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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신 ◈
◇ 제목모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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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6월~
이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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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순신
 
2
17. (      )
 
 
 

1

 
4
전라도뿐 아니라 충청도로 직산(稷山)까지 적의 선봉대가 올라 가고 진천(鎭川), 천안(天安), 전의(全懿) 까지 점령되어 임진년에도 점령 아니 되었던 지방까지 다 점령되고 말았다.
 
5
원래 임진년에 일본군이 충청도의 바다에 면한 부분과 전라 좌수도를 손에 젛지 못한 것은 이 순신의 수군을 두려워한 까닭이었다.
 
6
그런데 이제는 이 순신이 없고 또 조선의 수군이 전멸하였으니 일본군으로는 도무지 거칠 것도, 꺼릴 것도 없었다. 한산도를 점령한 일본 수군이 전라도의 바다로 들었다. 한산도를 점령한 일본 수군이 전라도의 바다로 들기만하면 경성 이서로 의주까지 한 달이 못하여 점령할 형세였다. 비록 명나라 군사가 있다고 하나 그 정예라고 할 만한 양원(陽元)의 요동군이 남원에서 참패를 하였으니, 그것은 일본군에게는 도무지 무서울 것이 없었다.
 
7
한산도와 전라도를 손에 넣은 일본군은 수군의 힘을 모아 전라도 바다를 통과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전라도 바다는 아직 일본 수군이 들어가 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수로를 잘 모르고 또 전라도의 좌수영과 우수영에 얼마나한 병력이 있고 방어 준비가 있는 지도 잘 몰랐다. 이 순신은 반드시 용의 주도하게 무슨 준비를 하여 두었으리라고 일본군이 생각하지 아니 할수 없었던 것이다. 그 사정만 분명히 알면, 일본 수군은 파죽의 세로 전라도 바다를 지나 경강과 황평, 양서를 석권할 것이다. 사실상 그러한 경륜을 가지고 있었다. 칠천도 대패전의 경보가 조정에 올라 온 것은 싸움이 있는 지 닷새 뒤인 칠월 이십 일일 이었다.
 
8
때마침 왕은 종묘를 수리하고 평시보다 늦게 천신하는 예식을 행할 때이었다.
 
9
왕은 친히 이 놀라운 경보를 받고는 실색하여 손에 들었던 술잔을 떨어뜨렸다.
 
10
좌우 제신들도 모두 낯이 흙빛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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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신이 통제사로 있는 동안 수군이란 것을 그리 중요하게 보지 아니하였으나, 그 수군이 전멸하였다는 말을 들을 때에는 왕이나 모든 대관들의 생각에는 직각적으로 일본 병선이 경강으로 들이닫는 모양이 보였다. 그들은 전신에 소름이 끼치는 것을 깨달았다.
 
12
비록 그 무리들에게 (다라고는 못하겠지마는) 국가나 인민을 생각하고 하는 근심은 바라지 못하겠마지는, 가장 그 무리의 가슴을 찌르는 것은 자기네의 영화와 사랑하는 가족의 일이었다. 그들의 머리에 「또 피난을 가야 하겠구나」하는 생각이 약속한 듯이 일제히 돌았다.
 
13
왕은 환궁하는 길로 비변사(備邊司) 제신을 불러 대책을 물었다. 그들은 다 이 순신을 탄핵하고 원 균을 거천 하던 무리들 일뿐더러, 무슨 대책이 있었을 리가 없다. 그들의 능사는 오직 저는 꼼짝 아니하고 가만히 있다가 남이 무슨 일을 할 때에 주둥이를 놀러 탄핵을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14
왕의 물음을 대관들은 잠자하였다. 오직 벌벌 떨뿐이었다. 왕이 성낼 것이 무서워서, 일본군이 다시 서울을 점령할 것이 무서워서,
 
15
『또 대가가 평양으로 가시는 수 밖에 없을까 하오 』
 
16
하고 어떤 원로가 피난하기를 청하였다.
 
17
『상국(上國)에 시급히 구원을 청하는 수 밖에 없을까 하오』
 
18
하고 또 한 대시이 아뢰었다. 모두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생각이었다.
 
19
이런 말을 먼저 내는 것도 그 무리중 에서는 가장 용기 있는 자였다. 다른 무리들은 속으로 생각은 할지언정 저는 말할 용기가 없고 남이 말해 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럴 뿐더러, 남이 먼저 말을 하더라도 솔선해서 찬성할 용기들도 없었다.
 
 
 

2

 
21
아무리 오래 앉았더라도 「피난」과「청병」이외에 다른계책이 나오지를 아니하였다.
 
22
『싸우자던 사람들은 다 어찌 되었노?』
 
23
하고 황망한 중에도 왕은 한번 풍자하는 말을 하였다. 병조판서 이 항복(李恒福)은 직책상 가장 구체적인 직언을 아니할 수 없었다.
 
24
『방금 지계로 보옵건댄 이 순신으로 다시 통제사를 하는 수 밖에 없는가 하오』
 
25
하고, 이 항복은 구체적 대책을 아뢰었다. 경림군(慶林君) 김 명원(金命元)이 뒤를 이어,
 
26
『병조 판서의 말이 옳은가 하오. 다시 이 순신으로 통제사를 삼는 길 밖에 없는가 하오.』
 
27
하고, 이 항복의 말에 찬성하는 뜻을 표하였다.
 
28
아무도 감히 여기 반대하는 자는 없었다. 속으로 다하는 말도 하기 싫었다. 그 무리들은 잠잠하였다. 이리해서 이 순신은 다시 충청, 전라, 경상 삼도 수군 통제사(忠淸全羅慶尙三道水軍統制使)가 되었다. 이보다 먼저 이 순신은 초계(草계)에서 김장할 무밭(죄인으로) 직무를 갈고 배추씨를 뿌리고 채마에 새와 개를 보고 있을 때에 칠년도 대패전의 소식을 이틀 후인 십 팔일에 들었다. 새벽에 채마를 돌아 보러 나가려 할 때 이 덕필(李德弼), 변 홍달(卞弘達) 두 사람이 한산도로 부터 와서 순신에게 칠년도 패전하던 이야기며, 원 균(元均)이가 달아난 이야기며, 경상 우수사 배 설(裵楔)만이 한산도로 돌아와서 그곳에 있는 군량과 군기와 가옥을 다 불살라 버리고 서쪽으로 달아난 것이며, 전라 우수사 이 억기(李億祺), 충청수사 최 호(崔瑚) 등, 순신이 평소에 신임하던 장수들이 통곡하였다.
 
29
이윽고 도원수 권 율(權慄)이 고성으로 부터 돌아와서 순신을 불러 보고,
 
30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어찌하오? 모두 내 불찰이요.』
 
31
하고 심히 슬퍼하였다. 그가 자기의 불찰이란 것이 자기가 김 응서의 말을 믿고 순신을 죄가 되게 하였다는 뜻이다. 권 율은 순신에게 대하여 면목 없는 표정으로,
 
32
『이 일을 어찌하면 좋소?』
 
33
하고 순신의 의견을 물었다. 순신은,
 
34
『그러면 소인의 연해 지방을 한번 돌아보고 계책을 하고 선선하게 대답하였다. 권 원수는,
 
35
『그렇게 하시면 작히나 좋겠소. 도무지 내가 대감을 대할 낯이 없소.』
 
36
하였다. 원수는 처음으로 순신을 대감이라고 불렀다. 순신은 송 대립(宋大立), 유 황(柳滉), 윤 선각(尹先覺), 방 응원(方應元), 현 응진(玄應辰), 임 엽립(林葉立), 이 원룡(李元龍), 이 희남(李喜男), 홍 우공(洪禹功) 등 아홉 사람을 데리고 우선 삼가(三嘉)로 향하였다. 이 하홉 사람은 원수 밑에 있던 군관으로서 원수가 순신의 막하로 준 사람들이었다.
 
37
순신은 단성(丹城), 진주(晋州)를 지나 칠월 이십 일일에 곤양(昆陽)에 들러 오후에 노량(露梁)에 다다랐다. 거기는 한산도(閑山島)에서 순신의 부하로 있던 거제 현령(巨濟縣令) 안 위(安偉), 영등포 첨사(永登浦簽使) 조계종(趙繼宗) 등 십여 인이 한산도로 부터 와서 머물러 있다가 순신을 보고 통곡하고, 거제(巨濟), 고성(固城) 방면으로 부터 피난해 오던 백성들도 순신을 보고는 일변반갑고 일변 감개 무량하여 통곡하였다.
 
38
경상 수사 배 설(裵楔)은 순신을 피하여 보지 안이하고 우후(우후) 이 의득(李의득)이 와 보고 칠천도(漆川島)싸움에 관한 보고를 하였다. 이 의득은 칠천도 패전의 원인은 통제사 원 균(元均)이 먼저 도망한 까닭이라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39
이날 밤에 순신은 거제 배 위에서 안 위와 밤을 새워 이야기하였다. 그 이야기는 적군의 형세와 원 균의 패전한 이유에 관한 것이다.
 
40
순신은 비분한 생각에 한잠을 못 이루고 그 때문에 안질이 났다.
 
 
 

3

 
42
이튿날 수사 배 설(裵楔)이 순신을 찾아 왔다. 그 역시 원 균(元均)이 패전한 까닭을 말하였다.
 
43
순신이 정성(鼎城)에 이르러 군사를 점검할 때, 도원수가 보낸 군사는 빈 활을 메었을 뿐이요, 화살도 없고 말도 없었다. 순신은 이날 일기에『(가탄가탄)』이라고 썼다.
 
44
팔월 초삼일 아침에 선전관(宣傳官) 양 호(梁護)가 이 순신을 삼도 통제사를 하인다는 교유서를 가지고 왔다. 그 교서는 이러하였다.
 
45
 
 
 
 
 
 
 
 
 
46
              』
 
47
이 글을 번역하면,
 
48
「왕이 가라사대, 슬프다! 국가 의지로 믿는 것이 수군 뿐 이어늘, 하늘이 아직도 재화를 부족다 하시와, 적병이 다시 날뛰어 드디어 삼도 대군이 한 싸움에 다하였으니, 이 앞으로 바닷가 성읍을 뉘 있어 보호하며 한산도를 이미 잃었으니 적이 무엇을 꺼리리오, 위급한 일이 조석에 달렸도다.
 
49
지금에 할 일은 흩어진 군사와 배를 모으고 급히 요해처를 정하여 큰 수군영을 지음에 있을 뿐이니, 그리하면 도망한 무리도돌아 올 곳을 알 것이요, 날뛰는 적도 혹시 막을 수도 있으리로다.
 
50
이 책임을 맡을 만한 이는 위엄과 은혜와 재간이 전부터 내외에 신망을 받는이가 아니고 어찌 감당하리오, 그런데 경은 전번 뛰어 대장을 삼을 때에 벌써 명성이 드러났고 또 임진년 대승전에 공업이 다시 떨치어 변방군사가 장성과 같이 굳게 믿던 배라, 접때 경의 벼슬을 갈아 죄명을 쓰게 한 것은 사람의 생각이 잘못되어 그러함이로다. 그리하여 오늘의 패전의 욕을 당하니, 또 무슨 말을 하며, 또 무슨 말을 하랴.
 
51
이제 특히 거상 중에 불러 내이고 백의에서 뽑아 내어 겸 충청, 전라, 경상 등 삼도수군 통제사를 제수하노니, 경은 이 교서를 받는 즉시로 일변 있는 군사를 부르고 흩어진 이를 두루 찾아 해군을 조직하고 형승처를 점거하여 군성을 떨치게하라. 그러하면 흩어진 민심도 다시 안정될 것이요, 적도 우리에게 준비가 있음을 들으면,다시 제 마음대로 창궐하지 못할 것이니, 경아! 힘쓸지어다. 수사 이하로 다 절제하되, 만일 일에 임하여 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 있거든 다 군법으로 처단하라.
 
52
경이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잊고 진하며 퇴함에 시기를 잃지 아니함은 이미 시험한 배라. 내 어찌 감히 여러 부탁을 하리오.
 
53
아아! 육항은 두 번째 하상을 지켜 잘 제치의 도를 다하였고, 왕손은 죄적에서 나와 능히 소탕의 공을 이루었으니, 더욱 충의의 마음을 굳건히 하여 나라를 건지려는 내 소망을 맞추게 할지어다. 이런 전차로 이에 교시하노라. 마땅히 알아 할지어다. 』
 
 
 

4

 
55
순신은 교서를 받고 나라 일이 급하니, 일각을 지체할 수 없다 하여 즉일 발정하여 팥재(팥재)를 향하였다. 초경에 행보역(行步繹)에 이르러 말을 먹이고 밤비를 맞으면서 다시 행보역을 떠나 팥재에 다다랐을 때에는 훤하게 동이 텄다.
 
56
쌍계동(쌍계동)에 다다르니, 개천에는 물이 창일하고 뾰죽뾰죽한 돌부리가 많아서 건너기가 대단히 위태하여 물이 지기를 기다리자는 사람도 있었으나 순신은 건너기를 명하였다.
 
57
해가 저물어 구례현(求禮縣)에 이르니, 제전이 적연하여 무인지경과 같았다.
 
58
전에 들었던 북문 밖 주인집을 찾으니 주인은 산골로 피난하고 빈집뿐이었다. 손 인필(손인필) 두 사람이 밤에 이른 감을 가지고 찾아 왔다.
 
59
초사일에 곡성(곡성)에 이르니, 역시 관군은 달아나고 백성들은 피난하여 관사와 여염이 텅 비었다.
 
60
이튿날 옥과(옥과) 지경에 당도하니 피난하는 백성이 길에 찼다. 아이들을 업고 웃보퉁이를 지고 그 정경이 시로 참혹하였다. 피난민들은 이 수사님이 온단 말을 듣고 모두 길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순신이 오는 것을 보고 백성들은 일제히 소리를 내어 통곡하였다.
 
61
순신은 말에서 내려 백성들을 향하여, 피난을 가면 어디로 가느냐? 어디나 적병 없는 곳이 없으니 다 집에 있어서 일하고, 군사 되기를 원하는 자는 따르라고 하였다. 그 자리에서 장정 삽십여 명이 군사 되기를 자원하고 순신을 따랐다.
 
62
그리고 백성들이 이 통제사가 오셨으니 살았다 하고 다 집으로 돌아갔다.
 
63
순신이 옥과현에 들어가는 길에 이 기남(李奇男) 부자를 만났다. 이 기남은 일찍 순신의 신임을 받던 군관으로서 원 균(元均)에게 쫓겨 난 사람이었다. 기남의 아버지는 이 통제라는 말을 듣고 길바닥에 엎디어 순신에게 절하였다. 평소에 그 아들에게서 순신의 말을 많이 들은 것이었다.
 
64
이 순신이 읍에 들어 왔다는 말을 듣고도 원은 병이라 칭하고 나와 보지를 아니하였다. 순신은 군관을 보내어 현감을 잡아 오라 하였다. 그때에야 현감은 이 순신이통제사인 줄을 알고 황망히 순신의 여관에 와서 뜰에 엎디어 대죄하였다.
 
65
초팔일에 순천(順天) 지경에 드니, 병사 이 복남(李福男)이 달아날 준비를 하므로 부하 사졸이 거의 다 흩어졌다는 말을 들었다. 부유창(富有倉)에 다다르니, 병사 이 복남이가 벌써 영을 내려 불을 질럿 그 많은 군량마조가 재가 되고 말았다. 순신은 이 광경을 보고 분개함을 마지아니하였다.
 
66
광양 현감(光陽縣監) 구 덕령(具德齡), 나주 판관(羅州判官) 원 종의(元宗義)가 창저(倉底)에 있다가 순신이 온다는 말을 듣고 비둘기재(기재) 로 달아난 것을 순신이 전령하여 부르니 부득이하여 왔다. 순신은,
 
67
『너희가 국록을 먹는 관원이 되어서 나라에 일이 있으면 몸을 잊고 나서는 것이 도리어든, 내가 온다는 말을 듣고 달아나는 것은 무슨 버릇이냐!』
 
68
하고 엄책하였다.
 
69
구 덕령, 원 종의는 군법으로 처단될까 두려워 순신의 앞에 엎디어 사죄하고 목숨을 내어 놓고 순신을 따르기로 맹세하였다.
 
70
순천 부중에 들어가니 인적이 적연하다. 중 혜희(惠熙)가 와서 순신에게 뵈오니, 순신은 혜희에게 의장첩(義裝帖)을 주어 중을 모집하여 의병을 조직하라 하였다. 순천 성중에는 관사와 창고, 군기가 여전하였다. 병사가 이것을 처치하지 아니하고 달아난 것이었다. 순신은 군기를 내어 부하 각관에게 나눠 주었다. 이리해서 순신이 통제사 교지를 받고 진주 지경을 떠날 때에 겨우 부하라고 아홉 사람 밖에 없던 것이 순천에 이르러서 백명 가량의 무장한 군사를 얻게 된 것이었다.
 
 
 

5

 
72
팔월 구일에 이 순신은 순천을 떠나 낙안(樂安)에 다다랐다. 낙안에서는 순신이 온다는 말을 듣고 읍에서 오리나 되는 곳에 사오백명 백성이 나와 맞았다. 늙은이, 부인네, 아이들까지도 일찍부터 길에 나와서 아직 더운 볕에 땀을 흘리며, 우리 영웅 이 순신을 한번 보자고 순천 쪽을 바라보았다. 이 백성들 생각에는 순신이 통제사로 있는 동안 적병이 전라도를 범치 못하더니, 순신이 잠시 통제사를 그만두매 적병이 전라도에 편만하였으니 다시 전라도에서 적병을 물리쳐 줄 영웅은 이 순신 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73
저녁때가 되어 이 순신은 검소한 군복에 말을 타고 김 응서가 선물로 보낸 큰 칼을 찼다. 순신을 따르는 군사들도 순천 군기고에서 얻은 군복과 군기를 가졌다. 모두 활과 전통을 메고 더러는 칼을 차고 더러는 창을 들었다. 오랫동안 창고에 넣어 두고 돌아 보지 아니한 군복의 야청 물은 날고 다홍 소매동에는 얼룩이 보였고, 더러는 좀먹은 자리, 쥐가 쏜 자리가 있고 구김살이 여기저기 있었다. 그래도 군사들은 좋은 장수를 만난 것을 기뻐하는 듯이 기운차에 우쭐거리며 걸음을 걸었다.
 
74
『통제 대감 오신다!』
 
75
하고 군중에서 누가 외치는 소리가 들리자, 길 가에와 나무 그늘에 앉았던 백성들은,
 
76
『어머? 어디?』
 
77
하고 모두 일어서서 앞을 바라보았다. 이 순신의 길고 풍부한 수염이 눈에 보일 만한 때에는 백성들 중에는 느껴 우는 소리가 들렸다.
 
78
『저런 장한 양반을 그 간신 놈들이 모함을 했어.』
 
79
하고 중얼거리는 갓 쓴 노인도 있었다.
 
80
순신은 백성들의 앞에 와서 말을 내렸다. 맨 처음에 읍하고 섰는 노인의 앞에 서며 순신은,
 
81
『어찌들 다 이렇게 나왔소?』
 
82
하고 물었다.
 
83
『통제 대감께서 오신다니까. 아침부터 나와서 기다리오.』
 
84
하고 그 노인은 잠간 고개를 들어 순신을 바라보았다.
 
85
『군수(郡守)는 어디 갔소?』
 
86
하고 순신은 다시 물었다.
 
87
『예.......아뢰옵기 황송하오나 본관 사또는 어제 도망하였삽고 병사또(兵史道)께옵서는 적병이 임박하였으니, 창고를 다 불사르고 백성은 피난하라고 영을 내리시와서, 어젯밤 본관 사또는 창고와 관사를 불을 지르고 달아났아옵고, 그러다 보니 백성들이 누구를 믿고 거접을 하오리까? 그래서 다들 부로 휴유하고 피난을 가려 하옵다가, 관속이나 부민들은 벌써 도망하옵고 소인네와 가난한 백성들만 어찌할까나 하고 방황하옵던 차에 통제 사또께옵서 이 고을로 행차 계시다 하옵기로 인제는 살아났다 하고, 이렇게 아침부터 나와서 행차를 고대하고 있소. 사또께옵서는 아무 죄도 없으신데도 소인의 참소를 받으시와 옥중 고행을 하시옵고 또 대고를 당하시다오니 무에라고 여쭐 말씀이 없소.』
 
88
하고 소매로 눈물을 씻었다. 순신은 노인의 말을 듣고 감개 무량하였다. 노인의 아들인가 싶었다. 젊은 사람은 노인의 손짓하는 대로 두어 식기나 들 듯한 검은 질그릇 술병과 백지에 싸고 지푸라기로 묶은 봉지를 받들어 순신에게 드렸다.
 
89
『이것이 술이요, 사또께 드릴 것이 없어 변변치 못한 술과 안주를 가지고 왔소.』
 
90
하고 허리를 굽혔다.
 
 
 

6

 
92
순신이 노인의 술과 안주를 받는 것을 보고 백성들은 나도나도 하고 술과 안주와 삶은 닭과 산 닭과 마른 문어와 전복과 떡과 신, 버선, 간장, 이런 물건을 모두 순신에게 바치었다.
 
93
『까닭 없이 물건을 받을 수 없소.』
 
94
하고 순신이 사양하면 그들은 울며 강권하였다. 돈으로 치면 모두 몇 푼어치 안되는 것이지마는 그것은 백성들이 그들의 영웅을 대접하는 정성이었다.
 
95
부득이하여 순신은 그것을 다 받아 군사들에게 분배하고 난 뒤에,
 
96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고 싸우기를 원하는 이는 나서라!』고 하였다.
 
97
백성 주에는 백여 명이 나섰다. 그러나 그 중에는 늙은 이가 많아서 도저히 싸움에 견딜 수가 없었으므로 순신은 그중에서 장정 삼십여 명을 뽑아 내어 순천서 가지고 오던 군복을 입히고 활과 살통을 주었다. 군사로 뽑힌 장정들은 기뻐 뛰나, 못 뽑힌 늙은이들은 울며 자기네도 한몫 끼일 수 있음을 맹세하고 졸랐다.
 
98
『집에 있어서 백성들을 안도하게 하시오.』
 
99
하고 타일렀다.
 
100
순신의 낙안 읍내에 들어 갔을 때에는 읍내의 관사와 창고는 다 재가 도고 말았다. 순신이 오는 것을 보고 남아 있던 늙은 관속과 백성들은 모두 눈물을 뿌리며 나와 맞았다.
 
101
읍을 떠나 십리쯤 나가서 거기도 부로들이 길에 늘어 서서 순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순신의 일행이 오매 길을 막고 음식과 의복 등속을 드리었다. 아무리 사양해도 울며 강권하였다.
 
102
순신은 여러 날 노독과 또 정신 감동으로 신기가 불편함을 깨달았다. 순신의 나이는 지금 오십 삼세다. 게다가 옥중 고초를 당하고 사모하는 어머니가 돌아가고, 심로하고 여러날 비를 맞으며 걸음을 걷고, 밤에는 빈대와 벼룩으로 잠을 못 자고, 또 상중이어서 고기를 아니 먹고 하기 때문에 건강이 매우 쇠약하여서 갑자기 사오세나 나이를 더 먹은 듯하였다. 더구나 노중에서 백성들이 통곡하고 맞는 양을 볼 때에 당장에서는 눈물이나 슬퍼하는 양을 보이지 아니하였으나, 밤에 혼자 있을 때에는 밤이 깊도록 혼자 울고 밖에 나아가 하늘을 우러러 보고는,
 
103
『하늘이여! 이 백성을 건지소서. 내 목숨을 받으시고 이 불쌍한 백성을 살리소서.』하고 빌었다.
 
104
순신은 원래 귀신을 믿지 아니하였으나 이때부터 하늘에 비는 습관이 생겼다. 그도 그럴 수 밖에 없었다. 통제사라고 이름뿐이요, 배 한 척이 있나? 군사가 있나? 군기가 있나? 군량이 있나? 그거지가 있나? 나라일이니 힘 및는 데까지, 목숨 있는 때까지 해야 된다 할 수 밖에 없다는 결심과 의무감으로 나서기는 하였으나, 앞길이 창망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순신의 앞길에는 오직 실패가 있을 뿐이요, 죽음이 있을 뿐이요, 그 뒤를 이러서는 조정의 모함과 욕설과 모욕이 있을 뿐이었다. 이것을 모르는 이 순신이 아니었다.
 
105
보성 안 도(安道)의 집에서 하룻밤을 지내는 동안에는 몸이 불편한 것도 아울러 순신은 밤새도록 고민하고 하늘에 빌었다.
 
106
낙안, 보성, 순천 등지에 수령에게 미리 경거 망동하지 말 것을 통제사의 이름으로 명열하였건마는, 그들 수령들은 병선도 없고 군사도 군기도 없는 통제사를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벼슬이라면 쓴 것 단 것도 모른다고 비웃었다.
 
107
십 일일에도 몸은 회복되지 아니하였다. 안 도의 집에 물 것이 많아서 양 산완의 집으로 옮았다. 송 희립(宋希立), 최 대성(崔大成) 등이 찾아왔다. 그들은 본래 순신의 신임받던 부하 맹장으로서 원 균(元均)에게 쫓음을 당한 사람들이었다.
 
108
십 팔일에 회령포(會寧浦)에 당도하니 수사 배 설(裵楔)이 수질이라 칭하고 나와 맞지아니할뿐더러, 이튿날 교서를 숙배할 때에도 참예하지 아니하므로 순신은 영리를 시켜 배 설을 잡아다가 그 오만 무례함을 꾸짖고 정강이 사십도를 때렸다.
 
 
 

7

 
110
순신이 회령포(會寧浦)로 온 데는 이유가 있었다. 순신은 순천, 낙안, 보성 등지로 다니며 배를 구하였으나 도저히 싸움에 쓸 만한 배가 없었다. 그래서 고민하던 중에 거제 발포(巨濟鉢浦) 첨사가 와서 배 설이 병선 십 이척을 기회를 기다린다는 말을 전하였다. 이 때문에 순신은 아픈 몸을 끌고 회령포로 내려 온 것이었다.
 
111
배 설은 칠월 십 육일에 칠천도 싸움에 원 균과 뜻이 맞지 아니하여 제 병선을 끌고 한산도로 도망하여 한산도의 관사와 창고를 불사르고는 바다로 떠다니며 도망할 기회를 찾다가 그믐께 노량진에서 이 순신을 만나 죽기로써 노량진을 지키라는 권고를 받았다. 노량진은 경상도 바다에서 전라도 바다로 넘어오는 목으로 군사상 가장 요긴한 곳이었다. 배 설은 즉석에서는 그러하기를 허락하였으나, 「        」(    ) (큰 집이 무너지는데 라고 자칭하고 순신이 다녀간 다음날에 곧 노량진을 떠나 전라도 바다로 들어 온 것이었다. 그러나 천만 의외에 회령포에서 이 순신을 만났다. 순신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설은 일변 두렵고 일변 두렵고 일변 귀찮았다. 첫째로 순신을 만나면 순신은 반드시 노량진을 지키지 아니한 것을 책망할 것 같고, 둘째로는 나아가 싸우기를 명할 것 같았다. 이것은 배 설에게는 꼭 싫은 일이었다.
 
112
배 설은 일본 수군이 몇 백척인지를 안다. 일본 수군이 어떻게 위세가 맹렬한 줄을 안다. 그 수군이 금명간에 전라도 바다로 밀어 넘어 올 줄을 안다. 이제 열 두척 밖에 없는 병선을 가지고 오백척인지 육백척인지 모를 적을 대항하자는 것을 곧 싸워 죽자는 말과 마찬가지인 것을 배 설은 잘 안다.
 
113
이래서 배 설은 순신을 보기를 꺼린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설마 순신이 영리를 보내어 자기를 잡아다가 장형을 할 줄까지는 몰랐었다.
 
114
배설은 매를 맞고 순신에게 불려 청상에 올라가 황송하여 엎디었다.
 
115
순신은 좌우를 시켜 배 설에게 시사외 군복을 입히게 하고,
 
116
『장수는 싸우는 것 밖에 일이 없소. 지금 적선이 녹도(鹿島)에 왔다 하니 일각을 지체할 수 없소. 다행히 열두 병선이 남았으니, 곧 나가 적을 막아야 하겠소. 행선 준비를 하오!』
 
117
하고 배 설에게 명령하였다. 배 설은 한참이나 주저하였다.
 
118
『소인도 싸울 뜻이 없는 것도 아니오마는 지금 적선은 노량진을 넘어선 것만 해도 사오백척이 될 것이요, 한산도 저쪽에 있는 적선을 합하면 천여 척이라 하오. 이제 열 두 척 병선을 가지고 이렇게 많은 군의 수군을 막으려 하는 것은 마치 주먹으로 무너지는 하늘을 버티는 것과 다름이 없는가 하오. 소인의 미련한 생각에는 아직 바다를 버리고 물에 올라 육군을 모아 뭍에 오르는 적을 막는 것이 상책이 아닌가 하오. 사또 뜻이 어떠하올지?』
 
119
『그것은 조정에서나 할 말이요. 우리는 수군으로 바다를 막으라는 명령을 받은 사람이니 힘 및는 데까지, 목숨 있는 날까지 바다를 막는 것이 우리 직책이요, 성화 같이 행선준비 하오!』
 
120
하고 순신은 배 설에게 엄명하였다.
 
121
배설은 매맞아 아픈 다리를 끌고 마지못하여 배에 올랐다.
 
122
순신도 부하를 거느리고 배에 오르고 성화같이 군량과 물을 배에 싣게 한 뒤에 열 두척 병선은 돛을 달고 회령포를 떠났다.
 
 
 

8

 
124
회령포를 떠난 것이 팔월 이십일. 함대를 배나루(배나루)에 옮겼다.
 
125
이십 일일 새벽에 순신은 갑자기 곽란을 일으켜 구토 설사를 시작하여 마침내 인사 불성이 되었다. 이튿날도 낫지 아니하여 또 이튿날도 낫지 아니하여 병세는 더욱 위중하였다. 그래서 부득이이 배에서 내려서 민가에 들어가 쉬었다.
 
126
이십 사일에 순신은 병을 무릅쓰고 배에 올라 행선령을 내렸다. 칼거리(칼거리)에 이르러 아침 먹고 거끔섬(거금섬)을 지나 어란진(於蘭鎭)에 이르니, 벌써 관리와 백성은 다 달아나고 텅 비었었다. 그날 밤을 어란진 앞바다에서 지냈다.
 
127
이튿날 이십 오일에 어떤 포작(鮑作)이 소를 후쳐 가다가 붙들려서 공초하는 말이, 적선이 뒤에 온다고 하므로 순신은 거짓말을 하여서 군심을 소란시키는 허경자두 사람을 잡아서 베었다.
 
128
그러나 그 이튿날인 이십 육일에는 임 준영(任俊英)이라는 군관이 말을 달려 와서 적병이 배나무까지 왔다는 말을 고하였다. 이날에 전라 우수사 김 억추(金億秋)가 왔다. 김 억추는 칠천도에서 전사한 이 억기 대신에 우수사가 된 사람이었다.
 
129
이튿날인 이십 칠일에 경상 수사 배 설(裵楔)이 순신을 보고,
 
130
『적선 삼백여 척이 배나루까지 왔다 하니 어찌하오?』
 
131
하고 무서워하는 빛을 보였다.
 
132
『싸우지. 어떻게 하오?』
 
133
하고 순신은 그 빛나는 눈으로 설을 바라보았다.
 
134
『열 두척으로 샘백척을 어떻게 싸우오?』
 
135
하고 설의 읍성은 떨렸다. 그는 적선과 순신을 다 같이 두려워 함이었다.
 
136
『그러면 수사는 어디로 피신한단 말이요?』
 
137
하고 순신은 웃었다.
 
138
『피한다는 것은 아니오마는, 』
 
139
하고 설은 물러갔다. 그러나 설은 어찌하면 이 죽을 곳을 빠져 나아갈 수가 있을까 하여 고집 불통하는 순신을 원망하였다.
 
140
이십 팔일에 과연 적선 팔척이 불의에 어란진 앞바다에 나타났다. 열 두척선에 탄 아직 싸움 경험 없는 병사들은 모두 겁을 내어서 더러는 배를 육지로 저어다가 붙이고 하륙하려 하고, 경상 수사 배 설은 달아나려는 기색을 보였다.
 
141
순신은 칼을 뻬어 들고 베 설에게 적선 추격을 명하고 순신이 몸소 선봉이 되어 적진을 향하여 배를 달렸다. 설은 부득이 순신의 명을 이기지 못하여 뒤를 따르고 제선들도 어찌 되나 하면서 순신의 명을 이기지 못하여 뒤를 따르고 제선들도 어찌 되나 하면서 순신의 배의 뒤를 따랐다. 순신의 함대가 북을 치고 습격하는 바람에 적선은 기를 꺽이어 뱃머리를 돌려 달아났다. 적선이 달아나는 것을 보고야 부하 제선은 기운을 얻어 앞을 다투어 적선을 따랐다.
 
142
칡머리(    )에 이르러 순신은 쇠를 울려 군사를 거두었다. 군사들은 더 못따르는 것이 아까운 듯이 뱃머리를 돌려 의기 양양하게 어란진으로 돌아 왔다.
 
143
순신은, 적의 척후가 어란진에 순신의 함대가 있는 것을 보고 갔으므로 반드시 대부대의 적선의 습격이 있을 줄 알고 곧 전함대 열 두 척을 노루섬에 옮겼다가 이튿날 진도 벽파진(珍島碧波津)에 진을 옮겼다.
 
144
벽파진은 진도의 동쪽 끝에 있어 해남을 바라보는 곳이다. 앞에 조그마한 섬이 막아 있어서 그 안에 능히 수십척의 배를 숨길 수가 있었다.
 
145
벽파진에서 여러 작은 섬 틈바구니로 북으로 이십리나 가면 진도와 해남 두 끝이 한강 넓이만이나 한 물목을 새에두고 나주 닿은 울뚝목(    또는    )이라는 해협이 있고, 그 해협을 지나서 오른편 해남 쪽에 오긋하게 들어 간 곳이 전라도 우수영이다.
 
 
 

9

 
147
순신이 외로운 열 두 척 함대를 끌고 서쪽으로 돌아온 뜻은 이 울뚝목의 지세를 이용하자는 것이었다.
 
148
울뚝목은 난 바닷물이 목 포(木浦) 앞바다로 돌고 나는 좁은 문이어서, 하루 네 차례 조수가 들고 날 때에는 악악 소리를 지르고 물결이 길이 넘게 턱이지고 거품이 일고 용솟음을 쳐서 배가 다닐 수가 없게 되는곳이다.
 
149
그 이름을 울뚝목이라고 하는 것은 우는 - 골 -목이라는 것이니, 그러한 물목을 남방 말로 도라고 하는데, 도라는 것은 돌(돌)이라는 말이 변한 것으로, 한산도 싸움에 유명한 견내도라는 도도 이 도다. 순신의 생각에는 이 울뚝목이 있었던 것이다.
 
150
순신이 임진년에 전라 수사로 있을 때에 좌수영 앞 경상도로 통한 바다에 쇠사슬을 건너 매어 방비한 것이 있거니오. 순신이 통제사가 된 뒤에 전라 우수사 이 억기(李億祺)에게 명하여 울뚝목에도 쇠사슬 두 줄을 안목과 밖목에 건너 매게 하였다. 울뚝목의 급한 조류와 두 줄의 쇠사슬, 이것은 순신이 크게 믿는 것이었다.
 
151
순신의 함대가 벽파진에 와 있다는 소문을 듣고 각처 바다에 흩어져 있던 민간의 상선과 어선이 모여 들기를 시작하였다. 수없는 적선이 질풍같이 몰아온다는 소식을 들을 뱃사람들은 순신의 위대한 날개 밑에서 살 길을 찾으려 한 것이었다.
 
152
구월 초이일 새벽에 경상 수사 배 설(배설)이 도망하고 말았다. 구월 초칠일에 탐방군 임 중형(林仲亨)의 보고매, 적선 오십 오척이 칡머리를 돌아 왔는데, 그중 십 이척은 벌써 어란진에 와서 우리 주사를 찾는다고 하였다.
 
153
순신은 곧 각선에 대기령을 내리고 피난한 민선에 대하여서는 경동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경상 수사 배 설이 도망한 것은 군사들에게 큰 불안을 주었다. 게다가 새로 서울서 내려 온 전라 우수사 김 억추(金億秋)라는 사람은 아직 삼십 내외의 아무 것도 모르는 유차하고 철없는 인물로서, 좌의정 김 응남(金應南)이 사사로운 정분으로 대장의 중임을 맡긴 것이었다. 순신은 김 억추를 처음 만나 군사에 관한 이야기를 하여 보고 그 무지함에 놀라서 억지로 시킨다면 만호(萬戶)감이될까? 하였다 그래도 배 설은 마음을 겁할 지언정, 목숨은 아낄지언정, 병법에는 소양이 있고 실전의 경험도 있는 사람이었다. 순신은 그 재주를 아껴서 아무쪼록 진중에 머물게 하려 하였으나 그는 새벽에 몰래 배를 타고 달아나 버렸다. 순신의 낙심도 여간이 아니었다.
 
154
적선 오십 오척! 이것이 군사들과 피난은 만선들의 무서움이 아닐 수 없었다. 과연 이 통제가 이 적을 막아 낼까? 의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155
신시나 되어서 과연 적선 십 삼척이 벽파빈을 향하고 방포하며 달려들었다. 순신은 전함대에 출동을 명하고 자기가 선봉으로 적선을 맞아 싸웠다.
 
156
순신의 함대가 북을 치고 방포를 하며 내닫는 양을 보고, 또 뒤에 많은 배가 있는 것을 보고 적선을 곧 뱃머리를 돌려서 달아났다.
 
157
순신은 부하를 격러하여 추격하려 하였으나 바람과 물에 다 거슬릴 때이므로 벽파진으로 돌아 왔다.
 
158
순신이 십 삼척 적선을 물리치고 돌아 오는 것을 보고 군사들과 피난민들은 환호하였다.
 
159
해가 지매 순신은 각선에 명하여 적이 야습할 염려가 있으니 다 출동 준비를 하기를 명하고, 민선에 대하여서는 포성을 듣거든 일제히 횃불을 들고 다 멀찍이 따라 나오기를 명하였다. 그리고 순신은 함대를 거느리고 섬 그늘에 숨어 있었다.
 
 
 

10

 
161
이경이나 되어서 과연 적의 포성이 들렸다. 배들은 모두 겁을 집어 먹었다. 순신은 만일 피하는 자 있으면 군법 시행한다고 엄명하고, 총포와 활을 준비하고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162
적선의 포성은 점점 가까이 왔다. 순신은 나는 듯이 섬 그늘에서 배를 몰아 나오며 일성 포성을 놓아 북을 울렸다.
 
163
순신이 탄 배가 앞서 나가는 것을 보고 부하 제선들도 포성을 내며 따라 나섰다. 벽파진에 머물러 있던 피난선들은 포성을 듣고 인제 횃불을 들고 오락가락하였다.
 
164
일경 동안이나 포성이 계속하다가 적선은 달아나고 말았다. 구월 구일. 바닷 바람은 찼다. 군사들은 아직도 여름옷을 입었다. 겹옷을 어디서 구하나? 피난선은 점점 늘었다. 순신이 여러 번 적선을 쳐물리쳤다는 소문을 들은 백성들은 더욱더욱 순신을 신뢰하고 모여 들었다.
 
165
순신은 선인 중에 낫살 먹은 사람을 불러 지금 군사들이 겹옷이 없고 또 먹을 것이 없으니, 모아 내기를 청하였다. 이 선인은 다른 선인들과 의논하고 옷과 쌀과 생선을 모아 순신에게 바쳤다. 비록 조금씩 모은 것이지마는 수백척에서 모은 것이라 적지 아니하였다.
 
166
또 진도와 해남 백성들이 송아지와 돼지를 갖다가 바치는 이가 있으므로 ,순신은 구월 구일을 잡아 군사들에게 크게 잔치를 베풀었다. 열 두 척 병선이 한데 모야 가지런히 연결해 놓고, 장수나 군졸이 모두 한데 모여서 먹고 마시고 소리를 하고 춤을 추었다. 순신도 장졸들틈에 섞이어 손수 술을 따라 주고 위로하였다. 이날은 마침 바람이 거울과 같이 고요하고, 진도와 해남의 모든 섬과 산들은 맑은 공기와 일광 속에 또렷또렷하였다. 장졸들의 잔치를 베풀었다. 그들 중에서 나이 오십이 넘은 사람에게는 순신이 손수 술을 따라주었다. 그 사람들은 순신에게 술을 권하고 고기를 권하였으나 순신은 술을 받아 먹어도 고기는 먹지 아니하였다.
 
167
초아흐레 반달이 바로 벽파성 위에 걸릴 때까지 잔치는 계속하였다. 그러나 순신은 장졸이 취하기를 허락지 아니하였다. 그래도 장졸이나 백성이나 모두 난리를 잊어 버리고 오래 못 보던 래평 시절을 당한 듯이 즐겼다. 이때에 적의 촉후선 이척이 산 그늘에 숨어서 감보섬(甘甫島)까지 들어 왔다. 그는 순신의 함대의 허실을 정탐하기 위한 것이었다.
 
168
순신은 영등 만호(永登萬戶) 조 계종(趙繼宗)에게 명하여 적선을 잡으라 명하고 여전히 잔치를 계속하였다. 군사들도 모두 기운을 내어 활을 쏘고 배를 저었으나 적선은 달아나 버렸다.
 
169
십 사일에 임 영준(任英俊)이 해남 방면을 육지로 정탐하고돌아와 보고하기를, 적선 이백여 척이 칡머리를 돌았는데 그중에 오십 오척이 벌써 어란진에 왔다 하고 또 적에게 사로 잡혔다가 도망해 온 중걸(仲乞)이라는 사람의 말에, 적이 말하기를, 조선 주사 십여 척이 자기네 배를 엄습하여 사람을 만히 죽였으니 보복을 해야 한다고 하고, 또 자기네 병선을 많이 불러다가 이 순신의 주사를 다 멸한 뒤에 곧 경강으로 올라 간다고 하더라고 하였다. 이 보고를 듣고 순신은 그 말을 다 믿지는 아니하였으나, 적의 대부대가 엄습해 온 것이 확실함을 알고 곧 전령선을 우수영에 보내어, 큰 싸움이 생길터이니 백성들은 피난하라고 명하였다.
 
 
 

11

 
171
이튿날인 구월 십 오일에 순신은 함대을 우수영 앞으로 옮겼다. 그것은 적은 병력을 가지고 울뚝목을 둥지는 것이 이롭지 못하다는 까닭으로였다.
 
172
우수영 앞으로 함대와 민선을 옮긴 날 밤, 가을 달이 낮과 같이 밝은데 순신은 제장을 장선에 불러 약속하였다.
 
173
『병법에 말하기를, (   .    .) (죽으려고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라 하였고, 또 (    .    .) (한 사람이 길을 막으면 천 사람을 두렵게 할 수가 있다. )하였으니, 이것이 지금 우리를 이름이라, 너희제장은 살 생각을 말고 조금도 영을 어기지 말라, 우리는나라를 위하여 새생을 같이하기를 맹세하였으니 나라일이 이같거늘 어찌 한번 죽기를 아끼랴, 나라와 의리를 위하여 죽으면 죽어도 영광이 나이냐, 조금이라도 군령을 어기는 자면 군률로 시행하리라.』
 
174
하였다. 순신의 약속을 들은 제장은 일제히 군복 왼편 어깨를 벗고 칼을 들어 영대로 할 것을 맹세하였다. 순신은 다시,
 
175
『살 뜻을 두지 말고 오직 죽을 뜻을 두라. 나라와 의리를 위하여 죽기로써 싸우라. 만일 조금이라도 군령에 어기는 자면 군법 시행하리라.』
 
176
하고 약속하매, 제장은 또 칼을 들어 맹세하였다. 이러하기를 세 번 한 뒤에 순신은,
 
177
『적선은 반드시 오늘 밤 달이 진 때에 그늘에 숨어 습격할 것이요, 지금까지 여러 번 온 것은 정탐하러 온 것이어니와, 이번에는 대함대가 올 것이요, 또 적장 마다시(馬多時)는 수전을 잘하기로 이름이 있다. 하니 큰 싸움이 있을 것이요, 만일 우리가 이번에 적군을 물리치지 못하는 날이면 적군은 곧 경강으로 올라 가서 한강 이북이 모두 적의 손에 들것이니, 이번 한 싸움에 나라의 운명이 모두 적의 손에 들 것이니, 이번 한 싸움에 나라의 운명이 달린 것이요, 우리는 이러할 때를 당하여 죽기로써 나라를 안보하지 아니하면 아니 될 무거운 짐을 진 것이요, 비록 적선이 천척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죽기로써 막으면 막을 도리가 있으니, 제장을 일심하여 명령을 복종하시오.』
 
178
이날 밤에 순신은 전함대의 장졸에게 밥과 고기를 많이 먹이고 영이 내릴 때까지 잘 자라고 한 뒤에 순신은 피난민선들에게 영을 내려, 더러는 활 서너 바탕 밖에 더러는 너더댓 바탕 밖에 안익진(기러기 날개)형으로 벌려 있기를 명하여 의병(의병)을 삼고 방포를 군호로 하여 진퇴하기를 명하였다. 그리고 순신은 선상에 나와 꿇어 앉아 하늘에 빌었다.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말고 보름달은 낮같이 밝은데, 기러기 떼가 소리를 지르며 떠오는 것이 보였다.
 
179
 
 
 
 
 
 
 
 
 
180
 
181
(물 나라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182
추의에 놀란 기러기 떼 높이 떴구나
183
근심 만하 잠 못 이루는 밤에
184
남은 달이 활과 칼에 비치었도다.)
 
 
185
하는 연전 한산도(閑山島)에서 지은 시를 생각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오백척 적선과 십 이척 내 주사, 이것으로 싸울 순신은 칼을 어루만지고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    .    .」이라고 쓴 칼과「    .     」라고 쓴 두 자루 칼을 번갈아 어루만지고 순신은 기러기 소리를 세고 있었다.
 
 
 

12

 
187
구월 십 육일. 동이 트려 할 때에 노적봉에서 망을 보던 별망군이 적선이 보인다는 군호를 하였다. 그 군호는 횃불이었다.
 
188
아직도 새벽 어두운 빛이 남아 있는 때에 세 자루 횃불이 번쩍하는 것은 심히 비장한 일이었다. 이윽고 별망군의 배가 순신이 탄 기함에 왔다.
 
189
『사또. 적선이 감보섬 앞에 다다랐소!』
 
190
하는 별망군의 언성이 숨이 찬 듯하였다.
 
191
『몇 척이 되드냐?』
 
192
하는 순신의 음성은 침착하였다.
 
193
『몇 척인지 도무지 헤아릴 수가 없소. 바다를 덮은 것 같소.』할 뿐이었다.
 
194
순신은 기를 달아 전함대의 출동을 명하였다. 십 삼척(한 척은 우수사의 배다)의 함대가 울뚝목에 다다랐을 때에는 벌써 적선은 아직도 미는 물에 순풍까지 맞아서쏜살 같이 울뚝목으로 밀려 들어왔다. 그 적선은 삼백 삼십 여척이었다.
 
195
적선은 이편 함대를 보곡 진을 벌려 에워 싸려는 모양을 보였다. 이것을 보고 순신의 뒤에 달려 오던 배들은 마치 물과 바람을 이기지 못하는 듯이 하나씩 둘씩 뒤로 물러나갔다. 그들은 적선이 이렇게 많은 것을 보고 바라 몇 시간 전에 맹세한 것도 잊어버리고 회피하려는 샌을 가진 것이었다.
 
196
그중에도 우수사 김 억추(金億秋)의 배는 마치 물러가는 배를 막기나 하려는 듯이 맨 뒤에 까맣게 떨어져서 뱃머리만 기함을 향하고 슬슬 돌았다. 아직 차마 달아나 버리지는 못한 것이었다.
 
197
순신의 배에 있는 장졸들도 배젓기를 쉬일까 말까 하는 태도였다. 순신은 칼을 들어 적진을 향하여 배를 젓기를 독려하였다.
 
198
순신은 울뚝목의 우수영 쪽 입의 한복판을 막고 구름같은 적선에 향하여 먼저 대포를 놓아 싸움을 돋구었다. 그리고 군관들로 하여금 활에 살을 먹여 들고 적선이 활한 바탕 안에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199
적선은 점점 가까이 왔다. 이편의 포성에 응하여 적선에서는 수십 방의 포성을 내어 엄포하였다. 그 소리가 고요하던 산과 바다를 뒤집는 듯하였다.
 
200
이 엄포에 기함대에 있던 장졸들은 떨고 노를 젓던 팔이 굳어졌다. 순신은,
 
201
『적선이 비록 천척이 오더라도 내 백 하나를 당치 못하리라.』
 
202
하고, 군사들을 독려하여 적선을 향하여 배를 젓게 하였다.
 
203
순신은 손수 활을 들어 맨 앞에 선 뱃머리에 선 갑옷입고 투구 쓴 적장을 향하여 활을 당기었다. 푸르륵 소리가 나는 듯 마는 듯, 그 장수는 두 팔을 벌리고 물에 떨어졌다.
 
204
이것을 보고 군관들은 일제히 활을 쏘았다. 뱃머리에 섰던 적의 장졸이 퍼덕퍼덕 쓰러졌다.
 
205
순신은 일변 활을 쏘며 일변 지자(地字)·현자(玄字) 각 양 총통을 놓게 하니, 순신의 기함 하나에서 발하는 총통 소리는 우레와 같고 검은 연기는 적의 눈에서 순신의 배를 감추어 버리고 말았다. 이 연기는 나는 화약은 순신이 발명한 것이었다. 때마침 들물이 거의 끝나고 참이 되어 불어오던 동남풍도 잤다. 만번 바다를 가리운 검은 연기는 아침의 무거운 공포에 눌려 움직이지를 아니하였다. 오직 수없는 화살과 화전만이 검은 구름 속으로서 수없이 적선을 향하여 날았다.
 
206
적의 함대는 놀랐다. 오직 배 한 척이 당돌이 앞을 막고 총과 활을 빗발같이 쏟아 붓는 것에 의심이 들어가 이편에 무슨 계교가 있는지 얼른 판단이아니 된 것이었다.
 
207
그러나 그동안에 적선은 다섯 겹인지 여섯 겹인지 모르게 반달 모양으로 순신의 배를 에워 싸고 오직 뒤만 텄을 뿐이었다.
 
208
순신은 황급해서 낯빛이 파랗게 질린 장졸을 돌아보며 또 한번,
 
209
『적선이 천척이라도 우리 배를 어찌하지 못한다! 조금도 동심 말고 힘껏 쏘아라!』
 
210
하고, 배에는 초요기(招搖旗)를, 높이 달아 뒤에 떨어진 배들을 부르기를 명하였다.
 
 
 

13

 
212
이 보다 먼저 순신은 중군령(中軍令) 기를 달아서 중군을 불렀으나 중군 미조항 첨사(彌助項僉使) 김 응함(金應함)은 이 부름에 곧 응할 용기가 없어서 다만 오락가락하고만 있었다.
 
213
순신은 뱃머리를 돌려서 중군을 베어서 효시하여 군령을 세우려 하였으나, 만일 순신이 뱃머리를 뒤로 돌리는 것을 보면, 뒤에서 바라보고 있던 배들은 더구나 겁이나서 달아날 것을 근심하여 그도 못하였다. 그래서 마침내 초요기를 단 것이었다.
 
214
이때에 적선은 다섯 겹 여섯 겹으로 순신의 배 한 척을 에워싸기 시작하여 빗발같이 쏟아지는 적의 탄환과 화살이 배의 주위에 떨어지고, 더러는 순신이 선 곳에서 한두걸으 밖에 와 박혔다. 적은 분명히 순신의 배를 꼭 에워싸고 순신의 배에 기어 올라 단병전을 하려는 것이었다 이때에 오직 적을 두렵게 하는 것은 순신의 활이었다. 순신의 활이 한번 울 때마다 적병 하나가 쓰러졌다. 수백척 적선을 지척에 두고 순신 혼자서 배 한척을 버티고선 것만도 적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거든, 하물며 백발백중하는 그의 활의 힘은 적에게 신비한 두려움을 주었다.
 
215
그러나 적은 이 혼자 버티고 섰는 이가 이 순신인 줄을 안다. 그는 당포, 당황포, 한산도 등 싸움의 원수다. 「아무리 해서라도 이 순신에게 원수를 갚아라.」하는 것은 이번 다시 출병할 때에 풍신 수길이 제장에게 엄명한 바다.
 
216
「일본 군사는 반드시 원수를 갚는 다는 것을 잊지말아라.」하는 것이 그 말 뒤를 이은 말이었다. 더구나 이 함대의 총사령관인 마다시(馬多時)는 안골포 싸움에 순신에게 대패를 당한 사람이다. 목숨을 열 조각에 내더라도 이 순신을 잡아 나라의 원수와 자기 개인의 원수를 갚으려고 이를 갈았다.
 
217
마다시는 뱃머리에 선 것이 이 순신인 것을 알아 보았다 그는 부하에게 명하여, 결사적으로 이 순신의 배를 점령하기를 명한 것이었다. 실로 순신의 배의 운명은 풍전 등화와 같았다.
 
218
순신은 연방 연기 나는 대포를 놓아 자기 배를 적의 눈에서 감추고는 그동안에 화살을 준비하고 배 위치를 좀 옮기고 그러다가 연기가 걷히면 쏘았다.
 
219
순신은 이번 싸움에 살아 날 것을 기약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적군이 울뚝목을 지나는 날에는 전라, 충청은 말할 것도 없고 경성의 운명이 경각에 달리고, 따라서 전 조선의 운명이 경각에 달린 줄을 알므로 그는 이곳에서 적을 막다가 살이 다하고 힘이 다하면 몸으로라도 막다가막다가 몸도 다한 뒤에야 할 말 결심이었다. 조정에서 배 설(배설)의 장계를 보고 순신에게 바다를 버리고 육전을 명하는 교지를 내렸을 때에 순신은,
 
220
 
 
 
 
 
 
 
 
 
221
             』
 
222
이것을 역하면, 「임진으로 부터 오륙년 간 적이 감히 바로 전라, 충청을 찌르지 못함은 주사 그 길을 막음이니이다. 이제 신의 전선이 오히려 열 둘이 있사오매 죽을 힘을 내어 싸워 막을 진댄 아직도 가망이 있아옵거니와, 이제 만일 주가를 전페하오면 이는 적이 다행으로 여길 배요, 충청도를 돌아 한강에 갈 것이오니, 이것이 신이 두려워하는 배로소이다. 전선이 비록 적사오나 소신만 죽지아니할진대, 적이 감히 우리를 넘기지 못하리로소이다. 」
 
223
이렇게 장계하였다. 이 장계를 올린 것이 바로 수일 전이니 배 설이 달아난 것이 이 장계초를 본 까닭이었다. 이 모양으로 순신은 죽기로써 스스로 결심한 것이었다. 초요기를 보고 중군장 김 응함(金應함)은 점점 순신의 배로 가까이 왔다. 그러나 그는 혼이 몸에 붙지 아니하여 마음을 진정치 못하였다.
 
224
이때에 거제 현령(巨濟縣令) 안 위(安위)의 배가 먼저 순신의 배에 와 달렸다.
 
225
순신은 일변 활을 쏘면서,
 
226
『안 위야! 안 위 너는 군법에 죽으려느냐? 너는 군법에 죽으려느냐? 네가 도망하면 어디 가서 산단말이냐?』
 
227
하고 안 위를 노려 보았다.
 
228
안 위는 황망히 적선 속으로 달려들었다. 이때에 또 중군장 김 응함의 배가 순신의 배 곁에 와서 영을 기다렸다. 순신은 여전히 활시위에 살을 메기며,
 
229
『응함아, 너는 중군장이 되었거든 멀리 피하여서 대장을 돕지 아니하니, 네 죄를 면할까.』
 
230
하고 칼을 빼어 응함을 베이려다가,
 
231
『지금 적세가 급하니. 네 공을 세워서 죄를 속하여라.』
 
232
김 응함은 황송하여 배를 몰아 적진으로 달려들었다.
 
 
 

14

 
234
안 위(安衛)의 배와 김 응함의 배는 활과 총을 어지러이 쏘며 철통같이 에워 싼 적진 속으로 달려들었다. 죽을 결심을 한 그들은 결코 겁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순신이 혼자서 싸우는 양을 볼 때에 미안한 감정과 나아가 같이 죽을 기운을 낸 것이었다.
 
235
인제는 세 배에서 어지러이 쏘는 화살에 적의 사상은 더욱 많았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적의 살기는 더욱 등등하였다.
 
236
이편의 맹렬한 공격에 약간 뒤로 물러가는 듯한 적의 함대로서는 그중에 크고 삼층루 있고 오색기 단 배 하나가 앞을 서고 다른 두 배가 뒤를 따라 안 위의 배로 달려들어 안 위의 배를 꼭 둘러 싸고 적병들이 안 위의배에 다투어 올랐다. 안 위는 활을 던지고 칼로 싸우기를 명하였다. 안 위와 그 부하 장졸은 뱃전을 잡고 기어 오르는 적병을 칼과 도끼와 몽둥이로 함부로 패었다. 적은 손을 찍히는 이, 팔을 찍히는 이, 머리가 깨어지는 이, 어깨가 찍히는 이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안 위의 부하도 하나 둘 죽어 거의 다하게 되려 하였다.
 
237
순신은 배를 달려 안 위의 배를 구하러 갔다. 순신은 몸소 맷버리에 서서 쉴 새 없이 활을 당기었다. 이 광경을 보고 김 응함의 배도 다른 적선을 버리고 안 위의 배를 에워싼 세 적선으로 달려들었다.
 
238
칼 빛은 번개와 같고 화살은 소나기 같았다. 양군이 어울려져 싸우는 양을 전에 보지 못하던 참담한 장면이었다.
 
239
순신은 적의 세 배 중에 가장 큰 배가 과거의 경험으로 보아 적의 기함인 것을 짐작하고, 그 배에 나와 선 장수로 보이는 이만을 골라서 쏘았다. 순신의 살은 다른 군관들의 살보다 갑절이나 멀리 가고 갑절이나 빠르고 또 한 대도 헛맞힘이 없었다. 순신의 살 한 대가 전통에서 없어지면 적병하나가 쓰러졌다.
 
240
마침내 적의 기함인 듯한 배에 탄 군관들이 거의 다 죽고, 배가 뒤로 물러갈 모양을 보일 때에 어떤 갑옷입고 투구 쓴 장수가 칼을 빼어 들고 뱃머리에 나서서 부하를 지휘하였다. 뒤로 물러나려 하던 배는 다시 노를 저어 앞으로 달렸다.
 
241
순신은 전통에 마지막 남은 화살 한 대를 시위에 메겨 그 장수를 향하여 쏘았다. 그 살은 바로 그 장수의 가슴을 뚫었다. 그 장수는 무에라고 큰 소리 한 마디를 지르고 거꾸로 바다에 떨어졌다. 바다에는 시체가 수없이 떠들고 세체 주위로는 붉은 피가 여러 가지 모양을 그렸다. 물이 찰때가 되었으나, 아직도 돌아서기를 시작하지 아니하매 시체들은 모두 순신의 배 있는 곳을 향하고 가만가만히 흘렀다.
 
242
적장이 순신의 살에 맞아 떨어지매, 안 위와 김 응함의 군사들은 적선에 뛰어 올라 적선 세척을 완전히 점령하였다.
 
243
순신의 곁에 섰던 포로 준사(俊沙)라는 이가 배 밑에 흘러 온 비단옷 입은 세체를 가리키며,
 
244
『사또, 사또, 이것이 분명히 안골포(安骨浦)에서 싸우던 적장 마다시(馬多時)요.』하였다.
 
245
순신은 김 석손(金石孫)을 시켜 갈고리로 그 시체를 끌어 올렸다. 준사는 펄펄 뛰며,
 
246
『분명 마다시오. 소인이 그 배에 있었는데 모르겠소? 분명마다시오.』
 
247
하였다.
 
248
순신은 명하여 마다시의 머리를 베어 깃대에 높이 달았다. 그리고 총공격령을 내었다. 이때에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조수가 썰물로 돌아 선 것이었다.
 
249
이편이 이기는 것을 보고야. 녹도 만호 송 여종(宋汝悰), 평산포 대장(平山浦代將) 정 응두(鄭應斗)의 배가 따라 오고 멀리 뒤떨어져 있던 배들도 왔다.
 
 
 

15

 
251
대장 마다시와 그 장선을 잃은 적군은 기운이 꺽이어진이 어지러워졌다. 순신의 총공격령을 받은 함대는 모두 기운이 백배하여 적진으로 돌입하였다. 지자(地字)·현자(玄字) 총통과 활을 소나기같이 쏘며 북을 치고 소리를 지르며 내달으니 마치 강산이 흔들리는 듯하였다.
 
252
마침 물은 썰물이 되어 이편은 물을 따라 싸우고 저편은 물을 거슬러 싸우게 되어, 이편 배들은 살같이 적선을 향하고 달려 가지마는 저편 배는 아무리 힘껏 저어도 그 자리를 유지하기도 어려웠다. 원체 이편 배는 저편 배보다 튼튼하기 때문에 뱃머리로저편 배의 허리를 냅다 받으면 저편 배는 허리가 부서졌다.
 
253
이 모양으로 한 시각 못하여 적선 삼십척을 깨뜨리고 수없는 사상자를 내었다. 적선은 갈팡질팡하다가 물결을 따라서 달아나고 말았다. 순신은 추격을 명하여 벽파정 저쪽까지 따라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쇠를 울려 추격 중지를 명하였다.
 
254
순신의 함대의 뒤를 따라 삼백여 척의 피난선들도 북을 치고 소리를 지르고 따라 나와서 벽파정 앞바다에는 구름 같은 큰 함대를 이루었다. 이 순신의 함대는 열 두척 밖에 없는 줄로 알았던 적병은 이렇게 큰 함대가 있는 것을 보고 더욱 놀래었다. 순신은 삼백여 척의 배를 명하여 모두 돛을 달게 하고 일렬 횡대로 진을 이루어 가지고 멀리 쫓기는 적선을 따르는 모양을 보이며 물이 돌아 서기를 기다렸다.
 
255
들물이 되어 순신의함대가 다시 울뚝목을 지나 우수영을 돌아 올 때에는 벌써 석양이 서산에 걸린 때였다. 바다 좌우쪽에는 종일 싸움을 보며 가슴을 조리던 백성들이 순신의 배를 보고 팔을 내어 두르고 소리를 질렀다. 어떤 이는 너무도 감격하여 발을 구르고 통곡하고, 어떤 이는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256
하루 싸움에 피곤한 군사들도 피곤한 줄도 모르고 북을 치며 춤을 추었다.
 
257
함대가 우수영에 다다랐을 때에는 벌써 달이 오르기 시작하였다. 우수영에 남아 있던 백성들과 각지로서 싸움 이긴 소문을 듣고 모여 온 백성들은 순신의 함대가 오는 것을 보고 소리를 지르고 날뛰었다. 더러는 쌀자루를 메고 오고, 더러는 마른 고기와 장과 나무를 지로 오고, 더러는 돼지와 송아지와 술을 지고 왔다.
 
258
마치 사람과 강산이 다시 살아 난 듯하였다. 달조차도 어제보다 더 밝은 빛으로 하늘을 달리는 듯하였다.
 
259
순신은 소와 돼지를 잡아 군사들을 먹이고 술을 한 사람에게 석 잔을 더 주지 말기를 명하였다.
 
260
순신은 저녁밥이 끝난 뒤에 제장을 장선에 모으고 오늘 싸움에 힘쓴 공로를 칭찬하고, 처음에 피신한 죄를 용서한다는 것을 선언하였다. 제장은 찼던 칼을 떼어 앞에 놓고 순신의 앞에 엎드려 통곡하였다. 더구나 중군장 미조항 첨사 김 응함(金應함)은,
 
261
『살아서 사또께 뵈올 면목이 없소.』
 
262
하고 슬피 울었다. 순신은,
 
263
『이 앞에 또 여러 번 싸움이 있을 것이니, 이번 싸움을 거울 삼아 다 죽기로써 마음을 삼으라. 』하고 한번 더,
 
264
『      .         .        』
 
265
를 말하였다. 순신은,
 
266
『이렇게 하면 이기리라. 이렇게 하면 지리라.』
 
267
하고, 어젯밤 꿈에 고하던 어떤 이상한 사람을 생각하고 밤이 깊오록 뱃머리에 서 있었다. 달은 순신의 빛나는 눈과 옆에 찬 칼을 비추었다. 군사들은 곤하게 잠이 들었다.
 
 
 

16

 
269
벽파정에서 적의 대함대를 쳐물린 순신은 하대를 끌고 칠산 바다까지 순회한 뒤에 시월 초구일에 다시 우수영으로 내려 왔다.
 
270
적은 벽파정에서 패하여 달아나다가 이 순신의 함대가 추격하지 아니하는 것을 보고 해남(海南)에 머물렀다. 그들은 조만간 순신의 함대가 추격해 올 것을 기다리고 분을 머금고 있었다. 이대로 참패하여 돌아갈 면목은 없었던 것이었다. 만일 순신이 열 두 척의 작은 함대를 가지고 넓은 바다에만 나오는 날이면 아직 삼백척이나 남은대함대를 가지고 한번 싸워 보자는 계획이었다.
 
271
그러나 열흘이 지나도 순신의 함대는 따라 오지 아니 하오 보름이 지내어도 순신의 함대는 빛도 보이지 아니하였다. 배에 실은 군량은 다 먹어 버리고 또 무인지경이나 다름 없는 해남에서는 군량을 더 얻을 길도 없었다. 그뿐 아니라, 장졸들은 싸울 뜻을 잃었고, 벽파전의 보고를 들은 순천(순천)의 소서 행장(小西行長)은 다시 수로로 서울을 향할 생각을 끊어서 구원을 보내지 아니하였다.
 
272
순신은 해남에 정탐 선을 보내어 적이 혼란한 상태에 있다는 보고를 듣고 곧 민선 삼백여 척에 무장을 시켜서 해남을 총공격할 계획을 세웠다.
 
273
「싸울 뜻이 있는 군사 한명은 싸울 뜻이 없는 군사 백명을 당한다. 」하는 것을 순신은 이용한 것이었다. 벽파정 싸움이 지난지 이십여 일이 지났으니 적병은 반드시 분하고 긴장한 마음이 풀리고 지루하여 싸울 뜻이 없어졌으리라고 간파한 것이었다.
 
274
그뿐더러 순신이 당당한, 승전한 함대를 끌고 전라도의 서해안을 순시하는 동안에 승전을 축하하는 백성들에게 군량과 의복을 넉넉히 얻고, 또 각진에 있던 군기도 많이 얻었다. 게다가 순신의 부하 장졸들은 간 곳마다 백성들의 눈물겨운 환영을 받아 더욱더욱 용기를 얻었다. 또 의용병으로 순신을 따르려는 장정도 오백여 명을 더 얻었다.
 
275
이 사람과 군기와 군량으로 피난민선 삼백척을 무장하여 비록 순련은 부족하나마, 당당한 대함대를 이룬 것이었다.
 
276
순신은 당당한 삼백척의 대함대를 끌고 우수영을 지나 벽파진을 지나 해남을 향하였다 그것이 시월 십일 사경이다.
 
277
이튿날인 십 일일에 함대가 어란진 앞바다에 다다랐을 때에 결사대 정탐군 이 순(李順), 박 담동(朴淡同), 박수환(朴守煥), 태귀생(太貴生) 네 사람을 보내어 해남 적정을 살피게 하였다.
 
278
오정이나 되어 정탐군이 돌아와,
 
279
『해남에는 연 기가 창천하였소 적선이 흩어져 남쪽으로 향하여 달아나오.』
 
280
하고 보고하였다.
 
281
『오. 그놈들이 달아나는구나!』
 
282
하고 순신은 만족한 듯이 웃었다.
 
283
순신은 함대를 발음도(發音島)에 닿이고 상상봉에 올랐다. 이날 바람이 없고 날이 맑아서 따뜻하기가 봄날과 같았다.
 
284
순신은 상상봉에서 적선의 숨은 곳을 찾아 보았다. 동에는 앞섬이 가로 놓여서 멀리 바라 볼 수가 없다. 북으로는 나주(羅州)를 향하여 영암 월출산(靈岩月出山)이 파랗게 바라 보이고, 서쪽으로는 비금도(飛衾島)로 향하여 안개가 툭 터졌다.
 
285
중군장 우 치적(禹致績)이 오고 조 효남(趙孝南), 안 위(安위), 우 수(禹壽)도 왔다.
 
286
조 계종(趙繼宗)이 와서 해남의 적정을 아뢰고 적이 순신의 주사를 싫어 한다는 말을 고하였다.
 
 
 

17

 
288
이튿날 가리포 첨사(加里浦僉使), 장흥 부사(長興府使) 등이 와서 순신에게 보이고 승전을 축하하였다. 이 튿날인 십 삼일에 배 조방장(裵助防將)과 경상 우후(慶尙虞侯)가 오고 또 임 영준(任英俊)이 정탐 임무를 마치고 돌아와서 이러한 보고를 하였다.
 
289
『해남에 있던 적병을 초칠일에 우리 주사가 내려 오는 것을 보고는 겁을 내어 십 일일에 다달아나 버렸다 하오. 』
 
290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탐으로 순신의 신임을 받는 임영준은 놀랄 만한 보고를 또 하였다.
 
291
『해남 아전 송 언봉(宋彦逢)이란 놈과 신 용(慎容)이란 놈이 적의 진중에 들어가서 적의 앞잡이가 되어 사인을 많이 죽였다. 하오.』
 
292
하는 것이었다.
 
293
순신은 임 영준의 보고를 듣고, 곧 순천 부사(順天府使) 우 치적(禹致績), 금갑 만호(金甲萬戶), 당포 만호(唐布萬戶) 안 이명(安以命), 소라 만호(召羅萬戶) 정 공청(鄭共靑), 군관(軍官) 임 계형(林季亨), 정 상명(定翔溟), 태 귀생(太貴生), 박 수환(朴壽煥) 등과 일대의 군사를 해남으로 보내어 해남의 치안을 유지하고 잔적을 소탕할 것을 명하였다.
 
294
시월 십 사일에 순신은 군사 일을 생각하다가 삼경이 넘어서야 잠이 들었다.
 
295
잠이 들락말락한 때에 순신은 한 꿈을 얻었다. 그것을 순신의 난중 일기에 있는 대로 적어 보자.
 
296
 
 
 
 
 
 
 
 
 
297
                』
 
298
번역하면,
 
299
「십 사일 신미 맑다. 사경 꿈에 내가 말을 타고 언덕 위를 가다가 실족하여 개천에 떨어졌으나 넘어지지는 아니하였는데, 끝에 아들 면이 나를 붙들어 안으려는 모양 같았다. 깨어 보니 이것이 무슨 징조인가? 저녁에 천안으로 부터 사람이 와서 집 편지를 전하였다. 떼어 보기 전에 벌서 골육이 먼저 동하여 심기가 황란하다. 겨우 겉봉을 떼어 보니 열의 편지인데, 외면에 「통곡」이란 글자를 쓴 것을 보고 면이 싸워 죽은 줄 알고 낙담하여 실성 통곡하였다. 하늘이 어찌 죽은 줄 알고 낙담하여 실성 통곡하였다. 하늘이 어찌 이같이 어질지 아니 하신가? 내가 죽고 네가 살아야 떳떳하거든 네가 죽고 내가 살았으니, 이런 변이 어디 있을까? 천지가 캄캄하여지고 백일이 빛을 잃는구나, 슬프다! 내 아들아, 나를 두고 어디로 돌아가는고, 영기가 뛰어났더니 하늘이 세상에 두시지 아니하심인가? 내가 지은 죄가 네 몸에 미침이냐? 내가 이제 세상에 있은 들 장차 누에게 의지하랴? 통곡할 따름이로다. 한밤을 지내기가 일년과 같구나!」 순신의 셋째 아들 면이 죽은 것은 이러한 일로 였었다.
 
300
벽파진에 마다시의 함대가 참패를 당하고 대장 마다시가 죽었다는 말을 들은 가등 청정(加藤淸正)은 부하에게 명하여 충청도 아산에 있는 순신의 가족을 사로잡아 오기를 명하였다.
 
301
하루는 일본 군사가 뱀 발을 향하고 온다는 말을 듣고 집에 남아 있던 가족들은 모두 도망할 준비를 하였다. 그러나 그때에 열 일곱 살 되던 면은 「적병이 오거든 나가 싸워 한 놈이라도 제 키에 어울리지도 아니하는 긴 칼을 차고 활을 메고 전통을 지고 말을 타고 적병 온다는 곳으로 맞아 나갔다.
 
 
 

18

 
303
면은 단기로 집 동쪽 고개를 넘어 동으로 말을 달렸다. 오리쯤이나 가서 약 오십명의 말탄 적병을 만났다. 면은 말을 세우고 적 진중을 향하여 활을 쏘았다. 이 곳은 벌판이라 몸을 숨길 곳은 없었다.
 
304
면의 화살은 경각간에 적병 이삼인을 쏘아 떨어뜨렸다. 불의에 이 변을 당한 적병들은 적이 한 어린 소년인 것을 보고 말을 급히 몰아 면을 에워 싸려 하였다. 면은 까딱 없이 서서 활을 쏘았다. 적병의 조총 탄환이면의 말이 거꾸러지매, 면은 땅바닥에 서서 활을 쏘았다.
 
305
면은 화살이 다하매 칼을 빼어 들고 달려드는 적을 저항하였다. 적병은 면을 꼭 에워 싸고 군사를 시켜,
 
306
『네가 누구냐?』
 
307
하고 면에게 물었다. 화살을 다 써버린 면은 오직 칼을 들고 적의 공격을 기다릴 뿐이었다.
 
308
『나는 이 면이다.』
 
309
하고 면은 대답하였다.
 
310
『너는 이 순신의 아들이냐?』
 
311
『그렇다. 나를 살려 놓고는 한걸음도 너희가 이곳을 지나지 못하리라!』
 
312
하고 면은 눈을 부릅떴다.
 
313
『내가 너의 가족을 죽이러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대장이 보호하라기에 오는 것이다. 만일 더 저항하면 너도 죽여버리고 네 가족도 죽이려니와, 네가 항복만 하면 너도 살리고 네 가족도 해치지 아니하고 데려다가 편안히 살게 할 것이다.』
 
314
하고 그중에 대장인 듯한 사람이 말하였다. 면은 아버지가 웃던 모양을 본받아서 껄껄 웃으며,
 
315
『이 순신의 아들이 너에게 항복할 듯싶으냐? 이 순신의 가족이 너의 칼에 죽을지언정, 젖먹는 어린 아이기로 항복할 듯싶으냐? 잔말 말고 이리 나와서 내 칼을 받아라. 』
 
316
하고 칼을 들어 칼끝을 대장에게 겨누었다.
 
317
곁에 있던 적병들이 악! 하고 면에게로 달려들려 하였다. 그러나 대장은 소리를 질러 그것을 막았다.
 
318
『오냐. 네 뜻이 장하다. 그러면 나하고 싸워 볼까.』
 
319
하고 대장이 말에서 내려 면의 앞으로 나왔다. 대장은 나이 사십이나 되었을까. 웃우염이 여덟팔자로 나고 얼굴이 희고 눈에 영채가 있고 키는 중키나 될, 날랠 듯한 사람이었다. 그는 면의 앞에 서서,
 
320
『네가 갑옷 투구를 아니 입었으니, 나도 갑옷과 투구를 벗을 테다.』
 
321
하고 칼을 곁에 있는 군사에게 맡기고 갑옷과 투구를 벗었다. 면은 적이 갑옷과 투구를 벗는 동안에 가만히 가다리고 있었다. 적장은 갑옷과 투구를 벗어 놓고 칼을 들고 면을 향하여 섰다. 면은 한번 칼자루를 다시 잡고 저장을 향하였다.
 
322
『요읍!』
 
323
하고 적장은 칼로 바로 면의 면을 엄습하였다. 그는 면을 어리게 본 것이었다 면은 적의 칼을 피하면서 적의 왼편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적의 왼편 옆구리에서는 피가 흘렀다. 그러나 중산은 아니었다.
 
324
적은 면의 칼쓰는 법이 심상치 아니한 것을 보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325
두 사람은 어울려져 싸웠다. 칼과 칼의 마주칠 때에는 불꽃이 일었다. 두 칼이 번뜩일 때에는 햇빛이 비치어 무지개가 뻗쳤다.
 
326
면은 공세를 버리고 수세를 취하여 적이 칼쓰는 법을 보고 그 허를 찌를 생각을 하였다.
 
327
그러나 어린 적에게 먼저 옆구리를 찔린 적은 얼마큼 상기하여 연해 공세를 취하였다.
 
328
『이번 칼에는, 이번 칼에는! 』
 
329
하고 적은 초초하나 면의 작은 몸은 용하게도 적의 칼끜을 피하였다. 만일 싸움이 오래끈다 하면, 면은 기운이 지쳐서 도저히 적을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마침내 면은 적의 검술의 허실을 다 보았다. 적은 부하 군졸에 대한 면목으로라도 면을 이마로 부터 두 쪽에 칼라 버릴 야심을 가진 것이었다.
 
 
 

19

 
331
적의 허실을 다 짐작한 면은 한걸음 바싹바싹 다가 들어 공세를 취하였다. 면의 칼끝이자주 적의 몸과 옆구리와 가슴을 범하였다 지금까지의 힘이 부친 듯하던 면은 새 기운을 얻은 듯이 몸이 가벼워지고 칼날 돌아 가는 것이 더욱 빨라졌다.
 
332
이것을 본 적은 초조한 생각을 넘어서 일종의 무서운 생각을 가진 듯하였다. 그의 이마에서는 땀이흘렀다. 그러나 면은 가끔 한 손으로 안으로 넘어 오려는 초립을 뒤로 잦혀 바로 잡을 여유를 보였다.
 
333
이러기를 거의 일각이나 한 때에 면은 힘없이 칼을 옆으로 비끼는 듯하였다. 이 틈을 타서 칼로 바로 면의 이마를 내리 쳤다. 이번에는 면의 몸은 두 쪽으로 갈라 지라라고 생각하였다.
 
334
그러나 이것은 면의 일종의 전술이었다. 적이 연해 자기의 이마를 겨누는 눈치를 보고 정면에 허한 빛을 보여 적의 칼을 유인한 것이었다. 그리고 적이 혼신의 힘을 다하여 면의 정면을 내려 칠 때에, 면은 나는 듯이 적의 왼편 옆으로 몸을 돌려 칼끝을 깊이 적의 왼편 가슴에 찔렀다. 피는 면의 칼로 흘러내렸다. 면이 칼을 빼어다시 적의 목을 치려 할 때에 적은 칼에 쓰러지고 뒤로서 다른 적이 내달아 면의 칼 든 팔을 찍었다.
 
335
면은 곧 왼손으로 땅에 떨어진 칼을 집었으나, 다른 칼이 또 면의 왼편 팔을 찍었다. 그리고 뒤를 이어 오는 칼이 또 면의 목을 쳐 떨어뜨렸다.
 
336
면에게 가슴을 찔려 넘어졌던 적은 이윽고 눈을 뜨더니,
 
337
『그, 고놈을 죽이지 말아라.』
 
338
하고 외쳤다.
 
339
『벌써 죽였소!』
 
340
하고 면의 목을 쳐 떨어뜨린 사람이 말하였다.
 
341
『아깝다!』
 
342
하고 적은 눈을 감았다가,
 
343
『조선에 아직도 사람이 있다. 순신의 집은 습격하지 말고 돌아 가거라.』
 
344
하고 적도 죽었다.
 
345
적은 죽은 대장과 동료의 시체를 말에 싣고 오던 길로 돌아갔다. 면이 죽은 것은 이리하여서였다. 이때에 면의 목을 잘라 떨어뜨린 적은 후에 수군이 되어 싸우다가 순신에게 잡혀서 죽었다.
 
346
순신은 곧 전라, 경상 양도의 바다를 손에 넣으려 하였으나 날은 점점 추워 가고 군량은 없고 군사도 부족할뿐더러, 병선, 군기도 부족하여 경성히 단행할 수가 없었다.
 
347
그래서 순신은 미조항 첨사(彌助項僉使), 강진 현감(康津縣監) 등으로 하여금 군량을 실어 오라 명하고, 또 일변목포(木浦)항에 있는 보화도(보화도)에 병영을 건축하여 만일의 경우에 근거지를 삼기를 준비하고 또 김 종려(김종려)로 염장 감자 도감(鹽場監煮都監)을 삼아 바람섬 등 열세 섬에 소금을 굽게 하였다.
 
348
각처에 숨었던 장졸들도 하나씩 둘씩 순신에게로 돌아 왔다. 순신은 돌아온 자는 죄를 사하여 다시 썼으나 그렇지 아니한 관리들, 예하면, 경상 수사 배 설 같은 자는 죄을 적어 장제하였다.
 
349
시월 이십 사일에 당 나라 주사가 강화도(江華島)에 왔다는 기별이 순신에게 왔다.
 
350
당 나라 주사는 수군 도독(水軍都督) 진 인(陳璘)이 거느린 칠천명 수군과 백여 척 전선이었다.
 
351
그 이튿날인 이십 오일에 선전관(宣傳官) 박 희무(朴希茂)가 교지를 받들고 내려 왔다. 그것은 명나라 수군이 정박할 만한 근거지를 알아 올리라는 것이었다.
 
352
순신은 고금도(古今島)가 합당한 뜻으로 대답하고, 자기는 보화도에 병영과 창고 건축을 독려하였다. 대개 순신은 조선군과 명군이 도저히 같이 하기 어려울 것과, 또 명군이 싸움에 방해는 될지언정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을 잘 안 까닭이었다.
 
353
순신은 날마다 몸소 사오백명 역군을 독려하여 병영창고, 오로, 선창 등의 공사를 하였다.
 
 
 

20

 
355
벽파진 싸움에 이 순신이 승전한 영향은 어찌 되었나. 둘째 번명나라 청병도 팔월 십 오일 남원(南原)의 패전에 기세가 꺾이어 서울을 버리고 물러가 압록강(鴨綠江)을 지키자는 말까지 났었다. 명군의 생각에는 일본군을 저항할 수 없다고 믿었다.
 
356
원래 명군은 일본군을 무서워함이 여간이 아니었다. 그래서 정유년에 둘째 번 청병되어서 조선에 온 경리사(經裡使) 형 개(邢价)는 심 유경(沈惟敬)을 시켜 외교적으로 일본군을 물리치려 하였다. 그러나 심 유경은 벌써 일본이나 명나라 조정에나 신용을 잃은 사람이었다.
 
357
그는 풍신 수길이 봉을 받고 명나라를 섬기는 충성을 가졌다고 명나라 황제를 속였던 것이었다. 그러나 풍신수길의 군사가 다시 조선에 건너 왔다는 보고가 북경 조정에 이르매, 양 방형(楊方亨), 심 유경(沈惟敬) 등 책봉사로 갔던 사람들뿐 아니라, 그들을 믿고 추천하였던 병부 상서 석성(石星)까지도 죄를 입게 된 것이었다.
 
358
이러하므로 형 개의 명을 받은 심 유경은 몸소 가등 청정(加藤淸正)의 진에 들어가기가 무서워서 조선 유정(사명당)으로 하여금 「형 총독이 대병 칠십만을 거느리고 오니 곧 퇴병함이 일본에 이하리라. 나는 싸움이 일기를 원치 아니하는 생각으로 이 말을 미리 보내는 것이니, 후회가 없이 하라」하는 밀서를 전하게 하였다.
 
359
이때 청정은 서생포(西生浦)에 유진하고 있었다. 그는 심 유경에게 이렇게 회답을 썼다.
 
360
 
 
 
 
 
361
            』
 
362
번역하면,
 
363
「태사(심 유경을 가리킴)의 말에 대명병이 쓸어 나온다 하니 이는 소원이라, 조선병은 도무지 적수가 되지 아니하니 대명병과 쾌히 한번 싸웟 조선국은 말할 것도 없고 대명나라 북경까지 불살라 버릴 터이니, 머리를 들리지 말지어다.
 
364
이런 좋은 일이 또 있는가.」 이러한 편지를 받은 심 유경은 말할 것도 없고 명병도 간담이 서늘하였다. 사실 가등 청정은 겨울이 되기 전에 압록강을 넘을 예정이었다.
 
365
그러나 벽파진에서 마다시의 대함대가 참패를 당하매, 일본군은 전진할 기운을 잃어 버렸다.
 
366
왜 그런고 하면, 조선은 팔년 풍전에 백성이 농사를 짓지 못하여 육지에는 양식이 넉넉지 못한 데다가 조정에서는 체찰사 이 원익(李元翼)의 계교에 따라 경상, 충청, 경기 제도에 청야법을 행하였다. 장정과 부녀와 양식과 재물을 모두 산서으로 옮기고 평지에는 아무 것도 남기지 아니하였다. 그러므로 일본군이 경성과 압록강을 향하자면 군량, 군기를 바다로 운반하지 아니하고는 될 수 없는 일이었다. 일본군이 조선 바다의 재해권을 가지는 것은 군사 행동을 위하여서는 절대로 필요한일이었다. 그러므로 만일 이 순신이 벽파진 싸움에 져서 일본 함대에게 경강으로 통하는 길을 주었다면, 그 싸움이 있는 지 열흘이 넘지 못하여서 서울이 함락되었을 것이요, 다시 한 달이 넘지 못하여서 가등 청정의 계획대로 압록강에 다다랐을 것이었다.
 
367
이렇게 되매 일본군은 겨울이 가깝다는 것을 핑계로 전진 계획을 버리고 순천(順天)·사천(泗川)·김해(金海)·부산(釜山)·기장(機張)·울산(蔚山) 등 해안 요지에 혹은 성을 쌓고, 혹은 집을 짓고, 혹은 밭을 갈아 반영구적 주둔 계획을 세우고, 다시 때가 돌아 오기를 기다리기로 한 것이었다.
 
368
이렇게 일본군의 전진 기세가 돈좌되는 것을 보고 조선의 조정과 명군도 기운을 얻어 한 번 싸워 볼 생각을 하게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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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수(李光洙) [저자]
 
  동아 일보(東亞日報) [출처]
 
  1931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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