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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척자(開拓者) ◈
◇ 16 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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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이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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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장

 

16.1

 
3
성순은 이렇게 결심하였다. 성재의 기쁨을 깨뜨리지 말고 성재의 용기를 꺽지 말자고...... 그것이 위선인지 모르지마는, 그러나 만사에 다 정책이 있고 편의가 있다. 앓는 소아에게 약을 먹이려고 잠시 거짓말을 한다고 그것이 죄가 되랴. 성재가 성공하기까지 성순은 자기의 결심을 발표하지 아니하고 다만 여러 가지 핑계로 혼인 일자를 연기하리라 하였다. 그것은 변에게 대하여서는 큰 죄이지마는 변이 성순에게 대한 행동, 즉 성순을 자기의 소유로 하려 하는 경로는 성순의 생각에 결코 정정당당한 것은 아니었고, 일종의 정책이요, 궤계(詭計)였었다. 그러면 그러한 변에게 대하여 일종의 정책을 사용하는 것은 부득이한 경우에는 허할 만한 일이나, 성순이가 이렇게 함은 적어도 자기 이외 사람을 위하여 자기의 일생의 일부분을 희생함이니, 인도적 색채가 농후하다고 생각하였다.
 
4
이렇게 작정하고 성순은 신년(新年)부터 음악을 더 배운다 하여 연동(蓮洞) 어느 서양 목사의 집에 기류하는 청년 여자 음악가에게 피아노의 개인 교수를 받기로 생각하고 모친과 오빠의 승낙을 얻었다. 모친과 오빠는 성순이가 자기의 마음에 아니 드는데 시집가게 된 것을 동정하여 성순의 이 최후의 청구를 청허(聽許)함이었다.
 
5
양력 명절은 언제 지나갔는지 모르게 지나고 말았다. 성재의 집에서도 떡국을 끓이고 몇 가지 음식도 만들었으나 모친의 생각에는 양력 명절이라는 것이 아직 명절 같지도 아니하였고, 성재는 워낙 명절이라는 것을 중히 여기지 아니하고, 성순과 성훈의 부인은 각각 제 설움에 명절의 기쁨을 맛볼 여유가 없고, 오직 성재의 부인이 무슨 생각이 났던지 불치듯 명절 분지를 하였었다. 성재도 이날만은 실험을 쉬고 찾아 오는 수삼의 친지와, 명절과 아무 상관없는 잡담을 하고는 웃기도 하고 얼굴을 찌푸리기도 하였다. 물론 변도 오고 민도 왔다. 저녁때가 되어서는 성재와 변과 민과 세 사람만 상대하게 되었다. 전 같으면 세 사람이 대좌하면 끝 없이 이야기도 나오련마는 이제는 자연히 관계가 변하여졌다. 성재와 변과는 친척의 관계가 되었고 민은 친구의 처녀를 유혹하려다가 실패한 악우와 같이 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세 사람은 한참 동안 서로 다른 것을 보고,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6
변은 민에게 대하여 자기의 승리를 자랑하는 생각이 있었고, 민은 변에게 대하여 승리 아닌 승리를 믿고 기뻐하는 가엾음을 비웃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아직 민은 성순의 결심이 얼마나 굳은지를 확신치 못하므로 말할 수 없는 불안이 있다. 비록 성순이가 성탄절 저녁에 그러한 약속을 하였다 하더라도 아직 아무 경험도 없는 처녀가 과연 능히 모친과 오빠의 압박을 저항하고 정신(挺身)하여 그 결심을 관철할 수가 있을까 할 때에, 민은 아무리 하여도 그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물론 그 일이 있은 지 다음 다음날 성순에게서 자기의 사랑은 결코 변하지 아니하겠으며, 어떠한 압박이 있더라도 자기는 결코 굴치 아니할 터이니 안심하라는 편지가 오기는 왔으나, 그 역시 무경험한 처녀의 감정에서 나온 것이라 하면 믿을 수가 없었다. 설혹 성순이가 그 결심대로 단행한다 하더라도 연약한 성순의 정신이 족히 사방으로 밀려 들어오는 압박과 조소를 감내할 수가 있을까. 비록 의지가 건강한 대장부로도 가정과 세상의 압박을 견디기가 죽기보다 더한 큰 고통이어든 하물며 어제 핀 꽃봉오리와 같은 처녀...... 이렇게 생각할 대에 민은 항상 고통이 되었고 성순에게 그만한 고통을 주는 자기가 죄스럽기도 하였다.
 
7
민은 그 후 성순에게서 이삼 차나 편지를 받았으나 아직 한번도 대면하여 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아니 오려던 성재의 집에를 세배라는 핑계로 온 것이다. 그러나, 온 지 오륙 시간이 되어도 그의 얼굴을 보지 못하였다.
 
8
민과 변은 둘이 다 한가지로 성순을 보고 싶어한다. 변도 다른데 세배 갈 데가 있건마는 다른 객들이 다가면 아마 성순을 만날 수가 있을까 하고 기다리고 앉았다가 다른 객이 다 가도록 민이 아니 가는 것을 보고 속으로 퍽 불쾌하기도 하였고, 또 성순이가 진심으로 민을 사랑하는 줄을 알매 일종 질투하는 생각도 난다. 비록 변은 이미 성순은 자기의 소유가 되었다는 확신이 있으나 그래도 성순이가 진심으로 자기를 사랑하면 얼마나 행복될까 하였다. 가끔 안방에서 성순의 말소리가 날 때에 변과 민은 제가끔 그리운 생각을 하였고, 꽤 예민한 성재는 그 눈치를 보고 혼자 속으로 웃었다. 가끔 성재가 무슨 일로 안에 들어갈 때마다 변과 민은 다같이 자기네도 성재와 같은 권리를 가졌으면 작히나 좋으랴 하였다.
 
 
 

16.2

 
10
이 때 발자국 소리가 나더니 문 밖에서,
 
11
"오빠, 잠깐 들어오셔요."
 
12
하고 성순의 소리가 들린다.
 
13
변과 민의 마음은 일시에 그 소리나는 편으로 쏠렸다. 그리고 성재가 자기를 대신하여 성순을 불러 들였으면 오죽 좋으랴 하였다. 그러나, 그네는 일부러 침착함을 표하느라고 새로 권련에 불을 붙였다. 성재는 양인의 심사를 잘 안다.
 
14
그래서 두 사람을 보고 한 번 조롱하는 듯이 웃으면서,
 
15
"성순아, 이리 들어오너라. 변군도 오시고 민군도 오셨다."
 
16
변, 민 양인은 자연히 낯이 후끈거림을 깨달았다. 더구나 소심한 민은 가슴이 두근거려서 고개를 다른 데로 돌리고, 이러한 때에도 체면을 아니 잊어버리는 변은 얼른 두루마기 자락으로 무릎을 싸고 끓어 앉았다. 성순이가 완전히 자기의 아내가 된 뒤에는 존경할 필요도 없겠지마는, 아직까지는 그렇게 하는 것이 유리할 줄로 앎이었다.
 
17
이러한 무대 위에 성순이가 들어왔다. 뉘게 향하여 하는지 분명치 아니한 경례를 하고 그냥 선 성순의 얼굴도 얼마큼 붉게 되었다. 아무래도 아니 보는 채하는 성순의 눈은 어느 덧 성재도 보고 민도 보고 변도 보았다. 그리고 민을 한번 더 볼 만한 여유도 있었다. 장래의 애처를 앞에 세운 변의 마음은 미상불 만족하였다. 그러나 만일 성순의 '가장 사모하는 ○○여' 하는 편지가 (한 장도 아니요 두세 장이나) 현재 자기의 곁에 앉은 민의 품에 있는 줄을 안다 하면, 얼마나 경악하고 비분하여 할까? 그러나, 변은 이러한 생각을 할 리가 없다. 이미 약혹(어떠한 경로에서든지) 한 사람은 결코 남자를 사랑할 리가 없음을 아니까.
 
18
그러나, 민은 슬펐다. 자기의 앞에 선 성순이가 장차 자기를 위하여 감내키 어려운 악전 고투를 할 것을 생각할 때에 오싹 소름이 끼쳤다. 차라리 자기가 아주 물러나고, 성순으로 하여금 순순히 변의 아내가 되게 하는 것이 성순의 행복이요, 자기의 의무가 아닐까? 즉시로 집에 돌아가서 성순에게서 온 편지를 다 찢어 버리고 성순에게 '다시 나를 생각하지 말고 변의 아내가 되라' 하는 편지를 할까 하기까지 하였다.
 
19
비록 일순간이나 성순을 앞에 세워 놓은 변, 민 양인의 흉중에는 여러 가지 생각이 났다. 물론 변의 생각은 극히 단순하였지마는, 그리고 성재는 무책임한 제삼자로 앞에 있는 세 사람의 심리를 여러 가지고 추측하여 보고, '참 인생이란 재미있는 것이다'하고 생각하였다.
 
20
"왜 내게 무슨 일이 있니?"
 
21
"동무들이 여러 사람 왔는데 밀감을 한통 사주셔요."
 
22
"동무들? 어떤 동무들이?
 
23
"학교에 같이 다니는 애들이야요. 여전에도 놀러 오던 애들인데 다방골 집에 갔다가 여기로 이사하여 왔단 말을 듣고 찾아왔다고 그래요."
 
24
"거 고맙구나."
 
25
하고 성재가 탁자 서랍에서 돈지갑을 낼 때에 변이 슬쩍 성순을 보면서,
 
26
"참 여자가 퍽 다정해요. 그렇게 친구를 못 잊어하고......"
 
27
그러나, 성순은 아무 대답 없이 성재의 선에서 일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받아 가지고 또 아까와 같이 뉘게하는지 모르는 경례를 하고 나아간다.
 
28
성순이 나아가매 좌중은 마치 연극의 막이 닫힌 모양으로 적막하였다. 성순의 머리가 끼치고 나아간 향유의 향기만 고요한 실내에 떠돈다.
 
29
한참이나 말이 없다가 변이 전경(全敬)의 말을 내어서 비로소 공통한 화제를 얻었다.
 
30
전경은 그 후로 매일 함사고의 길을 저주하고 돌아 다녔다.
 
31
벌써 동짓날이 지나갔건마는 아직도,
 
32
"이놈 동짓날 저녁에는 너를 잡아갈 테야."
 
33
하고 외치며 돌아다닌다.
 
34
동지 전전날, 함사과는 무서움을 이기지 못하여 무당을 불러다가 여러 가지로 방어술을 행하였고, 동짓날 저녁에는 함사과는 무당의 명령을 따라서 목욕 재계하고 제물을 벌여 놓고 밤을 새웠다. 무당의 말에 만일 오늘밤에 잠이 들었다가 꿈에 김참서를 만나면 다시 깨어나지를 못한다 하므로 혼자 앉아기도 미안하여 기생 선택 사무를 보는 서기로 하여금 자기가 잠이 들지 아니하도록 파수를 보게 하였다. 이리하여 겨우 닭이 울도록 참고 다행히 김참서의 꿈을 꾸지 아니하고 말았다. 그래서 이제는 전경의 예언도 그렇게 무서워하지는 아니한다. 전경은 이제는 머리가 많이 자라서 마치 귀신과 같이 되었다. 그리고 무엇을 먹고 사는지, 어디서 자는지 아무도 아는 이가 없으며, 기억도 대부분 상실되어 아는 사람을 만나도 인식하지를 못한다.
【원문】16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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