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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척자(開拓者) ◈
◇ 20 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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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이광수
목   차
[숨기기]
 

20장

 

20.1

 
3
변은 안방에서 큰소리 나는 것을 엿들어서 사건의 내용을 대강 짐작하였다. 그러할 때에 성재가 나왔다. 성재의 얼굴은 중병자의 것과 같이 창백하였다.
 
4
성재는 들어오는 걸로,
 
5
"양복장이는 보내 주십시오."
 
6
하였다. 변은 이유도 묻지 아니하고는, 내일 또 말하마 하고 양복장이를 돌려 보냈다. 말을 모르는 양복장이는 웬 셈을 모르고 눈이 둥그래져서 인사를 하고 나아간다. 변은 담배를 피우며 아무것도 모르는 듯이 가만히 앉았다. 성재는 가슴이 진정하기를 기다리는 모양으로 잠시 벽만 바라보고 앉았다가 변에게,
 
7
"참, 이런 미안한 일이 없어요. 무엇이라고 말씀해야 좋을는지 알 수가 없어요."
 
8
그러나 변은 무관언(無關焉)하고 가만히 앉았다. 성재는 이윽고,
 
9
"모두 내 책임이니 용서하시오. 지금까지 지내오던 일은 다 꿈으로 알고 잊어 주시오."
 
10
하고 또 얼마를 쉬었다가,
 
11
"이런 창피한 일이 없지마는 사세가 부득이하니까 파혼할 수밖에 없어요."
 
12
하고 또 얼마를 쉬었다가,
 
13
"그 이유는 물어 주시기 말아 주셔요. 물론 형의 자유로 상상하심은 자유지요."
 
14
그래도 변은 아무 대답이 없고 담배 연기로 공중에 여러가지 그림을 그려 본다. 성재는 원래 변에게 대하여서는 선배로 자인하므로 항상 변을 지도하고 훈회(訓誨)하는 태도를 가져왔었건마는 오늘은 마치 변이 자기를 심문하는 법관같이 보이며, 더욱이 변의 아무 말도 없음이 도리어 자기를 위압하는 듯하였다. 그뿐더러 실험 탁자를 바라볼 때에 변의 은혜가 생각되고 그러할수록 성순이가 가증하게 보여서 당장에 때려 죽이기라도 하고 싶다. 여전히 아무 말이 없다가 변이 간 뒤에 성재는 분을 참지 못하여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들어와 본 즉 성순은 여전히 엎디어 울고, 모친도 성순을 때리기에 기가 진하여 성훈 부인이 가져온 베개를 베고 누워서 자는지 깨었는지 눈을 감았고, 쪼그러진 두 뺨에는 눈물 흐른 자국이 그냥 젖어 있으며, 어멈은 어찌할 줄을 모르고 눈물을 흘리며 한편 구석에 우두커니 서 있고, 성훈 부인은 성순의 등을 만지다가 성재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웃방으로 뛰어 올라간다.
 
15
양등에 비추어진 방안은 폭풍이 지나간 뒤와 같이 고요하다. 성재도 들어오기는 들어왔으나 어찌할 바를 모르고 멍하니 서 있을 뿐. 만일 성재 부인이 친정 모친의 생신으로 친정에 가지 아니하였던들 좀더 가내가 소요하였을 것이다.
 
16
성재는 떨리는 소리로,
 
17
"성순아!"
 
18
하고 불렀다. 성순은 대답 아니할 수가 없다고 생각하여 고개를 들고 앉으며,
 
19
"네."
 
20
"너도 네 죄를 알지?"
 
21
"무슨 죄요?"
 
22
하고 성순은 울어서 붉은 눈으로 성재를 보았다. 성순이 이 침착한 대답에 성재는 더욱 분이 나서,
 
23
"무슨 죄요! 그러면 잘한 줄 아느냐? 약혼한 처녀가 다른 사내와 밀통하고, 너는 다만 간음죄만 범한 것이 아니다. 첫째 네 지아비를 속였어. 처녀는 간음죄를 범한 것도 큰 죄지마는 지아비 있는 계집이 간음죄를 범함 것은 더 큰 죄다. 전일 같으면 당장 사형을 당할 큰 죄여. 그리고 둘째는 부모를 배반하였어. 너는 불효와 부정의 양대 죄를 지은 계집이다. 비록 법률은 너를 죽이지 아니한다 하더라도 사회와 도덕이 너를 죽일 것이어 - 응, 너는 벌써 이 세상에서 일생에 용서를 받지 못할 큰 죄인이다. 너는 네 몸을 망케 하고 우리 가성(家性)을 더럽힌 대악인이다-"
 
24
여기까지 와서 성재는 숨이 차서 말이 나오지 아니하리 만큼 격노하여, 부지불각에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두 걸음 성순을 향하여 걸어 나왔다. 그러나 성순은 대답도 아니 하고 피하려고도 아니 하고 눈만 깜박깜박한다. 어멈이 얼른 일어나면서 성재의 곁으로 다가서며 만일을 경계할 뿐.
 
25
이 때에, 모친이 일어나며 일정한 어조로,
 
26
"성순아, 가자. 나하고 가자."
 
27
"어딜 가요?"
 
28
함은 성재의 말,
 
29
"가자, 어서 일어나거라. 아버지 산소에 가서 너와 나와 죽고 말자. 이 년아, 글쎄 내가 무슨 면복으로 저승에 가서 아버지를 대한단 말이냐. 자, 가자. 가서 죽자."
 
30
하고 일어나서 성순의 손을 잡아당기며,
 
31
"일어나라면 일어나. 네 어미의 말은 아니 듣기로 작정이냐."
 
32
하며 힘껏 성순을 잡아당긴다. 성순은 저항하려고도 하지 아니하고 모친의 손에 끌려 일어선다. 모친은 눈물도 간데 없고 눈에는 독기가 보인다. 성재는 모친의 길을 막아서며,
 
33
"어머니-"
 
 
 

20.2

 
35
모친은 한 팔로 성재를 떼밀고 한 팔로 성순을 앞세우면서,
 
36
"비켜라. 나는 오늘 저녁에 영감 무덤 앞에 가서 죽을란다.
 
37
내가 무슨 면목으로 이 세상에 살아 있단 말이냐. 자, 비켜!"
 
38
하고 발길로 문을 차고 성순을 등을 떼민다. 성순은 문밖에 나섰다. 성재는 모친의 앞을 막아서면서,
 
39
"어머니, 참으십시오! 가시기는 어디를 가셔요."
 
40
"죽으러 가지!"
 
41
"참으십시오, 그게 무슨 말씀이오니까."
 
42
"그러면 이 꼴을 하고도 살란 말이냐. 이 낯을 들고 사람을 대하란 말이냐?"
 
43
"기왕 그렇게 된 일을 어찌합니까. 글쎄 이제 어디를 가셔요, 이 밤에."
 
44
"죽으러 가는 사람이 밤낮을 가리겠니?"
 
45
"아이고, 마님 참으십시오!"
 
46
하고 어멈이 운다.
 
47
성재는 문을 닫고 모친을 떼밀어 방안으로 들어오게 하였다. 그러나 모친은 성재의 간지(諫止)하는 말은 듣지 아니하고 다만 완력에 못 이기어 끌려 들어왔다.
 
48
"아니 놀 테냐."
 
49
"글쎄, 참으세요. 어머님께서 그렇게 하시면 저도 죽겠읍니다. 그러면 집안이 온통 망하지 아니합니까?"
 
50
성재의 '저도 죽겠습니다' 하는 말에 모친은 더 저항하지 못하고 아랫목에 누웠다. 성재는,
 
51
"어멈, 가서 냉수 한 그릇 떠 오게."
 
52
하였다. 과연 모친의 입술은 열병 환자 모양으로 초조하였다.
 
53
성재는 모친의 고집을 알므로 아직도 안심이 되지 못하여 모친의 가슴을 쓸며,
 
54
"어머님께서 만일 돌아가시면 저도 따라 죽겠읍니다. 그러니까, 저를 불쌍하게 알으시거든 그런 말씀은 아니하셔야 합니다."
 
55
모친은 성재가 권하는 대로 냉수를 한 모금 마시더니 도로 누우면서,
 
56
"에그, 맙시사. 그런 변재가 어디 있단 말이냐."
 
57
하고 이를 간다.
 
58
성재는 한번 더,
 
59
"어머님 참으십시오. 성순의 일은 제가 다 잘해 놓을 것이니 어머님께서는 염려 놓으십시오."
 
60
하고 곁에 쭈그리고 앉은 어멈에게 '잘 주의하라'는 눈짓을 하고 일어서서 밖으로 나아간다.
 
61
성재는 캄캄하게 어두운 마당에 내려서며 고개를 둘러 성순을 찾았다. 그러나 없다. 성재는 '성순아' 하고 두어 번 불렀다. 그래도 대답이 없다. 사랑문을 열어 보았다. 거기도 없다. 대문은 반쯤 열리고 한길에는 인적이 고요하다. 성재는 안으로 뛰어 들어오며,
 
62
"성순이가 어디로 갔어요."
 
63
하였다. 이 말에 모친은 깜짝 놀라 눈을 떴으나 다시 눈을 감고 가만히 있었다. 어멈의 뛰어 나오며,
 
64
"네? 작은아씨께서 어디 가셨어요?"
 
65
"마당에도 없고 사랑에도 없는데."
 
66
"어디 가셨을까?......"
 
67
하는 어멈을 가까이 불러 성재는 귓속말로,
 
68
"잠시도 마님 곁을 떠나지 말게. 내가 돌아오기까지는 자지 말고 있게."
 
69
하고 사랑에 들어가 모자를 쓰고 어디로 나아가고 만다.
 
70
성재는 창황하게 계동 골목을 나서서 지나가는 인력거를 잡아타고 묘동 민의 집으로 갔다. 아마 민의 집에 갔을 듯 하건마는, 민의 집에 갔다 하면 더욱 밉기는 하지만, 그래도 성순이가 행여나 민의 집에나 가 있기를 바랐다. 비록 중죄를 범한 음녀라 하더라도 그래도 동기다. 만일 수치를 못이겨서 여자의 편심으로 자살이나 아니하였나 하는 것이 몹시 걱정이 되어 인력거더러 사오 차나 '빨리 빨리' 하였다.
 
71
제동서 묘동까지가 사오십 리나 되는 듯하였다. 인력거가 동대문통 넒은 길로 달려갈 적에 성재는 지나가는 전차와 행인을 보기를 두려워하는 듯이 눈을 꼭 감았다. 무수한 사람들은 성재의 집 비극은 염두에도 아니 두고 제가끔 제 생각을 하면서 옆구리에 두 손을 넣고 빨리 달아난다. 그러나 지금은 저렇게 무관하던 군중들도 일조 성재의 집 비극이 세상에 드러나는 날에는 그네는 옳다구나 하고 제각기 무책임한 비평과 조매(嘲罵)를 발하며 웃고 즐길 것이다.
 
72
성재는 대문에 이르러 큰소리로,
 
73
"이리 오러나."
 
74
하였다. 놀래어 뛰어 나오는 민을 보고 성재는 다른 인사랑 새 없이,
 
75
"성순이 여기 아니 왔어요?"
 
76
"아니요."
 
77
하고 민도 놀라면서.
 
78
"들어오시지요."
 
79
"들어갈 새 없어요. 성순이가 지금 어디로 나갔는데, 여기 왔는가 하고......"
 
80
하며 실망한 듯이 발을 들었다 놓았다 한다. 민은 무슨 말을 할는지 모르고 속으로 '큰 비극이 일어났고나' 하면서 성재를 물끄러미 볼 뿐이었다.
 
 
 

20.3

 
82
성재는 실망하였다. 성순이가 어디로 갔을까. 만일 민한테로 아니 왔다 하면 정말 어디 죽으러나 아니 갔을까. 경찰서에 가서 보호 청원을 하는 것이 적당하지 아니할까 하고 벽돌로 지은 종로 경찰서를 얼른 생각하여 보았다. 그러나 말없이 섰는 민의 근심도 결코 성재에게 지지 아니하였다.
 
83
그래서 부끄러움과 수줍음을 참고,
 
84
"그런데 성순씨가 어디로 가셨어요?"
 
85
하고 물을 필요도 없는 말을 물었다. 성재는,
 
86
"집에 큰 비극이 일어났소. 어머니께서는 돌아가신다고 그러시고, 성순은 어디로 달아나고...... 정말 여기 아니 왔소?"
 
87
민은 좀 성을 내며,
 
88
"아니 왔어요."
 
89
하였다.
 
90
성재는 무슨 말을 할듯할듯 하다가 인사도 없이 인력거를 타고 어두운 묘동 골목으로 내려간다. 민은 방으로 들어와 책상에 기대어 앉았다. 가만히 성재의 집에 일어났던 풍파를 상상하고 성순이가 혼자서 어디로 도망하는 양을 상상하였다. 성순이가 헐덕거리며 자기 방으로 들어오는 양도 보이고, 또 어디서 자살을 하여서 경관과 군중 사이에 피묻은 성순의 죽음이 누워 있는 양도 보이며, 사복 순사가 자기의 방에 난입하여 자기를 힐문하는 양도 보이고, 자기가 무수 한 군중 속에 섞여서 무정한 타매(唾罵)를 받는 양도 보인다. 그리고는 자기와 성순이가 한정 없이 멀리로 달아나 양 과, 어떤 산중이나 섬(島) 중에서 둔세(遁世)의 적막한 생활을 보내는 양도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성순의 생명은 지금 풍전에 등화니, 성순이가 비록 아무리 의지가 견고하다 하더라도 일시의 비관과 수치에 어떠한 일을 저지를는 지도 모르는 것이니, 이 경우에 있어서 진실로 책임을 가지고 그를 구원할 자는 민 자기 밖에 없다. 민은 벌떡 일어났다. 당장 뛰어나가서 성순의 뒤를 따르리라. 그러나 성순이가 어디로 갔는지 방향도 알 수 없으니 어찌하랴. 혹 자기에게로 올는지 모르며, 만일 왔다가 자기가 없는 것을 보면 그 때야말로 성순을 갈 바를 모를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민은 도로 책상에 기대어 앉아서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대문에 누가 들어오는 것만 기다렸다.
 
91
십 분이나 기다렸다. 벌써 아홉 시 사십 분! 열 시 민은 검은 소프트 모를 꾹 눌러 쓰고 목도리를 눌러 쓰고 목도리로 코까지를 싸두르고 대문 밖에로 나서서, 어디로 간다는 목적도 없이 전차 선로를 향하여 나갔다. 전차도 이제는 드물게 다니고 전주에 달린 등불만 반짝반짝하며 그리 세지 아니한 북풍에 전선이 붕붕 소리를 낼 뿐이다. 민은 동(東) 탈까 서(西) 탈까 잠간 주저하다가 종로를 향하고 보도로 올라갔다. 민의 머리는 혼란하여 무수한 생각이 있는 듯하면서도 그실 아무 생각도 없었고, 그 골목의 컴컴한 그늘에는 성순이가 혼자 방향을 몰라서 방황하는 것이 보이는 듯하였다. 그래서 소리는 못 질러도 두어 번 큰 기침을 하기도 하였다.
 
92
이 모양으로 민은 얼마를 가다가 자기가 지금 어디를 목적 삼고 가는가 하고 우뚝 섰다. 어떤 자동차 하나이 질풍같이 몰아오는 것을 볼 때에도 민은 얼른 그 속을 들여다보았다.
 
93
그러다가 '옳다, 우선 성순의 집으로 가 볼 것이다' 하고 너무 지나온 것을 후회하면서 교동 골목으로 올라간다. 장국밥 집 처마끝으로 고깃국 냄새 섞인 김이 나오며 웃고 떠드는 일단의 사람과 중국 요리점의 이층도 민은 들여다보았다.
 
94
민은 성재의 집 사랑 창 밖에 이르러서 귀를 기울였으나 인적이 없고 대문 밖에 가서 귀를 기울였으나 인적이 없다.
 
95
민은 석상 모양으로 한참이나 그렇게 섰다가,
 
96
"이리 오너라."
 
97
하고 불렀다. 그 때에야 사람의 소리가 나고, 문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어멈이 가만히 대문을 연다. 민은 소리를 낮추어,
 
98
"계신가?"
 
99
하였다.
 
100
"안 계셔요. 아까 나갔다가 들어오셨다가는 또 나가셨어요 -"
 
101
민은 실망하였다.
 
102
"성순씨는 아직 아니 들어오셨나?"
 
103
"아니요."
 
104
"마님께서는 어떠하신가?"
 
105
"지금 누워서 울기만 하셔요."
 
106
민은 그날 일어난 풍파에 관한 말을 물르려다가 그것도 부질없는 일이다 하여 발을 돌려 오던 길로 다시 걸어 내려온다. 무슨 생각이 나는지 가다가는 서로 가다가는 서로 하면서-
【원문】20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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