돈이 없으니까 자유가 자유가 아니구 되려 불행이 된거야…… 그래그래. 내가 편지에다는 그 말을 미처 더 자상허게 쓰지 못 했지만…… "혜경이가 쇠약해진 노라가 흥분될까 염려하여 웬만큼 말을 끊고 잠시 다녀오기로 집에 돌아갔다.
 
38
혜경이가 돌아간 뒤에 석간신문이 배달되었다.
 
39
남수가 신문을 받아 펼쳐보면서 건넌방으로 들어오다가 질겁하게 놀라 신문을 등 뒤로 숨기려 한다.
 
40
"무어야? 왜 그래?"
 
41
노라는 필경 자기의 일이 신문에 났느니라고 생각하였다.
 
42
"아니예요."
 
43
"신문 이리 주어요."
 
44
남수는 할 수 없이 내놓는다. 대번 노라의 눈에 띄는 것은 큼직하게 내 박은 자기의 사진이다. 어젯밤 정거장에서 박인 것이다.
 
45
"기괴! 의문의 여자 한강에서 자살 미수 호송 되는 ×××원 마중 갔던 사탄의 유리꼬가 한강에 투신 ××× 원의 애인? 싶어?
 
46
십구일 밤에 카페 사탄의 여급 유리꼬 앞에서 모 전문학교 학생의 음독 소동이 일어난 사실은 작일 본지 석간에 이미 보도하였거니와 그 사실의 여 주인공인 유리꼬가 다시 이십일 밤 한강에서 몸을 던져 자살을 도모하였다.
 
47
그런데 전기 유리꼬는 이십일 밤 조선××× 재건사건의 중심 인물인 오 병택이가 신의주로부터 호송되어 경성역에 도착된 것을 비밀히 마중 나갔다가 그 길로 바로 한강으로 나가 몸을 던져 그와 같이 자살을 하려 한 것이다.
 
48
그는 다행히 부근 사람에게 구조를 받아 방금 용산 철도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중이요, 생명에는 별 탈이 없으리라는데 그와 오병택과의 관계가 단지 동 고향 사람에 그친다면 어찌하여 번화한 생활을 남부럽잖게 해가는 그 가오 병택이가 잡혀온 기회에 그와 같이 자살을 하려 하였는지 자못 흥미 있는 일이다."
 
49
노라는 이 선동적으로 써놓은 기사를 보고 가슴이 성큼하여 있는데 문간에서 찾는 소리도 없이 웬 양복 입은 사람들이 척척 마당으로 들어선다.
 
50
"유리꼬 있소?"
 
51
그들은 눈을 쉬지 아니하고 사방을 둘러보며 마루 앞으로 다가선다.
 
52
평생에 형사라고는 대해 본 적이 없는 노라는 그들을 다만 무례한 침입 자로만 여겼다.
 
53
"누구요?"
 
54
노라는 반쯤 몸을 일으켜 가지고 아니꼽게 그들을 훑어보았다.
 
55
"응. 조꼼 일이 있소."
 
56
두 사람은 신을 벗고 건넌방으로 척척 들어섰다.
 
57
"견찰소소 왔는데…… 조꼼 물어보르 말이나 있소."
 
58
노라는 비로소 그들이 형사인 것을 알았다.
 
59
"조꼼 보아요."
 
60
이렇게 말을 하면서 그들은 다짜고짜로 방안을 뒤지기 시작한다.
 
61
고비샅샅이 뒤지었으나 나온 것이라고는 시골 어머니게서 온 편지 몇 장과 또 시골 있을 때에 혜경이와 남의사에게서 온 편지 이런 것들 밖에는 별로 찾아낸 것이 없다.
 
62
그들이 목적한 것은 병택이에게서나 그밖에 그러한 방면에서 온 서신이었었다.
 
63
"오변텍이 은제 만났소?"
 
64
실컷 뒤지고 나서 일본 형사가 노라더러 이렇게 묻는다.
 
65
"금년 초봄에 시골서 만나구 그 뒤에는 통히 못 만났어요."
 
66
"편지 온 곳이나 없소?"
 
67
"없어요."
 
68
"오젯밤에 정거장에는 왜 나갔소?"
 
69
"한고향 사람인데 오래 소식을 모르다가 그렇게 호송되어 온다길래 나갔지요."
 
70
"그른데 왜 자살은 해?"
 
71
"그건 딴 일이여요."
 
72
"무슨 딴 일?"
 
 
73
"내가 그래두 전에는 그렇잖게 살었는데 생활이 어려워서 카페 여급이 되어가지구 갖인 창피한 일을 다 당허니까 세상이 귀찮애서 죽어 버리려구 했어요."
 
74
"대관절 집에서 왜 나왔소? 그만한 상당한 가정에서 잘 살다가?"
 
75
노라는 가슴이 뜨끔하였다. 이 사람들은 자기의 본성을 다 알고 있는 것이다.
 
76
대체 어떻게 해서 알았을까? 노라에게는 그것이 수수께끼 같았으나 실상은 수수께끼도 아무것도 아니다. 종로경찰서의 보안계에는 여급 노라의 신분에 관한 자세한 서류가 있는 것이다.
 
77
"응? 왜 나왔소?"
 
78
형사는 노라가 놀라와하는 것을 보고 재우쳐 묻는다.
 
79
"그거야 그런 사정이 있으니까 그랬지요."
 
80
"그럼 병택이를 만나기는?"
 
81
"시골로 내려가든 날 우리게 정거장에서 만났어요."
 
82
"그전에는?"
 
83
"십 년이나 되었지요. 서울서 공부헐 때니까."
 
84
어느 틈에 나갔는지 조선 형사는 안방으로 건너가서 남수 어머니를 붙잡고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다.
 
85
"또 와서 조사할 일이 있을 테니 어데 가지 말구 있소…… 웬만하면 미가라 를 구속할 테지만 몸도 약하구 해서 두어 두니까 "형사들은 이렇게 일러두고 돌아갔다.
 
86
"거 별순금들이지?"
 
87
남수 어머니가 아직도 놀란 채 건너오면서 묻는다.
 
88
"네."
 
89
"남자들이 아니 찾아왔느냐는구려!"
 
90
"그래서 무어라구 대답허셨어요?"
 
91
"아니 왔다구 그랬지…… 웬걸, 우리 집에 사내라구는 물장수밖에 더 드나드나."
 
92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사탄의 지배인이 손에 신문을 들고 헐떡거리며 찾아왔다.
 
93
"나는 철도병원으로 갔었지…… 웬일이야 유리꼬상?"
 
94
그는 정신없이 들렌다.
 
95
"세상이 귀찮아서 그랬지."
 
96
"원 천만에! 유리꼬상 세상이 귀찮다면 다른 사람은 어떻게 살라구!……
 
 
97
그래 무어나 좀 자셨수?"
 
98
"네."
 
99
"어서 먹구 어서 기운을 회복해야지…… 미세(카페)에서는 지금 유리 꼬상 파트 롱들이 야단인데."
 
100
지배인의 말은 어서 바삐 기운을 차려가지고 다시 카페에 나오란 뜻이다.
 
101
"나는 인젠 미세(카페)는 그만두겠어요."
 
102
이야기를 내기가 좀 이른 듯하나 노라는 기왕 말이 나온 끝이라 이렇게 잘라서 대답을 하였다. 지배인은 깡충 뛴다.
 
103
"엉? 거 무슨 소리유?"
 
104
"그만두겠어요…… 인제 기운이나 차리면 다이쇼(주인)를 찾아가서 저저 히 이야기를 하겠지만, 위선 가시거든 그렇게 전해 주세요. 빚이 좀 있는데 그때 변통해 가지구 가지요."
 
105
"글쎄 빚 같은 거야 나중 문제지만…… 웬일이요? 대관절."
 
106
"웬일이구 무어구 없어요. 그저 싫으니까 그만두는 거지."
 
107
"글쎄 그거야 싫으면 얼마든지 그만두는 거지만 미세의 사정두 좀 생각 해주어야지."
 
108
"나 하나 없다구 멋 미세가 어떨라구요."
 
109
"그거야 그렇잖어."
 
110
"글쎄 미세의 사정이 그렇다니 되려 미안헙니다만, 내 사정두 사정이니까."
 
111
지배인은 묵묵히 앉았다가 더 조르지 아니하고 일어섰다.
 
112
"어쨌거나 차차 또 상의헙시다. 몸이나 어서 회복허두룩 허시오."
 
113
"네…… 그러구 누구 손님이 와서 우리 집을 묻거든 알으켜 주지 마세요."
 
114
"응, 그거야…… "만일 노라가 앞으로도 사탄에 나가 있는다면 그의 인기, 따라서 사탄의 인기는 굉장할 것이다. 그것은 신문에서 수수께끼 같은 선동적 기사를 써놓은 때문이다.
 
115
지배인이 노라의 그만두겠다는 말을 듣고 놀라 만류하러 든 것도 앞으로 노라의 덕을 한몫 톡톡히 보려는 것인데 그것이 허사가 되게 되는 까닭이다.
 
116
지배인이 돌아간 뒤에는 혜경이가 왔다. 그도 일보 석간을 손에 들고 허덕거리며 쫓아왔다.
 
117
혜경이가 무엇보다도 걱정되는 것은 사진이 났기 때문에 현이 알게 되리라 는 것이다.
 
118
"이 일을 어떡허우? 응, 현선생이 대번 알게 될 텐데."
 
119
혜경이는 신문을 방바닥에 내던지며 신문사 사람을 욕을 한다.
 
120
"그 망헐 자식들이 이게 무슨 심술이야. 어쨌다구 글쎄…… ""그 뿐 아니라우. 형사들두 왔다가 갔는데."
 
121
"응? 형사가?"
 
122
노라는 형사가 와서 방을 수색하던 것과 또 문답하던 이야기를 다 이야기 하였다.
 
123
"대관절 그 오씨는 누구요?"
 
124
"고향 사람이야…… 거저 고향에 있을 때 친하게 지낸 것…… 그 뿐이야…… 글쎄 올 정월에 서울서 내려가든 날 정거장에 내렸는데 날은 저물구 허 떡 허나 허는데 누가 인사를 허겠지…… 그러면서 자기 성명을 말 허는데 보통학교도 같이 다녔구 서울서 공부헐 때는 내게 은근헌 맘을 두구 지내든 사람이야…… 그 뒤 그 사람은 동경으루 가구 나는 명색 결혼을 해서 통 히 소식이 끊쳤었는데 그렇게 문득 만나니까 퍽 반갑더구만…… 그런데 시골 있는 동안 어떻게 고맙게 구는지…… 그래서 아무 사심도 없이 지냈지 머."
 
125
노라는 혜경이에게 진심을 이야기하지 아니하고 이렇게 둘러대었다.
 
126
"그런데 그런 승거운 사람! 글쎄 그렇게 가깝게 찾어오구 허든 사람이 간다 온다 말이 없이 그냥 어데루 가 버렸겠지. 그런 뒤에 소식이라구는 그저께 신문에서 첨으로 봤구, 어제 저녁에 정거장에 나가서 얼굴만 보았구…… 그 뿐이야."
 
127
"그러면 경찰서에서두 신문을 보구서 알구 찾어온 게로구만?"
 
128
"그랬을 테지."
 
129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또 사람이 찾아왔다. 인제는 사람이라고 찾아만 오면 집안에 있는 사람이 온통 가슴이 성큼하는 판이라 모두 놀라 내어다 본다.
 
130
그는 그저께 노라를 안아다 주던 자동차 운전수다.,
 
131
"안녕헙쇼?"
 
132
운전수는 모자를 벗고 건넌방 앞으로 가까이 와서 친숙하게 인사를 한다.
 
133
그러나 노라는 그때 정신을 잃었었으므로 그를 자세히 기억하고 있지 못 하였다.
 
134
"누구시요?"
 
135
"네. 그저께 자동차로 모셔다 드리든 운전숩니다…… 아마 모르셨을걸 요…… 저 이주사께서."
 
136
이주사란 말에 노라는 성급히 말을 가로막는다.
 
137
"이주사가 왜?"
 
138
운전수는 부피가 불룩한 봉투편지 하나를 툇마루에 내놓는다.
 
139
"편지를 주셔서요."
 
140
"편지?"
 
141
노라는 고개를 돌려버린다.
 
142
"나 이주사한테 편지 받을 일 없으니 도루 가시구 가시요."
 
143
"그렇지만 댁을 몰라서 일부러 우리 집까지 찾어오셔서 이걸 주시면서 답장을 받어오라시든데요…… 아마 돈이 들었다시는가버요."
 
144
돈 소리에 노라는 더구나 성이 치밀었다.
 
145
"가지구 가라면 가지구 가요. 괜히…… "노라는 분이 복받쳐서 더 말을 하지 못하고 색색하기만 한다.
 
146
"여보시요."
 
147
혜경이가 툇마루로 나왔다.
 
148
"심부름 오신 이야 무슨 죄가 있겠수. 화나는 일이 있으니까 이렇게 불쾌하게 된 것이니 어서 도루 갖다 주시우…… 그리구 그 이주사란 작자 더러어 렇게 전갈을 허시요. ── 유리꼬는 매음을 헌 것이 아니라 강간을 당 헌것이니까 그렇게 좋게 해결이 되거나 돈을 받거나 하지 아니헌다구, 응? 아시겠수?"
 
149
"네."
 
150
운전수는 볼먹은 소리로 대답을 하고 씽씽 나가버린다.
 
151
남식이가 역시 신문을 손에 쥐고 쫓아왔다.
 
152
건넌방으로 들어오려는 남식이를 혜경이가 안방으로 데리고 들어가 세 모녀 앞에서 노라의 그동안의 사정을 다 이야기해 들리어 주었다. 번연히 아는 사실을 숨겨두려고 하는 것이 되레 가까운 사이만 서먹서먹하게하고 속이 들여다보이는 때문이다.
 
153
노라도 거기 대해서는 이의가 없었다.
 
154
"인제는 현선생허구 문제만 무사히 되면 뒷일은…… "혜경이가 안방에서 돌아와 이렇게 말을 할 때에 뒷일이라는 말에서 노라는 잊어버리고 있던 어머니의 일이 문득 생각이 났다.
 
155
현쯤이야 알거나 말거나, 또는 달려와서 욕을 하거나 야료를 놓거나, 또 그 의 친구들 앞에서 면목이 서지 못하거나 지금의 노라에게는 아무렇지도 아니한 것이다.
 
 
156
그러나 어머니가 오늘 아침에는 어젯밤 노라가 띄운 편지를 받아 누구더러 읽어 달라고 했을 것이다.
 
157
물론 하늘이 무너진 듯이 놀라고 날뛸 것이요 대번 쫓아올 것이다.
 
158
"어머니가 부리나케 올라오실 텐데 어떡허우! 지금이라두 전보를 칠까?"
 
159
노라는 혜경이에게 이렇게 걱정을 하였다.
 
160
"어머니헌테두 그런 편지를 했수?"
 
161
"응."
 
162
"무슨 지랄이야."
 
163
혜경이한테 이렇게 욕을 먹어도 할 말이 없다.
 
164
전보는 치자니 시간이 늦어 지급전보밖에는 없을 것이고, 그거나마 어머니가 만일 밤차에 떠났다면 전보 치는 것은 허사가 되어버린다.
 
165
그러나 혹시 돈을 주선하느라고 밤차에 떠나지 못하였다면 내일 아침 차나 낮차에 떠날 테니 어쨌거나 전보는 쳐두는 것이 좋다고 남수를 시켜서 지급 전보를 쳤다.
 
166
"순이무사안심."
 
167
노라를 순이라고 해야만 어머니는 알아듣는다.
 
168
이튿날 새벽…… 노라는 어수선한 꿈을 꾸다가 깨었다. 밤에 급한 심부름이나 있을까 하고 옆에서 자게 한 남수는 벌써 인쇄소에 갔는지 숨소리가 들리지 아니한다.
 
169
노라는 아직 잠이 완전히 깨지 아니한 채 이몽가몽하는데 어디선지 ── 그것은 꿈속에 들리는 소리도 같았다. ── 목을 놓아 우는 여인네의 울음소리가 가직이 들려온다.
 
170
노라는 미친 사람같이 자리를 걷어차고 마루로 뛰어나왔다.
 
171
남수 어머니가 부엌에 있다가 퉁탕거리는 소리에 놀라 뛰어나오고, 노라는 신발을 미처 찾지 못하여 버선발로 마당으로 뛰어내려가는데 인력거꾼의 뒤를 따라 어머니가 들어선다.
 
172
"아이고 ── 아이고."
 
173
울며 들어오는 어머니는 노라를 보자 "어 ── "소리 한마디로 그 자리에 얼어붙듯 우뚝 선다.
 
174
그새 노라는 뛰어가서 어머니의 목을 걸싸안았다.
 
175
"어머니."
 
176
"네가 이게 구신이냐? 사람이냐?"
 
177
어머니는 정신이 나간 소리로 혼잣말같이 중얼거린다.
 
 
178
"아니야 살었어."
 
179
"응, 살었어야지…… 그렇구말구. 네가 죽다니 될 말이냐?"
 
180
울음 반 섞어 어머니는 이렇게 말을 하다가 그만 딸을 마주 걸싸안고 울음이 터져나온다.
 
181
모녀가 실컷 울고 난 뒤에 남수 어머니에게 이끌리어 마루로 올라앉았다.
 
182
"그런디 글씨 야야, 어쩌면 이 늙은 어미를 그렇게 놀래게 한단 말이냐?"
 
183
마루에 마주 대하고 앉아 어머니는 새삼스레 딸의 얼굴을 굽어다본다.
 
184
노라는 무어라고 대답할 말이 없다.
 
185
"그런디 참 애비(현)랑 어린것들은 어데 있느냐?"
 
186
어머니는 이게 잘 산다는 사위의 집이냐 싶은 듯이 둘러보며 묻는다.
 
187
"갈렸다우."
 
188
노라는 할 수 없이 사실대로 이야기를 하려 하였다.
 
189
"머? 거 웬 소리냐?"
 
190
어머니도 십상 그런 듯싶이 짐작하기는 하였지만, 그러나 듣고 보니 새 채비로 놀라운 것이다.
 
191
"거 웬 소리여? 네가 그래서 자결을 허러 들었구나?"
 
192
"아니."
 
193
"그럼?"
 
194
노라가 자살을 하려 한 사건은 이야기했자 어머니로서는 이해할 리가 없고 더 낙심만 할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195
"언제 그맀단 말이냐? 답답허다. 시언시언하게 이야기나 좀 허려무나."
 
196
"그때 집에 내려가든 때."
 
197
"원 저런…… 그러구두 글씨 나더러 그새 그런 말두 안 히었단 말이냐?"
 
198
"어머니가 걱정허실까버서 그랬지."
 
199
"걱정이 다 무어냐 글씨! 그럼 그새 서울 와서는 어디 가서 무엇 하였냐?"
 
200
"그렁저렁 살었지."
 
201
"글씨 그 사람(현)이 어찌서 너를 내보냈단 말이냐?"
 
202
어머니의 얼굴에는 현에게 대한 노염이 비로소 떠오른다. ── 현이 노라를 쫓아낸 것으로만 생각한 때문이다.
 
203
"아니라우…… 그 사람이 날 나가렸나! 내가 나왔는데…… "노라는 굳이 현을 두둔하려는 생각이 아니요, 사실대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204
"왜?"
 
205
"싫으니까."
 
206
"니가 미쳤냐? 거 무슨 소리냐?"
 
207
"싫으면 갈리는 거지 무얼 그러시우?"
 
208
"싫으면 갈리다니, 거 무슨 소리냐? 아무리 세상이 개명을 하였기로 니…… 그런 법은 없다."
 
209
"없을 게 어데 있수? 세상은 다 어머니가 시집살이허든 세상허구는 달르다우."
 
210
죽은 줄 안 딸을 만나 반갑다는 것은 잠시요, 노라 어머니에게는 설움 대신 새로이 커다란 실망이 맘자리를 차지하였다.
 
211
아무리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한번 부부를 맺은 안해가 남편과 갈린다는것은 생각지 못할 말이다. 그것은 이단이요 모독이다.
 
212
더구나 노라의 경우에는 벌써 그 사이에 소생이 셋이나 되었고, 또 그 아이들에게 자기 당대의 외손봉사나 시키려고 양자도 들이지 아니하고 있었던것이다.
 
213
"어머니, 진지 잡숴야지."
 
214
"싫다, 밥이 다 무엇이냐…… 일어서라, 나허구 같이 애비한테 가자…… 가서 잘못히였다구 빌구 다시 들어가도록 허야야 말이지, 그렇잖구는 안 될말이다."
 
215
노라가 다시 현에게로 돌아간다는 말은 절대로 되지 못할 말이다.
 
216
어머니가 나무라는 것은 고사하고 현이 와서 도로 가자고 한다더라도 노라는 듣지 아니할 것이다.
 
217
노라는 보잘것없이 영락이 되었다.
 
218
이 영락이 된 몸을 가지고 현에게로 도로 돌아간다는 것은 아무리 짓 밟히고 말라비틀어졌다 하더라도 남아 있는 자존심이 허락치 아니하는 것이다.
 
219
정조를 더럽혔다는 것 ── 그것은 숨기려면 숨길 수가 없는 것도 아니다.
 
220
그러나 저편 현에게 충실하고 아니하자는 그런 것이 아니라 그것 역시 최후의 정조까지 더럽히고 옛남편 ── 버리고 나온 남편을 찾아간다는 것은 노라의 결벽이 허락치 아니한다. 더우기 아무것도 남기지 아니하고 모조리 자기의 것을 빼앗아간 이 세상을 향하여 겁을 집어먹고 옛 가정 생활에로 패배 도피를 한다는 것은 생각에도 없는 일이다.
 
221
노라는 여간하여서는 어머니를 누르기가 어려울 줄 알고 침착하게 말을 내었다.
 
222
"어머니."
 
 
223
"워야?"
 
224
"나 어머니 딸이지?"
 
225
"그건 왜?"
 
226
"글쎄 어머니 딸이지?"
 
227
"그래서?"
 
228
"내가 죽었다니까 울구 올라오셨지?"
 
229
"그래서?"
 
230
"왜 그러셨수?"
 
231
"섧고 불쌍히여서 그랬다."
 
232
"내가 죽었다면 어머니 어떻게 허실 테요?"
 
233
"죽기는 왜 죽어? 멀쩡허게 살었는데?"
 
234
"글씨 죽었다면?"
 
235
"헐 수 없지야."
 
236
"헐 수 없지?"
 
237
"그래."
 
238
"그럼 이번에 죽은 셈만 치시오. 그러구 딸 둘을 두었다가 하나는 죽었구 둘째딸이 출가했다가 상부를 허구 돌아왔다구만 여기시우."
 
239
어머니는 노라의 꾀에 넘어갔다. 무어라고 더 우길 수가 없다.
 
240
어머니가 말이 없는 것을 보고 노라는 재우쳐 뒤를 누른다.
 
241
"그렇잖구 어머니가 기어이 현씨게로 가라면 난 정말 죽어버릴 테야."
 
242
어머니의 불만이 그렇다고 해서 곧 풀리지는 아니하였으나 다시 더 고집은 세우지 못하였다.
 
243
조반 후에 혜경이가 찾아왔다. 어머니는 이야기를 듣고 그동안 노라를 살 뜰히 돌봐준 치하를 하였다.
 
244
그리고 혜경이에게 노라를 다시 현에게로 돌려보낼 상의를 하였으나 그리못 될 이야기(카페의 일은 물론 숨기었다)를 듣고 아주 단념을 하였다.
 
245
그날 밤.
 
246
노라 모녀는 앞으로 살아나갈 의론을 하였다.
 
247
"벌이나 해가면서 그렁저렁 살어가지요."
 
248
별 이렇다 할 계획은 없으나 노라는 이렇게 대답을 하였다.
 
249
"그러지 말구 시골로 내려가자."
 
250
"시골은 가면 별수가 생기우?"
 
251
"별수야 없지만 농사나 짓구 그렁저렁 살어가지."
 
252
미상불 노라에게는 솔깃한 말이다. 그러나 와락 그렇게 하겠다고 먹히지도 아니 한다. 맘 먹은 대로(물론 지금 장차에 어떻게 하겠다는 작전계획은 없지만) 한바탕 버티고 나서자면 그래도 서울에 머물러 있어야지 지금 만 일 시골로 내려간다면 그것은 패배를 의미하는 것이다.
 
253
"그렇게 허는 게 내 생각 같애서는 졸 것 같다."
 
254
어머니는 총망중에 담뱃대를 아니 가지고 왔기 때문에 노라가 사다 준 마코를 어색하게 빨면서 이야기를 계속한다.
 
255
"논이나 멫 마지기 더 얻으면(小作[소작]) 그렁저렁 제 양은 헐 것 이구, 또 인제 네게 말이다만 내가 돈을 한 오백 냥(백 원) 만들어 둔 것이 있다.
 
256
그것두 내가 잘 먹구 쓸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죽구 나면 북포 필이나 바꾸어(사서) 장사(장례) 지내는 데 쓰게 헐라구 없는 듯이 두어둔 것이다.
 
257
그놈으로 변전놀이(돈놀이)나 허면 용돈은 얻어쓸 게 아니냐?"
 
258
이 말을 듣고 노라는 새 궁리가 머리에 떠올랐다.
 
259
"어머니, 그러지 말구 서울서 삽시다."
 
260
"허기야 나두 늙발에 고생하기두 싫구 허닝개 서울 와서 좋은 것 구경이나 허구 살었으면 좋겠다만 서울서는 농사두 뭇 짓구 어떻게 살어간단 말이냐?"
 
261
말하는 것이 어머니는 조르기만 하면 들을 눈치다.
 
262
"백 원이 있다지?"
 
263
"응."
 
264
"우리 집허구 터전을 다 팔면 얼마나 받으우?"
 
265
"잘 팔면 그것두 오백 냥 값은 되리라."
 
266
"누가 곧 사까?"
 
267
"부자집에서 살 테지…… 우리 집터가 정자 자리루 좋다구 탐들을 내 닝개."
 
268
"그럼 어머니, 이렇게 합시다. 그 돈 백 원허구 또 집 판 돈 백 원 허구 이백 원 아니우? 그 돈에서 백 원으로는 전세로 방이나 한칸 얻구 나머지백 원으로 내가 벌이를 얻을 때까지 쓰든지, 또 곧 벌이 자리가 되면 그 돈을 밑천삼어서 무슨 장사를 허든지."
 
269
"요량대루 히여라. 기왕 이렇게 되었으니 이러라저러라 안헐 테니 다 좋 두룩 히여라…… 나두 서울 와서 있으면 떡장수를 헌들 놀 수야 있겄냐."
 
270
어머니는 승낙을 하였다. 그러고(뒤에 말한 대로 떡장사를 하였다. ──이고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도가집이다. ── 해서 정말 자기가 먹고 살만큼은 넉넉히 벌었다.)
 
271
"그러면 집을 팔자면?"
 
 
272
노라가 집 팔 상의를 내놓으니, 어머니는 부시럭부시럭 요대 속에서 지 전 뭉치를 꺼내놓는다.
 
273
"서울은 도둑이 무섭대서 이 속에다 너갖구 왔다…… 어따 네가 맡어 두어라…… 네 초상장례 치뤄 줄라구 돈을 맽긴 데서 찾자니 그 사람이 딴 데 변전을 놓구 마침 수중에 없다더구나…… 그래서 병택이 성님(형)한테 가서 백 원을 꾸어(취해)갖구 왔다."
 
274
"그럼 집을 병택이 형님더러 이 돈 백 원 몫으루 차지허라지?"
 
275
"글씨 원 그런다구 헐란지."
 
276
"그럼 비발은 나두 어머니가 다시 내려갔다 올라오시우…… 집두 팔구 또그 돈두 찾일 겸."
 
277
"그렇게 허지야."
 
278
상의가 다 되어 모녀는 자리에 누웠다.
 
279
"그런데 야야."
 
280
어머니가 긴히 묻는다.
 
281
"네?"
 
282
"거 어린것들 좀 볼 수 없을거나?"
 
283
아들이 없으니 손자의 재롱을 못 본 이다. 손자가 있어도 외손자는 더욱 귀여운 법인데, 더구나 지금까지 만나지도 못하였으니 노인의 속이 더우기 간절하였을 것이다. 노라도 어머니의 그러한 심경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284
"다 시골로 보냈다우."
 
285
"왜?"
 
286
"다른 여편네를 얻을 텐데 계모 밑에서 자라면 못쓴다구 그렸다나."
 
287
"그건 옳은 말이다만."
 
288
사흘 후에 어머니는 시골로 내려갔다.
 
289
노라는 정거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사탄에 들러 그곳에서 진 빚 이십 원과 또 일수 남은 것을 전해 달라고 십팔 원을 맡겨 두고 아주 손을 끊었다.
 
290
이렇게 지나간 것을 모조리 씻어는 버렸으나 노라에게 아득히 남아 있는것은 앞으로 어떻게 하면 모녀가 살아갈까 하는 것이다.
 
291
지금 생각하면 그래도 필운동의 가정교사 자리가 상팔자였었던 것이다.
 
292
그러나 인제는 그러한 자리가 구해질는지 의문이다.
 
293
더구나 이름은 다르다 하지만 신문에 그와 같이 사진이 났기 때문에 앞으로의 취직에 여간한 곤란이 아닐 것이다.
 
294
혜경이가 물론 전보다 더 힘을 써는 주겠지만, 그렇다고 그것만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295
아무리 다시 솟아쳐나자는 타는 결심이 있다 하더라도, 그러나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은 우선 먹어야 한다는 데 있는 것이다.
 
296
전세방을 구하려고 몇 군데 복덕방을 들렀다가 마땅한 것을 찾아내지 못 한 채 집으로 돌아갔다.
 
297
이삼 일 동안 유난히 늦게 돌아오던 남수가 오늘은 문간에서 요란스럽게 어머니, 건넌방 언니를 부르며 벙실벙실 웃고 뛰어들어온다. 단단히 기쁜 일이 있는 모양이다.
 
298
"어머니…… 건넌방 언니!"
 
299
남수는 이렇게 외치면서 마룻전에 펄썩 주저앉아 가쁜 숨을 할할 쉰다.
 
300
안방에서 그 어머니가 나오고 노라도 건넌방에서 나왔다.
 
301
"왜 그러느냐?"
 
302
"왜 그래?"
 
303
"어머니…… 그리구 언니…… ""글쎄 이년아, 말을 해라!"
 
304
"응 응, 아이구 좋아, 아이구 좋아."
 
305
남수는 무엇이 그리 좋은지 몸을 쌀쌀 내두르며 정말 좋아서 못견디어 한다.
 
306
어머니와 노라는 따라서 실소를 아니할 수 없다.
 
307
"저어 응 어머니, 나 월급 밀린 것 받었다나."
 
308
그는 손에 쥐었던 하도롱 봉투를 마루에 착 내놓는다.
 
309
"원! 나는 무어라구."
 
310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역시 기뻐한다.
 
311
"아이구 좋아, 아이구 좋아! 어머니, 인제는 나 나 파리스 치마 해주어 엉."
 
312
그는 마치 칠팔 세 먹은 소녀와 같다. 노라는 마리아가 생각이 나서 불현듯이 보고 싶었다.
 
313
"그래라."
 
314
어머니는 봉투를 들어 돈을 꺼내어 본다.
 
315
"석 달치 다냐?"
 
316
"아니 위선 두 달치야."
 
317
"그래두 한 달치는 못 받었구나?"
 
318
"응. 그런데, 인제 그놈은 두 달에 나누어 준대."
 
319
"아무려나 잘했다. 네가 어린것이 그렇게 고생고생해서 번 돈을 못 받어서 쓰겠니!"
 
 
320
"글쎄 어머니, 이것 보우…… 인쇄소가 까딱했으면 문을 닫을 뻔했다우."
 
321
"그런데 어떻게 돈이 생겨서 월급을 주니?"
 
322
"글쎄 은행에 빚을 담뿍 졌드래…… 그런데 영업은 잘 아니 돼서 인쇄 소문을 닫을 양으루 했다나…… 그런데 은행에서 돈을 좀더 대주었대요."
 
323
"그런데 또 돈을 대주어?"
 
324
"그럼…… 돈을 더 아니 대주면 인쇄소가 문을 닫잖어? 그러면 전에 준빚을 못 받게 되지? 그러니까 돈을 더대주어서 다시 해나가게 해놓구는 묵은 빚 새 빚을 두구두구 받으면 좋잖어?"
 
325
"그렇다면 모르지만."
 
326
"그래서 인제는 빚을 준 그 은행에서 인쇄소에 와서 감독을 헌 다나…… 아이구 좋아. 어머니 파리스 치맛감, 응."
 
327
"그래 그래. 끊어다 입어."
 
328
"그런데 참 어머니, 글쎄 그렇게 돈이 생겼으면서 우리한테 밀린 월급을 아니 주러 들었다우."
 
329
"그런데 어떻게 받어왔니?"
 
330
"하하…… 우리가 스트라이키를 했지…… 그러느라구 그새 그렇게 늦었다우."
 
331
스트라이크란 어머니는 모르는 말이다.
 
332
"동맹파업을 했어."
 
333
남수는 어머니가 못 알아듣는 것을 보고 설명을 한다.
 
334
"척 우리가 모다 일제히 일을 아니 허구 대표를 뽑아서 척 교섭을 했 단말이지…… 그래두 첨에는 아니 듣더니 동맹파업을 하겠다니깐 할 수 없이…… ""언제? 오늘 그랬어."
 
335
"아니 발써 사흘 전부터 그랬대두…… 마구 싸우구 그랬어."
 
336
"아서라, 너는 아예 남이 싸우는 데 들지 마라, 다칠라."
 
337
싸운다니 때리고 치고 하는 싸움인 줄 어머니는 여기는 모양이다.
 
338
"어머니두! 싸우면 머리끄등 잡구 물어뜯구 허는 것만 쌈인가?……
 
339
어머니는 모른다. 나…… 나두 이번에 배웠어.(中略[중략])"
 
340
남수는 무슨 진기한 재주나 배운 것을 자랑하듯이 뽐내가면서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어머니에게는 그런 말은 알아들을 리가 없고 노동자란 말이 귀에 거슬렸다.
 
341
"네가 왜 노동자냐? 버젓헌 사람이."
 
 
342
"피, 어머니두! 노동자가 왜 나쁜가? 아이 어머니는 몰른다나…… 그렇지? 건넌방 언니…… 아이 참 내 잊었네. 저 언니…… "남수는 비로소 잊어버린 것을 생각하고 노라에게 긴히 다가앉는다.
 
343
"언니, 저 그때 나더러 우리 인쇄소에 있게 말해 보라구 그랬지?"
 
344
노라에게는 귀가 번쩍 뜨이게 반가운 소식이다.
 
345
"응, 왜? 됐어?"
 
346
"응…… 그새 월급두 못 주구 시시부시허니까 사람이 많이 나갔어…… 그런데 이번 돈이 생기구 그래서 일두 더 확장헌다나…… 그래서 내가 감독더러 전에 말허든 이가 지금두 기다리고 있는데 써주랴느니까 그러마구 그랬어요."
 
347
노라는 한숨이 푹 나오게 마음이 놓이는 것 같았다.
 
348
"아이구 고마워 참…… 난 인제 맘을 탁 놓겠어."
 
349
"잘했다. 그렇게 마련을 해주어서…… 그렇지만 어떻게 가서 아니해 보든고 된 일을 헐 수 있을라구."
 
350
이건 남수 어머니의 말이다. 그러나 노라는 그러한 것은 상관하지 아니하였다. ── 무엇보다도 인쇄소의 제본직공의 일이 어떠한 것인가부터 알지못하니까.
 
351
"그러구 처음은 견습이라구 십오 원밖에 아니준대…… 그것두 어른이라니까 그렇지 어린애들은 십 원두 아니 주 는걸…… ""관계 찮어요, 십오 원이라두…… 인제 차차 있어나면 좀 올려주겠지."
 
352
"그거야 그렇지만."
 
353
"나 같이 있으면 남수가 일허는 것 잘 좀 가르켜 주어, 응?"
 
354
"그럼…… 그렇지만 감독이 그렇게 일일이 붙어앉아 가르켜만 주게 허나…… 한 가지 무엇 이리 허라구 허구는 내버려 두는데."
 
355
이튿날 아침 새벽밥을 먹고 점심을 꾸려가지고(이것은 가지고 가지 아니하여도 좋았던 것이다.) 노라는 남수를 따라 여덟시 반을 대어 관철동 인쇄소에 당도하였다.
 
356
문앞에 당도하니 다 같은 이 인쇄소의 직공들이 제가끔 점심 그릇을 옆 에끼고 꾸역꾸역 모여든다.
 
357
그중에는 여자들도 많이 섞여 남수와 인사를 주고받고 한다.
 
358
문안에 들어서니 거기에는 벽에 기다란 궤짝 같은 것이 좌우로 세 개씩 붙어 있고 한가운데는 시계가 걸리어 있다.
 
359
직공들은 제가끔 문 앞편으로 있는 궤짝에서 쪽지를 빼어 시계 밑 구멍의 벌어진 데다 대고 조그마한 손잡이를 눌러 찰크당 소리를 낸 뒤에 도로 뽑 아 다가는 저편 궤짝에다 다시 꽂고 층계로 올라간다. 시계 앞에는 웃어 본적이 없어 보이는 사람이 지키고 앉아서 직공들이 하는 것을 일일이 감시하고 있다.
 
360
남수도 차례대로 쪽지를 눌러다가 꽂고는 노라에게 설명을 하여 준다.
 
361
"이게 출근부 같은 거라나…… 여기 모다 성명이 쓰이구 또 번호가 있어요. 이놈을 저 시계 밑에다 대구 눌르면 시간이 찍혀져요…… 아침에 올 때 이렇게 했다가 저녁때 돌아갈 때는 또 한번 시간을 찍어서 저편에다 넣어 두구…… "설명을 듣고 보니 그럴 듯한 말이다.
 
362
노라는 사무실이 어떠한가 하고 곁눈으로 둘러보니 아직 출근한 사람이 적어 자리가 드문드문 비었고, 구석구석에 책들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다. 전화도 두 개나 달리어 있다.
 
363
남수를 따라 층계를 올라가노라니까 직공들이 자꾸만 치어다보는 것 같아 귀 밑이 확확 달았다. 미상불 이전에 못 보던 어여쁜 여직공을 그들은 제 가끔 한번씩은 바라보는 것이다.
 
364
제본실은 삼층이다.
 
365
들어서서 둘러보니 무엇이 무엇인지 모르게 책과 종이가 어수선하게 널려 있고 쌓여 있다.
 
366
방은 조선 방으로 치면 모로 삼칸, 길이로 열칸은 됨직한 시멘트 바닥인데 한가운데에는 널따란 상이 이편 끝부터 저편 끝까지 죽 닿아 있다.
 
367
이 위에서 종이를 접어 책을 만드느니라고 노라는 생각하였다.
 
368
노라는 남수의 안내로 감독 있는 데로 가서 인사를 하였다. 이름은 옛날 아명대로 '임순이’라고 해두었다.
 
369
"해낼까요?"
 
370
콧등이 빨갛고 텁석부리 진 감독은 노라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신어 붓잖게 말을 한다.
 
371
감독의 말도 무리는 아니다. 노라가 아무리 일부러 수수한 헌옷을 갈아 입고 머리도 아무렇게나 빗어올리고 얼굴에도 분이라고는 기운도 아니하였지만 인물이란 속일 수 없는 것이다.
 
372
더구나 노라의 타고난 얼굴이 어쩐지 귀부인다운 불리한 점 ── 그렇다.
 
373
옛날에 한 자랑이던 노라의 여왕답게 노블하고 고운 얼굴은 일개 제본 직공이 된 노라에게는 확실히 불리한 점이 되었다. ── 이렇기 때문에 감독은 선뜻 맘이 내키지 아니한 눈치다.
 
374
그러나 그렇다고 한번 남수에게 승낙을 해놓은 것을 지금 당장에 또 못한 다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375
그리하여 좀 짜지만 그래도 두어두리라고 작정하였다.
 
376
"좀 고될걸요…… 그렇지만 차차 익히느라면…… 어쨌건 그런 대로 있어 보시우."
 
377
"네, 고맙습니다."
 
378
노라는 정말 고마워서 깍듯이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였다.
 
379
마침 벨소리가 장그랍게 때르르하고 울린다.
 
380
이 벨소리와 아울러 직공들은 일제히 방 가운데 있는 상 앞에 죽 걸터 앉더니 일을 시작한다. ── 남자들은 동편으로 앉고 여자들은 서편으로 앉아서…… 하는 일도 남녀가 다르다. 여자들은 인쇄한 종이를 앞에 놓고 구두주걱 같은 나무쪽으로 쪽쪽 훑으면서 착착 접어넘기고, 그것을 받아다가 남자들은 고르고 추리고 판에다 누르고 그리고 풀칠을 한다.
 
381
그들은 어찌나 손을 재게 놀리어 착착 해내는지 노라의 생각에는 도저히 그 재주를 배울 수 없을 것 같았다.
 
382
감독은 노라를 데리고 일하는 것을 죽 둘러보인 뒤에 아래층 사무실로 가서 그중 크고 좋은 의자에 버티고 앉았는 늙은이에게 새로 들어온 여 직공이라고 소개를 시킨다.
 
383
"오늘은 첫날이니 그냥 돌아가시우. 그리구 내일부터 오시우. 심 남수 허구같이 있다지요? 그애 허는 대로만 따러 허시우…… 시간이랑 일허는 거랑."
 
384
아래층 층계에 발을 올려놓으면서 감독이 이렇게 주의 겸 말을 이른다.
 
385
이리하여 노라는 인쇄소의 제본 직공이 되었다.
 
386
진보가 더딘 것 같아 초조하나 그래도 차차 일이 손에서 보드랍게 놀고, 그 뿐 아니라 인쇄소의 제본 직공이 된 노라는 그새까지 보지 못한 세상을 보았고 듣지 못하던 말 몇 마디를 들어 그것이 급격하게 그의 심경에 변화를 일으키었다.
 
387
보름쯤 되던 날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노라와 남수는 이야기를 시작 하였다. 남수 어머니도 참석을 하였다. 시골서 어머니가 쉬이 올라오겠다는 기별이 와서 어디 전세방을 얻을 상의를 하던 끝이다.
 
388
"노동은 신성타더니 그 말이 옳은 것 같애…… 내가 즉접 노동다운 노동을 해보니까, 응…… 그리구 사람들이 모다 기운차구 씩씩해 보이잖어? 이 층 기계에 있는 사람들은 정말 허는 일이 씩씩해 보이는데."
 
389
그러나 남수는 가소로운 듯이 자신있게 반박을 한다.
 
 
390
"어이구 언니두…… 인제 더 있어보시우. 노동이 신성헐 게 어데 있어!"
 
391
"왜? 정당허게 힘껏 일을 허구 그 보수를 받어서 생활을 허구…… 그러구 사회의 많은 사람한테 봉사가 되구…… 위선 인쇄소에서 잡지나 책 같은 것을 박어서 내보내면 세상 사람들이 그거를 모다 읽구 그러니 유익허잖어?"
 
392
"피, 언니두…… 그따우 아무 쓸데두 없는 소리를 늘어놓은 잡지나 책을 박어내면 그게 무슨 유익이 된다우? 돈 있는 사람들이 괜히 소일거리루 사볼 뿐이지…… 이 세상에 수효가 많은 노동자나 가난헌 사람한테는 고마울것두 없구 유익헐 것두 없다우."
 
393
"글쎄 원 그건 그런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정당허게 노동을 해서 먹 구사니까 그게 좋아…… ""흥…… 그새 인쇄소가 경영이 어려워서 문을 닫느니 어쩌느니 해두 중역이나 그런 사람들은 저이가 찾어 먹을 것은 다 찾어먹구 우리 월급만 아니주었다우. 그래두 그게 정당허우?"
 
394
"그렇지만 이번에 어쨌거나 밀린 월급을 받잖앴나?"
 
395
노라는 이렇게 반박을 하였다.
 
396
"그거야 그렇지만 우리가 받는 월급이 그게 또 정당헌 월급이 아니 라우…… 자기네는 돈만 내놓구 가만히 앉어서 이익만 남겨먹지…… 그런데 그 이익은 우리 노동자가 일을 해주니까 생기는 거 라우…… ""그거야 돈을 내놓았으니까 그 몫은 먹어야지."
 
397
"돈이라는 게 어데 하날서 떨어졌나?"
 
398
"그런 게 아니야…… 그 사람들두 한때는 애써 모은 돈이니까 그걸루 사업을 해가면서 그 이익이라두 좀 먹어야지."
 
399
"어이구머니! 사업이 다 무어유? 그 사람들이 이익을 남겨먹으려구 인쇄소를 허네, 무슨 회사를 허네, 고무공장을 허네 허지 사업이 다 무어유
 
400
?…… 글쎄 우리 인쇄소만 해두 이익이 없게 되니깐 문을 닫으려구 아니 했수?"
 
401
노라에게는 곧잘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나 만일 깊이 생각하여 본다면 그럴듯한 말일 듯도 하였다.
 
402
"그래 월급을 아니 준다구 동맹파업을 허구 그랬구먼?"
 
403
"그럼."
 
404
"그렇게 아니허구는 못허나? 응을응을 싸우구…… ""언니 같으면 어떻게 허겠수?"
 
405
"제가끔 사장이면 사장, 또 감독이면 감독더러 내가 그렇게 고생을 허구 일을 했는데 월급을 아니 주어서 쓰겠느냐구, 그러니 잘 생각해서 달라구 이렇게 조용히 찾어보고 이야기를 허지, 무얼 여럿이 뭉쳐서 웅성거리구…… 그러느라니 더 감정만 상허구 요란스럽기만 허지."
 
406
"그러면 언니, 가령 내가 그때 사장더러 내 월급을 달라구 그랬다구 헙시다. 그런데 그렇게 조용허게 청해두 아니 주면 어떻게 허겠수?"
 
407
"아니 줄 리가 있나."
 
408
"아니, 만일 아니 준다면?"
 
409
노라는 대답할 말이 없다. 아니 주면 그만이라고 대답했겠지만, 그러나 실컷 일을 해준 월급을 아니 받고 말랠 수야 없는 것이다.
 
410
"꼭 받어야 할 일인데 아니 준다면 무슨 다른 도리루라두 해서 받어내야아니 허겠수? 그런데 언니, 이것 봐요. (中略[중략]) 응, 인제 알겠수?"
 
411
노라는 비로소 그 비유의 신통함에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고 남수가 그다지도 영리한 것이 새삼스럽게 귀여웠다.
 
412
잠자리를 차리고 누웠던 노라는 문득 짐을 뒤지어 올봄에 병택이가 가져다준 베벨의 『부인론』을 찾아내었다. 그때 보려다가 어려워서 못 보고 내던져 둔 채 지금껏 손도 대지 아니하고 짐 속에서 굴러다닌 것이다.
 
413
노라는 서문을 위선 펴가지고 어려운 대로 애써애써 읽어내려가기 시작 하였다. 그러다가 몇 줄째에서 눈이 번쩍 뜨이게 머리로 들어오는 한 구절을 발견 하였다.
 
414
노라에게 있어서 크나큰 소득이었었다.
 
415
그렁저렁 석 달이 지나간 어느 날…… 오 전일을 마치고 점심 뒤에 다시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아니 되었을 때 옆에 앉은 남수가 옆구리를 꾹 찌르면서 귀에 대고 소곤거린다.
 
416
"저게 은행에서 운리 인쇄소를 감독허러 오는 사람이라나."
 
417
노라가 고개를 들고 은행에서 감독하러 왔다는 사람을 찾다가 그와 눈이 마주쳤다.
 
418
노라는 하마 소리를 칠 뻔하게 놀랐다.
 
419
저편에서도 역시 그렇게 놀랐다.
 
420
노라는 얼핏 낭패한 태도를 숨기었다.
 
421
저편도 놀람을 숨기려는 듯이 돌아서서 아래층으로 내려가 버린다.
 
422
그는 현이었었다.
 
423
동양은행이 고려인쇄소에 대한 채권자의 권리로 쓰러지게 된 인쇄소에 좀더 채무를 지우고는 그 대신 인쇄소의 사업을 감독하는 것이다.
 
424
그리하여 동양은행의 지배인인 현이 가끔 인쇄소에로 오게 되는 것이다.
 
425
와서는 심심하면 공장으로 이렇게 돌아다니곤 했는데 노라가 온 뒤에는 처 음으로 제본실로 올라왔던 것이다.
 
426
마음을 탄탄하게 먹자면서도 노라는 웬일인지 가슴이 한동안은 몹시 울렁거렸다.
 
427
얼마 후에 감독이 아래층에서 올라오더니 노라의 옆으로 가까이 왔다.
 
428
"동양은행 현지배인 아시우?"
 
429
그는 싱긋이 웃으며 이렇게 묻는다. 노라는 무어라고 대답하면 좋을지 잠깐 주저하였다.
 
430
"그이 말은 안다구 그립디다. 그래 할 말이 있으니 잠깐 불러 달라든 데……?"
 
431
노라는 선선히 일어섰다.
 
432
"회의실루 가보시우."
 
433
감독은 노라의 등 뒤에 대고 이렇게 이른다. 회의실이라는 것은 이층 한편에 있는 방인데 보통때는 교정을 보러 온 사람들이 쓰지만 대개 비워 두는 곳이다.
 
434
노라가 문을 열고 회의실로 들어가니 현은 테이블 건너 의자에 버티고 앉아서 턱으로 그 앞 의자를 가리킨다.
 
435
"게 앉으우."
 
436
노라는 머뭇거리지 아니하고 선선히 걸터앉았다.
 
437
입과 얼굴과 눈에 조소하는 미소를 띠고 한참이나 노라를 보고 있던 현 은비 로소 입을 연다.
 
438
"그래 요 꼴이 됐어?"
 
439
노라는 고개를 번쩍 쳐들고 현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서슴잖고 대답을 한다. 아무것도 무서울 것이 없다고 심중에 버티어보니 미상불 아무것도 겁 이나지 아니하였다.
 
440
"무슨 걱정이요."
 
441
"걱정이 아니야…… 꼴이 볼 만해서 허는 말이야…… 응, 천벌이다 천벌…… 마지막에 가서는 필경 나를 그렇게 망신까지 시켜 주구…… 천벌을 아니 받는다면 그야말루 천도가 무심허지."
 
442
"나는 바뻐서 그런 소리 듣구 있을 새가 없어요."
 
443
노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현은 그대로 앉아 있다.
 
444
"흥, 아직도?"
 
445
"아직두가 아니라 인제부터요."
 
446
"같잖게 무엇이 인제부터란 말이야? 요만큼 거지가 되고 그만큼 타락이 되었으면 입이 광우리구먹 같애두 헐 말이 없지."
 
 
447
"헐 말이 없는 것이 아니라 말헐 필요가 없어요."
 
448
"흥…… 말만은 잘헌다…… 그렇지만 그렇게 기세 좋던 사람이 요렇게 거지가 되어가지구는, 더구나 필경은 내 지배 밑으로 다시 굴러들어온 게 참구 경 다운 걸."
 
449
이 현의 승리자다운 조소에 노라는 안타까와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으나 꾹 참고 퀄퀄하게 대답을 하였다.
 
450
"옳소, 그 말이 옳소…… 내가 당신의 가정에서 당신 한 사람의 노예 질을 싫다고 벗어져 나왔다가…… 인제 다시 또 당신한테 매인 몸이 되었소. 그걸 보고 당신은 승리나 헌 듯이 통쾌하게 여기겠지만, 그러나 당신허구 나 허구 싸움은 인제부터요. 내가 아직은 잘 알지 못허우만은 이 세상은(中略[중략]) 싸움이라구 헙디다. 아마 그게 옳은 말인가 싶소. 그러니 지금부터 정말로 우리 싸워봅시다."
 
451
이렇게 말을 하고 노라는 회의실에서 나왔다.
 
452
기계실에서는 기계 도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쿵쿵거린다. 그 소리에 따라노라 의 혈관에서도 더운 피가 힘차게 뜀을 노라는 느끼었다.
 
453
1933. 7. 25.
 
454
〈朝鮮日報[조선일보] 1933. 5 .27~11. 14 〉
【원문】14. 새로운 대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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