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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신 ◈
◇ 죽기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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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6월~
이광수
목   차
[숨기기]
1
이순신
 
2
18. 죽기까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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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양으로 일본군은 벽파진 한싸움에 전진할 생각을 끊고 정유년 겨울을 날 준비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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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쪽으로 부터 말하면, 순천 왜교(順天倭橋)에는 소서 행장(小西行長)이 진을 치고, 사천에는 도진 의홍(島津義弘), 도진 충항(島津忠恒)이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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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南海)에는 입화 종무(立花宗茂), 유마 청신(有馬晴信), 대촌 회전(大村會前), 송포 진신(松浦鎭信) 등이 있고, 남해·당도(唐島)·거제도(巨濟島) 간에는 수군이 지키고, 죽도(竹島)에는 와도 직무(와도직무)가 있고, 양산(梁山)에는 흑 전장정(黑田長政)이 있고, 부산(釜山)에는 총대장 격인 평 수가(平秀家)라고 일컫는 우회다 수가(宇會多秀家), 모리수원(毛利秀元), 소조천 수추(小早川秀秋) 등이 있고, 서생포(西生浦)에는 주전론자의 선봉인 가등 청정(加藤淸正)이 있고, 울산성은 가등 청정이쌓고 수비하는 것이었다. 일본군의 총수는 십만이요,진영은 칠백 십리에 뻗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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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명병측은 어떠하였던고 하면, 남원(남원) 패전의 보고를 듣고 강화론자인 병부 상서(兵部尙庶) 석 성(石星)을 벌하고 ,남원을 지키다가 달아난 양 원(陽元)과 전주(全州)에 있어서 남원을 돕지 아니한 진 우충(陳愚衷)을 군법에 처하여 베이고, 절강 도어사(浙江都御使) 진효(陳效)로 조선 감군(朝鮮監軍)을 삼고, 산동 우정사(山東右政使) 만 세덕(萬世德)으로 도찰원 우첨 도어사 해방 순무(都察院右僉都御使海防巡撫)를 삼고, 도독(都督)동 윌원(동일원), 유 정(유정) 등으로 하여금 병 오만 일천을 거느리고 조선에 향하게 하고, 또 수군 도독(水軍都督) 진 인(陳璘)으로 하여금 수군일만을 거느리고 조선으로 향하게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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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군은 남원의 패전이나 벽제관의 패전이나 다 조선군이, 혹은 겁이 나서 먼저 달아나고 혹은 적과 통하여 군기를 누설한 책임으로 돌렸다. 그는 전패한 명나라 장수들이 자기네의 책임을 가볍게 하려는 핑계였었다. 그러나 조선은 또 이 불명예로운 책망에 대하여 대답할 말이 없었다. 왜 그런고 하면, 이 순신, 권 율(행주 싸움에서만) 등 몇 사람을 제하고는 다 적의 빛만 보면 달아나는 무리가 아니었던가? 조금만 적의 발걸음이 멀어지면 입만 살아서 주전론을 뽐내던 자들도 적의 오백리 밖에만 왔다고하면, 벌써 짐을 싸고 달아날 생각을 하지 아니하였던가? 그리고 애걸 복걸로 명나라에 구원을 청하기로 능사를 삼지 아니하였던가? 둘째 번 명군이 조선으로 올 때에 명나라 장수가 조선 임금에게 보낸 질문서는 실로 조선 사람된 사람으로는 부끄러워서 죽게 할 만한 것이었다. 그 글을 여기 적어 독자와 함께 등이 젖도록 부끄러운 땀을 흘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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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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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뜻은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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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속국이 망하는 것을 불쌍히여기어 두 번째 군사를 보내니, 그 은혜는 바랄 수 없는 일이라. 이만하면 임금 된자는 마땅히 장을 베고 쓸개를 핥는 뜻이 있고, 신하 된 자는 임금의 근심을 덜기 위하여 몸을 바치는 절이있고, 백성 된자는 위를 사랑하여 앞서서 죽을 의가 있어야 할 것이라, 그러할 진댄, 우리 대병이 나아가 성세를 도우면 왜 비록 강하다 한들 조선을 어찌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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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하거늘 임금은 달아날 생각만 하고, 대신은 도망할 생각만 하고, 대장은 나라를 팔고군기를 누설하고, 백성들은 나도나도 하고 적에게 항복함은 어찜이뇨? 접때 남원이 빠지고 전주를 잃을 때에도, 조선의 관병은 있던 말을 듣지 못하고 혹은 창을 거꾸고 들어 반란을 일으키고, 혹은 기회를 타서 내란을 일으키니, 이는 분명히 왜를 달게 여김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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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 나라(조선)에 묻노니, 아프게 스스로 깨어 만일 위와 아래 서로 힘을 써 죽기로 지키고 삼군을 거느려 나아감이 있고 물러감이 없을 진댄, 중국은 마땅히 크게 군사를 내어 너를 도와 적을 치려니와, 만일 스스로 사직을 가벼이 여기고 걸핏하면 도망하여 고식적으로 무사하기를 구할진댄, 중국이 어찌 너를 위하여 지켜 주랴? 곧 군사를 거두어 나맡은 지경인이나 지켜 주랴? 곧 군사를 거두어 나 맡은 지경이나 지킬 터인니, 너는 동으로 가든지 서로 가든지 남으로 가든지 북으로 가든지 네 멋대로 할 것이요, 네 나라 스스로 돌아 갈 곳을 찾을 지어다, 거짓말 말고, 아무렇게나 말고 진정으로 성의 있게 대답하라, 양단을 다 잡아 우리 군기를 그름하게 말지어다.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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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모욕적 자문을 받고도 조선의 조정에서는 왕이나 대신이나 매양 고담 주론으로 일을 삼던 대간이라는 위인들이나 감히 분개하지도 못하고 오직 황송할 뿐이었다. 「예, 황송하오. 살려 줍시오.」할 뿐이었다. 그리고 왕은 한문 잘하는 사람을 시켜 변명하는 회답을 하였다. 그리고 곧 평안도, 황해도, 경기도, 함경도 군사 만여 명을 모집하여 명나라 경리 양 호(楊鎬), 제독(提督) 마귀(馬貴)의 분부를 듣게 하고 명병과 합력하여 한강의 여러 여울을 지키게 하였다. 그러나 음식이나 의복이나 조선병과 명병과는 큰 차별이있었다. 명병은 좋은 옷에 좋은 음식에 술과 고기를 막 먹어도 조선 군사는 명병이 내어 버리는 것을 얻어 먹고, 조선 병정 중에 아무리 지위가 높은 이라도 명병중에 가장 지위가 낮은 이보다 낮았다. 그래서 걸핏하면 욕을 얻어 먹고 매를 얻어 맞고, 심지어는 까닭 없이 못매를 맞아 죽은 이도 있었다. 이러한 고초를 겪어도 조정에서나 대관들이나 들은 명나라 장졸에게 아첨하고 시중들기에 그들은 돌아봄을 받지도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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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경기도 도체찰사 유 성룡(柳成龍)이 몸소 강변으로 순회하면서 조선 장졸을 위로함이 있을 뿐이었다. 왕도 몸소 서울을 나와 강변 각군을 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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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리 양 호 이하 명나라 장졸의 폭행은 조선 편의 무기력을 볼수록 더욱 중장하여 장졸의 폭행은 조선 편의 무기력을 볼수록 더욱 중장하여 그칠 바를 몰랐다. 그들은 군자금이라 하여 날마다 왕에게 재물을 조르고, 만일 다라는 대로 한번이라도 응하지 못하면, 「너희 재물을 숨기고 군비를 아니 대이니, 황상께 아뢰어 죄를 내리게 하겠다」는 등,「너희가 그러면 우리느 나갈 테니, 그리 알라」는 등 위협을 일삼았고, 또 밑에 있는 졸병들은 민가에 무상 출입 하여 부녀를 겁간하고 재물을 늑탈하며, 만일 항거하면 때리고 차고 죽였다. 그들의 눈에는 조선의 대관이니 양반이니 하는 것도 없었다. 그들은 양반의 집에 보물이 많고 어여쁜 부녀가 많은 것을 알기 때문에, 양반의 집같이 보이는 집을 골라서 폭행을 하였다. 그들은 일본군과 싸운다 칭하고 남방으로 내려 가는 길에 더욱 폭행이 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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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성룡은 참다 못하여 왕에게 이러한 상소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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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
그 뜻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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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군사의 작폐를 이루 견디어 내일 수가 없소. 나라에 있는 힘을 다 털어 대이더라도 도저히 버티어 갈 수가 없소. 요새에 남 쪽으로 내려 오기 시작한 후로 부터는 연도 작폐가 무쌍하오. 관리를 때리고 하인을 결박하고 술을 내라 밥을 내라 하여 갈수록 더 심하니, 수령들은 그 행패에 못 이겨서 달아나 산 속에 숨어 버리고 하인들만 남아서 접대를 하고 있소. 참참이 있던 말은 다타고 가서는 백에 하나도 올려 보내지를 아니하니, 민가에 마소가 자취를 끊었소. 그래도 내고 내라니 백성의 정경은 차마 볼 수 없소 달리 도리가 없으니, 접대사를 시켜서 틈을 타서 제독에게나 이런 말을 해보게 하시면, 혹시 좀 나을는지 그도 어떨지 모르니, 이런 딱한 일이 있소.」함이었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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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양으로 명군은 갖은 행악을 다하면서 남도로 내려 갔다. 그러나 그들은 일찍 한번도 승전해 본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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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안에 순신은 고금도(古今島)에 근거지를 잡았다. 고금도는 벽파진에서 해남 반도의 끝을 돌아 완도(莞島)를 지나 흥양(興陽) 반도를 돌아서 좌수영으로 통하는 요해에 척한 섬이다. 조약섬(助약섬라고 쓴다)과 고금도(본래는 꺾음섬) 사이에는 한강 넓이만한 곳이 있는데, 물이 깊어 아무리 큰 배라도 무시로 통행할 수 있을 뿐더러 곬이 두 섬 틈바구니로 휘임하게 구부러져 있기 때문에 밖에서 엿볼수가 없이 되었다. 신지오(新智島) 밖난바다를 통하면 몰라도, 내해를 통하려면 여기만큼 물 깊은 곳이 없었다. 그뿐더러 뒤에는 좌수영 뒤 쇠북산과 같은 높은 봉이 있어 그 봉에 오르면 사방 바다의 형편을 바라볼 편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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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신이 벽파진 싸움에 이긴 후에 각처로 모여 든 군사가 팔천명이 넘었다. 순신은 이 군사들을 이끌고 고금도로 온 것이었다 첫째로 걱정되는 것이 군량이었다. 이에 순신은 한 계교를 내어서 충청, 전라, 경상 삼도를 통행하는 배에게 통행첩(通行帖)을 주게 하고 통행첩이 없이 다니는 배는 간세( = )로 논하여 일체 통행을 금지하였다. 배에 대소를 나누어, 대선을 쌀 삼석, 중선은 이석, 소선은 일석을 받고 통행권을 주었다. 백성들은 순신의 해군을 믿고 재물을 가지고 섬으로 피난하는 것이 성풍이 되었기 때문에 이만한 쌀을 바치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되었기 때문에 이만한 쌀을 바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어서 저마다 쌀을 갖다 바치고 통행첩을 얻었다. 이렇게 하여 받은 쌀이 십일 내에 만석이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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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량을 판비하게에 성공한 순신은 각지에 영을 내려 동과 철을 모아 들이게 하였다. 백성들은 밥주발과 숟가락을 바치는 이조차 있었다. 순신은 고금도에 조병창을 세우고 대포와 조총을 제조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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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각 섬과 연해 각지에서 재목을 실어 들여 배 짓기를 시작하고 일변으로는 대를 실어 들여 화살을 제조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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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많은 군사와 공장이 모여 들기 때문에 장사하는 사람들, 피난하는 사람들도 모여 들어서 고금도는 한 달이 넘지 못하여 큰 도시를 이루었다. 순신은 명나라 군사가 거처하기 위한 병영을 짓고 대장이 거처할 영문을 짓고 또 함대가 정박할 방파제를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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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고금도 준비가 다 되어 이 순신 혼자만이 넉넉히 적을 소탕할 능력이 생길 만한 때에 명나라 수군 제독 진 인(陳璘)이 만명 가까운 수군을 끌고 강화도(江華島)로 부터 내려 왔다. 이름은 청병이나 기실은 순신의 행동을 방해하여 적을 놓아 보내고 마침내는 순신의 행동을 방해하여 적을 놓아 보내고 마침내는 순신을 죽게하는 결과를 낳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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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이월. 진 인(陳璘)이 고금도를 향하여 서울을 떠날 때에 왕은 군사를 거느리고 청파역(靑坡繹)까지 나와 전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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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진 인의 부하는 전송 나온 양주 목사를 차고 때리고, 찰방(찰방) 이 상규(李尙規)를 오라로 목을 매어 땅바닥에 끌어 유혈이 만연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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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성룡은 진 인을 보고 이 찰방을 놓아 주기를 청하였으나 진 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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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조선 관원들은 이렇게자 해야 버릇을 가르친다. 너희 놈들이 하는 일이 무엇이냐? 적이 오면 너희 놈들은 도망하고 우리 대명나라 사람들더러 죽을 땅에 나가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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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도리어 호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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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 있던 왕은 얼굴이 주홍같이 되었다. 그러나 감히 한 마디도 말을 못하였다. 유 성룡은 같이 앉았던 재상들을 돌아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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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석 하오. 이 순신이 또 패하겠소. 무엇하러 명나라에 청병을 한단 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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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신이 인과 한 군중에 있게 되면 반드시 순신이 하는 일은 못하게 할 것이요, 도리어 순신이 원치 아니하는 일은 시킬 것이요, 순신의 장수 권리를 침탈할 것이요, 순신의 군사를 학대할 것이요, 순신이 이것을 거스르면 노할 것이요, 쫓으면 더할 것이니 이러고야 아니 패하고 어찌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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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 일좌가 다 유 성룡의 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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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그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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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옳다는 뜻을 표하였다. 그러나 속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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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놈, 네가 순신을 두호하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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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악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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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는 유 성룡이 이 말이 명나라를 모욕한 말이라 하여 재상들 간에(명나라 말고 조선의) 유 성룡을 모든 이유의 하나가 되었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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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인(陳璘)의 수군이 가까이 왔다는 소문을 듣고 순신은 이백척 전선에 기를 꽂고 위의를 갖추어 바다에 나아가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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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인은 열 두척 밖에 없었다는 이 순신이노 수백척 병선을 가진 것을 보고 놀라고 또 그 수백척 병선이 장수의 한 명에 법도 있게, 민활하게 진퇴하는 것을 보고 놀래었다. 도저히 자기 수하에 있는 수군은 그러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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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인의 군사가 고금도에 하륙하매 순신이 몸소 진 인, 등 자룡(登子龍) 등 상관을 새로 건축한 영문으로 인도하고 또 부하를 시켜 모든 군사를 병영으로 인도하게 하였다. 진 인은 모든 것이 다 신비요, 그러 하건 만도 하나도 미비한 것이 없음을 보고 놀래었다.
 
50
명나라 장졸이 다 자리를 잡을 만한 때에 순신은 미리 준비하게 하였던 주식으로 명나라 군사에게 크게 잔치를 베풀어 장졸이 다 취하지 아니한 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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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에 있는 것 같았다. 』
 
52
고 진인을 더할 수 없이 만족하였다. 그 말 뜻은 북경을 떠난 뒤로 이때껏 한번도 이렇게 유쾌하고 풍성한 대접을 받아 본 일이 없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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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인은 서울서 오는 길에, 고금도에 도달하거든 무엇이든지 한 가지 책을 내어 시 순신을 혼을 내어 그기를 꺾으리라고 마음을 먹었었다. 그러나 모든 절차와 설비와 대접에 하나도 책을 잡을 것이 없었다.
 
54
술을 취하돌 마신 명나라 사졸들도 이 순신을 가리켜 과연 좋은 장수라고 칭찬하였다. 만일 조금이라도 책을 잠히었던들 이 순신도 청파 이 찰방 모양으로 목에 올가미를 씌워 갖은 모욕을 당하였을 것이다. 명나라 장졸의 눈에 왕과 대신도 없거든 하물며 일개 변방 무장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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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은 그렇게 순탄하게 가지만 아니하였다. 원래 명나라에 있을 때부터도 탐람하고 포학하기로 유명하던 진 인이다. 한 번 무슨 핑계만 잡으면 벼락이 내릴 것은 물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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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불행이 한 일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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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인이 온지 얼마 오래지 아니하여 적의 수군의 일대가 고금도에서 얼마 멀지 아니한 녹도(녹도)를 습격한다는 경보를 받았다. 순신은 왕으로 부터 모든 군사는 진도독의 절제를 받으라는 명령을 받았으므로 곧 이 경보를 진 인에게 보였다. 진 인은 이때야말로 명나라 수군의 위엄을 보일 첫 기회라 하여 순신에게는 아무 말도 아니하고 명나라 전선 오십척을 명하여 이 적군을 소멸하라 하였다. 순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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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국 주사가 물길을 잘 알지 못하니 소인의 전선으로 하여금 돕게 함이 어떠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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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진 인에게 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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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인은 잠깐 생각하였으니, 조선 주사가 선봉이 되지 아니할 것을 조건으로 허락하였다. 이는 공을 이 순신에게 빼앗길 명대로 명선 오십척은 기고 당당하게 녹도를 향하고 달리고 조선 병선은 멀리 뒤를 따랐다. 순신은 조선 병사에게 명병이 위험한 지경에 빠지기까지는 싸우지 말라고 재삼 당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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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도를 못 미쳐서 앞선 명선은 적의 선봉을 발견하였다. 적선은 삼십척 내외였으나 배들이 모두 크고 배 위에 깃발을 달아 심히 찬란하였다.
 
62
명선에서는 먼저 방포하여 기세를 보였다. 적의 함대는 잠시 관망하는 모양 이이었으나 또 방포하고 응전하였다. 아마 그것이 이 순신의 함대가 아니요, 명나라 함대인 것을 볼 때에 안심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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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전이 한시나 계속하자 두 함대는 점점 피곤하여 거의 단병전이 연출되었다. 멀리서 바라보기에 명나라 전선 사오척에 적군이 올라 가는 것이 보였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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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선 세 척이 완전히 일본군에게 점령을 당하자 나머지 명선들은 항오를 어지럽게 하여 퇴각하였다. 일본군은 그 뒤를 따라 질풍같이 몰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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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에 섬 그늘에 숨어서 가만히 전황을 보고 있던 주장 안 위(安衛)는 함대에 대하여 공격령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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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위는 벽파진에서 이 순신이 하던 병법을 본받아 자기가 몸소 선봉이 되어 대포와 화살을 빗발같이 적선을 향하여 발사하며 질렀다.
 
68
이렇게 격전한 끝에 적은 저당하지 못할 줄 알고 빼앗았던 명선 세 척을 버리고 또 배 두척을 안 위에게 빼앗기고 동으로 달아났다. 안 위는 녹도 저쪽까지 이르다가 순신의 당부대로 군사를 거두어 돌아왔다.
 
69
안 위는 이 순신에게 잡아 온 적 두 척과 그 속에 있던 즙물과 적병의 머리 사십급을 바쳤다.
 
70
진 인은 명병이 패하고 조선군이 이긴 것을 보고 분이나서 명선의 주장을 앞에 꿇리고 손수 목을 베리려 하였다. 이때에 순신은 적의 머리 사십급을 진 인에게 주며,
 
71
『누가 이기었으나 다 마찬가지 아니요, 이것을 노야께 드리니 황상께 바치시오.』하였다.
 
72
진 인은 순신이 제 공을 자기에게 주는 것을 보고 심히 기뻐하였다. 그래서 노염을 거두고 죽이려던 주장을 살려주었다.
 
73
이날에 진 인은 명군 장졸에게 대하여,
 
74
『이로 부터 이 통제를 노야(노야)라고 부르고, 이 통제외 절제를 내 절제와 같이 받으라.』
 
75
하는 명을 내리고 또 순신에게 대하여서도,
 
76
『명나라 장졸간에 만일 행패하는 자가 있거자 군령을 어기는 자가 있거든 내게 물어 볼 것 없이 먼저 형벌하고 나중 알리라.』하였다.
 
77
이때부터 진 인은 무슨 일에나 반드시 이 순신에게 물어 하고, 이 순신을 부를 때에는 반드시 이 노야라 하고, 승교를 타고 어디를 갈 때에도 반드시 이 순신과 가지런히 가고 감히 앞서 가지 아니하였다.
 
78
이로 부터 명군은 감히 조선 군사나 백성에게 대하여 행패를 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명나라 장졸들은 길에서나 어디서나 니 순신을 보면 반드시 진 인에게 대한 것과 같은 예로 공경하였다.
 
79
진 인은 이 순신에게 경복하여, 명나라 황제에게 순신의 자재와 인물을 칭찬하여,
 
80
『(                 ) (통제사는 경천 위지하는 재주가 있고 보천 욕일한 공이 있나이다.)』
 
81
하였다.
 
82
명나라 황제가 이 순신에게 「          」(명나라 수군 도독)」이라는 벼슬을 주고 인과 영기와 칼을 준 것이 다 진 인의 천이었다.
 
83
명나라 수군 도독이라면 어떤 의미로 보면 조선 왕보다도 낮지 아니한 지위였다. 그러므로 조선에서는 누구든지 이 순신을 죄를 줄 자가 없는 셈이었다. 그뿐 아니라 벽파진 대승전의 보고가 명나라 조정에 가매 명나라에서 불사첩(不死帖)이라는 단서 철권(丹書鐵券)을 순신에게 주었다.
 
84
이것을 가진 이는 당대뿐 아니라 그 자손까지도 사형을 받지 아니하는 힘이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순신은 일체 명나라 수군 도독으로 자처하거나 자칭하는 일이 없었다. 그가 조정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부하나 명군에게 대하여서도 자기의 관명을 쓸 필요가 있을 때에는 항상 조선 벼슬인 충청, 전라, 경상 삼도 수군 통제사라는 직함을 썼었다. 순신의 머리에, 유명 수군 도독이란 것을 모든 조선 직함보다도 먼저 쓴 것은 제 나라보다도 명나라를 존중하는 훗 사람들(글잘하고 지위있는)이었고, 조선의 뭇백성들은 순신과 함께 통제사라고 불렀다.
 
 
 

6

 
86
무술년 구월 십 오일에 순신은 진 인(진인)과 함께 또 함대를 거느리고 고금도를 떠났다. 이는 순천(順川)에 와있는 명장 유 정(劉艇)과 합하여 왜교(倭橋)에 응거하고 있는 소서 행장(小西行長)군을 수륙으로 합공하려 함이었다.
 
87
순신의 생각에는 먼저 왜교의 소서 행장군을 격멸하고 다음에 사천(泗川)과 부산과 울산을 순차로 격멸할 계획이었다 왜 그런고 하면, 일찍 계사년에 경상 감사 김수(金수)와 상약하고 부산의 적을 협공하려 하였으나 김 수가 겁을 내어 약속을 지키지 아니하기 때문에 실패하였지마는 지금은 울산에도 명군이 와 있고 사천 근방에도 명군이 와 있으므로 만일 진실로 수륙 협공을 한다고 하면 적을 격멸하기는 반드시 어려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88
오직 염려도는 것은 믿을 수 없는 명나라 장수의 심사이지마는 진 인은 이미 순신에게 심복하여 순신의 의사대로 좇는 터이므로 수군에 있어서는 염려가 없다고 자신한 것이었다.
 
89
십 구일에 순신에게 있어서는 가장 감개무량한 좌수영에 이르러 참담한 폐허가 된 것을 보고 이십일 미명에 좌수영을 떠나 괴섬(괴섬)에 이르니 때는 신시였다.
 
90
이때에 벌써 명장 유 정(劉綎)의 군사는 육지로 부터 적진을 공격하여 포성이 은은히 들렸다.
 
91
순신은 적은 배를 적질으로 보내어 싸움을 돋구었다. 이때에 왜교에 오백척 전선과 삼만명의 적의 장졸이 있어, 현재 조선에 있는 적진 중에는 가장 큰 근거지였다. 더구나 왜교의 근거지는 사천, 울산 등지에 있는 적에게 군량을 공급하는 근원이므로 만일 왜교의 적진이 함락한다고 하면, 사천, 부산, 울산 등지의 적은 불공 자파가 될는지도 몰랐을 뿐더러 풍신 수길(豊臣秀吉)이 이미 죽었으므로 적의 사기는 많이 저사되었던 것이었다.
 
92
이십 이일 싸움에 명 유격장이 팔에 총을 맞고 당인(명나라 사람이라는 말) 십 일명이 전사하고 지세 만호(知世萬戶), 옥포 만호(玉浦萬戶)도 총을 맞았다.
 
93
때는 마침 조금이라 물이 얕아서 큰 배가 노루섬(  ) 안까지 들어 갈 수가 없었다. 큰 싸움을 하려면 아직 적군을 항구 안에 봉쇄해 놓고 그믐사리가 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94
진 인은 순신의 말대로 주사를 노루섬으로 옮겨서 왜교에서 나오는 바다 입을 봉쇄하고 물이 살아나기를 기다렸다.
 
95
왜교라는 데는 여수 반도(麗水半島)가 순천에 붙은 밑동으로서 그 입에 노루섬이 문 모양으로 가로 막아서 노루섬 앞을 지나지 아니하고는 바다에 나올 수가 없는 곳이었다.
 
96
이러한 곳에 소서 행장은 영구적인 성을 쌓고 토지를 개간하여 농사를 짓게하고 인근 읍에 부하를 보내어 전곡을 가져 오게 하였던 것이었다.
 
97
그믐날, 일일 이일에 다 순신은 진 인(陳璘)에게 총 공격하기를 청하였으나 진 인은 듣지 아니하였다.
 
98
이러는 동안에 또 조수는 점점 줄기를 시작하였다.
 
99
순신은 심히 초조하였다. 지금같이 물이 깊은 때면 적이 아무리 응전하지 아니하더라도 거북선(새로 고금도에서 지은 것 두 척)과 기타 전선으로 적선의 정박지를 습격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이 기회를 놓친다 하면 다시 반달이나 기다리지 아니하면 기회가 없을 것이요, 그리하는 중에는 적이 사천, 부산 등지에 청병을 하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진 인은 듣지 아니하였다.
 
 
 

7

 
101
원래 싸우기 좋은 기회는 그믐날과 초일, 최 양일이었다 이날에는 물도 많이 밀거니와 또 물때가 바로 밤이기 때문에 적이 모르게 진군하기가 편하였다. 순신은 연하여 진 인에게 싸우기를 말하였으나 진 인은 육상에 싸우기를 즐기지 아니하였다. 진 인이 말을 듣지 아니하면 순신이 혼자 총 공격을 할 수는 없었다. 순신은 진 인의 절제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그래서 순신은 정찰한다는 핑계로 수십척씩 배를 놓아 적을 습격하고 있었다. 그러는동안에 이 일의 싸움에 순신의 처종형인 사도 첨사 황 세득(黃世得)이 총을 맞아 죽었다.
 
102
순신은 조상하는 제장에 대하여, 「세득이가 나라 일로 죽었으니 죽어도 영화롭다」하였다. 순신은 삼일에 진 인에게 싸우기를 재촉하였다.
 
103
『오늘도 지나면 물이얕아지오, 그러면 다시 반 달을 기다리지 아니하면 싸울 기회가 없소. 또 반달을 기다리는 동안에는 적이 사천·부산·울산 등지에 있는 적을 청해 올 것이니 그리 되면 우리는 복배로 수적하는 곤경에 빠질 것이요, 오늘은 아직도 물이 과히 줄지 아니하였으니 오늘 기회는 놓칠 수 없소. 』
 
104
하였다. 그래도 진 인은,
 
105
『유 총병과 약속이 아니 되었으니 주사로만 싸울 수가 있소?』
 
106
하고 응치 아니하였다.
 
107
『만일 오늘을 놓쳐 버리면 명나라 주사나 조선 주사나 한 척도 남아 돌아 가지 못하리라.』
 
108
하고 순신은 극력으로 진 인을 재촉하였다. 진 인은 마지 못하여 순신의 말을 좇았다.
 
109
이리해서 초사흘의 왜교 총 공격이 개시되었다. 그러나 이때는 벌써 물때가 낮을 뿐더러 진 인을 움직이는 동안에 때가 늦었다.
 
110
그러나 이날 싸움에 적선 오십여 척을 깨뜨렸다. 진 인의 함대는 싸울 뜻이 없어 뒤로만 돌다가 조선군이 이기는 것을 보고야 앞으로 내달았다. 그러나 이때에는 벌써 조수가 물러 나오기 시작한 때였다. 순신은 진 인에게 배를 보내어,
 
111
『조수가 나갈 때가 되었으니 군사를 거두라.』
 
112
고 청하였다. 그러나 진 인은 듣지 아니하였다. 그는 이왕 싸우는 이상이면 조금이라도 공을 세울 야심이 있었던 것이다.
 
113
과연 순신의 말을 듣지 아니한 명나라 전선 중에 호선 이십척과 전선 십 구척이 풀에 올라 앉아 버렸다. 이것을 적군은 작은 배를 타고모여 들어서 배위에 있는 명군을 하나 아니 남기고 다 죽여 버리고 말았다. 순신은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전선 칠 척에 병기를 많이 실어 가 구원케 하였으나 물이 얕아서 도저히 수백보를 격하고는 더 들어 갈 수가 없었다.
 
114
이것을 보고 진 인은 마치 모든 것이 순신의 책임이나 되는 듯이 분해하고 화를 내었다.
 
115
초 나흘에도 순신은 공격을 계속하여 다시 수십척의 적선을 깨뜨렸으나 진 인을 싸울 뜻이 없었다.
 
116
초오일에는 서풍이 크게 불어 배를 안정할 수가 없었고, 초육일에 도원수 권 율(權慄)이 순신에게 비밀히 사람을 보내어, 『유 제독(劉堤督)이 달아나려 한다.』는 기별을 전하였다.
 
117
순신은 이 소식을 듣고 그날 일기에『      (통분 통분)』이라고 적었다.
 
118
또 이날에는 일본에 포로로 잡혀 갔다가 도망해 온 변 경남(변경남) 이라는 사람에게서 평수길(平秀吉)이 군관을 진 인에게 보내어,
 
119
『    .    . (육군은 잠시 퇴군하였다가 다시 준비하여 싸우려 한다.)』고 하였다.
 
 
 

8

 
121
순신은 명장 진 인(陳璘)의 방해로 하여 왜교(倭僑)의 적을 토벌하지 못하고 한을 머금고 좌수영을 거치어 고금도 본영으로 돌아 갔다.
 
122
이 동안에 유 정(유정)은 순천(順天)에 돌아가 누웠다. 그는 소서 행장(小西行長)에게 많은 뇌물을 받고 싸울 뜻이 없는 것이었다 그 뇌물 중에는 일본 여자 하나도 있었다. 이 항복(李恒福)이 유 정을 움직이려고 애를 썼으나 유 정에게는 모기 소리만큼도 아니 들렸던 것이다.
 
123
순신은 고금도에 있는 동안에 인에게 혹은 의리를 가지고 혹은 이해 관계를 가지고 달래어 그를 움직이기에 힘을 썼다. 애초에 순신이 인을 끌고 고금도에 돌아 온 까닭이, 인으로 하여금 적에게 유혹될 기회가 없게 하고자 함이었다. 순신의 이계획은 성공되었다. 인은 마침내 순신의 성의에 움직임이 되어 소서 행장의 군사와 한번 싸울 결심을 하게 된 것이었다.
 
124
십 일월 초구일에 순신은 인과 함께 다시 함대를 끌고 고금도 본영을 떠나 십 일일에 유도(柚島)에 다다라 진을 쳤다. 이번 보름사리를 타서 총공격을 하려 함이었다. 십 삼일에 적선 십여 척이 노루섬 밖으로 나오는 것을 둘이 쫓고, 순신은 인과 함께 진을 노루섬으로 옮겼다.
 
125
십 사일에 적선 두 척이 강화를 청한다고 청하여고 인의진에 왔다. 순신은 인이 유혹받지 아니하기만 빌었다. 밤이 들어 술시나 된 때에 순신이 바다를 바라보니 적선 하나에 장수인 듯한 이가 타고 노루섬에 들어와 인이 있는 도독부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이것은 아까 낮에 적의 사자가 왔을 적에 인이 밤에 만나기를 약속한 것이었다.
 
126
순신이 사람을 도독부에 보내이 알아본 즉 적장은 돼지 두 마리와 술 두 항아리를 가지고 와서 한시각 동안이나 통사만 새에 세우고 무슨 이야기를 히고 돌아 갔다고 한다.
 
127
이튿날인 십 오일에 순신은 인을 도독부에 찾았다. 그러나 인은 순신에게 적의 강화 청하는 문제에 대하여 아무 말도 아니하였다. 이날도 적선이 세 번이나 인의 진중에 출입하였다.
 
128
이튿날인 십육일에도 소서 행장의 사자가 인에게 오고 이날에는 인이 그 부하 진 문(진문)이란 자를 소서 행장에게 답례사로 보내었다. 진 문이 적진을 들어 간 지 얼마 아니하여 오도주(五島主)라는 적장이 배 세척에 말과 창, 검 등 선물을 실어다가 인에게 바쳤다. 이로 부터 적선이 더욱 빈번히 인에게 왕래하고, 왕래할 때마다 반드시 말, 무슨 상자 같은 선물이 왔다.
 
129
순신은 대사가 다 틀어지는 것을 한탄하였다. 십 육일에는 인은 순신을 자기 진중으로 청하였다. 인은 술과 안주를 내오고,
 
130
『노야, 이것은 소서 행장이 보낸 술이요, 일본 술이 조선 술보다 낫소. 한잔 자셔 보오.』
 
131
하고 은근히 권하였다.
 
132
『소인은 적이 주는 음식을 먹을 수 없소.』
 
133
하고 물리쳤다.
 
134
인은 좀 머쓱하였으나 다시 웃는 낯을 지어,
 
135
『나도 처음에는 아니 믿었지마는 소서 행장이 여러 번 사람을 보내어, 자기네는 돌아 갈 터이라고 화친을 청하니 제출물에 돌아 간다는 것을 구태여 싸울 것은 무엇이요, 나는 대감의 의향을 들어서야 대답한다고 했소마는 화친을 허하는 것이 좋을 듯하오.』
 
136
하였다. 이것은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는 순신을 꺼려서 화친을 허락은 아니 하였던 것이었다.
 
137
순신은 지필을 당기어『    .       .』이라고 써서 인의 앞에 돌려 놓았다. 대장은 화친을 말하는 것이 옳지 않다. 원수는 그저 놓아 보낼 수가 없다는 뜻이다.
 
138
이것을 보고 인은 부끄러워 낯을 붉히고 다시 아무 말도 아니하였다.
 
139
그날 밤에 소서 행장의 사자가 인의 회답을 들으러 왔을 때에 인은,
 
140
『    .       .    』
 
141
이라고 대답하였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통제사에게 말하다가 거절을 다하였으니 이제 다시 말할 수는 없다는 뜻이었다.
 
 
 

9

 
143
인의 이 회답을 받은 소서 행장은 사자를 순신에게 보내어 총·검·방물 같은 것을 바치고 한 번 만나 의사를 통하기를 청하였다.
 
144
순신은,
 
145
『할 말이 있거든 서울로 가라고 하여라. 나는 적군의 사자를 만날 까닭이 없다.』하고 만나기를 거절하였다.
 
146
『그러나 이왕 가져 온 것이니 물건만이라도 받으시라오.』
 
147
하고 우후가 순신에게 다시 아뢰니 순신은,
 
148
『임진년부터 적을 수없이 잡아서 얻은 총검이 산더미 같으니 너희 대장의 머리 밖에는 쓸 것이 없다고 일러라.』
 
149
하여 그 물건도 거절해 버렸다. 소서행장은 순신이 강경하여 어찌할 수 없음을 보고 제 이단의 책으로 순신과 인과를 떼어 보려 하였다. 그래서 인에세는 조선군과 같이 진을 치고 있는 것이 상국의 위엄에 관계되지 않느냐 하고, 또 순신에게는,
 
150
『장군 같은 큰 재주를 가지고 어찌하여 일개 진 인의 밑에서 그 절제를 받으시오? 나는 적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장군을 흠모하는 충정으로 이 말을 하오.』
 
151
하여 사자를 보내어 각각 이말을 전하게 하였다. 순신은
 
152
『내 나라 땅에 내가 진을 치거든 아무러기로 다 내 뜻이니 적이 아랑곳할 배가 아니다.』
 
153
하여 물리쳐 버렸다.
 
154
소서행장은 순신이 인의 곁에 있고는 인을 매수하기가 어려움을 깨달아 백방으로 계교를 썼으나 효과가 없었다.
 
155
이날에 순신은 인을 찾아 보고,
 
156
『오늘이 가장 조수가 깊으니 총공격을 합시다.』
 
157
하고 청하였다.
 
158
그러나 적의 뇌물에 취한 인은 순신의 말대로 움직이지를 아니하였다. 그리고 도리어,
 
159
『나는 아직 행장은 그냥 두고 남해(南海)에 있는 적을 먼저 칠까 하오.』
 
160
하고 딴전을 부렸다.
 
161
순신은 인의 말이 무슨 뜻인지를 알았다. 그것은 남해를 칩네 하고 명나라 함대를 불러 적이 달아날 길을 열어 주러 함이었다.
 
162
순신이,
 
163
『남해에 있는 것은 다 적에게 포로 되었던 조선 사람들이지 어디 적이 있소?』
 
164
한 즉, 인은 퉁명스럽게
 
165
『이미 적에게 붙었던 놈들이면 적이나 마찬가지지. 이제 가서 치면 힘 안들고 목을 많이 베일 터인데 아니쳐?』
 
166
하고 오만한 모양을 보였다. 순신은 정색하고,
 
167
『황상이 명을 내리어 적을 치라 하심은 조선 인명을 구하려 하심이어늘 이제 적은 치지 아니하고 도리어 조선 인명을 주륙한다 하면 아마 황상의 본의는 아닐 것이요.』
 
168
하였다. 이 말에 인은 대노하여,
 
169
『황상이 내게 장검을 주셨어!』
 
170
하고 칼을 만졌다. 순신도 소리를 가다듬어,
 
171
『한번 죽기는 아깝지 아니하지마는 나는 대장이 되어서 결코 적을 두고 우리 사람을 죽이지는 아니하겠소.』
 
172
하고 또 꾸짖었다. 그러나 순신은 인을 버리려 아니하고 아무리 하더라도 그의 마음을 돌려 이번 싸움을 하려 하였다. 그는 나라 일을 위하여서는 개인 감정을 돌아보지 아니한 것이었다.
 
173
오래 동안 다툰 끝에 인은 남해로 가기를 단념하였다. 그러나 소서 행장의 배 두 척이 밖으로 나가기를 허락하였다. 이 말을 들은 순신은 곧 인을 찾아 보고 어찌해서 배 두 척을 내어 보내느냐고 질문하였다. 인의 대답은,
 
174
『저의 나라로 퇴군한다는 통지를 하러 보낸 것이라기에 내어 보냈다.』
 
175
함이었다. 순신은 발을 구르며,
 
176
『그배는 사천으로 간 것이 분명하니 우리는 이제 복배로 수적하게 되었소. 반드시 사천, 부산에 있던 적선이 노량진(노량진)으로 넘어 올 터이니 곧 가서 맞아 싸우지 아니하면 우리는 앞 뒤로 협공을 당할 것이요.』하였다.
 
177
인은 이 말에 깜짝 놀란 듯이 얼굴빛이 변하였다.
 
178
『그럴까? 그러면 곧 가지요.』
 
179
하고 십 칠일 밤에 전 함대를 띄워 노량진으로 향하였다.
 
 
 

10

 
181
십 칠일 미명에 노량진 근해에 이르러 인의지휘대로 명나라 함대는 바로 노량진 목을 막아 진을 치고 순신의 함대는 관음포(관음포) 어구의 섬 그늘에 숨어서 진을 쳤다.
 
182
애초에 순신은 자기가 몸소 노량진 목을 막고 지키다가 넘어 오는 적군을 일거에 무찌르려 하였으나 인은 공을 다투어 그것을 허하지 아니하였다. 만일 적의 함대가 노량진을 넘어 선다 하면 왜교에 있는 적과 합세할 위엄이 있기 때문에 순신은 이것을 깊이 근심하였다. 그러나 인은 순신을 선봉으로 세워 전공을 그에게 주고 싶지 아니하였으므로 순신의 의견을 좇지 아니하였다.
 
183
십 칠일 유시로 부터 적선이 창선도(昌善道)로 부터 출동하기 시작하여 더러는 암목포(巖木浦)에 와 서고, 더러는 노량에 정박하여 그 수를 알 수 없었다. 이날 밤 이경에 순신은 제장에게 이밤에 반드시 큰 싸움이 있을 터이니 다 죽기로써 마음을 삼으라고 재삼 약속하였다.
 
184
순신은 심서를 정할 길이 없어하다가 삼경이 되어 게숫물을 들이라 하여 머리를 빗고 세수하고 통제사의 군복을 입고 배 위에 올라가 꿇어 앉아 하늘에 빌었다.
 
185
『이 원수만 없이하면 죽어도 한이 없사오니 도와 주옵서서』
 
186
이 때에 큰 별 하나가 햇불 같은 꼬리를 끌고 날아 와 관음포 바닷속에 떨어졌다. 달은밝고 얼음 기운을 머금은 바람은 금빛 나는 물결을 희롱하였다.
 
187
사경이나 되어서 조수를 타고 적선 오백척이 꼬리를 물록 노량진으로 넘어 왔다. 인은 통사를 시켜,
 
188
『대명 수군 제독(대명수군제독) 진 인(陳璘)이 황상의 명을 받고 여기 있으니 저희는 뒤로 물러가라!』하고 호령을 하였다.
 
189
그러나 오백척의 일본 함대의 눈에는 대명 수군 제독도 없었다. 거기서는,
 
190
『우리는 조선 수군과 싸우려는 것이요, 대명과 싸우려는 것이 아니니 비켜 서라.』하는 대답이 왔다.
 
191
일본군의 이 대답은 진 인을 격노하게 하였다. 그래서 진 인은 포화를 열어 일본군에 대하여 싸움을 돋구었다. 그러나 일본군은 조류를 타고, 명군은 조류를 거슬러 싸우기 때문에 도저히 적수가 되지 아니하였다.
 
192
싸운 지 한시각이 되지 못하여 명군은 물을 따라 뒤러 물러가 달아났다. 일본 적은 달아나는 명적을 따라 조총을 콩 볶듯 놓으며 시살하였다.
 
193
그러나 무인지령같이 달리던 일본군은 난데 없는 대적을 만났다. 그것은 관음포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 순신의 수군이었다.
 
194
순신의 수군은 일제히 돛을 달고 내달아 일본 함대의 앞을 막고 대포와 굳센 활과 조총으로 시살하였다. 순신이 고금도에서 새로 지은 거북선 두 척은 마치 바다 속에서 솟아 오른 괴물 모양으로 불과 연기를 뿜고 좌충우돌하여 다닥뜨리는 대로 적선을 부수었다. 아직도 거북선의 위력을 본 일이 없는 적선은 새로운 괴물에 놀라고 일찍 한산도 기타에서 거북선에게 혼이 난 사람들은 옛날 기억을 일으켜 떨었다.
 
195
순신의 군사들은 진 인 때문에 싸우지 못하던 분풀이를 마음껏 하려 들었다. 저마다 앞을 다투었다. 시간은 지난다.
 
196
조수가 돌아 서서 노량진 동쪽으로 부터 서쪽으로 흐르던 조수는 서쪽으로 부터 동쪽으로 흘러 가게 되었다. 조수를 따라 바람도 돌아 섰다. 지금까지 역풍과 역조로 싸우던 순신은 이제야 순풍과 순조를 만나고 적군이 역풍과 역조를 만나게 되었다.
 
 
 

11

 
198
조수와 바람을 다 만난 순신은 더욱 북을 울려 싸움을 돋구었다. 오경이 될 때에는 적선 오백척 중에 삼백여 척이 혹은 타고 혹은 부서졌다.
 
199
거북선은 쫓기는 적선을 따라 다닥뜨리는 대로 뒤를 찌르고 옆구리를 찔렀다. 그의 입과 필십여 개 포혈에서는 끊임 없이 탄환과 연기를 뿜었다. 이곳 물길에 익지못한 적선은 노량에 있는 수없는 암초에 부딪쳐 상하는 것도 적지 아니하였다.
 
200
나머지 백여 척 적선이 노량진 목으로 빠져 나가려 할 때에 산 그늘로 부터 난데 없는 일대의 전선이 내달아 길을 가로 막았다. 이것은 순신이 미리 복병하여 두었던 것이었다.
 
201
앞을 막힌 적선은 뒤를 돌아 보았다.뒤를 따르던 조선 함대는 어디로닞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뒤를 따르던 조선함대는 어디론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들은 방향을 돌려 오던 길로 도로 향하였다.
 
202
그러나 패잔한 적선이 관음포 앞에 다다랐을 때에 섬그늘로 부터 거북선을 포함한 일대의 전선이 재달았다. 싸울 기운과 뜻을 잃은 적선은 어디나 길 열린 데로 달아날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마침내 관음포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203
이 관음포란 것은 어구에서 보면 저쪽 바다로 뚫린 무길같이 보이나 기실은 뒤가 막힌 남해의 한 개굽이다. 순신은,
 
204
『적선을 하나도 놓아 보내지 말아라!』
 
205
하는 주지로 마침내 적의 패잔 함대를 이 병속으로 몰아 넣은 것이었다.
 
206
밤은 훤하게 밝았다.
 
207
바다 위에는 깨어진 배조각, 모으로 넘어진 배, 불타다가 남은 배, 피 흐르는 시체 참담한 모양을 보였다.
 
208
진 인의 함대는 넓은 곳에서 바라보고 조선 함대가 다망하는구나!하고 생각하고 있다가 지리산 꼭대기 찬 눈에 새벽 햇빛이 자줏빛으로 비추일 때에야 전멸한 것은 일본 함대요, 순신의 함대가 아닌 것을 알았다. 그리고 진 인은 일변 무안하고, 일변 공을 빼앗긴 것이 분하여 곧 함대를 몰고 광음포에 왔다. 광음포는 진 인이가 이순신에게 지정한 정박지다. 만일 순신이 싸움이 끝난 뒤에도 그 정박지에 있지 아니한다 하면 인은 그것을 트집을 잡았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순신의 함대는 마치 언제 싸움이 있었나 하는 듯이 제자리에 진용을 정제하고 있었다. 다만 한 가지 다른 것은 배 수효가 적어진 것과 배마다 피가 흐른 것이었다. 이 싸움에 순신의 함대도 육십여 척의 전선과 천여 명의 군사를 잃은 것이었다.
 
209
인은 순신을 찾아,
 
210
『적선은 다 어디 갔소?』
 
211
하고 물었다.
 
212
순신은 바다를 가리켰다. 인은 바다에 너른하게 뜬 깨어진 배, 탄 배, 시체를 보았다.
 
213
『그리고 나머지 백여 척은 이 속으로 달아났소.』
 
214
하고 관음포를 가리켰다.
 
215
인은,
 
216
『그것은 왜 놓아 보냈소?』
 
217
하고 책망하는 어조였다.
 
218
『이곳은 뒤가 막혀서 나갈 데가 없소.』
 
219
하고 순신은 어조를 바꾸어서,
 
220
『소서 행장은 어찌 되었소?』
 
221
하고 물었다.
 
222
『밤 동안에 다 달아났소.』
 
223
하고 인은 면목 없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그는 소서 행장의 함대가 달아나는 것을 전송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순신을 다시 살아서 만나보리라고 생각지 하니 하였던 것이다. 의례히 순신의 함대는 이날 밤에 전멸하였으리라고 믿었던 것이었다.
 
224
『내가 나가 남은 적을 토멸하겠소.』
 
225
하고 인이 관음포로 들어가려 하였다.
 
226
『앗으오. 궁구를 물추라 하였소. 가만 두었다가 나올 때에 잡아도 늦지 않소.』
 
227
하고 순신은 굳이 말렸으나 인은 듣지 아니하고 자기 함대를 끌고 관음포로 들어갔다. 이렇게 잘 속에 몰아 넣은 적이라도 잡아서 자기의 공을 만들자는 걱이었다. 최후의 승리는 자기에게 있다고 자랑하는 것이었다.
 
228
그래도 한번 더 말리는 순신에게,
 
229
『그러니까 조선 사람은 겁이 많단 말이야. 참견 말고 내가 적을 잡는 구경이나 하오.』
 
230
하고 인은 불쾌한 듯이 소리를 질렀다.
 
 
 

12

 
232
순신의 만류도 물리치고 적을 따라 갈 때에는 벌써 해가 많이 올라 왔다. 갈 곳을 잃은 일본 함대는 인의 함대가 따르는 것을 보고 죽을 결심으로 육박하여, 인으리 배는 경각간에 일본 함대에게 포위를 당하고 선봉으로 섰던 칠십 노장 등 자룡(登子龍)은 그 부하 칠십여 명과 함께 일본군의 칼에 죽었다.
 
233
인이 위태해진 순신의배가 오는 것을 보고 적은 인을 버리고 그 사격을 순신에게로 집중하였다. 워낙 바다가 좁아서 배가 자유로 위치를 바꿀수가 없기 때문에 마치 관혁이 쏘는 듯이 순신에게로 조총을 겨누었다.
 
234
그러나 순신은 태연히 뱃머리에 서서 기를 두르며 독전하였다. 이왕 싸움을 시작한 이상에는 뒤로 물러갈 수는 없는 것이었다.
 
235
『하나도 놓아 보내지 말고 적을 잡아라!』
 
236
하고 순신은 호령하였다.
 
237
더 도망하려 하여도 도망할 곳을 잃은 적은 오직 죽기까지 싸울 길 밖에 없었다. 이렇게 적이 순신의 배를 향하여 전력을 다하는 동안에 인과 및 명나라 배들은 위기를 면하여 슬슬 뒤로 빠져 나왔다. 그러나 명나라 수군은 이 싸움에 전에 뒤로 빠져 나왔다. 그러나 명나라 수군은 이 싸움에 전에 없는 대손해를 입었다.
 
238
인을 위험에서 구해 내인 순신은 마침내 움의 탄환에 가슴을 맞았다. 순신은 곁에 섰던 조카 완(莞)에게 손에 들었던 기를 주며,
 
239
『내가 죽었단 말을 말고 내 대신 싸워라!』
 
240
하고 명하고는 군사에게 붙들려 장중으로 들어 왔다. 장중에 들어 와 누운 순신은 한번 둘러 눈을 떠서 곁에 모여 선 부하들을 보고,
 
241
『나를 혼자 두고 어서 나아가 싸워라. 적을 하나도 놓아 보내지 말아라.』
 
242
하고는 눈을 감았다.
 
243
탄환은 순신의 가슴을 맞혀 군복 속으로 피가 흘렀다. 순식간의 낯빛은 창백해지고 숨은 끊겼다. 완은 순신의 명대로 기를 받두르며 독전하였다. 완은 순신의 손에 길린 조카요, 그 모습이 순신과 흡사하였다 그래서 적군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우리 군사도 싸움에 정신이 팔려 순신이 죽은 줄을 모르고 완이 순신인 줄만 알고 있었다.
 
244
낮이나 되어 적은 오십여 척 적선을 더 잃고 사오십척이 혈로를 얻어 달아나고 말았다. 만일 명군이 힘써 싸웠던들 하나도 남지 못하였을 것이다. 싸움이 다 끝난 뒤에 인은 순신의 배 곁으로 배를 끌고 오며,
 
245
『이 통제, 노야!』
 
246
하고 큰 소리로 불렀다. 그는 순신이 자기를 죽을 곳에서 구원해 준 것이 감격하여 감사하러 온 것이었다 .이 때에야 완이 통곡하며,
 
247
『숙부는 돌아가셨소』
 
248
하고 대답하였다. 인은 완의 말을 듣더니 교의에서 몸을 일으켜 엎드려 지기를 세 번이나 하며,
 
249
『나를 살리려다가 노야가 죽었고나!』
 
250
하고 가슴을 치며 통곡하였다.
 
251
완과 인의 통곡하는 소리에 비로소 조선군이나 명군이 순신의 죽음을 알고 일시에 통곡하여 해상에 곡성이 진동하였다.
 
252
인 이하 명군의 제장. 조선 제장은 주먹으로 눈물을 씻으며 순신의 시체가 누운 장중으로 들어 갔다.
 
253
순신의 낯빛은 하얗고 눈을 뜬 대로 있었다. 순신이 누운 자리에는 피가 흥건하게 고여 있었다. 순신의 몸에 있던 피는 이 마지막 전장에 한 방울도 아니 남기고 다 쏟아진 모양이다.
 
254
완은 순신의 피 위에 꿇어 앉아,
 
255
『작은 아버지!』
 
256
하고 통곡하며 손을 들어 순신의 눈을 감겼다. 완의 손이 내려쓸기 세 만에 순신은 자는 듯이 눈을 감았다. 순신의 유해는 고금도 본영으로 돌아 갔다가 아산 선영에 안장하였다. 순신의 상여가 지날 때에 백성들은 길을 막고 통곡하였다. 왕도 어려운 한문으로 제문을 지어 조상하고 우의정, 선무 공신 일들을 책하였다. 원 균(元均)은 삼등이었고, 권 율(權慄)이 이등이었다.
 
257
그러나 그까짓 것이 무엇이 그리 긴한 것이랴. 오직 그가 사랑하던 동포의 자손들이 사당을 짓고 춘추 제향을 지내었다. 그때에 적을 보면 달아나거나 적에게 항복을 지내었다. 그때에 적을 보면 달아나거나 적에게 항복한 무리들이 다 정권을 잡아 삼백년 호화로운 꿈을 꾸는 동안에 조선의산에는 나무 한 포기 없어지고 강에는 물이 마르고 백성들은 어리석고 가난해졌다.
 
258
그가 돌아 간지 삼백 삼십 사년 사월 이일에 조선 오백년에 처음이요, 나중인 큰 사람 이 순신(충무공이란 말을 나는 싫어한다. 그것은 왕과 그 밑에 썩은 무리들이 준 것이기 때문에)의 슬픈 일생을 그리는 붓을 놓는다.
 
 
259
-(끝)-
【원문】죽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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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
  # 이순신 [제목]
 
  이광수(李光洙) [저자]
 
  동아 일보(東亞日報) [출처]
 
  1931년 [발표]
 
  소설(小說)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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