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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형의 집을 나와서 ◈
◇ 7. 끊으려 하나 끊기지 않는 것 ◇
카탈로그   목차 (총 : 14권)     이전 7권 다음
1933.5
채만식
1
人形[인형]의 집을 나와서
2
7. 끊으려 하나 끊기지 않는 것
 
3
"송이가 앓는다는구려!"
 
4
그런 말이리라고 짐작은 하였으나 듣고 나니 정신이 아득하여진다.
 
 
5
어느 아이라고 어머니 된 마음에 덜 귀애하였으랴만 그런 중에도 유난 스레 어머니를 따르던 아이가 송이다.
 
6
집을 나온 뒤로 제일 보채면서 어머니를 찾는다는 송이다.
 
7
그러던 아이가 앓아누웠으니 오죽이나 없는 어머니를 찾으면서 보챌까.
 
8
"어떻게 앓는답디까?"
 
9
노라는 목멘 소리로 겨우 물었다.
 
10
"홍역이래…… 어제 이 앞에서 현을 만났는데 아이들 잘 노느냐고 물으니까 송이놈이 홍역으로 앓는다구 그리드 구먼…… "노라는 방금 자기자신이 홍역하는 아이가 앓듯이 열이 나고 목안이 타고 하는 것 같았다.
 
11
입술이 새까맣게 타고 몸이 불덩이같이 더워 정신을 못 차리고 꽁꽁 힘들게 앓아누웠을 송이가 눈앞에 삼삼 밟혔다.
 
12
약시중은 누가 해주나? 어머니가 아니면 약도 먹지 아니하는 아인 데…… 밥에는 누가 병간을 해주나? 유모나 하인들이 무슨 그리 탐탁하게 밤을 새워가며 그 옆에 지켜앉았을 리가 없고, 저의 아버지란 사람은 한번 잠이 들면 옆에서 불침을 놓아도 모르고 자는 사람…… 그것이 그러다가 죽기나 하면 어떻게 하나? 홍역이란 잘못하면 죽는 법인데…… "언제부터 앓는다구?"
 
13
"어저께 말이 그저께라구 했으니까 나흘째 되나?"
 
14
그러면 마리아를 만나던 바로 그 이튿날이나 그그 이튿날이다.
 
15
지금쯤이 한창 심한 때다. 마리아는 연전에 앓고 났으니까 관계치 아니하겠지만 끝에아이 안나에게는 전염이 될지도 모른다.
 
16
노라는 안절부절 어찌할 줄을 몰랐다.
 
17
대번 선걸음에 계동으로 뛰어올라가고 싶은 마음은 꿀안 같으나 남편과 얼굴을 대할 생각을 하니 용기가 나지를 아니하였다.
 
18
"어떻게 해?"
 
19
혜경이가 걱정을 한다.
 
20
"어떻게 해?"
 
21
노라도 이 말밖에는 나오지 아니하였다.
 
22
"혜경이가 좀 갔다와 주."
 
23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노라가 청을 하였다.
 
24
"글쎄 내가 갔다오기야 어렵잖지만 내가 간들 무슨 소용이 있나?"
 
25
"그래두 증세가 어떤가 알기라도 하면…… " "그럼 내가 다녀오지."
 
26
혜경이는 나들이옷을 갈아 입고 나섰다.
 
27
"혹 현이 내말을 묻거든 저기 필운동 이야기는 허지 말우."
 
28
"응…… 그렇지만 아모때 알어두 알걸…… ""그래두…… "노라는 혜경이를 보내놓고 그가 돌아오기까지 한 사십 분 동안이나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 기나긴 봄날의 오후가 다 가는 듯이 오랜 듯만 하였다.
 
29
겨우겨우 돌아오는 혜경이의 얼굴을 보고 노라는 말도 듣기 전에 낙심을 하였다.
 
30
"어떻지?"
 
31
"대단해!"
 
32
"어떻게?"
 
33
"몸이 불뎅이 같구 입술이 새까맣게 타서…… 성할 때는 그렇게 팔팔하든아이가 꼼짝 아니하고 눈을 딱 감고 누웠겠지…… ""곁에는 누가 있구?"
 
34
"간호부가 있드구먼."
 
35
"저이 아버지는?"
 
36
"없어."
 
37
노라는 현을 무정한 애비라고 원망하고 생각하니 자기가 스스로 부끄러웠다.
 
38
"꽃은 돋았구?"
 
39
"응. 지금 한창……곱게 돋드구먼."
 
40
"안나는?"
 
41
"그애는 참 저이 아버지가 어느 친구 집에다 데려다 두었다구…… 그런데 글쎄 내가 옆에 가 앉으면서 '아가, 송아’하고 부르니까 꼼짝 아니하고 누웠든 아이가'엄마’부르고 눈을 번쩍 뜨겠지…… 그러더니 나를 보고는 어린 깐에도 낙심이 되는지 눈을 도루 스르르 감어바리는구려."
 
42
노라는 그만 비오듯 쏟아지는 눈물을 씻으려고도 아니하고 미친 듯이 밖으로 뛰어나왔다.
 
43
혜경이는 깜짝 놀라 노라의 뒤를 쫒아나와 보았다.
 
44
노라는 눈물을 거덤거덤 씻으면서 안동 네거리를 가로질러 계동편으로 허둥지둥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45
지나가는 사람들이 저마다 발길을 멈추고 혹은 일부러 돌아서서 이 눈물을 짜며 큰길거리로 지나가는 신식 여인을 바라다보나 노라는 그런 것은 주의 에 들어오지 아니하는 듯싶었다.
 
46
혜경이는 회심(會心)의 웃음을 띠고 남편이 있는 가가 앞으로 갔다.
 
47
구가는 판 물건을 장부에 기입하고 있다가 혜경이가 무슨 의미가 있는 듯이 웃고 섰는 것을 보고 마주 웃는다.
 
48
"무어야?"
 
49
"일이 묘하게 잘될 듯싶은데…… 이리 나와 저것 좀 봐요."
 
50
구가는 구두를 끌고 가가 앞으로 나와 혜경이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51
"무어야?"
 
52
"저어기 휩쓸고 길 한가운데로 가는 여자가 있잖수?"
 
53
"응…… 거 노라 아니우?"
 
54
"그렇다우."
 
55
"어데를 가는 거야?"
 
56
혜경이는 웃었다.
 
57
"어디 갈 듯싶소?"
 
58
"글쎄……계동 가나?"
 
59
"응"
 
60
"왜?"
 
61
구가는 의아한다. 그렇게도 고집을 부리던 노라가 저렇게 허둥지둥…… 막말로 하면 미친 사람같이 큰길 가운데로 휩쓸면서 현의 집으로 뛰어간 다는것은 미덥지 못한 말이었던 것이다.
 
62
"왜라니! 일이 잘되었지."
 
63
혜경이는 핀잔을 준다. 노라는 그새 사람들 틈에 가리어 잘 보이지 아니 한다.
 
64
"그러면 아주 가나?"
 
65
"아주 가기 쉬울 걸…… ""어째서?"
 
66
"생발광을 해요…… 그래 나더러 가보고 와달라길래 가보았더니 딴은 몹시 앓어요. 그래 그 말을 듣고 지금 저러구 가는 거라우."
 
67
"흥"
 
68
구가는 코 웃음을 하고 돌아섰다.
 
69
"왜 흥 허우?"
 
70
"아니, 일이 잘되는 게 싫지야 않지만 어린애 하나쯤 앓는다고 저렇게 날뛸 테면 애초에 왜 나와요?"
 
 
71
"그건 그거구 이건 이거지…… 여자라고 밤낮 그렇게 남편의 종으로 살란 법인가?"
 
72
"흥, 그러니까…… 자유 해방을 했으니까 저 꼴이로구만! 왜 남편 마다하고 자식들 버리구 한 달에 돈 사십 원에 목을 매여 살면서 그리 허둥지둥 해!…… 하필 노라한테만 하는 말이 아니지만 요즘 여편네들이란 뱃속에 식자나 들어가면 건방져서 못써…… 정말 그 사건에 내가 다소간 양심에 부끄런 일이 있으니까 미안한 생각이 없진 아니하지만 좀 마땅치 못 해…… ""괜히 당신은 남의 일을 가지고 열이 나서 그러는 구려! 노라가 그래 불쌍하지도 않수?"
 
73
"불쌍하기야 하지…… 그렇지만 당신도 자식이나 한 서너 개 나놓구는 저 꼴을 할 테요?"
 
74
구가는 심술궂게 입을 비죽거린다.
 
75
"그때 가서 봐야지."
 
76
혜경이도 웃었다.
 
77
"여편네란 소견이 없어서 그래…… 억만 년 가야 주름잡은 옷을 못 면 할 걸…… "구가는 또 독설을 부리려고 한다.
 
78
"남의 걱정 그만 해두고 들어가서 점심이나 잡수."
 
79
혜경이는 더 말을 하지 못하게 막았다.
 
80
"당신은 먹었수?"
 
81
"아니……먼점 잡수."
 
82
"먼저 먹지."
 
83
"먼점 잡수어요. 난 그새 가가 보께."
 
84
부부는 웃으면서 안팎으로 헤어졌다.
 
85
혜경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노라가 어떻게 되었나 궁금증이 나서 안절부절 하였다.
 
86
급한 마음 같아서는 계동으로 찾아가서 보고도 싶었으나 그리할 수는 없었다.
 
87
겨우겨우 서너 시간쯤 지난 뒤에 더 기달릴 수 없어 소격동 집으로 올라갔다.
 
88
발자취 소리를 숨겨 중문 밖에서 엿들으니까 조용하고 아무 기척이 없다.
 
89
그는 우선 안심을 하고 중문을 밀치고 들어섰다.
 
90
이날은 공교로이 기분이 좋지 못하던 차라 그것이 노라에게 적지 않이 격 동을 준 것이다.
 
91
그는 어떻게 해서 왔는지 모르게 열에 뜬 사람처럼 정신이 없이 계동 집에 다다랐다.
 
92
문 앞에 인력거 한 채가 놓인 것도 알지 못하였다.
 
93
지쳐둔 대문을 밀어젖히고 안마당으로 들어서니 집에 있지 아니한 줄 알았던 현이 의외에 대뜰에 서서 있다. 방금 들어왔는지 모자도 벗지 아니하고 서서 아까 혜경이가 보았다던 간호부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
 
94
노라는 무춤하고 발을 멈추었다.
 
95
현의 얼굴에는 놀라움과 기뻐하는 빛이 숨길 수 없이 나타났다. 그러나 엄숙한 태도는 고치지 아니하였다.
 
96
그러자 유모가 맨처음 노라를 보고 버선발로 뛰어내려온다.
 
97
"아씨!"
 
98
식모와 어멈도 모두 뛰어나와 노라를 둘러싼다.
 
99
노라는 반가와하는 그들에게 별로 말도 아니라고 다만 유모더러 "송이 아기 어데 있나?"
 
100
하고 물었다.
 
101
"안방에요."
 
102
노라는 현에게 싸늘한 외면을 하고 마루로 올라가 안방 미닫이를 사르르 열었다. 더운 기운이 후끈 얼굴을 스친다.
 
103
송이는 혜경이가 말한 대로 눈을 딱 감고 누워 있다. 노라는 그 옆에 조용히 앉아 잠을 자나 하고 숨소리를 들어보았다. 자지는 아니하였다.
 
104
"아가, 송아."
 
105
부르는 소리가 떨어지기도 전에 송이는 눈을 번쩍 떴다.
 
106
"엄마."
 
107
한마디 부르고 그는 힘없는 팔을 들려 한다. 안기자는 뜻이다.
 
108
노라는 송이를 안았다. 빠꼼히 뜬 눈으로 기쁜 듯이 그는 어머니를 바라본다.
 
109
몸이 성할 때 같으면 별 새살을 다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다만 눈 하나로 반가운 인사를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110
잠시 그는 어머니를 보고 있더니 그것도 괴로운 듯이 눈을 스르르 감는다.
 
111
그 얼굴이 아까와는 달리 안심하고 마음을 놓은 듯하다.
 
112
노라는 비로소 방안에 인기척이 있는 것을 알고 고개를 들었다.
 
113
유모와 간호부가 웃목으로 비껴서서 있는 것이다.
 
114
유모는 그동안 어린아이들을 맡은 책임이 있는지라 자기의 잘못으로 아이 가 병이 난 줄로 아는지 근심스런 얼굴로 꾸지람을 기다리고 있다.
 
115
"먹이기는 무얼 먹이나?"
 
116
노라는 부드럽게 유모더러 물었다.
 
117
"미음을 쑤기는 하지만 아기가 통히 먹질 아니해유."
 
118
노라는 송이를 굽어다보았다. 송이는 또 눈을 떠서 어머니를 바라보다가 역시 안심한 듯이 눈을 감는다.
 
119
"먹잖는 것을 괜찮다고 선생님이 그리세요."
 
120
간호부가 비로소 말을 거든다.
 
121
"어느 선생님의 보시는데요?"
 
122
"중제병원 오선생님이세요."
 
123
중제병원의 오씨라면 소아과의 권위다. 그것만은 노라도 한마음 놓이는 듯 하였다.
 
124
"과히 걱정 마세요. 선생님도 경과가 아주 좋다고 그러시니까…… 이대 로만 가면 한 삼사 일만 지나면 열도 내리구 별일 없으리라구 그리세요."
 
125
노라는 혜경이에게서 듣던 때와는 마음이 많이 놓였다. 그는 실상 송이가 앓는다는 말에 놀랐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그것보다도 '엄마’부르며 눈을 떴다가 실망하더란 그 말에 그만 격동을 받았었던 것이다.
 
126
"수고 많이 하셨소."
 
127
노라는 간호부에게 치하를 하였다. 미상불 눈에 아니 보이는 의사보다도 간호 부가 송이의 병을 낫우어 주는 성만 싶었던 것이다.
 
128
"아이구 원! 제야 무슨…… "송이는 잠을 삭삭 잔다. 잠이 깨지 아니하게 조용히 자리에 내려 뉘고 다시 한번 얼굴을 굽어다보았다.
 
129
밖에서는 현이 무어라고 연해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 성이 나서 떠드는 것이 아니다.
 
130
아무리 괴로운 병중이라도 오랜간만에 어머니를 만나 맘을 놓고 자는 어린 아들의 얼굴이다. 노라는 안심을 하고 자는 그 얼굴에서 차마 고개를 들지못하였다.
 
131
그는 차라리 참고 오지 아니하였더면 하는 후회도 하였으나 그래도 오기는잘 왔구나 싶어 마음이 흡족하였다.
 
132
그는 일어서서 비로소 방안을 둘러보았다.
 
133
모든 것이 전에 자기가 있을 때 그대로 되어 있지는 아니하나 그래도 포근히 안아주는 듯한 그리운 방이다.
 
134
그는 그대로 펄썩 주저앉아 버리고 싶었다.
 
 
135
버티어 오던 고집도 남편에게 대하여 굽히게 될 자존심도 아무것도 다 내던지고 그대로 주저앉아 버리고도 싶은 것이다.
 
136
남편과의 사이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
 
137
형식으로만 부부로 한 가정에서 생활을 해가고 내용으로는 부부라는 것을 해소 해 버리면 그만이다.
 
138
그러고 자유도 인격도 다 내던지고 세 어린아이의 착한 어머니로 모든 것을 꿀꺽 참고 지내가면 그만이다. 내 한몸이야 아무런들 어떠냐. 어린 아이들이 잘 자라고 잘되면 그만이지.
 
139
"마리아는 유치원에서 아니 왔나?"
 
140
마리아가 아니 보이는 것이 궁금하여 유모에게 물었다.
 
141
"네. 아직 아니 왔어요…… 오늘은 유난히 늦습니다."
 
142
"안나는 어디 다른 댁에 데려다 두었다구?"
 
143
"네…… 나리님이…… "어떻게 할까? 하고 혼자 생각하면서 노라는 무의식중에 마루로 나왔다.
 
144
보금자리의 새끼들에게 정은 있으면서 노라는 벌써 수풀에 길든 새다.
 
145
노라가 아주 돌아온 줄만 알고 내심에 기뻐 어깨춤이라도 추고 싶던 현은 그가 핸드백을 들고 나오는 것을 보자 얼굴이 대번 퍼렇게 질리고 사납게 노라를 노려본다. 현은 노라가 집을 나간 것도 분하거니와 그렇게 알른알른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 자기를 우롱하는 것 같아 더욱 심정이 상한 것이다.
 
146
현의 뇌꼴스러운 눈을 본 노라는 고요히 망설이던 생각이 벌컥 뒤집히어 쿵쿵 걸어나가 신발을 신고 마당으로 내려섰다.
 
147
"여보."
 
148
현이 터질 듯한 소리를 버럭 지른다.
 
149
노라는 침착하게 돌아서서 고개를 쳐들고 현을 마주 바라보았다.
 
150
"왜 그러세요?"
 
151
현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앞니를 물었다 놓았다 하며 말이 없이 한참 두고노라 를 노려본다.
 
152
하인들은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모두 구석에 숨어 서서 장차에 일어나려는 폭풍우를 근심스레 기다린다.
 
153
"왜 왔어?"
 
154
"여전하십니다그려!……어린애가 앓는다고 해서 보러 왔어요…… 어느 년이 치사스럽게 도루 기어들어온 줄 알었읍디까?"
 
155
노라의 이 싸늘한 태도와 말에 현도 자기 혼자 흥분하는 것이 불리한 줄깨 달았던지 태도를 고치었다.
 
 
156
"흥. 이 집은 뉘 집이고 자식은 뉘 자식인데?"
 
157
"집은 당신 집이지만 자식은 나도 만나볼 권리가 있어요. 어미니깐."
 
158
"어미 ! !…… 그래도 어미 노릇은 못하면서 권리는 찾는구나! 뻔뻔스럽게 시리…… 무슨 낯으로 어미랍시고 자식들을 대해?"
 
159
이 말은 노라의 가슴을 찔렀다. 그러나 그는 지고 싶지 아니하였다.
 
160
"암만 그래도 당신 혼자 자식은 아니예요. 나도 데려다 기를 테예요. 재판을 해서라 두…… "인제는 뒤바뀌어 노라가 흥분이 되고 현이 도리어 조롱하는 태도다.
 
161
"허허허허…… 마님! 법률을 얼마나 그동안 연구하신지는 모르겠 읍니 다마는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나간 마님께 자식을 찾어 드릴 법률은 아직 생기지 아니했읍니다, 네."
 
162
노라는 더 말을 아니하려고 홱 돌아서는데 안방에서 송이가 엄마를 부른다. 그는 떼어놓으려던 발길을 멈칫하였다.
 
163
노라가 소격동 집으로 돌아온 것은 혜경이가 옥순이와 한참 오늘 이야기 를하고 있는 판이었었다.
 
164
혜경이는 노라가 돌아온 것을 보고 입맛을 다시었다. 옥순이도 혜경이에게 노라가 어찌하면 도로 들어가서 살게 되리라는 말을 듣고 있던 끝이라 일변 안되었 기도 하면서 그러나 일변 반갑기도 하였다. 이 넓은 서울 바닥에서 다만 한 사람 힘 입고 있는 노라가 옛 남편을 찾아 들어간다면 자기는 어찌하 랴 싶어 은근히 걱정을 하였던 것이다.
 
165
세 사람은 약속이나 한것처럼 아무 말이 없이 한동안 앉았다가 옥 순이가 일어섰다.
 
166
"언니, 점심 잡수서야지."
 
167
"먹구 싶잖어."
 
168
노라는 넋이 나간 듯이 바람벽만 바라보다가 혜경이에게 하소연을 내놓는다.
 
169
"세상에 자식이 애비도 애비려니와 어미 없는 자식이 있수? 아모리 어미와 아비는 서로 남이 되었기로서니 자식이 둘이나 셋이 있으면 그중에 하나는 어미가 데려와야 할 게 아니요?"
 
170
"데려와도 좋기는 하겠지만 그 애들로 보면 저의 아버지한테 있는 게 낫겠지…… 또 노라도 모아둔 재산이 없겠다 데려다가 어떡헐려구 그리우?"
 
171
"그렇지만 억울허잖수?"
 
172
"무엇이?"
 
 
173
혜경이는 노라가 계동집에 갔다가 현과 충돌된 것을 모르는 때문에 그 의하는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한다.
 
174
"글쎄 현이 네게는 권리가 없다구 딱딱 얼러대는구려! 그래 하두 분해서진 고개 어떤 변호사를 찾어가서 재판을 할 수가 없느냐 구…… "노라가 말을 맺기도 전에 혜경이는 실소를 한다.
 
175
노라도 흥분이 많이 가라앉은 다음이다. 변호사를 찾아가고 재판할 궁리 를하고 한 것이 딴은 우스워서 혜경이를 따라 웃었다.
 
176
"그렇지만 그래 그런 놈의 법률이 어데 있수?"
 
177
"글쎄 욕심 같애서는 셋이라도 다 뺏어왔으면 좋겠지만, 하나라도 데리고있으면 괴로워요…… 기왕 이렇게 된 바이거든 다 단념을 허구려!"
 
178
"단념이야 했지만 잊혀지잖는 걸 어떡허우? 아모 소식도 아니 들리는 데 가서 있다면 모른지만…… ""그렇지만 애비 없는 자식을 홀어미 혼자서 데리고 기르기는 못할 노릇이야."
 
179
혜경이는 전 남편에게서 생겼던 어린아이를 혼자 어렵사리 기르던 일을 생각 하였다. 그도 이렇게 말은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죽지 아니하였더라면 하는 그리운 생각도 들었다.
 
180
"이 안집은…… "하고 혜경의 말을 받아 옥순이가 이야기를 꺼낸다.
 
181
"아들 하나 딸 하나 남맨데 스물다섯에 혼자 되었대요."
 
182
"주인이 과부가?"
 
183
혜경이가 묻는다.
 
184
"예."
 
185
"지금 멫 살인데?"
 
186
"스물여덟이라든지……"
 
187
"가엾어라…… 문패에 한성희라고 붙은 게 그인 게로구먼?"
 
188
"예. 한씨래요."
 
189
"자네는 어떻게 그렇게 알었나?"
 
190
노라가 웃으면서 묻는다.
 
191
"아까 그 집 식모가 와서요, 와서 앉어서 종알종알 이야기를 하드만요."
 
192
"그래도 재산이 좀 있는 게지…… 시방 살어가기는 남편이 살었을 때 다니던 데서 불쌍하다고 한 달에 돈 십원 씩 준다느만요. 그것하고 또 뜰 아랫방에다 학생 둘을 쳐서 겨우 살어가는데 늘 살림이 몰린대요. 그래서 이 채도 띄여서 전세를 놓았다는데…… " "노인도 하나 있지?"
 
193
"친정어머니랍디다. 일가 친척이라구는 그 친정어머니하고 시골 있는 오라버니 하나뿐이래요."
 
194
"차림새가 신여성이지?"
 
195
"학교 공부를 많이 했대요."
 
196
"네 과부가 한 울안에 잘도 모였다!"
 
197
노라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고소를 하였다. 혜경이도 따라 웃는다.
 
198
"나도 서방을 아니 얻었으면 와서 한몫 끼일 걸 그랬지!"
 
199
"참 옥순이는 그 집에 한번 찾어가보지?"
 
200
'그집’이라는 것은 옥순이의 남편 재환이가 새장가를 들어가지고 사는 집 말이다. 옥순이는 시골 있을 때에 이혼해 달라는 편지를 몇 차례 받았기 때문에 그 집의 동명과 번지를 외우고 있었다.
 
201
이 집에 들던 날 혜경이도 있는데 우연히 그러한 이야기가 났었던 것이다.
 
202
"한번 찾아가 보시 우그려…… "혜경이는 노라의 농삼아 한 말과는 달리 정말로 권고를 한다.
 
203
"내가 미쳤던가! 멋허러 찾어가요?"
 
204
"원 참! 나 같으면 아주 척 버티고 가겠소…… 암만 저이끼리 좋아 지내고 이편은 소박을 하지만 그래도 당신이 큰마누라가 아니요? 그 색시는 첩이고…… 그러니깐 척 가서 아랫목에 버티고 앉어서'내가 정실부인이다.
 
205
여보게, 나리 진지상 올리게. 숭늉 잡사 올리게!’하고 한번 뽐내봐요."
 
206
세 여자는 모두 웃었다. 농을 하고 웃기는 하나 노라나 혜경이는 생각에 한번 그래보았으면 그 사내의 쩔쩔매는 꼴이나 그 색시가 새파랗게 질려가지고 색색하는 꼴이 고소할 것 같았다.
 
207
그리하여 노라와 혜경이는 제가끔 옥순이를 추켜가지고 한번 찾아가서 그들이 옥순이를 보고 어찌하는가 구경이라도 하려도 각기 마음을 먹었다.
 
208
그 뒤 노라는 매일 필운동서 돌아오는 길이면 혜경이 집을 들렸다. 혜경이는 오전중에 계동을 가서 송이의 병세를 보고는 노라에게 전하여 주곤 하였다. 그리한 지 한 사 오일 후에는 열도 내리고 거진 병줄을 놓았다는 소식을 듣고 노라는 비로소 마음을 놓았다.
 
209
그동안에 ××××회사와 한가지로 ×××을 건너온 신식(新式)봄이 제철을 당하여 사구라가 만발하였다.
 
210
옛 궁터가 전등 불빛에서 연지칠을 하였다. ─ 창경원에 야앵이 시작 된것이다.
 
211
사구라가 피어야 비로소 봄이요, 그놈이 지면 봄도 가는 것이 요즘의 조선 의 봄이다. 이 짧은 일 주일 동안을 놓치지 아니하려고 서울 사람들은 자는아이까지 깨워 업고 밤의 창경원으로 창경원으로 모여든다.
 
212
송이의 병이 아주 안심하게 되었다는 날 밤 혜경이가 찾아와서 노라와 옥 순이를 꾀어 야앵 구경을 나섰다.
 
213
소격동서부터 벌써 이 골목 저 골목에서 아낙네들이 아이들을 업고 걸리고한 패씩 비어져나온다.
 
214
안국동 네거리까지 오니 그 넓은 길이 뻑뻑하다. 종묘의 허리를 잘라 새로 낸 이 넓은 길의 고마움이 비로소 나타나는 성싶다.
 
215
체격이 장이 아름답지 못한 뻐스가 비틀거리고 지나는마다 밤이건만 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난다. 그 먼지가 채 가리앉기도 전에 좀도적같이 기어 달아나는 택시가 또 한바탕 새로 먼지를 일궈놓는다.
 
216
노라는 자동차의 먼지가 싫기도 하였지만 작년에 남편과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자동차를 몰라 야앵 구경을 오던 일을 문득 생각하고 고집으로라도 없는 주머니나마 털어 한 대 불러 탔더면 싶었다.
 
217
창경원 문앞에 채 가기도 전에 길이 빽빽이 막힌다.
 
218
문앞에 수없이 뻗치어 모인 사람들은 무슨 큰 사건이나 겪는 것같이 긴장이 되어가지고 입입이 아우성을 치고 웅얼거리고 하며 바빠한다.
 
219
표를 사기는 힘이 들었다. 밀치고 닥치고 하는 속에 끼여 표 석 장을 쥐고 나오는 혜경이의 저고리는 땀이 등 위로 배어올랐다.
 
220
세 여자는 다시 사람 틈에 밀리어 겨우 문 안으로 들어섰다.
 
221
문 안은 그냥 그저 훤하다. 그리고 사람들도 바깥의 살기스럽고 바쁜 것과는 딴판으로 모두들 언제 내가 그랬느냐는 듯이 유유하고 점잖게 보인다.
 
222
매초롬하게 양복으로 차린 사람들이 몇씩 정문다리 근처에 모여서서 구경은 젖혀놓고 들어오는 여자들의 얼굴 구경을 한다.
 
223
노라와 혜경이는 해마다 보는 것이지만 처음 보는 옥순이는 입이 떡 벌어진다.
 
224
왼편으로 세 여자가 나란히 서서 몇 걸음 채 가지 못하였을 때에 옥 순이는 질겁하게 놀라 발길을 멈추었다.
 
225
뜻 아니한 사람을 만난 때문이다.
 
226
옥순이가 그렇게 놀라는 것을 노라와 혜경이는 알지 못하였다.
 
227
옥순이도 그들이 모른 것을 다행히 여기어 그대로 시치미를 떼고 다시 걸어갔다.
 
228
꽃이 많이 피었다.
 
229
불이 있어서 은근하면서도 더 환하여 보인다.
 
 
230
그리고 사람이 많이 들어왔다.
 
231
이것뿐이다. 그밖에는 이렇다 할 것이 없다.
 
232
노라는 동물을 가두어 둔 옆을 지나면서 옥순이에게 설명을 하여주었으나 보이지 아니하는 밤이라 싱거웠다.
 
233
그는 옥순이를 진즉 낮에 한번 데리고 오지 못한 것이 미안하였다.
 
234
그러나 옥순이는 따로이 가슴이 두근거려 그런 것에는 정신이 잘 가지지아니하고 그저 건성으로 대답만 하였다.
 
235
멀쑥멀쑥한 사내들이 지나칠 때마다 세 여자 일행에게 곁눈질하기를 잊지아니 한다.
 
236
"우리가 구경을 왔지?"
 
237
갑자기 혜경이가 이런 말을 내놓는다.
 
238
"그럼……"
 
239
"구경을 하러 온 것보담 구경을 시키러 온 것 같애."
 
240
"내 구경도 시키고 남의 구경도 허구 그렇지 머."
 
241
"그래…… 밑질 건 없지만."
 
242
사실 꽃구경이라는 것보다는 천 명이면 천 명 만 명이면 만 명 형형색색으로 다 다른 사람의 구경이 은연중에 주인격이 된다.
 
243
만일 사람이 이렇게 모이지 아니한다면 이 구경도 인기가 반은 줄어들 것이다.
 
244
여흥장에는 사람의 머리가 수천 개도 더 되게 들어박혔다.
 
245
무대 위에서는 가시같이 야윈 팔다리를 내놓고 계집애들이 레뷰를 하느라고 뻣뻣한 춤을 추고 있다.
 
246
그 많은 사람들이 입을 다문 사람은 하나도 없다.
 
247
마그네슘이 여기저기서 탕탕 터진다.
 
248
연못 가운데 해 세운 일루미네이션은 변화와 색채가 여러 가지면서도 보고있노라니 졸음이 오게 단조하다.
 
249
모든 것이 화려하고 좋다면 끔찍이 좋다겠지만 그러나 아무런 심각미도 없고 따라서 흥도 나지 아니한다.
 
250
그저 꽃…… 불…… 사람 ……이뿐이다.
 
251
그러나 이러한 중에도 흥겨워하기는 군데군데 잔디밭에 자리를 잡고 둘러앉아 먹으며 마시며 꼬랴 꼬랴를 외치는 일본 사람들이다.
 
252
그리고 또 하나 세월이 좋기는 둥근 학생모자 패들이다.
 
253
대여섯씩 여남은씩 뭉쳐 다니면서 떠들고 지껄인다.
 
254
단출한 여자들의 일행을 만나면 길을 가로막는다.
 
 
255
앞을 세워놓고는 걸음을 못 걷도록 희롱을 한다.
 
256
노라 일행도 얻어걸리었다.
 
257
휙하고 등 뒤에서 징그럽게 휘파람소리가 들린다.
 
258
"흥. 요건 걸음걸이가 왜 요 모양이냐!"
 
259
아마 옥순이의 어울리지 아니하는 굽 높은 구두의 걸음걸이를 보고 하는말인가보다.
 
260
"나는 한가운데 치다."
 
261
"나는 바른편 치다."
 
262
"바른편 치는 내해다."
 
263
"짱껜이다."
 
264
"으하하하하."
 
265
노라는 심정이 무럭 나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그러자 혜경이가 홱 돌아섰다.
 
266
"네 요 후레자식들! 너이는 어미도 없니?"
 
267
그야말로 아미를 거스르고 서리 같은 호령을 하였다.
 
268
너무도 이 매서운 역습에 그들은 어쩔 줄을 모르고 멍하니 서서 있을 뿐이다. 모두들 중학생이다.
 
269
"어느 놈이냐? 나서라!…… 주둥이에 젖내도 아니 가신 아이놈들이 하라는 공부는 아니하고…… 어느 학교 다니니 응?"
 
270
혜경이가 연거푸 이렇게 다긎고 나서매 그들은 그만 무어라고 기성을 지르며 좍 헤어져 달아난다. 그 대신 어느 틈엔지 구경꾼이 빽 둘러쌌다.
 
271
"아이구 딱정때!"
 
272
이렇게 수군거리는 구경꾼도 있다.
 
273
"에, 그 자식들 잘 혼을 내주었다.
 
274
칭찬하는 사람도 있다. 세 여자는 얼핏 그 자리를 물러나와 박물본관 옆으로 올라가는데 앞에서 나란히 걸어오는 젊은 부부 한 쌍과 딱 마주쳤다.
 
275
옥순이는 또다시 자지러지게 놀라 걸음을 멈추었다. 저편에서도 사내가 먼저 우뚝 섰고, 노라와 혜경이는 멈춰서서 양편을 번갈아 보았다.
 
276
그 사나이가 옥순이의 남편 재환이인 줄은 노라나 혜경이나 직각적으로 짐작을 하였다.
 
277
해맑고 갸름한 얼굴과 몸에 착 들러붙게 새로 양복을 지어 입은 후리 후리한 체격이 호남아로 생기었다. 더구나 파르스름한 입술과 잘게 째진 눈초리가 여자에게 범연하지 아니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나이는 옥 순이보다도 젊어 스물다섯쯤 되어보이고. ── 그의 새로 결혼한 부인인 듯싶은 여자는 그도 그 당장의 눈치로 어떠한 경위인 것을 짐작하였던지 한편으로 돌아서서 구두 끝으로 땅바닥을 이죽거린다.
 
278
옥순이는 고개를 떨어뜨리고 서서 가지도 오지도 못한다. 전신이 가볍게 떨리는 것을 노라는 보았다.(처음 들어왔을 때에는 옥순이가 등 뒤로 보았던 것이다.)
 
279
재환이는 정신이 얼떨떨하고 더구나 옥순이의 전에 못 보던 차림새에 영문을 몰라 역시 바라보고 서서 있기만 한다.
 
280
거북스러운 긴장 속에서 한동안 침묵이 계속되었다.
 
281
"왜 왔어?"
 
282
한참 만에 재환이가 불쑥 한마디를 던진다.
 
283
옥순이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다.
 
284
"왜 왔어라니? 무슨 참견이야?"
 
285
노라는 이렇게 속으로 분개하였으나 말이 나오지는 아니하였다. 혜경이는 세파에 시달린 만큼 주변성이 있다. 그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서서 깍듯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였다.
 
286
"아마 옥순씨 바깥양반 되시는 어른이신가 분데…… "말을 하면서 그는 힐끔 돌아선 여자를 건너다본다.
 
287
"이렇게 의외로 만나셔서 퍽 반가우시겠읍니다. 아마 두 분이 하실 이야기도 많으실 텐데 이렇게 서서 말씀하시는 것보담 어느 날 조용히 한번 만나시지요?"
 
288
재환이는 점점 낭패한 빛을 보인다.
 
289
"네네. 그렇게 하는 게 좋겠지요. 그러면 날새 한번…… "그는 발길을 옮기려고 한다. 그러나 혜경이는 그 꾀에 넘어가지 아니한다.
 
290
"그러면 내일쯤 옥순씨가 댁으로 가게 할까요? 허기는 진즉 가서 뵐려 구 했지만 댁이 어데신지 몰라 여기저기 알어보든 참인데요."
 
291
"아니올시다. 제가 가서 만나지요. 날새 곧."
 
292
"그래도 좋겠지요. 소격동 ×××번지 이십오호에 있읍니다. 어느 날 쯤 오세요?"
 
293
"모레, 아니 글페 오후에 가겠읍니다."
 
294
"그러면 꼭 오세요. 그날 아니 오시면 제가 옥순씨허구 댁으로 찾어가겠 읍니 다."
 
295
"네네."
 
296
그는 어서 이 자리를 면하고 싶은 듯이 이 편이 하자는 대로 ' 네네’ 하면 서 걸음을 옮겨놓는다.
 
297
그들을 멀리 보내어놓고 나서 노라와 혜경이는 유쾌하게 웃었다.
 
298
그러나 옥순이는 침울하게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이 없다.
 
299
"오늘 저녁에 돌아가서 싸움을 한바탕 하겠지?"
 
300
"그래두 시골서 들으니까 이혼 못한 줄 알고 그냥 결혼했다는데요…… 옥 순이?"
 
301
"예."
 
302
"비합법 결혼인가! 그래도 어쨌거나 싸움은 할 거야."
 
303
"할지도 모르지……그렇지만 인물이 우리 옥순이만 못하다."
 
304
"인물이고 무엇이고 옥순씨는 무얼 그리 무서워허우? 왜 왔느냐고 하 거든 웬 참견이냐고 닦어세진 못허구?"
 
305
"나도 허느니 그 말이야."
 
306
"그렇지만 가만 있어…… 글페 나도 올라가께. 같이 만나가지고 서방님 기름을 좀 짜주 자구…… ""아니 오면?"
 
307
"아니 오면 우리가 쫓아가지…… 그 마나님이 있는데 이편에서 가면 안될까봐 서 오기는 꼭 올 거야."
 
308
그들은 이러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 길로 창경원을 나섰다. 옥순이가 침울하기 때문에 더 구경할 신이 나지 아니한 것이다.
 
309
재환이가 온다고 한 날이 되었다.
 
310
혜경이는 오정때부터 와서 지켜 앉았고, 노라도 항용 한시가 되어야 필운동서 돌아오던 것을 더 일찍 돌아왔다. 만일 석양때까지 아니 오면 재환 이집으로 가자는 상의까지 되었다.
 
311
옥순이는 재환이가 찾아오면 만나기는 할지언정 그의 집으로 찾아가기까지 한다는 것은 절절히 반대를 하였다.
 
312
자기가 서울 온 것이 그를 바라고 온 것이 아니요, 또 찾아갔댔자 시원한 꼴을 볼 것도 없으리라는 것이다. 물론 그는 남편이 새사람을 얻어가지고 살고 있는 살림살이가 어떠한지 보고 싶지 아니한 것은 아니었었다.
 
313
그러나 그를 가르친 부덕은 여자가 외람히 남편의 하는 일을 참견하지 못 하게 하는 것이다. 참견뿐이 아니다. 남편의 하는 일이 안해에게는 선악의 피안에 있는 것이다. 어떠한 일이 있는지 고요히 '운명’에 복종하라는 것이다.
 
314
세 여자가 네시까지 지리하게 기다리던 끝에 재환이가 겨우 찾아왔다. 혜경이며 노라와는 새로 인사를 하였다. 그는 노라에게는 많은 흥미를 가지고 매우 은근하게 대하였다.
 
315
옥순이는 상기된 얼굴을 외면을 하고 한편 구석에 비껴서서 앉지도 못 하고있다가 몇 번이나 노라와 혜경이가 권하는 바람에 겨우 도사리고 앉았다.
 
316
인사가 끝난 뒤에 혜경이는 노라가 시골 다니러 갔던 길에 옛날 동무인 옥 순이가 혼자 적적하게 지내는 것을 보고 바람도 쐬게 할 겸 구경도 시켜 줄겸 겸사겸사해서 데리고 왔다는 것을 이야기하였다.
 
317
재환이는 연해'네네’소리와 한가지로 노라에게 안정되지 아니한 시선을 보내면서 경청하듯이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가 끝이 나자 노라에게 과외의 은근한 태도를 지어가지고 치하를 한다.
 
318
그는 옥순이의 문제는 아무렇지도 아니하였다. 며칠 전 창경원에서 노라를 보고 호기심이 끌리었고, 오늘 이 자리에서 다시 환히 핀 꽃같이 탐나는 젊은 여인이 홀몸으로 있는 것을 안 그는 바싹 흥미가 당긴 것이다.
 
319
혜경이는 이렇게 재환이를 데려다 놓고 생각하니 별로 할 말이 없었다.
 
320
설마하니 재환이더러 지금 동거하는 여자를 보내고 옥순이를 데려가라고 말을 할 수도 없는 것이요, 또 말을 했자 듣지도 아니할 것이다.
 
321
또 이야기가 나오면 자연히 옥순이의 귀에 거슬릴 이혼 문제 같은 것인데, 그것이 이 자리에서 옥순이의 입장을 거북하게만 할 것이다.
 
322
애초에 마음에 정한대로 재환이더러 옥순이의 생활비를 조금씩이라도 대어주라는 말이나 하였으면 좋겠으나 그것은 아까 옥순이가 한사코 말리던 일이라 역시 말을 내지 아니하였다.
 
323
네 사람이(그중에 옥순이는 빼놓고)그러저러한 이야기를 하다가 잠깐 말이 그친 사이다.
 
324
"어머니 아버지 다 진지나 잘 잡수?"
 
325
겨우 재환이가 옥순이더러 장인 장모의 소식을 묻는다. 오늘 이 집에 와서 처음으로 옥순이에게 한 말이다.
 
326
"예."
 
327
옥순이는 입때껏 모로 돌아앉은 채 갈리는 목소리로 대답을 한다.
 
328
"오라비(오빠)는 무얼 허우?"
 
329
"놀아요."
【원문】7. 끊으려 하나 끊기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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