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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신 ◈
◇ 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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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6월~
이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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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순신
 
2
8. 出(  )
 
 
 

1

 
4
순신은 미리 예비하였던 술과 고기를 올리라 하여, 손수 잔을 들어 제장을 이받았다. 처음에는 나아가기를 원치 아니하던 장수들도 모두 감격하여 나아가 죽기로써 싸우기를 맹세하였다.
 
5
오월 초하룻날 경오. 병선이 전양(앞바다)에 모였다. 이날 날이 흐리나 비는 오지 아니하고 남풍이 대단히 불었다. 순신은 진해루(鎭海樓)에 올라 방답 첨사(防踏僉使) 이 순신(李純信), 홍양 현감(洪陽縣監) 배 흥립(裵興立), 녹도 만호(鹿島萬戶) 정 운(鄭運)을 불러 군사를 의논하였다. 순신은 그날 일기에 이 사람들 이름을 쓰고,
 
6
『(   .    ) (다 분격하여 몸을 생각지 아니하니, 가위 의사로다.) 』
 
7
하고 썼다. 오월 이일 신미. 날이 맑았다. 군관(軍官) 송 한련(宋漢璉)이 남해(南海)를 염탐하고 다녀 와서 그 정형을 아뢰었다. 그날 일기에 이렇게 순신은 적었다.
 
8
『(   .   .   .   .   .   .   .     .   .   .   .   .) (송 한련이 남해로서 돌아와 이르기를, 남해원과 메주목이 첨사와 상줏개, 굽은개, 평산개 등을 지키던 관원들이 적병 온다는 소문만 들으면 문득 도망하여 그 군기 등물이 다 흩어져 남음이 없다고 하니 놀랍구나.) 』
 
9
하고 또 그날 일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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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   .   .   . ) (낮에 배를 타고 바다에 나라가 진치고 제장으로 더불어 약속 명령이라는 뜻 하였다. 다 줄겁게 나아가려는 뜻을 두건마는 낙안이 피하려는 뜻이 있는 듯하니 가탄이다. 그러나 군법이 있거니, 피하련들 제 어찌 피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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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적었다. 낙안이란 것은 군수 신 호(申浩)를 가리킨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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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때에 방답진, 첩입진(疊入鎭) 배 세 척이 들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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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초삼일 임신. 아침에 가는비 오다. 중위장 방답 첨사 이 순신을 불러, 내일 새벽에 떠나기로 약속하였다. 이날에 여도 수군(呂島水軍) 황 옥천(黃玉千)이가 도망하여 집에 가 숨은 것을 잡아다가 목을 잘라 굴강에 효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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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사일 이른 새벽에 이 순신은 전라 좌도 수군을 거느리고 좌수영을 떠났다. 이날 날은 맑고 바람은 잔잔한 서남풍이었다. 동천이 불그레할 때에 일성 방포를 군호로 대소 팔십 육 척의 배가 일제히 돛을 달고 뱃머리를 동으로 향하여 남해 바다에 나섰다. 수군의 부서는 어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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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의 수로를 잘 알고 또 충성 있고 담력 있는 광양현감(光陽縣監) 어 영담(魚泳潭)으로 선봉장을 삼고 중위장 순천 부사 권 준이 전라 관찰사 이 광(李珖)의 부름으로 전주로 가버리매, 방답 첨사(防踏僉使) 이 순신(李純信)과 가리포(加理浦僉使) 구 사직(具思稷)으로 중위장(中渭將)을 삼고, 낙안 군수(樂安郡守) 신 호(申浩)로 좌부장(左部將)을 삼고, 보성 군수(寶城郡守) 김 득광(金得光)으로 우부장(右部將)을 삼고, 녹도 만호 정 운으로 후부장(後部將)을 삼고, 흥양 현감(興陽縣監)배 흥립(裵興立)으로 전부장을 삼고, 사도 첨사(蛇渡僉使)김 완(金浣)으로 우척후장(右斥候蔣)을 삼고, 여도 인가 아닌가를 확실히 알아 보게 하였다. 원 균은 이 순신의 앞에 이르매 목을 놓아 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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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인은 만사 무석한 죄인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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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이 순신이 온 것을 백 번 사례하였다. 순신이 원 균을 위로하여 병선 한 척을 주어 타게 하고, 새로 군복과 평복 일습을 주어 위의를 갖추게 하였다. 원 균은 순신의 후의에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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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은 재생지은인이요. 재생지은인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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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수없이 사례하였다. 순신은 원 균에게 수효와 있는 곳과 접전할 절차를 물었으나, 원 균의 대답은 시원치 아니하였다. 대개 원균은 아직 눈으로 적선 구경을 해본 일도 없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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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서이 얼마나 되며 어디 많이 있는지 그것을 알 까닭이 없었다.
 
21
이날에 도망하였던 남해 현령(南海縣令) 기 효근(寄孝謹), 메주목 첨사(메주목僉使) 김 축(金軸) 등이 판옥선 한 척을 타고 오고, 사량 만호 이 여념(李汝拈), 소비포 권관(所非浦權管) 이 영남(李英男) 등이 각각 협선을 타고 오고, 영등포 만호(永登浦萬戶) 우 치적(禹致積)(이 영등포는 거제에 있는 것), 지세포 만호(地世浦萬戶) 한 백록(韓百祿), 옥포 만호(玉浦萬戶) 이 운룡(李雲龍) 등도 판옥선 두 척을 가지고 오고, 이 모양으로 이 순신의 함대가 왔다는 소문을 듣고, 모여 드는 장수들이 많았다. 이 순신은 조금도 이 도망한 장수들을 괄시하여 한산도(閑山島) 북쪽 노쿠리도를 지나 거제도(巨濟島) 송미포(松未浦) 앞바다에서 밤을 지내고 새벽에 일시에 배를 띄워 적선이 유박한다는 천성(天城), 가덕(加德)을 향하여 가는 길에 오시나 되어 옥포(玉浦) 앞바다에 이르러 척후장 사도 첨사(斥候獎蛇渡僉使) 김 완(金玩), 여도 권관(呂島權官) 김 인영(金仁英)의 척후선으로 부터 마황기(魔黃旗)를 들어 신기 보변(神機報變)함이 있었다. 앞에 적선이 보인다는 뜻이다.
 
 
 

2

 
23
순신은 앞서 가던 척후선으로 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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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선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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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보변을 듣더니, 곧 초요기(招搖旗)를 달기를 명하였다. 군사가 순신이 탄 장선에 초요기를 높이 다니 전후 좌우에 옹위하였던 제장이 모두 배를 저어 주장의 명령을 들으려고 장선 곁으로 모여 들었다. 제장은 무슨 무서운 큰일을 기다리는 듯한 눈으로 수사를 바라보았다. 경상 우도 수군에 속한 제장들도 사실상 이 순신의 절제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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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장이 장선에 다오르기를 기다려 순신은 왕께서 받은 칼과 편지에 숙배하기를 제장에게 명하고 그것이 끝나매,
 
27
『지금 적이 옥포에 있다 하니, 우리는 인제 나아가 싸우려니와, 충영을 발하는 곳이 두려울 것이 없으니, 만일 물러 가는 자는 군법으로 시행할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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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최후에 한층 소리를 높여,
 
29
『망동을 말고 고요하고 무겁기를 산과 같이 하오.』
 
30
하는 약속을 주었다. 제장은 엄숙하게 영을 듣고 일제히,
 
31
『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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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그리한다는 대답을 하였다. 약속이 끝난 뒤에 척후선이 앞을 서고 다음에 선봉이요, 그 다음에 중위요, 그 다음에 장선이여, 장선의 좌우에는 좌위와 우위요, 뒤에는 간후요, 이 모양으로 진형을 정제하여 찬 돚을 달고 노를 저어 위풍이 당당하게 옥포를 향하여 행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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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오월 칠일. 행진하기 한시가 못하여 미시 주에 옥포 앞에 다다르니 포구 선창에는 적의 병선 오십여 척이 바닷가에 매여 있고, 옥포의 시가에는 불을 놓아 연기가 창천하였다. 옥포 선창에 매인 큰 배는 사면에 장막을 둘렀는데, 장막에는 채색으로 그림을 그리고 무늬르 놓았고, 장막 가에는 대막대기를 축 늘여 세우고, 거기는 붉은 기와 인기를 달았으며, 기는 좁고 긴 것도 있고 넓고 짧은 것도 있으되, 다 무늬 있는 비단으로 만들어 바람결에 펄렁거려 사람의 눈을 현황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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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군들은 배를 내려서 촌려에 들어가 노략하다가 이편 함대가 오는 것을 보고 창황히 배에 올라 떠들며 노를 저어 바다 가운데로 나오지 아니하고 바닷가로 연하여 행서하여 나왔다. 그중에 선봉 여섯 척이 앞서서 빠져 나오는 것을 보고 순신은 북을 울려 따르기를 명하였으나, 좌척후장 여도 권관 김 인영(金仁英)과 우척후장 사도 첨사 김 완(金浣)이 겁을 내어 머뭇거리는 양을 보고, 간후장 녹도 만호 정 운(鄭運)이 분을 참지 못하여 칼을 빼어 들고 노를 재촉하여 앞서 나아갔다. 노를 젓는 군사가 잠간만 손을 멈추어도 정 운은 칼을 들어 독촉하니 배가 빠르기 살과 같아서 곧 도망하는 적선을 따라 잡아 활을 쏘고 화전을 놓아 싸우기를 시작하였다. 적선에서도 화살과 조총이 날아 왔다. 정 운의 배가 적선에게 포위를 당함을 보고 순신은 북을 울려 싸움을 재촉하니 다른 배들도 노를 저어 달려 나가서 싸움이 어울려졌다. 순신은 명하여 화전(불화살)을 쏘게 하니 그것이 적선의 돛을 맞혀서 순식간에 십여 척병선에 불이 일어 불길과 연기가 하늘을 찌르고 적병이 규호하는 소리와 총포 소리가 바다를 흔들었다. 적의 함대가 한 곳에 결집한 때를 타서 순신은 거북선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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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선이 이십개 노를 저으니 빠르기 나는 듯하고 칠십여 혈의 포혈로 대포를 놓고 입으로 불과 연기를 토하며 좌충 우돌하니 닥치는 대로 적선이 부서지거나 불이 붙었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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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양으로, 혹은 화살을 맞아 죽고 혹은 불에 타 죽고 혹은 물에 빠져 죽고, 마침내 지탱하지 못하여 더러는 배를 끌고 달아나고 더러는 물에 뛰어 들어 헤엄쳐 달아났다. 때는 신시가 되어 해가 거의 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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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싸움에 겁 많은 좌부장 낙안 군수 신 호(申浩)는 대선 한 척을 깨뜨리고 적장의 수급(모가지) 하나를 얻었는데, 그 배에 실린 검, 갑옷, 관복 등물로 보아서 이것은 장수의 것인 듯하였다. 이때 일본 함대의 장수는 등당 고호(騰堂高虎)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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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부장 보성 군수 김 독광(金瀆光)이 큰 배 한 척을 깨뜨리고 포로로 잡혀 갔던 조선 사람 하나를 사로잡고, 전부장 흥양 현감 배 흥립(裵興立)이 큰 배 두 척을 깨뜨리고, 중부장 광양 현감 어 영담이 중선 두 척과 소선 두 척을, 중위장 방답 첨사 이 순신(李純信)이 큰 배 한 척을, 처음에는 겁을 내이던 우척후장 사도 첨사 김 완(金完)이 대선 한 척을, 우부 기전 통장 진군관 보인(右部騎錢統將鎭軍官保人) 이 춘(李春)이 중선 한 척을, 유군장 발포가강 전라 좌수영 군관 훈련 봉사 나 대용(羅大用)이 대선 두 척을, 후부장 녹도 만호 정 운이 중선 한 척을, 좌부 기전 통장 순철 대장 전봉사(左部崎戰統蔣順天代蔣前奉事) 유 섬(劉蟾)이 대선 한 척을 깨뜨리고 사로잡혔던 계집아이 하나를 사로잡고, 간후장 전라 좌영 군관 급제 최 대성(崔大成)이 대선 한 척을, 참퇴장 군관 급제 배 응륙(裵應陸)이 대선 한 척을, 참퇴장 군관 이 언량(李彦良)이 대선 한 척을 깨뜨리고, 순신의 막하 군관 훈련 봉사 변 존서(卞存緖)와 전봉사 김 효성(金孝誠) 등이 합력하여 대선 한 척을, 경상도 제장이 적선 다섯 척을 깨뜨리고 잡혀갔던 조선 사람 세 사람을 사로잡았다. 도합 적선 이십 육 척을 깨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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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위에 타는 배는 해가 지도록 불길과 연기를 뿜었다. 살아 남은 적군은 산을 올라 수풀 속에 숨어서 죽기를 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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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신은 걸음 잘 걷고 활 잘 쏘는 군사를 놓아 도망하는 적을 잡으라 하였으나, 거제도에는 산이 험하고 초목이 무성한데다가 또 날이 저물었으므로 군사를 거두어 영등포 앞바다에 물러와 진을 치고 군졸로 하여금 나무를 하고 물을 기렁 밤을 지내려 할 즈음에 신시 말이되어 바다에 적군의 대서 네다섯 척이 지나간다는 척후장의 보변을 받았다. 정히 갑옷을 끄르고 쉬려 하던 차에 이보변을 받고 순신은 곧 제장에게 영하여 배를 저어 적선을 따르라고 하였다. 비록 옥포 싸움에 몸이 피곤하지마는 오늘 승전에 기운을 얻은 장졸들은 기운이 하늘에 닿아 함성을 지르며 배를 저어 황혼이 가까운 바다의 물결을 차고, 적선을 다 따랐다. 적선은 힘을 다하여 싸우면서 도망하여 웅천(熊川)땅 합포(合浦) 앞바다에 이르러서는 배를 버리고 물에 올라 도망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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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첨사 김 완(金浣)이 대선 한 척을 불사르고 방답첨사 이 순신(李純信)이 대선 한 척을, 광양 현감 어 영담(魚泳潭)이 대선 한 척을, 방답진에 귀양 사는 전첨사 이 응화(李應華)가 소선 한 척을, 전라 좌수영 군관 봉사 변 존서(卞存緖), 송 희립(宋希立), 김 효성(金孝誠), 이 설(李渫) 등이 합력하여 대선 한 척을 깨뜨려 불사르니 황혼의 산과 바다에 화광이 충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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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선이 깨어졌다느 소문을 듣고 뭇 백성들과 배 탄 사람들이 모여 와서 양식과 어물과 간장과 채소 등속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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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신은 싸운 자리에서 밤을 지나는 것이 위태하다 하여 밤으로 배를 저어 창원(昌原) 땅 남포(藍浦) 앞바다에 진을 치고 순신이 친히 술을 부어 장졸을 위로하고 기쁨소게 밤을 지내었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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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은 곧 오월 초파일이다. 날은 맑고 덥다. 아침밥도 먹기 전에 진해 지고리도(鎭海地古理渡)에 적의 병선이 우진하고 있다는 보변이 왔다. 순신은 곧 영을 내려 배를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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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신은 함대를 둘로 나누어 안과 밖으로 협공할 계교를 세웠다. 돼지섬(돼지섬)을 지나 고성(固珹) 지경인 붉은돌(붉은돌)에 이르니 적선 십 삼 척이 바다목에 한 줄로 늘어서고 군사들은 더러는 포구와 동네에 들어 재물을 노략하고 집을 불사르러 가고 배에는 지키는 군사만 얼마 남아 있었다.
 
48
그러므로 그리 힘들이지 아니하고 그 배르 다 잡아 불살라 버릴 수가 있었다. 낙안 군수의 부하에 있는 순천대장(順天代將) 유 섬(兪贍) 이 대선 한 척을, 동부 통장 군거 급제 박 영남, 보인 김 봉수 등이 합력하여 대선한 척을, 보성 군수가 대선 한 척을, 방답 첨사가 대선 한 척을, 사도 첨사가 대선 한 척을, 녹도 만호가 대선한 척을, 이 순신의 대솔군관 이 설, 송 희립 등이 합력하여 대선 두 척을, 군관 정 노위(定虜偉), 이 봉수(李鳳壽)가 대선 한 척을, 군관 별시위 송 한련(宋漢蓮)이 중선 한 척을 화약으로 깨뜨려 불살라 버린 뒤에야 장졸로 하여금 조반을 먹게 하였다. 전군이 아침밥을 먹고 휴게하는 중에 웬 사람 하나가 등에 어린아이 하나를 업고 산꼭대기로 부터 울며 내려와 주사를 향하여 하소할 것이 있는 양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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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신은 군사를 시켜 종선을 보내어 그 사람을 태워 오라고 하였다. 그 사람은 순신의 앞에 와서 더욱 슬피 울었다. 아비가 우는 양을 보고 등에 업힌 어린것도 목을 놓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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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성명이 무어니?』
 
51
하고 군관이 묻는 말에 그 사람은,
 
52
『소인은 살기는 적진포(赤珍浦) 근처이옵고, 본시는 향화인이옵고, 성명이온즉 이 신동(李信同)이라고 하오.』
 
53
하고 대답한다. 그제는 순신이 친히,
 
54
『그래 무슨 일로 왔어?』
 
55
하고 물은즉, 신동은,
 
56
『에. 소인이 여쭐 말씀이 있어 왔소.』
 
57
하고 소매로 눈물을 씻고 나서,
 
58
『적병이 들어온 이후로 경상도는 무인지경이 되었소. 수령 방백이 다 달아난다는 소문을 들었어도 싸운다는 소문은 못 들었는 데 아까 뱃사람에게 듣사온즉 사또께서 주사를 거느리고 오시와 어제 거제도에서 적선 백 척을 함몰하시고 또 돼지섬에서도 부수히 함몰시키시고 또 여기 적진포에 왔던 배도 저렇게 다 함몰을 하시니 소인이 오늘까지 목숨을 부지하옵다가 우리 군사가 숭전하는 양을 보오니 이런 기쁜 일이 어디 있소? 소인은 금시에 죽어도 여한이 없소. 대체 어떠하신 양반이 이처럼 갸륵하신고 하고, 한번 뵈옵고 이런 하소나 할 양으로 사또께 왔소.』
 
59
하고, 무수히 순신을 향하여 절하였다. 그의 모양이 하도 지성 즉달해서 보는 사람들이 다 감동하였다.
 
60
『적병이 그동안 어찌하였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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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순신은 그 백성의 찬양하는 말을 막고, 적병의 형세를 물었다.
 
62
『예. 젛사오되, 적병이 어제 이 포구에 들어 왔소. 어제 이포구에 들어 와서 여염으로 돌아 다니면서 재물과 우마를 약탈하여다가 지금 사또께서 불살라 버리신 저희들의 배에다 갈라 싣고 어젯밤 초경에 배를 끌어 내어 띄우고 소를 잡고 술을 먹고 소리를 하고 저를 불고 놀기를 밤새도록 하였소. 가만히 그 곡조를 들으니까, 개시 우리 나라 음률입데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반은 배를 지키고, 반음 물에 내려서 고성으로 갔소.』
 
63
하였다.
 
 
 

5

 
65
수사뿐 아니라, 이 신동의 말을 듣는 사람은 다 비감하지 않을 이 없다.
 
66
『네가 여기서 나가다가는 적병에게 붙들릴 염려가 있으니, 병선을 타고 같이 가는 게 어떠하냐?』
 
67
하고, 순신이 이 신동에게 말하였다. 신동은 이마를 조아리며,
 
68
『사또 은혜는 백골 난망이오나, 늙은 어미와 처자가 간곳을 모르오니 소인 혼자 편안히 사또를 따라 갈 수가 있소? 소인은 가서 어미와 처자를 찾아 보아야 하겠소. 벌써 죽었는지도 알 수 없사오나, 죽었으면 신체라도 찾아서 묻어야 하겠소.』
 
69
하고, 어린 것을 업고 배에서 내려 갔다. 이것을 본 장졸들은 더욱 가슴이 아파 서로 격려하여 동심 육력할 것을 맹약하였다.
 
70
순신은 곧 주사를 끌고 천성(天城)·가덕(加德)·부산(釜山) 등지로 가서 적의 소굴을 복멸할 생각이 간절하였으나 아직 전하 우수사 이 억기(李億祺)의 함대가 오지 아니하였은즉 미약한 힘을 가지고 혼자 적의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위태한 일이라 하여 거제 앞바다에서 이억기의 주사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에 문득 본영(전라도 좌수영)의 탐보선이 달려의서 전라도사 최 철견(全羅都事崔鐵堅)으로 부터 이 순신에게 온 편지를 전하였다. 그 편지에는 사월 이십 구일에 왕이 서울을 버리고 관서로 피난하였다는 것을 보고 순신은 한손에 최 도사의 편지를 쥐인 채 엎더져 통곡하였다.
 
71
모든 장졸들도 이 소문을 듣고는 북향하여 통곡하기를 마지 아니하였다.
 
72
최 도사의 편지 사연이 심히 간단하여 서울이 적병의 손에 들었는지 아니 들었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왕이 서울을 버리고 관서로 달아났다는 말 한 마디는 모든 장졸에게,
 
73
『인제는 다 망했구나. 』
 
74
하는 벼락 같은 격분을 준 것이다. 순신은 심히 마음이 비창하여 전군에 영을 내려 본영으로 돌아 가게 하였다. 순신의 생각에는 우선 본영에 돌아가 서울 소식과 왕의 소식을 자세히 알아 보고, 혹은 다시 전라 좌우도 수군을 합하여 천성(天城)·가덕(加德)·부산(附酸)의 적의 수군을 소탕할 계획을 세우든지, 그렇지 아니하면 주사를 끌고 평안도로 가서 왕을 호위할까? 좌우간에 결정 하자는 것이었다.
 
75
이때로 말하면, 경상도와 경성 간에는 세 길이 다 적군에 막혀서 소식을 통할 수가 없으니, 경성서나 이북의 소식을 알자면 전라도로 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순신에게는 또 한 가지 근심이 있었으니, 그것은 적병이 육로로 전라도를 침범하지 아니할까 함이었다. 적병이 육로로 전라도를 침범하려면 진주(晋州)를 지나서 섬진강(蟾津江)을 건너는 길과 충청도르 거쳐서 전주(全州)로 들어오는 두 길이 있다. 만일 진주와 전주가 무너지지 아니한다면 육로는 염려가 되지 아니하니, 그러한 경우에는 순신 자기는 주사로 물길을 막을 자신은 있었다. 그러니 진주가 과연 지켜질까, 순신은 그것을 염려하였다.
 
76
오월 구일 오시에 순신은 주사를 끌고 무사히 본영에 돌아왔다. 돌아와서 왕이 무사하다는 소문을 듣고 적이 마음을 놓고 병선과 병기를 준비하며 군사를 조련하기로 일을 삼았다.
 
77
순신은 이번 옥포 기타의 싸움에 적선 사십여 척을 깨뜨리던 전말과, 주사가 지나 가는 곳마다 어떻게 백성들의 형편이 참혹이 참혹하더라는 것이며, 이 의지할 곳 없는 백성들이 우리 주사가 오는 것을 보고 어떻게 기뻐 뛰며 반기던 것이며, 그들은 다 배에 실어 안전한 곳으로 옮겨 오지 못한 것이 유감이란 것이며, 적선 사십여 척에서 몰수한 물건이 다섯 창고에 넣고도 남은 말이며, 그 물건들이 어떻게 사치하고 흉악하다는 사정을 세세히 왕께 계장하였다.
 
 
 

6

 
79
옥포의 싸움에 적선 사십여 척을 깨뜨리고 적군이 죽은 자가 부지 기수로되 이편 군사에는 죽은 사람은 하나도 없고 오직 순천부 정병(順天府正兵) 이 선지(李先枝)가 왼편 팔에 살을 맞았을 뿐이었다. 거북선과 활과 화전의 위력에 적군의 조총은 아무 힘을 쓰지 못하였다. 그렇지마는 적병과의 전쟁에는 군사 한 사람 밖에 상한 이가 없었지마는, 전쟁이 끝난 뒤에 노획품을 나눌때에 원 균(元均)의 군사는 순신의 군사 두 사람을 활로 쏘아 맞혔다. 그래도 원 균은 이것을 금하지 아니하였다. 원 균으로 말하자면, 자기가 탄 전선은 순신의 준 바요, 부하에 오직 작은 배 두 척이 있어 전쟁 중에는 적병의 철환을 피하여 항상 뒤로 돌았다. 그러다가 전리품을 빼앗을 때에는 가장 용감하게 제 편 군사를 쏜 것이었다.
 
80
적선에서 빼앗은 물품 중에 쌀 삼백 석은 여러 배에 주린 군사들의 양미로 골고루 나누어 주고, 의복, 필육 등물도 군사들에게 나누어 주어 군사들의 싸우고 싶은 뜻을 돋구게 하고, 붉은 철갑 검은 철갑이며, 각색 새투구며, 입을 가리우는 물건이며, 붙이는 수염이며, 철과대, 금관, 금우, 금삽, 우의, 새짓비, 소라 등 사치하고 흉물스러운 것과, 큰 쇠못이며 동아줄 등물은 모두 단단히 감봉하여 두고 그중에 무겁지 아니한 물건을 첩보(이겼다는 기별) 가지고 가는 편에 왕께 보내었다.
 
81
이번 싸움에 도로 찾은 포로 중에 순천 대장(順天大將) 유 섬(兪殲)이가 사로잡은 계집애 하나는 나이 겨우 사오세이어서 성명과 거주를 물어도 대답할 줄 몰랐으나, 보성 군수 김 득광(金得光)이 사로잡은 계집아이 라나는 나잇살이나 먹은 듯한데 머리를 끊어 일본 사람 모양으로 차렸다. 순신은 이 계집아이를 불러 문초하였다.
 
82
『네 어디 사는 아이니?』
 
83
『동래(東萊) 동면(東面) 매바위(寐바위) 사오.』
 
84
『성명은 무에냐?』
 
85
『윤 백련(尹百蓮)이오.』
 
86
『나이는 몇 살이고?』
 
87
『열 네 살이요.』
 
88
『어느 달 어느 날 어디서 적병에게 붙들렸어?』
 
89
『소인의 아비는 다대포(多大浦) 수군이요, 곤절 싸움에 죽었는지 살았는지 생사를 모르오.』
 
90
『네 어미는?』
 
91
『소인의 어미는 양녀 모론(양녀모론)이요. 지금은 죽었소.』
 
92
『조부모도 없어?』
 
93
『몰라요.』
 
94
『그러면 뉘 집에 붙여 있었어?』
 
95
『기장(機張) 사는 신선(新選) 김 진명(金晋明)의 집에 붙여 살았소.』
 
96
『그런데 어떻게 적병에게 붙들렸어?』
 
97
『지난 사월에요.』
 
98
『사월 어느 날?』
 
99
『날은 모르겠소. 지난 사월에 왜병이 부산포(부산포)에 왔다고, 호수 진명(戶首進明)이가 군령을 받아 싸우러 나갈 적에 소인을 군장(軍粧)을 지워서 데리고 부산진으로 가라고 합데다. 그래 가노라니까, 말날이(말날이) 고개에 가니까 피난군이 몰려오면서 부산은 벌써 함몰이 되었다고 그래요, 그러니까 피난군이 몰려 오면서 부산은 벌써 함몰이 되었다고 그래요, 그러니까 주인(진명)이 소인을 데리고 바로 기장 고을(機張고을) 로 갔다가 거기 진치고 있던 군졸이 달아날 때에 주인이 소인을 데리고 그 집으로 돌아와서 하룻밤을 지냈소, 그러노라니까 소인의 늙은 아비와 친척들이 피난해 오는 것을 우연히 만났소, 그래서는 기장 고을 운봉산(雲蜂山)에 팔구일이나 숨어 있다가 적병이 얼마인지 모르게 밀려와서 소인과 소인의 오라비 복룡(下기) 이가 붙들려서 해가 다 저문 때문에 부산으로 잡혀 갔소, 부산성에서 하룻밤을 자고는 오라비 복룡이는 부지 거처가 도고 소인만 배 밑에 갇혀 있었소.』
 
 
 

7

 
101
적병에게 사로잡혔다가 보성 군수에게 다시 사로잡힌 십사세 여아 윤 백련은 다시 말을 이어,
 
102
『그렇게 소인을 배 창널 밑에 가두아 임의로 나가지 못하게 하고는, 어느 날인지 병선 삼십여 척이 부산을 떠나서 김해(金海)로 가서, 김해서 반 남아 들에 노략질하러 가고, 오륙일이나 있다가 이 날 초엿샛날 사시에 일시에 배를 띄어서 밤개(밤개) 로 가서 하룻밤을 자고 그 이튿날 새벽에 거기를 떠나서 옥포 앞바다에 가서 섰다가 그날 싸움이 났어요, 배에 조선 철환과 장편전이 비는데, 그러니깐 왜인들이 무에라고 지전대고 떠들고 쿵쿵거리더니만 모두 물에 뛰어 들어서 헤엄쳐서 산으로 달아나버렸는데, 소인은 배 창널 밑에 있어서 그 밖에는 모르와요.』
 
103
하고 말을 끊었다. 순신은 백련의 말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 이런 정경을 당하는 이가 백련 하나만이 아닌 것을 생각할 때에, 순신의 가슴은 끓었다. 순신은 좌우를 돌아 보며,
 
104
『이 아이 말을 듣고 다들 어찌 생각하오?』
 
105
하고 물었다.
 
106
『죽기로써 싸우려 하오.』
 
107
하고, 나머지 장수들이 정 운의 말을 따랐다.
 
108
『제공의 충성이 이만하니 걱정 없소. 맹세코 영남 해상의 적병을 소탕합시다』
 
109
하고, 순신은 제장에게 다시 나아가 싸우자는 뜻을 암시하였다. 그리고 윤 백련 이하 적에게 잡혔던 아이들은 춘천, 보성 등 각관에 맡겨 잘 거두어 기르하고 분부하였다. 순신이 옥포 승전을 왕에게 보고한 장계 중에는 이러한 구절이 있었다.
 
110
『죽기도 많이 하고 노략도 많이 당하여, 일반 창생이 살아 남음이 없도소이다. 이제 바닷가로 돌아다녀 보매 지나는 바 산골짜기마다 피난하는 백성이 없는 곳이 없사옵고, 한번 신 둥의 배만 바라보오면 머리 땋은 아이들이나 백발된 늙은이들이나, 업고 안고 서로 끌고 울고 부르짖고 따라옴이 마치 살아 날 길이나 찾은 듯 하오며, 어떤 이는 적병의 종적을 가리키는 이도 있어 그 참측함이 차마 두고 오기 어렵고, 곧 배에 태워 데리고 가고도 싶사옵건마는 원래 그러한 백성이 수다하올 뿐더러, 또 싸우러 가는 배에 사람을 많이 실었다가는 배 걸음이 빠르지 못할 염려도 있사옵기로 돌아 오는 길이 데려 갈 터이니, 각각 깊이 숨어 적병의 눈에 띄어 사로잡히지 말도록 하라고 개유하고 적병을 따라 멀리 갔나이다. 그리 하옵다가 문득 서쪽으로 행행하신단 놀라운 기별을 듣사옵고 급히 돌아왔사오니, 애련하는 정이 오히려 잊히지 아니하나이다. 』
 
111
순신은 가덕(加德)에서 노량(露梁)에 이르는 동안에 있는 창원(昌原), 고성(固城), 진주(晋州) 등 여러 고을의 바다로 향한 산골짜기에 아직 다 익지 못한 보리 이삭을 훑어 먹으며 부러 휴유하고 난을 피하고 있는 가련한 백성들의 모양을 눈에서 떼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싸움을 이기고 돌아 오는 길에는 안전한 곳으로 실어다 주마고 하고, 그대로 못한 것이 맘에 걸렸다. 그러나 일개 수사로는 그러한 백성들을 구호할 아무 힘이 없으므로, 그는 전라 감사 이 광(李珖)에게 이첩하여 양식을 보내어 이 백성들이 굶어 죽지 말게 하기를 청하였다. 그리고 순신은 자기의 관할 하에 있는 돌산도(突山島)·걱금섬 등지에 백성을 옮겨 농업과 어업고 목축과 공업을 진흥할 계획을 세웠다.
【원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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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순신 [제목]
 
  이광수(李光洙) [저자]
 
  동아 일보(東亞日報) [출처]
 
  1931년 [발표]
 
  소설(小說)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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