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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요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2019.07.18. 15:14 (2019.07.18. 15:14)

【학습】녹두새

민요 가운데 나오는 녹두는 동학란 때 전라도 고부에서 거병하였던 전봉준(全琫準)과 관련된 것이 많다. 이는 전봉준이 키가 작아서 별명이 ‘녹두장군’이었기 때문이다.
아랫녘 새야 웃녘 새야
전주(全州) 고부(古阜) 녹두새야
녹두밭에 안지 마라
두류박 딱딱우여.
 

 

1. 요점 정리

• 갈래 : 민요(民謠), 참요(讖謠)
• 제재 : 녹두새
• 주제 : 동학군 지도자였던 전봉준에 대한 추모
• 출전 : 조선 구전 민요집
 

2. 내용 연구

• 고부 : 동학혁명의 발원지
• 녹두새 : 전봉준의 별명이 녹두 장군이었음
• 두류박 딱딱우여 : 일종의 후렴
 

3. 이해와 감상

동학 혁명은 1894년(고종 31) 전라도 고부군에서 시작된 동학계(東學系) 농민의 혁명운동으로 그 규모와 이념적인 면에서 농민봉기로 보지 않고 정치개혁을 외친 하나의 혁명으로 간주하며, 또 농민들이 궐기하여 부정과 외세(外勢)에 항거하였으므로 갑오농민전쟁이라고도한다. 동학농민운동은 조선 왕조의 봉건적 질서가 해이(解弛)하기 시작한 18세기부터 비롯되었는데, 그것은 곧 농업 ·산업 ·수공업 ·신분제도 등 하부구조에서의 봉건적 구성의 붕괴가 바로 사회의식에반영되어 실학(實學)의 발생과 평민의식의 대두를 보게 되면서부터라고할 수 있다. 그 단적인 실례로서 1811년(순조 11)에 있었던 홍경래의난을 들 수 있으며, 그 후 1862년(철종 13) 진주(晉州)의 농민봉기를시초로 삼남 각 지방에서 일어난 농민반란은 극도로 문란해진 삼정(三政)에대한 반항으로, 이미 이때부터 혁명 발생의 역사적 배경은 조성되고있었다.
 
혁명의 이념적 바탕이 된 동학은 교조 최제우(崔濟愚)가풍수사상과 유(儒)·불(佛)·선(仙)의 교리를 토대로 서학(西學:기독교)에대항하여 ‘인내천(人乃天) : 천심즉인심(天心則人心)’을 내걸고, 새로운세계는 내세(來世)가 아니라 현세에 있음을 갈파하여, 당시 재야에 있던양반계급은 물론 학정과 가난에 시달리던 백성들에게 요원의 불길처럼퍼져나가 커다란 종교세력을 이루게 되었다. 그러자 조정에서는 최제우를체포, 1864년 사형에 처하였다. 교도들은 교조의 신원운동(伸寃運動)을벌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궐기하여 혁명에 호소하자는 강경론이대두되었고, 뒤에 그 동학군을 영도한 인물로 전봉준(全琫準)이 등장하였다. 전봉준은 민중의 지지를 바탕으로 혁명을 일으켰지만, 결국 조직화된군을 이길 수가 없고, 체포되어 사형되었다.
 
동학혁명은 일제에 대한 민중의 항거였고, 이체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민요가 터져 나올 수 있었다. 백성들은 민요를부르며 나라 사랑의 마음을 다졌고, 민요를 부르며 행군하였고, 민요로써패배의 쓰라림을 달랬다. 이 노래는 당시 동학군을 지도했고, 백성에게신화적 존재가 되었던 전봉준(全琫準)을 기리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시대의 상황을 날카롭게 풍자하면서도 많은 비유를 넣어 뜻이 분명하지않은 참요(讖謠)의 특징을 이해할 수 있다.
 

4. 심화 자료

참요(讖謠)
 
시대의 변천상이나 어떤 정치적인 징후를 암시하는민요로 후삼국(後三國)시대 이후의 문헌에 수집, 기록되어 있다. 고려의건국을 예언했다는 '계림요(鷄林謠)', 후백제의 내분을 예언했다는 '완산요(完山謠)'가후삼국 시대의 참요이다. 근세의 예로서 동학군(東學軍)의 지도자 전봉준(全琫準)을두고 “새야 새야 팔왕(파랑) 새야/녹두 밭에 앉지 마라…”라는 동요가유행했는데, 팔왕(八王)은 전(全)자, 즉 전봉준과 관련된 것으로, 대체로왕조나 정권의 대변동 등 큰 시변(時變)이 있을 때마다 참요가 나타났다고한다.
민요 가운데 나오는 녹두는 동학란 때 전라도 고부에서 거병하였던 전봉준(全琫準)과 관련된 것이 많다. 이는 전봉준이 키가 작아서 별명이 ‘녹두장군’이었기 때문이다.
“아랫녘 새야 웃녘 새야/전주 고부 녹두새야/녹두밭에 앉지마라/두류박 딱딱우여.”라는 노래가 있는데, 여기서 새는 민중을 가리키며 두류박은 전주 고부에 있는 두류산(頭流山)을 말하고 딱딱우여는 날아가라 또는 해산하라는 것을 의미한다.
전봉준이 결국은 패할 것이니 그를 따르지 말고 해산하라는 일종의 참요(讖謠)라고 할 수 있다. 이 노래가 서정적으로 변해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는 “새야새야 파랑새야/녹두밭에 앉지마라/녹두꽃이 떨어지면/청포장수 울고간다.”라는 민요는 지금도 전국적으로 전승되고 있다.
 
녹두와 관련된 문화
 
녹두에 관계된 설화는 경상북도의 봉화군과 성주군에서 채록된 것이 있는데, 녹두를 뜯어먹는 토끼를 잡은 영감이 영리한 토끼의 꾀에 속아서 아들(손자)을 토끼로 잘못 알고 삶아먹고 토끼도 놓치고 만다는 내용이다.
또, ‘한강이 녹두죽이라도 쪽박이 없어 못 먹겠다.’는 속담은 게으르고 무심한 사람을 놀릴 때 사용하는 말이며, ‘오뉴월 녹두 깝대기 같다.’는 말은 매우 신경질적이어서 건드리기만 하여도 발끈하는 사람을 이르는 것이다.
민요 가운데 나오는 녹두는 동학란 때 전라도 고부에서 거병하였던 전봉준(全琫準)과 관련된 것이 많다. 이는 전봉준이 키가 작아서 별명이 ‘녹두장군’이었기 때문이다.
“아랫녘 새야 웃녘 새야/전주 고부 녹두새야/녹두밭에 앉지마라/두류박 딱딱우여.”라는 노래가 있는데, 여기서 새는 민중을 가리키며 두류박은 전주 고부에 있는 두류산(頭流山)을 말하고 딱딱우여는 날아가라 또는 해산하라는 것을 의미한다.
전봉준이 결국은 패할 것이니 그를 따르지 말고 해산하라는 일종의 참요(讖謠)라고 할 수 있다. 이 노래가 서정적으로 변해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는 “새야새야 파랑새야/녹두밭에 앉지마라/녹두꽃이 떨어지면/청포장수 울고간다.”라는 민요는 지금도 전국적으로 전승되고 있다.
【작성】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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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5년 7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