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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척자(開拓者) ◈
◇ 19 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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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이광수
목   차
[숨기기]
 

19장

 

19.1

 
3
성순은 집에 돌아와서 변이 양복장이를 데리고 왔더란 말과, 조선복으로 하려다가 아무리 생각하여도 양복이 좋을 듯 해서 자기도 예복 일숩을 신비(新備)하고 성순의 예복도 지으려 한다는 말과, 일자가 급하므로 양복점에 두 배나 수공을 주게 하고 나흘 이내에 완성되도록 계약하였다는 말과, 옷감은 간색첩(看色帖)에서 성순이가 친히 고르게 한다는 말과, 예복 이외에도 만일 양복을 지을 마음이 있거든 마음대로 주문하라는 말과, 동경 천상당(天賞堂)에 주문하였던 혼인 지환이 금조(今朝)에 도착한 것이며, 그 지환에는 변 자기와 성순의 성의 머리자를 떼어 P ∙ K라고 새겼다는 말이며, 혼인식은 성순이가 늘 다니던 승동 예배당(勝洞禮拜堂)에서 할 것과, 식은 서양 선교사 모씨에게 위탁할 것이며, 혼인 피로연은 벌써 명월관에 주문하였다는 말이며, 당일에는 자동차를 보낼 터이나 성재의 집 앞까지는 길이 좁아서 올라올 수 없은 즉 중간까지는 인력거로 올 것이며, 또 변의 집에서는 이미 모든 절차가 다 완비하여서 다만 그 날이 오기만 기다린다는 말이며, 먼 시골 친척들도 벌써 십여 인 올라왔고, 작야 늦도록 청첩장 육백여 장을 띄운 말까지 하였다고 성순의 모친은 성순을 보고 기쁘게 웃음 섞어가며 전한다.
 
4
성훈 부인은 부러운 듯이 곁에 앉아서 성순을 바라보며 눈을 끔벅끔벅한다. 그리고 나서 모친은,
 
5
"너는 잘났다. 저 뚜뚜하는 자동차도 타 보겠구나."
 
6
"어머님께서도 타신다고 그랬지요."
 
7
하고 성훈 부인은 낯을 붉힌다.
 
8
"내가 무엇을 타?"
 
9
"그래도 어머님께서 이 누이와 같이 타고 오시라고 아니 그러셔요."
 
10
"변서방은 그러더라마는 내가 자동차를 왜 탄단 말이냐, 타면 인력거나 타지."
 
11
곁에 앉아서 공연히 기뻐하던 어멈이,
 
12
"왜 그러셔요. 마님께서 작은 아씨와 같이 가셔야지. 자동차라나 타시고......"
 
13
이러한 회화를 듣던 성순은 들었떤 숟가락을 땅에 떨어뜨렸다. 얼른 다시 잡으려다가 그냥 방바닥에 엎여서 소리를 내어 울었다. 어멈은 눈이 둥그래지며 벌떡 일어나 성순의 허리를 안아 일으키며,
 
14
"에그, 작은 아씨 웬 일이셔오? 밥에 돌이 있었어요?"
 
15
"............"
 
16
"마님 작은 아씨가 왜 이러십니까?"
 
17
하고 어멈도 눈이 깜박깜박하여지며 눈물이 쏟아진다.
 
18
모친은 너무 놀란 듯이 한참이나 말이 없다가,
 
19
"얘야, 성순아! 왜 그러니 응?"
 
20
그래도 성순은 대답이 없고 울음 소리만 더욱 높아간다.
 
21
성훈 부인은 성순의 손을 잡고 아무 말도 없이 눈만 끔벅끔벅한다. 모친은 휴우 한숨을 쉬더니,
 
22
"또 집안에 무슨 변이 나나 보다. 요새 꿈자리가 하두 흉하더니만...... 글쎄 이 계집애야 울기는 왜 운단 말이냐. 늙은 어미가 속이 썩어서 죽는 양을 보고야 말 테냐."
 
23
하고 일어나 밖으로 나아가며, 마당에 신 끄는 소리가 들리더니,
 
24
"성재야, 집안에 무슨 변이 났다."
 
25
"네? 무엇이요?"
 
26
"집안에 무슨 변이 났어. 성순이가 지금 운다."
 
27
"왜요? 왜 울어요?"
 
28
하고 문 열리는 소리가 나며 다시 마당에 신 끄는 소리가 나더니 성재가 기침을 두어 번 하고 안방 문을 연다. 성훈 부인은 가만히 일어나서 불도 켜 놓지 아니한 웃방으로 올라간다.
 
29
성재는 울고 엎드린 성순의 머리맡에 우뚝 선 채로,
 
30
"성순아!"
 
31
"............"
 
32
"성순아! 얘, 성순아!"
 
33
"네."
 
34
"일어나 앉아라!"
 
35
"............"
 
36
"일어나 앉으라면 일어나 앉어!"
 
37
하고 성재의 목소리를 점점 노기를 띠어 간다.
 
38
성순은 겨우 고개를 들고 일어나려 하였으나 그래도 눈물이 앞을 가리워서 도로 엎뎌진다. 성재는 하릴없는 듯이 그냥 서서 물꾸러미 우는 성순을 이윽히 보다가 자리에 앉으면서,
 
39
"무슨 일이냐, 무신 일이야? 응? 울기는 왜 울어? 말을 해야 알지. 무슨 일이야?"
 
40
"웬 셈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무슨 큰 변괴가 나는가 보다, 응 응."
 
41
하고 성재가 피석(避席)하는 아랫목에 앉아서 성순을 본다.
 
 
 

19.2

 
43
성재는 성순의 대답 없음을 보고 모친을 돌아보며,
 
44
"이 얘가 왜 웁니까?"
 
45
"모른다. 내가 아니?"
 
46
"무슨 말씀을 하셨어요?"
 
47
"무슨 말을 해?"
 
48
"그런데 밥 먹다 말고 울어요?"
 
49
하고 성재는 의심스러운 듯 모친을 본다.
 
50
"아까 변서방이 하던 이야기를 했다. 양복장이 왔더란 말과, 자동차 탄다는 말을 했지. 그랬더니 밥을 먹던 얘가 숟가락을 집어 내던지고 우는구나. 대체 먹던 애가 숟가락을 집어 내던지고 우는구나. 대체 나는 심평을 알 수가 없다."
 
51
성재는 사건의 진상을 다 알아들은 듯이 혼자 고개를 끄덕끄덕 하더니,
 
52
"철없는...... 내가 그만큼 말을 해도 알아듣지 못하고, 내가 네게 해로운 말을 하겠니? 왜 쓸데 없이 눈물을 내어서 어머니 걱정을 하시게 한단 말이냐. 자 울음 그치고 일어나거라."
 
53
"그 얘가 왜 우는지 너는 아니?"
 
54
하고 모친이 성재를 향하여 묻는다.
 
55
"시집가기 싫다고 그러겠지요."
 
56
"무어! 그러면 일생 혼자 늙는다고?"
 
57
"저 가고 싶은 데 못 가니까......"
 
58
"저 가고 싶은 데? 어디? 저 민가한테? 아이참, 이 계집애가 아직도 그것을 못 잊어서 있는 모양이어? 아이......"
 
59
성재는 모친의 말에는 대답치 아니하고,
 
60
"성순아, 전에도 말했거니와, 민군과는 절대적 안될 일이구, 또 변군과는 벌써 약혼한 지가 오랜 뿐더러 혼인 예식 준비까지 다 한 것이니까, 이제는 아무러한 말을 해도 쓸데 없고, 아무러한 생각을 해도 쓸데 없다. 또 네가 무엇을 알겠니, 아직 어린것이. 어서 시키는 대로 말이나 잘 들어라.
 
61
지금은 설혹 네게 애정이 없다 하더라도 같이 사느라면 서로 애정도 생기고 또 그러는 동안에 자녀도 나서 가정에 재미도 붙이게 되고......"
 
62
여기까지 와서는 성재도 말이 막혔다. 자기와 아내와는 벌써 혼인한 지가 십여 년이나 되지 아니하였나, 그리고 자녀까지 나지 아니하였나. 그러면서도 자기네는 아직도 애정을 맛보지 못하지 아니하나.. 이렇게 생각하매 성재는 성순을 더 강제할 용기가 없어졌다. 그러나 성재는 성순이가 아니라, 자기의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성순의 장래의 행불행을 고려하는 것보다, 목전의 체면을 보전하고 걱정을 제거하는 것이 급무인 것 같다. 성순이가 변과 혼인한 뒤에 행복되고 불행되기는 성순 자신의 운명이요, 지금 자기의 할 일은 아무렇게 하여서라도 성순을 변의 집으로 들여보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서 십오일이 와서 무사히 혼인 예식만 끝나면 모든 시름을 놓는 것 같이 성재는 생각하였다. 그래서 성재는 당연히,
 
63
"네가 아무리 울더라도 기왕 작정된 일은 변할 수가 없다."
 
64
하고 선고하였다.
 
65
이러할 때에 대문에서 '이리 오너라'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어멈이 나갔다가 들어와서,
 
66
"변서방님이 양복작이를 데리고 왔읍니다."
 
67
하고 고하며 일동을 둘러본다. 성재는.
 
68
"양복은 지어서 무엇한다고 그러는지...... 내가 여러 번 쓸 데 없다고 말을 해도 기어이 양복을 짓는다고 야단이여."
 
69
"양복을 지으면 어떠냐."
 
70
하고 모친이,
 
71
"변서방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라. 우리도 이제는 아무 것도 못해 주는데."
 
72
하고 성순의 우는 것은 잊은 듯하다.
 
73
모친은 어멈을 향하여,
 
74
"그럼 양복장이더러 이리 들어오라지."
 
75
이 때에 성순은 참다 못하여,
 
76
"어머니!"
 
77
"자 어서 양복장이더러 들어오라고 일러라."
 
78
"아니야요, 어머니!"
 
79
"글세 무슨 고집이냐. 너는 암말 말고 어서 시키는 대로 해라!"
 
80
"어머니! 저는 시집갈 수 없읍니다. 무엇이라고 하시더라도 시집갈 수 없읍니다."
 
81
"또 그런 소리를 하느냐?"
 
82
하고 모친은 성을 낸다.
 
83
"저는 시집 못 가요."
 
84
"왜? 어째서, 응?"
 
85
하고 성재도 성을 낸다.
 
86
"아무려나 시집은 안 갈 테니 그렇게만 아셔요."
 
87
"무엇이 어째?"
 
88
"............"
 
89
"그게 누구더러 하는 말버릇이냐, 응?"
 
90
하고 모친은 주먹으로 성순의 옆구리를 쥐어 지른다.
 
 
 

19.3

 
92
"한번 다시 그런 말을 해 봐라!"
 
93
하고 모친은 분을 참지 못해 한다. 성재도 사람에 나아가려고 일어섰다가 다시 앉으면서,
 
94
"그러면 어떻게 한단 말이냐?"
 
95
"그게 어디서 배운 말버릇이야."
 
96
하는 모친께,
 
97
"가만히 계십시오."
 
98
하면서 성재는,
 
99
"어디 말을 해라. 어떻게 하겠단 말이냐."
 
100
"시집 안 가요!"
 
101
"무슨 이유로?"
 
102
"갈 수 없으니까요!"
 
103
할 때에 성순은 당돌하게 되었다.
 
104
"갈 수 없으니까?"
 
105
하고 성재가 반문할 때에,
 
106
"네, 갈 수 없으니까 못 가요!"
 
107
"이미 작정한 일을?"
 
108
"저는 시집 안 가기로 작정했어요."
 
109
"네 임의로?"
 
110
"네!"
 
111
"네가 그렇게 임의대로 할 수 있을까."
 
112
"네."
 
113
"무엇이 어째, 응. 이 계집애야."
 
114
하고 모친은 앉은 걸음으로 걸어 나오면서,
 
115
"무엇이 어째?"
 
116
"저는 시집 안가요!"
 
117
"그렇게 하는 법은 없다."
 
118
하는 성재의 말에,
 
119
"안 가요!"
 
120
"그렇게 못한다 - 못한다면 못 하는 줄만 알아라!"
 
121
"그래도 못 가요!"
 
122
이러하는 성순은 이미 눈물은 흐르지 아니하고 입술만 꼭꼭 문다. 전에 없던 한독(悍毒)한 빛이 미우(眉宇)에 드러난다. 성재는 그 빛을 보고 문득 전율함을 깨달았다. 세 사람의 호흡은 마치 경주하고 난 살마과 같다. 어멈과 성훈 부인은 컴컴한 웃방에서 가만히 앉아 본다. 성재는 분나는 양해서는 당장에 성순을 때려 죽이고 싶었다. 마땅히 들어야 할 자기의 말을 아니 듣는 성순은 큰 요녀같이 보였다. 그러나 성재는 위협을 쓰다가 더욱더욱 성순에게 반항심을 넣어 주는 것보다 감언으로 달래는 것이 나으리라 하여,
 
123
"성순아, 이제 와서 네가 그런 말을 하면 어떻게 한단 말이냐. 혼인 날짜까지 다 작정해 놓고 저렇게 양복장이까지 불러 왔는데. 하니까 다시 돌이켜 생각을 해 봐라."
 
124
"저는 벌써......"
 
125
하다가 성순은 말이 막힌다. 성재는 '벌써'라는 말에 바늘로 찔리는 듯하였다. 그래서 물꾸러미 성순을 보았다. 성순도 성재를 이욱히 보더니,
 
126
"저는 벌써 처녀가 아니야요."
 
127
"무어?"
 
128
하고 성재의 모친은 전기를 맞은 듯 하였다. 성순은 태연하게,
 
129
"저는 벌써 남의 아내야요. 이제 다시 시집을 가면 그것은 간음인 줄 압니다."
 
130
모친과 성재는 한참이나 아연하여 실로 막지소조(莫知所措) 하였다. 성순의 이 말은 과연 청천벽력이었다. 모친은 몸만 벌벌 떨고, 성재가,
 
131
"그게 무슨 소리냐. 네가 지금 정신 있어 하는 말이냐?"
 
132
"벌써 말씀을 드리려면서도 모처럼 새로 실험을 시작하신 오빠에게 괴로움을 드릴까 보아서......"
 
133
"아니, 대관절 처녀가 아니라니 그게 무슨 뜻이냐?"
 
134
"저는 처녀가 아니야요."
 
135
"어떤 사내에게 벌써 허했단 말이지?"
 
136
"네."
 
137
"언제부터?"
 
138
"벌써 오랬어요!"
 
139
"그게 누구냐, 네가 허했다는 사내가?"
 
140
"오빠께서 아시는 이야요."
 
141
"민군?"
 
142
"네!"
 
143
"민군에게 네가 몸을 허했어? 계집애가!"
 
144
"네!"
 
145
하는 성순은 '몸을 허한다'는 말이 육교를 의미하는 줄은 몰랐다. 성재는 '흑' 소리를 내며 벌떡 일어나더니,
 
146
"예끼, 더러운 계집애!"
 
147
하고 발길로 앉았는 성순의 옆구리를 탁 찬다. 성순은 '욱' 하며 방바닥에 거꾸러졌다. 모친은,
 
148
"아이구 이년아!"
 
149
하며 성순의 쪽찐 머리를 잡아당기며 주먹으로, 머리로 성순을 때린다. 웃방에 앉았던 어멈과 성훈 부인도 일어났다.
 
150
일동의 다리들은 추운 사람들의 것 보양으로 벌벌 떨린다.
 
151
성재는 항번 더 성순을 발길로 차려다가 억지로 참고 문을 차고 사랑으로 나갔다. 성순은 가만히 누워서 모친이 때리는 대로 맞았다. 어멈이 말리려는 것을 모친은,
 
152
"아이구 집안 망했구나. 계집애가 집안 망하는구나. 하느님 맙시다."
 
153
하고 성순의 어깨와 팔을 물어 뜯는다. 성순은 꿈 같기도 하고 죽은 것 같기도 하였다. 모친은 자기가 기운이 진하여 거꾸러질 때까지 성순을 때리고 물고 꼬집고 하였다.
【원문】19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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