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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형의 집을 나와서 ◈
◇ 8. 빛깔 좋은 자유 ◇
카탈로그   목차 (총 : 14권)     이전 8권 다음
1933.5
채만식
1
人形[인형]의 집을 나와서
2
8. 빛깔 좋은 자유
 
3
또 한동안 잠잠히 아무도 말이 없다가 재환이가 일어섰다.
 
4
"저는 그만 가겠읍니다."
 
 
5
"좀더 노시다가 가시지."
 
6
혜경이는 인사말로 인사를 하였다.
 
7
"언제 또 오지요."
 
8
"종종 놀러 오십쇼."
 
9
노라도 이렇게 인사를 하였다.
 
10
"네, 오겠읍니다…… 저 사람이 와서 폐를 너무 끼쳐서…… ""천만에 말씀을 다 하십니다. 내 동생인데요."
 
11
"네?"
 
12
"결의형제했대요."
 
13
혜경이가 옆에서 뜅겨준다.
 
14
"네, 그러세요. 거 좋지요."
 
15
재환이는 옥순이와는 인사도 아니하고 가버렸다.
 
16
그 뒤에 그는 말하고 간 대로 종종 찾아왔다. 찾아오는 도수가 거듭 함을 따라 노라에게는 꽤 친숙하게 구느라고 굴었다. 그러나 옥순이에게는 처음 창경원과 이 집에서 볼 때와 조금도 다름이 없이 범연하였다.
 
17
재환이는 필경 노라를 아주머니라고 불렀다. 그것이 처음 만난 뒤로 한 달이 거의 되어오는 때다.
 
18
노라가 필운동으로 효정이를 가르치러 다닌 지 꼭 한 달째 되는 날이다.
 
19
전과 같이 시간을 마치고 마루로 나서자 주인마나님이 안방에서 나와 십원 짜리 넉 장을 손에 쥐어준다. 돈을 받은 노라는 그야말로 만감이 교차 하였다.
 
20
그는 전에 어렵사리 지낼 때에 청서 대필 같은 것을 하여 조금씩 돈을 얻어 쓴 일이 있었다. 그러니까 자기의 손으로 돈을 버는 것은 처음이 아니다.
 
21
그러나 그때와 지금과는 적어도 노라가 생각하기에는 판연히 다른 점이 있다.
 
22
독립한 자유인으로서 노력에 대한 보수, 이렇게 생각하매 노라는 몸이 공중으로 뜨는 것같이 기뻤다.
 
23
그는 그동안 이날을 퍽 기다렸다. 번 돈이 수중에 들어올 것을 기뻐 기다린 것도 기다린 것이지만 그러나 돈이 아쉬워서도 기다렸었다.
 
24
처음 옥순이와 둘이서 집을 들어 살림을 시작할 때에 이것저것 하고 나니 수중에는 돈이 몇 원 남지 아니하였었다.
 
25
한 보름 후에는 쌀도 나무도 돈도 다 떨어져 버렸다.
 
26
이때의 막막함이란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27
혜경이 더러 말을 하면 얼마 가량 선선히 취해 줄 것이지만 그것은 그대로 앉아 굶을지언정 말을 낼 수가 없었다.
 
28
그러나 말만이지 굶고 앉아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는 있는 돈을 모조리 들여 전세를 얻은 것을 후회도 하였다.
 
29
생각을 하다하다 못하여 옷을 몇가지 챙겨 큰 옷가방 속에 넣어가지고 전당을 잡히었다.
 
30
전당을 잡히는 데도 힘이 퍽 들었다.
 
31
그렇지 아니하여도 미안해서 못견뎌 하는 옥순이더러 그것을 떠 이고 전 당국에 가랄 수는 없는 일이요, 그렇다고 노라 자신이 갈 수도 없는 일이고.
 
32
──
 
33
그러다가 마침 놀러 나온 안집 안잠자기를 시켜 팔 원을 받고 잡혀올 수가 있었던 것이다.
 
34
그 돈 팔 원을 가지고 오늘까지 한 보름 동안 겨우겨우 살아왔다. 그러하던 끝이라 월급 사십 원이 들어 있는 핸드백을 안고 노라는 그 집을 나설 때에는 마음이 여간만 느긋하지 아니하였다.
 
35
여름이 바로 대문 앞까지 닥쳐온 오월 그믐의 한낮이라 좀 무거운 듯하나 기분이 기분인지라 노라는 모처럼 명랑하였다.
 
36
그는 사십 원을 쓸 곳을 별러보았다.
 
37
쌀을 서 말만 사고, 그러면 그것이 육 원쯤 될 것이고, 나무를 솔가지로 한 바리만 사자면 이 원 오십 전, 그러고 하루에 이십 전 평균을 쳐서 한 달 반찬값으로 육 원 ── 이렇게 하여 십오 원이면 한 달은 살아갈 것이고, 팔 원으로는 전당잡힌 것을 찾고, 그리고 나머지 십오륙 원 되는 것으로는……?
 
38
한 십 원으로는 옥순이와 둘이서 옷을 좀 해 입고, 나머지는 용돈으로 두어 두었다가 쓸 데가 있으면 쓰되 오늘 일요일에 혜경이나 청하여 가지 고옥 순이와 같이 어디 놀러 나가서 한턱을 쓰리라. ── 이렇게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돈 사십 원을 그렇게 다 써버릴 일을 생각하니 한편으로 아까와 한 푼도 쓰지 말고 고스란히 두어두고 보았으면 싶었다.
 
39
일이 하루에 서너 시간씩밖에 아니 되는 일이나 효정이란 그애가 둔해서 몹시 힘이 들겠다, 더구나 그 병신이 며칠에 한 번씩은 들어와서 끔찍하게 놀래주곤 하기 때문에 정말 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을 하여 받은 돈이다.
 
40
그런 생각 하니 써버리기가 더욱 아까울 뿐 아니라 겨우 사십 원밖에 아니 된다는 것이 안타까왔다.
 
41
실상 효정이가 너무 힘을 씌우는 날이나 병신이 들어와서 말썽을 부릴 때 에는 그냥 그 자리에서 훌훌 털고 일어서고 싶은 생각이 문득문득 나기도 하였지만, 그러고 보면 어떻게 살아가나 하는 걱정이 앞을 서서 그대로 참아 왔던 것이다.
 
42
노라는 집으로 올라가기 전에 우선 안국동 혜경의 집에 들리었다. 혜경이는 언제나 하듯이 반가이 맞아주나 그의 묻는 말은 어쩐지 이상하게 들리었다.
 
43
"요새도 그 오씨 ── 옥순이 남편 말이야 ── 자주 옵디까?"
 
44
노라는 얼굴이 화틋하여지는 것 같았다.
 
45
여자의 촉감이란 무섭게 예민한 법이다.
 
46
재환이가 옥순이를 찾아오는 체하고 속으로는 노라에게 은근히 끌리는 생각으로 그리한다는 것은 요즈음 와서 노라나 혜경이나 옥순이나 다 눈치를 채었다.
 
47
그러나 그것은 노라나 옥순이나 생각만 하여도 불쾌한 일이어서 될 수 있으면 그러한 추측을 하고 싶지도 아니하였으나 사실이 사실이니 어찌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두 여자의 성격이 그런 이야기를 탁 털어 놓고 해 버리고 나서 하하 웃어버리기에는 아직도 그처럼 틔지는 못한 것이다.
 
48
이러한 방면에 있어서 혜경이는 남성적이다.
 
49
노라는 그와 같이 얼굴이 화틋 달기는 하나 한편 그런 불쾌한 생각을 혼자 품고 있느니보다는 혜경이하고라도 시원하게 이야기를 서로 해버리는 게 좋을 듯싶었다.
 
50
"그런데 참…… 그이가 무엇하러 그렇게 자주 찾아오우?"
 
51
좀 거북은 하나 노라는 이렇게 걱정을 하였다.
 
52
"노라한테 반한 모양이야, 호호 호호…… ""망칙해라! 미쳤던가!"
 
53
"아니야. 그 서방님 생긴 걸 좀 봐요. 웃을 때 눈버틈 웃고 자꼬만 노라를 곁눈질을 치는 게 그렇대두 그래요."
 
54
"허긴 나두 그런 눈치를 채긴 했지만 설마 그러랴는 생각 으루…… ""설마가 머요…… 글쎄 옥순이를 마다고 그렇게 찾어다니겠수? 딴 궁리가 있으니까 그리는 거지…… ""정말 그렇다면 어떻게 해? 아마 옥순이도 그런 눈치를 챈 모양인데…… 내야 죄가 없지만 괜히 내가 꼴이 무엇이 되우!"
 
55
노라는 옥순이 보기가 정말 미안하였었다.
 
56
자기야 재환이쯤 사람 같지 아니하게 보고 또 그가 그러는 것을 코웃음으로 돌려버리겠지만 옥순이가 노라의 그러한 속을 알아 줄는지 알 수가 없는 일이다.
 
57
"어떻게 해서 오지 못하게 하지? 거 그렇게 팔락거리고 다니면 나중에 재미가 없어."
 
58
"그렇지만 내가 못 오게 해서 아니 오는 줄 알면 옥순이가 어떻게 생각 할지 모르구…… 그대로 두어두면 옥순이한테 오해를 사겠구…… ""그래도 오지 못하게 하는 게 나어요."
 
59
"무어라고 해서 오지 말라구?"
 
60
"그저 오지 말라지."
 
61
"너무 박절하지."
 
62
"괜찮어…… 나는 그게 얄미워 죽겠어……젊은 아이가 왜 그 모양이야!"
 
63
"옥순이 듣는 데는 그런 말 말우."
 
64
"내가 노라 같은 일을 당한다면 이 자식 후레자식이라고 혼을 내주겠구먼…… 호호호호."
 
65
노라도 따라 웃었다. 그러다가 얼굴을 고치어 가지고 물었다.
 
66
"참 남선생 어데다 장사했수?"
 
67
그는 남의사 생각이, 그리고 한번 가자 가 하면서 미처 가지 못한 그의 묘에라도 한번 가보고 싶은 생각이 불현듯이 일어난 것이다.
 
68
물론 병택이 생각도 나기는 하였다. 실직한 지팡이를 짚고 다니다가 잊어버린 듯한 허전한 생각이 전처럼 가슴에 스며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혜경이 앞에서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재미스러운 비밀이다.
 
69
"홍제원에서 화장을 했다지? 그날 구가 갔다 왔어."
 
70
"그럼 유골은?"
 
71
"그 근처에다 묻고…… "돌아간 사람의 명복을 비는 듯이 두 여자는 잠깐 침묵하였다. 한참 만 에노 라가 월급 받은 이야기를 꺼냈다.
 
72
"참, 나 오늘 월급받었수."
 
73
"응, 잘했구려…… 사십 원이지? 잘 했어…… ""나 한턱 허께."
 
74
"한턱?…… 그만두구려."
 
75
"왜? 오는 일요일날 옥순이하구 서이서 놀러갑시다. 나선 길에 남선생 산소에 성묘나 허구…… ""어쨌으나 놀러는 갑시다."
 
76
이렇게 약속을 하여두고 노라는 집으로 올라왔다.
 
77
집에는 낯선 글씨로 알지 못할 편지 한 장이 와서 있다.
 
 
78
하얀 양봉투에 여자 글씨같이 또박또박 정하게 쓴 주소 성명이 갈데 없이 노라에게로 온 것이다. 뒤에는 보니 봉한 곳에 13이라고 하였고 귀퉁이로 조그맣게 학몽(鶴夢)이라고 썼을 뿐이다.
 
79
시내 소격동이라고 하였으니 스탬프는 보지 아니하여도 시내에서 누가 한 것이다.
 
80
그러나 경성 시내에서 노라에게 편지를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는 그 와같이 집을 나와 시골을 다녀온 뒤로 혜경이 이외는 통히 동무들을 만나지아니하였다. 그러므로 아무도 노라가 이곳에 와서 이렇게 있는 줄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81
혹 병택이가? 하고 생각하여 보았으나 그것은 허무한 생각이요, 필시 재환 이의 짓인 듯싶었다.
 
82
옥순이의 눈치를 보니 그것이 재환이에게서 온 줄은 모르나 이곳에 온 뒤로 처음 받는 편지요, 또 노라가 이상하게 편지를 들고 서서 뒤적거리는 것이 잔뜩 호기심이 나는 모양이다.
 
83
옥순이가 재환이의 편지인 줄 몰라본 것은 그가 재환이의 필적을 몰랐든지 그렇지 아니하면 재환이가 미리서 필적을 고친 것일 것이다.
 
84
편지를 뜯어볼까말까 망설이다가 노라는 봉투귀를 뜯었다. 미상불 속 엣글씨는 겉봉투와 다르다.
 
85
흰 편지지에 언문과 한문을 섞어 꽤 잘게 주워박은 것으로 한 장 가득 차서 있다.
 
86
노라는 편지 사연보다 맨 끝을 보았다.
 
87
"재환 올림."
 
88
이라고 씌어 있다.
 
89
노라는 무슨 죄나 짓는 것 같아서 옥순이의 눈치를 살폈다.
 
90
옥순이는 잠자코 바늘을 놀리기는 하나 편지가 궁금한 듯이 가끔 눈을 거듭 떠 본다.
 
91
"아주머니."
 
92
이렇게 편지 서두는 시작이 되었다. 노라는 읽어내려갔다.
 
93
"종종 뵈오면서 편지질이라니 당치 아니하다고 생각하실 것이요, 또 당돌히 여기실지도 몰라 많이 주저도 하였읍니다마는 아무리 하여도 한번은 편지를 드려야 될 형편이 되어 부득이 붓을 들었읍니다.
 
94
실상은 어제 오정쯤 하여 댁에를 갔었읍니다. 기다렸으면 뵈었을 것이지만 고쳐 생각을 하고 돌아와서 우선 몇 자 적어 올리는 것입니다."
 
95
노라는 편지에서 얼굴을 들었다.
 
 
96
"어제 재환씨 오셨었나?"
 
97
이렇게 묻고 나서 '아뿔싸!’하고 후회하였다. 인제는 옥순이가 편지가 재환이에게서 온 것인 줄 넉넉히 알게 되었을 것이다.
 
98
"예."
 
99
옥순이는 고개를 들지 아니하고 조그만 소리로 대답을 하는 것이 그 역시 마음이 동요가 된 모양이다.
 
100
노라는 그 다음 말을 물을까말까 하고 망설이는데 "왜요?"
 
101
하고 옥순이가 고개를 치어들고 묻는다.
 
102
노라는 편지가 재환이에게서 왔다고 해버릴까 하다가 말을 돌리었다.
 
103
"와서 무어라든가?"
 
104
옥순이는 도로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대답을 아니한다. 노라는 비로소 공기가 긴장이 된 것을 깨닫고 또 한번 뉘우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그는 목소리를 훨씬 보드랍게 하여가지고 재우쳐 물었다.
 
105
"응? 무어라구 허시든가?"
 
106
옥순이는 한참 생각을 하다가 겨우 대답을 한다.
 
107
"내려가래요."
 
108
"집으루?"
 
109
"왜 내려가라고?"
 
110
"그저 내려가라고만 합디다."
 
111
"그래서…… 무어라고 대답했나?"
 
112
"아무 말도 안하였어요."
 
113
"내 말은 무어라고 묻잖던가?"
 
114
"묻더만요."
 
115
"무어라구?"
 
116
"왜 혼자 있느냐고?"
 
117
"그래서?"
 
118
옥순이는 얼굴이 붉어지며 애원하듯이 노라를 한번 치어다보면서 겨우 대답을 한다.
 
119
"봄에 남산에서 형님이 이야기허신 대로 다 이야기하였어요."
 
120
그는 무슨 책망이 내리기를 기다리듯이 고개를 도로 숙인다. 노라는 편지를 더 읽지 아니하고 착 접어 봉투 속에 넣었다. 그는 편지를 더 보고 싶지아니하였다. 보았자 젊은 아이가 ── 노라는 자기보다 나이 아래인 재환이를 속으로 젊은 아이로 여겼다 ── 버릇없이 연애나 하자는 창피스러운 말 이었지 별다른 소리는 없을 줄 안 때문이다.
 
121
그는 편지를 옥순이 앞에 밀어주었다.
 
122
"옜네, 재환씨한테서 온 편지네."
 
123
"무어라고 히였어요?"
 
124
옥순이는 편지를 집어보려고도 아니한다.
 
125
"첫머리 멫 줄 보다가 말었네……나는 보고 싶잖어니 자네나 보게."
 
126
"나두 싫소."
 
127
"싫기는 왜 싫여? 아마 자네 일 때문인가부니 보아 보게."
 
128
"싫여요. 형님께로 온 것이니 형님이 보시요."
 
129
노라는 편지 내용을 자기가 보고서 이야기를 하느니보다 턱 내맡기어 옥 순이가 보게 하는 것이 자기의 결백함을 보이기에 아무 거북스럼이 없을 줄알고 그리하는 것인데 옥순이는 기어코 보려고를 아니하는 것이다.
 
130
"그러면 차라리 찢어바릴까?"
 
131
옥순이는 실상은 편지의 내용이 알고 싶었다. 혹 자기에 관한 일이 적힌것이라면 기껏해야 시골로 내려보내 달라는 부탁일 테니 보나마나하지만 그렇지 아니하고 노라에게 무슨 딴 생각이 있어 한 것이라면 꼭 보고는 싶으나 차마 편지를 집어보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찢어버리겠다는 말에는 바싹 궁금증이 나서 그대로 집어볼까 하고 생각하는데 노라가 벌써 편지를 봉투째 박박 잘게 찢어 인두불을 쓰는 화로 재 속에 파고 묻어버렸다.
 
132
노라는 이렇게라도 해서 옥순이에게 선선한 것을 보여준 것이 마음이 놓이 기는 하나 그래도 어쩐지 옥순이와의 사이에 거북스런 암영(暗影)이 가리어있는 듯만 싶어 아예 불안이 가시지를 아니하였다.
 
133
이튿날 노라는 필운동서 돌아오는 길에 혜경을 데리고 올라왔다.
 
134
올라오는 길에 그는 어제 편지 일건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고 어떻게 했으면 이상스럽게 서먹서먹하여진 옥순이와의 사이가 풀어질 의논을 하였다.
 
135
혜경이는 편지를 찢은 것을 안타까이 여겼다.
 
136
편지가 있어야 옥순이와 터놓고 이야기하기도 좋고, 또 그 편지를 가지고 재환이 집으로 모두 몰려가서 저희 내외를 붙잡아 앉혀놓고 한바탕 야료를 일으킬 터인데 그것을 없애었다고 혜경이는 발을 굴렀다.
 
137
그들이 막 집에 들어앉아 숨을 돌리기도 전에 재환이가 찾아왔다.
 
138
재환이는 노라에게 편지를 하여놓고 오늘 아침 열시부터 광화문 앞에서 택시를 불러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139
노라가 보지 아니하고 찢어버린 편지의 그 다음의 사연은 노라가 생각 한 것처럼 그렇게 노골적으로 되지는 아니하였었다.
 
 
140
노라의 처지에 진심으로 동정한다는 것과 그리고 긴히 상의할 말이 있으니 열시 반까지 광화문 앞으로 나와 달라는 것이었었다.
 
141
한시까지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다가 그는 집으로 돌아갔다. 혹시 노라에게서 편지로 답장이나 왔나 하고…… 그러나 노라가 한 일이 없으니 편지가 갔을 리는 없고, 그는 그 길로 다시소 격동으로 올라온 것이다.
 
142
혹 편지가 아니 들어갔는지, 그렇잖으면 노라가 편지를 받고도 시치미를 떼고 있는지 눈치를 보아 어떻게 해서든지 꾀어내올 양으로. ── 그러나 와서 보니 보는족족 밉광스런 혜경이가 있는지라 그만 맥이 풀어져 버렸다.
 
143
그는 노라의 눈치만 슬슬 보면서 별로 이야기도 하지 아니하고 세 여자도 따라서 무료하게 앉아 있는데 갑자기 밖에서 중문을 와락 밀치며 여자의 성내어 찾는 소리가 들렸다.
 
144
재환이는 감전이나 된 듯이 벌떡 일어섰다.
 
145
방안에 있던 사람이 미처 대답도 할 사이가 없이 손님은 벌써 마루 위에 올라섰다.
 
146
여자다. 신여성이다. 야앵 때 창경원에서 본 재환이의 새 부인이다. 그것은 얼굴이 썩 눈에 익은데다가 재환이가 허둥지둥하는 것으로 세 여자는 선뜻 짐작을 한 것이다.
 
147
그는 뾰족한 구두를 신은 채로 마루로 올라섰다.
 
148
눈에서는 불이 한 줄기 금시로 뛰어나올 것 같고, 발끈 쥔 두 주먹은 바르르 떨린다. 그는 우하고 일어선 세 여자를 좍 훑어보더니 어쩔 줄을 모르고 문턱과 마루에 한 다리씩 걸치고 선 재환이를 노려보면서 독살스럽게 입을 놀린다.
 
149
"흥! 옛놈은 팔선녀를 데리고 놀았다더니 너는 왜 세 년뿐이냐? 나까지 쳐야 넷이로구나."
 
150
그러다가 갑자기 하하하하 하고 쉿소리로 히스테리 완연하게 웃는다.
 
151
노라와 옥순이는 너무도 징그러워 분한 생각이 날 겨를도 없었으나 혜경이만은 침착하였다.
 
152
"아니 당신이 누구길래 남의 집에 들어와서 야료를 놓소?"
 
153
혜경이는 매섭게 딱 얼렀다.
 
154
그러나 그것은 아무 효과도 나지 아니하였다. 그 여자는 두어 걸음 콩콩 걸어 바싹 다가서서 또 한번 아까처럼 징그럽게 웃더니 냅다 소리를 지른다.
 
 
155
"흥, 내가 누구냐고? 알고 싶으냐, 알고 싶어? 네년들이 뺏어갈 양으로 꼬여다 논 이 오재환이 여편네다. 알겠니? 알겠어? 알겠어 ── 이 년들아."
 
156
재환이는 그 사이에 안해의 앞을 가로막고 말리었으나 확확 떠밀릴 뿐이다. 그는 변변히 말도 하지 못하고 연해'여보’와'왜 이러우’만 번갈아 부른다.
 
157
"비켜라. 너는 이따가 집에 가서 보자."
 
158
그는 재환이를 떠다밀어젖히고 덤벼든다.
 
159
"그래, 이년들! 세상이 사내가 그리 없어서 저 못생긴 오재환이를 후려 갈 양 으루 들어? 응, 돈이 돈이 욕심났구나?"
 
160
"아니, 이년이!"
 
161
혜경이는 와락 덤비다가 새를 타고 들어서는 재환이 등에 부딪쳣다.
 
162
노라는 혜경이를 방 안으로 잡아 끌어들였다. 재환이는 또 한편으로 밀려 나갔다.
 
163
"응! 가만 있거라. 우선 이년, 너 좀 보자."
 
164
그는 혜경이는 젖혀놓고 옥순이게로 덤벼들었다.
 
165
"네가 이년 재환이 본처년이냐? 흥, 본처! 오냐, 나는 첩년이다. 네가 본 처 랍시고 ──"다문 입 사이로 으응 소리를 지르면서 와락 방으로 뛰어들어 옥순이의 바른 편 팔을 물고 쌀쌀 흔들었다.
 
166
옥순이는 마주 어떻게 하려고도 아니하고 "아이구머니."
 
167
소리를 참지 못하여 지르면서 펄썩 주저앉아 버린다.
 
168
노라와 혜경이가 달려들어 잡아떼려고 하나 그럴수록 물린 옥순이의 비명만 더 커간다.
 
169
그러다가 혜경이가 문득 꾀를 내어 두 손으로 그 여자의 목을 바짝 누르니까 숨이 막혀 캑캑하느라고 문 입을 벌린다.
 
170
그러나 그는 비틀비틀하다가 다시 한번 구석으로 피해가서 물린 팔을 우디고 앉아 있는 옥순이에게로 덤벼든다.
 
171
이때에 재환이가 갑자기 달려들더니 다짝고짜로 옥순이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방문편으로 잡아채면서 소리를 지른다.
 
172
"왜 어데로 피하잖고 이러고 앉었어?…… 너 때문에 이 풍파가 다 이는줄 몰라?"
 
173
그러고는 옥순이가 기다시피 마루로 나가려는 허리를 발길로 걷어지른다.
 
 
174
"왜 왔어, 왜? 되지 못하게!"
 
175
또다시 걷어차려 든다. 그동안 그 여자를 뒤로 껴안고 있던 혜경이는 일부러 힘을 주어 방바닥에다 홱 내던지고 이어 재환이의 어깨를 잡아 돌리었다. 그때에 재환이의 발길을 막아주려고 달려든 노라는 옥순이 대신 앞 정강이를 걷어채어 앞으로 퍽 꺼꾸러졌다.
 
176
혜경이가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는 재환이의 가슴을 힘껏 밀어젖히니 쿵하고 벽에 부딪치며 주저앉는다. 그것이 무슨 혜경이가 힘이 세어서 그런 것은 아니나 이렇게 넘어뜨리고 보니 기운이 났다. 그는 사내들처럼 팔을 부르걷고 재환이게로 다가섰다.
 
177
"이 못생긴 사내녀석! 이게 무슨 개짓이냐?"
 
178
재환이는 혜경이의 칼날 같은 서슬에 어안이 벙벙하여 멍하니 앉았는데 등뒤에서 "이 년아!"
 
179
소리를 치며 혜경이의 머리쪽을 뒤로 움켜쥐고 늘어지는 것이 그 여자다.
 
180
두 여자가 한참 할퀴고 끄들고 뒹굴고 하는데 요란한 소리에 쫓아나온 안집 주인 성희와 안잠자기가 뛰어들어 뜯어말렸다.
 
181
어느 겨를에 구경꾼들이 여남은이나 빽빽이 모여들어 모두들 수군거린다.
 
182
재환이의 안해는 안잠자기에게 꽉 붙들리어서 색색하며 자꾸만 혜경이에게로 덤비려고 몸부림을 한다.
 
183
"이년아, 이년들아. 이 더러운 년들아."
 
184
"저년이 뒤어지고 싶어서 또 저 따우로 주동아리를 놀려! 저년이!"
 
185
혜경이는 싸움을 말리는 대로 떨어져나와 아랫목에 앉아 쪽을 고쳐 지으며 의젓하게 꾸짖는다.
 
186
재환이가 비로소 정신을 차려가지고 안해의 팔을 잡아끌며 달랜다.
 
187
"갑시다 가! 그만해 두고 가."
 
188
그는 안잠자기와 울력으로 안해를 질질 끌다시피 밖으로 데려내갔다.
 
189
"이년들! 이년들!"
 
190
외치다가 그는 필경 "아이고 아이고."
 
191
소리를 내어 울며 끌려나가 버렸다.
 
192
구경꾼들은 우하고 그 뒤를 따라나간다.
 
193
폭풍이 지나간 자취처럼 고요하다. 노라의 무릎에 엎디어 우는 옥 순 이의 느끼는 소리가 가끔 가늘게 들릴 뿐이다.
 
194
한참 만에 혜경이가 흐트러진 바느질고리에서 실과 바늘을 찾아가지고 터 진 치마폭을 꿰매면서 옥순이를 위로해준다.
 
195
"그만 울어요…… 그렇게 꿈쩍도 못허구 그러니까 계집이나 사내나 더 깔보구 그러지! 다친 데나 없수?"
 
196
"과히 다친 데는 없지…… "노라는 옥순이의 등을 어루만져 준다.
 
197
"노라도 다치잖었수?"
 
198
"나도 한번 걷어채었어."
 
199
노라는 웃으면서 정강이를 만진다.
 
200
"그년이 아마 서방 뒤를 밟아왔던가버?…… 그런 독사같은 년! 그년 한 테 머리 끄 등을 잽힌 일이 분해 죽겠네."
 
201
혜경이는 치마를 털어 입었다. 그들은 더 좀 재환이의 욕이라도 해주었을것이나 그래도 옥순이가 듣는 데는 차마 말이 나오지를 아니하였다.
 
202
그날 밤.
 
203
노라는 몸과 머리가 다같이 피로하여 고단한 잠이 들었었는데 어찌 하다가 잠이 깨어보니 옆에서 자는 옥순이가 보이지 아니하였다.
 
204
변소에 갔나 생각하면서도 어쩐지 불안은 하나 곤히 자던 끝이라 그대로 눌러 잠이 들었다.
 
205
그러나 그 뒤로는 깊은 잠이 들어지지 아니하였다.
 
206
잠이 깨어 가지고 보니 여전히 옥순이가 없다. 시계는 세시가 다 되었다.
 
207
그는 다시 방 안을 둘러보다가 비로소 옥순이의 자던 자리가 이불이 착 눌려 있어 자다가 나간 것이 아닌 줄을 알고 의심이 버쩍 들었다.
 
208
자다가 나가지 아니하였으면 이때까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209
"옥순이."
 
210
밖으로 대고 불러보았으나 아무 대답이 없다. 혹 재환이한테 쫓아갔나 하고 일어나서 횃대를 들춰보니 나들이옷은 그대로 걸려 있다.
 
211
그는 밖으로 나가 성냥을 그어보니 구두도 두 켤레 그대로 놓여 있고 고무신만 보이지 아니한다.
 
212
다시 내려가서 중문을 보니 문고리는 잠겨 있다. 그러면 밖으로도 나가지아니한 것이 분명하다.
 
213
그는 허공에다 대고 "옥 순이."
 
214
하고 불러보았다. 그러나 아무 대답 없다.
 
215
"옥순이."
 
216
역시 대답이 없다. 노라는 혹 안집에 들어가지나 아니하였나 하고 도로 방 으로 들어가서 안채로 난 들창에 귀를 대고 들어보았다.
 
217
안에서는 아무 말소리도 아니 들린다. 노라는 어떤 불길한 예감에 소름 이 쪽 끼쳤다.
 
218
노라는 다시 밖으로 나와 대뜰로 내려섰다. 이때에 비로소 그는 부엌에서 희미한 불빛이 비쳐나오는 것을 보았다.
 
219
저녁이 저문 때면 가끔 켜놓고 쓰던 사기등잔의 석유불이다.
 
220
"옥순이 부엌에 있나?"
 
221
부엌문 앞으로 가서 불렀다. 아무 대답이 없다.
 
222
노라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발이 떨리는 것을 참고 부엌문을 살그머니 열었다.
 
223
"아이구머닛!"
 
224
소리를 치고 노라는 뒤로 펄씬 주저앉았다.
 
225
부엌 한복판에 대롱대롱 달아매인 사람의 몸뚱이가 희미한 불에 우렷이 떠있는 것이다. 더 볼 것도 없이 옥순이가 부엌 들보에 목을 매고 늘어진 것이다.
 
226
노라는 어떻게 일어섰는지 방으로 뛰어들어와 안채로 난 들창문을 열어 젖히고 "여보, 여보세요."
 
227
소리를 외쳤다.
 
228
몇 번 부르지 아니하여 대답이 들린다.
 
229
"거 왜 그리우?"
 
230
안방 쌍창을 열고 불빛에 머리를 내놓는 이가 성희의 친정어머니라는 노인이다.
 
231
"큰일났어요, 사람들 좀 나오세요."
 
232
"큰일이라니, 무슨 소리야? 누가 곽란이 났수?"
 
233
"아니애요. 사람이 죽었어요. 어서 좀들 나오세요."
 
234
"웬? 사람이 죽다니? 거 웬소! 누구야?"
 
235
"나허구 같이 있던 이여요. 아이구 이걸 어떡해!…… 어서들 나오세요 좀…… "노라는 발을 동동 굴렀다. 노인은 딸과 안잠자기를 깨운다. 건넌방에서 자던 학생 하나가 문을 열고 내어다본다.
 
236
"왜 그럽니까?"
 
237
"좀들 나오세요. 사람이 죽었어요."
 
238
"머요? 사람이 죽어요!"
 
 
239
우당퉁탕하고 맨먼저 학생이 뛰어나왔다. 이어서 안채 식구가 통 다 쓸어 왔다.
 
240
그들은 제각기 부엌을 굽어다보고 끔찍해서 몸서리를 쳤다. 그러나 누구 하나 들이덤벼 손을 대려고는 아니한다.
 
241
사실 두 번도 쳐다볼 생각이 아니 나도록 그 모양이 끔찍하였다.
 
242
목은 한 자 길이나 쭉 늘어졌다. 앞으로 숙은 얼굴에는 두 눈이 툭 불거져 나오고 혀를 기다랗게 빼어물었다. 코에서 피가 흘러 입 가장자리로 엉 겨 붙었다.
 
243
"저걸 어떻게 내려나 놓아야지!"
 
244
노인이 걱정을 한다.
 
245
"내려노면 무얼 합니까, 벌써 죽은걸!"
 
246
안잠자기가 혹 자기에게 일이 돌아올까 하여 그런지 반대를 한다.
 
247
"그래두 원 저렇게 두구 본단 말이야."
 
248
노라는 그것이 자기에게 하는 책망인 것도 같아 죽을 기운을 내어 부엌으로 들어섰다.
 
249
두 사람 학생도 따라 들어섰다.
 
250
그러나 어떻게 손을 댈 수가 없다. 목을 매기는 들보에 줄을 걸어놓고 ── 이 줄은 시골서 올 때에 짐을 묶어가지고 온 것이다 ── 살광에 올라서서 목을 졸라맨 뒤에 뛰어내린 것이다. 그 표적으로 살광에 흙 묻은 발자 죽이 남아 있는 것이다.
 
251
그리고 부뚜막에는 편지가 두 장 놓여 있다.
 
252
노라가 그 편지를 집으려고 하는 것을 학생이 제지하였다.
 
253
"그건 그대로 두십시요. 그게 아마 증거가 될 텐데 순사가 올 때까지 두어 두는 게 졸 것 같습니다."
 
254
생각하면 그렇기도 하다. 그러면 시체도 그대로 두어두어야 할 것이다.
 
255
아까 안잠자기가 벌써 죽었다고 한 말이 있어 그런지 행여 살려내어 보겠다는 생각은 나지도 아니하였다.
 
256
"그러면 파출소에 알려야지요."
 
257
"그렇지요. 우리가 손을 대기보담 순사가 오는 게 좋지요…… 내가 갔다오지요."
 
258
그 학생이 나섰다.
 
259
노라는 혜경이에게도 기별을 하느라고 학생더러 파출소에 다녀오는 길에 혜경이 집에도 찾아가서 말을 전하여 달라고 상점 간판을 가르쳐주었다.
 
260
한 이십 분 후에 순사가 달려왔다.
 
 
261
그는 상황을 대강 수첩에 기록하고는 한 사람 남은 학생과 협력하여 달아 매인 옥순의 시체를 내려놓았다.
 
262
혜경이 내외가 달려왔다. 훨씬 후에는 종로경찰서 사법계 주임이 의사와 순사 두 명을 데리고 올라왔다.
 
263
사법주임이 묻는 대로 노라는 애초에 옥순이를 데리고 오던 이야기로 부터 오늘 일어난 풍파와 그리고 시체를 발견하던 전말을 자세히 이야기 하였다.
 
264
그러나 다만 한 가지 재환이에게서 노라에게 편지가 온 것과 그것을 읽지아니하고 찢어버린 것은 말을 하지 아니하였다.
 
265
그동안에 의사는 검시를 하고 죽은 지 약 세 시간이 경과되었다고 보고 하였다.
 
266
그러면 노라가 그를 발견한 때도 벌써 죽은 지 두 시간이 더 지났었고 한시 가량 해서 목을 맨 것이다.
 
267
사법주임은 먼저 왔던 순사가 간수하여 두었던 옥순이의 유서를 내어 보이며 옥순이의 글씨임에 틀림이 없느냐고 물었다.
 
268
가느다란 철필글씨로 서투르게 "어머님 전 상서."
 
269
라고 쓴 한 장과 "노라 언니께."
 
270
라고 쓴 것이 갈데없이 옥순이의 필적이다. 뒷등에는 아무것도 씌어 있지아니하였다.
 
271
노라는 확실히 옥순이의 필적이라고 대답하였다.
 
272
유서는 참고상 경찰서측에서 가져간다고 거두었고, 시체는 해부를 하기 위 하여 인부를 얻어 들것에 실어가지고 대학병원으로 운반하였다.
 
273
노라는 유서가 보고 싶어 궁금하였으나 어쩔 수가 없었다.
 
274
경찰서 사람들은 돌아가면서 노라더러 될 수 있으면 내일은 밖에 나가지말고 집에 있어 달라고 부탁을 하고 재환이의 주소도 물어가지고 갔다.
 
275
짧은 여름밤이 벌써 새어 하늘이 휘볏이 밝으려 한다.
 
276
"어떡해!"
 
277
혜경이 내외와 방으로 들어앉아 노라는 비로소 걱정이 터져나왔다. 걱정 도하도 여러 가지가 되어 무엇부터 어떻게 생각해야 좋을지를 몰라 그는 떼어놓고 그렇게 한마디 한 것이다.
 
278
옥순이가 죽은 것을 노라는 자기에게 무거운 책임이 있는 줄로 생각을 하였다.
 
279
첫째 시골서 데리고 온 책임이 있고, 또 오늘 ── 이 아니라 어제 저녁에 너무 방심을 하여 죽는 줄을 몰랐고 하였으니, 만일 데리고 오지만 아니하였어도, 또 어제 저녁에 그와 같이 방심만 아니하였어도 옥순이는 죽지를 못 하였을 것이라는 것이다.
 
280
옥순의 부모나 그 오라버니를 무슨 낯으로 대하며, 무어라고 변명을 하랴싶어 쩔쩔맬 것 같았다.
 
281
"자기 집에 기별이나 해주어야지."
 
282
혜경이도 걱정스럽게 입맛을 다신다.
 
283
"놀랠걸? 집안에서."
 
284
"그렇다고 그래도 있을 수야 있나?"
 
285
"그냥 병으로 위독하다고만 전보를 치지."
 
286
이것은 구가의 의견이다. 미상불 그럴 듯한 말이다.
 
287
전보는 날이 밝으면 구가가 맡아서 치기로 하였다. 아홉시에 치면 한 시간 후에는 받아볼 것이고, 두어 시간 준비하여 가지고 오후 한시차로 오면 저녁때 일곱시에 도착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아니하면 밤차로 떠나 내일 아침에 도착할 것이고.──
 
288
혜경이는 노라를 사람이 죽은 집에 두고 갈 수가 없어 남아 있기로 하고 구가만 먼저 돌아갔다.
 
289
노라는 벽에 걸린 옥순이의 옷을 보니 불쌍한 생각이 비로소 솟아올라 눈물이 흘러내렸다.
 
290
"왜 죽어 ! 보아란 듯이 더 잘 살아보잖구!"
 
291
"애기 하나도 못 나보았지?"
 
292
"그럼……"
 
293
"불쌍해라!"
 
294
"세상에 여자가 이렇게 만만할 래서야……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두 여자는 남은 밤을 밝혔다.
 
295
오후에 종로경찰서에서 노라에게 호출이 나왔다.
 
296
혜경이가 노라를 경찰서에 보내놓고 속을 죄면서, 별일 없을 줄은 알지마는 그래도 속은 죄었다. ── 한 시간쯤 기다리노라니까 허덕허덕 바쁜 숨을 쉬면서 돌아왔다.
 
297
"어쨌수?"
 
298
"별일 없었어……이건 도루 주더구만."
 
299
노라는 핸드백 속에서 새벽에 경찰서 사람들이 가져간 옥순이의 유서를 내놓는다. 봉투는 두 장 다 뜯었다.
 
300
"보았수?"
 
 
301
"아니, 아직…… 같이 봅시다 "노라는 우선 자기에게로 한 것을 꺼내어 혜경이와 같이 읽었다.
 
302
"언니 나는 갑니다.
 
303
아무리 생각하여도 살아 있는 것이 쓸데가 없는 것 같아요. 남의 집 문 전 문전을 돌아다니면서 한푼 주시요, 한술 주시요 하는 거지도 세상에 한 가지 낙은 있답니다. 그런데다 대하면 저는 거지 신세만도 못하지 아니 합니까? 한 가진들 무슨 낙을 삼을 것이 있어야지요. 그러나마 시방 당장은 괴롭더라도 장래나 무슨 바라는 것이 있단 말이지, 그것조차 없으니 이런 인생이 무엇하러 살아 있읍니까? 더구나 오늘 같은 그런 창피와 욕을 보고는 정말 세상이 귀치않습니다. 누구를 원망할 것도 없고 다 전생의 업원 이겠지요.
 
304
언니가 그새 극진히 귀애하여 주시고 불쌍히 여겨주신 은혜는 지하에 가서도 잊지 아니하겠읍니다. 혹시 인도환생을 하여 사람으로 태어나면 은공을 갚겠 읍니다. 정말 다시 한번 사내로 되어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나서 버젓하게 살아보고 싶습니다. 언니도 불쌍한 신센데 같이 의지하고 있지 못 하고 이렇게 먼저 가게 되니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305
어머니 아버지께서 너무 놀라실 테니 저의 오라버니한테만 기별하셔요. 그러고 시체는 화장을 하시고 뼈나 추려서 따로 써논 편지와 같이 어머니께 로 보내주세요. 행여 오씨한테 시체를 내어맡기시지 마세요.
 
306
그러면 언니는 부디 안녕히 계세요.
 
307
옥순."
 
308
노라와 혜경이는 말이 없이 눈물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자주 한숨을 쉬었다.
 
309
노라는 어머니한테로 보내달라고 한 또 한 장의 유서를 집어들었다.
 
310
"보아도 괜찮얼까?"
 
311
"괜찮겠지…… 경찰서 사람들도 먼저 보았고, 또 무슨 비밀이야 있을라 구?"
 
312
어머니께로 한 것은 내용이 훨씬 간단하였다.
 
313
"어머니 너무 설워 마세요. 살아 있어서 어머니 아버지께 걱정과 심화를 끼치느니 차라리 이렇게 하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끝으로 딸자식 하나 아니 두었던 폭만 잡으시고 부디 너무 설워 마세요.
 
314
살아서 떠나왔던 제가 백골이 되어 어머니 앞에 나가게 될 일을 생각 하면 저 도 가슴이 터지는 듯합니다마는 다 이것이 전생의 죄로 생각할 뿐입니다.
 
 
315
노라언니를 일후라도 만나시거든 저를 본 듯이 반겨하세요. 신세도 퍽 졌 읍니다.
 
316
혹시 아버지께서 고집하시더라도 백골을 오씨 집으로 보내시지는 마시 고우리 선산 한구석에 묻어 주세요.
 
317
불효 옥순 복배."
 
318
노라는 참다 못하여 느끼어 울었다.
 
319
슬프고 슬픈 중에도 옥순이 마음과 같이 세상이 모두 귀치아니하고 하 염 없어 차라리 옥순이 뒤를 따라 죽어나 버렸으면 싶었다.
 
320
"시체를 어떡헐까?"
 
321
노라가 진정하기를 기다려 혜경이가 묻는다.
 
322
"글쎄…… 경찰서에서는 오씨더러 맡으라고 하니까 맡겠다고 하는데 그래도 괜찮은가 묻 더구만…… ""그래서?"
 
323
"그래서 그 오라버니나 누가 올 테니까 상의해서 하겠다구 그렸수."
 
324
"잘했수…… 유언도 있고 하니까 시골서 아니 오더래도 우리가 어떻게 장례를 지내 줍시다."
 
325
"그럼 그래야지……나도 오씨한테 내주구는 싶잖어."
 
326
적막한 장례의 행렬이다.
 
327
앞에 시체를 실은 영구차가 가고 뒤에는 노라와 혜경이와 형순이를 태운 자동차가 단 한 채 따라가고 있다.
 
328
형순이는 옥순이의 오라버니다. 그는 옥순이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돈을 변통하느라고 어제 밤차로 떠나 오늘 아침에 도착하였다.
 
329
그는 옥순이가 이미 죽었다는 말을 듣고 놀랐고, 죽되 그와 같이 죽었다는말에는 더 놀랐다. 그는 두 주먹을 부르르 떨며 대번 재환이에게로 쫓아가려고 하는 것을 노라와 혜경이가 장례나 끝난 뒤에 어떻게든지 하라고 굳이 만류 하였다.
 
330
준비라야 별반 없었다. 대학병원 시체실이 그냥 호상소가 되었고, 관 하나를 사오고 영구차를 불러온 것으로 다 되었다.
 
331
수의는 역시 파격으로 형순이가 가져온 옷을 입히었다. 어머니가 딸을 생각하고 안팎 옷 한 벌을 지어 마침 우편으로 붙이려고 하던 것인데 형 순이가 오게 되어 가지고 온 것이다. 옷을 입히면서 노라는 산 사람에게 하 듯이 말을 하였다.
 
 
332
"어머니가 자네 입으라고 해 보내신 옷이네. 정히 입고 가게…… 이 옷을 살어서 입으라고 해 보내주셨는데 입고 황천을…… "말을 맺지 못하고 울었다.
 
333
만가 한장 아뢰지 못하는 단출한 장례의 행렬이 자동차의 경적 소리로 홍제원 화장터에 당도하였다.
 
334
굳이 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찬 없는 밥상의 간장 종지같이 부족하여 있는 것이니 잠시 관을 불단 앞에 놓고 어설픈 염불과 목탁을 울리었다.
 
335
세 사람의 힘으로, 더구나 여자가 둘이니 관을 들어다 화덕 아궁이에 집어넣 기는 매우 힘이 들었다.
 
336
어디서 큰 양북과 나팔 등을 짊어진 사인조의 양악대가 나타나서 헐 직한 비곡을 한 곡조 불어주고는 씽씽 가버린다.
 
337
화덕의 쇠뚜껑이 찰카닥 닫히니 이걸로 정말 마지막이니라 싶어 노라와 혜경이는 마주 어깨를 그러안고 울었다. 형순이도 울었다.
 
338
이것이 사람 하나를 이 세상에서 작별하는 마당인가 생각하니 너무도 단 출 함이 애달팠다. 화덕 위에 켜져 있는 가느다란 초 한 자루가 외로운 장례를 더욱 외롭게 하는 것이다.
 
339
노라와 혜경이는 밖으로 나왔다.
 
340
노라는 문득 남의사의 생각이 났다.
 
341
두 여자는 산기슭으로 이리저리 한참이나 찾아다니다가 겨우 남의사의 무덤을 찾아내었다.
 
342
시골 같으면 어린애 묘라고 할 만큼 조그맣게 봉분을 쌓아올린 옆에 "남 병희지 묘 "라고 돌에 새긴 푯말이 박혀 있을 뿐이다.
 
343
금년에 입힌 떼가 아직 자리가 잡히지 아니하여 엉성한 게 머리털이 성 긴 사람의 머리 같다.
 
344
누구 하나 찾아오는 사람도 없는지 꽃 한 송이도, 시든 가지도 흘려 있지아니 한다.
 
345
노라는 미리 생각하고 꽃이라도 몇 송이 사가지고 오지 못한 것을 뉘우쳤다.
 
346
그는 무덤 옆에 서서 고개를 숙였다. 마치 신을 지키지 못한 것을 사과 하는 듯이. ── 남의사는 그가 죽을 때의 마지막 편지에 그대도록 간절하게 자기를 잊어버리지 말아달라고 노라에게 부탁하였건만 노라는 잊어버리고 있었다.
 
347
서울로 올라온지 한 달이 넘건만 요전에 잠깐 생각이 나서 혜경이와 이야 기를 하였을 뿐이요, 오늘도 그는 꽃 한송이도 들고 오지 아니하였다.
 
348
자기에게 대한 깨끗한 사랑을 가슴에 품은 채 불쌍하게 돌아간 남의사에게 노라는 진심으로 미안하였다.
 
349
한참 만에 다시 화장장으로 내려오니 언제 왔는지 재환이가 왔고, 형 순이가 그의 앞에 서서 잔뜩 노리고 있었다.
 
350
멀리서 들어도 형순이의 어성은 대단 거칠고 높다.
 
351
오늘 아침에 부들부들 떨며 벼르던 분풀이가 시작이 된 모양이다.
 
352
노라와 혜경이는 빨리 두 사람의 옆으로 갔다.
 
353
재환이는 기회가 좋다는 듯이 모자를 벗고 정답게 인사를 한다.
 
354
"저는 이렇게 될 줄은 모르고 대학병원으로 갔었지요. 어제도 말씀 했지 만기 위 그렇게 된 일이니 제 집으로 데려다가 준비나 좀 해가지고 장례라도 지낼랴 고 한 것인데…… "말은 노라와 혜경이게 하는 것이지만 실상은 형순이더러 들으란 소리다.
 
355
형순이는 잡아먹고 싶은 듯이 돌아서서 지껄이는 재환이의 옆얼굴을 노려보고 있다.
 
356
"참 요전날은 너무 죄송스런 짓을 해서 머 뵐 낯이 없읍니다. 저도 퍽 흥분이 되었기 때문에 그만 그렇게…… 그 배라먹을 여편네가 뒤를 밟어 왔든 모양이야 요…… 히스테리 히스테리 해도 여간 히스테리가 아닌걸요. 집으로 데리고 가서 단단히 나무라기는 했 읍니 다만…… "노라와 혜경이는 저마다 "매나 아니 맞었으면 제법이다."
 
357
하고 속으로 웃었다.
 
358
누구 한 사람 대꾸도 아니해 주건만 그는 계속하여 지껄인다.
 
359
"그날 참 두 분 한테는 퍽 죄송스럽게 되었지만 그 사람한테야 별로 잘못한 것이 없읍니다. 보셨으니 아시겠지만 그렇잖아요?"
 
360
그 사람이라는 것은 옥순이를 가리켜 하는 말이다.
 
361
"두 분이 이 사람한테 어떻게 말을 전하신지는 모르겠읍니다마는 이 사람은 지금 날더러…… "이 말에는 혜경이가 가로타고 나서서 면박을 준다.
 
362
"어떻게 전하긴 무얼 어떻게 전해요? 사실대로만 다 말씀했지요."
 
363
"네 네, 물론 그러신 줄 압니다. 사실대로 말씀하신 줄 알어요…… 글쎄 그 사실이 제가 멋 별로 잘못된 것이야 있읍니까?…… 싸움을 떼어 놓 자니까 어떻게 손이 잘못 가서 머리채가 잡힐 수도 있고, 또 흥분된 끝이라 편협 하게 그 사람을 나무라게 된 모양인데…… " "다 알었어. 인제는 내 말을 들어."
 
364
형순이가 재환이의 어깨를 잡아 홱 돌려세운다.
 
365
"가만, 가만 좀 있어."
 
366
"가만 있기는 무얼 가만 있어. 그만하면 다 알었어……내 이야기를 들어…… "형 순이는 아침에 벼르던 것보다는 많이 침착하였다. 그리하여 별로 여러 사람 앞에서 요란하게 떠들어 모양이 흉헙거나 하지는 아니할 것 같아 두 여자는 말리려고도 아니하고 두어두고 보았다.
 
367
실상 재환이가 미운깐으로는 실컷 좀 얻어맞는 것을 보았으면 시원하였겠으나 오늘 아침에는 형순이가 너무 흥분된 끝에 늘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몰라 그와 같이 절절히 말리었던 것이다.
 
368
"아까도 말했지만 오늘 아침쯤만 너를 만났어도 너는 내 손에 뒤어 졌을것인데, 아마 네놈이 아직도 못된 짓을 조금은 더 하라는 운순 모양이다.
 
369
많이 해먹다가 어느 놈한테든지 맞어 죽어라…… 그렇지만 네한테 한 마디 물어볼 말이 있다…… 네가 왜 내 누이 머리채를 잡어 동댕이치고 발길로 내 질르고 그랬어?"
 
370
"글쎄 지금도 이야기를 하잖앴나…… 싸움을 뜯어말리자니 손이 잘못 가서 그렇게 된 것이요, 나는 흥분된 판이라…… ""글쎄 그 따우 소리는 골백번 뇌어야 소용없어……너는 이놈 이혼을 아니해 준다고 우리 어머니 아버지한테 그 숭악한 폭담을 다 했지…… 내 개도 그랬지. 그 애더러는 이혼을 아니해 줄 테면 죽으라고 그랬지…… 그러고 너는 다른 계집을 얻어 살지…… 그러니까 너하고 우리하고는 형식으로 법률상 수속이 아니 끝났을 뿐이지 인연은 끈친 지가 오래다…… 너도 평소에 아주 남이 된 줄로 말을 했지?…… 그랬지?
 
371
형순이는 맨 끝말을 거듭하여 다지었다. 재환이는 그렇다고 고개를 끄떡거렸다.
 
372
"그래…… 그러면 너는 그애한테 아주 남이야? 그애도 너에게 상관이 없고…… 그런데 네가 무엇 때문에 그애를 때려?"
 
373
형순이는 꿰뚫을 듯이 재환이를 똑바로 치어다보았다.
 
374
"잘못했네."
 
375
재환이는 고개를 숙이었다. 그러나 그의 태도가 지금 비로소 잘못을 깨닫고 사과를 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렇게 해서든지 이 곤경을 벗어져 나가려고만 하는 것이 분명하였다.
 
376
사실 그는 인제는 형순이의 손만 벗어져 나면 그만인 것이다. 그렇게 하지 못 해서 애를 쓰던 이혼이 저절로 된 셈이겠다, 형순이에게 잘못하였다고 사과 한마디 하는 것쯤이야 아무렇지도 아니한 것이다.
 
377
"잘못했어? 흥, 내가 네 속을 안다…… 네가 이놈 족히 내게 머리를 숙이고 사과를 할 놈이다! 시언하지? 이혼 못해서 발광하든 여편네가 죽어 바리니까 시언하지? 그렇지만 안될 말이다. 사람이 죽었어. 너 때문에 사람이 죽었어…… 허기야 네가 네 손으로 죽인 것이 아니니까 법률상으로 문제야 되지 아니하겠지? 그렇지만 그것이 법률적으로 문제가 아니 된다고 너는 가만히 있을 테란 말이지? 잘못했다고 한마디 해바리고."
 
378
"그러면 대관절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은가? 내가 잘못했어…… 그렇지만 죽은 사람을 살려 놓는 재주는 없으니까 그 밖에 무어나 자네가 하라는 대로 하문세."
 
379
실상 형순이는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재환이를 붙잡고 따지기는 하나 어찌 하자는 것도 없는 것이다.
 
380
실컷 두들겨 주기나 하였으면 당장은 속이 풀리겠지만 저편에서 그저 잡아 잡수시요 하고 있으니 때릴 흥도 나지 아니하는 것이다.
 
381
혹 돈의 힘이나 가지고 어떻게 복수를 하였으면 좋겠지만 그것은 저편 이부자요 이편이 가난뱅이니 생심도 못할 말이다. 형순이의 지금 경우야말로 울며 겨자먹기다.
 
382
"어떻게 하라고 시킬 것도 없다. 내 손으로 할 테다. 내가 내 생전에 못하고 죽으면 자식의 대 손자대까지 물려가면서라도 이 한을 풀고래야 말 것이다."
 
383
이 말을 하고 그는 돌아섰다. 할 수 없이 쏟쳐나온 말이나마 그만큼 다지어 두니 그래도 조금은 시원하고 뒷일이 든든한 것 같았다.
 
384
유골은 옥순이의 유언대로 시골로 가져갈 터인데 내일 다시 와서 찾기 로하고 사무실에 말을 한 뒤에 그곳을 나섰다.
 
385
노라는 고개를 돌이켜 연돌에서 올라오는 연기를 바라보았다.
 
386
생때같이 펄펄하던 옥순이가 저 연기가 되어 사라지느니라 생각하니 새 삼 스레 눈물이 솟아오르는 것이다.
【원문】8. 빛깔 좋은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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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만식(蔡萬植) [저자]
 
  1933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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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07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