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한글 
◈ 개척자(開拓者) ◈
◇ 10 장 ◇
카탈로그   목차 (총 : 21권)     이전 10권 다음
1917년
이광수
목   차
[숨기기]
 

10장

 

10.1

 
3
성재의 병은 조금 덜었다. 밤에는 여전히 정신을 못차리지마는 아침에는 눈을 뜨기도 하며, 분명치 못한 말로 이야기를 하였다. 가족들은 얼마큼 수미(愁眉)를 열었고 날마다 오던 백의사도 마음을 놓았다.
 
4
눈이 걷고 볕이 잘 드는 날, 하루는 변이 성재의 물병을 왔다가 성순의 나간 틈을 타서 모친더러,
 
5
"벌서 말씀을 드리자 드리자 하면서, 못 드렸읍니다. 아직 영감 상사(喪事) 나신 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러한 말씀을 여쭙기도 어떠합니다마는, 따님과 저와 혼인을 하였으면 어떻겠읍니까? 성례는 해상(解喪) 후에 하더라도......"
 
6
"아직 장가를 아니 드셨던가요?"
 
7
"작년 가을에 상처를 하였읍니다. 그래서 벌써부터 성재 형께도 말씀을 드리고자 하면서도......"
 
8
"내야 알겠어요? 이제야 영감도 아니 계시니까 저애가 알지요."
 
9
하고 눈 감고 누운 성재를 본다.
 
10
"네. 성재형께도 말씀을 하겠읍니다마는 어머님 생각에는 어떻습니까? 이러한 말씀을 여쭈면 어떻게 생각하실는지 모르겠읍니다마는, 그리되면 저도 아버지께 아무렇게 떼를 써서라도 성재형의 실험을 계속하도록 할 수도 있을 것 같고......"
 
11
하다가 아니할 말을 할 것을 후회하는 듯이 말을 끊었다.
 
12
모친도 돈으로 도와 주겠다는 말이 마치 자기를 낮추보는 듯하여 불쾌한 마음도 있지마는, 변은 본래부터 좋아하는 청년이요, 또 자기의 아들이 일생이 잊지 못하는 실험을 계속케 하여 준다는 말도 노상 싫지는 아니하였다. 그래서,
 
13
"성재가 일어나거든 말씀을 해 보구려."
 
14
"그러면 어머님 생각에는?"
 
15
"성재만 좋다구만 하면 내야......"
 
16
"그러면 어머님은 이의는 없으십니다그려."
 
17
모친은 이의라는 말의 뜻을 모르므로 가만히 있었다. 그러나 그 얼굴을 보건대 거절하려는 생각도 없었 듯 하였다. 전같이 부자로 지낼 때에는 이렇게 되고 보니 딸을 시집 보낼 걱정도 꽤 많았다. 가난한 집에는 주기 싫고, 그렇다고 부자는 자기와 같이 빈약한 자의 딸을 데려갈 것 같지도 아니하였다. 모친은 그 부모의 위광과 재산으로만 자녀의 행복된 혼인이 가능한 줄로 믿는다.
 
18
변은 상처한 후부터(정직하게 말하면 상처하기 전부터 후처의 후보를 골랐다) 여러 처녀를 많이 후보로 세웠던 중에 성순이가 가장 그의 마음에 들었었다. 그러므로 성재의 사업이나 인격에는 그다지 감심하지 아니하면서도 자주 성재의 집에 놀러 갔다. 성재를 찾아간 것이 아니라 성순의 얼굴을 보러 감이었다.
 
19
그러나, 변은 자기의 심중을 말이나 안색에 발표하기를 부끄러워하였다. 그래서 있는대로 말하고 자유로 자기의 감정을 발표하는 민을 부러워하면서도 그를 점잖지 못하다 하여 천하게 여겼다. 그러나 민이 자기의 강적인 줄은 알며, 또 성순의 마음을 끄는 힘으로는 도저히 적수가 아닌 줄을 알므로 그는 모친이나 성재에게 육박하여 간접으로 성순을 점령하여 하였다. 이것은 관습상 도리어 정면 공격이요, 겸하여 정정 당당한 일일 것이다. 성재 집의 파산은 그의 성공의 세일의 기회였었고 성재의 중병은 제이의 기회였었다.
 
20
그는 이것이 천재 불우의 호기회인 줄을 알 뿐더러, 근일 민과 성순과의 친근이 막대한 위험을 예고하는 듯하여 성재의 완쾌를 기다릴 새도 없이 그의 모친의 의향을 알아보려 한 것이다. 그러다가 모친에게 반대의 의향이 없음을 알매, 그는 팔분의 의향을 확신하여 희열을 금하지 못하였다.
 
21
변은 결코 악의 있는 청년이 아니었고, 차라리 선량한 청년이었다. 동경 유학시에 현금 조선의 사상과 풍습과 반대되는 여러 가지 사상을 많이 배웠지마는 그는 이 양자간에 무슨 모순이나 부조화가 있는 줄로 생각지도 아니하고, 따라서 구습을 깨뜨리고 신사상을 수입한다든지, 신사상을 배척하고 구사상을 묵수(墨守)한다든지, 또는 신구를 조화한다 든지 하려는 생각도 없고, 또 자기가 특별히 한 가지 이상을 세우고 전력을 다하여 여러 가지 곤란과 싸우며 그것을 실행하여야 할 필요도 인(認)치 아니한다. 그는 진실로 매 약과 같이 무해 무독한 사람이요 세상이 칭찬할 만한 건전한 청년이었다.
 
 
 

10.2

 
23
그가 철학을 배웠지마는 그는 극서을 기억하는 것 같지도 아니하고 그것을 기억하여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지도 아니하다.
 
24
그는 학교에서 유량한 성적을 얻었다. 그러나 그라 위하여 우량한 성적을 얻은 철학, 그 물건은 직하하는 이질 환자 모양으로 전부 배설하여지고 그의 혈액에는 조금도 그 기운이 남아 있는 것 같지도 아니하다.
 
25
그의 이상은 단순하다─ 성순과 혼인을 하고, 자기가 호주가 되거든 양옥으로 깨끗한 집을 짓고, 방을 곱게 꾸미고, 거기다 피아노를 놓고, 성순더러 치라고 하고, 자기는 안락의자에 편안히 누워서 그것을 듣고, 가끔 둘이서 승경(勝景)을 찾아 여행이나 하고...... 이것뿐이었다. 아마 자기더러 분명히 자기의 이상을 말하라 하더라도 상술한 것 이상에 말할 것이 없을 것이다.
 
26
그러나 그는 결코 자기를 남만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자기는 무엇으로 보든지 상등 인물로 자처한다. 그는 재산 있고 얼굴이 잘나고, 동경서 대학을 졸업하였고, 일찍이 주색장리(酒色場裏)에 출입한 적도 없고, 또 일찍이 남에게 대하여 자기의 약점을 말한 적도 없으니까, 그가 보기에 성재는 기인이었고, 민은 경박하고 쓸데 없는 일에 울곤 하며, 말을 높였다 낮추었다 하고, 갑자기 열중하였다 갑자기 냉각하였다 하는 철없고 정신이 불완전한 무용물이었다.
 
27
그가 성순을 취하는 이유도 따라서 극히 단순하다. 성순은 혈통이 좋고, 얼굴이 어여쁘고, 고등 여학교의 우등 졸업생이요, 말이 적고, 온순하고...... 이것뿐이었다. 이것 이상 또는 이것보다 더 깊은 무슨 이유가 있다고는 생각지 아니한다.
 
28
그에게는 세상 만사는 선이 아니면 악이요, 일에는 될 일이 아니면 안 될 일이었을 뿐이었다. 과연 그는 행복된 사람이다. 그는 땅 속과 하늘 위에는 생각하려고도 아니 하고 다만 자기의 눈에 보이는 세계로만 만족한다. 과연 그는 모범적 청년이었다.
 
29
그 후, 몇 날 동안에 변과 모친과의 의사는 점점 더욱 소통되어 모친은 벌서 사위에게 대한 듯한 일종 장모의 애정까지 느끼게 되었다.
 
30
그러나 성순은 아직도 이러한 일이 있는 줄도 몰랐고, 더구나 민은 알 길이 없었다. 성순은 지금도 오빠를 간호하다가 오빠가 잠든 틈에 이러한 일기를 쓴다.
 
31
'요새에는 변이 날마다 온다. 와서는 어머니와 무슨 이야기를 길게 한다. 변이 오면 나는 그 방에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아니한다. 나는 왜 이다지 변을 싫어하는지. 그는 아무리 재미있는 말을 하여도 도무지 재미있게 들리지 아니한다. 그가 웃으면 나는 얼굴을 찡그리고 싶다. 왜 그런지. M의 말은 무엇이나 다 재미있는데, 다 옳은 말 같은데, 변의 말은 다 거짓말 같다. 내 M! M이 이다지 보고 싶은가? 아까 왔다 갔건마는, 간 지가 불과 세 시간이언마는 마치 한 십년 된 것 같다. 내일 올 줄은 확실히 알건마는 영원히 보지 못할 것 같다.
 
32
내가 왜 이렇게 괴로운가? 마치 괴로워서 죽을 것 같다.
 
33
아니, 나는 오빠의 병을 고쳐 드려야지. 그리고 성공하도록 하여 드려야지. 내일은 M을 보거든 좀 더 정답게 말을 하자.
 
34
서양식으로 악수를 하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키스를...... 에그, 내가 왜 이러한 생각을 할까? 나는 오빠의 병을 고쳐 드려야지.
 
35
오빠의 병은 어제보다 좀 나았다. 오늘은 흰죽도 조금 잡수혔다. M과 말도 몇 마디 하였다. M의 말은 어떻게도 재미가 있는지. 내가 오빠의 손바닥에 못이 박혔다는 말을 할 때에 M은 울었다. M은 다정한 사람이다. 변에게는 그렇나 말도 아니하였다.
 
36
M! 내 M! 내 M! 내 M !!!'
 
37
하고 몸을 떨면서 M자 밑에다 감탄 부호를 셋이나 찍고 자기가 쓴 일기를 한번 내려 읽었다. 그리고는 병인의 머리 도 짚어주고 손도 만져 주었다. 성순의 얼굴은 상기한 듯 하였다.
【원문】10 장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여러분의 댓글이 지식지도를 만듭니다. 글쓰기
〔소설〕
▪ 분류 : 근/현대 소설
▪ 최근 3개월 조회수 : 180
- 전체 순위 : 384 위 (2 등급)
- 분류 순위 : 56 위 / 879 작품
지식지도 보기
내서재 추천 : 0
▣ 함께 읽은 작품
(최근일주일간)
• (5)
▣ 참조 지식지도
▣ 기본 정보
◈ 기본
  # 개척자 [제목]
 
  이광수(李光洙) [저자]
 
  매일 신보(每日申報) [출처]
 
  1917년 [발표]
 
  소설(小說) [분류]
 
◈ 참조
▣ 참조 정보 (쪽별)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지식놀이터 :: 원문/전문 > 문학 > 한국문학 > 근/현대 소설 카탈로그   목차 (총 : 21권)     이전 10권 다음 한글 
◈ 개척자(開拓者)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4년 04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