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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신 ◈
◇ ... 큰 싸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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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6월~
이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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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순신
 
2
11. (   큰 싸움)
 
 
 

1

 
4
왕이 평양을 버리고 의주로 몽진한 뒤에 소서 행장(小西行長)은 평양에 웅거하여 군사를 쉬며 일본 수군이 이 순신의 수군을 깨뜨리고 평안도 바다로 들어오기를 고대하였다.그리하여서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의주를 엄습하여 조선 왕을 사로 잡고 완전히 조선을 손에 넣으려 한 것이다.
 
5
풍신 수길(豊臣秀吉)은 원정군이 육전에 연승하는 보고를 듣고 만족하였으나 그와 반대로 수전에서 연패하는 보고를 듣고는 심히 노하고 화를 내었다. 조선의 제해권을 잡지 아니하고는 도저히 군사를 끌고 명나라에 들어 갈 수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6
이에 풍신 수길은 협판 안치(脇坂安治)로 주장을 삼고 협판 좌위문(脇坂左衛門), 도변 칠우위문(칠遇위문) 으로 아장을 삼아 새로 일대 합대를 조직하여 기어코 이순신의 함대르 섬멸할 것을 명하였다. 이번 수군으로 말하면 조선의 바다를 지배하기 위함보다도 이 순신에게 대한 원수를 갚는 것이 주요한 목적이었다. 수군이 연전 연패한 것은 일본 민심에도 극도의 불안을 주었고, 따라서 새로 일본 전토를 지배하는 자리에 오른 풍 태합(豊太閤)(태합이란 벼슬을 붙여서 풍신 수길을 부르는 이름)의 융륭하던 위신이 깜임도 적지 아니하였다.
 
7
일본으로 부터 새로 대 수군이 부산에 건너 왔다는 정보가 전라 좌수영에 도달한 것은 유월 말이었다. 이 순신은 반드시 이런 일이 있을 줄을 짐작하였던 터이라 곧 전라 좌도의 각관, 각진의 수군에 강구대변(江口待變) - 오늘날 말로 대기(待機)하라는 영을 내리고 일변 수로와 육로와 아울러 사자를 보내어 전라 우도 수군 절도사 이 억기(李億祺)와 경상 우도 수군 절도사 원 균(元均)에게 이관(李關)하여 칠월 칠일을 기약하여 노량진(노량진)에 모여 제 삼차로 적의 수군을 칠 것을 약속하였다.
 
8
칠월 칠일을 기다리는 동안에, 혹은 가덕(가덕)에 전선 십여 척이 나왔다 하고 혹은 거제(巨濟) 근해에 적선 삼십여 척이 떴다는 정보가 답지할 뿐 아니라, 금산포(錦山浦)(남해의 남단)에까지 출몰하는 것을 바로 좌수영의 탐보선이 발견하게 되었다.
 
9
이 순신은 왕이 서울을 떠난 것, 임진강에 패한 것까지 들었고 평양을 지키리라는 소문까지도 들었다. 그러나 평양을 버린 것이라든지 왕이 의주로 쫓겨 가서 압록강 건너편에서 명나라 군사의 구원이 오기를 기다리고 앉았다는 기별까지는 아직 듣지 못하였다. 종묘 사직의 위패도 잊어 버리고 도망하는 판에 일개 변방 작은 장수인 이 순신에게까지 그러한 기별을 할 정신이 조정에는 없었고, 또 설사 할 마음이 있다고 하더라도 할 사람도 없었던 것이다.
 
10
이 순신은 이러한 패보를 들을 때마다 서향히여 통곡하였다. 이렇게도 조선에 사람이 없는가? 이렇게도 조선사람은 못난 백성인가를 한탄하였다. 그는 어떤 때에는 술이 취하여 홀로 비분을 잊으려 하였다.
 
11
조선 칠도가 다 적병의 손에 들어가고 온전하게 남은 것은 오직 전라도 하나뿐이다. 이 전라도 하나마저 적의 손에 들어가면 조선의 강토는 한 치도 못하는 셈이다. 이에 순신은 결심하였다. 죽기로써 전라도를 지키고 적의 수군이 전라도 앞바다를 지나지 못하게 하자고,
 
12
『순신이 죽지 아니하고 적병의 발이 한걸음도 전라도에 들지 못하리라. 』
 
13
하고, 칼을 짚고 하늘에 맹세하였다.
 
14
이런 때에 일본의 새 수군이 경상도 바다를 횡행한 것이었다. 팔도 강산에 살아 있는 이 순신 하나뿐이었다. 강산이 오직 그 하나를 믿은 것이다.
 
 
 

2

 
16
임진 칠월 초육일 아침에 순신은 전라 우수사 이 억기(李億祺)와 합하여 대소 전선 팔십여 척을 거느리고 좌수영을 떠나 노량진(鷺梁津)으로 향하였다. 당포(唐浦) 승전으로 제 이차로 적의 수군이 천성(天城)·가덕(加德) 이서에 그림자도 없이 만들고 유월 십 일에 파진하고 돌아 온 때로 부터 거의 한 달이다. 그동안에 순신은 군사를 교련하고 배를 수리하고 군기를 준비하고 기다렸던 것이다. 이동안에 정히 용인(龍仁), 경성(京城), 임진(臨津)에서 조선군이 연전 연패 - 라기 보다는 부전 자패하고, 전라도 순찰사 이 광(李洸), 도원수 김 명원(金命元) 등이 달아나기 경쟁을 하며 왕과 그의 종신들은 또 싸우며 또 달아나는 동안이었다. (여기 싸운다는 것은 적군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동인, 서인의 당파 싸움을 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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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힘이 다 무너지고 왕과 그의 신하들이 모두 혼비백산하여 오직 다른 나라(명나라)에 백배 천배로 구원을 애걸하고 있을 때에 아랫녘 한 구석의 미관말직을 가진 일개 수사 이 순신이 홀로 삼천리 조국을 두 어깨에 메고 조정에서는 알아 주지도 않는 싸움의 길을 떠나는 것이다.
 
18
순신은 뱃머리에 서서 구름 속에 표묘하게 보이는 지리산(智理山) , 백운산(白雲山) 등 하늘에 닿은 웅장한 자태를 바라보며 이 아름답고 웅장한 강산에 주인이 없음을 한탄하였다. 실로 일국의 운명을 두 어깨에 지기에는 순신은 너무도 하잘 것이 없는 지위를 가진 사람이었다. 오직 하늘에 너무 나라를 위하는 충성, 목숨보다 자기의 맡은 사명을 더 중히 여기는 책임감, 하늘이 무너져 덮더라도 까딱 없는 용기 - 이것이 순신으로 하여금이 길을 떠나게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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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에는 경상 우도 수사 원 균(元均)이 헌 배 일곱 척을 수리하여 영솔하고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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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신은 원 균과 이억기를 배로 불러 올려 이번에 싸울 방략을 재삼 약속하였다. 그 약속의 요지는, 전라 좌도, 전라 우도, 경상 우도의 삼도 연합군이 절대로 통일한 행동을 할 것, 부질 없이 공을 다투지 말고, 또 저을 깔보지 말고 가장 신중히 명령에 의하여서만 행동할 것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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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난이라도 삼도 연합군인데다가 순신이나 억기나 원 균이나 다 평등된 일개 수사에 지나지 못하니 명령이 통일되기가 어려운 일이었다. 오직 과거에 두 차례나 연합 행동을 한 경험이 있는 것과, 수군의 세력으로 보아 순신의 것이 다른 두 세력보다 압도적으로 큰 것과, 이 억기가 평소에 순신을 흠모하여 달게 그 절제를 받은 것으로 이삼도 연합군이 통일될 가능성이 있는 것뿐이었다. 약속이 끝난 뒤에 순신이,
 
22
『지금 성상이 몽진하시와 조명을 기다릴 수가 없고, 그렇다고 군중에는 일시도 대장이 없을 수 없으니 우리 세 사람이 다 직품이 상등하여 막상 막하 하지마는 불가불가 한사람으로 대장을 삼을 수 밖에 없소.』
 
23
하고, 좌중에 발의하였다. 이 억기가 서슴치 않고,
 
24
『그것을 물을 것 없이 영감이 대장이 되시어야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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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순신을 천하였다. 원 균은 속으로 미상불 앙앙하였으나,
 
26
『그렇기를 두말이요, 좌수사 영감이 우리 중에 연치로 해도 두이시니 대장이 되시오.』
 
27
하고, 연치라는 조건으로 순신이 사령 장관 되는 것을 승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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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이 그리하신다면 사양 아니 하겠소.』
 
29
하고 순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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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이로 부터 제공은 내 절제를 받을 것을 맹세하시오.』
 
31
하고, 칼을 빼어 높이 드니, 이 억기와 원 균은 칼을 뉘여 두 손으로 받들어 절제에 복종할 것을 맹세하였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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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에서 약속을 정한 삼도 연합군은 일체 이 순신의 절제를 받기로 서약하고 제장이 주장선에 모여 잔을 잡아 하늘에 축원하고 맹약한 후에 곧 전함대가 속양의 노량진을 떠나 창신도(昌信島 - 一名 昌善島) 앞바다에서 밤을 지내고 이튿날 칠월 칠일에는 검은 구름이 하늘에 덮고 동풍이 세게 불어 파고다 산과 같은 것도 무릎쓰고 순신은 전군에 명령하여 배를 저었으나 고성 땅 당포(唐浦)에 이르러 날이 저물었다. 당포는 당포의 대승전을 하던 곳이라, 장수들이나 군졸들이 모두 한 달전의 장쾌하던 일을 생각하고 저절로 가슴이 뛰는 것을 깨달았다. 함대를 당포 앞바다에 세우고 종선을 놓아 밥 지을 나무와 물을 얻으로 물에 나갔더니 산에 올랐던 피란민들이 우리 함대가 오는 것을 보고 마치 오래 떠났던 부모를 만난 듯이 반겨 내려 와 손을 두르고 소리를 질러 기쁜 뜻을 표하였다. 피란인 중에서 김 천손(金千孫)이라는 소 치는 사람이 황망히 물 길러 간 배에 싣고 순신에게로 와서 그 연유를 아뢰이니 순신이 천손의 말은 이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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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인이 오늘 볼일이 있어 거제에 갔더니 적선이 대선, 중선, 소선 합하여 칠십여 척이 미시쯤 하여 영등포(永登浦) 앞바다에 나타났다가 고성(固城) 땅 견내도(見乃도)에 와 닻을 주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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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천소의 보고는 군사상으로 보아서 진실로 중대한 의미를 가진 것이었다. 지금까지 적군의 소재를 분명히 모르고 어디든지 찾아 가서 만날 생각을 가지고 행선하였지마는, 김 천손의 보고로 말미암아 적의 소재와 적선의 수효를 분명히 안 것은 마치 힘을 새로 얻음이나 다름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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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순신은 밤으로 적군의 장수들을 장선에 모아 크게 순사 회의를 열고 밝은 날에 견내도에있는 칠십여 척 적선을 싸웟 깨뜨릴 의논을 한 후에 각각 부서를 정하여 먼저 갈자와 뒤에 지킬 자를 분명이 정하고 방포로써 군호를 하되 그 군호에 응하여 어떻게 행동할 것을 낱낱이 명령하였다. 그리고 또 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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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결코 제 마음대로 행동하지 말고 오직 약속한 보와 그때그때의 명령에 복종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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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결코 먼저 한다는 공을 다투지 말고 각각 제 맡은 직분을 다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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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애써 적병의 머리를 많이 베이려 하지 말고 많이 죽이기만 힘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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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을 훈시하였다. 이 섹째 것은 전공을 자랑하기 위하여 목을 베이기만 위주하는 폐풍이 있음을 경계한 것이니 순신은 싸울 때마다 비록 수급을 증거로 보이지 아니하더라도 누가 잘 싸우고 힘써 싸운 것을 보아서 아는 것이니 머리 하나 베이는 동안에 적병들을 죽이라는 훈시를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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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적선을 잡아 거기서 빼앗은 재물은 국가에 바칠 것(군기나 무슨 기록이나)을 제하고는 다 적선을 잡은 사람이 나누어 가질 것을 성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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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순신은 군사들에게 밥과 고기를 만히 먹이고 또 낮에 먹을 것을 넉넉히 주되 비록 장수라도 술을 먹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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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월 팔일 아침은 어제와 반대로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동편 하늘에 붉은 기운이 돌기도 전에, 아직도 굵은 별들이 선잠을 깬 듯이 깜박거릴 때에 순신은 영을 내려 전함대 대소 팔십여 척이 일제히 닻을 감고 돛을 달게 하였다. 깊이를 모르는 검은 물이 닻줄에 흔들려 늠실늠실 춤을 추었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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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신의 대함대가 새벽의 물을 헤치고 한산도 앞바다에 다다랐을 때에는 소쿠리도 위로 붉은 해가 솟아 올라서 팔십여 척이 전선의 돛에는 일시에 불이 붙은 듯하였다. 그러나 함대가 견내도를 바라볼 때에는 순식간에 팔십여 척 전선이 그림자를 감추고 오직 판목선 육 척이 고단하게 북으로 견내도를 향하여 미 끄러질 뿐이었다. 다른 배들은 순신의 명령대로 정한 부서를 따라 각각 산 그늘과 섬 그늘에 숨고 순신은 주력 함대 오십여 척을 한산도 대석 뒤 포구에 숨기고 자기만 이삼 척 배를 거느리고 마치 선유하는 사람 모양으로 앞바다로 오르락 내리락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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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올라오자 마치 햇발을 따라 온 듯이 바람이 불기를 시작하였다. 아직 그리 큰 바람은 아니나 장차 큰 놀로 변할 듯한 살기를 띤 바람이었다. 이 바람을 따라 거울과 같은 한산도 바다에는 가는 물결이 지기를 지작 하고 보리밥 한솥 지을 때 한때를 지나서는 꿈틀꿈틀 굵은 물렬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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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 현감 어 영담(漁泳潭)이 거느린 선봉대는 적함이 정박하여 있다는 견내도를 향하여 살같이 달렸다. 때마침 어지간히 세게 부는 서남풍에 돛이 찢어질 듯이 바람을 품었다. 거제도의 산들이 줄달음하듯이 오른손 편으로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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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도 앞에서 하회를 기다리는 순신은 뱃머리에 나서서 북으로 견내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물이 반 넘어 썰도록 어 영담에게서 아무 소식이 없는 것을 보고 순신은 적에 마음이 초초하였다. 순신의 계획은 썰물에 적함을 한산도 바다로 끌어 넣어 싸우는 동안 저녁 밀물을 맞아 적으로 하여금 의양으로 달아나지 못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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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견내도에서는 적함과 싸우지 말고 만일 적이 따르거든 달아나 돌아 오라고 일렀지마는 혹시나 솟아 오르는 기운을 억제하기가 어려워 싸우고 있는 것이나 아닌가 하고 근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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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군사 회의를 할 때로 부터 견내도로 따라 가서 싸우기를 주장하던 원 균은 순신의 계교를 비웃었다. 병목 같은 견내도 좁은 목에 몰아 넣고 싸우지 아니하고 호호한 것이다. 날이 늦도록 선봉대가 돌아 오지 않는 것을 보고 원 균은 자기의 선견지명을 자랑하여 순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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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라도 견내도로 따라 갑시다. 그까짓 적이 무엇이 무서워서 못 간단 말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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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 오십 척만 소장을 빌려 주시면 해 지기 전에 그 놈들을 깡그리 잡아 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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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빈정대었다. 그는 마치 영등포에서 싸우지도 않고 그 많은 전선과 군기와 수군을 버리고 도망한 것은 자기가 아니요, 딴 사람인 것 같이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순신은 말 없이 머리를 흔들어 원 균의 말이 옳지 아니한다는 뜻을 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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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내도와 같이 풀과 암초가 많은 곳은 지키기에 편하나 치기에 맞지 못함과 또 설사 견내도에서 싸워서 적이 진다 하더라도 적은 배를 버리고 뭍으로 올라가 달아날 것이니 결국 싸워 이긴다 하더라도 적병에 인명의 손해는 적을 것이요, 또 이편의 전선도 혹은 풀에 올라 앉고 혹은 암초에 부딪쳐 손해를 면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설명하여도 원 균은 잘 듣지 아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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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견내도로 부터 달려 오는 배가 보였다. 주먹만 하다가 사람만 하여지고 마침 썰물을 타서 삽시간에 그것이 어 영담이 거느린 배인 것이 판명되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하나도 상하지 아니하고 다 있었다. 은은히 포성이 들이는 것은 일변 싸우며 일변 달아나는 것을 표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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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다 다를까. 조선 배들의 뒤를 따라 마치 수효를 모를 듯한 검은 돛 단 적선이 기러기떼 모양으로 요란히 방포하고 따라 오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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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신은 손수 한 소리 높이 북을 울렸다. 한산도 속 바다에 숨어 있는 전선에게 출동을 명령하는 것이었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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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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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북소이에 한산도 속바다에 숨어서 기다리던 배들은 일제히 돛을 감았다. 이 영담의 선봉대가 대섬에서 얼마 머지 아니한 곳에 다다랐을 때에는 칠십여 척의 적의 함대는 꼬리를 물고 그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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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신이 또 한번 북을 울리니 일성 방포가 뒤미쳐 물 속으로 부터 솟아 나는 듯이 한바다에 쑥 나섰다.
 
62
적의 함대는 불의에 큰 함대가 앞을 막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래어 허둥지둥하여 행렬이 어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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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편의 함대는 들입(入)자 모양으로 학익진(학의 날개와 같은 진형)을 벌여 적의 함대를 안아 싸고 노를 빨리 저어 지현자(지현자)·승자(승자) 각양 총통을 놓으니 선봉으로 오던 적선 세 척이 깨어져 배에 탔던 적병이 하나 남기지 아니하고 물에 빠져 깨어진 배의 널쪽을 붙들고 부르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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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보고 적선은 기운이 꺾이어 뱃머리를 돌려 오던 길로 도로 도망하려 하였으나 경작간에 난데 없는 수십 척의 배가 고성쪽으로 부터 내달아 서까래 같은 화전과 각양 총통과 활을 쏘고, 이것을 피하여 뱃머리를 거제쪽으로 돌리니 소쿠리도 그늘로서 또 난데 없는 수십 척의 배가 나타나 역시 서까래 같은 화전을 쏘니적의 함대는 삼면으로 우리 함대에게 싸이어 화전을 맞아 돛에 불이 댕기어 황혼의 하늘에 염염히 타오르니 마치 수없는 불기둥과 같아서 하늘과 바다가 온통 불빛이 되었다. 적의 함대는 완전히 통제를 잃어 행렬이 무너지어 하나씩 둘씩 저마다 갈팡질팡 도망할 길을 찾을 때에 우리 군사는 기운이 백배하여 다투어 나아가 갈팡질팡하는 적선을 잡았다.
 
65
타고, 깨어지고, 남은 적선 십여 척이 한산도 앞바다를 빠져 도망하려 하였으나 미륵도에서 부터 한산도 끝까지 수백의 불이 앞을 가로막았으니 이것도 필시 이 순신의 병선이리라 하여 거기 다시 뱃머리를 돌려 대섬을 향하고 돌아왔다. 이때에 순신은 짐짓 대섬 앞바다를 비우고 멀리 적선을 애워 싸니 길을 잃은 적선은 한산도 속 바다를 외양으로 터진 바다인 줄만 알고 그리로 도망하여 들어갔다.
 
66
얼마를 가서 이것이 막다른 골목인 줄을 알고 이십 척의 병선 중에는 장수 협판 좌위문(脇坂左衛門)과 진와 재마윤(眞외在馬允)의 탄 배도 있어서 그들은 용감하게 십 척의 적선으로 최후의 대항을 하였다.
 
67
그 좁은 한산도 속바다에서 일대 격전이 일어나 포향, 불빛이 하늘에 닿았다. 그러나 마침내 십 척 중에 아홉 척은 불타고 혹은 깨어지고, 오직 진와의 배 한 척만이 남아 도망하여 진와와 및 그 부하 장졸이 섬으로 올랐으나 그 나머지 장졸은 협판 주장 이하로 다 속 바다의 귀신이 되었다.
 
68
진와가 부하 장졸 백여 명을 데리고 물에 오르매 조선군사는 그 배를 불살라 벼렸다. 진와는 길에 올라 자기가 탔던 배가 불붙는 것과 바다 가운데반쯤 잠긴 자기편 배들이 아직 번쩍번쩍 차마 꺼지지 못하는 듯한 불길을 내임을 보고 문득 자기만 목숨을 보전하여 도망한 것이 부끄러운 생각이 나서 동을 향하여 자기의 임금과 조상의 영을 부르며 통곡하고 그 자리에서 칼을 빼어 배를 갈라 죽었다. 따르던 장졸 중에 이십여 명이나 주장의 뒤를 따라 배를 갈라 죽고 그 나머지는 혹시나 도망할 길이 있나 하고 초생달도 다 넘어간 캄캄한 밤에 수풀속으로 헤매었다.
 
69
이튿날 아침에 도망한 적병의 종적을 수색하던 조선 군사들이 진와 이하 이십여 명이 배를 갈라 죽은 자리를 발견하고 순신에게 보고하매 순신은 땅을 파고 그 시체들을 묻고 술을 부어 적의 충혼을 위로하였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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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큰 싸움(만일 이 싸움에 조선 편이 졌다면 일본 수군은 곧 전라 충청의 바다를 지나 서해로 돌아 갈 것이요, 그리하면 오직 하나 조선 땅으로 남았던 전라도 마저 적의 손에 들어 갔을 뿐더러, 평양에서 수군의 응원을 기다리덙 소서 행장(小西行長)의 군사는 평안도를 두루 말아 의주까지 들이쳐 왕은 압록강을 건너가고 말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조선 팔도는 완전히 풍신 수길 손에 들어가 다시 회복할 길이 없고 말았을 것이다)에 제장 중에 가장 먼저 적의 장선을 깨뜨려 큰 공을 세운 이는 순천 부사(順天府使) 권 준(權俊)이다.
 
72
이 사람은 지난 사월에 처음 순신이 원정을 떠날 때에는 순신을 비방하던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지난번 싸움에 순신의 인격과 수완에 감복하여 마침내 순신을 숭배하는 사람이 되었다.
 
73
이 날, 권 준은 맨 먼저 용감히 적진에 달려들어 적의 장수가 탄 층각선을 깨뜨리고 그 장수 열 명의 목을 베이고 그 배에 있던 조선 사람 하나를 사로잡아 전군의 사기를 만장이나 돋구었다.
 
74
이 조선 사람은 적군을 위하여 물길을 인도한 자였다. 이 사람은 문초함을 따라서 적의 수군이 어디 얼마 어디 얼마 있는 것을 자세히 고하였다. 그 공으로 목숨은 살려 정말 그의 말과 같은가 아니 같은가를 징험하기로 하였다. 그의 말에 의하건댄, 구귀 가륭(九鬼嘉隆)이란 장수와 가등 가명(加藤嘉明)이란 장수가 제일 큰 수군 대장인데 전선 사십여 척을 거느리고 뒤를 따라 온다 하고 또 부산포(釜山浦)에는 그 밖에도 사십 척의 병선이 남아 있다고 하였다.
 
75
오늘 싸움의 주장은 누구냐고 물으매, 그 협판 안치(脇坂安治)라는 사람이라고 대답하였다. 협판 안피가 어느 배에 탔느냐 한즉 자기와 같은 배에 탔다고 하나 권 준이가 베인 머리 중에는 협판 안치의 머리는 없었다. 제 배가 깨어질 때에 협판 안치는 헤엄쳐서 다른 배에 기어오른 것이었다.
 
76
권 준이 다음 큰 공을 세운 이는 광양 현감(光陽絃監) 어 영담(魚泳潭)이었다. 그도 장수가 탄 충각선 한 척을 온이로 잡아 거기 탔던 장수 하나를 사로잡아 결박하여 바치었다. 그러나 그 장수는 화살을 맞아 대단히 중상이 되어서 말을 하지 못하였다. 어 영담은 그 밖에 십 이급을 베이고 조선 사람 한 사람을 사로잡았다. 사도 첨사(蛇渡僉使) 김 완(金浣)이 대선 한 척을 잡아 장수를 사로잡고 머리 십여 급을 베이고, 흥양 현감(興陽縣監)배 흥립(裵興立)이 대선 한 척을 잡고 머리 팔급을 베이고, 방답 첨사(防踏僉使) 이 순신(李純信)이 대선 한 척을 잡고 머리 사 급을 베이니, 이것은 죽이기를 위주하고 머리 제이기를 힘쓰지 아니한 까닭이었다. 이 순신(李純信)은 또 작은 배 두 척을 뱃머리를 받아 깨뜨리고 불살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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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돌격장(左突擊獎)이 기남(李奇男)이 대선 한 척을 잡아 머리 칠 급을 베이고, 좌별도장 영군관(左別都獎營軍官) 전만호(前萬戶) 윤 사공(尹思恭), 가 안책(賈安策) 등이 층각선 두 척을 온이로 잡아 머리육급을 베고, 낙안 군수(樂安郡守) 신 호(申浩)가 대선 한 척을 잡아 머리 칠급을 베고, 녹도 만호(鹿島萬戶) 정 운(鄭運)이 픙각 대선 이 척을 불살라 깨뜨리고 머리 삼 급을 베이고 우리 사람 삼명을 사로잡고, 여도 권관(呂島權官)김 인영(金仁英)이 대선 한 척을 잡아 머리 상급을 베이고, 발포 만호(鉢浦萬戶) 황 정록(黃廷祿)이 층각선 한 척을 받아 깨뜨리매 여러 배가 합력하여 불살라 버리고 머리 이급을 베이고, 우별도장(右別都將) 전 만호(前萬戶)송 응민(宋應珉)이 머리 이급을 베고, 흥양 통장(興陽統將) 전현감(前縣監) 최 천보(崔天寶)가 머리 삼급을 베이고,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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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퇴장 전첨사(斬退將 前僉使) 이 응화(李應華)가 머리 일급을 베이고, 돌격장 급제(突擊將及弟) 박 이량(朴以良)이 머리 일급을 베이고, 이 순신이 탄 주장선이 머리 오급을 베이고, 유군 일령장(遊軍一領將) 손 윤문(孫允文)이 소선 이 척을 따라 가며 대포를 놓아 적군을 산으로 올려 쫓고, 오령장(五領將) 전봉사(前奉事) 초 도전(崔道傳)이 우리나라 젊은 사람들을 사로잡고, 그 나모지 대선 이십 척과 중선 십 칠 척과 소선 오 척은 전라 좌우도 제장이 힘을 합하여 불살라 깨뜨리고, 적병 사백여 명은 세궁역진하여 배를 버리고 한산도로 오르고, 대선 일 척, 중선 칠 척, 소선 육 척만이 뒤에서 바라보다가 견내도로 달아나고 말았다.
 
80
싸움이 끝이매 순신은 함대를 견내도 안바다에 모아 진을 치고 밤을 지냈다. 이 밤에 장졸들은 곤한 것도 잊고 기뻐 뛰며 소리를 질렀으나 밤이 깊으매 순신은, 아직도 싸움이 끝난 것이 아니요, 내일도 또 어떻게 큰 싸움이 있을는지 알 수 없으니 다들 잠을 자서 몸을 쉬라 하였다.
 
81
전군이 다 잠이 든 때에 어떤 배 사오 척이 바다 가운데로 가만가만히 떠도는 것이 있으니, 이것은 원 균이 낮에 공을 세우지 못함을 분히 여겨 바다에 떠다니는 적병의 시체를 찾아 죽은 목을 베이는 것이었다. 원 균이 그 어두운 바다 위로 떠돌며 적병의 세체를 찾아 머리 백여 급을 베어 소금에 저렸다. 이것은 싸움이 끝나거든 순신 모르게 왕에게 바치자는 생각이었다.
 
82
한산도 큰 싸움의 첩보가 의주의 행재소에 이른 것은 이로 부터 십여 일이나 지난 칠월 하순께였다.
 
83
이날 적막한 행재소에서는 군신이 오늘이나 내일이나하고, 일련은 평양에 웅거한 소서 행장의 군사가 밀려 들어오지나 아니하나, 다른 한편으로는 행여나 명나라로 부터 구원군이 온다는 선문이 오나 하고 무서움 절반 희망 절반으로 마음을 조리고 있었다. 더구나 이삼일 전에 평 행장(平行長 =小西行長)이 왕에게 글을 보내어,
 
84
『(日本   .   .   . ).』
 
85
하는 말로 위협을 받음으로 부터는 왕 이하로 흔이 몸에 붙지를 못하였던 것이다.
 
86
이때에 전라 도사(全羅都事) 최 철견(崔鐵堅)이 순찰사 이 광(李光)의 명을 받아 전라 좌도 절도사 이 순신의 「견애량파왜병장(見乃梁破倭兵壯)」이라는 장계를 가지고 밤낮으로 달려 행재소로 온 것이었다.
 
87
『전라 좌도 수군 절도사 이 순신이 견 내량에서 적의 수군을 깨뜨렸다 하오.』
 
88
하고 좌의정 윤 두수가 전라 도사 최철견과 안동해 온 순신의 군관을 옥좌 앞으로 인도할 때에 왕은 마치 무서운 꿈이나 깨친 듯이 전신을 경련하였다.
 
89
최철견은 관복도 갈아 앞에 엎디어 이 순신의 장계를 두손으로 받들어 올렸다.
 
90
왕은 순신의 장계를 떼었다.
 
91
장지 전폭에 힘있는 초서로,
 
92
『見乃梁破倭兵壯』
 
93
이라고 머리에 쓰고, 다음에 첫줄에,
 
94
『       』
 
95
라는 것을 허두로, 대전의 경과와 공을 이룬 사람의 이름까지 자세히 쓰고,
 
96
끝에,
 
97
『  
 
 
 
 
 
98
       』
 
99
이라 한데까지 단숨에 읽어 버렸다.
 
 
 

8

 
101
『과연 순신은 천하 명장이다.』
 
102
하고 왕은 기쁨을 못 이기어 허리를 펴며 소리를 질렀다.
 
103
『또 글이 문장이요. 글씨도 명필이다. 』
 
104
하고, 왕은 좌우를 돌아보았다. 좌우에는 영의정 최 흥원(崔興源), 좌의정(左義政) 윤두수(尹斗壽), 우의정 유흥(兪泓), 전대신 유 성룡(柳成龍), 정 철(鄭澈), 도승지 이 항복(李恒福) 등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중에는 순신의 대승전을 기뻐하는 이도 있고 기뻐 아니하는 이도 있다. 기뻐 아니하는 까닭은 이 순신이 유 성룡의 거천한 사람이어서 동인이라고 할 만한 까닭이었다.
 
105
왕은 순신의 군관이 올리는 적장의 머리 세 개와 왼편 귀만을 젓담근 항아리를 손수 열어 보고, 또 친히 군관에게 싸움할 때 광경을 말하게 하고 곧 도승지 이 항복을 불러 순신으 일품에 올리는 교지를 쓰라 하였다. 이 항복이 왕명을 받아 붓을 들 때에 정 철(鄭撤)이 왕의 앞에 나와 엎드려,
 
106
『순신의 공이 적다 할 수 없소마는 그만한 공에 일품을 주시면 더 큰 공을 세울 때에 무엇으로 갚으려 하시오? 공은 남용하는 것도 장려하는 속도리가 아닌가 하오.』
 
107
하고 왕의 일품 주자는 말씀에 반대하였다. 이러서 우의정 유 흥(兪泓)이 왕의 앞에 엎드리며,
 
108
『소신의 생각도 그러하오, 순신이 비록 적지 아니한 공을 세웠다 하더라도 일개 수군 절도사에게 일품을 주신다 하면 이는 기강이 무너지는 것이니 옳지 아니한가 하오.』
 
109
하고 정 철의 말을 도왔다.
 
110
정 철과 유 홍의 용감한 말에 조정의 많은 서인들은 통쾌함을 느꼈다.
 
111
왕은 또 이놈들이 동인이니 서인이니 하는 당파 싸움을 하는 구나 하고 마음에 분이 북받쳐 오름을 금할 수 없어서 흥분으로 떨리는 언성으로,
 
112
『그러면 일풉은 동인이니 서인이니 하고 싸우는 사람들만 가지는 것인가?』
 
113
하고, 정 철과 유 홍을 노려 보았다. 정 철과 유 홍은 왕의 노함을 보고 낯이 붉어지며 입을 다물었다.
 
114
유 성룡은 아무 말 없이 눈을 감고 있었다. 도승지 이 항복은 붓을 든 채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좌의정 윤 두수(尹斗壽)가,
 
115
『조정이 다 순신에게 일품 나리심을 외다 하니 정 이품으로 하심이 옳은다 하오.』
 
116
하고 조정하였다. 심지가 약한 왕은 이렇게 된 처지에 도망하지 아니하고 자기를 따르는 것만 해도 고마운데 수많은 서인들의 감정을 상하는 것이 미안도 하고 두렵기도 하여 두수의 말대로 순신을 정 이품 정헌 대부(正二品正憲大夫), 원 균(元均)과 이 억기(이억기)를 종 이품 가선 대부(從二品嘉善大夫)로 하였다.
 
117
그리고 순신에게는 특히 정 이품 정헌 대부를 준다고 교서를 내렸다.
 
118
유 성룡은 이 순신이 그만한 작위로 하여 충성이 더하고 덜할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전쟁이 끝난 뒤에 징비록(징비록)에 한산도 싸움에 관하여 이렇게 적었다.
 
119
『   
 
 
 
120
                   』
 
121
이것은 한산도 싸움이 아니더면 전라·충청·황해·평안, 각도의 연해를 보전하여 군량을 대고 연락을 취하여 나라가 다시 일어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원문】... 큰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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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순신 [제목]
 
  이광수(李光洙) [저자]
 
  동아 일보(東亞日報) [출처]
 
  1931년 [발표]
 
  소설(小說)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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